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94화 (293/316)

294화

-이제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한 선수가, 첫 번째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오리올스전을 마친 뒤, 부쩍 나를 향한 말들이 많아졌다.

‘원래 나 가지고 여러 말하긴 했지만, 요즘 따라 더 심해졌네.’

아주 난리도 아니지.

내가 포스트시즌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과하게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느니.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스물다섯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이기에 부담감을 못 이겨,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질 것이라느니.

우리 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거든.

“이제 시즌 막바지인데, 점점 더 폼이 오르시네요. 제가 체력을 열심히 길러드리긴 했지만, Go의 내구성은 진짜 불가사의하군요.”

정작 그런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대니얼의 생각은 그들과 좀 달랐지만 말이야.

오히려 폼이 더 올라왔다는 평이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황당하다는 듯이 살짝 혀를 내둘렀다.

마치, 본인이 성심성의껏 돕고 있는 선수가 진짜 사람인지 의문스럽다는 것처럼.

‘팬들이나 동료들도 저러더니, 결국 대니얼도 날 저런 눈으로 보기 시작했구만.’

인간 이외의 것으로 보는 눈빛이 조금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서 숱하게 겪은 것이기도 하고.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를 타박하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퍼져야 정상인데, 계속해서 좋은 사이클이 이어지고 있었거든. 그의 말처럼 오히려 점점 더 상승한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무래도 가을 체질인가 봐요. 작년에도 막판에 잘했잖아요? 마지막 경기에선 아예 퍼펙트도 했고. 가을이 될수록 힘이 점점 더 오르는 거죠.”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Go를 보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5분 됐습니다, 불펜으로 가시죠.”

이번 오프시즌 때 열심히 체력을 키운 것도 도움이 됐겠지만, 아마 내가 가을이랑 잘 맞는 것도 있을 거다.

실제로 가을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11월에 태어나기도 했고.

생일에 가까워지면서 신체 사이클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대니얼의 의심처럼 그냥 내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고. 사실 팬들 사이에선 이쪽이 조금 더 힘을 얻고 있다.

“오늘은 좀 서늘하네요.”

그렇게 한창 대니얼과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불펜으로 향했을 때, 문득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후덥지근한 더위 사이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다 보면, 정말로 가을이 왔다는 것이 체감됐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더니, 이제 9월 중순인데도 여전히 조금은 열기가 감돌긴 했지만, 그래도 좀 시원하네.

“예, 좀 선선하네요. 땀이 식으면서 추워질 수도 있으니, 점퍼를 잘 껴입으세요.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까.”

다만 대니얼의 말처럼 그 가을바람에 몸이 식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11월, 아니, 12월이 되기 전까지는 식어선 안 되겠지. 오늘도 마찬가지고.

####

서서히 가을이 만연해져가고 있는 날씨와 달리, 오늘 경기 상대팀인 탬파베이 레이스는 여전히 여름이었다.

오리올스전이 끝나고 곧바로 만났는데, 선수들도, 팬들도, 하나 같이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지. 지난 경기의 오리올스와는 정반대로 말이야.

‘그놈의 와일드카드가 대체 뭐라고··· 다들 마지막까지도 고생이 많네.’

그도 그럴 게,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3위이고, 1위인 양키스는 이미 확정됐지만, 2위인 매리너스는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

마지막까지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대한 총력전에 나설 수밖에 없기는 하지.

그 기세에 밀려서, 우린 앞선 1,2차전을 패배했고 말이야. 간만의 루징 시리즈군.

“아직 안 끝났어!”

“역전 가자! 매리너스 제끼고, 와일드카드에서 양키스 잡아서 디비전까지 가는 거야!”

이번 시즌 최강팀을 연승으로 잡아냈다는 것 때문인지, 3차전, 내 등판일에선 더욱더 기세가 올라왔고 말이다.

이참에 루징 시리즈가 아니라, 아예 스윕이 되길 바라는 것 같네.

“Suck이고 뭐고, 다 죽여버려! 다 죽이고 X발 남은 경기 다 이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저 자식한테 첫 패배를 안겨줘! 그리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나면 그때도 죽여버리고!”

“Kill Suck! Kill Oakland!”

평소처럼 루틴을 마치고, 마운드에 올랐을 땐, 날 죽이라며 소리치는 걸 보면 말이야. 그래, 이게 원정 경기지.

‘이제 좀 익숙한 분위기네.’

내 스스로도 조금은 어색했던 오리올스전과 달리, 상식적인 반응이 나오는 레이스 홈팬들의 모습에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래 원정 경기쯤 되면 욕도 좀 먹고, 저주도 받고, 살인 협박도 있어야 정상이지.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좀 까다로울 수도 있겠어.’

