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66화 (266/316)

266화

현재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어지고 있는 오늘 경기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스트라이크!”

‘택도 없네.’

바로 이거겠지.

제법 정확하게 보고 휘둘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공과 배트는 터무니없이 멀었다.

마치 오작교가 없는 견우와 직녀처럼,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거리였지.

“뭘 그렇게 기를 쓰고 휘둘러? 오늘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거 하고 있는 녀석이.”

완전히 무너진 자세가 조금은 민망해서,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배터박스로 들어오니.

포수, 버스터 포지는 살짝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네.

나한테 자이언츠 타선이 개같이 멸망하고 있으니, 입을 꾹 닫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정상급 포수는 다르구만.

그는 피칭에서도 자이언츠를 잘 때려잡는 주제에 타격에서도 성실하게 임하는 내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항상 최선을 다해야죠,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것에 맞춰서.”

“그래그래, 참 대단하네. 그나저나 오늘 그거는 안 보여주나?”

“그거요?”

“그 이상한 타격 말이야. 한번 직접 보고 싶었는데, 두툼한 오리 궁둥이를 뒤로 쭉 빼고 배트만 깔짝 휘두르는 거. 오늘은 안 할 생각이야?”

아니네, 그냥 트래시 토크였구만. 타격에서는 답도 없으니.

아무래도 내가 타석에 올라왔을 때, 트래시토크로 내 멘탈을 흔들어 볼 생각인 것 같네. 어림도 없지!

가볍게 피식 웃으면서 가뿐하게 무시하자,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스트라이크!”

다시금 묵직한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진짜 더럽게 빠르네, 빠따놈들은 이걸 어떻게 맞히지?

이번 이닝에서도 주자를 허용하며, 오늘 경기 내내 조금은 아쉬운 피칭을 이어가는 중인 제프 사마자인데, 나한테만 유독 혹독하네.

‘솔직히 좀 기대했는데, 택도 없구만.’

나도 내 타격이 쓰레기 같다는 건 잘 안다. 고물 배팅머신도 못 두들기면, 말 다 한 거지.

그래도 혹시나, 투수가 나한테 장난 삼아서라도 오프스피드를 던져주고, 난 그걸 정확하게 받아쳐서, 저~ 멀리, 우측 담장 너머. 맥코비 만에 타구가 풍덩 빠트리는, 스플래시 히트를 치는 상상을 했었는데, 역시나 그냥 망상이었네.

지금 타격으로는 컨택하는 것 자체가 택도 없으니, 버스터 포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기존의 타격으로 돌아가서, 확 번트라도 대볼까, 살짝 유혹이 생기기도 했지만.

스콧 에머슨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기에, 유혹을 꾹 참아냈다.

“변화구 좀 던져요.”

“너한테 변화구를 왜 던져? 괜히 체력 빠지게.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괜히 아깝기만 하지.”

짜증스런 마음에 포수에게 그렇게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코웃음뿐이었다.

그치, 나한테 변화구를 던질 이유가 없긴 하지. 80마일짜리 대충 던진 패스트볼도 못 치는 타자, 솔직히 내가 투수였어도 그냥 쉽게 잡았을 거야.

‘딱 하나만 와라, 하나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놓지 못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현실은 가혹했다. 이번에도 패스트볼, 역시나 스치지도 못했다.

진짜 너무하네. 거 체인지업 같은 거 하나 던지면 어디가 덧나? 사마자는 팜볼 같은 거 숨겨둔 거 없나? 그런 거라도 던져주지.

같은 투수를 상대로 이를 꽉 깨물고 던지시네.

“다음 타석은 좀 좋은 거 줘요.”

“네가 그래 주면, 나도 하나쯤 줄 생각은 있지, 어때?”

“그러긴 싫고요.”

타석에서 물러 나면서, 버스터 포지에게 부탁했지만, 역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기껏 노력했던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해서 그런지, 괜히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깜빡했네.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비틀비틀 덕아웃으로 돌아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살짝 입맛을 다셨다. 버스터 포지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는 걸, 이번에도 깜빡했거든.

대체 뭘 물어볼 거냐고?

그, 있잖아, 음료수 회사.

바디아머인지 뭔지 그거.

버스터 포지가 투자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투자했던 건데, 진짜로 투자한 게 맞냐고 묻는다는 걸, 깜빡하고 잊어먹었네.

이거 꽤 진지한 문제야.

내 피 같은 돈이 걸렸다고.

그냥 뜬소문이었으면, 괜히 돈 날린 거잖아. 그러니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타격에 진심을 다하느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다음 타석에라도 물어볼까?’

아쉬운 마음에 살짝 입맛을 다셨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 얘기 꺼냈다간, 제대로 물고 늘어지면서 트래시 토크를 걸어왔겠지.

