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어우, 죽겠네.”
푹 자고 일어나니, 정신은 개운했는데, 몸이 좀 욱신거렸다. 완투한 것 때문이냐고?
차라리 그런 거면 나도 기쁘게 참았겠지. 내 노력의 산물이니까.
“이 붕어 대가리 새끼들, 그렇게 들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 확 누워버려?”
허나 애석하게도 이건 어제 경기가 끝난 직후 몇 차례 공중부양하면서 생긴 문제다.
내가 그렇게 협박까지 했는데도 나를 기어코 들어 올렸지. 평소처럼 때리기도 했고.
그나마 워낙 귀하신 몸이라서 다들 살짝만 들고, 아주 조심해서 받기는 했지만, 내가 워낙 거구라서 그런지, 리바운드가 좀 남았구만.
협박했던 것처럼 진짜 이대로 확 누워서 버릇을 고쳐줄까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야 없지.
어쩌면 동료들도 내가 절대로 눕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고.
“슬슬 피로가 쌓이는 것 같네요. 일어나시자마자 힘겨워하시는 걸 보면. 워밍업할 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겠어요.”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마음이야 이해합니다만, 포스트시즌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Go의 몸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1층으로 내려가니, 대니얼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브라이언도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진지하게 나를 쳐다봤고.
아무래도 내가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완봉을 하면서 피로가 쌓인 거라고 추측한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니에요, 아직도 멀쩡하거든요. 참 신기하죠?”
사실 엄살 좀 부린 거지, 몸은 좀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완투하고 바로 다음 날인데도 그다지 피로감이 없었지.
막상 어젯밤, 침대에 누울 때는 그대로 실신하듯 골아떨어졌는데, 막상 일어나니까 다시 또 멀쩡하네.
‘역시 잠이 보약이라니까.’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산삼이고 나발이고 언제나 잘 먹고 잘 자는 것, 그중에서도 잘 자는 게 보약이라고 부모님이 항상 말했었는데, 역시 그게 정답이구만.
질 좋은 수면의 효과는 위대했다. 어쩌면 그냥 내 몸이 괴물일지도 모르고.
-Go는 정규시즌 막바지부터 전날 챔피언십 1차전까지, 네 경기 연속 완투를 했습니다. 이건 21세기는 물론, 20세기에서도 보기 드문 혹사이지만, 진짜 문제는 Go가 그걸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죠.
-전날 크리스 세일이 본인의 현재 몸 상태에 맞지 않는 긴 이닝을 던지면서 무너졌던 것처럼. Go 역시 차곡차곡 데미지가 누적되어, 갑작스럽게 터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월드시리즈에서 그 문제가 터진다면, 그건 애슬레틱스에게 재앙으로 작용할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Go는 뮤턴트가 분명하고요. 아,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저는 도핑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초월적인 내구성을 말하는 것이죠.
내 퍼펙트를 찬양하는 특집 방송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웅변하듯, 몇 가닥 남지도 않은 앞머리를 펄럭이며 당차게 외치는 저 남자의 말처럼.
올해는 짝수해라, TBS에서 챔피언십을 중계하는데, 그쪽인가 싶어서 쳐다보니, 전혀 다른 채널이었다.
애초에 야구는 물론 프로 스포츠 자체와 별로 관계가 없는 채널이었지.
“저런 곳에서도 제 얘길 하네요? 고유석 성공하긴 성공했네.”
“성공하셨죠, 전국적인 슈퍼스타니 말입니다. 특히나 포스트시즌의 호투가 이어지면서, 한층 더 주목도가 올라갔고요.”
“여기서 더 올라갈 게 남아있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바닥 밑에 지하가 있듯, 구름 위에도 우주가 있는 법이니까요.”
신기한 마음에 고래를 갸웃거리니, 멀쩡한 내 모습에 걱정을 내려놓은 브라이언은 피식 웃으며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한물간 캐스터나 전직 메이저리거, 시시한 칼럼니스트들의 일자리가 늘어났죠.”
