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92화 (291/316)

292화

양키스전이 끝난 뒤에 우리가 상대한 건 레인저스였다. 3연전으로, 시즌 마지막 맞승부였지.

우리는 이미 지구우승이 확정이고, 반대로 레인저스는 꼴찌가 확정돼서, 포스트시즌에서도 못 만나니까.

<애슬레틱스, 레인저스에게 위닝 시리즈! ‘매직넘버 Zero’ 106승 38패, 18경기를 남겨두고 지구우숭 확정!>

아쉽게도 스윕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승리했다. 그리고 지구우승도 확정됐지.

레인저스도 루징 시리즈를 당하며, 서부지구 꼴찌가 확정됐는데, 의외로 그쪽 반응은 좋더라.

[#Rangers]

[그나마 작년보다는 나아. 최소한 마지막까지 Suck 그 X같은 새끼 얼굴은 안 보잖아?]

└솔직히 400삼진 우리가 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진짜 다행이야.

└30승도 우리가 안 당했으니. 이 정도면 그럭저럭 만족스럽지.

마지막 시리즈에서 날 안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쁜 눈치였지.

작년처럼 최다 탈삼진을 본인들이 직접 만들어주거나, 30승 같은 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니까.

“레인저스도 점점 꿈을 소박하게 꾼단 말이야.”

시리즈 동안 레인저스 선수들도 덕아웃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면서 실실 쪼개기도 했는데.

심지어 추민수 선배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까지 내가 봤던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편안한 모습으로 경기를 치렀다.

타도 Suck, 타도 애슬레틱스을 외치더니, 이젠 그저 나한테 기록을 내주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군.

“왠지 좀 불쾌하네.”

“뭐가?”

“레인저스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불쾌해. 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같잖아.”

“···진짜 Suck 너도 정상은 아니야.”

매번 울상을 짓고 있던 레인저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사실 나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날 안 만났다는 것만으로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것이니, 큰 죄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냥 좀 그래.

레인저스는 울상이거나, 바짝 쫄아 있는 게 잘 어울리거든.

‘아쉽지만 행복의 대가는 내년에 톡톡히 받아내자고.’

그런 날 보며 어처구니가 없던 건지, 브루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그러려니 해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루징 시리즈를 당했으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레인저스를 뒤로한 채. 하루의 휴식일을 가진 뒤, 우린 다시 간만에 콜리시엄을 떠나, 원정길에 올랐다. 현재 볼티모어로 날아가는 중이지.

“이번에 30승 하겠네?”

“모르지, 또 너희 타자 놈들이 고작 한 점 밖에 못 내는 개짓거리를 해버리면, 답도 없으니까.”

“Suck 넌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적어도 이번 경기는 걱정하지 마, 설마 오리올스한테 지겠어?”

오리올스와 3연전을 가질 예정이고, 1차전에 등판하는데, 비록 400K는 결국 오리올스가 아닌, 양키스전에서 터졌지만. 그 대신 시즌 30승이자, 시즌 30연승이 오리올스전에 걸렸다.

‘우리 팀 최다승 타이기록도 걸려 있고. 지금 106승인데, 최고기록이 107승이니까.’

어쨌든 메인이벤트는 내 30승인데, 사실 400K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쪽도 엄청난 기록이다.

1968년의 데니 맥클레인 이후 무려 50년 만의 30승인 데다가, 달성한다면 역대 세 번째 기록이기도 하니까.

물론 지금도 다들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400K가 132년 만의 일이고, 현대야구에선 최초의 기록이기에 완전히 묻혀버렸지만.

‘퍼펙트게임도 그렇고, 30승도 그렇고. 그놈의 400탈삼진이 죄다 가리고 있네.’

참 서글픈 일이야.

둘 다 만인의 칭송을 받을 만한 위업인데, 더한 게 있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버리다니.

‘예상보다 반응이 덜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하기는 해야지.’

30승이라. 꿈같은 일이잖아?

아무리 승리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대단한 낭만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게 여기고.

‘오리올스는 좋겠네, 400K랑 30승, 둘 다 내줄 수도 있었는데, 하나만 내줘서.’

오리올스도 기쁠 거야.