그거 사기라느니, 난 그런 적 없다느니, 너 이상한 소문에 속아서 사기꾼한테 돈 날린 거라느니 하면서. 아주 다방면으로 내 속을 긁었겠지.

어떻게든 내 멘탈을 흔들고 싶을 테니까. 그걸 감안하면, 차라리 깜빡한 게 다행이구만.

“세이프!”

그렇게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온 뒤, 또다시 득점이 올라갔다. 나한테는 빡빡하게 잘 막더니···

‘이제 2점,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그래도 2점이나 냈으니, 득점이 모자랄 걱정은 없겠어, 사실 오늘 같은 날은 1점만 있어도 충분하겠지만.

간신히 4회 초를 막아낸 제프 사마자였지만, 아무래도 다음 이닝은 없을 것 같았다.

상대쪽 덕아웃 눈치를 보아, 바로 교체를 준비하는 것 같으니까, 뭔가 느낌이 다시금 부상이 도진 것 같기도 하고.

자이언츠도 오늘 이래저래 고생이 많네.

“가자.”

“Suck, 넌 역시 지금 이 모습이 제일 잘 어울려. 그니까 되지도 않는 타격은 그냥 포기해.”

“닥쳐, 언젠간 내가 브루스 너보다 홈런 더 많이 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모든 고생의 중심에는 내가 서 있고.

다시 글러브를 끼는 순간 조금 늘어졌던 온몸의 근육이 바짝 조여들었다.

아쉽게도 타격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그 울분을 자이언츠 타자들한테 풀어보자고.

나도 오늘 안타 못 쳤으니까, 니들도 치지 마. 그래야 공평하지.

####

“빈틈이 없네.”

마운드에 올라 선 순간, 앞서 배터박스에서 보았던 가벼운 기세가 한순간 사라진 투수를 보며, 버스터 포지는 혀를 내둘렀다.

오늘 내내 보여준 모습이니, 별로 색다를 것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입맛이 썼다.

공격에서는 어차피 생채기조차 내기 어려우니, 투수 타석에서의 트래시 토크로나마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제프 사마자에게 조금 강력하게 패스트볼을 요구했었던 건데.

어느 정도 통하는가 싶었지만,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지. 삼진아웃, 오늘 경기 아홉 번째 탈삼진이 올라갔다.

“You Suck!”

아홉 번째 환호성도 울렸고.

타석에서의 조금은 엉성한, 한편으로는 둔탁하기도 했던 모습과 다르게.

마운드 위에서의 투수는 너무나도 예리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것 같을 만큼, 냉철하게 보이기도 했고.

“왠지··· 조금 더 묵직한 것 같은데··· 대체 이게-”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체이스 다노는 왠지, 어딘가 한 구석이 망가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안쪽 깊은 곳이 산산조각 나버린 사람처럼 홀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

‘시작됐군.’

이미 한 차례 겪어본 일이다.

작년에도 이랬었지.

어쩐지 점점 더 커졌으니까, 상대 투수의 모습은. 이닝이 지나갈수록 더욱더 강력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에 홀리듯, 서서히 정신을 놓는 선수들이 생겨났었다. 그렇게 서서히 잠겨 들어갔지.

‘그러다가 퍼펙트까지 당한 거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버스터 포지는 가볍게 체이스 다노를 달랬다.

“정신 차려, 아직 4회야. 수비에서 잘하고 있잖아, 너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 덕분에 아직 2점차 밖에 안 나는 거고. 지금처럼 수비에만 집중해도 넌 충분히 네 몫을 하는 거야.”

“그래, 그래야지. 아직 4회니까, 수비에서라도 집중해야지.”

1번타자인 그가, 이렇게 무너져서 좋을 것도 없을뿐더러, 한편으로는 팀을 위해서라도 그를 진정시켜야 했으니까.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

특히나 안 좋은 감정일수록, 더욱더 빠르게 퍼져나가지.

최소한 연쇄작용은 막아야 했기에, 그를 달래주며, 분위기를 잠시나마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무너지기 시작한 댐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아웃!”

간신히 구멍 하나를 막더라도, 곧바로 다음 구멍이 생겨나니까.

“아웃!”

그래도 4회 말은 그나마 긍정적이었다. 다행히 연이어 삼진을 허용하며, 이미 최악으로 추락해버린 사기가 더 떨어지지는 않았으니까.

비록 마구잡이로 휘두르다 얻어걸린 내야플라이 두 개였으니. 그게 과연 정말로 자이언츠에게 긍정적인 성과였는지는 조금 의문스럽긴 하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도 투수가 바뀐 5회 초, 삼진 두 개를 포함한, 깔끔하게 삼자범퇴로서 이닝을 종결지으면서, 분위기를 수습하긴 했으나.