다만 앞서 말했듯 레이스 선수들도 열정이 가득했는데, 1회 말, 경기가 시작되고 올라온 1번타자 말렉스 스미스를 보니, 조금은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것이, 오리올스전처럼 쉽게쉽게 가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거든.

아무래도 허무하게 패배를 당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스트라이크!”

뭐, 사실 그거야 원래 당연한 거니까. 일찌감치 패배를 받아들였던 오리올스가 이상한 거지.

다시 평소와 같은 원정경기 분위기가 갖춰졌으니, 나도 평소처럼 하면 되는 거지.

“스트라이크!”

평소처럼 타자를 조지는 것 말이야. 사실 이건 상대의 분위기나 기세에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팬들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스스로 품었던 투지가 무색하게도 말렉스 스미스였지만.

몸쪽으로 더욱더 파고들며, 오히려 배트를 피하는 서클 체인지업에 여지없이 배트가 크게 헛돌았다.

“아웃!”

뒤이어 2번타자 맷 더프는 그나마 손맛이라도 봤고. 그대로 기세가 좋긴 한 건지, 제법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가 나왔네.

“초이! 같은 나라라고 봐주지 말고, 큰 거 날려!”

“네가 진짜 Best Korean이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

그리고 마지막 3번타자.

왠지 모르게 레이스 팬들이 조금 더 발광했다. 묘한 기대감을 품기도 했고.

최정만.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지. 원래는 브루어스에 있었지만, 마이너와 메이저를 왕복하다가, 6월에 레이스로 트레이드됐던가?

그 이후에 마이너에서 머물다, 7월에 콜업된 이후 자주 출전하며, 서서히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고 있었는데.

‘같은 나라 출신이라서 그런지, 기대감이 가득하구만. 레인저스 팬들도 은근히 추민수 선배한테 기대하기도 하더니.’

아무래도 레이스 팬들은 그가 현재 최고의 한국인인 날 꺾고, ‘Best Korean’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는 같지만.

“스트라이크!”

어림도 없지!

경기 끝나면 한 번 얼굴은 보겠지만, 마운드 위에선 철저해야지.

초구는 바깥쪽으로 살짝 들어온 포심 패스트볼. 한번 쳐볼 만한 코스였는데도 타자는 스윙을 참았다.

‘이번 시리즈 동안 7타수 무안타였지? 자신감이 좀 떨어진 건가?’

지난 경기에서 별로 타격감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 망설였다.

“볼.”

이어진 살짝 걸친 코스도 마찬가지로 지켜보기만 했고.

존이 좀 넓었다면 공짜로 스트라이크를 하나 더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좀 짜네.

‘쉽게 배트를 낼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그럼 끄집어내야지.’

선구안이 제법 괜찮은 스타일로 아는데, 아무리 그런 타격 스타일이라고 해도···

“스트라이크!”

타자인 이상, 한복판으로 날아드는 공은 절대로 못 참는 법이지.

그래도 제법 내 분석자료를 읽은 건지, 쓰리핑거를 예측한 듯, 오프스피드의 타이밍에 맞춰서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는 헛돌았다.

너클 커브였거든.

그것으로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코너에 몰아넣었으니, 이제 끝을 봐야지.

이를 앙 다물고 던진 하이 패스트볼, 타자 역시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배트를 휘둘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우렁차게 헛스윙하면서 삼구삼진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쓰리아웃. 1회 말이 끝났다.

“우우우우우우우!”

기대와 달리 한순간 끝나버린 공격에 야유가 흘렀지만, 그거야 당연한 거고.

쌍욕은 안 하는 걸로 봐선 아직 살만한 것 같네. 더 빡세게 잡아도 되겠어.

####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처럼, 가을야구는 집 나간 야구팬들마저 돌아오게 할 정도의 마력이 있었다.

아주 눈꼽만큼의 희망만 생기더라도 눈이 돌아갈 정도니까.

<탬파베이 레이스, 2연승을 올리며 매리너스와 3게임차!>

<불이 붙은 와일드카드 2순위 경쟁! 레이스, 막판 뒷심으로 대역전의 시나리오를 쓰나?>

그리고 희망이 결코 작다고만 볼 수는 없는 레이스이기에, 팬들도, 선수들도 그 마력에 홀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포스트시즌을 향한 티켓이 아른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Kill Suuuuuck!”

“Suck 잡고 스윕해버려!”

“애슬레틱스 X밥이네! 디비전까지 올라가면 무조건 이기겠구만!”

“이대로 챔피언십까지 가자!”

거기다 연달아 승리를 올려내며, 단순히 와일드카드만을 바랐던 욕심은 어느덧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넘보게 만들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레이스의 앞에 나타난 적은 그토록 열정적이고, 열광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1회 말.

