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300화 (299/316)

300화

<고유석, 9이닝 9탈삼진 79구 완투완봉>

<시즌 12완봉! 정규시즌의 마지막까지 Shutouts한 고유석!>

고유석의 정규시즌이 끝났다.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으리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확신했던 작년보다도 더한 성적으로.

기어코 정규시즌의 마지막까지 완봉을 올려내는, 누가 보더라도 고유석 그 다운 모습으로.

굉장히 효율적인 피칭이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황당한 웃음을 흘리더라도, 그의 체력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A’s]

[Go가 봐준 거지. 원래라면 20K도 가능했는데, 적당히 던진 거니까.]

└포스트시즌이 코앞이라서 적당히 한 거야. 진지하게 했으면 완봉이 아니라, 퍼펙트였겠지.

└그래도 뭔가 마지막까지도 Suck의 경기 답긴 했어. 끝까지 완봉을 해버리네.

└이제 포스트시즌에서도 완봉하면 되겠어!

└그거야 당연한 거고, 못해도 퍼펙트는 해야지. 노히터도 좋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여력을 남긴 고유석이 포스트시즌에서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지에 대해 궁금해했을 뿐.

<애슬레틱스, 에인절스에 루징 시리즈, 117승 45패로 마감, 역대 최다승을 올리다!>

그 실체가 드러날 시간은 차츰차츰 다가왔다. 애슬레틱스는 이후 2연패를 기록하며, 더 이상의 승수를 추가하지는 못했다.

역대 최다승마저 깨트리면서, 대부분의 선수를 갓 콜업한 선수나, 백업 위주로 내보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매리너스, 레인저스를 위닝 시리즈로 잡아내며, 2게임차로 와일드카드 확정! 목표는 타도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씁쓸한 눈물로서 포스트시즌 마감!>

정규시즌의 마지막까지도 이어졌던 매리너스와 레이스의 와일드카드 경쟁은 끝내 탬파베이 레이스가 2게임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매리너스의 승리로 마감됐다.

<뉴욕 양키스, 100승 62패로 시즌 마감! 와일드카드가 기다린다!>

다만 그렇게 올라선 와일드카드 게임에선, 100승을 올린 양키스가 그 상대로 미리 도착해 있었지만 말이다.

[#Mariners]

[양키스는 X발 저게 와일드카드 팀이냐? 100승이나 해놓고 지구우승도 못했네.]

└레드삭스가 108승을 했거든.

└지구우승 팀급이지. 전체 3위잖아.

애슬레틱스와 레드삭스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구우승 팀들보다도 더욱더 많은 승리를 거둔 양키스이기에, 매리너스의 10월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저스, 타이 브레이커에서 로키스에게 승리! 92승 71패로 디비전 시리즈 직행!>

<타이 브레이커에 눈물 흘린 로키스, 허나 와일드카드가 남아 있다!>

반대편 내셔널 리그는 그야말로 끝장전 승부가 이어졌다.

163경기, 즉 타이 브레이커까지 이어진 가운데, LA 다저스가 결국 로키스에게서 승리하며, 지구우승을 따냈으니까.

마지막 순간 미끄러진 로키스는 눈물을 흘렸지만, 그들에게도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었다.

<‘가을의 카디널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키스를 상대로 와일드카드 게임! 과연 그 승자는?>

컵스에게 밀렸지만, 마찬가지로 와일드카드 2순위를 따낸 카디널스와의 일전이 아직은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각각의 진출 팀들과 혹은 마지막 관문에 들어선 팀들이 모두 결정되면서. 2018년의 페넌트레이스 역시 막을 내렸다.

꽤나 오랜 기간 최고로 남을 것 같았던 애스트로스의 몰락으로서 비어버린 왕좌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했지만.

어쩌면 애슬레틱스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팀들의 최종 목표는 딱 하나였다.

<고유석, 16.08의 9이닝 당 탈삼진 기록!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닥터K!>

<이번 포스트시즌은 ‘Goctober가 될 것!’ 전문가들 입을 모아 예측해···>

└진지하게 얜 어떻게 해야 하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없는 셈 치고 나머지 경기 이겨야지.

└Go가 안 나오는 경기에서 1패라도 하면 그걸로 그 시리즈는 끝이라는 건데. X발 X나게 불합리하네.

└아직은 모르지, 얘도 커쇼처럼 새가슴일지도.

└클레이튼은 새가슴이 아니야 X신아! 이번에 증명할 거니까, 닥치고 지켜봐라.

└아직도 커쇼를 믿는 X신이 남아있었네. 다저스 놈들은 성격도 좋다니까.