자기들이 50년 만의 30승을 만들 수 있다면 말이야. 최소한 400K를 당한 양키스 보단 낫잖아?

그쪽 입장에선 똥이냐 오줌이냐의 문제지만, 그래도 똥보단 오줌이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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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원정 길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볼티모어는 사실 오클랜드와 더불어 치안이 대단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어쩐지 오클랜드랑 느낌이 좀 비슷하다?”

“비슷할 수밖에. 여기가 바로 살인의 수도잖아? 어마어마한 곳이지.”

“거참 살벌한 별명이네. 그걸 왜 어마어마하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반어법이지.

미국 살인의 수도라니, 들을 때마다 움찔거리게 되네.

치안이 안 좋기로 소문난 두 도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분위기는 서로 정반대였다.

나와 잘 나가는 애슬레틱스로 인해서 한창 축제가 이어지며, 오클랜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밝고 즐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오클랜드와 달리.

반대로 오리올스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향해 달려가면서, 완전히 처박은 탓에 분위기가 아주 험악하거든.

‘괜히 브루스나, 다른 선수들이 자신만만한 게 아니야.’

동료들은 비행기에서부터 나한테 무조건 30승을 만들어주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는데, 괜히 그러는 게 아니야.

우리가 대단한 성적을 이어가며, 지구우승을 조기에 확정 지었다면. 반대로 오리올스는 41승 102패로, 조금 다른 의미의 대단한 시즌을 보내며, 내년 드래프트 1픽을 거의 확정 지었으니까.

“X발 왜 양키스한테 400K를 해! 차라리 우리한테 해야지!”

“그래! 그랬으면 좋은 구경이라도 했을 거 아니야!”

“X신 같은 새끼들 X같이 털어버리고, 30승 꼭해라! 무조건 해버려!”

그래서 그런지, 오리올스의 홈구장,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에 도착하니, 아주 열렬한 환호(?)를 보내줬다.

400K를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여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쉬워하는 눈치네. 차라리 그거라도 보면서 좋은 구경하는 게 나았을 거라고 말이야. 30승 ‘꼭’ 하라면서 응원까지 해주는구만.

“여기 우리 홈 아니냐? 비행기 잘못 온 거 같은데?”

“저거 봐, 레이더스가 좀 당황한 거 같지 않아?”

“맨날 적지에서 소리치다가, 오늘은 갑자기 응원을 받고 있으니, 당혹스럽긴 하겠지.”

“오히려 이러니까 더 무섭지 않냐?”

“어, 죄다 단단히 돌아버린 것 같아서 더 무섭긴 해.”

언제나처럼 이 위험한 곳까지 따라온 레이더스조차 그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했고.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 같은 모습에 더욱더 공포심을 느끼는 동료들도 있었다.

나도 좀 당혹스러웠고 말이야.

‘원정지에서 이렇게 응원받은 적은 또 처음이네.’

보통은 뒤져라, 팔 부러져라, 교통사고 당해라, 총이나 맞아라, 등등. 저주가 가득하지. 쌍욕은 인사말 수준이고.

내가 워낙 잘 나가고, 또 엄청나게 잘하니까, 날 상대하는 홈팬들로선 위협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원정 때마다 그런 소리를 듣는데, 반대로 오리올스는 어차피 여기서 더 털려도 달라지는 게 없기에, 오히려 너그러워진 것 같았다.

어쩌면 잘 나가는 나보다, 개같이 멸망한 본인들의 응원팀과 자기네 선수들이 더 증오스러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이렇게 응원까지 해주시는데, 못하면 안 되지. 오늘도 힘 좀 내야겠어.”

“어차피 무조건 빡세게 던졌을 거면서, 핑계도 좋다.”

“그것도 맞고. 그래도 더 잘 하겠다는 뜻이지.”

그런 응원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좀 뭉클해졌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착한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 오리올스를 징벌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물론 브루스의 말처럼, 언제나 그렇듯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타자들을 죄다 조져버릴 생각이었지만 말이야.

‘힘이야 넘쳐나는 수준이고.’

양키스전 이후 휴식일이 있었고, 그다음 레인저스 전 직후에도 휴식일이 있었기에.