그리고 이어진 이닝들 역시 그와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2회 말은 마찬가지로 삼진 두 개와 범타 하나로서 끝나버렸고.

“아웃!”

“아웃!”

3회 말에는 그나마 범타 두 개와 삼진 하나였으니까. 아니, 속도로 따진다면, 오히려 가장 빨랐지.

“아니, 저 새낀 작년만큼 던졌는데, 왜 아직도 저래?”

“저 새끼가 약쟁이가 아니라고? X발 구라치지 마!”

이제 237이닝.

압도적인 이닝 소화능력에 찬사를 이끌어냈던 작년보다도 2이닝을 더 던졌는데도, 별다른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는 Go를 보며 제법 많은 레이스 팬들이 위협감을 느꼈다.

“죄다 최고구속이야. X발 고작 89마일이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네.”

“5월에 만났을 때보다 오히려 더한데?”

“쟤 혹시 쌍둥이 아니야? 둘이서 번갈아 던져서 멀쩡한 거 아니냐고. 예전에 마라톤인가 뭐에서 그런 적 있지 않아?”

“그러면 오히려 더 최악이지. 저런 놈이 둘이라는 거 아니야.”

“X발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당연하게도 그걸 직접 상대해야 하는 레이스 타자들은 그보다 더한 충격을 느꼈고 말이다.

지난 5월 31일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도, 별달리 약하다는 느낌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괴악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직접 만나서 상대해보면, 듣던 것보다 더하다더니···.’

그리고 최정만 역시 그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으니까.

추민수 선배 역시 몇 차례나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직접 타석에 올라 상대하면, 풍문으로 듣던 것보다도 더하다고.

솔직히 조금은 과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첫 번째 타석에서 상대해본 Go, 고유석의 피칭은 그 말처럼 오히려 과소평가가 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Choi··· Choi!”

“아, 예 코치님. 뭐 지시하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타격 준비하라고. 공수교대야. 설마 교체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

“아뇨, 아니죠. 준비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상념에 잠겼을 때, 최정만은 그를 부르는 코치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지명타자이기에 홀로 덕아웃에 남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덧 수비로 나갔던 동료들이 돌아왔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저 녀석도 찌르면 피 나오는 인간이니까. 그리고 첫 타석에서처럼 너무 지켜보지 말고. 저 녀석은 70%는 스트라이크야. 잘 알지?”

“예, 분석 자료 봤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괜히 지켜본다는 생각 말고, 그냥 휘둘러. Choi 네 파워면, 혹시 모르지. 홈런을 칠 수도.”

황급히 배팅장갑을 착용하던 최정만은 가볍게 격려하는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과하게 긴장하는 것도 좋지 않을뿐더러, 첫 타석에서 확실하게 느꼈으니까.

‘눈싸움은 답 없어. 핀포인트로 넣는다. 그래, 최대한 하나만 노리고 휘두르는 게 정답이야.’

그야말로 압도적인 제구력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자신도 있고, 인정받기도 한 선구안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러니 코치의 말처럼 어차피 대부분은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투수이니, 하나만 노리는 것이 낫겠지. 훨씬 편하기도 할 테고.

“홈런 쳐, 홈런!”

“저 X같은 새끼 끌어내려!”

그렇게 굳건히 마음먹은 상황에서 4회 말이 이어졌고, 팬들은 여전히 기대를 품으며 소리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You Suck!”

이번에도 그 특유의 괴상한 구호가 울렸다. 1번타자 말렉스 스미스가 다시금 삼진으로 물러났으니까.

“좀 어때?”

“X같아. 1회보다 더해. 대체 어디서 저런 새끼가 나온- 아, Choi 너희 나라에서 나왔지. 혹시 Korea엔 저런 투수들이 많아? 그러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그쪽으론 얼씬도 안 하려고.”

“그럴 리가 있어? 쟤 하나지.”

결국 뚜껑이 열린 건지, 잔뜩 토로하는 말렉스 스미스의 말에 최정만은 적당히 답해주면서도 조금 더 집중력을 올렸다.

팀 내에서 최고의 타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괜한 말은 아닐 테니까.

“세이프!”

“와아아아아아아!”

그래도 아주 최악까지는 아니었던 건지, 앞선 타석에서도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를 날리며, 타격감이 좋아 보였던 맷 더피가 첫 안타를 기록했다.

퍼펙트를 깨트리는 동시에, 찬스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안타였기에, 팬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토해냈고.

“Choi! 이번엔 홈런 쳐라!”

“같은 Korean이라고 봐주지 말고, 10홈런 가자!”

한편으론 다시금 그에게 기대감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번 시즌 열 번째 홈런을 치라면서.

