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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86화 (286/316)

286화

트윈스전은 3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막을 내렸고, 그 직후 휴스턴 원정에서 애스트로스에게 1승 2패의 루징 시리즈를 당했다.

8월 들어서 처음으로 당한 루징 시리즈였지만, 팬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더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벤트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으니, 루징 시리즈 정도야 별로 상관없다는 거겠지.

이미 포스트시즌이 확정이기에,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팀최다승을 깨려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딱히 성적이 중요치 않은 시기이기도 하고.

“이제 8월도 끝이네. 아직도 8월이라니, 이상하게 시간이 느린 것 같단 말이야.”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잖아? 더디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는 하지.”

그렇게 간만의 원정 일정을 마친 뒤, 우린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8월의 마지막과 9월의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서.

매리너스와 4연전을 가지는데, 난 1차전에 바로 등판이지.

하지만 오클랜드는 9월을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분위기보단, 19세기로 돌아가는 복고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분명 아주 잠깐 바깥나들이 좀 하고 돌아온 건데,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오클랜드는 떠나기 전과 달랐지. 사실 떠날 때도 충분히 기대감에 휩싸여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이젠 정말로 오클랜드에서, 오클랜드라는 도시가 처음으로 태동했던 시절인 19세기의 기록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도시 전체가 묘한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다. 보통은 매일 같이 나오는 강도 등 범죄마저 조금은 줄어들 정도로.

오클랜드인 걸 감안하면, 이건 정말 엄청난 업적이다. 내가 이런 짓을 했다니, 신기하구만.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를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골드러시와 비교하는 기사가 종종 나오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이 발견된 순간, 모두가 광분에 휩싸여 몰려들기 시작한 것처럼. 내 400K가 그런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는 거지.

실제로 골드러시 당시에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개척민들, 포티나이너스(49th)처럼, 전국 각지에서 오클랜드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Suck,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너 귀화해라.”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경기에 앞서 클럽하우스에서 모였을 때, 브루스는 꽤나 진지한 얼굴로 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을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 그래서 더 어이가 없네. 귀화는 뭔 놈의 귀화야?

이 새끼 술 먹은 거 아니야? 신성한 클럽하우스에 취해서 오다니. 워크에씩이 개판이구만.

“뭔 개소리야. 왜 남의 국적을 바꾸라 마라야?”

“아니, 지금 분위기로 봐선, 너 시장선거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일 텐데. 끌리지 않아? 만장일치일 것 같은데.”

개소리에 코웃음 치니, 브루스는 오히려 나를 설득시키려는 듯 더욱더 확신을 가지며 말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선수들은 아예 한술 더 뜨기도 했다.

“고작 시장? 진지하게 말하는데, 잘하면 주지사도 가능해, 북부 캘리포니아 전체가 단합해서, Suck 얘를 주지사로 만들어줄 걸? 다들 네 이름을 외친다니까?”

“오스트리아 출신 영화배우도 주지사를 하는데, 메이저리거 출신도 한 명쯤 나와야지!”

“다음에 당선되면 난 대변인 시켜주라. Suck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아예 주자사까지 하라고 했지. 브루스가 멀쩡하게 보이다니, 신기한 일이야.

제드 라우리, 우리 SNS 중독자는 본인을 대변인을 시켜달라면서 부탁하기도 했는데, 진짜 대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무래도 오클랜드의 광기가 선수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죄다 미쳐 돌아가고 있어.

마치 열성당원처럼 나를 향한 지지의사를 밝히는 동료들로 인해, 클럽하우스가 선거캠프처럼 변해버렸다.

계속 듣다 보니, 왠지 조금 혹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난장판은 코칭스태프들이 들어오면서 막을 내렸다.

“다들 준비 안 하고 뭣들 하는 거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는 밥 멜빈 감독님과 이하 코치들의 시선에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건지, 다들 쪽팔리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이래서 감독관이 필요해.

혈기왕성한 놈들만 모아놓으니까, 다 같이 미치기 시작하잖아.

감사의 의미를 담아, 감독님에게 따봉을 날려드리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Go, 난 큰 걸 바라진 않아. 거창한 자리는 필요 없고, 보좌관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렇게 알아둬.”

“···예?”

왜 감독님도 잿밥에 관심을 가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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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어어어어어억!”

“오늘 삼진 한 20개쯤 잡아!”

“아니, 27개 잡아버려! 그냥 아예 오늘 해버리자고!”

광기에 찼던 클럽하우스를 떠나, 콜리시엄에 입성하니, 내가 등판하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팬들이 바글거렸다. 아마 오늘도 만원 관중이거나, 그에 가까운 수준이겠지.

내가 등판하는 날의 콜리시엄 관중석이 가득 차는 것이야, 이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다만 약간은 걱정스럽네.

‘이미 확신에 차셨구만. 수만 명 전부 다.’