총 6일이나 푹 쉰 덕분에 직전 경기에서 퍼펙트게임, 완투를 했는데도 체력은 남아돌았다.

그에 반해 오리올스 타선은 성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처참하게 박살난 상황이고.

“브루스 너 오리올스에서 뛰었으면 클린업 했겠는데? 어떻게 라인업에 OPS가 8할이 넘는 놈이 하나도 없냐.”

경기장에 입성한 뒤, 워밍업에 들어가기 전, 간략하게 살펴본 상대팀 라인업과 분석 자료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브루스가 양반이라니까? 투수타석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무조건 9번타자가 고정인 녀석인데, 그러면 말 다한 거지.

그나마 매니 마차도가 홀로 소년가장 역할을 했었지만, 마차도는 이미 행복을 찾아서 다저스로 떠났다.

그 외에 덩그러니 남겨진 타선은 그야말로 전멸이지. OPS가 문제가 아니라, 장타율이 4할 5푼이 넘는 타자조차 없다.

캠든 야즈의 경우, 홈런에 있어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홈런 구장 중 하나인데, 20홈런 넘긴 타자가 트레이 만치니 한 명뿐이네.

최악의 먹튀이자, 오리올스 사상 최악의 타자로 남을 크리스 데이비스(Chris Davis)라는 똥은 홈런 빼면 시체인 놈이 홈런도 못 치고 있고.

“30승 미리 축하한다. 그러게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네가 막 실점해도 무조건 낙승이야.”

“몇 점이나 내줄까? 한 5점? 10점? 말만 해.”

그런 타선만큼이나 투수진도 빈약한 편이기에, 브루스나 다른 야수들은 아예 몸을 풀기도 전부터 내 30승을 축하해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막상 경기 들어가 보기 전에는 또 모르지. 오늘 갑자기 타격감이 좋을 수도 있고.”

너무 약하니까, 오히려 경계심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원래 이런 팀이 갑자기 터지면, 지금까지 못했던 걸 다 몰아서 하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워밍업을 마치고, 1회 초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뒤, 마운드에 오를 때까지도 긴장을 놓지 않았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1회 말, 리드오프이자, 올해 갓 데뷔한 세드릭 멀린스를 너무나도 손쉽게 삼구삼진 잡아낸 순간 나 역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이기겠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하게.’

무조건 이기기는 할 것 같다는 것을.

“스트라이크 아웃!”

무기력한 오리올스의 모습은 어째서 홈팬들이 원정팀 에이스인 날 응원하기까지 하는 지, 아주 절절하게 이해시켜 줬으니까.

“You Suck!”

“Hell Yeah!”

“저 X신들을 X같이 죽여버려!”

“X발 X나 잘한다! 개X신 같은 새끼들을 싹 쓸어버려!”

1번타자 세드릭 멀린스를 잡은 뒤, 2번타자 조나단 비야까지 삼진으로 잡아내자, 경기장 밖에서부터 날 응원하던 오리올스 팬들은 레이더스와 함께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선 더 과격하게 소리치기도 했지. 빌어먹을 오리올스를 죽여버리라면서.

‘이래도 되나? 괜히 좀 눈치가 보이네.’

뭔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왠지 상대팀 눈치가 보여서 홈팀 덕아웃을 살피니, 오히려 오리올스 선수들은 그런 볼티모어 홈팬들의 비난이 익숙한 건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기력하다고 해야겠지. 과도한 실망과 분노로,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린 팬들처럼.

‘선수들도 완전히 내려놨네, 내려놨어.’

지난 경기에서 양키스는 그래도 400K 이후에 정신줄을 놓고 허우적거렸는데, 여긴 경기 시작부터 이러네.

푹 쉰 덕분에 오늘도 힘이 넘치는 몸, 좋은 컨디션과 폼. 그리고 완전히 멸망한 상대타선까지. 이쯤 되면 못 이기는 게 이상하긴 하겠어.

“스트라이크 아웃!”

