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나는 보통 높은 코스의 공을 선호한다. 스트라이크존을 반으로 갈랐을 때, 아래보다는 위쪽으로 공이 더 많이 들어가지.
‘그게 훨씬 삼진 잡기 쉬우니까.’
코스가 높을 경우, 보통 타자가 큰 스윙을 하거든. 배트도 쉽게 나오고. 체중과 힘을 정확하게 실을 수 있으니까.
그 대신 컨택이 떨어지는 건데, 거기에 추가적으로 시각적으로 타자에게 보다 더 빠르게 공이 느껴지기에, 삼진이 자주 나오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대부분 투수들이 그래. 아마 모르긴 몰라도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낸 게 높은 코스의 하이 패스트볼일 걸?
물론 장타를 맞을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나, 나 같은 경우는 거기에서 어느 정도는 괜찮다.
타자를 힘으로 확실하게 찍어 누를 자신감도 있고, 실력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높은 코스의 공이 공략당하더라도, 밀린 타구가 나와서 오히려 땅볼이 더 많지.
‘그래서 낮은 공을 잘 안 던지는 거고. 딱히 메리트가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낮은 코스의 공은 나한테 별로 메리트가 없다.
땅볼을 유도하기 쉽기에, 확실하게 장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솔직히 난 굳이 필요 없잖아?
높게 던지더라도 어차피 장타를 충분하게 억제하는데, 굳이 낮게 공을 던져서, 괜히 타자가 공을 잘 지켜보고, 컨택할 확률을 높여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던지는 낮은 코스의 공은 대부분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떨어지는 무브먼트를 가진 서클 체인지업이나, 너클 커브다.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로 인해서, 바깥쪽보다 몸쪽으로 더 많이 공을 꽂아 넣고.
작년에도 그랬지만, 특히나 올해는 더욱더 그런 성향이 짙어졌다.
내 스스로의 실력을 작년 한 시즌 동안 충분히 확인했고, 자신감도 얻었으니까.
높게 던져서 삼진을 유도하고, 설사 맞더라도 강력한 구위로 인해 어차피 땅볼이다.
이게 내 기본적인 피칭의 틀인데···
‘여기선 안 되겠네.’
아무래도 쿠어스 필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깨달았거든.
시작하자마자 장타를 맞은 덕분이지. 고작 한 타석에 불과하지만, 그 한 타석만으로 충분히 봤으니까. 쿠어스 필드의 본모습을.
‘그러니 바꿔야지.’
앞서 언급한 높은 몸쪽 코스의 공격적인 피칭이 쿠어스 필드에서 내 약점으로 작용한다면,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정 반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지.
물론 대부분의 문제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 별로 좋지 못한 대처로 평가받는다.
괜히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잘하는 걸 바꿨다가 망하는 케이스가 한 둘이 아니잖아?
새로운 방식으로 한다고 해도, 그걸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니까.
오히려 기존의 것과 뒤죽박죽 짬뽕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내거나, 어색함에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역효과가 나기 일쑤지.
그렇기에 종종 자기계발서 같은 것에서 기존의 장점을 더욱더 갈고 닦고, 장벽이 생기더라도 뛰어넘으라고 가르치는 건데···
‘이것 역시 난 상관없지. 이미 필요조건을 갖췄으니까.’
역시나 나는 해당사항 없다.
잘난 척하는 건 아닌데, 구종에서 드러나듯, 내가 가진 게 좀 많거든.
뭐든지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번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바깥쪽과 낮은 코스를 자유자재로 찌를 수 있는 제구력. 땅볼을 유도하기 적합한 완성도를 지닌 변형 패스트볼. 타이밍을 찔러,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삼진을 유도할 수 있는 오프 스피드를 가졌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를 오밀조밀 잘 뭉쳐서, 조합했을 때, 어떠한 결과물이 나올까?
“아웃!”
정답은 바로 그라운드 볼러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처럼 짝퉁 그라운드 볼러가 아니라, 아주 정석적인 땅볼 투수가 만들어지지.
2번타자, 이안 데스몬드는 본인 앞에 차려진 밥상에 입맛을 다시며 홈 플레이트로 들어섰지만. 3구만에 바깥쪽 낮은 투심을 잘못 건드리면서, 가볍게 땅볼로 처리됐다.
‘오늘 하루는 로키스가 그토록 바라는 타입의 투수가 되어보자고.’
홈구장의 특성상 로키스는 언제나 좋은 그라운드 볼러를 원한다. 그럼에도 쉽지가 않지.