오클랜드에 입성한 순간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팬들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기들의 바램일 이뤄줬던 나, Suck이니, 분명히 홈에서 400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는 영광을 이륙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그렇기에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이러다가 홈에서 못하면 어떡해. 실망 수준을 넘어서, 도시 전체가 우울증 걸릴 것 같은데?

“홈에서 달성 못하면 큰일 나겠네.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구만.”

“그걸 이제 알았어? 주지사쯤 되면 민심 파악은 바로바로 해야지!”

“누가 주지사야. 멀쩡한 야구선수, 정치판에 밀어 넣지 마라.”

아무튼 이런 분위기만 보면, 이미 다 달성된 것 같지만, 당연히 아니다.

아니, 아직 27개나 남았다니까? 트윈스전에서 미친 듯이 삼진을 잡은 덕분에 가능성이 더 올라가기는 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라고.

물론 400K 자체야 내가 갑자기 드러눕지 않는 이상에는 이미 확정이지만, 정말로 홈에서 달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지.

“오늘 완봉하고, 양키스전도 완봉하면 무조건 가능하기는 할 텐데···”

만약 이번 경기와 다음 등판에서 연달아 완투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많은 삼진을 잡아낼 것이기에, 가능성은 훨씬 더 올라가겠지만.

“누구 마음대로.”

모두가 광분에 빠진 상황에서도 홀로 침착함을 유지한 스콧 에머슨은 당연히 그 꼴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절대로 완투하지 말라고 하면 듣지도 않을 테니까, 특별히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어. 이번 경기와 다음 경기. 언제 완투할 거야?”

“이야, 참 고맙기도 하네요. 무려 선택권까지 주시고. 조금 더 나아가서, 시원~하게 자유를 주셨으면 더 멋졌을 텐데.”

다만 예전보단 조금 더 자유를 주셨지, 이참에 아예 해방시켜준다면 정말로 감사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택권은 주시는군.

오늘 매리너스를 상대로 완투할 것이냐, 아니면 다음번 양키스전에서 할 것이냐를 놓고 말이야.

꽤나 고민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양키스전이죠.”

당연히 양키스지.

400K를 달성한다는 가정 하에, 그것만 찍 싸고 중간에 내려가면 너무 볼품없잖아. 최소한 완봉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재빠르게 답변했지만, 이내 묘수가 떠올랐다.

‘아니지, 오늘 먼저 완투하고, 양키스전에선 어떻게든 떼를 쓰면 가능하지 않을까?’

주목도가 남다른 경기이고, 특별한 일도 있으니, 평소보단 더욱더 손쉽게 완투를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다시금 말을 바꾸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스콧 에머슨은 낙장불입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잘못 말했어요, 오늘 완봉을-”

“늦었어. Go 네 생각이야 뻔하지, 한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으니, 네 스스로의 선택을 받아들여.”

제기랄, 사람들 앞에서 뽐내고 싶어 하는 내 성향을 파악하고, 함정을 던진 거였어.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기에, 분하지만 그의 말처럼 내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의 계략(?)에 놀아난 것은 아쉽지만, 이미 결정됐으니, 경기에나 집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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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대니얼과 함께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불펜을 나와, 마운드에 오르자, 평소처럼 브루스가 반겨줬다.

꽉 채워진 콜리시엄과 팬들이 내뿜는 기대감에 녀석도 조금은 부담스러워 보였지.

클럽하우스에서 시장이니, 주지사니 하면서 농담할 때야 즐거웠겠지만, 포수의 입장에선 조금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 차려. 쫄지 말고. 왜 벌써부터 쫄고 그래? 본게임은 다음인데. 오늘은 그냥 거쳐가는 과정이야.”

경기를 앞두고 포수가 쫄아있는 꼴이 꼴보기 싫어서, 등짝을 때려주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신차려야지. 벌써부터 이러면 쓰나. 근데, 오늘 못해도 열 개는 잡아야겠지?”

“그래야지, 아니면 좀 까다로울 테니까.”

오늘 목표는 10탈삼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표라기 보단 최소 조건에 가깝지.

‘자존심이 엄청난 양키스인데, 2세기 만의 400K의 제물이 되고 싶지는 않겠지.’

프라이드가 엄청난 것으로 유명한 양키스이니, 어떻게든 폭탄을 돌리려고 들 테니까.

아마 기를 쓰고 삼진을 안 잡히려고 할 것 같은데, 오늘 매리너스를 상대로 못해도 열 개 정도는 줄여둬야, 그나마 좀 가능성이 생기겠지.

만약에 지난 트윈스전처럼 엄청나게 쓸어 담을 수만 있다면야, 상당히 편해지겠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고.

“오늘은 어떻게 갈 거야? 저번 경기처럼 포심 위주로? 그거 잘통하던데.”

“글쎄, 매리너스한테는 안 먹힐 걸?”

“매리너스 타선이랑 트윈스 타선이랑 엇비슷하지 않나?”