뒤이어 3번타자 트레이 만치니마저 삼진아웃. 그렇게 끝나버린 1회 말에,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Liv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0:0 볼티모어 오리올스(고유석 선발등판, 50년 만의 30승 도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경기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전 경기에서 워낙 엄청난 일이 일어나버렸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30승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그래도 다른 평범한 경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고. 팬들 역시 어느 정도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사정을 아는 이들 대부분은 애슬레틱스 선수들, 그리고 끝내 본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고유석과 마찬가지로 그의 낙승을 예언했다.

└솔직히 오리올스 못 이기면 그게 이상한 거임.

└106승vs41승ㅋㅋㅋ

└참고)애슬레틱스는 현재 106승 38패로, 승이랑 패를 거꾸로 해야 오리올스랑 성적이 비슷하다.

└41승 102패면 솔직히 트리플A로 강등시켜야 하는 거 아님? 축구처럼 승강제 도입하자.

승패를 거꾸로 해야, 엇비슷한 성적이 나올 지경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으니까.

또한 현재 리그에서 최악 중의 최악인 타선이 바로 직전 경기에서 400K를 달성하며, 퍼펙트를 해내는 등. 괴물 같은 기세를 뽐내고 있는 고유석을 뚫어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도 했고.

하물며 평범한 5인 로테이션처럼 4일 휴식 후 등판이었다면, 지난 경기의 완투로 인한 체력적인 부담이라도 있었겠지만. 절묘하게 걸린 6일이라는 휴식은 그런 어드밴티지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고유석! 세 타자 연속 삼진! 단 10구로 1회 말을 지워버렸습니다!

-오리올스의 타선이 상당히 취약한 만큼,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되었는데, 역시나네요.

상큼한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시작된 1회 말은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신에 차게 만들었고 말이다.

-2회 말, 4번타자 애덤 존스가 리드오프로서 타석에 입장합니다. 클린업 답게, 현재 오리올스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선수인데, 팬들로선 기대를 걸어봐야겠습니다.

그나마 현재 팀에서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 타자 중 한 명인 애덤 존스가 올라와, 미친 듯이 고유석을 응원(?)하던 오리올스 팬들이 미약하게나마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도 했지만.

-투 앤 원. 4구, 고유석 던집니다, 몸쪽! 헛스윙! 서클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기록하는 애덤 존스!

그 역시 삼진으로 물러나며, 팬들은 더욱더 실망이 깊어졌다. 그다음 타자에겐 그런 자그마한 기대조차 들지 않으며, 그저 분노를 토해냈지만 말이다.

-2회 말 원아웃에서 5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가 배터박스로 들어왔습니다. 올해 성적이··· 별로 좋지는 않죠?

-예, 장기계약 이후 쭉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올해는 아예 리그 최악의 타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크리스 데이비스.

그가 타석에 등장한 순간, 조금은 우습게도, 캠든 야즈에선 오히려 야유가 흘러나왔다. 스피커에 포착되어, 중계방송에서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짭데새끼 제발 은퇴해라]

-양심이란 게 있으면, 그만 처먹고 은퇴라도 해라.

└크데신이 왜 은퇴함? 올해도 낭낭하게 40홈런 쳤는데.

└└오클랜드 크데는 찐데고. 이젠 지금 타석에 있는 볼티모어 개먹튀 새끼가 짭데임.

└타율 1할 6푼 8리ㅋㅋㅋ 레전드네ㅋㅋㅋㅋㅋ

└OPS 0.557이 더 레전드지. 이게 1700만불 타자? 대체 메쟈는 돈이 얼마나 썩어나면···

└진짜 ㅈㄴ악질임. 양키스나 다저스 같은 팀에서 먹튀하는 것도 아니고. 오리올스에서 이러네.

중계방송의 채팅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조롱이 흘러나왔고 말이다.

한때는 최고의 거포로 이름을 높였지만, 현재는 연봉 대비, 아니, 굳이 연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인 타자였으니까.

└혹시 모름, 고유석이 방심하고 처맞을지도.

└혐유석 원래 먹튀한테 잘 대줌.

└푸졸스한테도 홈런 쳤으니, 크데신도 한방 날릴듯.