최강, 최악, 그리고 최고.

그 모든 칭호를 거머쥔 투수를 이겨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정규시즌이 막을 내리고 찾아온 10월의 축제에서. 모든 도전자들의 최종 목표이자, 최후의 과업이었고.

<10월 3일, 양키스 vs 매리너스, 와일드카드 게임! 디비전 시리즈로 향할 승자는 누구?>

그 첫 번째 상대이자, 용사가 될 두 명의 도전자가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시즌을 향한 관문에서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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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Yankees!”

양키 스타디움에 가득 찬 사람들은 힘껏 팀을 외쳤다.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9회 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이 되어야만 하는 이닝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그에 반면, 소수의 원정 팬들은 간절히 기적을 바라듯 두 손을 꽉 쥔 채 기도했고 말이다.

“아웃!”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을 때, 팬들은 입 밖으로 삐져나온 환호성을 간신히 씹어 삼켰다.

마땅히 양키스의 것으로 돌아가야 할 왕좌로 향하기엔, 아직도 멀고도 험한 길이 남았기에. 벌써부터 축배를 터트리며, 설레발을 칠 수는 없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아!”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강속구에 결국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대감도 참을 수가 없었고.

마운드 위의 클로저, 현재의 양키스의 수호신이 된 아롤디스 채프먼이 노쇠화가 시작되는 건지, 이번 시즌 100마일을 잘 찍지 못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다시금 100.2마일의 강속구를 선보이며, 타자를 몰아붙였으니까.

“네가 X같은 80마일 쓰레기보다 훨씬 낫다!”

“이대로 끝내버려! 네가 제2의 리베라가 되라고!”

“로빈을 망친 X신 매리너스도 죽이고! Suck 그 똥볼 새끼도 죽여서 월드시리즈까지 가는 거야!”

누군가를 저격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9대1의 스코어였기에, 99%는 승리가 확정된 만큼.

바로 다음의 상대이자, 올해 양키스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이자, 치욕을 안긴 투수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와 비교하며, 압도적인 구속을 자랑한 투수를 칭찬한 양키스 팬들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났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도, 매치업이 채 결정되지도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릴 만큼 그의 거대한 존재감이 벌써부터 양키스에게 드리웠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저지와 스탠튼, 올해 양키스의 주력포인 두 선수의 막강한 홈런이 터졌던 경기도 거의 끝나갔다.

삼진을 잡아내며,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단 하나만을 남겨뒀을 때. 애런 분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디비전 시리즈군.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어.’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맞이한 첫 시즌에서, 그나마 성공적인 성과를 냈으니까.

물론 팬들이야 라이벌인 레드삭스에게 밀려, 지구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100승을 달성하고, 디비전 시리즈까지 진출했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그럴듯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트라이크!”

그렇기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겠지만, 경기가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그의 목은 점점 더 막혀왔다.

“스트라이크!”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대로 숨을 내쉬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었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만을 남겨뒀을 때, 풀썩 벤치에 내려앉은 그를 선수들과 코치들이 조금은 걱정스런 시선으로 봤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한창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그것을 통해 위닝 멘털리티를 갖춰야 할 선수들에게, 괜히 안 좋은 말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스트~~~~~라잌 아웃!”

“Yeeeeeeeeeah!”

마지막 삼진이 올라갔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그라운드로 뛰쳐나갔고, 그 역시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월드시리즈까지 가자!”

“레드삭스? 애슬레틱스? X이나 까라! 우리가 우승한다!”

매리너스는 눈물을 흘렸고, 양키스는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 더 월드시리즈에 다가선 순간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기뻐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바라보면서도.

애런 분 감독은 여전히 숨을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어쩐지, 그를, 양키스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니까.

환호하는 팬들과 양키 스타디움 너머, 머나먼 서쪽에서 지켜보고 있겠지.

애슬레틱스는 강팀이다.

최강의 투수가 둥지를 틀면서, 그 존재감에 가려졌지만, 팀 자체도 언론의 비판과 달리 꽤나 강력한 편이지.

그렇기에 디비전 시리즈에서 양키스의 상대팀이 될 애슬레틱스를 정조준하며, 수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그 맞승부가 성사된 지금, 결국 떠오르는 것은 단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역대 최강의 투수.

그가 포스트시즌이라는 단기전의 무대 위에서 내뿜는 존재감은, 정규시즌을 훨씬 웃돌았다.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팀 홈런 1위에 올라선 홈런군단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번이 첫 포스트시즌이니, 제 실력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그렇기에 와일드카드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애런 분 감독의 머리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지끈거렸다.