“Go를 이야기하면서, 전문적이거나, 그런 것처럼 보이는 말로 거들어 줘야 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내가 시한폭탄이라고 얘기한 저 양반,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
옛날에 한창 메이저리그를 꿈꾸면서 중계를 찾아봤을 때, 한 번쯤 스치듯 그의 경기를 시청했을지도 모르겠어.
졸지에 내가 미국 야구계의 일자리 창출자가 되었구만. 뿌듯하네,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만 그것 때문에 귀찮은 말들도 많아졌습니다. Go의 도핑 의혹을 다시금 점화하는 곳이 있던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법적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잘하셨네요,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
다만 그런 인기에 기대서, 이상한 짓거릴 하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지만 말이야.
이미 다 쉬어버린 한물간 떡밥을 다시 꺼내기도 하고, 이상한 이슈를 일으키기도 하지.
당장 구단에서도 내 폭발적인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이상한 유행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정규시즌 내내 연승이 이어지고 있으니, 과거 조 디마지오의 연속 안타에 미국인들이 ‘오늘도 디마지오가 안타를 쳤나요?’라고 서로에게 물으며 인사하던 것처럼.
오늘도 Go가 이겼습니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었지.
듣기로는 그게 흥행에 성공하면, 더 나아가서 이번에도 에이스가 이겼습니까, 에이스가 우승했습니까?로 발전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오클랜드 내에선 제법 흥행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었다. 적어도 내가 데뷔한 이후로는 불패신화를 자랑했던 애슬레틱스 마케팅팀의 첫 참패였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슈퍼스타라고 해도, 매일 나오는 타자랑, 짧아야 4일 휴식 후 등판, 중간에 휴식일까지 끼여 있으면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선발투수는 다르잖아?
‘혹시 모르지, 몇 년쯤 지나면, 사람들이 오늘은 Go가 완봉했습니까? 라고 묻게 될지도.’
뭐, 그래도 이번엔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농담 같은 말이 유행할지도 모르지.
올해만 열두 번, 아니,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해서 열네 번의 완투를 했으니. 거의 세 경기에 한번 꼴로 하는 셈이니.
이런 기세가 몇 년쯤 더 이어지면, 오클랜드가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그런 말이 나올 가능성도 있잖아?
물론 지금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애슬레틱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합니다!’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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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장난 아니네. 난 우리 팬인 줄 알았다니까?”
“어제 Suck 쟤가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가버렸잖아. 기자들 몸이 닳을 수밖에 없지.”
“좀 서운하더라. 내가 인터뷰해주겠다는데, 오히려 날 귀찮게 보더라니까?”
“그야··· 넌 Suck이 아니잖아.”
“나도 알아. X발.”
“그래도 크리스한테는 관심이 쏟아지던데. 꼬우면 마커스 너도 잘해. 오늘 홈런 하나치던가.”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을 앞둔 콜리시엄의 앞은 기자들이 바글거렸다.
모두 다 내 덕분이지.
나 때문이라고 해도 되고. 아니, 때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
우르르 몰린 기자들이 나를 비롯해 선수들에게 귀찮게 굴었으니, 그걸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
다들 내 말 한마디라도 얻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던데, 당연하게도 나는 가뿐하게 무시했다.
기자들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 편하다고는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 한번 받아주면 죄다 달려들겠더라고.
그렇게 후딱 들어온 라커룸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좋았다. 전날 짜릿한 승리를 맛본 덕분이겠지.
여기에 레드삭스가 좌절하기도 했다면 더욱더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역시 저쪽도 쉽지는 않네.’
퍼펙트게임, 챔피언십 시리즈 최초이자, 올해에만 나한테 두 번째로 당한 퍼펙트게임에도 레드삭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기장 바깥, 그리고 안쪽의 기자들처럼 더욱더 열기를 내뿜고 있었지.
