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아메리칸 리그 9 : 5 내셔널 리그 – MVP : Go You-Suck>
<아메리칸 리그, 내셔널 리그를 제압하며 올스타전 승리!>
<고유석, 2년 연속 올스타전 MVP 등극!>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을 선보인 Go! 올스타전의 주인공이 되다!>
고유석이 내려간 뒤, 올스타전은 치열한 사투 끝에 아메리칸 리그가 승리를 가져가며, 막을 내렸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제법 많은 홈런이 터지며, 난타전의 양상이었던 경기였지만.
정작 MVP는 투수가 가져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났지만, 최소한 올스타전을 지켜본 사람들 중, 그 결과에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올해도 Go네.
└투수가 2년 연속 올스타전 MVP라니, 이것도 거의 최초 아니야?
└솔직히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이면, MVP 주긴 해야지.
└거기다 마지막 삼진은 하퍼에게 잡은 삼구삼진이었고 말이야.
└여섯 타자 연속이라니, 일곱 타자지:D
작년에 이어,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투수로서 올스타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또한 그 직후의 광고로 인해 조금 더 극적인 효과가 연출되기도 했으니까.
여섯 타자, 아니, 일곱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내는 장면을 모든 시청자들이 목도했으니.
그에 대한 이견이나, 반발은 당연하게도 생기지 않았다.
<브라이스 하퍼, ‘예고홈런’ 이후 삼구삼진의 굴욕!>
거기다, 올스타전의 가장 큰 이슈였던 하퍼와의 맞대결에서, 스스로 예고한(?)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완승을 거둔 것도 한몫을 했고.
<브라이스 하퍼, ‘홈에서 열린 올스타전, 팬들이 보는 앞에서 기대를 들어주지 못한 게 아쉬워···’>
└얜 자기가 먼저 도발해놓고 정작 삼구삼진 당했네.
└본인도 진짜 쪽팔릴 거야. 헛스윙 삼구삼진이라니.
└차라리 파울 홈런이라도 하나 날렸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그냥 완패야, 그냥 삼진도 쪽팔리는 일인데, Suck이 예고했던 대로 삼구삼진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고유석에게 그런 장면을 헌납했던 브라이스 하퍼에겐 적잖은 조롱이 쏟아지기도 했다.
전날 홈런 더비 우승의 영광을 본인 스스로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여러 가지 이슈를 낳으며, 주목을 끌었던 2018시즌 MLB 올스타 게임은, 올해 역시 고유석이라는 이름을 남긴 채 막을 내렸고.
이후 올스타 브레이크라는 이름의 약간의 휴식 시간에, 메이저리그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가며, 2018년의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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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올스타전을 마친 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왔을 땐, 빈손으로 떠났을 때와 달리, 양손이 가득했다. 뭔가 챙긴 게 많잖아?
“Suck 너 어차피 작년에 받은 거 있으니까, 그건 나 주면 안 되냐? 아니면 새 거를 가지고, 작년 거를 나 주던가.”
“Nope! 어림도 없어. 보고 구경이나 하면서 부러워하도록. 지문 남으니까, 괜히 만지지는 말고.”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이걸 또 꾸역꾸역 자랑하려고 들고 왔네.”
“똑같이 올스타전 나갔는데, 누군 빈손이고, 누군 MVP에, 자동차에, 한가득 들고 오고. 서럽다, 서러워.”
일단 올스타전 MVP 상인 유리 배트를 다시 받았지. 작년과 마찬가지로 클럽하우스에 들고 나타나니까, 다들 침을 질질 흘리더라.
영롱하게 빛나는 탐스러운 자태에 홀린 건지, 브루스가 어차피 넌 두 개니까, 자기도 하나 달라며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했지만. 당연히 가뿐하게 무시했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피땀 흘려가며 받은 건데.
‘사실 이미 하나 있는 상보다는 다른 게 더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이미 하나 탄 거라서 그런지, 나도 작년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그냥저냥 다른 선수들한테 자랑질하면서 놀리려고 가져온 거지, 메인은 따로 있지.
올스타전 MVP 상품인 쉐보레 카마로 SS와 30만 달러 말이야. 이쪽이 진짜지.