####

“양키스가 이겼네요.”

“예상했던 대로 양키스의 막강한 화력을, 매리너스가 버티지 못했군요.”

“올해 최다 홈런 팀이니까요.”

“이번 시즌은 좀 저조하다 싶더니, 역시 스탠튼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상당하군요.”

마지막까지 열심히 노력하면서, 겨우겨우 와일드카드를 따냈지만, 매리너스의 가을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났다. 그냥 압살이구만.

같이 경기를 지켜보던 브라이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대니얼은 새삼 스탠튼의 파워에 감탄한 듯 혀를 내둘렀다.

‘역시 양키스였구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번 시즌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양키스인 만큼, 어느 정도는 예상하기 쉽긴 했지.

매리너스의 투수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니까 말이야.

약쟁이 카노도 포스트시즌에선 출전이 불가하기에, 전력 이탈도 있었고.

그러니 양키스가 상대가 될 것이라는 거야,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는데, 뻥뻥 점수를 내는 모습을 보니, 괜히 입맛이 찝찝하구만.

“폼은 어떠십니까?”

그런 나를 흘끔 확인한 브라이언은 조심스럽게 내 컨디션을 확인했다.

며칠 뒤 상대해야 할 양키스가 타격감이 좋은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 그도 괜히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혹시라도 오늘 터진 저 한 방이, 내 경기에서 터진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테니까.

“좋죠, 엄청나게, 지난 경기에서 고작 79개밖에 안 던졌더니, 아주 힘이 남아돕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뭐라고 못하겠네요.”

폼은 좋았다.

79구를 강조하는 내 말에 괜히 눈살을 찌푸리는 대니얼도 순순히 긍정할 정도로.

말했잖아, 11월이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좋을 예정이라고.

“···그러면- 아니,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Go의 폼만 좋다면야, 문제는 없겠죠.”

그런 내 말에 브라이언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내 칭찬으로 말을 끝냈다.

대충 눈치를 보니, 부담감은 없냐고 물으려던 것 같네.

<애슬레틱스의 포스트시즌은 전적으로 Go에게 달렸다!>

<소니 그레이나, 션 마네야 역시 좋은 투수, 허나 Go가 정규시즌과 같은 폼을 내는지가 결국 가장 중요해···>

그토록 기다리던 포스트시즌이 다가왔을 때, 언론은 여전히 내 이름만 외쳤다.

다른 선수들이 조금은 섭섭해하거나,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제드 라우리가 그랬었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우리 팀에 나 밖에 선수가 없는 줄 아는 것 같다고 말이야.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그 역시 내심 믿고 있겠다는 듯이 눈빛을 보냈지만 말이야.

그런 상황 속에서, 브라이언은 그 모든 기대와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을 혹시나 내가 부담스럽게 여길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

나라는 상품으로 돈을 버는 에이전트가 아닌, 그저 순수하게 내 주변인이자, 지인으로서. 대니얼도 마찬가지고.

“조금 두근거리기는 하죠. 사실 많이 두근거려요.”

솔직하게 말하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는 했다. 28일이 끝난 이후로 계속 이렇지.

점점 더 날이 지날수록 더욱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고.

설마 심장마비의 징조가 아닌지, 조금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니다.

‘이게 부담감인가?’

어쩌면 이게 부담감이라는 녀석일지도 모르지. 솔직하게 말해서 잘 모르겠거든.

살면서 부담감이라는 걸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어서, 대체 그놈이 어떤 놈이고,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모르니까.

나도 모르는 게 있다 이거야.

정말로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은 아니니까. 경험해보지 못한 건 모를 수밖에 없지.

근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양키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것이 끝난 순간, 조금 더 세차게 요동쳤거든.

부담감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이런 것에 대한 경험은 있다.

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 결과. 이건 아마도···

“좀 흥분되네요.”

흥분이겠지.

참을 수 없는 흥분감.

와일드카드 경기마저 끝이 나고, 상대가 결정된 순간, 그것이 몸 안 가득 닥쳐왔다.

어쩌면 이제야 실감이 되는 걸지도 모르지. 어릴 때부터 그토록 꿈꾸고, 동경해왔던, 메이저리그라는 무대.

그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시즌에, 내가 정말로 입성했다는 게.

그렇기에 미치도록 흥분되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는 내 모습에 브라이언 역시 피식 웃었다.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런가요?”

“예, Go는 흥분할수록 잘하니까요.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봐온 모습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냐고 묻는 것처럼 눈썹을 씰룩이는 브라이언의 말에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치, 언제나 잘해왔지. 지금처럼 흥분되는 순간에는 무조건 잘했지.

