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302화 (301/316)

302화

<뉴욕 양키스 0: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승리투수 : Go You-Suck(9이닝 17K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3:5 보스턴 레드삭스 – 승리투수 : Chris Sale(6이닝 10K 3피안타 1실점 2사사구)>

첫 경기가 끝나고, 몇몇 기자들은 민망함에 떨어야만 했다. 그들의 주장과 정 반대의 경기가 펼쳐졌으니까.

<고유석, 정규시즌 포함 3경기 연속 완봉!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지쳤으리라고 예상한, 지치는 게 당연한 고유석이 자신을 향한 말들에 코웃음으로서 갚아줬다.

10월의 문을 연 피칭 앞에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을 던졌던 이들조차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충격에 사로잡혔고.

혹시나 새가슴일지도 모른다며, 기대를 갖거나, 조심스럽게 추측했던 이들은 자신의 이불을 걷어차기 바빴고 말이다.

[#A’s]

[Suck이 포스트시즌에서 박살날 거라고 했던 놈들, 이제 쪽팔려서 얼굴 어떻게 드냐?]

└박살 나긴 했지. 양키스가.

└그냥 X이나 잡고 반성해야지lolololol

└이게 당연한 거지! 10월이라고 G.O.a.t 투수가 갑자기 망하는 게 말이 되나.

└이럴 줄 알았어! Suck은 언제나 우릴 배신하지 않거든!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첫 번째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새가슴이라는 말이 우습게만 들렸으니까.

그토록 압도적인 경기였기에, 몇몇 이들은 입장을 바꾸어, 정 반대의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다시 시작된 가을의 전설? Go, Mr.October로 나아가다!>

<‘매드범의 재림’ Go가 14년의 범가너에 범접하거나, 그를 능가할 수도···>

이번 포스트시즌이 고유석의 몰락이 아닌, 4년 전, 매디슨 범가너라는 투수가 야구 역사 속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진한 잉크로 새긴 것처럼.

새로운 빅게임 피처의 등장일 수도 있다는 주장 말이다.

적어도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임팩트는 매드범을 비롯해, 여러 전설적인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들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으니까.

└엄청나긴 한데, 아직은 모름.

└모르긴 뭘 몰라? 포스트시즌에서 17K 잡는 미친놈인데.

└혐유석빠들 설레발 봐라, 이제 겨우 한 경기 던진 건데, 벌써 매드범ㅇㅈㄹㅋㅋ

└이러다가 다음 경기에서 바로 얻어터질 수도 있음.

다만 이제 겨우 한 경기만을 치렀고, 남은 체력을 모두 짜낸 최후의 역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존재했기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적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양키스 팬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그 이상이었다.

<‘또 너야?’ 홈런군단 양키스, 1차전 패배! 이번에도 Suck이었다!>

<양키스의 고유석 징크스? 또다시 무기력하게 패배한 양키스, 포스트시즌 적신호!>

와일드카드전에서 이어왔던 기분 좋은 기세가 이틀을 채 이어가지 못하며 완벽하게 분쇄됐으니까.

매번 만나는 순간마다 번번이 양키스에게 굴욕을 안겨줬던 투수는 가을에도 여전했고.

그 앞에서 또다시 주저앉는 선수들의 모습도 이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좌절하는 동시에, 양키스 팬들은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 ‘2,3차전에서 양키스가 1패를 더 올릴 경우, 챔피언십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그렇겠지, 이 AssHole이 5차전에 다시 등판할 테니까.

└4차전일지도 모르지. 어차피 포스트시즌이니까, 미친 척하고 애슬레틱스가 3인 로테이션으로 갈 수도 있어.

└차라리 4차전에 나오는 게 낫겠네. 그나마 덜 쉬잖아. 이번 경기 보니까, 5차전에 나오면 아예 답이 없어.

└장난처럼 나머지 경기 죄다 쓸어 담으면 된다고 하긴 했는데··· 그게 현실일 줄이야.

고유석이 등판하지 않는 모든 경기를 이기면 된다면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던 것을 정말로 해내야 했으니 말이다.

뉴욕 언론이 그토록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고유석이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여기서 1패를 더 추가하는 순간, 양키스의 포스트시즌 탈락이 사실상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차전 선발투수로 소니 그레이 예고.>

<1차전 패배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양키스! 선발투수로 다나카 마사히로 등판 예정.>

그래도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기도 했던 일이기에, 양키스는 다가올 2차전과 3차전에 사활을 걸었다.

최악의 가정이 이루어졌으니, 부디 그 최악 속에서 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지만.