자동차는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기 전에, 오클랜드로 보내주기로 했고, 30만 달러는 광고주의 감사 인사와 함께 곧바로 내 통장에 꽂혔다.
30만 달러가 떡하니 불어난 통장 잔고를 보니까, 가슴이 다 웅장해지더라. 이 맛에 야구를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자꾸 이렇게 물질적인 이득에 맛 들이면 안 되는데 말이야.’
경건한 마음으로, 한 치의 물욕도 없이 오직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즐기며, 성실히 임해야 하거늘.
물질에 미소짓는 내 자신이 한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30만 달러면 그래도 되기는 해.
“깨지기 쉬운 유리 배트는 됐고, Suck 너 이번에 찍은 광고 보너스 탔다며? 그건 어디다가 쓸 거야? 한 턱 쏴야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다~ 들리는 소문이 있지. 이 바닥 좁은 거 알잖아?”
내 유리 배트를 탐내던 브루스는, 단호한 내 모습에 이내 포기한 건지, 이번엔 30만 달러에 군침을 흘렸으나.
그것 역시 이미 정해둔 다른 용도가 있다.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한 턱은 무슨, 버스 사야 돼.”
“버스? 뜬금없이 버스는 왜? 차 바꾸려고?”
“더블A에다가 버스 선물할 계획이거든. 고급 프리미엄으로.”
원래 계획은 30만 달러 받은 걸로 브루스에게 줄 롤렉스도 사고, 마이너에다 선물할 버스도 사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팍팍했다.
기왕 선물하는 거, 프리미엄급 버스를 사주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엄청 비싸더라.
역시나 브라이언이 알아봐 줬는데, 내가 생각한 수준의 고급 버스는 30만 달러론 택도 없더라고.
특히나 최상급들은 아예 50만 달러가 넘는 것들도 있더라.
‘번 만큼 더 쓰게 생겼네.’
조금 기준을 낮출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인데, 품위가 있지.
결국 가장 좋은 수준으로 구해달라며, 브라이언에게 부탁했다. 30만 달러 벌고, 정작 50만 달러가 나간 셈이지.
“오~ Suck 너 좋은 일하네. 하긴, 락하운즈 버스 진짜 X같지. 네 덕분에 후배들은 편하게 이동하겠네.”
그런 내 숭고함을 인정한 듯, 브루스는 더는 보너스에 군침을 흘리지 않았다.
그래, 얘도 마냥 욕심 많은 놈은 아니야. 종종 개소리를 해서 그렇지.
“근데 나 롤렉스는 언제 줄 거야?”
“꼭 받아야겠냐?”
“에이, 그래도 리그 전통인데, 지켜야지.”
“···그래.”
아닌가? 그냥 탐욕스러운 돼지새끼인가? 이걸 또 꾸역꾸역 롤렉스를 받아 처먹네.
다이어트 덕분에 두툼했던 뱃살은 빠졌지만, 빠진 지방 대신 욕심이 가득가득 찼구만.
얘한테 또 롤렉스를, 이번에도 생돈을 바쳐서 사다 준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샘솟아서.
차라리 그냥 유리 배트 줘버리고 퉁 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애써 유혹을 뿌리쳤다.
‘결과적으로 올스타전에 얻은 거 다 털렸네.’
버스 값에, 롤렉스까지.
부상품으로 받은 쉐보레 카마로랑, 올스타전 상금까지 합쳐도, 오히려 더 썼으면 썼지, 덜 쓰지는 않았구만.
그래도 광고 계약금으로 받은 돈이 따로 있으니, 그나마 속이 좀 덜 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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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걸 모두 다 토해내며 축제가 막을 내린 뒤,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짧은 올스타전 브레이크가 끝나면, 다시 숨 가쁘게 공을 던져야 하는 후반기가 시작되니까.
“22일, 3차전에 등판이야.”
일단, 후반기에 앞서, 난 3선발이 됐다. 소니 그레이가 후반기 첫 경기의 시작을 맡았고, 그다음을 션 마네아가.
그리고 마지막이 나지.
분명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오클랜드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는데 말이야. 한순간 3선발로 밀려났네.
전반기에 272K나 잡았으니, 내 자리는 영원히 굳건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밀려났군.
“작년엔 그래도 언제 등판할지 제가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올해는 그런 거 없나요?”
