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98화 (297/316)

298화

매리너스전은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끝났다.

116승째를 달성하며, 기존 단일시즌 팀 최다승 공동 1위인 매리너스, 컵스와 동률이 됐지.

우리가 한 번만 더 이기면, 2001년의 매리너스를 넘어서는 거지만, 의외로 매리너스 팬들은 기록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야이 X새끼들아! X발 좀 지고 가라고!”

“니들은 이미 확정이면서, 왜··· 왜!”

“어차피 지구우승 확정인 거, 좀 져주고 가지··· 이 개 같은 새끼들! 일생에 도움이 안 돼!”

“같은 서부지구끼리 나란히 포스트시즌 좀 가자! 그게 그렇게 꼽냐?”

기록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우리한테 욕설을 퍼부었지.

여전히 와일드카드 2위를 지켜낸 매리너스이지만, 이번의 루징 시리즈로 매리너스가 87승 71패를 기록하고, 레이스가 85승 73패를 올리면서.

여전히 와일드카드 경쟁이 끝나지 않았거든. 두 게임 차의 격차가 이뤄졌지.

양 팀 다 네 경기만을 남겨둔 가운데,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순위 경쟁이 이어지는구만.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네.’

탬파베이한테는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고, 여기선 위닝으로 잡고.

어쩐지 우리 팀이 본의 아니게 시즌 막판에 와일드카드 경쟁에다가 여기저기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니는 느낌이네.

“잘하면 타이 브레이커까지 가겠는데?”

“뭐, 가능성이야 차고 넘치지.”

어쩌면 두 팀이 막판에 동률을 이뤄 타이 브레이커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뭐, 우리랑은 관계없는 일이지.

‘그러게 진즉에 약쟁이들을 쳐냈어야지.’

이게 다 매리너스가 약쟁이 삼인방을 품어서 그런 거다.

진즉에 쳐냈으면 이미 와일드카드 확정 짓고, 우리처럼 편하게 9월의 마지막을 보냈겠지.

현재까지 브레이브스를 제외한 지구우승팀이 단 하나도 확정되지 않고, 와일드카드도 정해지지 않은 내셔널스를 구경하면서. 아무튼 그렇다.

절규하는 매리너스 팬들을 보니, 괜히 좀 마음이 쓰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매리너스에게 끝장전의 가능성을 남겨둔 채.

우린 하루의 이동일을 가진 채, 다시금 마지막 원정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애너하임, 정규시즌의 마지막 상대인 LA 에인절스를 만나기 위해서. 에인절스와 최후의 3연전만이 남아 있지.

1차전에선 내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 있을 예정이기도 하고.

‘드디어 마지막인가?’

그러고 보면 작년에도 28일이 마지막 등판이었는데, 올해도 28일이네.

다만 작년보다 한 경기를 더 등판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묘한 관계성이구만.

그토록 길었던 시즌이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조금은 미묘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지.’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다시 제로부터 시작이니까.

정규시즌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업을 세웠건, 얼마나 많은 영광을 누렸건 간에, 지금까지 내가 쌓은 성적, 기록, 모두 다 0부터 새로 시작이지.

그러니 지금은 그저 그 시작을 향한 거쳐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몸도, 마음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고.

‘그러고 보니, 올해 개막전 상대도 에인절스였던가?’

아마도 맞을 거다. 작년과 올해, 모두 다 개막전 상대가 에인절스였지.

마치 수미상관 구조처럼. 첫 상대를 마지막 상대로 다시 만난 건데, 초심으로 돌아가기 딱 좋겠어. 물론 결과도 처음과 같다면 더욱더 완벽할 거고 말이야.

####

원정길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곧 포스트시즌이 다가올 만큼, 다들 집중력을 올린 건지, 평소와 달리, 꽤나 조용하게 여행길에 올랐지.

“Suuuuuck!”

“오늘은 쉬엄쉬엄 던져도 돼! 슈퍼볼- 아니아니, 월드시리즈까지 가야 하니까!”

“마지막까지 우리가 함께 해줄 테니까, 우리만 믿고 신나게 던져!”

언제나 시끄러운 사람들이 당연히 마지막까지 우릴 따라오기도 했지만, 레이더스 역시 평소보단 조금 덜했다.

아직도 미식축구 물이 덜 빠진 건지, 슈퍼볼과 월드시리즈를 혼동하는 만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이 아닌, 내일을 향한 기대감에 가득 차, 눈동자를 반짝였으니까.

