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312화 (311/316)

312화

고유석은 ‘더’ 잘하는 투수였다. 그 비교 대상이 리그 평균적인 투수든, 혹은 사이 영을 노려볼만한 정상 에이스든 간에, 그들보다 더 잘하는 투수에 불과했지.

그렇기에 다저스는 자신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화 속의 기사처럼, 게임 속의 용사처럼, 자신들이 Go, 그 무적의 괴물을 처치하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별거 아니야, 그냥 평소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돼.”

“쫄지 말고, 집중해. 아직 충분히 이길 수 있어!”

“2점, 딱딱 하나 씩만 치면 역전이야!”

이제까지 상대했던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다 싶을 정도로 더 잘하는 투수지만. 그래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지.

그렇기에 표정을 구기고, 더욱더 험난해진 그 승리까지의 여정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노력하려, 조금 더 잘하려 했을 뿐.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그 믿음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회 초 선두타자로서 타석에 들어선 7번타자 엔리케 에르난데스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좌투수를 상대로 괜찮은 타격감을 보여서. 좌완 플래툰으로서 올해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선수이지만.

‘저 X같은 서클 체인지업은 대체··· 우타자가 저런 걸 어떻게 쳐?’

그런 우타자들을 농락하기 딱 좋은 페이드어웨이, 서클 체인지업 앞에서 그 역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허무하게 삼진으로 물러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16.09. 저 괴물이 정규시즌에서 기록한 9이닝 당 탈삼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리그 평균과 비교하면 두 배가 조금 안 되는,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경기마다 7개의 삼진을 ‘더’ 잡는 셈이지.

그렇기에 그가 허무하게 헛스윙하며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그것을 특이하거나, 아쉽게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삼진이 올라가는 것이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저 평균적인 경기들과 비교했을 때, 일곱 번의 삼진을 더 당하더라도, 그럼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지.

“아웃!”

곧이어 올라간 8번타자 야시엘 푸이그는 제법 번뜩이는 스윙으로 공을 때려 맞혔다.

‘됐다!’

몸쪽으로 쭉 들어온 포심 패스트볼을 정확하게 강타한 그는 느껴지는 묵직한 손맛에 몸을 탄력적으로 비틀며 최대한 타구에 임팩트를 담았지만.

그런 신속한 몸짓이 무색하게도 타구는 뻗기는커녕, 그저 그 자리에서 높이 떠올랐다.

‘분명, 제대로 맞은 것 같았는데···’

그는 조금 아이러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하게 패스트볼을 노려서 쳤으니, 만약 다른 투수였다면, 조금은 구위가 약한 투수였다면 큼직한 타구가 나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홈런이 올라갔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작 내야뜬공, 그것도 포수에게 잡히는 수준으로 그친 것에 조금은 아쉬웠지.

허나 마찬가지로 리그의 평균적인 투수들보다 두 배 이상 내야뜬공을 잘 유도하는 투수였으니, 그런 결과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9번타자 오스틴 반스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3회 초의 공격도 역시나 잔혹하게 종결됐고.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던 야심 찼던 다저스의 의지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0.14, 올해 정규시즌에서 최종적으로 기록한 ERA를 고려하면 어쩌면 그를 상대로 득점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르리라.

올해 메이저리그 평균 ERA가 4점대인 것을 감안하면, 다른 투수들과 비교하여 경기마다 약 4점의 실점을 덜 하는 투수니까.

그럼에도 다저스는 자신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평소라면 4점을 낼 것을, 오늘은 5점을 낼 정도의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1점이라도 실점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까.

남들보다 더 잘 잡고, 덜 맞고, 더 강력하고, 덜 내주는 투수.

그렇기에 그 ‘더’ 만큼만, 그 간극을 채울 수 있는 정도만 더욱더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다저스는 굳게 믿었지만.

그 노력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무패전승··· 이래서 가능한 거였네.”

그 모든 ‘더’가 모였을 때, 그것이 곧 전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당연한 삼진과 당연한 내야플라이, 그리고 당연한 무실점처럼. 고유석은 당연히 승리를 만들어갔다.

####

좋은 흐름을 만들기도 전부터 통타를 내줘서 그런지, 이닝이 이어질수록 커쇼는 더욱더 무너졌다.

비록 홈런처럼 결정적인 한 방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출루를 허용했지.

그러다가 3회 말에는 또다시 1점을 내주더니, 결국 4회에 이르러선 완전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베이스 온 볼!”

“컨트롤이 흔들리네.”

