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남은 두 경기에서 우리 투수들은 제법 잘 막아냈다. 나한테 완봉당하면서, 타격감이 함께 망가진 건지. 쿠어스 필드인 걸 고려했을 때, 생각보다 많이 털리지는 않았지.
“아웃!”
근데 알고 보니 우리 타자들의 타격감이 훨씬 더 개박살 났더라고. 시리즈 내내 아주 꽁꽁 묶였고, 그로 인해 투수들은 잘 막았는데, 우리 타선도 제대로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두 경기 다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쿠어스에서 이렇게 했는데, 이걸 진다고? 이걸? 아니, 내가 대체 왜 져야 돼?”
“이해하세요, 타자들이 X신인 거지, 브렛은 잘했어요.”
“···나도 Suck 너처럼 직접 홈런을 쳤어야 하는 건데, 진즉에 타격 훈련을 했어야 했어, 제기랄!”
애석하게도 다른 투수들은 나처럼 답내친을 해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고 말이다.
3차전에 선발로 나와, 6이닝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그럭저럭 괜찮게 던졌던 브렛 앤더슨은 자기도 나처럼 홈런을 쳤어야 했다며 바득바득 이를 갈기도 했지.
선발투수의 입에서 자기가 홈런 쳐야 했다는 말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같은 투수로서 눈물날지경이네.
“이런 개쓰레기 새끼들.”
“Suck 너 요즘 우리더러 쓰레기라고 하는 거에 맛 들린 거 같다?”
“듣는 쓰레기 기분 나쁘니까, 그만해줄래?”
“우리도 최선을 다했어. 그저 결과가 나빴을 뿐이지.”
“뭐라고? 투수도 하나 날린 홈런도 못 친 타자 놈들 말은 잘 안 들리는데?”
“···젠장.”
그렇게 간만의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시리즈를 조금은 기분 나쁘게 마무리 지은 뒤.
7월의 마지막이자, 8월의 첫 경기를 위해, 우린 다시 안락한(?) 홈, 콜리시엄으로 돌아왔다.
홈, 스윗 홈이지.
이 얼마나 안락한 요람이야.
다시 돌아온 오클랜드는 유독 더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솔직히 콜리시엄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쿠어스 필드 한번 겪고 나니까, 여기가 지상낙원인 것 같네.”
“시설은 쿠어스가 더 좋잖아?”
“대신 그 외의 모든 게 최악이잖아.”
“그렇긴 하지. 조금만 삐끗해도 홈런이 나오니···”
“진짜 얼마나 긴장했으면, 경기 끝나고 나서 목이 다 저리더라니까?”
다른 선수들도 나랑 같은 생각인 것 같고. 언제나 집 나가면 개고생인 법이지. 집이 최고다 이 말이야.
나야 원래도 콜리시엄을 어느 정도는 사랑하는 편이지만.
우리 낡아 빠진 홈구장에 불만이 많았던 다른 동료들은 쿠어스 필드라는 불지옥을 겪어서 그런지, 콜리시엄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올라간 것 같았다.
특히나 생각보다 잘 막긴 했지만,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감 속에서 피칭해야만 했던 투수들은 더욱더 콜리시엄을 찬양하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돌아온 오클랜드는, 내 홈 등판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흥분에 차 있었다.
300K가 목전이었으니까.
지금까지 296개를 잡았으니까, 딱 네 개만 더 잡으면 달성이네.
2년 연속인 셈인데, 듣기로는 랜디 존슨 이후로 최초라고 하더라.
가끔씩 그런 이름들이 거론될 때마다 나도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내가 막 야구를 배우고, 처음 공을 던졌을 때, 메이저리그를 휩쓸었던 전설들이잖아?
물론 최근 들어서는, 아예 월터 존슨이나, 피트 알렉산더, 레프티 그로브. 그런 선수들이 더 많이 거론되기도 하고.
언론에선 종종 아예 1800년대의 기록을 꺼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분들이야 너무 옛날 분들이셔서 오히려 체감이 덜 되지.
