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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88화 (288/316)

288화

<시애틀 매리너스 1: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승리투수 : Go You-Suck(7이닝 무실점 11K 3피안타 무사사구)>

<억지로 기록 도전을 방해한 매리너스? 매리너스 감독 ‘우린 그런 팀이 아니다!’>

<기록의 폐해, Go, 7이닝 동안 106구를 던졌다! 삼진에 대한 과도한 집착?>

경기는 막을 내렸다. 당연히 애슬레틱스의 승리로서. 마찬가지로 당연히 고유석이 승리 투수였고.

이번 시즌,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리했던 팀이고, 승수를 올렸던 투수이기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든 삼진을 막으려는 듯, 격렬하게 저항한 매리너스와 그 저항을 평소보다 조금 더 무리함으로써 뚫어낸 고유석의 행동에 비판과 걱정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시금 놀란 라이언을 넘어선 고유석, 이제 남은 건 본인(393K)와 19세기!>

사실 그 모든 것들은 이번 경기를 통해서 해소되기는커녕, 더욱더 짙어진 기대감으로 인해 가려졌다.

코앞으로 다가온 19세기의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천정부지로 상승한 티켓 값! 메이저리그는 현재 ‘고유석 직관’ 열풍!>

경기가 종료되는 그 즉시. 아니, 어쩌면 진행되는 동안, 골드러시라고 지칭됐던 직관 열풍은 더욱더 거센 풍랑을 보이며, 메이저리그를 휩쓸었다.

이젠 정말로 그 가능성이 생겨났고, 그 확률이 결코 적다고 볼 수도 없으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직 매리너스와의 시리즈조차 끝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성지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처럼 오클랜드와 그 주변 도시로 몰려들었다.

물론 기존의 원주민들 역시 만발의 준비를 갖추거나, 티켓을 찾아 방랑했고 말이다.

어쩌면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메시아라는 표현마저 생겨날 정도의 선수이니, 그가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적금을 깨고 휴가를 내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을 털어 미국으로 향하고자 하는 이들 도한 적지 않았다.

<시애틀 매리너스 4: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애슬레틱스, 2차전 승리로, 8월 만에 100승 달성, 사실상 지구우승 및 디비전 시리즈 진출 확정!>

<8월 종료, 이번 달 이달의 투수, 역시나 Go가 확정.>

<각 구단 확장 로스터 동향······>

그렇게 수많은 기대감 속에서 애슬레틱스의 100승 달성으로 8월이 막을 내렸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뉴페이스의 콜업과 함께, 정규시즌의 마지막 달이자, 어쩌면 앞으로 2세기 동안 기억될 경기가 예정된 9월이 시작됐다.

####

경기 이후로는 최대한 컨디션 관리에만 집중했다. 워낙 중요한 것들이 다음 등판에 걸려 있으니까.

구단에서는 굳이 덕아웃이나, 클럽하우스에 올 필요도 없이, 그저 편하게 몸을 추슬러도 괜찮다는 말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난 언제나 그렇듯 대니얼과 함께 콜리시엄으로 향했다.

쉰다고 해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오히려 골병나. 덕아웃에서라도 적당히 야구를 지켜봐야, 오히려 폼이 더 올라오지.

“최대한 좌석을 늘린다고 하던데, 프런트도 고생이네요.”

“Go가 올해 워낙 많은 일을 벌였으니, 이젠 노하우가 생겼겠죠.”

“그렇게 말하면 제가 너무 트러블 메이커 같잖아요.”

“오, 아니었던가요?”

그렇게 내가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콜리시엄과 구단은 굉장히 바빠졌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있는 만큼, 원래는 방수포를 설치한 최상층 관중석의 방수포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최대한 좌석을 확장하는 중이지.

양키스전까지 확장을 마칠 예정이며, 최대 5만 6천 명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만약 정말로 만석이 된다면, 콜리시엄 개장 이후 최다관중이라 하지만.

‘엄청나긴 하네.’

“그마저도 부족한 것 같지만.”

“그렇겠죠, 상상이상의 인파가 몰리고 있으니까요. 모두 다 Go 덕분이죠.”

문제는 그마저도 부족하다는 거다. 실제로 점점 더 오클랜드에 사람이 불어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거든.