“없어, 올스타전에서 아주 작정하고 던지던데, 그만큼 더 쉬어야지. 물론 완투도 없고. 반론은 안 받을 거니까, 그냥 받아들여.”
“넵.”
물론 진짜로 내 입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 그냥 최대한 휴식을 챙겨주는 차원에서, 로테이션의 조정이 있었다.
올스타전에서 미친 듯이 던졌잖아. 중간에 올스타 브레이크가 끼여 있었다곤 해도, 쉰 의미가 없는 셈이지.
오늘의 고유석은 어제의 고유석이 떠넘긴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구만.
‘이미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화가 제대로 났네.’
퍼펙트하고 이틀 쉰 투수가 올스타전에서 전력투구를 미친 듯이 하며, 대~단한 여섯 타자 삼진을 해버렸으니, 빡이 돌만 하기는 하지.
‘대니얼도 마찬가지였고.’
대니얼에게도 함께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내내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는데, 이미 예상하고, 각오했던 일이기에,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럼 그렇게 알고, 천천히 준비해. 또 무리하지 말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퍼펙트고 나발이고, 이번 경기는 절대로 완투는 없으니까, 유의하고. 후반기 첫 홈경기인데, 팬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일 생각도 하지 말고.”
그렇게 내 후반기 첫 등판은 스콧 에머슨의 강권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인터리그 홈 3연전 중 3차전으로 결정됐다.
조금 긴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같은 팀을 연달아서 두 번 상대하게 됐네.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지.’
사실 똑같은 타선을 연달아서 상대하는 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약간의 위험이 존재하지.
타자들이 나한테 익숙하고, 내 동작이 어느 정도 눈에 익은 만큼, 적응하기가 더 쉽고, 타이밍도 금방 잡거든.
거기다 난 퍼펙트게임이었잖아. 말 그대로 내 완벽했던 피칭을 상대한 셈인데.
‘웬만큼 잘하지 않는 한, 이전 경기의 하위호환처럼 보여서, 보다 더 쉽게 느껴지겠지.’
또한 퍼펙트게임을 당한 만큼,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타자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 자칫 잘못했다간, 후반기의 시작부터 낭패를 볼 수도 있겠지만···.
‘나야 뭐, 딱히 상관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난 해당사항 없다.
자주 만난다고, 쉽게 칠 수 있는 공이었으면, 레인저스나 애스트로스의 상대전적이 왜 이 모양이겠어. 진즉에 날 두들겨 팼겠지.
이미 내 절정의 폼을 맛본 타자들에게, 지금의 내가 하위호환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전반기에만 20승에 155이닝 던지고, 272탈삼진 잡은 투수의 열화판이면···’
솔직히 아무리 낮게 잡아도 사이 영 상 3위는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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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준수하네요. 감각은 어떤 것 같습니까?”
“나쁘지 않아요, 경기감각도.”
“예, 그러시겠죠, 꽤 오래 쉬었다고 해도, 중간에 올스타전에서 미친 황소처럼 던지셨으니, 당연히 감이 살아 있겠죠.”
“그 얘긴 이제 그만합시다.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마지막 등판 이후 제법 공백이 있었다고는 하나, 폼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시작되기 전에, 사이클이 좋았었잖아.
중간에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어쨌든 좋았던 감각이 남아 있는 거지.
그걸 대니얼과 함께 최대한 일깨웠다. 중간에 올스타전에서 적절하게(?) 잘 던진 덕분인지, 빠르게 올라오네.
‘솔직히 짧게 던지긴 아까운데 말이야.’
이 정도면 완봉은 몰라도, 넉넉하게 8이닝 정도는 손쉽게 던질 수 있을 것 같기에.
스콧 에머슨이 단호하게 걸어 놓은 이닝 제한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지금 로테이션 대로면, 다음 등판이 쿠어스지.’
다음 등판이 쿠어스 필드거든. 흔히 쿠어스 필드에서의 등판이 있을 땐, 거의 한 달을 놓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장타를 쉽게 허용하는 부정구장의 특성도 있지만, 체력적인 부담도 장난이 아니거든.
대체 어떤 또라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대단한 분께서 해발 1,610미터에 위치한 덴버에 야구단을 설립하고, 홈구장을 건설한 덕분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설악산 꼭대기에 야구장이 있는 수준인 건데, 그 덕에 고산병 증상을 유발한다고 하지.