그렇기에···

“브라이언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제가 그런 경향이 좀 있죠.”

이번에도 잘할 거고.

지금보다 훨씬 더 흥분될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미 모든 준비는 충분히 갖춰졌으니까.

####

10월 5일.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앞둔 오클랜드는 행복해 보였다. 사실 9월 내내 행복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토록 염원했던 포스트시즌의 첫 발을 뗄 날이 왔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밖에 없겠지.

“오늘도 콜리시엄은 만석이겠네요.”

“앞으로 10월 내내 그렇겠죠.”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혔다. 아마도 나랑 목적지가 같겠지. 콜리시엄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까.

설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그 주변에서 기운이라도 느끼길 바라면서.

경기를 앞두고, 여전히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다. 나를 놓고 은퇴한 메이저리거, 기자, 전문가 등등. 죄다 온갖 종류의 추측을 던지고 있지.

-이미 259이닝이나 던진 투수입니다. 아무리 Go라고 해도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또한 부담감 역시···

마침 라디오에서도 나오네.

오클랜드 지역 라디오인데도 약간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군.

“조금 우습군요. WAR이 24나 되는 선수가 갑자기 가을이 되면 픽 쓰러질 거라고 말하는 게.”

“이미 너무 혹사당해서 포스트시즌을 치를 여력이 없을 거라니···”

나를 잘 아는 대니얼과 브라이언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쌩쌩하다는 걸,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폼이 올라오고 있다는 걸 두 눈 똑똑히 지켜봤었기에.

내가 갑자기 망하리라는 추측 앞에서 비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물론 지금 나랑 같이 콜리시엄으로 가고 있는 팬들이 저 말을 든는 다면, 단순히 고개를 젓는 수준으론 끝나지 않을 거고.

“이 X같은 놈이 어디서 개소리-”

아무래도 옆 차도 같은 걸 듣고 있었던 건지, 희미하게 욕설을 토하는 게 들렸다. 거참 대단한 우연이네.

사실 이마저도 가벼운 수준이다. 극성으로 유명한 뉴욕 쪽 언론은 날 무슨 불치병 환자처럼 묘사하거든.

259이닝이라는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인’ 이닝을 소화했으니.

지금 나는 당연히 숟가락 들 힘조차 없을 만큼 골골거릴 거고, 그런 나를 양키스가 이번에야 말로 완벽하게 박살 낼 거라면서.

400K랑 노히터, 퍼펙트당한 건 벌써 다 까먹은 모양이야.

-그는 이미 숱한 영광을 손수 쟁취한 승리자입니다. 그런 Go가 부담감을 느끼리라는 말은 조금 넌센스···

당연히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도 적지는 않았다. 승리자라니, 듣는 승리자 부끄럽게 너무 띄워주시네.

어쨌든 티비나 라디오, 기사에선 매일, 매시, 매분, 매초마다 이런 논쟁이 일어났다. 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임팩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지만, 과연 가을에서도 그게 이어지느냐는 별개의 문제잖아?

그러니 서로의 주장을 펼치면서, 제멋대로 나를 놓고 추측하는 건데, 그것도 오늘로 끝이지.

“Go 폼 좋나 봐?”

“네 손목 오늘 부러뜨릴 거니까, 미리 병원이나 알아봐라.”

“어?”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브라이언을 보내고, 대니얼과 함께 들어서니, 기다렸던 건지, 실실 웃으며 맞이한 브루스는 내 말에 흠칫 떨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처럼. 이럴 때 보면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한편으로는 약간 기쁜 듯한 표정을 짓는 브루스를 뒤로한 채, 차분하게 몸을 달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이, 이미 완성됐지만 말이야. 28일 이후, 6일이나 쉰 덕분에 몸이 부글부글 거리고 있거든.

“Go, 오늘은···”

“끝까지 가야죠. 다음 경기도, 그다음 경기도. 이번 10월 모두 다.”

내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다가온 스콧 에머슨은 대찬 선언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79구 완봉 이후로, 그는 어쩐지 조금은 내려놓은 것 같았다. 날 제어하는 걸 포기한 것처럼.

“네 덕분에 다음 직장 구하기는 글렀어. 투수 갈아서 성적을 올리는 미련한 투수코치로 낙인찍힐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스콧 에머슨은 이내 조금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10월 동안에는 제한 같은 건 없으니까, 마음껏 던져, 네가 원하는 만큼.”

그 말을 기다렸다.