어젯밤의 치욕스러웠던 패배를 어떻게든 만회하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그래도 잘 때려잡기는 했는데··· 이번에도 소니가 잘 통했으면 좋겠네.’
그런 레드삭스의 기세와 위닝 멘털리티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양키스 때처럼 내 피칭이 눈에 박히기는 했을 테니, 지난번처럼 소니가 그걸 잘 이용해서 두 번째 승리를 가져오길 기도하는 수밖에.
아니면 스윕을 따냈던 경기처럼 오늘 또다시 우리 팀 타자들의 기복이 제대로 터지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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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었던 1차전 이후, 레드삭스에게도 여러 가지 말들이 쏟아졌다.
“어떤 곳에선 우리도 스윕을 당할 거라는데?”
“4차전에 Go가 또 등판해서 연속 퍼펙트를 잡아낼 거란 소리는 왜 빼?”
“넌 거기 보냐? 내가 보는 곳에선 7차전까지 갈 거라던데.”
고유석을 향한 말들이 찬사에 가까웠다면, 레드삭스는 조롱이었지만 말이다.
“7차전? 그나마 거기 평가가 후하네. 어디야? 나도 그쪽이나 봐야겠다.”
“뉴욕 데일리. 그쪽 대단하신 전문가께서 이르길, Go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걔가 1,4,7차전에 등판해서 세 경기 연속 퍼펙트로 우릴 완전히 묻어버릴 거라네.”
“X발 놈들이었네.”
특히나 뉴욕 쪽 언론은 양키스를 무참하게 쓸어 담았던 애슬레틱스를 향해 가했던 비판, 아니, 비난의 화살을 레드삭스로 돌리기도 했다.
마치 양키스처럼 레드삭스 역시 그대로 멸망해버리길 바라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레드삭스 선수들은 그저 코웃음으로 일관했지만, J.D. 마르티네즈는 조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한 동료를 보기도 했다.
“무키, 오늘은 홈런 하나 쳐야지?”
무키 베츠.
조롱이 쏟아진 레드삭스 중에서도 가장 큰 지탄을 받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그였다.
<무키 베츠, Go 징크스에 빠지다!>
<무키 베츠의 인간상성? 이번 시즌 최고의 타자, 허나 Go의 앞에서 또다시 작아졌다!>
<홈런을 친 크리스티안 옐리치, 허무하게 농락당한 무키 베츠?>
양 팀의 에이스 투수들과 더불어서, 이번 시즌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타선의 에이스로 떠오른 두 타자이기에 마찬가지로 주목을 받았었지만.
멋진 홈런으로 팀의 승리와 에이스의 퍼펙트를 달성시킨 크리스티안 옐리치와 달리, 무키 베츠는 처참하게 잡히면서 희비가 엇갈렸으니까.
그리고 그런 무키 베츠를 향한 실망은 단순히 언론이 만들어낸 일은 아니었다. 팬들 역시 조금은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니까.
이번 시즌, ‘그’ 트라웃을 넘어, 타자의 정점에 오른 선수라기에는, 고유석과의 맞승부에서 처참한 상대전적을 기록 중이니 말이다.
또한 단순히 고유석만이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자체가, 정규시즌의 임팩트에 비해 다소 떨어졌기에.
포스트시즌에 진입하기 전, 인디언식 기우제처럼 고유석을 향해 쏟아졌던 ‘새가슴’이라는 단어를 이번엔 무키 베츠에게 가져다 붙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신경쓰지 마, 이 자식들, 며칠 전만 하더라도 Suck 걔가 X신에 불치병 환자라면서 소리 지르더니, 이제와서 쪽팔리니까, 너한테 지랄하는 거야.”
그런 비판 속에서 조금 흔들리는 건지, 오늘 다시금 원정팀 라커룸에 들어온 이후.
내내 말없이 차근차근 경기를 준비하던 무키 베츠를 J.D. 마르티네즈가 가볍게 달래줬다.