타자들을 믿은 팬들에겐 애석하게도, 고유석의 존재감은 이어진 2차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더 진하게.

####

‘오늘도 지면··· 그땐 끝이야.’

양키스는 한 가지 생각을 공유했다. 오늘을 와일드카드 게임처럼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말이다.

단 1패만으로 정규시즌의 노력과 상관없이, 포스트시즌이 좌절되는 와일드카드처럼.

이번 경기 역시 단 1패만으로도 양키스의 가을이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Go의 다음 등판이 4차전일지, 5차전일지는 알 수 없다.

허나 뭐가 어찌 됐든, 앞으로 세 경기를 모두 쓸어 담지 않는 한. 그가 언제 등판하든지, 그날로 양키스의 10월이 그대로 끝이 나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전날 똑똑히 목도했으니까.

모든 타자들의 머릿속 깊숙이 그 흔적이 남을 정도로.

“소니 그레이도··· 올해 성적이 만만찮네.”

“그래도 Suck보단 낫잖아?”

“그렇긴 하지.”

“소니 그레이, 걔 시즌 후반만 되면 지쳐서 쓰러지는 녀석인데, 진짜로 골골거리는 건 이쪽이겠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경기를 향한 자신감은 충분했다.

충격적인 패전을 맞이하긴 했지만, 정말로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미 조금은 예상했던 일이니까.

Go가 폼이 좋다면, 양키스로서 그를 뚫어내기란 요원하리라는 걸 이미 잘 알았지. 지난 경험들을 통해서.

그렇기에 충격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저 상대적으로 훨씬 만만한 투수를 어떻게든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을 뿐.

물론 그 만만한 소니 그레이가 3점대 초반의 ERA와 18승 200K를 올린, 평범한 에이스급 투수라는 게 조금은 문제였지만.

전날의 괴물보다야 훨씬 약한 것은 사실이기에, 해낼 수 있다고 양키스 타자들은 외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이어진 경기에서 그들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어때? 투수 폼 좋아 보여?”

전날에 이어 1번타자로서, 선두타자로 나선 앤드류 맥커치는 우렁찬 헛스윙을 당하며 벤치로 돌아왔다.

오늘도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하면서 경기를 시작한 그의 모습에, 타격코치는 행여 그의 폼이 떨어진 건 아닐지, 조금은 염려하듯 지켜봤고. 동료들은 그에게 투수에 대한 감상을 물었지만, 그는 그저 허탈한 헛웃음을 흘렸다.

“공이 떨어져.”

“커브 말하는 거야? 커브가 좋아?”

“씁, 소니 쟤도 긁히는 건가? X발 그러면 귀찮아지는데.”

“아니, 커브가 아니라, 그냥 떨어진다고.”

뛰어난 커브를 위닝샷으로 삼아, 자주 던지는 투수였기에, 양키스 타자들은 표정을 구기며, 자연스럽게 날카롭게 긁힌 커브를 떠올렸지만.

그런 동료들의 말에 앤드류 맥커친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본 떨어지는 공은 커브가 아니었으니까.

“포심이 엄청나게 떨어져. 무슨 스플리터처럼.”

포심이었지.

어쩌면 전날과 정반대였다.

어젯밤, Go의 포심이 천국에 닳을 기세로 하늘 높이 떠올랐다면.

“아웃!”

오늘 소니 그레이의 포심은 지옥을 뚫을 기세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곧이어 오늘은 2번타자로 나갔던 애런 저지마저 시원스럽게 아웃으로 물러났고.

그제야 이번 경기의 승리를 장담하고, 깊이 바라며 기세를 올렸던 양키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쩌면 최악 중에서도 최악으로 치달은 것 같았으니까.

####

전날 경기가 끝나는 대로 동료들에게 얻어맞았다. 9이닝 17K 씩이나 했으니,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았지.

동료들의 매서운 손길에 아직도 욱신거리는 몸 때문에 표정이 조금은 구겨졌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내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역시, 제대로 망가졌네.’

난 양키스가 망가지길 바랐다. 나한테 완전히 털려서,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길 원했지.

단순히 내 성격이 고약하거나, 양키스 선수들의 타격감이 저하되길 바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야 훨씬 편해지거든. 내가 아니라 우리 팀이, 그리고 앞으로의 시리즈가 말이야.

그리고 1차전에서 그 바램이 완벽하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해냈지. 그 결과가 이거다.

“스트라이크 아웃!”

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소니 그레이의 양키스 호러쇼지.