물론 원래도 그러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결 더 마음이 편해지네.

‘허락까지 받았으니, 마음껏 던지자고.’

####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불펜의 문이 열렸을 때,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흥분된 나와, 나만큼이나 잔뜩 흥분해서, 빨갛게 익은 우리 팬들을 식혀주려는 것처럼.

‘이 정도론 어림없어.’

허나 가을바람 정도로 식어버리기엔, 이미 너무 달아올랐다.

이 정도론 한참은 부족해. 못해도 차디찬 겨울, 혹한의 칼바람 정도는 돼야 기별이 오겠지.

‘저쪽도 마찬가지일 거고.’

마운드로 오르는 길, 나를 맞아들인 양키스 역시, 가을바람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Suuuuuuuuuck!”

“It’s Suck Time!”

“퍼펙트 가즈아아아아아!”

5만 명, 혹은 그 이상이 내지르는 함성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니, 신경조차 못 쓴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양키스의 눈동자는 오직 나만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운드에 올랐을 때, 문득 그렉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렉 매덕스 말이야. 시범경기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그랬었잖아.

넌 무조건 무리할 거라고, 정규시즌에서도 미친 듯이 던지다가, 포스트시즌에서도 어깨를 갈아먹을 거라고.

나는 아직 앞길이 창창하고, 본인도 내 피칭을 보는 것이 즐거우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지.

‘역시 매덕스가 다르긴 달라. 타자가 아니라, 투수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걸 보면.’

그땐 그냥, 포스트시즌으로 간 다음에 생각해볼 거라고 말한 다음에 넘겼고.

그는 내가 놀란 라이언 같은 괴인일 확률이 낮으니, 올바른 판단을 내리라고 했었지.

정말로 포스트시즌에 들어서니,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이제 보니 그가 날 정확하게 파악한 것 같거든. 그 말처럼, 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까.

앞으로 10월 동안 난 내 어깨를 갈아먹을 거다. 이번 경기가 그 시작점이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게 불타오른 뒤, 주저앉거나, 무너질 생각은 당연히 없다.

‘못해도 50살까진 뛰어야지. 마운드에 똥칠할 때까지.’

예전에도 누누이 말했듯 내 최종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50살까지 뛰는 거니까.

혹시 모르지, 내가 정말로 놀란 라이언 같은 괴인일지도. 굵고 길게 가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은 굵을 날이다.

굵게, 내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 날이지.

1번타자 앤드류 맥커친이 하이 패스트볼을 헛치며 무너졌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여전히 나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지. 지난번 400K 때 이후로 더욱더 심해진 것 같고.

포스트시즌에서의 첫 번째 삼진. 그리고 첫 번째 유썩. 기분 좋네.

‘눈빛이 좋네.’

2번타자 애런 저지.

처음부터 두려움에 질렸던 맥커친과 달리, 그는 굳게 다짐한 듯한 얼굴이었다.

팀을 굴욕에 빠트리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와일드카드전에서도 한방을 터트렸으니, 타격감이 좋다고 생각해야 할까?

파워야 뭐, 더 말할 것도 없는 녀석이고, 그것 외에도 죄다 강력하지.

작년보단 못하지만, 올해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타자. 차세대 뉴욕의 연인.

꽤나 껄끄러운 타자이지만.

“스트라이크!”

여긴 뉴욕이 아니라, 오클랜드고, 양키 스타디움이 아니라, 콜리시엄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시간이다.

초구 서클 체인지업에 헛스윙. 우렁찬 스윙이 헛돌면서 스트라이크가 올라갔다.

“파울!”

다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포심을 넣자, 벼락같은 스윙이 나왔지만, 힘에서 밀린 타구는 홈 플레이트 뒤로 날아갔다.

그러자 조금 더 짙어지는 얼굴의 음영. 그리고 경계심. 이젠 확실하게 느꼈겠지.

오늘 내가 양키스를 다시 한번 묻어버릴 거라는 것을.

다시 몸쪽으로 낮게 던진 공.

며칠 전에 보았던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홈런을 쳤을 때처럼 힘 있는 깔끔한 스윙이 나왔다.

그는 부디 이것이 공을 정확하게 때려주기를, 그래서 최대한 빨리 내 열기를 꺼트리기를 바랐겠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배트는 이번에도 헛돌았다.

헛스윙, 또다시 삼진아웃.

“스트~~~라잌 아웃!”

마지막 3번타자 애런 힉스마저, 4구째 너클 커브를 멍하니 바라보며 물러났다.

‘이제 시작이지.’

루킹 삼진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이 완성되면서, 내 10월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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