만약 지금의 풍랑 앞에서 그가 꺾이기라도 한다면, 언론에서 그토록 떠들어댔던 개소리들, 스윕과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진출 좌절 같은 말이 실현될 수도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네 말처럼 오늘은 하나 쳐야지. 한동안 못 쳐서 그런가 손이 좀 근질근질하네.”
그런 동료의 위로에 씨익 웃으며 대꾸한 무키 베츠였지만 사실 그의 속은 잔잔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 모순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이 딱 그랬다.
대분화가 시작된 활화산처럼 감정이 크게 요동치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그것을 무키 베츠 스스로 억누르는 중이었으니까.
‘여기서 터트릴 수는 없지.’
그가 생각하기에 이 들끓는 감정을 토해내야 하는 장소는 라커룸이 아니었다.
“Hey! Chicken! 니 X만한 소시지가 오늘 더 쪼그라들 텐데 괜찮겠어?”
“아주 잘하고 있어! 어제 하던 것처럼만 해! 그럼 우리가 특별히 너한테 월드시리즈 반지 하나쯤은 적선해줄 게!”
“에이, 그럴 필요가 뭐 있어? 그런 거 안 줘도, 어차피 오늘 X같이 못할 텐데.”
오늘도 엿 같은 조롱이나 쏟아대는 홈팬들이 앉은 관중석도 아니었고.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된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사각형 박스 안. 이곳이 바로 그가 모든 것을 토해낼 곳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우렁차게 울리는 주심의 목소리, 그리고 역시나 조롱과 열기를 뿜어내며 환호하는 관중들.
그렇게 채워진 콜리시엄의 배터박스 안에서, 무키 베츠는 온전히 지켜낸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Fuuuuuuuuuck!”
관중들도 마찬가지였고.
10월 14일 저녁, 콜리시엄에선 전날의 환호성과 비슷한 옥타브의 욕설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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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Suck 네 기세를 이어갔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지난번에 큰소리쳐놓고, 이렇게 털리다니. 민망하네.”
“미안하기는요, 포스트시즌에서 퀄리티 스타트면 충분히 잘한 거지.”
애석하게도 내 기도는 딱 절반만 이루어졌다. 일단 소니는 잘 던졌다.
6이닝 3실점 7탈삼진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으니까.
물론 지난 양키스전보다는 덜하지만, 솔직히 레드삭스 타선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잘한 거지.
직전 경기에서 퍼펙트한 놈이 이딴 소리하면 좀 자랑질처럼 들린다는 건 아닌데, 진심이야.
그렇기에 덕아웃으로 돌아온 이후, 아이싱을 받는 내내 침울해진 소니 그레이를 달래줬지만.
“이런 쓰레기 놈들. 어제 나 들다가 힘 다 빠졌냐? 나 때릴 때는 잘만 치더니, 왜 공은 못 쳐?”
“Suck 우리도 소니처럼 달래주면 안 될까?”
“그래, 우리도 최선을 다했- 미안해, 소니.”
당연히 타자들에겐 얄짤없다.
소니는 그래도 적당히 잘 던졌고, 6이닝 3실점 정도면 충분히 승리를 따낼 만한 성적이었지만.
이놈의 타자 새끼들이 또 기복이 터졌다. 저번과는 반대되는 의미로 터졌지.
“챔피언십에서 두 경기 동안 고작 3점 낸 쓰레기들은 위로받을 자격 없어.”
오늘 한 점만 냈거든.
아니, 기복도 적당히 있어야지, 이쯤되면 주사위의 눈금이 1과 6만 있는 수준 아니야?
이 미천한 놈들 같으니라고. 아, 물론 우리 귀염둥이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빼고.
넌 어제 결정적인 홈런 쳤으니, 오늘 못해도 상관없지.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지.
“디비전 시리즈에서 12점 몰아내면 뭐해. 어제오늘 합쳐서 꼴랑 3점인데.”
“어흠흠,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사람이 어떻게 늘 잘해? 우린 Suck 너처럼 뮤턴트가 아니라고.”