소니는 5회까지 총 10개의 삼진을 잡았다. 엄청난 수준이지. 더군다나 포스트시즌인 걸 감안하면 더 대단하고.

내가 워낙 상식 밖이라서 그렇지, 포스트시즌에서 저 정도로 잘하면, 충분히 빅게임 피처다.

뭐, 실제로 13년에 데뷔 시즌부터 포스트시즌에 나가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소니이니, 애초에 빅게임 피처 성향이 있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의 호투는 단순히 그의 든든한 배짱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네요.”

“그래, 다행히 기대했던 대로 됐어. 양키스가 Go 너에게 단단히 몰입했던 것 같네.”

벤치 한쪽에 앉은 내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코치 역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역시 깊이 바랐던 일일 테니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거야. 마운드에 있는 건 소니인데, 나한테 집중했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잖아?

근데 생각보다 간단한 이야기다. 전날 양키스 타자들은 나한테 영혼까지 털렸다. 자연스럽게 내 피칭이 눈에 익었지.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강제로 눈동자 안에 쑤셔 박아 줬지.’

그러니 그 여운은 하루가 지난 오늘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포스트시즌 경기이니, 저쪽도 어제 경기에서 극도로 집중했었으니까.

나한테 털리면서 한편으로는 더욱더 집중력이 올라오기도 했고.

그렇게 나한테 익숙해져 버린 상황에서 평균구속으로 따지면 93마일로 올해는 87마일까지 찍은 나보다 5마일이 더 높고.

최고구속은 97.2마일으로, 약 7마일 이상 더 높은 소니 그레이가 등판했으니.

양키스 타자들로선 어쩌면 어제보다도 조금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지.

“아마 미칠 지경이겠지, 양키스 놈들.”

지명타자라서 같이 구경이나 하던 크리스 데이비스는 클클거리며 웃었다.

타자인 만큼, 지금 양키스가 느끼고 있을 감정이 훤히 보인다는 것처럼.

“Suck 너 포심 수직 무브먼트가 7인치던가?”

“보통은 8인치고, 폼 좋을 때는 7인치죠.”

“소니가 대충 16인치 정도니까, 휘유~”

사실 이번 경기의 소니 그레이의 호투에 구속의 차이만 영향을 끼친 건 아니다. 수직 무브먼트의 몫도 크지.

마운드에서 던진 공이, 홈 플레이트로 가는 동안 공이 얼마나 떨어지느냐를 뜻하는데, 난 그게 폼 좋을 때는 7인치쯤 찍고, 보통은 8인치다.

날아가는 동안 홈 플레이트까지 고작 8인치 밖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지. 백스핀과 더불어서 리그 최고이고.

‘그 덕분에 내 포심이 라이징 패스트볼 소리를 듣는 거지.’

생각보다 훨씬 덜 떨어지는 만큼, 시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니까.

난 어제 폼이 굉장히 좋았다.

분석 자료를 요청하니, 대충 폼 좋은 날처럼 포심의 수직 무브먼트가 7인치쯤 찍었던데, 오늘 선발투수인 소니는 평균적으로 16인치지.

같은 포심인데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 소니가 던진 포심이 9인치가 더 떨어진다는 거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97마일짜리 브레이킹볼이겠죠. 양키스가 보기에는.”

양키스 타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웬만한 브레이킹볼처럼 떨어질 거라는 이야기지.

소니의 최고구속이 97마일이니, 비유하자면 양키스의 눈에선 소니가 포심을 던질 때마다, 97마일짜리 스플리터를 던져대는 것처럼 보이겠네.

특히나 어젯밤, 나한테 집중을 많이 한 선수일수록 더욱더 그게 극심해지겠지.

‘소니도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이전에도 몇 차례 그런 이득을 본 적이 있기에, 소니는 그런 착시효과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커터와 싱커를 중심으로 던지다가, 포심을 마치 변화구처럼 사용하고 있거든. 타자들이 나를 지워내고, 자신에게 적응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세이프!”

“하나 맞았네요.”

“슬슬 힘이 떨어지는 모양이네. Suck 너 때문에 자꾸 상식이 흔들린다니까. 사실 8회쯤 되면 지치는 게 당연한 건데.”

물론 양키스도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으며, 번번이 기회를 노렸고. 경기가 후반에 접어들자, 꽤나 자주 안타를 쳐냈다.

다나카 마사히로 역시 6이닝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그럭저럭 우리 타선을 막아냈고 말이다.

