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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76화 (276/316)

276화

고유석은 당연하게도 현시점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하거니와.

한편으로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었으니까.

작년의 파인타르 의혹, 그리고 올해의 도핑 의혹처럼.

그러한 의혹을 어쩌면 최고의 방법으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이겨냈었기에, 더욱더 인기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저스틴 스모크, Go에게 홈런을 친 다섯 번째 타자에 등극하다!>

<연기처럼 사라진 타구! 저스틴 스모크, Go에게 Big Ball을 날리며, 연속 이닝 무실점을 마감시키다!>

그렇기에 그가 홈런을 맞았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희귀한 장면이고, 제법 많은 이들에게 속이 다 후련해지는 시원함을 선사하는 장면이었으니까.

[#Rangers]

[나 지금 Suck 걔가 홈런 처맞는 거 열 번쯤 돌려본 것 같은데, 이거 정상이겠지?]

└비정상이지. 난 서른 번째니까.

└아침에 뭘 잘못 먹은 건지, 속이 좀 안 좋던데. 그거 한번 보니까, 개운해졌어.

└저스틴 스모크, 걔 마음에 드네. 우리가 영입하자!

└그래, 걔랑 조지 스프링어, 트리웃, 그리고 푸홀스까지 영입해서, Suck한테 홈런 다섯 개를 처먹이자고.

특히나 텍사스 쪽에서는 단 하룻밤 만에 수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리기도 했고 말이다.

그에게 수없이 시달렸던 이들에겐 그 어떤 소화제보다 훨씬 더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으니까.

그렇게 고유석의 홈런에 모두가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뻐했다면.

<고유석, 7이닝 동안 열여섯 개의 탈삼진을 쓸어담으며 ‘핏값’을 받아내다.>

<시즌 2호 째 피홈런으로 얼룩진 2년 연속 300K, 재판 결과는 ‘사형’!>

그 직후 그가 블루제이스에게 내린 ‘징벌’ 역시 함께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과 허탈한 헛웃음을 자아냈다.

조금은 잔인하리만치, 블루제이스를 완전히 도륙하는 모습은 마치 경고처럼 느껴졌으니까.

[#BlueJays]

[앞으로 저 새끼한테 무서워서 홈런 치겠어? 진짜··· X같네.]

└고작 홈런 하나 쳤다고 삼진을 열여섯 개를 잡네. 미친 또라이새끼.

└완전 눈깔이 돌아갔던데. 고작 홈런 하나 가지고?

└이기적인 놈이야. 자기는 타자들 잘만 때려잡으면서, 자기한테 홈런 치면 아주 난리를 치네.

만약 자신에게 홈런을 친다면, 이 정도의 대가를 각오하라는 무언의 경고 말이다.

그 징벌을 직접 당한 블루제이스는 물론, 그를 증오하거나, 싫어하던 이들조차 조금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저토록 폭압적으로 구는 빌어먹을 폭군을 몰아내지도 못하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

그렇게 고유석의 소식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 정보의 해일 속에서 애리조나의 대도시, 피닉스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

“와··· Suck은 그냥, 진짜 잘한다···.”

“Go라고 해야지. Suck이라고 하는 거 들키면 혼날 거야.”

“무슨 상관이야? 너 마마보이냐? 아무튼 Suck한테 홈런 쳤으면, 이 정도는 당해야지!”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삼삼오오 몰려든 피닉스의 리틀야구팀, 스나이퍼즈 베이스볼의 선수들은 영상을 돌려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 훈련장에서 휴대폰을 보는 행위를 코치에게 걸린다면, 분명히 훈계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더 높은 야구에 대한 열망(?)은 막을 수가 없었으니까.

Go,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연하게도 아이들에게도 크나큰 인기를 가졌다.

특히나 지난번 올스타전 이후에는 더욱더 팬이 늘기도 했고, 아이들이 보더라도 정말로 멋진 장면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평범한 아이가 아닌, 리틀야구라고 해도, 어쨌든 야구‘선수’라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레인키가 제일 잘하는 거 아니었어? 디백스에서 제일 잘하잖아?”

“에이,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그레인키보다 Suck이 훨씬 잘한데.”

“나도 나중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저렇게 할 수 있겠지?”

“니가? 웃기고 있네, 글러브에 공도 제대로 못 던지면서.”

어쩌면 자신들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지.

나도 몇 년, 아니 한 10년 정도 뒤에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라, 그처럼 당당하게 승리를 차지하는 것 말이다.

실제로 그것을 꿈꾸며, 야구에 입문한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고, 그런 ‘고유석 키즈’들 중에서 ‘톰’은 일종의 승리자나 다름없었다.

“그러게, 너희들도 올해 시범경기 왔을 때, 아빠한테 부탁해서 미리미리 구경 갔어야지! 그러면 나처럼 Suck을 직접 보고, 사인도 받았을 거 아니야?”