집을 나서기 전에 봤던 티비 프로그램에선 최대 수용인원까지 확장하더라도, 치열한 티켓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펼쳤지.

내가 관중을, 팬을 몰고 다니는 거야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 하나로 인해서 이 정도의 파급력이 생기는 건 여전히 조금 신기하면서도, 왠지 조금 부끄러웠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좀 부담스럽기도 하네.’

꽤나 압박감도 받았고.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내 왼쪽 어깨에 모여들었다는 뜻이니까.

400K 못하면, 진짜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어. 시답지 않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분위기로 봐선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평소처럼 하시면 되니까요.”

“그래야죠, 그냥 평소처럼.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딱히 도움은 안 되니까.”

허나 그 압박감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그게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배웠으니까.

그보단 그냥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평소처럼 준비하고 폼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그나저나, 오늘은 클럽하우스와 라커룸이 북적이겠군요. 평소의 1.5배는 되는 사람들이 있겠어요.”

괜히 기록이나, 분위기에 사로잡히면, 그런 준비를 그르칠 수도 있기에, 대니얼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1.5배? 북적여?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하우스? 왜요? 무슨 행사라도 있나? 팬들한테 개방했대요?”

“9월이잖습니까. Go가 순수하게 야구와 훈련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아, 확장 로스터.”

그러고 보니, 이제 9월이지.

확장 로스터가 시행되어, 새로운 선수들이 유입되는 시간 말이야.

확실히 평소보단 좀 바글바글거리겠지만, 사실 그것도 나랑은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난 혼자서 라커룸 두 개를 쓰고, 클럽하우스에도 내 자리는 무조건 고정이거든.

가장 구석자리에, 가장 큰 범위를 점유하고 있지. 이게 바로 슈퍼 에이스의 권력의 참맛이다.

놀랍게도 콘센트도 네 개나 있는데. 이건 엄청난 특권이다.

다른 선수들이 콘센트 하나에 멀티탭을 덕지덕지 달아서 문어발처럼 쓰니까.

‘그래도 좀 비좁기는 하겠네, 이전보다는.’

그래도 사람이 확 늘어나는 만큼, 이전보단 확실히 더 북적거릴 것이기에, 조금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사내놈들이 부대껴서 땀내 풀풀 풍길 생각하니, 벌써부터 코가 비틀어지는 느낌이야.

그렇게 조금은 설렘 그리고 걱정과 함께 클럽하우스에 도달했을 때, 조금은 예상치 못했던 인연과 마주했다.

“어? 너 보 아니야?”

굉장히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거든. 갓 콜업된 신인의 특성상 조금 쭈뼛거리면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녀석은 분명히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 Suc- 아니, Go. 하하, 간만에 보네.”

보 테일러.

꽤나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네. 더블A 시절 주전 포수이자, 꽤나 친밀하게 지냈던 녀석이지.

다른 포수인 앤디 파즈, 그리고 올해도 시즌 초반까지 같이 지내다, 결국 강등된 다니엘 고셋과 더불어서.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니, 왠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불러, 어차피 죄다 썩썩 거리니까.”

“그래? 하긴, 그쪽이 입에 더 감기기는 하지.”

녀석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약간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네.

그런 보 테일러를 보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분명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지냈던 녀석인데, 날 어려워하고 있었으니까.

Suck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조금은 조심스럽게 굴 정도로.

‘고작 2년인데, 많이 변하기는 했네.’

새삼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껏 마이너에서 기어 올라온 녀석에게 그런 감정을 보일 수는 없기에.

그저 환영의 의미를 담아 옅게 웃으면서, 어깨나 두들겨 줬다.

“잘해봐. 아예 눌러앉을 생각으로. 너한테만 살짝 말하는 건데, 브루스도 그렇게까지 좋은 포수는 아니거든. 너도 락하운즈 때보다 훨씬 잘하니까, 여기 온 거 아니야?”

“그렇지, 그때보다 훨씬 잘하지. 격려해줘서 고맙다, Suck.”

브루스가 들었다면 째려봤겠지만, 원래 없는 자리에선 무슨 말이든지 하는 거지. 나랏님도 욕한다잖아?

그 격려가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준 건지, 보 테일러는 마찬가지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네.’

과거의 인연과 잊고 지냈던 추억과 오래간만에 다시금 마주해서 그런지, 조금 반갑기도 했고, 마음 한쪽이 따뜻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금방 털어냈다.