그렇게 내 마지막까지 함께해줄 레이더스를 뒤로한 채, 에인절 스타디움에 입성했을 때, 스콧 에머슨은 마지막 단도리를 쳤다.

“오늘은 딱 80구야. 잘 알고 있겠지? 80구를 찍는 그 즉시 바로 교체야. 퍼펙트, 노히터. 그 어떤 기록이 이어지더라도. 무조건 딱 80구라고.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

“예예, 잘 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부탁 좀 하자. Go 네가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나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웬만하면 오늘은 자제해.”

트윈스전에서의 완투를 허락받으면서, 그와 동시에 80구 제한을 받기는 했지만.

가끔씩 내가 내 마음대로 던질 때가 있으니, 그걸 방지하려는 거겠지.

혹시나 또 퍼펙트가 이어질지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가능성도 존재하니, 그것마저 확실하게 단도리를 쳤군.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가 Go 너라는 건, 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겠지만, 팀을 위해서라도 더욱더 유념해.”

마지막까지 단단히 족쇄를 채우고 떠나시는 코치의 말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니까, 팀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자제하라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그래.

팀 같은 건 알바 없고, 난 그냥 내 꼴리는 대로 할 거라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

‘80구라··· 고딩 때가 딱 이 정도 제한이지 않았나?’

고교야구 시절에 딱 이랬지.

감독님과 코치님 두 분 다 칼 같이 제한을 걸으셨거든.

개막전 상대인 에인절스를 잡으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너무 오래 전의 초심으로 돌아갔네.

조금은 빡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절대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80구-”

“이미 코치한테 단단히 경고받았으니까, 그만 말해요. 계속 들으니까, 노이로제 걸리겠어요. 철저하게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하하, 그렇다면야 다행이군요. 바로 워밍업부터 하시죠.”

그렇게 코치와의 면담을 뒤로하고 워밍업에 들어가니, 대니얼도 다시금 나한테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사전에 막았다. 두 번이나 들을 필요는 없잖아?

대니얼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배알이 꼴렸지만, 어쩔 수는 없지.

‘참 좋은데, 찍 사고 가야 한다니, 좀 아쉽네.’

폼은 저번 경기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좋았다. 뭔가 각성 비스무리한 상태에 들어간 느낌이네.

포스트시즌이라는 조건이 충적되면서, 아무래도 내 안의 어떤 트리거가 눌린 것 같다.

아마도 월드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진 계속 이런 고양감이 유지되겠지.

이런 폼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휙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애석하구만.

그래도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80구 '밖에'가 아니라, 80구나 있는 것이니. 최대한 만족을 찾을 수는 있겠지.

어쩌면 80구 완봉을 해버릴 수도 있는 거고. 폼도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80구 안에 최대한 꽉꽉 눌러 담아 보자고.’

대니얼이나 스콧이 내 생각을 알았다면, 투구수를 제한하니, 이상한 쪽으로 나간다면서 헛웃음을 흘리겠지만. 어쩔 수 있나.

난 공 던지는 게 좋은 걸.

“예, 15분 됐습니다, 바로 다음 루틴으로···”

그렇게 약간은 빠듯한 리미트 내에서 내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 다가왔다.

####

“에휴··· 설마 우리보다 에이스가 먼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푸홀스 때문이야! 푸홀스만 아니었어도 훨씬 사정이 나았을 거라고!”

“이러다가 마이크보다 Suck 걔가 먼저 반지 끼는 건 아니겠지?”

시즌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에인절스 팬들은 대부분은 우울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몰락으로, 그들 역시 야심차게 포스트시즌을 노렸었지만.

<애스트로스에게마저 밀린 에인절스! 지구 4위 확정!>

포스트시즌은커녕, 막판에 부활한 애스트로스에게까지 밀려나면서, 지구 4위가 확정되었으니까.

그나마 처참하게 망한 레인저스가 바닥을 깔아준 덕분에 꼴찌를 하는 수모는 피할 수 있었지만.

들인 노력과 페이롤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즌 성과는,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적기라며 소리쳤던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애슬레틱스가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며 훨훨 날아오른 모습은 박탈감을 선사하기도 했고 말이다.

어쩌면 트라웃보다, 작년에 갓 데뷔한 Go가 먼저 월드시리즈 반지를 획득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그저 절망감만이 들게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을 향한 애슬레틱스의 마지막 전야제! Go의 10월 미리보기?>

그런 상황에서 그런 Go의 정규시즌 마지막 상대이자, 포스트시즌을 대비한 스파링 파트너로 간택된 현실은 짜증이 샘솟았고 말이다.