로키스가 에이스가 될 만큼 실력이 좋은 투수가, 드래프트로 뽑혀서, 미리미리 길러지는 게 아닌 이상, 여기 올 이유가 없거든.
설사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구단 간의 협의로 트레이드가 된다고 해도, 거부권이 있을 경우 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지.
그렇기에 언제나 에이스에 갈증을 느끼는 콜로라도 로키스인데, 오늘 나는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투수가 되고자 했다.
‘레이더스는 조금 불만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 높은 산동네까지 나를 따라온 레이더스는 대단히 불만스럽겠지만, 한 번쯤은 참는 법도 배워야지.
늘 달라는 대로 다 주면 쑤나, 버릇 나빠지게.
그렇게 오늘 경기 처음으로 잡아낸 원아웃. 삼진이 아닌 것이 아쉬운지, 레이더스는 살짝 입맛을 다셨지만. 반대로 아웃카운트가 올라간 로키스의 팬들은 별로 아쉬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기대했지.
비록 2번타자가 손쉽게 아웃 처리된 건 아깝지만, 그들에게 언제나 기대감을 주는 타자가 그 뒤를 이어서 올라왔으니까.
‘쿠어스 필드 최악의 타자가 등장하셨구만.’
3번타자 놀란 아레나도.
이 산동네의 왕이 있다면, 바로 이 녀석일 거다.
지난 3년간, 평균 40홈런에 달하는 홈런을 날렸고, 작년에는 37홈런에 컨택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3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니까.
쿠어스 버프를 제외한, 원정에서도 수준급 성적을 기록한 명실상부 로키스 최강의 타자지.
‘거기다 좌완 킬러이기도 하고.’
이건 작년부터 생긴 특징 중 하나인데, 저번 시즌 놀란 아레나도는 좌투수를 상대로 165타석 150타수 63안타 16홈런 47타점 15볼넷 17삼진을 기록했다.
비율 스탯으로 따지면 .420의 타율에 출루율 .473, 그리고 장타율은 무려 .840을 찍으며, 1.313이라는 정신 나간 OPS를 자랑했지.
그리고 올해 역시 작년보다는 덜한 듯하나, 마찬가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 아래에서 만났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텐데, 아예 산 위에서 만났으니···’
추가로 수비도 대단한 편이지만, 그거야 뭐, 나랑 관계없으니, 상관없다.
아니지, 인터리그라서 나도 타석에 서야 하니까, 관계가 있기는 하네.
아무튼 타석에서의 존재감만으로 굉장히 위협적인 타자이고, 이번 경기 최악의 적 중 하나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좋았다.
‘아레나도한테도 통한다면, 나머진 죄다 통한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일종의 전투력 테스트라고 할 수 있겠네.
우타석에 들어간 놀란 아레나도는 앞서 아웃당한 이안 데스몬드와 마찬가지로, 조금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완전히 투수를 한 끼 먹잇감으로 여기는 구만.
하긴, 쿠어스라는 이름의 만찬장에서 저 녀석에게 잡아먹힌 투수가 오죽 많겠어? 이 마운드에서 쓰러진 투수를 다 헤아릴 셀 수조차 없겠지.
적어도 난 그중 한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파울!”
우렁차게 던진 초구.
몸쪽으로 낮게 깔린 컷 패스트볼에 시작부터 큼직한 스윙이 나왔다.
간 보려고 던진 건데, 이걸 냅다 갈기네. 다행히 파울이었지만, 비거리는 큼직했다. 약간 빗맞았는데도 말이야.
“볼.”
이후 2구째, 바깥쪽으로 살짝 나가는 투심 패스트볼에 그는 스윙을 참았다, 먹잇감을 노리듯 지켜보기만 했을 뿐.
“볼.”
다시금 바깥쪽으로 던진 3구째 서클 체인지업도 지켜봤고 말이야. 좋은 컨디션 덕분에 선구안도 좋나 보네.
“파울!”
4구, 조금은 집요하게, 다시금 바깥쪽으로 던진 투심에 다시금 배트가 나왔다.
초구와 마찬가지로 멀찍하게 날아간 타구. 파울라인을 넘기는 했지만, 거의 딱 붙어서 날아가며 펜스를 때렸다.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그대로 실점이 올라갔으리라.
‘오늘 타격감도 좋나 보네.’
아무래도 오늘 타격감도 심상치 않는 것 같은데,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도 원했던 걸 얻었으니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해졌잖아?
‘폼 좋은 놀란 아레나도도, 쉽게 공략 못하고 있어. 즉 충분히 통한다.’
그걸 배웠으니, 이제 승부를 마칠 차례지.