직접적으로 피칭을 지켜보고, 동경해 마지않던 선수들인데, 이젠 내가 그런 선수가 되어버렸다는 거니까.
‘내가 다음 세대 투수들에겐 그런 사람이 되는 건가?’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고. 어쩌면 다음 세대의 투수들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수십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어떤 투수에게 제2의 고유석, 우리 시대의 Go, 다시 등장한 Scuk 같은 칭호가 붙을 걸 떠올리니. 왠지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일단,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자고.”
왠지 입술이 씰룩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지. 지금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전설을 쌓는 과정이고. 그러니 당장의 피칭에만 집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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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쿠어스 필드의 완봉은 생각보다 후유증이 컸다. 은근히 오래갔지.
총 112구를 던졌으니,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이 던지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조금은 힘겨웠다.
“막상 던질 땐 괜찮았던 것 같은데···”
정작 쿠어스 필드에선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말이야. 듣던 것처럼 크게 호흡이 딸린다는 듯한 느낌도 딱히 없었고.
당장 막판에 KKK를 잡은 것만 봐도, 마지막까지 충분히 여력이 남을 정도였는데, 막상 다 지나고 나니까 힘드네.
“흔히 러너스 하이라고 하죠. 신체적 스트레스보다, 즐거운 감정이 더 크니, 고통이 가라앉는 거예요.”
“러너스 하이,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네요. 하긴, 던질 땐 항상 즐겁죠, 매번 그다음 날이 문제지만.”
“예, 그러니 제발 좀 무리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은 괜찮더라도, 그게 다 나중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런 내 모습에 대니얼은 이제 만 번쯤 들은 잔소리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내 귀에 박히지는 않았다.
피칭과 마찬가지로 귓구멍도 철벽이거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지에 이르렀지.
그렇지 않았다면, 원정 때마다 홈팬들의 야유에 진즉 멘탈이 터졌겠지. 특히나 텍사스에선 더더욱.
“그래도 최근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몸은 힘들어도 폼은 금방 올라오네요. 오히려 저번 경기보다 감각 자체는 좋을지도?”
“예, 그렇지만 무조건 7이닝입니다. 아시죠?”
“알죠, 대니얼도, 코치도, 아주 기를 쓰고 막을 텐데, 너무나도 잘 알죠.”
어쨌든 제법 힘들긴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힘든 건 아니고, 그냥 평소에 완봉했을 때보다 조금 더 힘겨운 정도였기에, 경기를 준비하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최근 좋은 사이클이 이어지고 있기에, 감각만 놓고 보면 저번 경기보다 낫지.
‘300K 후딱 하고. 23연승도 빨리 찍어버리자고. 마침 상대도 좋으니까.’
그런 나와 달리, 이번 경기 상대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별로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팀은 아니었다.
슬슬 8월에 접어든 만큼 어느 정도 이번 시즌의 윤곽이 드러났지. 안 좋은 방향으로.
라이벌끼리 미쳐 날뛰어서 알동부를 헬로 만든 양키스와 레드삭스, 그리고 의외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탬파베이 레이스 등.
48승 56패를 달리며, 같은 동부지구 경쟁 팀들에게 탈탈 털리면서, 올해도 포스트시즌과 일찌감치 이별인사를 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크게 한몫했고.”
“저번에 쟤들 홈에서 붙었을 때 우리가 스윕 했던가?”
“어, 4연전 깔끔하게 털었어.”
우리 팀 역시 그런 상황에 어느 정도 거든 팀이고. 깔끔하게 스윕으로 잡았었지.
나도 내 기억으로는 아마 6이닝 9탈삼진 무실점 정도 기록했던 걸로 기억하고.
‘어? 생각보다 덜 털렸네?’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나랑 만난 팀들은 아무리 못해도 7이닝 무실점에 10K 정도가 기본이니까.
그걸 감안하면, 고작 6이닝에, 삼진도 아홉 개밖에 잡히지 않은 블루제이스는 개중에선 그나마 양반이라고 할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직전에 레드삭스전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이후로, 폼이 완전히 바닥에 내리 꽂혔을 때 만났으니까.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6이닝 9탈삼진이라도 잡은 것이 용했다.
