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누군가가 남긴 기록을, 오랜 세월이 지나, 또 다른 이가 경신하거나, 깨버리는 일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흥분과 환희가 함께한다.
오래되어 빛바랜 낡은 기록을 뒤로한 채,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순간이니까.
허나 오늘은 달랐다.
그 누구도 걷지 않은, 걷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니까.
“두 번째 퍼펙트라니··· 그것도 올해에만!”
“심지어 전반기야! 전반기만에 두 번이나 해버린 거라고!”
“자이언츠를 콜리시엄에서 한 번, AT&T에서 한 번 퍼펙트로 잡았네. 이런 일이 있었나?”
“없지, 애초에 지금까지,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두 번 퍼펙트를 한 선수도 없으니까.”
“그나마 퍼펙트가 가장 많이 나온 시즌이 12년인데, 그때 아마 세 번 했을 걸? 제각각 다른 선수들이.”
조금은 의문이 생겨날 정도였다. 몇몇 팬들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과연 내가, 내 일생을 통틀어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었을까?
설사 내가 아니더라도, 내 아버지가, 내 아버지의 아버지라도 이런 걸 본 적이 있을까?
어쩌면 자신의 핏줄을 통틀어, 내가, 나만이 목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최소한 수백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털이 바짝 솟았다.
“내가··· 이런 걸 직접 봤다고? 내가?”
“X발, X발!”
그 누구도 걷지 못했던 길.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이건 더 이상 역사가 아니었다.
신화나 전설에 가까웠지.
고유서의 퍼펙트가 달성된 순간, 오클랜드가, 어쩌면 베이 에어리어 전체가 잠시 꺼졌다.
그리고 다시 불이 커졌을 땐, 그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와 같은 환희가 일대를 휩쓸며, 서서히 늦어가는 시간에 졸린 눈을 비비던 사람들을 일깨웠다.
“Hell Yeah!”
“X부랄 놈의 Suck의 시간이다아아아아!”
“Suck이 자이언츠를 따먹었다! 메이저리그도 따먹고! X발 놈의 베이스볼도 따먹었다!”
조금은 괴상망측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오클랜드의 도로 곳곳에선 사이드쇼-거리의 한복판에서 자동차가 빙글빙글 도는 행위-가 이어졌다.
몇몇 호기로운 이들은, 그들의 Suck, 고유석을 향한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듯.
타이어 바퀴 자국으로 그의 이름을 도로 위에 깊이 새겨놓기도 했고 말이다.
조금 우습게도, 그걸 막거나, 피하거나, 귀찮게라도 보아야 할 경찰관과 일반 시민들도 그런 대오에 합류했다.
그 장면을 함께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참을 수 없는 기쁨 역시 마찬가지였고.
경기가 끝난 뒤,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거나, 혹은 진정시켜야 할 고유석이.
인터뷰에서 그저 감사하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무대의 뒤로 사라졌기에, 어쩌면 더욱더 타오르는 것도 있었다.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는 앵콜에, 관객들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이,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오래전, 수많은 문헌에 남은 잠들지 않는 도시, 불야성처럼, 샌프란시스코 만 일대의 도시들이 잠들지 않은 채 반짝였다.
“Suuuuuck!”
이라는 일관된 굉음만 내지르면서.
그런 불야성 속에서 자이언츠는 그저 외롭게 홀로 울으며, 씁쓸함을 곱씹었다.
“X발 놈의 Suck···”
“작년에도 이 지랄이더니···”
“개 같은 박쥐 새끼들··· X발 자이언츠가 X같은 꼴을 당했는데, 뭐가 좋다고 난리를 부리는 거야···”
어쩌면, 1968년 애슬레틱스가 처음 오클랜드로 날아왔을 때, 베이 에어리어에 정착했을 때.