“밸런스가 망가진 거야, 지친 거겠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4회 말 선두타자인 마커스 시미언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그대로 출루를 허용하는 모습만 봐도 정상은 아니지.

연이어 난타를 당하면서 멘탈에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아무래도 7차전 등판의 영향도 큰 것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종종 정신론 때문에 착각하고는 한다. 체력이 부족하더라도, 정신력이 강하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완전히 틀린 말이지.’

하지만 틀린 말이다. 실상은 정반대거든. 오히려 탄탄한 체력이야 말로 정신력의 근간이지.

체력적인 여력이 충분하다면, 정신적으로 조금 몰리더라도 거뜬히 버틸 수 있지만.

하지만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제 아무리 정신력이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멘탈에 타격에 오는 순간 그대로 무너지지. 지금의 커쇼처럼.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 같죠?”

“그렇겠지. 팀과 본인 주장에 의하면 라이브 피칭 대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지.”

코치 역시 그런 커쇼의 상태가 훤히 보이는 건지 조금은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라이브 피칭을 하는 대신, 7차전에 구원등판한 것이라고 한다.

수비와 타자까지 둬서, 실전처럼 연습해서, 피칭감각을 올리는 건데, 그 대신 진짜로 실전을 한 거지.

아마 1이닝 3K로 총 13개 던졌던가? 얼마 던지지도 않았으니, 충분히 거뜬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

‘실전과 라이브 피칭은 집중력 자체가 다르지.’

설사 진짜 라이브 피칭을 대신해서 오른 것이라고 해도, 1이닝 밖에 되지 않는 실전과 라이브 피칭의 체력소모는 차원이 다르다.

어쨌든 실전이니 최대한 피칭감각을 올려야 하는데, 감각은 결국 집중력이고, 집중은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거든.

‘집중력은 곧 뇌고, 인체에서 가장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게 뇌니까.’

그런데 한창 선발등판을 준비할 때, 뜬금없이 중간에 실전을 한번 치르면서, 그걸 소모해버렸으니.

제 아무리 1이닝만 던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에 이르러서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을 수밖에.

그런 불완전한 상태에서 월드시리즈 첫 경기를 맞이해,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온 막강한 타선을 상대하니.

“크네, 한 점 더 올라갈 수도 있겠는데?”

두들겨 맞을 수밖에.

내가 맨날 타박해서 그렇지, 우리 타자들이 솔직히 잘하는 편이거든. 어설픈 준비 상태로는 어림도 없지.

또다시 안타를 허용하는 커쇼를 보며, 그에게까지 연결될 타석을 준비하던 제드 라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홈런을 방지하는 대신, 넓고 광활한 콜리시엄의 외야 깊숙한 곳에 타구가 떨어졌으니.

주력이 준수한 마커스 시미언이라면 과감하게 홈으로 파고들 수도 있었으니까.

“글쎄, 적당히 3루에서 멈출 걸요. 투수가 흔들리고 있으니 굳이 도박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 하긴, 지금 커쇼 꼴로 봐선, 최소한 안타 하나 정도는 더 칠 수도 있을 테니까, 적당히 조심하는 게 낫긴 하겠네.”

뭐, 대충 그런 건데, 이건 결국 그냥 추론에 불과하고, 자세한 내막은 아예 다를 수도 있겠지.

커쇼는 정말로 멀쩡한데, 그냥 어쩌다 보니 우리 타자들의 아다리가 잘 맞아떨어진 걸지도 모르잖아? 가끔 상대타자들과 내 피칭의 박자가 일치해서, 하나씩 맞는 것처럼 말이야. 이번에도 그런 걸지도 모르지.

가능성은 조금 낮아 보이지만, 어쩌면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커쇼가 새가슴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 이유가 뭐가 됐든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진짜 또 하나 갔네. 그럼 난 간다.”

“제드도 하나 더 날려요.”

“싹 쓸고 돌아올 테니까, 우리 에이스께선 편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

우리가 더욱더 승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9번타자, 브루스를 잡으며 첫 아웃카운트를 하나 올려낸 커쇼였지만,

그 직후 맷 채프먼에게 다시 안타를 허용하면서, 직전에 3루에서 멈췄던 마커스 시미언이 편안하게 홈으로 들어왔다.

점수는 이제 3점차. 1루 주자가 다시 3루까지 갔으니, 점수가 더 날 수도 있겠어. 빅이닝이 될지도 모르고.

이놈의 타자들은 1점만 내도 될 때는 진짜 오지게들 때리네.