그렇기에 양키스 역시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는 않았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소니 그레이의 7이닝 1실점 호투 이후, 마운드를 넘겨받은 우리 불펜은 그런 양키스의 희망을 꺾어놓기 충분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가 불펜이 엄청 좋은 편이거든. 괜히 117승이나 한 게 아니지.

적당히 어느 정도의 점수차를 유지한 채, 경기를 후반에 넘겨주기만 하면.

“아웃! 게임 셋!”

순식간에 경기 끝나는 거지.

소니에게 마운드를 넘겨받은 리암 헨드릭스가 8회 초를 지웠고, 클로저 션 두리틀이 삼진 하나와 범타 두 개로서 경기를 종료시켰다.

전날에 이어 경기가 다시금 우리의 승리로 끝나면서, 시리즈 스코어는 2대0.

‘이제 1승 남았네.’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 티켓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둔 채, 시리즈의 향방은 양키 스타디움으로 이어졌다.

‘기왕이면 후딱 끝내고 챔피언십 시리즈를 준비해야겠지.’

꾸역꾸역 다시 콜리시엄으로 끌고 오는 건 좀 그렇잖아?

그보다는 남의 집 안방에서 일찌감치 결정짓고, 13일,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까지 푹 쉬는 게 훨씬 좋겠지.

물론 그렇게 된다면, 본인들 집에서 우릴 위로 올려 보내주는게 되는 양키스는 복장이 터져도 단단히 터지겠지만, 그거야 우리가 알 바는 아니고.

“션 잡아라!”

“소니 때려! 소니가 오늘 주인공인데, 왜 나한테 그래!”

“소니는 7이닝이나 던졌잖아! 네가 대신 맞아야지!”

“그래그래, 무식하게 건강한 Suck이랑 다르게, 소니는 연약하니까, 아껴줘야 돼!”

“나는 개자식들아! 나도 좀 아껴줘!”

그렇게 또다시 우리의 승리로서 경기가 끝난 그라운드 위에는 어제 내가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난타전이 일어났다.

션 두리틀이 좀비떼 같은 선수들에게 붙잡혀서 여기저기를 얻어맞고 있었지.

X발 어쩐지 어제 나를 X나게 때리더니, 내가 무식하게 건강해서, 아무리 때려봤자 탈이 안 날 테니 안심하고 팬 거였어.

“좋겠어요? 연약한 덕분에 저 미친놈들을 무사히 피해 가서.”

“당연히 좋지, 연약한 내 앞에 든든한 동료가 버티고 있다는 게. 앞으로도 잘 부탁하자.”

“소니도 지금처럼 1승만 올려줘요.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전날, 매서웠던 손길의 이유를 알게 됐기에, 조금 입을 삐죽이며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왠지 조금은 후련해 보이는 소니 그레이와 함께.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었는데, 소니 그레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만 있겠다는 것처럼.

그나저나 션 마네아 쟤는 모레 3차전에 등판해야 하는 놈이 다른 선수들이랑 같이 두리틀을 패고 있는데, 괜찮을런가 모르겠네.

괜히 남 괴롭히는 것에 힘을 빼다가, 양키스한테 얻어터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구만.

그렇게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소수의 좌절과 광기 속에서, 어쩌면 디비전 시리즈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콜리시엄의 밤이 기울어갔다.

####

“Go가 4차전에서 등판할 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본인의 의사는 어떠신가요?”

머나먼 동부, 뉴욕으로 떠났을 때, 비행기 안에서 간략하게 인터뷰를 가졌다.

보통 원정팀 비행기에 상주 기자들이 따라다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죄다 거르는 편이지만, 그래도 포스트시즌이기에 응해줬다.

‘4차전 등판이라···’

그런 말이 나오기도 했지.

단순히 팬들이나, 언론이 아니라, 팀 내에서 말이야.

진짜로 4차전에 등판하라는 건 아니고, 4차전까지 시리즈가 이어졌을 때, 아슬아슬할 경우 불펜으로 내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지.

일찌감치 디비전 시리즈를 결정짓자는 건데, 당연하게도 스콧 에머슨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 혹시라도 내가 털리면, 뒤가 없어지지.’

말 그대로 도박이잖아?

일찍 시리즈를 끝내고 쉬는 거야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랬다가 만약에 4차전에서 지고, 5차전으로 이어지면. 내가 등판하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설사 디비전 시리즈가 길게 이어지더라도 5차전에 등판하기로 내부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예, 만약 제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등판할 생각입니다. 3일이나 쉬는 건데, 그 정도면 마운드에 올라야죠.”