‘길어야 7이닝 정도인가? 어쩌면 6이닝으로 끊을지도.’
그러니 코치로서도, 내가 쿠어스 등판을 거를 게 아닌 이상에야, 미리미리 내 체력을 비축해두려는 것 같은데.
나도 기꺼이 따라줘야지.
물론 이닝에 한해서만.
‘이닝이 짧으면, 그 짧은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폭발력을 실으면 되는 거지.’
난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공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 언제나 지금 당장이 가장 중요하지.
정확하게 끊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딱 7이닝 정도만 던지게 할 것 같은데. 그 7이닝을 완봉 같은 7이닝으로 한다면.
내 멋진 피칭을 기대하는 팬들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 같이 하하호호, 얼마나 행복하겠어.
‘물론 대니얼과 코치는 이마를 감싸 쥐겠지만, 공리주의를 따라야지. 두 명의 골치가 아픈 대신, 수십, 수백 만 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닐까?’
“딴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아, 그냥 이번에 받은 쉐보레는 언제쯤 오려나, 궁금해서요.”
“며칠 걸린다니까, 아마도 다음 원정 일정을 마친 뒤에, 타시겠네요. 노란색으로 하셨다고요?”
“네, 트랜스포머가 생각나서. 그거도 쉐보레 카마로 맞죠? 그 로봇.”
“예, 맞을 겁니다. 멋지긴 하겠네요, 타고 다니면 죄다 쳐다보겠는데요?”
다만 이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눈앞의 대니얼도, 코치도, 아주 기를 쓰고 날 옭아매려 들 것이기에, 겉으로는 적당히 수긍하는 척 준비했고.
“준비됐지?”
“나야 언제든지 준비됐으니까, 브루스 너나 공 잘 받아, 롤렉스 값 하라고.”
“최선을 다해서 받을 테니까, 자꾸 그렇게 갈구지 좀 마. 아무튼 오늘도 잘해보자. 오늘은 리미트 걸려 있으니까, 아쉽지만, 퍼펙트는 못하겠네.”
“그걸 짧은 이닝 안에 축약시켜야지.”
그렇게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운명의 날이 밝았을 때.
“스트라이크 아웃!”
저번 경기와 마찬가지로 1번타자로 나온 체이스 다노에게 전력으로 삼진을 선사하며, 진심을 드러냈다.
스콧 에머슨과 대니얼이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구만.
물론···
“스트라이크!”
그마저도 자이언츠가 내쉰 한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겠지만.
확실히 금방 다시 만나서 그런가, 타자들의 눈동자가 공을 손쉽게 쫓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멀끔하게 공을 던지는 내 모습에,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건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저번 경기에 이어, 오늘도 2번타자로 나온 브랜든 벨트만 봐도,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굳었지.
“스트라이크!”
그럴 수밖에.
제 아무리 지난번, 퍼펙트 게임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자이언츠, 자신들을 다시금 때려잡는 것 정도는 충분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파울!”
기대했던 대로, 후반기 첫 번째 경기를 맞이한 내 폼은 굉장히 좋았다. 이미 말했다시피, 짧게 던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그러니···
“스트라이크 아웃!”
아깝지 않도록 던지면 되는 거지.
“You Suuuuuuuuck!”
연속해서 올라간 삼진.
전반기와 다를 바가 없는 피칭에 팬들 역시 전반기 내내 그랬던 것처럼 환호성을 내질렀고.
“스트~~~라잌 아웃!”
마지막 3번타자, 앤드류 맥커친까지 잡아내며, KKK가 올라가자, 콜리시엄은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 활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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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기 전, 자이언츠 타자들은 서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었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이었고, 똑같이 다짐했지.
‘어떻게든 퍼펙트는 깨트려야 돼. 최소한 5이닝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퍼펙트 게임.
그날의 악몽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한 녀석에게 두 번이나 당한 것도 모자라.
안방을, 자이언츠의 성지와도 같은 AT&T 파크를 아예 내어줬으니까. 심지어는 그 안방을 채운 집사람(팬)마저도.
그런 최악의 참사를 당한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만약에 다시금 당해버린다면. 그땐 정말로 명색이 메이저리그의 타자로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겠지.