“적당히 해, 오늘 신나서 몰아치다가 내일은 또 갑자기 지루 걸릴지도 모르니까.”

“Suck 너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쟤는 점수를 내줘도 지랄이야.”

“그래도 조루보단 낫네. 나쁘지 않아.”

이렇게 신내다가 또 기복이 도지는 건 아닐까, 거정스러워서 타자들을 타박하니. 다들 툴툴거렸지만.

그런 동료들도, 나도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가온 월드시리즈의 첫 승리 앞에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점수 차가 큰데, 중간에 교체-”

“Nope! 그건 약속과 다르죠. 아직 만족 못했어요. 이번 포스트시즌은 제 마음대로 던지라면서요?”

“그놈의 만족은 대체 언제쯤 될 예정이야?”

“아마도 제가 월드시리즈 3승을 올리는 순간이겠죠. 그러다가 또 1년이 지나면 다시 리셋되겠지만.”

“젠장, 흥에 취해서 괜히 그딴 소리를 해가지고···”

함께 웃던 스콧 에머슨은 돌아가는 상황에 슬그머니 나를 꼬시려다가 단호한 거절에 얻어맞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말이야.

어딜 내 행복을 앗아가려고.

어림도 없다 이거야.

난 이번 월드시리즈를 꼭꼭 씹어서 소화시킬 생각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온전히 혼자서 즐겨야지.

이 마운드 위를.

####

우리 시대의 샌디 코팩스는 결국 예상처럼 1점을 더 내준 뒤, 4회를 끝으로 내려갔다.

4이닝 4실점.

그의 가을에 다시 한번 기대를 품었던 팬들의 염원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로.

그리고 21세기의 돈 드라이스데일 혹은 크리스티 매튜슨은 여전히 홀로 남은 마운드 위에 올랐다. 애초에 내려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이 하나씩 추가되고, 아웃카운트가 점점 늘어날 때마다, 집에서 경기를 시청하거나, 혹은 오클랜드까지 그다지 멀지는 않은 원정을 떠났던 다저스 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다.

이미 충분히 실망스러운 경기이기에, 더는 견디기 싫다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스스로를 진정한 팬으로서 자처하는 이들은 팀의 고통과도 함께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그거 만큼은 안 되지!”

“하아··· 그나마 하나라도 건졌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좋아해야지. 이런 거라도 좋아해야지, 그게 아니면 죄다 X같으니까.”

그런 팬들을 위해 그나마 마지막 선물이 주어졌다.

6회 초, 오스틴 반스를 대신해서 타석에 오른 작 피더슨이 투심을 살짝 건드리며.

아슬아슬하게 2루 베이스 옆을 스치는,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흐르는 타구를 쳐내면서, 다저스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던 퍼펙트를 깨트렸으니까.

퍼펙트에서의 해방은 팀의 고통과 기꺼이 함께했던 팬들에게 크나큰 기쁨이었고.

티비로나마 중계를 시청하던 이들은 그걸로 됐다며 번쩍 제 팔을 들어 올리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상을 바라는 이는 없었다.

이제 퍼펙트가 깨졌으니, 무실점도 깨트리자거나, 혹은 이대로 경기를 역전하자거나 하는 외침은 LA에서도, 오클랜드에서도, 그리고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울리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마치, 어차피 그다음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진짜 지독한 새끼네. 점수가 이제 6점차가 나는데, 계속 올라?”

“기록이 탐나는 거겠지. 혹시 여섯 경기 연속 완봉 그거, 포스트시즌 기록도 인정해주나? 퍼펙트는 정식으로 인정하잖아?”

“글쎄, 아마도 아닐 걸.”

퍼펙트가 깨진 뒤에도, 점수가 점점 더 벌어지는데도 그는 여전히 마운드에 올랐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밝은 미소가 다저스의 기분을 더럽히기도 했지만.

사실 이미 밑바닥을 찍었기에, 더는 내려갈 곳이 없기도 했다. 오히려 욕설을 섞은 감탄사가 나왔을 뿐.

다저스가 바랐던 월드시리즈에서 좌완 에이스의 모습이었으니까. 그것이 상대라는 것이 애석하지만.

“15년이던가? 아니, 재작년? 아무튼 리치 힐이랑 조시 레딕 데리고 왔을 때, 무조건 같이 데려 왔어야 했어.”

“그랬으면··· 진짜 행복했겠지.”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지. 누가 알았겠어? 쟤가 이 정도로까지 터질 줄은.”

그렇기에 몇몇은 스쳐 지나갔던 인연을 떠올리며 아쉬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가 더블A를 휩쓸며,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을 때, 애슬레틱스와 다저스 사이에서 그의 딜이 오갔었지.