망설이지 않고 5구를 던졌다.
이미 정해뒀으니까.
한가운데로 날아간 공.
타자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번 타석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코스니까.
아마도 실투라고는 생각 안 할 거다. 내가 실투가 없는 투수라는 건 유명하니까.
어쩌면 오프스피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한가운데 체인지업이나, 슬로 커브로 삼진을 잘 잡고는 하니까.
비슷한데 약간은 틀리다.
오프스피드처럼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건 맞는데···
“스트라이크 아웃!”
느리지는 않거든. 오히려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빠르지.
쭉 날아든 공에 그는 마지막까지 타격 동작을 이어가지 못했다.
느려지지 않고, 그대로 쭉 뻗으며,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포수의 글러브로 들어갔으니까.
포심 패스트볼.
내가 가진 가장 빠른 공이자, 오늘 경기에서는 조금 더 빨라진 공이 삼진을 만들었다.
‘이 경우는 오프스피드가 아니라, 온스피드라고 봐야 하나?’
정확한 명칭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삼진은 잡았네.
“Hell Yeah!”
“You Suck!”
레이더스도 만족했고.
드디어 오늘 경기의 첫 번재 유썩이 울렸다.
분명히 점수를 내줄 거라고 믿었던 놀란 아레나도가 루킹삼진으로 물러나자, 홈팬들은 조금은 당황한 것 같았고.
어쩌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 보아하니, 제법 많더라고, 내가 쿠어스 필드에서 무너질 거라고 배팅한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아웃!”
바라는 대로 해줄 생각 따윈 없다.
올해, 제대로 포텐이 터지면서, 주가를 올린 4번타자 트레버 스토리가 낮은 투심에 유격수 땅볼을 쳐내면서.
리드오프에게 2루타를 헌납하며, 무사 주자 2루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시작됐던 이닝이 막을 내렸다.
‘쿠어스, 생각보다 할 만하네.’
####
[실시간)오클랜드 애슬레틱스 0 : 0 콜로라도 로키스]
└고유석 입장
└아, 쿠어스라서 느낌 안 좋은데...
└홈런만 안 맞았으면 좋겠음
└대~단하신 고유석인 거 감안해서, 넉넉하게 5이닝 6실점할 듯ㅋ
└혐유석특)극단적인 투수 친화 구장인 콜리시엄 빨임
└ㅆㅇㅈ 오늘 뽀록나겠네ㅋ
└ㅈㄴ타자친화적인 레인저스 홈에서 찍은 성적은 어따 팔아먹음?
└안티들이 그걸 신경이나 쓰겠냐? 걍 되는대로 지껄이는 거지
└제발 한국인이면 고유석 응원합시다.
고유석의 쿠어스 필드 등판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애초에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고유석이긴 하지만. 쿠어스 필드의 마수에 빠진 건, 그보다 앞서 메이저리그를 밟은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기에 중계가 시작되는 즉시, 방송에는 시청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중 팬들은 부디 고유석이 평소처럼 잘 던져주길 바랐지만, 당연하게도 안티팬들은 이번에야 말로 고유석이 깨질 차례라며 소리를 높였다.
분명히 그가 쿠어스 필드에서 무너질 거라고 확신하면서.
└빠중)혐유석, 아레나도한테 쓰리런ㄷㄷㄷ
└구라치지마라 X새끼야
└진짠줄 알고 깜짝 놀랐네
└빠중)고유석 90마일ㄷㄷㄷ
└구라치지 말라고 X발놈아
└진짜야 X새끼야
허나 그런 바램이 조금은 망가지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본인 최고구속을 경신하며.
90마일조차 못 찍는다는, 안티 팬들의 주된 래퍼토리가 박살이 나버렸으니까.
그렇게 시작부터 폼이 좋아 보이는 고유석의 모습에 팬들이 미소를, 안티팬들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
“쳤습니다! 좌익수를- 넘기는 타구! 주자는 1루를 돌아서 2루로! 2루에서~~ 세이프! 1번타자 찰리 블랙몬에게 2루타를 내줬습니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장면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유석이 곧바로 너무나도 손쉽게 2루타를 내주며, 순식간에 무사 주자 2루의 위기에 몰려버렸으니까.
팬들은 물론, 안티팬들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조금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이내 이번에는 그들이 미소를 지었다.
└혐유석 개같이 멸망!
└ㅅㅅㅅㅅㅅㅅ
└이럴 줄 알았음ㅋ 1회부터 개털리네
└국뽕들 노모 히데오처럼 노히터하는 거 아니냐고 설레발치던데 응~ 아니야~ 어림도 없어~
안티팬들은 이대로 고유석이 무너지길 기원하며,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고.