적절한 허세와 그것에 속아 넘어간 타자들, 그리고 주심의 널널한 스트라이크존 덕분에 간신히 막았었지.
‘다른 팀들이랑 차별을 둘 수야 있나. 언제나 평등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순수하게 실력으로 털어야겠어. 3연전 중 마지막 3차전에 등판할 예정인데, 아주 제대로 때려잡아야지.
가뜩이나 망한 시즌인데, 저번엔 운 좋게 잡아놓고 불쌍하지도 않냐고?
댓츠 노노. 오히려 그거야 말로 역차별이지. 성적이 나쁘다고 블루제이스만 봐주면 다른 팀들이 억울할 거 아니야.
우리한테는 그렇게 악랄하게 굴어놓고, 왜 쟤는 봐주느냐면서. 언제나 공평해야지.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그냥저냥 털어먹기 딱 좋은 팀이기도 하고.
‘라인업에 오른 타자들 중에서 타율 2할 5푼 넘기는 놈이 얼마밖에 없네. 장타율 5할은 아예 없고.’
현재 블루제이스의 타선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박살난 상태니까. 이 정도면 거의 리그 최악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우리 팀 출신이기도 한 주력 타자인 조쉬 도널드슨은 FA를 앞두고 누워버리면서 커리어 로우를 기록 중이고. 시범경기부터 드러누웠던 툴로위츠키는 아예 시즌을 통째로 날리며, 완벽한 먹튀가 됐다.
마찬가지로 연봉 값 해줘야 했던 러셀 마틴도 멘도사 라인을 훨씬 밑도는 1할 대의 타율을 자랑하고 있고 말이야.
그 외의 나머지 타자들도 별다른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괜히 자기 동네에서 호구 노릇하는 게 아니야.
‘이런데도 48승을 올린 게 오히려 더 신기할 지경이네.’
이 정도면 48승으로 4위라도 하는 게 다행인 수준이다.
물론 같은 지구인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야말로 엄청난 탱킹을 보여주고 있는 덕분에 4위라도 하는 거기는 하지만.
‘가뿐하게 때려잡아 보자고.’
그토록 처참한 블루제이스 타선을 상대로, 3차전에 등판이 예정되었기에, 언제나처럼 타자들을 갈기갈기 박살 내버리자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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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제이스는 예상처럼 깔끔하게 털렸다. 1,2차전을 탈탈 털리면서, 저번에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승리를 대접했지.
“나랑 기싸움했던 거야?”
“그럴 리가. 그냥··· 저번 시리즈가 안 되는 날이었던 거야.”
“우리도 할 때는 한다고. Suck 네 경기에서도 이번에는 득점 팍팍 내줄 테니까, 제발 쓰레기라고 좀 부르지 마라. 슬슬 환청도 들린다니까?”
“하는 거 보고.”
저번 시리즈에서 꽁꽁 묶였던 우리 타선은 드디어 기복이 돌아온 건지, 두 경기 동안 18점을 몰아치며, 대폭발을 일으켰고 말이야.
저번 경기에선 고작 한 점을 못 내서 투수가 직접 빠따질을 하게 만들더니. 오히려 타자에게 불리한 콜리시엄으로 돌아오니까, 점수를 뻥뻥 잘도 내네.
혹시 나랑 기싸움이라도 하는 건가, 조금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타자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득점 지원을 약속했다.
두고 보자고, 과연 여전히 쓰레기일지, 아니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을지.
“오늘은-”
“7이닝이라고요?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
그렇게 다음날, 이번 시즌 23번째 등판이 시작됐다. 경기장은 언제나처럼 만석이지.
내 300K를 직접 목도하겠다며, 돈 싸들고 경기장으로 달려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으니까.
겸사겸사 23연승도 보고.
사실 어떤 의미에선 연승 쪽이 메인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기록이 24연승이었던가?’