그래도 여전히 한 방이 있는, 아니, 한 방이라도 있어야만 하는 타자이기에, 방심한 고유석이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스트라이크 아웃! 3구째 하이 패스트볼으로 손쉽게 삼진을 유도하는 고유석입니다! 다섯 타자 연속 삼진!

1700만 달러의 스윙은 오늘도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높은 하이 패스트볼을 너무나도 크게 헛치며 삼구삼진으로 물러났을 뿐.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실망감은 직전 타자였던 애덤 존스보단 오히려 덜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몇몇 해탈한 듯 웃는 오리올스 팬들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여섯 타자 연속 삼진! 고유석! 지난 경기의 기세를 오늘까지 이어갑니다!

곧이어 조이 리카드마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2회 말 역시 순식간에 삭제됐고.

-쳤습니다!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에서~~ 세이프! 3회 초 선취득점을 올리는 애슬레틱스!

곧이어 3회 초의 공격에서 결국 애슬레틱스가 선취점을 가져가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오리올스의 멸망과 고유석의 30승이 차근차근 실현되어갔다.

####

“세이프!”

“와아아아아아!”

3회 초에도 실점이 올라갔다.

무려 3점이나 내줘버렸지.

4대0로 기울어버린 경기, 아직 3회에 불과하지만, 오리올스의 덕아웃에는 벌써부터 패배감이 감돌았다.

너무 이른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시즌 오리올스에게 패배란 너무나도 친숙한 친구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특히나 오늘은 더욱더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에휴···”

“수고했어, 너무 상심하지 마. 그래도 제법 가까웠으니까.”

“예, 다음 타석을 노려봐야죠.”

3회 말.

삼진을 당하고 돌아온 7번타자 헤나투 누네즈를 위로해준 스캇 쿨바는 침울한 타자의 모습에 새어나오려던 한숨을 애써 집어삼켰다.

비록 자신의 격려에 억지로 화답하긴 했지만, 덕아웃의 분위기처럼, 타자 한 명, 한 명의 얼굴에도 이미 지독한 패배감이 감돌았으니까.

‘일곱 타자 연속 삼진···’

이것으로 일곱 타자 째 삼진이 잡혔다. 일곱 명이 타석에 올랐는데 말이다.

팀의 타선을 책임지고 있는 타격코치로서 허탈함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은 우습게도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사상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나약해진 오리올스와 역사상 최고의 임팩트를 이어가고 있는 투수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스트라이크 아웃!”

“Hell Yeah!”

“Youuuuu Suck! You Suck!”

홈팬들이 괴상망측한 원정팬들과 어우러져, 홈팀이 아닌, 상대팀 투수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기도 하고, 타당하기도 했지만. 스캇 쿨바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그것에 익숙해져,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타성에 젖어버렸어. 선수들도, 팬들도, 구단 전체가.’

강력한 루징 멘털리티.

지금의 오리올스는 그 루징 멘털리티가 팀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더욱더 최악은 누구 하나 그걸 이겨내거나, 떨쳐내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팬들이 팀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것처럼, 선수단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패배라는 습관과 비난이라는 일상을 이겨낼 생각조차 안하는 것이지.

그런 상황에서 만난 투수, 너무나도 밝게 빛나기에, 더욱더 오리올스의 어둠이 부각되는 Go는 최악의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어느 팀보다도 위닝 멘털리티가 확실하게 잡힌 애슬레틱스 역시 마찬가지고.

그 극명한 대비가, 팬들에겐 박탈감을 선사했고, 선수들에겐 포기를 선택하게 만들었으니까.

“아웃!”

9번타자 케일럽 조셉이 내야플라이를 쳐내면서 연속 탈삼진 기록을 내주는 불상사를 막아냈음에도.

누구 하나 딱히 기뻐하거나, 혹은 안도하지 않는 분위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저번 경기에서 완투했으니, 오늘은 7이닝이나 8이닝 정도로 끊을 거야. 그러니 이번 이닝부터 급격하게 속도를 높일 수도 있으니, 다들 주의해.”

공허한 외침과 함께 이어진 4회 말.

“스트라이크 아웃!”

1번타자 세드릭 멀린스가 다시금 삼진으로 잡히며, 지난 이닝에서 채우지 못했던 아홉 번째 삼진을 내줬다.