사람들의 기대가 만들어낸 압박감이든, 과거의 인연으로 되살아난 기분 좋은 추억이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결국에는 떨쳐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괜히 좀 몸이 더 가볍기는 하네.’

왠지 조금 더 준비가 잘 될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야.

####

“Suck 너 좀 서운해? 다른 것도 아니고, 내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을 격려해줬다며? 혹시 바람피우는 거야?”

“니가 내 와이프냐? 바람은 무슨, 웃기고 자빠졌네.”

오랜만에 만난 락하운즈 시절 동료에게 신경이 팔려서, 주위는 신경쓰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날 보는 눈빛이 많았던 건지, 가볍게 보 테일러를 격려해줬던 것이 금방 퍼져나간 것 같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브루스가 징징거리는 걸 보면. 얘가 무슨 천리안이 있을 리는 없으니, 다른 사람한테 들었겠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입술을 댓발 내밀었는데, 사내새끼가 저러니까 진짜 꼴 보기 싫네.

“걘 실력 좀 좋아? 옛날에 동료였다며.”

약간 경계도 하는 것 같고.

백업 포시은 조시 페글리야, 브루스 본인보다 연상이니 그렇다 쳐도.

보 테일러는 나이가 비슷하니, 혹시나 자기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글쎄, 모르지. 2년 전이 마지막이니까. 그 사이 얼마나 발전했을지 누가 알아? 당장 나도 2년 전이랑 완전히 다른데.”

진심을 담아 답변해줬지만,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 건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구만.

아마 자기가 훨씬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난 포수를 사랑이나, 박애로 보듬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채찍질을 가하며 혹독하게 다스리는 쪽이지. 당근 같은 건 없으니, 알아서 하도록.

“폼은 좀 어때? 코치 말로는 금방 올라온다고 하던데.”

브루스도 어느 정도는 장난이었던 건지, 툴툴거리던 것을 집어치우고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폼을 물었다.

약간의 걱정도 느껴지고, 부담감도 보이고, 기대감도 보이는군.

“좋아, 생각보다 조금 더. 아마 등판일쯤 되면 완벽해지겠지. 그날 몸 상태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폼은 좋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빨리 올라오고 있지. 그만큼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집중도에 따라서 폼이 올라오는 속도가 다른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난 지금 겉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 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지.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르게 폼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코치나 대니얼이 조금 걱정할 정도로.

‘적절하게 제어해야지. 본게임 시작하기도 전에 다 타버리면 안 되니까’

너무 과하게 힘이 샘솟는 것 역시 별로 좋은 일은 아니기에, 적당히 억누르고 다스려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최소한 힘이 부족해서 주저앉을 일은 없겠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미련 없이 던질 수는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 최대한 차분하게, 그 힘을 적절하게 이끌고서 마운드 위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겠지.

“Suck 너, 너무 무덤덤한 거 아니야? 난 떨려 죽겠는데. 관중도 평소보다 더 올 거라는데, 어우···”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한 듯 브루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이내 내가 던진 말에 긴장이 빡 들어갔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넌 공만 잘 받아. 실수하는 순간 400K랑 같이 영원히 박제되는 거니까.”

“···상상만으로 끔찍하네.”

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아마 넉넉잡아 100년 정도는 조롱당하겠지. 욕도 먹을 거고.

상상만으로 끔찍한 듯, 브루스도 새로운 경쟁자에 대한 경계심이나, 부담감을 떨쳐냈다. 보기 좋군.

“아웃!”

이후 이어진 9월 첫 경기, 매리너스와의 3차전은 패배로 끝났다. 중간에 보 테일러가 교체로 들어가기도 했지. 다만 타석에는 오르지 못했고.

이후 이어진 4차전은 다시금 우리가 승리를 챙겼고. 그렇게 3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매리너스와의 4연전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매리너스가 떠나간 자리에, 뉴욕 양키스가 도착했다. 400K의 희생양인 동시에 최후의 관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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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오랜만에 보네요?”

“이런 중요한 날인데, 빠질 수야 없죠. 폼은 괜찮으십니까?”

“좋아요, 꽤나. 대니얼과 같이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양키스와의 1차전을 앞뒀을 때, 브라이언도 오클랜드로 도착했다. 간만에 보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흥분한 표정이었다. 내가 괜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억누르기는 했지만, 은근히 드러났지.