“여기도 Go, 저기도 Go. 아주 신났네, 신났어.”

“Suck 저 새낀 포스트시즌에서 굴러야 할 텐데, 좀 쉬기나 하지,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쳐 나오고 지랄이네.”

“에휴, 안 그래도 X같은 시즌, 마지막에도 기분 더럽게 끝나겠어.”

가뜩이나 한숨만 나오는 시즌인데, 그 마지막까지 꼴 보기 싫은 얼굴을 봐야 했으니까.

“트윈스 20K 당했다던데···”

“설마 이번에도 또 완봉당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포스트시즌이 코앞인데, 설마. 상식적이면 금방 교체하겠지.”

“아직도 Go한테 상식을 찾냐? 또라이라서 아예 퍼펙트까지 노릴 걸?”

어쩌면 마지막까지도 굴욕을, 처참하게 티배깅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들었지만.

<밥 멜빈 A’s 감독,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에이스를 혹사시키는 바보는 없다.’>

그나마 80구의 투구수 제한이 있다는 사실이 일말의 불안감을 지워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똥물이나 잔뜩 끼얹어야지.”

“트라웃이 홈런 치고, 오타니도 치고, 업튼도 하나 치는 거야. 마침 X같은 푸홀스도 없어서 딱 좋네!”

“닥치고 얌전히 푹 쉬어야 했다는 걸 단단히 가르쳐 주자고.”

“117승? 웃기고 잇네. 아예 스윕으로 잡아버려!”

최후의 굴욕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오히려 용기가 샘솟으며, 포스트시즌으로 떠나기 전, 괜히 찬물을 끼얹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그것은 경기 당일까지 이어져, 조금은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아웃!”

“아웃!”

“아웃!”

“그렇지! 이래야지!”

“X발 116승 별거 없네!”

“X도 못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대신 포스트시즌 가야 할 것 같은데?”

1회 초.

애슬레틱스의 공격이 단 8구만에 삼자범퇴로서 끝나자, 분위기는 더욱더 올라왔다.

망해버린 시즌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인절스 팬들은 더욱더 혹독하게 애슬레틱스를 잡길 바랐고.

이어진 1회 말 공격에서도, 평소 조용하고 신사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애너하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열기가 가득했지만.

“···”

“왜 아직도 멀쩡해 보이냐···”

“250이닝이나 던진 새끼가, 뭐 저렇게 깨끗해··· 어깨가 좀 축 늘어져야 정상이지.”

그토록 흥분됐던 분위기는 불펜의 문이 열리고, 투수가 등장하는 순간 놀랍도록 순식간에 사라졌다.

250이닝, 여타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거의 한 달 치의 이닝을 더 소화한 주제에.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개운한 듯, 가벼운 걸음으로 등장한 투수는 마치 DNA로 각인된 포식자에 대한 공포감처럼, 공간 전체를 압도했으니까.

몇몇 에인절스 팬들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벌써부터 덕아웃 바깥으로 나와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마이크 트라웃의 얼굴에 그나마 두려움이 가셨다.

“홈런 날려~~!”

“트라웃! 너만 믿는다!”

“포스트시즌 가기 전에, 예방주사 한 대 놔줘!”

그렇게 억지로 고성을 내지르며, 다시금 분위기를 띄운 에인절스였으나.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평소처럼 순식간에 쓸려나간 타자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뒷목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1번타자 콜 칼훈은 삼구삼진을, 그리고 2번타자 호세 미겔 페르난데즈는 초구를 잘못 건드리며 범타로 물러나면서.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투아웃이 올라갔으니까.

“X신이냐? 그걸 왜 쳐!”

“안타라도 하나 치라고! 그래야 마이크가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내지!”

불현듯 떠오른 혹시나 하는 생각을 억지로 떨쳐내기 위해, 에인절스 팬들은 더욱더 타자들을 모질게 비판했고.

“마이크! 네가 한 수 보여줘!”

“두 번째 홈런 가즈아아악!”

“마이크 너랑 오타니까지, 백투백 치는 거야!”

또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트라웃의 이름을 더욱더 크게, 그리고 간절하게 외쳤다.

빌어먹을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는 뭐라도 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몸쪽으로 날아든 코스를 트라웃이 가만히 지켜만 봤다.

