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80화 (280/316)

280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0: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승리 투수 : 고유석>

└진짜 아까워! 볼넷 하나만 아니었어도 퍼펙트인데···

└이번이 2번째 노히터지? 퍼펙트 네 번에 노히터 두 번이라니, 말이 되나?

└퍼펙트에 노히터도 포함이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노히터 6번이지. 내가 적고도 어처구니가 없네.

노히트 노런이 달성되며 경기가 종료된 직후, 수많은 이들은 환호하는 한편으로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퍼펙트게임을 포함하여, 무려 통산 여섯 번째 노히터가 달성된 것이니까. 이번 시즌으로 따진다면 세 번째 노히터였고.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팬들이 기뻐하는 한편으로 조금은 충격스러워했다면. 다저스는 그저 아쉬움을 곱씹었다.

<다저스의 굴욕! 커쇼, 7이닝 무실점의 분투, 허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다저스 X신들 우리더러 퍼펙트 두 번 당했다고 놀리더니, 꼴좋네lololol

└우린 노히터야. 너넨 퍼펙트고. 그리고 너희처럼 두 번도 아니지.

└커쇼도 진짜 잘했어. 특히나 경기 중반부터는 가장 잘했던 시절 모습 같았고. 이번 시즌 최고였어.

└솔직히 좀 퇴물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커쇼는 커쇼더라.

└커쇼도 빙긋 웃던데, 보기 좋더라. 뭔가 마음이 뭉클해졌어.

└Go가 겉으로 보기엔 재수 없는 놈 같아 보여도, 은근히 모범적이지. 선배에게 존중할 줄도 알고.

└사실 대놓고 모범적이지. 착실하게 훈련하고, 딱히 구설수도 없잖아?

└도핑이나 하는 놈인데 모범은 무슨.

└이미 끝난 얘기를 아직도 꺼내는 놈이 있네. 고소장은 안 받았냐?

비록 패배로 끝난 경기였으니, 막바지까지 0대0이 이어졌던 경기이고.

그들의 에이스이자, 자랑인 커쇼 역시 어쩌면 이번 시즌을 통틀어, 가장 전성기 시절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특히나 그가 내려간 직후, 1실점을 내줬기에 더욱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자들이 아쉬웠을 뿐,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경기이고.

또한 결국 승자가 된 고유석이 커쇼에게 어느 정도 존중을 갖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크나큰 반발심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클랜드의 돈 보스코’ Go, 어린 팬들에게 ‘Perfect’한 경기를 선물!>

└Go는 타고난 엔터테이너야. 특별한 이벤트가 걸린 경기에선 진짜 여지없거든.

└최소한 오늘 모인 애들한텐 평생 동안 추억할 순간이 되겠지.

그렇게 경기가 막을 내린 뒤, 고유석이 바랐던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은 흩어졌고.

자신이 초대한 어린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를 선사한 고유석의 쇼맨십에 팬들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악랄하다고 여기는 이들 역시 적지는 않았다.

└얘들은 이제 큰일 났네. 앞으로 절대 야구 못 끊을 거 아니야?

└이런 경기를 현장에서 봤으니, 영원토록 야구에 종속되겠지.

└헨젤과 그레텔이군. 사악한 Suck이 노히터라는 달콤한 과자집으로 애들을 유혹했어.

└팀도 하필이면 애슬레틱스야. 거지구단이라 혈압 오르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리빌딩하고, 탱킹하고, 그렇게 얻은 유망주는 망하고, 간만에 큰맘 먹고 데려온 FA도 망하고, 팀도 망해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욕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야구를 보게 되겠지, 오늘 같은 경기를 기대하면서. 참 상상만으로 슬픈 일이야.

이번의 노히터 한 번으로, 이제 갓 자라나기 시작한 파릇파릇한 새싹 수천 명을 야구 망령이 만들었으니까.

눈앞에서 직접, 그들의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장면을 본 이상.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절대로 야구를 버리지 못할 것이기에.

몇몇 이들, 특히나 다사다난했던 애슬레틱스에 익숙한 코어 팬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영원토록 야구라는 이름의 족쇄와 함께할 아이들을 조금은 안쓰럽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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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아까워? 아무리 그래도 노히터잖아?”

다저스와의 시리즈가 끝나고 이틀 후, 에인절스 원정을 위해 애너하임으로 날아갔을 때, 브루스는 문득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조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뭐, 노히터가 별거라고. 이미 퍼펙트한 것만 몇 번인데. 앞으로도 수두룩하게 할 거고.”