└‘도살자’ 입장!
└홈런 가즈아아아아~
└한국인+쿠어스+아레나도? 이거 못 막습니다.
2번타자가 아쉽게(?) 아웃을 당한 직후, 타석에 올라온 아레나도를 보며 더욱더 기대감을 품었다.
류영진에게 천적 같이 군림하며, 압도적인 상대전적을 자랑하는 놀란 아레나도이기에.
고유석에게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예 홈런까지 하나 안겨주길 깊이 바랐으니까.
허나 첫 시작이 좋았기 때문이지, 이어진 상황은 그들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놀란 아레나도를 루킹삼진으로 처리하는 고유석! 이제 투아웃입니다!”
연이어 잘 맞은 파울타구를 날리며 가슴을 설레게 했던데 반해, 허무하게 루킹삼진으로 물러났으니까. 그다음 타자 역시 마찬가지였고.
└무사 2루인데 이걸 못 받아먹네
└블랙몬 발 빨라서 대충 발로 스윙해도 무조건 득점인데. ㅈㄴ못하네.
└그래도 오늘 혐유석 좀 별로인 듯? 공 잘맞네
└ㅇㅇ ㅈㄴ쳐맞고 강판될 듯
허탈하게 날아가버린 찬스에, 괜히 로키스 타자들을 향한 불만을 토해내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오늘 고유석의 폼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기대감을 품기에는 충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점이 올라갈 것이라며 기대감을 품었지만.
“쳤습니다! 3루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이어진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어쩌면 팬들의 기대와도 달랐고.
└고유석 오늘 작두 탄 듯
└ㄴㄴ타자들한테 귀신 씌인 거임 치는 족족 땅볼이네
└애초에 고유석은 땅볼 유도 잘하지 않음?
└쿠어스 필드인데, 평소보다 더 대단한 거지
└오늘은 ㅈㄴ 끈기 있게 낮게 던지네. 평소랑 좀 다르다.
└시원시원한 맛은 덜한데, 이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ㅇㅇ
바로 직전 경기에서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타선을 폭압적으로 찍어 누르던 것과 달리.
집요하리만치 낮거나 바깥쪽 코스를 노리며, 평소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쨌든 차근차근 타자들을 잡아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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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팀 수비는 대단히 좋은 편이다. 특히 내야가 훌륭하지.
내가 워낙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라서, 수비빨을 전혀 안 타기에, 내 경기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3루수 맷 채프먼은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력을 자랑하고, 오늘 출장한 1루수인 맷 올슨도 마찬가지지.
이 둘은 골드글러브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센터라인인 2루수 제드 라우리와 유격수 마커스 시미언도 올해는 수비력이 준수한 편이고.
그것과 오늘 내가 생각한 방향의 피칭이 어우러지면.
“아웃!”
“아웃!”
땅볼 대잔치가 열린다.
3회 말, 다시금 안타를 허용하며, 1사 주자 1루가 만들어졌지만, 곧이어 병살타가 나오면서, 오히려 이닝이 끝나버렸다.
아레나도에게 테스트하며 얻어낸 결과처럼 역시나 오늘 내 피칭이 잘 먹힌단 말이야.
‘로키스 타자들, 은근히 컨택이 좋은 편이 아니란 말이지.’
거기다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들의 경우 대부분 컨택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홈구장이 쿠어스 필드인데, 정확성에 신경 쓰기보단, 그냥 냅다 휘두르는 편이 훨씬 좋잖아?
그런 부정확한 타격과 낮은 코스의 공이 애매하게 잘 맞는 것이 어우러지면서, 땅볼을 미치도록 양산했다.
“쳤다아아아~~~”
그래도 종종 잘 맞은 타구가 나와서, 안타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아웃!”
역시나 그 이후의 득점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좀 제대로 치라고!”
“땅볼 좀 그만 쳐! 플라이볼이라도 하나 날려, 제발!”
그러다 보니, 시작부터 시끌벅적했던 레이더스와 달리, 비교적 조금은 침착했던 로키스 팬들도 조금씩 조급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타자들도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되는 것을 느낀 건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타자가 급한 마음에 막 스윙을 하면.
“스트라이크 아웃!”
“Fuuuuuuuck!”
“우우우우우우!”
그때 오프스피드가 효과를 발휘하는 거지.
다시금 끝나버린 이닝.
걱정했던 타자, 놀란 아레나도의 큼직한 장타가 나오며, 다시금 1사 주자 2루의 찬스가 만들어졌지만.