자이언츠가 신경질적으로 예견했던 최악의 재앙이, 5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베이 에어리어에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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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8 : 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전반기의 마지막, 베이 브릿지 시리즈에서 2승 1패로 위닝! 72승 25패로 전반기 마감.>
<애슬레틱스, 전체 1위를 지키며,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
다음날, 올스타 게임 전, 마지막 경기가 종료되면서, 애슬레틱스의 황홀했던 전반기도 막을 내렸다.
메이저리그 전체 1위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지키면서, 시즌 전의 기대를 아득하게 초월해버린 애슬레틱스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슬레틱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20연승&2번의 퍼펙트게임! Go, 역사상 길이길이 기억될 전반기를 보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날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까. 수많은 야구팬들도, 미디어도.
분명 애슬레틱스의 전반기도 충분히 강력했고, 역사에 손에 꼽힐 만한 페이스였지만.
그마저도 우습게 여길 만한 시간을 보냈던 한 선수로 인해, 애슬레틱스는 비교적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시즌이었다면, 평범하게 전반기를 리뷰하고, 평가했을 전문가들 역시, 여전히 고유석의 이름 앞에 허우적거리기 바빴고 말이다.
<고유석, 전반기 퍼펙트 게임 ‘2회’ 불멸의 기록을 수립하다!>
<나날이 늘어나는 최다 퍼펙트 게임! Go, 통산 4회!>
<동일 팀 상대, 홈&원정 퍼펙트게임! 자이언츠, Go에게 두 번 무너지다!>
<‘베이 에어리어의 신’이 AT&T 파크에서 승천했다!>
<작년 월드시리즈 이상? 최대 2천만의 시청자가 Go의 퍼펙트를 목도!>
다른 것도 아니고, 한 선수가 한 시즌 동안, 심지어 전반기에만 두 번의 퍼펙트 게임을 완성시키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니.
그 외의 나머지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던 전반기의 마지막을,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장식해버렸기에, 흥분 역시 쉬이 가라앉지 못했고 말이다.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베이 에어리어 전역으로 퍼져나간 불야성은 한동안 지속됐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 충격과 공포가 어우러진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린 전반기였지만.
<고유석, 20경기 20승 0패. 155이닝 272탈삼진, 반시즌 만에 사이 영을 확정 짓다!>
<전반기만으로 이미 역대 최고 수준? Go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투수!>
그 충격마저도 그가 전반기 동안 올린 성적에 비하면 약과에 불과했다.
<20연승, 두 번의 퍼펙트, 두 번의 20K, 그리고 두 번째 전반기 200K, 간략하게 돌아본 Go의 2018시즌 전반기>
└이게 사람이냐?
└진지하게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해부해야 하지 않아?
└전반기에만 155이닝 던진 거 보고, 혹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 성적보고 그냥 닥치기로 했어.
└솔직히 이 정도쯤 하는 투수 있으면 혹사고 나발이고 굴려야지.
└오클랜드 코치들 자제력이 대단하네. 나였으면 이틀 걸러서 한번 등판시켰을 텐데.
└아메리칸 리그 애들은 이 꼴을 대체 어떻게 보고 산 거냐?
└레인저스나 애스트로스가 제일 대단하지. 내가 그쪽 팬이었으면 진즉에 야구 끊었을 걸.
└레드삭스도 만만치 않아. 한 투수한테 20K를 두 번 당하고, 그중 한번은 퍼펙트라니···
전반기가 끝나고, 중간 성적표가 나왔을 때. 지난 길을 돌이켜본 이들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는 했다.
다시 돌이켜본 고유석의 모습은, 그에게 시달렸을 아메리칸 리그의 팀들과 타자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애슬레틱스가 72승이나 올렸다는 소식이나, 한 투수가 전반기에만 20승을 올렸다는 것에 혀를 찼던 이들 역시.
오히려 고작 그 정도밖에 못 이긴 것이 신기하다고 고개를 젓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전반기의 일정이 끝나며, 올스타 브레이크가 찾아왔을 때.
최소한 메이저리그 팬들은 한 가지에는 모두 다 동의했다.
일단 이 미친놈이 뭐든지 대표해야 하기는 할 것 같다고.