“그 자신감이 좀 띠껍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좀 무섭네. 진짜로 그럴 것 같아서 더 무섭고.”

브루스는 내 말에 살짝 몸을 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은 다시 봤다는 듯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 퍼펙트한 투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드디어 좀 생겨났나 보구만. 아주 마음에 들어.

별건 아니고, 그냥 이번 경기에서 입은 유니폼이랑 글러브, 모자, 신발을 경매에 올렸다. 노히터를 달성한 공도 함께.

구단에서 제안했지.

낙찰된 금액을 기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나를 향한 좋은 여론이 만들어졌으니.

열심히 박수치고 있을 때, 착한 짓 한 번 더 해서, 이미지를 굳히자는 의도였지.

‘구단에 기증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겠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좀 그렇지.’

팔자에도 없는 어린아이의 수호성인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거절하기에는 조금 양심이 찔려서, 팬티 한 장을 제외하곤 기꺼이 바쳤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매가 시작되겠지.

‘솔직히 그거 얼마 안 할 것 같은데···’

다만 고작(?) 노히트노런 가지고, 기부할 정도의 금액이 나오려나 싶기도 했지만.

듣기로 나와 관련된 물품을 조금은 광적으로 사들이는 팬들도 있다고 하니. 아주 푼돈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오클랜드의 보호소와, 지역 리틀 야구팀 등에 장비를 지원해주는 형식이라고 하던데.

어차피 죄다 구단이랑 브라이언이 알아서 조율하면서 처리할 테니. 이번에도 나는 그냥 돈만 대는 셈이구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깔끔해서 다행이네. 그럭저럭 만족스러워.’

아, 그리고 노아는 사인 패키지를 안겨줘서 다시 피닉스로 보냈다.

조금은 아쉬운 눈치였지만, 그래도 내 경기를 직관하고, 심지어 노히터까지 봐서 그런지. 야구에 대한 의지가 더욱더 강렬해진 것 같더라.

언젠가 나처럼 자기도 노히터를, 심지어 나를 상대로 달성할 테니, 자기가 메이저에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거든.

‘이제 열 살이니까, 최대한 빠르게 빅리그에 온다고 치면 10년쯤 뒤인가?’

어쩌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걸지도 모르겠어. 내가 이번에 커쇼를 잡은 것처럼, 나도 걔한테 잡힐 지도.

그래도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더 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구만.

물론 호락호락하게 져줄 생각은 없다. 노히터라, 그럼 난 퍼펙트를 해야겠어.

“브루스, 나 10년 뒤에 퍼펙트할 거니까, 롤렉스 탐나면 너도 그때까지 버텨라. 내가 그때 하나 더 줄 게.”

“···그건 또 무슨 예언이야? 니가 진짜 무슨 카산드라냐? 이젠 10년 앞까지 내다보네.”

내 말에 브루스는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한편으로는 입맛을 쩝쩝 다시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 좋기는 하네.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더 버틴다니. 상상만으로 행복하다야.”

하긴, 생각해보면 10년, 아니지, 얜 16년에 데뷔했으니까, 무려 13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버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기는 했다.

FA 한 번 못 해보고 은퇴하거나, 방출되어 해외리그를 전전하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거든.

그래서인지, 브루스는 상상만으로 행복하다는 듯, 헤벌쭉한 얼굴로 히죽히죽 웃었는데, 그걸 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10년 뒤에도 너랑 호흡 맞출 생각 하니까, 좀 억울하네. 그때 넌 상대팀에 있어라. 그래야 퍼펙트하기 더 쉽지.”

“이 X새끼야!”

버스터 포지나, 야디어 몰리나, 퍼지 같은 명포수라면 모를까. 얘랑 10년 뒤에도 배터리라니. 상상만으로 끔찍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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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절스와의 3연전은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승리를 차지했다.

어째 내 경기 때와 달리, 우리 타자들이 엄청나게 점수를 몰아냈거든.

에인절스 역시 제법 화끈한 화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트라웃이 없는 게 컸지.

‘도루가 위험하긴 하구만.’

8월 1일에 도루하다가 손목을 다쳤다는데, 확실히 주루 플레이가 위험하기는 해. 괜히 스콧 에머슨이 내 슈퍼 소닉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어쨌든 그 덕분에 트라웃이 사라진 에인절스의 타선은 확실히 무게감이 떨어졌다.