“그래, 톰, 너 잘났다.”

“또 시작이네. 질리지도 않냐? 또 자랑하려고?”

“오늘도 그거 가지고 왔어?”

“당연하지. 오늘도 직접 끼고 던질 거야. 나도 Suck처럼 잘할 거니까.”

올해, 시범경기에서 Go에게 직접 글러브에 사인을 받았으니까.

적어도 Go의 이야기가 나오는 날에는 가장 큰 승리자나 다름없지.

역시나 오늘도 뽐내듯 턱을 치켜세우며, 글러브에 휘리릭 적힌 사인이 잘 보이도록 낀 톰을 아이들은 재수가 없다는 듯이 봤었지만. 몇몇은 흘끔 다른 쪽을 보기도 했다.

“근데, 너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Go한테 받은 사인볼. 아까 그랬었잖아?”

“그래! 나도 들었어! 얘도 Go한테 직접 받았다는데?”

“뭐? 사인볼? 누구?”

이번에 막 팀에 합류한 어린아이는 자신을 향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살짝 쭈뼛거리면서도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톰은 위협감을 느낀 듯 조금은 치켜뜬 눈으로 봤고 말이다.

“진짜야? Go한테 사인볼을 받았다고? 직접?”

“응, 세 개 받았어. 너희들한테 보여주려고 갖고 왔는데, 볼래?”

“어! 너도 한번 꺼내봐.”

주변의 재촉에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낸 사인볼 세 개는 제법 때가 타기는 했지만, 적어도 톰의 글러브에 적힌 것과 똑같은 사인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와, 진짜 세 개네. 톰은 고작 글러브 하나에 받은 게 전부인데.”

“부럽다, 세 갠데, 나 하나만 주면 안 돼? 제발~”

“안 돼, Go가 평생 간직하라고 했어. 그러기로 약속했고.”

그에 감탄하는 다른 아이들과, 그것을 자랑하듯 보여주면서, ‘넌 고작 하나냐? 난 세 개다.’라고 말하듯 자신만만하게 웃는 얼굴에 톰은 조금 위기감을 느꼈다.

적어도 다음 시범경기나 혹은 월드시리즈 전까지는 Go가 피닉스에 올 일이 없으니.

앞으로도 몇 달은 더 뽐낼 수 있을 텐데, 뜻밖의 굴러온 돌 때문에 자칫 빛이 바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 대단하네. 넌 언제 받았는데? 올해 시범경기에서?”

그렇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이내 나온 답변에 더욱더 불쾌감이 짙어졌다.

“작년 2월에.”

“진짜로? 그럼 톰보다 빠르잖아?”

“와, 그러면 네가 톰보다 훨씬 먼저 Suck을 직접 본 거네?”

작년 2월. 못해도 자신보다 1년 이상 먼저 받은 것이니까.

사실 어차피 다 같은 사인이니, 뭐가 그리도 중요하겠느냐 싶겠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치기가 톰을 화나게 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톰보다 ‘먼저’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는 다른 친구들 때문에 더욱더 그런 것이기도 하고.

“그거 거짓말 아니야? 직접 받은 거 맞아?”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혹시 거짓말이 아니냐고.

한편으로는 제법 논리적인 생각도 들었다. Go는 작년에 데뷔했고, 그전에는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을 텐데.

그런 선수에게, 유명해지기도 전에 사인을 받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야! 우리 옆집에 살았었어!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 Go한테 직접 받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Go는 오클랜드에서 살고, 그리고 또 Korean인데, 너희 옆집에 왜 살아?”

아이가 변명하듯 굳이 한 마디를 더 보탠, 옆집에 살았다는 단어가 거짓이라는 것에 더욱더 확신을 줬고 말이다.

물론 코리안이고, 현재는 연고지인 오클랜드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스프링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피닉스에서 지냈을 수도 있었지만, 톰 역시 아직은 어린아이였기에,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 그거 인터넷에서 샀지?”

“뭐?”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Suck 사인볼은 인터넷에 엄청 많대, 니 사인볼도 그런 거 아니야? 난 직접 받은 거라고!”

“나도 직접 받은 거라니까! 이 공도 Go가 준 거야!”

그렇기에 의심은 더욱더 짙어졌고, 톰은 사인볼도 얻고 싶다는 말에, 아빠가 Go의 사인볼은 인터넷에 많으니, 하나 사주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필시 저것이 바로 그런 흔하디 흔한 사인볼 중 하나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톰의 말에 마찬가지로 의심을 품기 시작한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 사인볼의 주인은 더욱더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

단순히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저보다 먼저 야구를 했던 사촌형인 데이빗도 자신의 말에 의심했었지. 못 믿는 눈치였고.