300K야 사실, 이미 작년에도 했던 거고, 또한 이미 찍어본 투수들이 많은데 반해. 연승은 아니니까.
메이저리그 신기록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그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는 않았지.
다만 이번 시즌 내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놀랍기에, 그것 역시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오늘도 이겨 보자고.’
그렇게 1회 초.
불펜의 문을 열고 따끈따끈한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자,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와 함께, 언제나처럼 환호성이 들려왔다.
낮 경기 인터라, 중천에 떠오른 햇빛이 포근하게 감싸주기도 했고.
기분 좋은 날이군.
이런 날 완봉을 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다들 잘 모르는 사실인데, 실은 내가 태양열로 가동되거든.
‘느낌 좋은데, 오늘도 90마일 찍자. 산 밑에서도 한번은 찍어봐야지.’
좋은 느낌을 가진 채, 마운드에 오르며, 한번 맛보았던 짜릿한 한여름 밤의 꿈이 산 아래에서도 이어지길 기도해봤지만.
“스트라이크!”
‘어림도 없네.’
당연하게도 꿈은 덴버를 떠나, 오클랜드로 돌아온 순간 이미 끝났다. 89.2마일. 다시 돌아왔구만.
그래도 한 번이나마 맛봤으니, 여한은 없어. 진짜 X나게 행복했다, 90마일아. 3년 뒤에, 아니면 월드시리즈 때 쿠어스 필드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 몸쪽 패스트볼을 초구를 맞아들인 1번타자, 랜달 그리칙은 이토록 밝은 날인데도 눈앞이 깜깜한 건지, 한 차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진짜 X같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얼굴에서 훤히 보이는군.
저번 경기 이후로 브루스가 나를 독심술사 비슷한 사람으로 진지하게 믿고 있던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닌가 봐.
“스트~~~라잌 아웃!”
4구째, 서클 체인지업에 삼진으로 물러났을 땐, 타자의 얼굴에 떠오른 그런 감정이 더욱더 짙어졌다.
“You Suck!”
“Three!”
이번 시즌 297번째 삼진.
300K까지 이제 세 개만을 남겨둬서 그런지, 평소보다 유썩이 조금 더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흥분에 찬 분위기 속에서 이어서 타석에 올라온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앞선 동료보다는 표정이 밝았다.
다만 거의 대부분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오심에 가까웠던 지난번의 만남을 떠올린 건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주심을 흘끔 체크하긴 했지만 말이야.
‘매를 사서 버는 성격이네.’
주심은 그런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를 불쾌한 듯 쳐다봤다.
경기 이후 워낙 달궈졌었기에, 심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겠지.
그런데 타자가 ‘혹시 너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불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덕분에 나도 연대책임이고.’
타자에게 혹시나 하는 의심을 받은 만큼, 앞으로 경기 내내 아주 칼 같이 판정하겠어.
만약 주심의 넓은 재량이 필요한 경기였다면, 크나큰 낭패였겠지만, 괜찮다.
“스트라이크!”
오늘은 굳이 그런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너희를 조질 수 있는 날이니까. 그러니 혹시나 하는 걱정은 내려놓도록.
초구가 틀어박히자, 그제야 주심에게 분산되었던 집중력이 돌아온 건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바짝 정신을 차렸다.
2할 5푼에 못 미치는 타율만 봐도 알 수 있듯, 컨택은 별로 준수하지는 않으나.
이번 시즌 20홈런을 노려 볼만한 페이스로 홈런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약간 스몰 타입의 공갈포라고 할 수 있겠지.
쿠어스 필드에서라면 모를까, 이곳 콜리시엄이라면···
“스트라이크!”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산을 내려오고 구속도 함께 내려간 대신, 다시 구위가 돌아왔으니까.
지난 경기에서 변형 패스트볼로 로키스를 잘 때려잡기는 했지만, 역시 패스트볼은 포심이지.
높게 찍힌 하이 패스트볼에 헛스윙하는 걸 보면, 라이징 패스트볼성 무브먼트도 여전한 것 같고.