이럴 때 내가 마운드에 올라야 하는데 말이야. 트라웃이 없는 에인절스라니, 상상만으로 편안하군.

하지만 난 이미 오클랜드에서 노히터를 하고 온 몸이기에, 그저 얌전히 덕아웃에서 구경만 하다가 다시 홈으로 돌아왔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다시 3연전을 치를 예정인데···.

“작년까지만 야구 보고, 관심 끊었던 사람들은 제법 놀랄 거야. 우리가 1위고, 매리너스가 2위인 걸 보면.”

“놀라서 자빠지겠지. 특히 우리 성적 보면 판타지 리그 아니냐고 그럴 걸?”

놀랍게도 2천만 달러짜리 선수가 도핑에 대한 징계로 인해 날아간 이후 매리너스는 오히려 상당히 잘 나갔다.

70승 50패를 기록, 3위권인 애스트로스와 에인절스를 따돌리며,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거든.

다만 지구우승의 경우 우리가 88승 30패라는 미친 성적을 찍으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기에, 어림도 없어 보이지만.

거기다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양키스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기에, 잘만하면 포스트시즌 진출도 가능성이 있었지.

거기다 직전 시리즈에선,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4연전을 스윕으로 이겨내며, 계속해서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매리너스인데.

‘이쯤 되면 누가 범인인지 명확하구만.’

이렇게 되면 간단하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누가 문제였는지는 불 보듯 뻔하잖아?

“역시 로빈슨 카노 그놈이 문제였어. 더러운 약쟁이 새끼. 남은 약쟁이 둘도 치워버리면, 01년의 영광을 재현했을 텐데.”

“Suck 너 카노 진짜 싫어하네. 하긴, 카노 때문에 너까지 엮었으니, 싫어하는 게 당연하긴 하네.”

“굳이 그게 아니라도 약쟁이는 원래 싫어해. 조금 더 싫긴 하지만.”

바로 더러운 약쟁이 새끼지.

로빈슨 카노, 이 빌어먹을 놈이 매리너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이었던 거야.

원래도 약쟁이를 싫어하긴 하지만, 로빈슨 카노는 그로 인해 나까지 말려들었기에, 특히나 더 밉기도 했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조금은 감성적인 추리일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인 상황을 보자고. 그놈이 빠지니까 팀이 잘 나가잖아?

이참에 매리너스도 이 신묘한 진리를 깨닫고, 남은 약쟁이 둘, 디고든과 크루즈도 처분하길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로빈슨 카노, 14일 애슬레틱스와의 경기로 징계 후 첫 복귀전 예정!>

<로빈슨 카노의 복귀전 상대는 Go? 같은 시기 도핑 의혹이 불거졌던 두 선수, 서로 다른 입지로 마주하다!>

그도 모자라서 결국 로빈슨 카노도 복귀했지. 1차전이 끝난 직후 공식적으로 발표가 됐는데, 결국 돌아왔구만.

물론 매리너스 입장에선 연봉을 그렇게나 받아 처먹는 데다가, 징계 이전에는 연봉값은 못해도 제법 괜찮은 성적을 찍었던 선수이니.

하루라도 빨리 복귀를 시키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좀 X같구만. 하필이면 내 경기에서 복귀전을 가지다니.

약쟁이가 없으면 성적이 오른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조차 깨우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답습하는 매리너스 프런트의 잘못된 생각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가르쳐 줘야지.

‘약쟁이들을 조져주면, 매리너스도 깨닫는 바가 있겠지.’

다행스럽게도 여력은 충분했다. 난 2차전에 등판할 예정인데, 이번에도 휴식일이 끼여서 5일이나 쉬거든.

피칭 사이클도 여전히 좋게 이어지고 있고. 그러니 푹 쉬고, 마운드에 올라, 약쟁이들을 손수 도륙해서, 매리너스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쳐주자고.

‘덤으로 최악의 복귀전도 선사하고.’

지난 경기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줬다. 기쁨도 안겨줬지.

그러니 이번 경기에선 그런 아이들의 동심을 짓밟은 약쟁이에게 징벌을 내려 보자고.