냉철한 에이전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뭐, 워낙 엄청난 일이니까.

심지어 밥 멜빈 감독님이나, 스콧 에머슨 투수코치마저도 긴장한 눈치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도시 전체가 그런 분위기이기도 하고.

<9월 4일 ‘It’s Suck Time!‘ Go, 400K 달성 조준!>

<400K 특별 이벤트! 당일 선착순 400명 무료 관람!>

콜리시엄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내 얼굴이 쫙 깔렸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내 유니폼이었고.

-내일 밤, Go가 현대야구 역사상 최초로 400K를···

-단 16개 만을 남겨둔 가운데, 양키스를 맞아들이며···

-모든 야구계, 그리고 전국의 관심이 그에게로 집중되어···

자동차 라디오는, 채널을 어느 쪽으로 돌리든지, 죄다 내 이야기뿐이었다.

이건 뭐, 무슨 북쪽동네 돼지수령님도 아니고···. 이쯤 되면 집집마다 내 초상화가 걸려 있을 것 같아서 좀 무섭네.

“Suuuuuuuck!”

“내일 티켓 어떻게든 구했어! 내일 하는 거 맞지?”

“Suck이 날 봤어! 날 봤다고! 우릴 400K의 발할라로 데려가 줄 거야!”

그마저도 콜리시엄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지만.

낮 경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나 때문인지, 전날부터 콜리시엄은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최소한 10만 명은 될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내일 몰려들 인파와 비교하면 적은 수준이겠지.

그토록 심한 광기가 뒤덮인 오클랜드와 콜리시엄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집단은 어쩌면 양키스뿐이었다.

“오만한 양키 놈들이, 저렇게 표정이 썩을 때가 다 있네. 하긴, 창단하기도 전에나 있었던 일을 당하게 생겼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홀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 초대받고 싶지 않았던 파티장에 끌려온 손님처럼.

어쩌면 오클랜드에 진입한 순간부터, 아니, 오클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부터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볍게 몸을 푸는 나를 조금은 비장한 눈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매리너스는 쨉도 안 되겠네.’

거쳐 가는 통로였던 매리너스 역시 제법 결연한 얼굴로, 어떻게든 나한테 똥물을 끼얹으려고 들었지만. 그마저도 양키스와 비교한다면 애교 수준이구만.

현재 와일드카드 경쟁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순간인데도, 이번 시리즈에서 양키스의 목표는 승패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든 400K를 당하지 않는 것. 그 굴욕을 다른 팀에게 떠넘기는 것. 오직 그거 하나만 보고 있었지.

‘어차피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쉽지는 않겠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키스 타선의 핵심 중의 핵심인 애런 저지가, 지지난 달, 손목 부상으로 이탈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나머지 타자들은 어떻게든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Suuuuuuck!”

“내일 꼭 잘해줘!”

“You Suck!”

그렇게 흥분과 기대, 양키스의 흉흉한 눈빛이 이어지면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1차전이 시작됐다.

경기가 이어지는 동안 관중들은 내가 출전하지도 않는데도, 바깥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종 우렁차게 내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출전한 다른 선수들은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한계치까지 흥분이 올라왔다는 거겠지.

철철 넘치는 냄비의 물처럼, 바로 내일,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질 경기를 벌써부터 기대감에 잠겨, 벌써부터 크게 외칠 정도로.

어쩌면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에 하루 먼저 열광하는 걸 수도 있고.

‘엄청나네, 팬들도, 양키스도.’

그런 조금은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1차전은 우리의 가뿐한 승리로 끝났다.

“Yeeeeeah!”

“내일도 이렇게 이기는 거야!”

“16K까지 곁들여서!”

기분 좋은 승리이고, 관중석에선 더욱더 열광이 흐르기도 했지만, 사실 1차전의 결과를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진짜는 내일이었으니까.

나에게도, 우리 팀에게도, 팬들에게도, 그리고 심지어는 패배한 양키스에게 마저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이젠 완전히 절정에 다다른 분위기 속에서, 9월 4일이 막을 내렸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평소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수면을 취한 뒤. 9월 5일이 밝았을 때.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터졌다, 잭팟.’

지난 경기의 마지막 순간,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했던 잭팟이 터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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