원래도 초구를 잘 지켜보는 타입의 선수이고, 그러다가도 벼락처럼 배트를 휘둘러 투수를 넉다운시켰기에.

팬들은 스트라이크 하나에 별달리 연연하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크!”

다만 2구째, 서클 체인지업을 헛치면서 투 스트라이크로 몰리자, 조금은 입이 텁텁해졌지만 말이다.

“파울!”

“그렇지! 다음은 홈런이다!”

“감 잡았어! 벌써 몇 번이나 만났는데, 마이크가 감을 못 잡을 리가 있나!”

하지만 다시 3구.

이번엔 정확하게 컨택해내며, 파울이라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잘 맞은 정타를 쏘아 보내자, 더욱더 기대감이 차올랐다.

어쩌면 이전의 아쉬웠던 맞승부를 통해, 드디어 경험이 충분히 쌓인 트라웃이 Go에게 적응한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4구는 파울라인이 아닌, 담장을 넘기를 고대하며, 에인절스의 홈팬들은 눈동자를 반짝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아···”

“You Suck!”

허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4구째, 높이 날아든 하이 패스트볼에 스윙한 마이크 트라웃이었으나. 결국은 배트가 허공을 갈랐으니까.

4구만에 삼진아웃.

1회 초, 애슬레틱스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8구만에 이닝이 삼자범퇴로서 끝났다. 다만 이쪽은 삼진만 두 개였지만 말이다.

그들의 유일한 버팀목을 향해 ‘You Suck’이라며 흥겹게 조롱하는 레이더스의 목소리에 에인절스 팬들은 그저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적을 향한 증오감보다도, 아까 전부터 왠지 모르게 찝찝하게 떠올랐던 불안감이 더욱더 크게 느껴졌으니까.

“혹시··· X발 말도 안 된다는 건 아는데··· 혹시 완투하는 건 아니겠지?”

“80구 밖에 안 던진 댔잖아. 저쪽 감독이 바보 소리까지 하면서 그랬는데··· 설마 그러겠어?”

“아니 그러니까, 80구 안에 완봉하는 일은 없···겠지?”

80구라는 제한이 단단히 걸리면서, 고이 접어뒀던 최악의, 최후의 굴욕이 에인절스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고작 1회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어쩌면 상식을 벗어난 선수이기에, 상식 밖의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왠지 조금은 찝찝한 표정으로 에인절스를 훑어보기도 했고.

그래도 아직은 터무니없는 말에 불과했기에, 대부분은 괜한 걱정이라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지만. 곧이어 2회 말이 끝났을 땐, 더는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마운드에 오르면서, 왠지 조금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조금은 장난처럼 혹시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에이, 이제 겨우 1이닝 던졌는데, 그럴 리가.’

그래도 아직은 우스운 수준이기에, 대충 고개를 저으며 2회 말,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다. 타자 놈들이 또다시 빠르게 잡히면서, 이닝이 금방 돌아왔네.

‘오타니, 왠지 잘할 것 같더라니, 엄청나게 잘한단 말이야.’

2회 말 선두타자는 오타니 쇼헤이. 투타겸업의 낭만을 이어가는 녀석과 다시금 만났다. 뚜렷한 결과도 냈지.

투수로는 내구성의 문제로 인해, 10경기를 등판해, 51.2이닝 4승 2패, ERA 3.31 63탈삼진으로,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면.

타격에서는 오히려 기대를 초월하는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현재까지 2할 8푼의 타율과 22홈런, 그리고 9할이 넘는 OPS를 기록했거든.

몇몇 언론에서는 광대놀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던 투타겸업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증명한 셈이지.

그 덕분에 이번 시즌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이 확정되었다는 분위기고.

‘저러다가 진짜 나중에는 20승-20홈런 하는 거 아니야?’

만약 양쪽으로 다 만개할 경우 정말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감탄은 차차하고, 오직 타자로서 오타니 쇼헤이를 평가한다면, 그래도 위협적인 타자다.

지금 에인절스에선 트라웃에 이어 2인자라고 할 만한 수준이니까.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그렇게까지 많은 타석을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22홈런을 찍은 것만 봐도 무시할 수 없지.

좌완투수를 상대로도 이번 달에 들어서는 상당히 잘 치는 편이고.

‘파워는 트라웃과 비슷하고, 나머진 살짝 못한 수준이라고 봐야 하나?’

참 부럽단 말이야.

100마일 던지는 놈이 빠따질도 저렇게 잘한다니.