“사이 영 위너한테 1점이나 뺏은 거면 잘한 거지.”
“그럼 소니는 사이 영 3위가 최고기록이라서 3점이나 뺏긴 건가? 그걸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내 혹독한 채찍질에 타자들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기 바빴지만, 그들 역시 변명거리는 있었다.
데이비스 프라이스.
과소평가와 과대평가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레드삭스의 두 번째 에이스가 오늘 멋진 호투를 보여주긴 했으니까.
7이닝 동안 고작 한 점을 내줬으니, 이 정도면 오히려 크리스 세일보다 더 확실하게 에이스 노릇한 거지.
“아웃!”
문제는 그가 내려간 뒤에도 시원찮았다는 거고.
8회 말, 데이비스 프라이스를 뒤이어 마운드로 오른 라이언 브레이저가 볼넷 하나를 내준 뒤 연이어 범타를 유도하면서 틀어막았고.
“스트라이크 아웃!”
9회 말에는 통산 333개의 세이브를 자랑하는 갈매기가 훨훨 날아올랐으니까.
“우우우우우!”
“서커스 하냐? 꼴이 그게 뭐야!”
“끼룩끼룩 X발놈아! 그대로 날아서 마운드에서 꺼져버려!”
“왜? 공에 날개 달아주려고? 더 멀리 날아가도록?”
몸을 앞으로 숙인 뒤, 날개를 펼치듯 팔을 벌리는 특유의 모션에 각종 조롱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크레이그 킴브렐은 꿋꿋하게 공을 던졌다.
“아웃!”
“좀 쳐라 X발!”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왜 X신 짓이야!”
“아니, Suck이 나올 때야 못 쳐도 된다지만, 오늘은 아니잖아! Suck 안 나오는 날에라도 잘 치라고!”
우리 타자들도 나와 더불어 팬들의 분노 속에서도 꿋꿋하게 죽어나갔고 말이야.
“아웃!”
결국 마지막 9번타자, 브루스 대신 대타로 출전한 맷 조이스마저 끝내 외야뜬공으로 물러나며,
2차전은 3대1이라는 아쉬운 스코어로서 전날의 승리가 무색하게도, 경기는 손쉽게 우리의 패배로 막을 내렸고.
1승1패의 균형으로 콜리시엄에서의 2연전이 종료되면서. 챔피언십 시리즈는 보스턴, 펜웨이 파크로 이어졌다.
“괜찮아, 보스턴에서 3연승하면 되는 거지!”
“쟤들 퍼펙트까지 당했는데, 한 경기쯤은 용돈으로 줘야 매너야.”
“뭐, 스윕 못한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5차전에 Suck 나오잖아? 깔끔하게 두 경기 이기고, 5차전에서 승부를 보면 되겠지!”
다행히 패배에도 사기는 나쁘지 않았다. 등판했던 투수들이야 사실 다들 잘한 편이고. 똥싼 타자 놈들도 경기가 끝난 뒤 오고 가는 정신승리 속에서 기운을 차렸거든.
“Suck 너 왜 우릴 그런 눈으로 쳐다봐? 오늘은 그냥··· 힘을 모은 거야.”
“그래, 다음 경기랑 다다음 경기에선 바로 10점쯤 낼 테니까, 두고 보라고.”
“그리고 그다음 경기에선 또 꼴랑 1점이나 내겠지. 그치?”
“···5차전은 너 나오니까, 1점이면 충분하지 않아?”
오늘 못 친 만큼을 다음 경기에 몰아치겠다면서 말이야. 이 뻔뻔한 새끼들은 어째 반성하는 기미가 없네.
그래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다음 경기를 기대하면서, 잠시나마 콜리시엄을 떠났다.
부디 다시 돌아올 때는 월드시리즈 진출 티켓과 함께하길 기도하면서.
아니지, 기도는 하지 말자.
어쩐지 내가 기도하면 가끔씩 반대로 이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