사실 그저 한 차례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이야기인데도, 다저스의 팬이라면 그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 투수의 영광이 더욱더 짙어질수록, 점점 더 진한 미련이 남았으니까.

누가 알았겠는가?

그저 조시 레딕과 리치 힐을 데려오던 시절, 덤이나 괜찮은 보너스 정도로 여겼던 마이너의 루키가, 실상은 진짜배기 알토란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아쉬움은 다저스만이 아니라, 그 당시 그를 노리기도 했던 디백스나, 파드리스도 공유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Go라는 투수가 가장 값이 쌌던 시기를 허무하게 흘려보냈던 미련이겠지.

-스트~~라이크 아웃!

“만약 쟤가 우리 팀이었으면···”

홀로 맥주를 홀짝이며, 중계를 시청하던 한 다저스 팬은 또다시 그들의 타자를 때려잡는 투수를 보면서.

만약을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지금 이 상황이 더욱더 비참하게 느껴졌기에, 곧 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 그리고 한숨과 인정 속에서 1차전이 끝을 향해 달려갔을 때.

몇몇 다저스 팬들은 어쩌면 과거 요기 베라가 샌디 코팩스를 보며 했던 물음과 조금은 비슷한 질문을 허공에 던지기도 했다.

“259이닝 4실점··· 아메리칸 리그 놈들은 대체 어떻게 4점이나 낸 거야?”

“홈런이 둘이라는데, 쟤한테 홈런 친 놈이 있다고? 진짜로?”

“우리가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데려온 다음에, 빨리 로스터에 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푸홀스가 하나 쳤대.”

“아, 그럼 필요 없어.”

요기 베라가 샌디 코팩스의 5패를 의아하게 여겼던 것처럼.

이번 정규시즌 성적에서 똑똑하게 남아 있는 4점은 다저스에게 미스터리처럼 느껴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처음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치게 시작했던 경기이지만.

이젠 저런 녀석에게 득점하는 장면은 아무리 뇌를 혹사시키더라도, 도무지 상상이 되지가 않았으니까.

“아웃!”

8회가 끝났다.

8회 말 애슬레틱스가 다시금 득점을 올리면서 점수는 7대0까지 벌어졌고.

남아 있는 단 한 번의 공격에서 두 번의 만루홈런을 날리는 것이 아닌 이상, 다저스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투수는 여전히 마운드에 올랐다. 애초에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9회의 마운드는 언제나 새롭다. 항상 즐겁지. 감회도 남다르고.

그럼 거기에 월드시리즈라는 단어까지 추가된다면 어떨까? 월드시리즈 9회의 마운드 말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X나게 행복한 거지.

지금 나와, 나를 바라보는 팬들이 그런 것처럼.

“두 개 더 잡으면 신기록인데, 롤렉스 주나?”

그토록 X나게 행복한 마운드로 오르기 전, 브루스는 조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묻기도 했다.

내가 애 버릇을 잘못 들였어.

뭐만 하면 시계를 떡하니 주니까, 이젠 대놓고 저러는 거 봐라.

하늘 같은 투수님이 가끔 하나씩 하사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엎드려야지. 본인이 직접 요구하다니.

“이번 포스트시즌 동안의 롤렉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로 대신할 생각인데, 싫으면 말고.”

“어우, 너무 좋지.”

살짝 흘겨보면서 그렇게 말하니, 다행히 완전히 돌아버린 건 아닌지, 브루스는 넙죽 고개를 조아렸다.

뭐, 그냥 농담이지.

그만큼 지금 우리 분위기가 좋다는 거고. 마지막 이닝을 앞두고 배터리 간에 시답잖은 농담이나 나눌 정도로.

‘저쪽은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은데, 뭐, 그런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

내가 다저스 감독이나 코치도 아니고. 상대팀 기분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마운드로 향하는 길은 비단길처럼, 영화제의 레드카펫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그 편안한 감정에 그대로 취해버릴 것만 같았지만, 그러는 건 조금 더 뒤로 미뤄야겠지.

“스트라이크!”

조금 더 던져야 했으니까.

취하는 건 모든 것들이 끝나고, 마지막 승리를 이뤄냈을 때, 그라운드 곳곳에서 흩뿌려지는 축하주로 해야겠지.

7번타자.

코디 벨린저가 대타로 나왔다. 결정적인 홈런을 치면서, 챔피언십 MVP를 차지했지만.