“엄밀히 따지면, 매리너스가 조금 더 낫지. 그리고 나한테 더 적응하기도 했고. 당장 15일 전에 만났으니, 어느 정도 익숙할 거야, 나한테.”

이번에도 파이어볼러 흉내 내기엔, 매리너스는 조금 무리가 많으니까.

엇비슷해 보이더라도, 매리너스 타선이 더 준수하고, 파워도 더 괜찮은데다, 이제 겨우 두 번 만난 트윈스와 달리, 나한테 익숙하기도 하니, 괜히 삼진 잡으려고 포심만 냅다 던지다간, 오히려 두들겨 맞을 가능성이 높지.

“욕심부리지 말고, 평소처럼 가자. 그냥 열두 개 정도만 잡는다고 생각으로.”

“사실 7이닝 던지면서 삼진 열두 개 잡으려는 것도 충분히 욕심인데, Suck 너라서 그럴듯하게 들리네.”

그러니 그냥 평소처럼 던지면서, 적당히 잡는 것이 더 안전했다.

그런 내 말에 브루스는 조금 황당한 건지 피식 웃으면서도, 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브루스를 내려 보낸 뒤, 마지막으로 마운드의 감각마저 끌어올린 뒤,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됐을 때. 그제야 상대팀 매리너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쪽도 필사적이네.’

와일드카드 순위 경쟁이 한창인데다, 나한테 감정이 별로 좋지도 않다 보니, 아주 결의에 찬 모습이었지.

본인들이 400K의 제물이 될 일은 절대로 없는데도, 어떻게든 똥물을 끼얹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군.

‘너무 잘 나가서 그런지, 주위에 죄다 적 밖에 없네.’

특히나 서부지구에선 악마처럼 군림했으니, 날 미워하고, 어떻게든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그것이 조금은 애석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꽃길만 걸으면서 여기까지 오른 것은 아니기에.

“스트라이크!”

그저 우렁차게 공을 던졌다.

1번타자 미치 해니거.

그는 제법 파워가 준수한 타자인데도 그는 조금 배트를 짧게 잡고서 타석에 입장했다. 어떻게든 삼진만큼은 내주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의도가 훤히 보였지.

“볼.”

지난 트윈스전을 반면교사 삼아서, 손쉽게 배트를 내면서, 괜히 스트라이크를 늘리지 않겠다는 생각도 보였고. 초구와 2구 모두 다 제법 깊게 들어왔는데도 가만히 지켜봤으니까.

“스트라이크!”

“파울!”

“볼!”

아주 격렬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조금은 까다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 매리너스 타자들 전부 다 저럴 것이라는 게 훤히 보였기에 더욱더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있고.

아무래도 지난 경기처럼 손쉽게 삼진을 잡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였지만, 뭐. 어차피 내가 지금까지 잡은 373개의 탈삼진 전부 다···

‘그런 타자들한테 잡은 거거든.’

절대로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타자들에게서 잡아낸 것이니까. 사실 별다를 것도 없지.

몸쪽으로 낮게 깔아서 던진 체인지업 이후, 바깥쪽 코스로 조금 안쪽을 향해 공이 날아들자, 미치 해니거는 커트하려던 건지, 배트를 쭉 내밀며 휘둘렀지만.

투심 패스트볼은 강하게 역회전하며, 아슬아슬하게 배트를 피해낸 뒤, 목적지인 포수글러브 안으로 도착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Youuuu Suck!”

“Hell Yeeeeeeeah!”

“Twenty Six! Twenty Six!”

공은 무사히 글러브로 들어갔고, 배트가 엄청나게 돌았으니, 당연하게도 삼진아웃.

그렇게 오늘 경기의 첫 번째 삼진이 올라가자,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조금 이르게 샴페인을 터트리듯 평소보다 더 큼직하게 환호성을 뱉었다. 아직 400개까진 26개나 남았는데, 벌써 카운트다운 하네.

“아웃!”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야이 쓰레기야! 삼진이나 처먹어!”

마찬가지로 배트를 조금 짧게 잡고 입장한 2번타자 데나드 스판이 2구째 내야플라이로 물러나자, 당연히 아낌없는 욕설을 퍼부었고.

타자가 섣부른 타격으로 아까운 삼진 하나를 날려먹었으니,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스트라이크 아웃!”

말 그대로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계신데, 그런 관중들을 달래주기 위해, 3번타자 약쟁이 카노를 제물로 바쳤다. 4구째 몸쪽 서클 체인지업에 헛스윙하며 삼진아웃.

“유우우우 써어어억!”

“그렇지! 이래야지!”

“이 X발 약쟁이 새끼, 이번엔 잘했다! 계속 그렇게 삼진 처먹어!”

삼진 두 개를 추가하며, 행복한 미소 속에서 1회 초가 막을 내렸다. 다들 엄청 좋아하네.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저렇게들 좋아하는데, 어쩔 수야 있나. 최대한 노력해봐야지.’

비록 여전히 갈 길이 멀었지만, 평소처럼 타자들을 때려잡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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