투 스트라이크까지 몰리자, 내 폼이 저번처럼 잡수가 필요 없다는 걸, 이제야 타자도 느낀 건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가 조금 더 긴장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이미 한참은 늦었다.
바깥쪽에서부터 날아든 백도어성 너클 커브. 다시금 평소의 궤적을 뽐내며 유유히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타자는 멍하니 바라만 봤다.
“유우우우! 써-억!”
“Twooooooo!”
이제 카운트다운은 투.
환호성이 데시벨이 다시금 한 단계 더 상승했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흥분감도 더욱더 짙어졌다.
워워, 다들 진정하슈.
어차피 이번 이닝엔,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타자가 진루하는 게 아닌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 불가능한데. 왜 벌써부터 그러십니까.
쿠어스 필드에서도 그러더니, 오늘도 쓰러질 것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레이더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살짝 관중석을 향해 팔을 흔들어봤지만, 당연하게도 그럴수록 목소리는 더욱더 커질 뿐이었다.
‘타자나 잡자.’
내가 진정시키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하고 걸어오는 타자를 봤다.
3번타자 저스틴 스모크.
저번 시즌 홈런을 치면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주가를 올린 선수이나. 올해는 그보단 못하고 있다.
별로 좋지 않던 컨택이 다시 돌아오면서, 작년에 0.270을 찍었던 타율도 올해는 2할 5푼을 간신히 넘기고 있지.
파워도 더 떨어져서, 시즌 끝날 때까지 고작해야 스무 개 중반 정도의 홈런을 칠 것이라는 예측이 대다수고.
까놓고 말해서, 그냥 작년이 플루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앞사람이랑 비슷하네.’
어쩌면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쪽이 살짝은 더 위험하지.
오늘 블루제이스 타자들 중에서 그나마 OPS가 8할을 넘는 타자니까 말이야.
“파울.”
그렇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초구를 던지자, 살짝 조급하게 스윙이 나왔다. 살짝 낮게 멀게 포심을 억지로 건드리네.
배드볼 히터가 될 만큼 타격의 정확도가 높은 타자가 아닌 터라, 당연하게도 빗맞은 파울이 나왔다.
“파울!”
2구도 낮게 떨어뜨린 서클 체인지업도 냅다 후려갈기며, 초구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조급한 스윙을 보여줬고 말이야.
그것으로 투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공을 던지지도 않았는데도, 카운트가 잡혔다.
이러면 개꿀이지.
‘그래도 스윙이 제법 매섭기는 하네, 공을 얼추 잘 따라가고 있어.’
그래도 헛스윙까지 나오지는 않는 걸로 봐선, 제법 타격감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에, 긴장감을 풀지 않은 채, 마지막 3구를 던졌고.
다시금 바깥쪽을 찌른 코스에 이번에도 조금은 조급하게 스윙이 나왔지만, 역시나 잘 따라왔다.
“어?”
그것도 상당히.
마치 가드를 뚫고, 턱을 박살 내는 레프트훅처럼, 묵직하게 휘두른 쭉 당긴 스윙에 공은 배트로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체감상 거의 몇 초 정도를 배트와 달라붙어 있던 공은 이내 크나큰 반발력을 뽐내며 쭉 뻗었고.
“X바아아아아아아알!”
“야이 X새끼야!”
“이-이런 개X같은 새끼!”
기대감에 차,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던 콜리시엄은 삽시간만에 욕설이 난무했다.
온갖 종류의 심한 욕들과 저주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저스틴 스모크는 본인도 믿기지 않는 건지,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타구를 지켜봤고.
타구는 멋스러운 궤적을 그리며, 콜리시엄을 가위로 자르듯 쭉쭉 날아갔다.
이야~ 내가 쿠어스 필드에서 날렸던 거랑 비슷한데? 저것도 좌석 하나 박살 내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경기장이 낡아서, 쿠어스보다 훨씬 더 잘 부서질 텐데.
“X발.”
만약에 그러면 우리도 수리비용은 블루제이스한테 청구해야겠네. X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