그렇기에 감정을 가득 담아 소리쳤지만, 딱히 통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자랑하고 싶어?”

“거짓말 아니라고!”

결국 감정싸움은 육체적인 싸움으로까지 번졌고, 다른 아이들이 뜯어말려도 한참이나 서로에게 주먹을 날린 두 아이는 리틀 야구팀 코치가 왔을 때야 간신히 떨어졌다.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의 다툼일 수도 있었지만, 그 일은 제법 큰 영향을 낳았다.

아들이 속상해하는 모습에 조금은 푸념하듯 어머니가 SNS에 올린 글이, 고유석이 홈런을 맞았다는 소식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으니까.

####

“Go, 넌 다음 다저스전 2차전 때 등판이야.”

“어으- 이제 좀 살겠다. 예? 뭐라고요?”

“다저스 2차전에 등판한다고. 로테이션 변동 없이, 그대로 등판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다시금 스윕으로 잡아내고, 휴식일을 가진 뒤. 마찬가지로 저번에 스윕으로 잡았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3연전을 가졌을 때.

잉여인간처럼 딱히 팀에 도움 되는 일 없이, 스트레칭으로 뻐근한 몸이나 풀고 있던 나에게 스콧 에머슨은 그렇게 통보했다.

LA 다저스와는 다다음 시리즈에서 2연전을 벌이는데, 그때 2차전에 등판한다고 말이야.

그 말에 조금은 놀랐다. 물론 다저스전에서 등판하리라는 거야 이미 예상하기는 했지만, 난 1차전일 줄 알았거든. 이번 시리즈 마치고 나면 또 휴식일이 끼여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이미 5일 휴식이니, 차고 넘치는 수준인데, 심지어 2차전 등판이면, 6일이나 쉬는 거네?

“저 너무 귀족 아니에요? 후반기에 6일이나 쉬는 호사를 다 누리고.”

보통 5선발 로테이션의 경우 4일 휴식에 5일째 등판이 기본이고, 운이 좋을 경우 휴식일 끼고 5일 쉬는 것을 감안하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가뜩이나 이닝을 많이 먹는데, 이렇게라도 푹 쉬어야지. 우리가 지금 급하게 달려야 하는 팀도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죠, 이미 지구우승이 80%는 확정이니까.”

이것도 우리 팀이 잘나가는 덕분이지. 성적에 급급해서, 에이스를 막 굴리는 팀들도 있지만, 우린 그 정도로 조급하지 않으니, 굳이 로테이션을 바꾸지 않고, 그냥 푹 휴식을 주는 거지.

블루제이스를 스윕으로 때려잡고, 82승 28패를 찍으면서. 이미 포스트시즌이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아닌 척하지만, Go 너 지금 좀 피곤하잖아?”

그렇게 말한 스콧 에머슨은 뻔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음, 불쾌하군요. 혹시 성희롱인가요?

슬쩍 팔로 몸을 가리니, 그의 눈썹 사이에 그려진 내 천자가 더욱더 짙어졌다. 조금 역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했고.

이건 장난이고, 틀린 말은 아니지. 쿠어스 필드 완투의 피로가 다 풀리기도 전에, 홈런 맞고 빡돌아서 나도 모르게 무자비하게 던졌으니까.

솔직히 좀 피곤하기는 해.

“쪼오끔 힘들긴 하죠. 진짜 조금요. 많이는 아니고.”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괜히 코치 앞이라고 허세 부리는 건 아니다.

대체 내 몸뚱이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좀 피곤하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거든.

이젠 나도 신기할 지경이야.

어머니, 아버지. 대체 뭘 낳으신 겁니까.

튼튼하게 낳아주신 건 감사한데, 좀 과할 정도로 튼튼하네요.

그렇다고 해도 6일이나 쉬는 건, 숨 가쁘게 시즌을 달리는 와중에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기에, 감사히 받아들이겠지만 말이야.

이참에 다시 피로를 완전히 털어내면 되겠구만.

“그래, Go 네가 조금이라도 피곤하다고 할 정도면 말 다했네. 군소리 말고 푹 쉬어.”

“옙, 저, 근데 6일이나 쉬는 거니까, 그럼 다음 등판 때는 완투···”

그렇게 보충한 체력으로 다저스를 완봉으로 잡으면 아주 완벽할 거고 말이야.

슬쩍 밑밥을 던지듯이 말하니, 스콧 에머슨이 아주 경멸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얌전히 입을 닫았다.

그렇게 다음 등판을 느긋하게 준비하면서, 열심히 몸이나 풀고 있었을 때. 조금 시간이 지나 훈련장에 비몽사몽 들어온 제드 라우리, 우리의 SNS 중독자께서 대뜸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오~ 오늘은 일찍 왔네요? 매번 늦게 오더니.”