그게 아메리칸 리그든. 메이저리그든.
└진지하게 NL 올스타 상대로 완봉도 하겠는데?
└에이, 그럴 리가 있나. 3일 쉬고 등판하는 건데, 완봉은 힘들지. 아마 7이닝 15K쯤 할 거야.
└일단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공격은 2회까진 없는 셈 쳐야겠네.
└언젠가 외계인이 야구 붙자고 덤비면, Suck을 등판시키자. 혼자 퍼펙트하고 돌아올 걸?
└진지하게 외계인 팔이 네 개고, 근력이 고릴라 수준이어도, 삼진 열 개는 잡겠어.
└열 개? 고작? 난 최소한 열다섯 개는 잡는다고 본다.
아니면 인류 전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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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경기 이후로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계속 몸이 뜨끈뜨끈하더라고. 여름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좀 더웠지.
뭐랄까, 참을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년 같다고 해야 하나?
“가벼운 감기 증상이네요. 조금 무리를 하시기는 했죠. 피로가 쌓여서 이런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아, 진짜 열병이었네.
뭐야, 난 흥분이 안 가라앉은 건 줄 알았더니. 그냥 몸살 증세였구만.
원래 완봉한 다음에는 어딘지 모르게, 몸이 좀 이상해지기는 하지. 피로가 쌓였구만.
“올스타전은···”
“지금까지 Go의 회복력을 고려했을 때, 그전까지 금방 말끔하게 회복될 테니, 딱히 문제는 없겠지만, 과하게 무리하지는 않으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자칫 피로가 더 누적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심한 증상은 아니고, 그냥 몸에 열이 차오른 수준이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금방 회복이 됐었지.
올해 회복력이 미치기는 했어. 아무리 그래도 완투를 했는데, 금방 피로가 풀리는 걸 보면.
괜히 인터넷에서 날 해부해보자고 하는 게 아니야.
‘다행히 올스타전은 문제없겠네.’
행여나 올스타전까지 회복되지 않아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걸러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천만다행이군.
혹시나 출전 못하면, 이번 광고 계약에 추가 보너스로 걸린 30만 달러도 그냥 날아가는 건데, 얼마나 아깝겠어.
특히나 그 보너스를 더욱더 타야 될 이유가 생기기도 했고.
‘내가 이때까지 사준 게 몇 갠데, 이번에도 내 피 같은 돈을 쓸 수야 없지.’
또또또또 브루스에게, 망할 놈의 롤렉스를 사다 바쳐야 하는데, 이젠 내 돈으로 사주기 싫거든.
내가 걔한테 사준 롤렉스 다 팔면, 과장 좀 보태서 샌프란시스코나 산호세에 그럴듯한 집도 한 채 살 걸?
그러니 또다시 걔한테 내가 땀 흘려 벌은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보너스도 내가 직접 광고 찍고 받아낸 정당한 대가이기는 하나. 어쨌든 이건 추가 보수금 정도니까.
이걸로 롤렉스 사주면, 그나마 덜 아깝겠지.
“적당히 피로만 풀고, 바로 가시죠.”
그러기 위해,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 차근차근 몸을 풀면서 준비했지만,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그냥저냥 집에 마련해놓은 기구들로 적당히 회복 훈련만 하는 거지.
올스타전이라고 해도, 길어야 딱 2이닝 던지는 수준이니, 그 정도에 맞춰서 피로를 푼 뒤에. 바로 워싱턴 D.C, 내셔널스 파크로 떠나는 거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대니얼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을 때. 차 안에선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Go는 총 20번의 등판에서 272개의 탈삼진을···
오클랜드 지역 라디오다 보니, 역시나 내 얘기였지.
퍼펙트 이후로 내내 내 얘기밖에 안 나오거든. 티비를 틀던지, 라디오를 틀던지. 도시 곳곳에는 내 얼굴이 걸려있고.