아이들이 정말로 그걸 바라냐고? 최소한 나는 그러길 바란다. 나도 주님의 어린양이잖아. 엄마 말로는 그랬어. 그러니 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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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우승이야 이미 글러먹었으니 제쳐놓더라도, 최소한 와일드카드라도 쟁취하기 위해서 1승이 아까운 매리너스에게 애슬레틱스라는 적은 꽤나 짜증스러운 상대였다.

이번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위닝 시리즈 혹은 스윕을 기록하며, 미친 듯이 메이저리그를 휩쓰는 팀이었으니까.

당장 매리너스 역시, 직전 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하면서, 이번 시즌 7승 2패의 상대전적을 기록 중이었고.

‘특히나 쟤가 문제지.’

그런 돌풍의 선봉장이자, 중핵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 역시 가장 큰 문제였지.

24경기 24승 무패.

이번 시즌에만 24연승을 달리며, 마치 역병처럼, 올시즌 자신을 상대한 팀들에게 ‘확정적인’ 패배를 안겨주는 중이었으니까.

그런 투수가 2차전에 나올 예정이니, 1패가 이미 적립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매리너스로선 조금은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트렌드로는 완봉을 세 번해도 대단한 건데, Suck 얘는 무슨 퍼펙트 두 번에 노히터 한 번이네.”

“얘가 진짜로 약이 아니라고? 카노가 80경기 출장 정지였으니까, 얘는 한 200경기 정도는 출장 정지받아야 될 것 같은데?”

심지어 직전 경기에서 다저스를 노히터로 잡아내는 괴력투를 선보였기에, 더욱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도핑 의혹이야 이미 완전히 해소된지 오래였고, 애슬레틱스와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합작으로 인해. 더는 3류 타블로이드조차 감히 거론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여전히 몇몇 선수들은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정말로 고유석이 도핑을 했다고 믿는 것은 아니나, 차라리 스테로이드가 됐든 뭐가 됐든, 최소한 약이라도 맞았어야 정상적인 성적이었으니까.

그런 투수를 상대해야 하니, 아무리 메이저리거라고 할 지라도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억지로나마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르는 일이지, 저번 경기에서 110구나 던졌던데. 멀쩡하겠어?”

“저번에 레드삭스 퍼펙트로 잡은 뒤에도 훅 내려갔었잖아. 187이닝이나 던졌으니, 슬슬 체력이 후달리겠지.”

퍼펙트나 노히터를 기록한 투수들이, 그 직후에 얻어터지는 거야, 이미 유명한 일이고.

이미 웬만한 투수들의 풀타임 수준의 이닝을 소화했던 투수이니, 그 여파가 더욱더 클 수도 있었으니까.

거기다 직전 시리즈에서, 저스틴 벌랜더-게릿 콜-찰리 모튼-댈러스 카이클이라는, 그야말로 괴악한 선발투수진을 상대로 스윕을 따냈기에.

타자들 역시 제법 자신감에 차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몇몇 타자들은 오히려 저 괴물에게 시즌 첫 패배를, 혹은 실점을 안겨주자며 소리치기도 했지만.

“넬슨도 크루즈 미사일 하나 먹여줘요. 푸홀스 같은 퇴물도 쳤는데, 넬슨이야 못할 것도 없죠.”

“글쎄···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매리너스 타선의 가장 핵심적인 거포인 넬슨 크루즈는 딱히 그런 동료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로빈슨 카노가 날아가기 직전, Go를 만났을 때 느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자신과 디고든, 그리고 다시 돌아온 로빈슨 카노가 매리너스에 있는 이상. 저 놈은 무조건 매리너스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이라는 것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지. 자신의 죄를 굳이 되새겨주는 그 눈빛이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넬슨 크루즈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어쨌든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고, 누군가가 그것을 혐오스럽게 여긴다면,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로빈이 좀 힘들겠어.’

그중에서도 메인 타겟으로 지정된 로빈슨 카노가 과연 이번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1번타자 미치 해니거를 삼진으로 처리한 뒤, 2번타자로서 배터박스로 입장한 그를 바라보는 투수의 얼굴은 뭐랄까, 약간의 희열감마저 느껴졌으니까.

“스트라이크!”

그리고 던져진 초구.

89.4마일로, 산 아래에서의 최고구속을 경신한 포심 패스트볼을 확인한 순간 넬슨 크루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안식일이군.’

이번 경기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마음 편하게 쉬는 것이 낫겠다고.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마치 군법을 어긴 병사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백부장처럼, 아주 혹독하게 로빈슨 카노를 때려잡았는데. 아마 자신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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