“가서 홈런 하나 날려. 그 묵직한 몸으로 KO펀치를 때리라고. 그래야 나도 편하고, 다른 놈들도 편할 테니까.”

“수고했어, 노력은 해볼 게.”

덕아웃 난간에 기대어 있던 말렉스 스미스마저 그렇게 속삭였고,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최정만은 홈 플레이트로 올라섰다.

‘후우, 그래, 한방 날리면 되는 거야. 그게 뭐 어렵다고.’

지난 타석의 여운이 아직 짙게 남아 있었기에, 미치도록 긴장됐지만, 한편으로는 계속된 응원에 욕심도 생겨났다.

Go 혹은 Suck.

그 이름은 작년부터 유명했다. 작년의 그처럼 AAAA급 선수들 사이에서 말이다.

걸어 다니는 황금티켓. 그런 별명을 가졌지.

혹시나 콜업해서, 그를 상대로 안타라도 하나 날린다면, 그대로 덕아웃의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다면서.

아예 헛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그에게 안타라도 하나 친 순간부터, 구단이 주목하고, 스카우트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홈런 하나 날리는 순간, 스타 확정이지.’

안타가 그 정도인데, 만약 홈런이라도 하나 친다면, 그날로 슈퍼스타 탄생이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대문에, 그리고 연고지역 신문 일면에 얼굴이 오르지.

최정만은 부디 올해 세 번째 주인공이 자신이길 깊이 바라며, 배터박스에 들어섰다.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타석.

스스로 마음속 깊이 소리치며 배트를 꽉 붙잡았지만, 초구가 날아드는 순간.

“스트라이크!”

왠지 모르게 용기가 한 꺼풀 벗겨졌다. 원래도 좌완 투수에게 약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아까 전, 결정구 중 하나였던 너클 커브는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었으니까.

좌타자로서 이걸 칠 수가 있는지가 의문스러웠고, 문득 우타자가 부러워지기도 했지만.

‘아니지, 우타자들은 서클 체인지업에 울겠지.’

한편으로는 우타자들은 그 괴물 같은 서클 체인지업을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만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답도 없어. 무조건 하나만 노리는 거야, 하나만.’

그래도 레이스의 팬들처럼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최정만은 딱 하나만을 노렸다.

포심 패스트볼. 기왕이면 몸쪽. 평소 즐겨 사용하는 코스이니, 아마 가능성은 있겠지.

오직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며, 그는 조심스럽게 배트를 장전했다.

“스트라이크!”

다시금 스트라이크.

몸쪽으로 날아든 공에 과감하게 휘둘러 봤지만, 떨어지는 종류의 서클 체인지업에 배트가 헛돌았다.

“볼.”

3구째, 바깥쪽으로 낮은 속구, 아마도 커터일 확률이 높은 공은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참아냈고.

그리고 마지막 4구.

쭉 뻗는 와인드업과 동시에 지저분한 디셉션을 보이며 손끝에서 빠져나간 공을 보며,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왔다!’

그토록 기다렸던 몸쪽 코스. 그리고 패스트볼이 날아들었으니까.

이번에도 2구처럼, 변화구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어차피 답도 없다. 그러니 밀고 나가는 수밖에.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배트를 당겼다. 최대한 높게, 외야뜬공이라도 만들 수 있도록.

묵직한 손맛이 배트를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을 때, 자신이 결국 정답을 맞혔다는 기쁨도 함께 차올랐지만.

‘이걸···’

그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게감과 저릿한 통증이 조금 더 빠르게 찾아왔다.

시각적으로도 봐도 괴물 같은 무브먼트를 자랑하며, 착시효과를 선사하는 포심 패스트볼이지만, 배트에 닿는 순간, 그마저도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힘이 느껴졌으니까.

‘X발 어떻게 날려!’

결국 공을 이겨내지 못한 채 밀려버린 배트.

중심을 잃은 순간 결과는 정해졌다.

“아웃!”

임팩트를 받지 못한 타구는 쭉 뻗는 것이 아니라, 둥실둥실 높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아아아아!”

“홈런 치라니까!”

가볍게 2루수의 글러브로 들어간 공. 허무한 내야플라이에 팬들은 좌절과 분노를 토해냈고, 그는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지만.

저릿저릿한 손을 매만지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을 때, 불현듯 뒷목이 서늘해졌다.

‘만약에 와일드카드 따내고, 와일드카드전에서 이기고 올라간다 쳐도··· 쟬 다시 상대해야 한다고?’

어쩌면 저 투수, 고유석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가정이 떠올랐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 경기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다른 타자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고 말이다.

마운드 위에 우뚝 선 그 압도적인 모습은, 그토록 유혹적인 가을야구의 매력조차 꺾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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