“세이프!”

그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놀랍게도 2번타자 조나단 비야가 아슬아슬한, 거의 실책에 가까운 안타를 쳐내며 출루했고, 그것으로 퍼펙트게임이 깨트렸고.

“우우우우우!”

“그걸 왜 쳐 X새끼야!”

“X발 네가 역사를 망쳤어! 알아! 이 X같은 반달리스트 새끼!”

어쩌면 두 경기 연속 퍼펙트도 가능성이 있었던 경기이기에, 원정팬들의 욕설이 경기장을 가득 울렸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오리올스가 느낀 충격이 더 강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

시종일관 못 마땅한 표정으로 팀을 질책하던 홈팬들은 처음으로 살짝 미소 지었고.

덕아웃의 타자들은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1루에 안착한 조나단 비야를 바라봤다.

‘이거··· 찬스다! 분위기가 살아났어!’

운 좋게 얻어낸 럭키샷.

그 한 방에 죽음에 이르렀던 분위기가 살아났다.

“다들 한 점 따라붙자! 조나단이 장한 일 했는데, 도와줘야지, 안 그래?”

모든 걸 놓아버린 타자들 또한 자극을 받은 듯 한순간 기세가 올라온 모습에 스캇 쿨바 본능적으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깨달았다.

행운이 따랐다고는 하나, 어쨌든 얻어낸 안타 하나 덕분에 오리올스를 둘러쌌던 패배감에 균열이 생겼으니까.

‘조나단이 큰일을 했어. 점수까진 힘들겠지만, 안타라도 하나 더 치면, 패배감은 떨칠 수 있을 거야.’

대단히 유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련한 경험을 가진 스캇 쿨바였기에,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크리스, 저쪽 가짜한테 누가 진짜 크리스인지 제대로 알려 줘. 홈런 하나 날리라고.”

역적 중의 역적으로 꼽힌 크리스 데이비스조차 기대감을 품은 모습에 스캇 쿨바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래고래 소리치며, 타자들을 독려했고.

“한방 날리자!”

“400K 했다더니, 별거 없네!”

“가끔은 꼴찌가 1위를 잡는 날도 있어야지!”

그에 화답하듯 타자들 또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당당히 타석에 올랐지만···

“아웃!”

5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의 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살짝 놀랐다는 듯 눈썹을 씰룩거리던 투수는 간신히 되살아날 기미가 생긴 오리올스에게 손쉽게 헤드샷을 날렸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마치 죽음에서부터 되살아난 좀비에게 확인사살을 가하는 것처럼.

3번타자 트레이 만치니는 2구만에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고, 4번타자 애덤 존스는 이번에도 기대를 배신하며 이번 경기의 열 번째 삼진이 되었다.

그대로 4회 말 종료.

너무나도 손쉽게 바스러진 찬스에 되살아나는가 싶었던 분위기는 오히려 전보다 더욱더 악화됐다.

뜻하지 않은 천운에 조금이나마 품었던 한줄기 희망이 독으로 작용됐으니까.

“에이 X발, 그럼 그렇지. 기대한 내가 바보 X신이다.”

“야이 X같은 X신들아! 차라리 퍼펙트나 당해라!”

“퍼펙트라도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게 훨씬 낫겠네!”

어쩌면 전보다 더욱더 커진 욕설. 그리고 이젠 정말로 모든 기대나 희망을 포기한 채, 다시 그런 욕설을 피해 귀를 닫아버린 타자들.

패배감에 찌든 캠든 야즈를 지켜보며, 스캇 쿨바는 생각했다.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오리올스는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어갔으니까.

‘지독한 새끼··· 그렇게 처먹고도 아직 모자라다고?’

수없이 많은 영광과 명예를 이룩한 주제에, 아직도 끝없는 탐욕을 채우지 못한 건지.

기어코 오리올스의 목마저 비틀어버린 뒤, 그 시체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하이에나의 모습은 증오스럽게 여겨졌고 말이다.

한편으론 그 탐욕으로 가득 찬 배가 뻥 터져버리길 바라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하루에 두 번씩이나 천운이 겹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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