그렇기에 퍼펙트만큼은 어떻게든 면하고 싶었고, 만약 상대가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출루를 하겠다는 다짐을, 서로 간에 공유했지.
“오늘도 폼이 좋아 보이는데···”
“젠장, 설마, 아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하아··· 어차피 쉬게 할 거면, 차라리 다음 경기까지 쉬게 할 것이지, 굳이 우리 상대로 내보내 가지고···”
허나 1회 초. 다시금 그들에게 KKK를 선사하며, 10이닝 연속 퍼펙트를 이어가면서, 또 한번 마수를 뻗치는 투수의 모습에, 그토록 비장하게 결의를 다졌는데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지난 경기의 공포가 자라났지만.
“세이프!”
“으아아아아아!”
곧 2회 초, 6번타자 브랜든 크로포드가 놀라운 안타를 쳐내며, 그토록 자이언츠를 좀 먹었던 퍼펙트에서 해방됐다.
“잘했다! X나게 잘했어, 브랜든! 내가 본 최고의 스윙이었어!”
“이 X같은 새끼! X발 우리가 두 번이나 당할 것 같아?”
“브랜든 사랑한다! 니가 최고야!”
한 투수를 상대로, 두 경기 연속 퍼펙트라는 최악의 참사를, 조기에 방지한 것에, 자이언츠의 타자들은 환하게 웃었고.
홈팬들의 야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의 승리를 따낸 것처럼 포효를 내지르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조금 시간이 지나, 흥분이 가라앉은 뒤 찾아온 현실은 생각보다 조금 더 싸늘했다.
그토록 환호하고, 기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투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곧바로 그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이닝을 끝내버리더니.
“스트라이크 아웃!”
그 이후 이어진 이닝에서도 퍼펙트를 제외한 그 외의 모든 악몽을 다시금 자이언츠에게 선사했으니까.
‘그래도 저번 경기보단 나아.’
물론 퍼펙트가 제외되지 않았던 지난 경기보다는 분명히 나았다. 최소한 버스터 포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투수의 폼만 보더라도, 도무지 공략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며칠 전, AT&T 파크에서와는 달리, 그래도 오늘은 공이 조금 잘 보이기라도 했으니까.
“오늘은 그래도 좀 할 만하지?”
“저번 경기보다야 낫지, 여전히 엄청나게 빡세기는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말을 했었고.
“제구가 대부분 안쪽으로 몰리고 있어, 차분하게 지켜보면서 공략하면 충분히 칠 수 있으니까, 다들 집중해! 저번 경기보단 훨씬 낫다고!”
그렇듯 공략할 여지가 남아 있었기에, 타격코치 또한 그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던 지난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타자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고 말이다.
“세이프!”
이후, 이닝이 이어지면서 다시금 안타를 쳐내고.
“베이스 온 볼!”
어쩌면 저 투수에게 있어선 홈런만큼이나 진귀한 볼넷까지 얻어내는 등. 확실히 전보다는 분명 훨씬 좋은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딱 그 정도였다. 그들의 공격은 오늘도 손쉽게 틀어막혔고, 전광판의 점수는 저번 경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0이었으니까.
-Go! 5회 초 투아웃에서, 다시금 삼진을 잡아내며, 5회 초 역시 손쉽게 막아냅니다!
“You Suck!”
관중들이 그에 환호하고 있는 것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고.
분명히 퍼펙트를 당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나오고 있었지만. 버스터 포지는 물론, 자이언츠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녀석이 삼진을 잡고, 마치 빗자루질을 하는 것처럼 타선을 자이언츠를 쓸어버린다는 큰 틀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마치 절대불변의 확고한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X같네.”
그렇기에 버스터 포지 역시, 지난 경기에서 했던 말을 다시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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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이닝 정도로 끊을 거야. 미리 얘기했던 대로. 리암이 이미 불펜에 들어갔으니까, 괜한 소리는 하지 마.”
“예예, 잘 알겠다니까요.”
의욕이 넘치는 내 모습과 수월하게 이어지는 경기, 그리고 열광적인 관중들의 분위기에, 혹시라도 내가 갑자기 흥이 올라서 고집을 부릴까, 걱정스러웠던 건지. 이닝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스콧 에머슨은 가볍게 주의를 줬다.