이젠 적응을 해서 그런지, 딱히 부끄럽다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새삼 대단하기는 하네요. 마냥 옆에서 지켜보면서, Go를 돕다 보니, 미처 잘 느끼지 못했는데···”
대니얼도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나랑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더욱더 체감이 안 됐을 테니까.
“대단하긴 하죠, 제 스스로 생각해도.”
“예, 대단한 순간이었네요, 다시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올해 내 성적, 내가 걸어온 길을 남의 입으로 들으면, 조금 뿌듯하고 말이야.
진짜 잘하기는 했어. 엄청나게. 내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을 만큼.
“계속 대단해야죠, 마지막까지.”
허나 아직 종착역은 아니다.
이제 반환점을 돌은 거지.
특히나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더 긴 시즌이 될 테니, 벌써부터 만족하고, 그대로 누울 생각은 없었다.
‘며칠 뒤에는, 다시 마운드에 올라야 하니까. 그리고 이겨야 하고.’
그냥 아주 잠깐 쉬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거지. 최소한 월드시리즈에서도 대단해지기 전까지는, 쉴 시간은 없으니까.
물론 나는 중간에 올스타전에서 2이닝을 던져야 하기에, 잠깐 쉴 수조차 없겠지만.
진짜 은근히 더럽게 생겨먹은 직업이라니까, 메이저리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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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도착한 뒤, 마찬가지로 올스타에 뽑히면서, 함께 동행한. 제드 라우리, 크리스티안 옐리치, 그리고 블레이크 트라이넨은 가족들과 합류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쯤 되면 거의 가문의 영광 수준이라, 일가친지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직계 가족은 총출동하는 게 보통이니까.
“Suck 넌 가족들 없어?”
“한국에 잘 있어, 왜 멀쩡히 살아있는 가족들을 없는 사람 취급해. 나 고아 아니야.”
“아니아니, 안 왔냐고.”
“안 왔지. 그쪽들은 좋겠수? 가족들이 다 와서.”
물론 난 해당사항 없고.
부모님 두 분 다 한국에 있으니까. 올스타전은 참석 못하셨고, 어쩔 수 없지.
왠지 좀 쓸쓸하구만.
“오히려 피곤해, 얼굴도 모르는 사촌들까지 왔다니까? 올스타가 뭐라고.”
“누가 보면 올스타 되게 많이 뽑힌 줄 알겠네.”
제드 라우리는 복에 겨운 건지, 오히려 귀찮다는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올스타 게임 전날, 사랑하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난 칙칙한 아저씨들과 홈런 더비나 구경했다.
이렇게 표현하면 브라이언이랑 대니얼이 서운해하겠네. 화사한 아저씨들이라고 하자.
“홈런더비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네요?”
“지역의 슈퍼스타가 출전했으니까요.”
“아, 브라이스 하퍼. 그러고 보니 명단에 있었죠.”
“Go가 콜리시엄에서 홈런 더비에 출전한다면, 아마 비슷한 풍경이었을 겁니다.”
“만약 진짜로 그러면, 그건 좀 다른 이유로 사람이 몰리겠죠.”
올스타 게임 전날의 내셔널스 파크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올스타전의 보조 이벤트에 불과한 홈런더비라고는 하나.
어쨌든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슬러거들이 맞짱을 뜨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고.
거기다가 내셔널스 파크의 아이돌인 브라이스 하퍼까지 출전했으니, 사람이 몰리는 거야 당연했다.
‘하퍼를 지독하게 사랑하니까.’
흔히 내셔널 트레저.
즉 국보라고 표현한다.
브라이스 하퍼와 스트라스버그 말이야.
각각 본인 드래프트에서 최대어로 꼽혔던 두 선수이기에, 내셔널스 팬들이나, 언론에서 그렇게들 지칭했지.
적어도 내셔널스 팬들에겐 우리나라의 남대문 같은 스타들이니.
팬들로선 그런 자기들의 히어로가 남의 집 새끼들 다 때려잡고 홈런왕(일회용)이 되는 걸 꼭 보고 싶을 수밖에.
“내일 등판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틀밖에 쉬지 않았는데···”
“멀쩡해요, 이 정도면.”