“하하, 최고의 투수다운 자신감이네요. 멋진 로열티입니다. 아무래도 올해의 매드범은 Go가 되실 것 같군요.”

“크레이지 Suck이 되야겠죠. 아니, Go요.”

“Crazy Suck이라··· 어감이 괜찮네요. 기사의 타이틀로 괜찮겠어요.”

“Go라고요, Go. 저기요? 어디 가세요?”

그래도 말은 다르게 해야지.

괜히 나 혼자서 장난처럼 내뱉은 건 아니고, 구단이랑 사전에 약속된 거다.

이미 내부에서는 집어치운 4차전 등판설을 굳이 반박하거나, 미리 5차전 선발 등판을 예고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지.

‘그것 하나만으로 양키스가 압박을 받을 테니까.’

만약 시리즈가 4차전으로 이어질 경우, 양키스는 엄청난 압박을 받을 거다.

우리에게 리드를 내주는 순간, 언제든지 내가 등판할 거라는 압박감을. 나한테 영혼까지 털리면서 생긴 공포감을 이용해, 양키스 타자들을 괴롭게 만드는 거지. 그러다 보면, 스스로 자멸하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대충 그렇게 인터뷰를 하며, Crazy Suck이라는 오묘한 별명까지 새롭게 생겼는데···

“미친놈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 지랄이네.”

“Suck 너 지금 너희 나라 말로 우리 욕했지? 나도 이제 듣는 귀가 열려서, 대충 알아듣거든?”

“칭찬이니까, 좋게 생각하쇼.”

“그래? 하하, 홈런 치니까 이제야 좀 대접해주네! 나도 할 때는 한다 이거야!”

“Suck 네가 첫 경기부터 완봉을 했는데, 설마 우리가 4차전에도 등판하게 하겠어? 걱정 말고 푹 쉬어. 나중에 월드시리즈에서 세 번 오르려면, 체력 비축해둬야 하니까.”

“거, 겨우 하루 잘한 것치곤 대가가 너무 심하네.”

내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3차전에서 우리 팀 기복이 터졌거든.

양키스를 낚으려고 던졌던 4차전 등판이라는 밑밥이, 정작 우리 팀 타자들의 기폭제가 되버렸구만.

“Fuuuuuuuck!”

제드 라우리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양키 스타디움에선 욕설이 울려 퍼졌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설마설마했던 패배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왠지 불안불안했던 션 마네아는 4이닝 동안 4실점이나 내주면서, 조기에 강판됐고. 뒤이어 황급히 올라간 유스메이로 페팃도 1점을 내주면서, 초반부터 대량실점을 했지만.

“10대 5라···”

“8회에 이 정도면 낙승이네.”

우리 타선은 그에 대한 맞불로 루이스 세베리노에게 5점, 뒤이어 올라온 투수들에게도 5점, 8회까지 총 10점을 때리면서 양키스 투수진을 완전히 침몰시켰다.

‘터질 땐 진짜 화끈하게 터지기는 하네.’

한번 터지기만 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는 타선이 오늘 제대로 터진 거지. 정규시즌에서도 이러더니, 10월에도 이러네.

1,2차점 합계 득점이 9점인 걸 감안하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셈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정말이지 발군의 기복을 보여주는 타선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고. 한편으로는 미리 양키스에게 던져뒀던 4차전 등판이라는 밑밥이 쓸모없어진 게 아쉽기도 했지만.

“Hell Yeah!”

“잘 있어라, 양키 새끼들아! 우린 챔피언십으로 갈 테니까!”

‘그래도 좋기는 하네. 챔피언십 시리즈라, 생각보다 금방 올라갔어.’

뭐, 이겼으니까, 그러면 된 거지.

화끈하게 터진 타선이 마지막까지 2점을 더 내면서 3차전은 12대6으로 종료됐고. 시리즈 스코어 3대0으로, 내 첫 번째 디비전 시리즈가 깔끔하게 스윕으로서 막을 내렸다.

이제 13일까지 푹 쉬면서 챔피언십을 준비하면 되겠네.

‘그나저나 나 빼면 우리 팀이 와일드카드 팀 수준이라던 양반들, 지금 좀 쪽팔리겠네.’

내가 가진 영향력이 워낙 지대해서 그런 거지, 애슬레틱스 자체는 성적에 비해 생각보다 약해서, 의외로 광탈할 수도 있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내가 지쳤고, 새가슴일 거라고 예측했던 사람들이랑 같이 지금쯤 이불을 뻥뻥 걷어차고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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