“Suck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나는 항상 일찍 와. 그나저나 Suck 너, 혹시 작년에 피닉스에서 옆집 애한테 사인 해준 적 있어?”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좀 알아듣게 말해요. 피닉스? 옆집 애? 사인?”

“그냥 글이 올라왔거든. 네가 작년에 자기 옆집에서 잠깐 살았는데, 그때 아들이 사인볼 받았다고. 근데 그걸 안 믿어줘서, 다른 애랑 싸우고, 속상해서 울고 있다고 하는데. 좀 유명해. 진짠지, 아닌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거든.”

뭔 소리야.

훈련장에 들어오더니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내는 제드 라우리를 보니, SNS 중독이 이렇게나 심각한 일이구나, 싶었다.

난 앞으로도 안 해야겠어.

그, 누구야, 유명한 축구 감독도 그런 말을 했었잖아.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유명한 사람의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또 누가 나랑 인연을 주장하나 보네.’

내가 유명해진 이후로는 사실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나랑 자기가 아는 사이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 아주 절친한 친구다, 성격이 이렇다 저렇다. 등등.

나와의 인연을 주장하면서, 인기를 끌려고 하거나, 아니면 어그로를 끌고, 악의적인 이야기를 풍기는 사람들 말이야.

일일이 대처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무시로 일관하고 있지.

이번에도 역시, 그냥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문이 도는구나, 생각하며 코웃음 치고서 무시했지만.

곧 내 뇌 속에 잠자고 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잠깐, 피닉스. 작년. 사인볼?’

분명히 기시감이 느껴졌지. 이상하게 뭔가 알 것 같은데 말이야. 뭐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던 나는 이내 완전한 기억을 떠올려냈다.

“아! 등록금!”

“등록금?”

그, 있잖아.

내가 대니얼과 피닉스에서 한창 스프링 트레이닝 준비하면서, 제대로 던지는 방법을 깨우치고, 확 올라간 스터프에 적응할 때.

숨어서 구경하는 걸 보고, 울타리 너머로 공 세 개 던져주니까, 사인 해달라면서 사인펜도 가지고 왔던 당돌한 꼬맹이 말이야.

이름이 노아였던가?

아마도 그럴 거다.

걔랑 시기도 비슷해 보이는데, 설마 걘가?

“어디 올라온 글이에요?”

“트위터. 왜?”

“혹시 이름은 없어요? 노아라던가.”

“잠깐만··· 맞네. ‘노아가 속상해하네요’라고 적혀 있네.”

혹시나 싶어서 제드에게 물어보니, 슬쩍 본인 휴대폰을 꺼내, 나하네 보여줬다. 진짜로 노아라고 적혀 있었지.

이러면 확실하지.

거짓말로 지어낸 비슷한 사연에, 그 이름까지 똑같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니까.

그나저나···

“인정을 안 해준다고요?”

“어, 사인볼 말고는 증거가 없는데, 사실 네 사인볼이야 사실 옥션에 넘쳐나잖아. 거짓말 취급받는 거지.”

분명히 그 사인볼이 나중에 걔가 다 자라서 대학 입학할 때, 대학 등록금이 될 정도로 잘하자면서 마음을 다잡았었는데. 아무래도 등록금은커녕, 거짓부렁 취급받는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지, 별다른 증거가 없으니까.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이런 문제가 있었군.

‘웅장한 목표만 세웠지, 정작 일처리는 날림으로 해버렸네.’

졸지에 애 하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구만. 속상할 만하겠어.

내가 귀신도 아니고, 직접 보고, 사인볼을 받았는데도 아무도 안 믿어준다니.

“이름을 아는 걸로 봐선 진짜 같은데, 이야, 그럼 걔는 진짜 억울하겠네. 정말로 너한테 사인받은 건데, 다 거짓말 취급해서 다른 애랑 싸우기까지 하다니. 그러게 사진도 찍어주지 그랬어?”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이 글 올리신 어머님께서 절 위험하게 보셨거든요.”

“하긴, Suck 네 덩치를 감안하면, 굉장히 위협적이기는 하지. 특히나 작년 시범경기 전이면, 유명하지도 않을 때니까.”

평생 잘 간직하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중간에 팔아치우거나, 어린 아이니, 그냥 까먹을 줄 알았는데, 진짜로 그 말을 지키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거짓말쟁이 취급 받으면서도 끝까지 사인볼을 간직한 노아에게 조금 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흡족한 마음도 들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에겐, 선물을 줘야지.’

약속했던 것처럼 사인볼을 소중하게 잘 간직해 줬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도 있어야겠지. 지금까지 겪었을 억울함에 대한 비용도 톡톡히 쳐서.

내가 등판하는 날이면, 시청자 수가 미국에서만 못해도 천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던데.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증해주는 증인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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