갑자기 완봉까지 가겠다느니 뭐니 하는 헛짓거리 할 생각은 말라는 거지.
‘거참 사람을 못 믿으시네.’
무슨 인간불신에 걸린 사람도 아니고. 가끔은 그냥 날 믿고, 좀 느긋하게 경기를 지켜보셔도 괜찮을 텐데 말이야. 너무 예민하셔.
‘그리고 방향도 잘못 잡혔고.’
그리고 스콧 에머슨은 아무래도 무언가를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저 많은 이닝을 던지길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 같거든. 그러니 철저하게 이닝만 틀어막는 거지.
물론 어느 정도는 비슷하긴 한데,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약간은 다르다. 사실 겉보기와 달리, 난 그렇게 이닝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그것 참, 여태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설득력 없는 말이네. 코치한테 가서 그대로 말해보지 그러냐? 개소리 말라면서 소리칠 텐데.”
“닥쳐, 브루스, 넌 공이나 잘받아. 너 지금 롤렉스 값 못하고 있어. 4회에 너 때문에 카운트 하나 손해 본 거 알지?”
“예예, 죄송합니다, Mr.Suck. 제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을 받겠습니다.”
진짜야. 굉장히 설득력 없게 들린다는 건 아는데,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온 순수한 진심이다.
난 많은 이닝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좋은 공을 던져서, 그것으로 타자를 잡고 싶은 거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고, 가장 강력하고 압도적인 공을 던지는 순간이니. 최대한 즐겨야지.’
이 짜릿한 손맛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깊게 즐기고 싶어서, 그저 내 스스로 만족할 만큼 타자를 잡고, 또 잡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닝이 늘어나버린 셈이지.
결국 같은 말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오늘만 봐도 그렇다.
좋은 폼에 비해, 고작 7이닝, 그것도 홈에서 고작 7이닝 밖에 던지지 못하는 것이 애석하기도 하지만.
“스트라이크!”
사실 나는 지금 꽤 만족하고 있거든. 물론 조금 더 던질 수 있고, 조금 더 타자들을 돌려세울 수 있다면 훨씬 더 좋겠지만···.
“스트라이크!”
오늘 경기에서도 충분히 많이 잡아냈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경기의 마지막 손맛을 완성시키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높이 찍힌 하이 패스트볼, 마지막 여력을 가득 담아 공을 찍어 누른 탓에, 왼손가락이 살짝 저려오기도 했다.
그 대신 구위 역시 묵직한 무게감을 가졌기에 일품이지.
눈높이로 날아온 공에, 6번타자, 브랜든 크로포드는 억지로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배트가 딸려 나왔다.
특히나 오늘 안타를 하나 치면서, 그 역시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맛을 봤기에, 더욱더 참기가 힘들었겠지.
그래도 정확하게 맞았다면, 좋은 타구가 나와, 멀티히트를 기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배트는 공보다 조금 더 아래의 허공을 가르며 쭉 뻗었고,
결국 적절한 방지턱을 만나지 못한 타자의 몸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한 채, 밸런스가 무너졌다.
헛스윙 삼진아웃.
오늘 경기의 마지막 위닝샷은 89.2마일의 강속구였다.
“You Suuuuuck!”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럽지. 누누이 말했던 대로 좋은 공을 던져서, 많은 타자들을 쓸어 담았으니까.
물론 그렇게 타자들을 조지면서 완성된 7이닝 14K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이라는 성적도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말이야.
“이대로 끝까지 가자!”
“퍼펙트는 아깝게 못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완봉은 해야지! 자이언츠를 죽여버려!”
나와 마찬가지로 홈팬들 또한 만족스러웠던 건지, 아예 이대로 끝까지 가자면서, 완봉을 소리치기도 했는데, 마음 같아선 나도 들어주고 싶지만, 오늘은 아주 칼 같은 제한이 걸려 있기에, 그들이 바라는 것처럼, 경기의 마지막까지 던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자는 말만큼은 충분히 들어줄 수 있지.
‘시즌의 끝까지 말이야.’
이제 정규시즌의 반환점도 돌았겠다, 이번 경기가 아니라, 이번 시즌의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시원하게 쭉 달려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