“행여 보너스 때문에 무리하시는 게 아닐까, 괜히 걱정스럽군요.”
“설마 그렇겠어요? Go도 이제 마냥 어린 선수가 아닌데.”
물론 브라이언과 대니얼의 보물은 나 고유석이기에, 두 사람은 정작 나와 함께 가자 좋은 자리에서 홈런더비를 관람하는데도, 나한테 신경이 쏠려 있었지만 말이야.
브라이언은 아무래도, 완투 직후 이틀의 휴식만 취한 뒤, 곧바로 올스타전에 출전해야 하는 내가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행여나 무슨 탈이라도 날까, 염려되는 거겠지. 내가 30만 달러의 보너스에 눈이 돌아서 무리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이 사람들, 날 너무 잘 알아.’
그게 사실이긴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코치나 매덕스도 날 꿰뚫어 보더니, 브라이언과 대니얼도 이젠 귀신이 돼버렸어.
물론 진짜로 30만 달러 때문에 억지로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게 아니다.
‘기왕이면 올해도 올스타전 MVP 해야지. 이번엔 스포츠카는 아니던데. 그래도 나쁘진 않겠어. 올스타전 상금도 좋고. 10만 달러쯤 되던가? 선수들끼리 나눠서.’
받고 쉐보레랑 상금까지 추가지.
특히 쉐보레, 직접 타보니까, 차가 괜찮더라.
올해도 올스타전 MVP 수상해서, 보상으로 얻고 싶어. 공짜 차,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렇게 순수한 물욕에 찌들어, 올스타전을 바라보던 나를 일깨워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이스 하퍼였다.
-브라이스 하퍼! 보너스 타임 16초를 남겨두고! 19번째 홈런을 때려냅니다!
“Yeeeeeeeeeeah!”
“하퍼! 하퍼!”
“X발 네가 최고다! 트라웃이고 나발이고, 니가 최고야!”
“올스타전에서도 홈런 날려!”
모든 내셔널스 팬의 염원(?)을 담아, 19번째 홈런을 날리면서, 그가 홈런 더비의 최종 승자를 차지했는데.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은데···’
팬들을 향해 멋지게 세리머니도 하고, 환호성도 지르더니, 어느 순간 나랑 눈이 마주쳤다.
딱히 연락한 적은 없지만, 작년에 만나서 서로 번호도 교환했고, 별로 나쁘지 않게 생각했기에 살짝 손을 흔들어준 뒤, 나도 축하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쳐줬는데.
“음?”
“Go를 가리킨 것 맞죠?”
“뭐야, 여기 누가-”
“어? Suck 아니야?”
“어··· 하퍼가 Go한테 선전포고한 건가?”
“내일 홈런 치겠다는 거 아니야?”
이 배은망덕한 슈퍼스타는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대뜸 실실 웃으면서 홈런 친 배트를 다시 집어 들더니, 나를 가리켰거든, 배트 끝으로. 그러더니 씨익 웃었고.
마치 전설처럼 내려오는 베이브 루스의 예고홈런처럼 말이야.
원래도 쇼맨십이 넘치는 타입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홈런 더비 우승을 축하해준 나한테까지 저럴 줄은 몰랐는데···
‘그냥저냥 돈만 따고 가려고 했더니, 승부욕에 기름을 확 부어주시네?’
덕분에,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아 조금은 평온했던 마음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퍼펙트도 했겠다, 편~하게 삼진 간단하게 잡고 보너스나 챙기려고 했는데, 이러면 나도 못 참지.
그래서 난 어떻게 했냐고?
별거 안 했다.
“어- 어어어-”
“찍어! 찍어! 빨리 찍어!”
“손가락 세 개··· 목? 삼구삼진 잡겠다는 것 같은데?”
그냥 나도 검지로 가리킨 다음, 손가락 세 개 편 뒤에 엄지로 목 그었다.
다른 타자는 몰라도, 넌 내가 작년처럼 삼구삼진으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