사실 포스트시즌에서의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오늘 선발 라인업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는데.

마지막 희망을 안고서, 그의 찬란하게 반짝이는 재능에 걸어본 거겠지.

그 역시 그런 다저스의 바램을 이뤄주기 위해서인지, 특유의 조금은 졸린 듯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지만.

“스트라이크!”

“파울!”

“스트라이크 아웃!”

그 나른한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아주 잠깐으로 그치자고.

더 길어지기는 싫으니까.

몸쪽으로 쑥 집어넣은 포심 직후, 밖으로 널찍하게 빼버린 너클 커브를 헛치면서 삼진아웃. 아마도 17번째 삼진일 거다.

밥 깁슨의 월드시리즈 단일경기 최다탈삼진 타이기록이지. 그래서 브루스가 롤렉스 운운했던 거고. 연달아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었으나.

“아웃!”

야시엘 푸이그가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은 건지, 초구로 던진 낮은 볼을 억지로 건드리면서 아웃으로 물러났다.

“우우우우! 삼진 처먹어라!”

“이 돼지새꺄! 어차피 아웃당할 거면서 왜 쳐!”

손쉽게 물러나는 모습에 어쩌면 다저스 팬들이 아니라, 우리 팬들이 더 화를 낼지도 모르겠네.

특히나 내 삼진이 진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야구라는 종목의 유일한 광명이라고 굳게 믿는 레이더스는 더욱더 격렬하게 욕설을 퍼부었고.

유썩의 흐름이 끊긴 것이 짜증스럽게 여겨졌던 거겠지.

‘달래줘야겠네. 저러다 쓰러질라.’

나도 그들에게 많이 익숙해졌기에, 팬들을 진정시키는 방법이야 잘 알고 있다. 우는 아이에게 떡 물려주는 거지.

마지막 9번타자 작 피더슨.

지난 타석에서 내 퍼펙트를 깨트렸던 장본인이기에, 그는 딱히 별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욕설이 쏟아졌다.

적어도 오늘 콜리시엄에서 그보다 더한 역적이 없지. 방금 전, 삼진을 억지로 피했던(?) 푸이그야 귀여운 수준이고.

그래도 안타 하나를 날리면서, 자신감을 얻은 건지, 꿋꿋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스트라이크!”

마음에 안 드는군.

퍼펙트를 깨트린 놈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위협구처럼 코앞으로 패스트볼을 바짝 붙여주니, 화들짝 놀라면서 헛스윙했다.

스윙이라기보다는, 저도 모르게 방어하듯이 팔을 휘두른 것에 가까웠지.

아무리 퍼펙트를 깼다고 해도 내가 맞히겠어? 헤드샷 날려서 내가 퇴장당하고, 징계까지 떨어지면 다저스만 좋은 건데. 절대로 안 되지.

‘기세가 확 꺾였네.’

그것으로 직전 타석의 안타는 지워졌다. 작 피더슨의 자신감이 훅 꺾였지. 많이 무서웠나 봐.

어쩌면 위협구가 아니라, 9회 초 투아웃에도 여전히 88마일까지 찍히는 구속과 내 체력에 질린 걸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

자신감을 잃은 타자에게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것은 손쉬웠다.

똑같은 코스로 던져주니, 조금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눈을 부라리며 휘둘렀거든.

아무래도 내가 자기를 놀리고, 유유히 멀어지는 슬라이더나 너클 커브를 던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 같은데.

이번에도 묵직하게 날아가서 글러브로 박힌 포심은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겠지.

“스트~~~라이크 아웃!”

그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중하게 잡아야 될 타자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가볍게 한번 더 왼팔을 휘둘렀고, 서클 체인지업 V1이 낮게 떨어졌다.

타자는 한 차례 스윙을 참았지만, 정확하게 라인에 걸친 공은 그저 삼진이었다.

‘일단 1승이네.’

그것으로 월드시리즈의 첫 번째 승리가 올라갔다.

귀를 먹먹하게 울리는 환호성 속에서 잠시 오른손의 글러브를 뺐다.

즐긴다고 즐겼는데, 내심 긴장했던 건지, 땀이 푹 쩔어서 쭈글쭈글해져 있네.

그것을 대충 유니폼 상의에 닦은 뒤, 글러브를 집어던진 채, 나를 향해 달려드는 동료들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그래 오늘은 마음껏 때려라.’

어차피 때리지 말라고 소리쳐도 힘껏 후려치고, 붕붕 들어 올릴 텐데, 괜히 혈압 올리지 말고, 그냥 몸이나 맡겨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