신의 불공평함에 혀를 내두르며, 경계심을 한층 더 올리면서, 초구를 던졌다.

“파울!”

포심 패스트볼에 곧바로 나온 스윙. 수월하게 당긴 스윙에 공이 살짝 뻗기는 했지만, 정타는 아니었다.

“볼.”

2구는 바깥쪽.

낮게 하나 깔아서 던지자, 다시금 배트가 나왔지만, 마지막까지 제대로 지켜본 건지, 배트가 중간에 멈췄다.

내 시점에선 엉덩이가 좀 돌아간 것 같은데, 스윙 판정을 내릴 정도는 아니었나 보네.

“파울!”

3구는 다시금 파울.

배트를 끌어내기 위해, 너클 커브를 던졌는데, 헛스윙하는가 싶더니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

원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트라이크 하나 올라갔으니까, 그러면 된 거지.

‘바로 잡자, 오늘 타격감이 좋아 보이는데, 계속 보여줬다간 괜히 나중에 짜증나겠어.’

원래도 성적이 좋긴 하나, 오늘은 아무래도 집중력도 잘 올라온 것 같은데, 괜히 승부를 길게 끌었다간 나중에 골치 아프겠지.

더군다나 오늘은 투구수가 많지 않으니, 최대한 아껴 써야 하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던진 4구.

“스트라이크 아웃!”

높게 날아든 공에 하이 패스트볼을 직감한 듯, 오타니는 배트를 휘둘렀지만.

느릿하게 날아든 쓰리핑거 체인지업은 스윙이 지나간 한참 뒤에 포수 글러브로 안착했다. 깔끔하게 헛스윙 삼진.

트라웃과 마찬가지로 4구 만에 잡았네. 투수수를 제법 아꼈어.

‘그래도 마지막까지 공을 지켜보던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까다롭겠어.’

아쉬운 듯 고개를 젖히며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오타니 쇼헤이를 잠시 눈에 담다가. 이내 뒤이어 올라온 다음타자에게 집중했다.

‘이제 12구, 진짜로 가능하겠는데?’

생각보다 투구수가 아껴지고 잇었기에, 다시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세이프!”

5번타자 저스틴 업튼이 그런 생각을 말끔하게 지워줬다. 2구째, 너클 커브를 제법 잘 받아치며, 첫 안타를 쳐냈으니까.

“Hell Yeah!”

“저스틴 오늘은 니가 최고다!”

“X발 X나게 잘했다! 어휴, 식겁했네.”

그의 호쾌한 한방에 홈팬들은 대체 뭘 걱정했는지는 몰라도, 그제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는 반대로 살짝 입맛을 다셨다.

음,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있나. 괜한 기대를 접으며, 6번타자 안드렐톤 시몬스를 맞이했는데···

“아웃!”

“아웃!”

“음?”

몸쪽으로 날아든 투심 패스트볼을 잘못 건드리면서, 초구만에 더블 플레이가 나왔다.

그렇게 2회 말 종료. 소모된 투구수는 일곱 개로, 1회 말보다 한 개가 더 줄었다. 이거 진짜로···

‘완투하는 거 아니야?’

가능하겠는데?

나도 조금은 당혹스러워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지만.

방금 전까지 안심했던 홈팬들의 얼굴은 그런 나보다도 더욱더 심각해졌다.

“X발··· 거짓말하지 마.”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좀 제대로 보고 쳐! 막 휘두르지 좀 말고!”

어쩌면 나랑 같은 걸 생각하는 건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하얗게 질렸으니까.

아직 2회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생각 없이 휘두른 타자들을 한껏 질책하기도 했고.

“이런 미친···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마찬가지로 오늘 나에게 단호하게 당부를 내렸던 스콧 에머슨은 신성한 덕아웃에서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래도 벌써부터 속단하진 않는 건지, 애써 스스로를 달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곧바로 3회 말마저, 삼구삼진 한 개와 4구삼진 하나, 그리고 2구만에 유도한 내야플라이 하나로, 이닝이 끝마치자, 결국 코치의 입은 꽉 닫혔다.

“80구 맞죠? 분명히 칼 같이 80구라고 하셨어요? 무조건 딱 80구라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워밍업에 들어가기 전, 그가 했던 말을 다시 되묻는 내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조차 못하며, 그저 눈동자만 세차게 흔들렸고 말이다.

그렇게 총 24구가 소모되면서 3이닝이 지웠고, 남은 투구수는 무려 56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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