이후 타자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다시금 로키스의 공격이 저지됐다.
“우우우!”
“야이 X신들아! 좀 쳐!”
“X발 애무만 하다 끝낼래? 득점을 하라고, 득점을!”
“플라이볼 하나면 선취점인데, 그걸 못하냐!”
분명히 안타는 꾸준하게 나오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마지막 순간에 한 끗발이 모자란 상황이 지속적으로 연출되자.
결국 울화가 터진 건지, 로키스 팬들은 분노를 터트렸고, 타자들의 얼굴도 조금 더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트라이크 아웃!”
“···”
“그렇게 보지마··· 열심히 널 위해서 수비하느라 힘 빠져서 그런 거라고.”
“그래, 쿠어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너도 이해해줘야지.”
우리도 아직까지 무득점이거든. 로키스가 막힌 것처럼, 우리 타자들도 막혔지.
5회 초, 공격이 저지되면서, 전광판에 이어진 0대0의 행진에 하나의 0의 더 추가됐다.
‘쿠어스 필드에서 투수전하고 자빠졌네.’
쿠어스 필드의 투수전이라니.
이것만큼 어색한 말이 있을까? 적어도 지금 내 머릿속에선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실점을 하면 실점했지, 득점 지원은 빵빵하게 받을 줄 알았는데···’
상대 투수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이었던 건지, 마운드를 내려가다 눈이 마주쳤을 때, 왠지 모를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카일 프리랜드.
작년에 데뷔한, 나랑 동기라고 할 수 있는 투수로, 덴버 토박이 출신의 로키스 로컬인데.
그래서 그런지, 쿠어스 필드에서 무려 3.28의 방어율을 뽐내고 있다.
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싱커, 커브. 다섯 개의 구종을 능수능란하게 던지지.
어쩌면 내가 앞서 언급했던 로키스가 그토록 바라는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투수라고 할 수 있겠어.
그에게 우리 타선이 꽁꽁 틀어 막혔다. 이, 무능한 놈들 같으니.
‘뭐, 어쩔 수 없기는 하지. 타자들도 쿠어스가 적응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타격감 자체가 나쁜 것도 있지만, 거기에다가 쿠어스의 가혹함이 투수보단 덜하다곤 하나, 타자에게도 영향을 끼치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체력을 갉아먹으니, 집중력을 저하시키거든.
특히나 오늘 내가 땅볼을 미친 듯이 만들어내면서, 가뜩이나 쿠어스라서 속도가 더 빠른 땅볼을 잡느라, 내야수들이 개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으니, 체력이 더욱더 떨어질 수밖에 없지.
“내야수들은 그렇다 쳐도, 외야수들은 뭐야? 이 무능한 놈들아. 옐리치 너, 이상하게 내 경기에서 좀 못친다?”
물론 역시나 오늘도 별로 수비에서 할 일이 없었던 외야수들까지 죽 쑤는 건 이해가 안 됐지만.
“우리도 고생했어!”
“가뜩이나 넓어서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데, 네가 그걸 알긴 아냐?”
“Suck이 틀린 말 했어? 우린 그렇다 쳐도, 니들이 쳐야지!”
“핑계 밖에 대지 못하는 무능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럼그럼, 참고로 포수도 엄청 힘들다고. 안 그래도 포수 마스크 쓰면 숨 쉬기 힘든데, 쿠어스라서 더하다니까? 난 솔직히 참작해줘야 돼.”
그런 내 반응에 외야수들은 억울한 듯 소리쳤지만, 내가 자기들 편들어준다고 생각한 건지, 내야수들이 동조하면서 가뿐하게 찍어 눌렸다.
어쩔 수 없지. 외야수는 셋이지만, 내야수는 포수까지 포함해서 다섯이니까.
“쯧쯧, 득점도 못하면서 지들끼리 싸우기나 하고. 수비나 하러 가자, 쓰레기들아.”
“Suck 니가 부추겼잖아.”
“내가 언제?”
아무튼 그런 요인들로 인해서, 타자들이 개같이 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역시, 이 팀은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구만, 저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퍼펙트할 때도, 퍼펙트라 망정이지, 득점지원이 시원찮더니. 역시 내가 하는 수밖에 없겠어.’
어쩔 수 있나.
답답하니, 내가 쳐야지.
물론 나도 오늘 삼진 두 개이고, 냅다 휘두른 스윙이 공에 스치지도 못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
‘쿠어스 필드니까, 스치기만 해도 넘길 수 있어.’
쿠어스 필드의 가호가 함께하는 건, 오늘 타석에 오르는 나도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