‘퍼펙트만, 어떻게든 퍼펙트만 깨트려도 훨씬 나을 텐데.’

다시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서기 전, 버스터 포지는 애써 한숨을 참아냈다.

그나마 수비에서 기세를 올렸다고는 하나.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퍼펙트가 이어지고 있고, 투수도··· 마찬가지로 여전하다.

“이번 이닝부터 시작일 수도 있어.”

“예, 올해는 전체적으로 길어진 느낌이니까요. 혹시라도 인터벌이 빨라지는 것 같으면, 적극적으로 타임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이닝부터 더욱더 혹독해질 수도 있지.

오프시즌 동안 열심히 체력을 갈고 닦은 건지, 이번 시즌 들어, 인터벌 가속의 지속시간이 더 길어졌다.

간혹 5이닝을 유지하며, 경기 중반부와 후반부를 아예 삭제시켜버린 적도 있지.

만약 오늘이 그런 날이라면, 이번 이닝부터 가속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버스터 포지는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서 타석에 올랐다.

“버스터! 하나 날려!”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롱고리아 몫까지 한방 날려줘!”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몇몇 판들이 간절함을 담아 외치기도 했다.

마치 그 이외에는 이 모든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믿는 것처럼.

‘집중하자.’

그런 환호성 속에서 그도 조금 더 집중력을 올렸다. 기대를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이 메이저리거, 야구선수의 의무니까.

“볼.”

초구는 볼.

살짝 멀다 싶었는데, 다행히 바깥으로 나갔다. 투심 패스트볼, 오늘 굉장히 좋은 효과를 내고 있는 구질이었지.

‘거의 서클 수준인가?’

매덕스에게 직접 배운 구질이라더니.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렉 매덕스의 투심과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는 했다.

“파울.”

2구는 스트라이크.

다시금 바깥쪽, 살짝 건드려봤지만, 아슬아슬하게 빗맞았다.

백도어성 슬라이더.

자유자재로 꺾이는 공 때문인지, 한층 더 긴장감이 올라갔다. 또한 인터벌도 빨랐지.

‘시작되는 건가?’

초구와 2구의 간격이 짧았던 만큼, 긴장감이 쭉 올라왔다. 걱정했던 것처럼, 이번 이닝부터 시작일 수도 있었으니까.

“파울!”

아니나 다를까, 3구.

순간적으로 몸쪽으로 박힌 포심 패스트볼은 굉장히 빠른 간격으로 꿰뚫고 들어왔다.

확인하기 위해, 그 역시 재빨리 타격폼을 취한 것도 있지만, 투구동작의 간격이 대단히 짧았다.

“타임!”

상대 투수가 시동이 걸렸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 정보를 전하고, 조금이라도 리듬을 흔들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잠시 타임을 선언한 뒤, 주심이 그것을 받아들이자마자, 버스터 포지는 벤치에 사인을 보냈다.

아마 벤치에서도 이미 알아챘겠지만, 타자가 직접 전해주는 것이 아무래도 정확성이 높으니까.

다만 미리 안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크게 달라지겠는가, 하는 회의감도 조금 들었지만.

‘가속을 막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순간적인 타이밍이 다르지. 타이밍에 맞춰서 치는 건 어차피 답도 없어. 어떻게든 보고 쳐야 돼.’

어쨌든 공략은 해야 했다.

이대로 손 놓고 당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을 마친 그는 다시 타석으로 들어왔고,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볼.”

자세를 잡자, 곧바로 날아온 4구. 저도 모르게 배트를 움찔거렸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슬아슬하게 골라냈어.’

아슬아슬하게 골라낸 볼 하나. 지금 상황에선 천금 같은 볼카운트이고, 이걸 발판으로 삼아 승부를 조금 더 길게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상대 투수가 그걸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승부를 길게 가져가는 타입이 아니지.

조금이라도 길어진다 싶으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걸 선호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날아든 5구.

‘한가운데군.’

역시나 대놓고 찔렀다.

이런 경우 선택지는 보통 셋이다.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속도만 느린 평범한 체인지업. 아니면 정말로 패스트볼.

사실 패스트볼도 세 가지 갈래로 나뉘기에, 엄밀히 말하면 선택지는 더욱더 무궁무진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그게 정답이라면 가장 베스트겠지만···

‘Damn it!’

그런 행운은 언제나 확률이 희박하다.

어느 지점부터 꺾이기 시작한 공, 커터가 배트의 손잡이 부분을 파고들며, 가벼운 땅볼을 만들었다.

둔탁한 소음을 내며, 바닥을 구른 공은 가볍게 유격수의 손에 잡혀 1루로 송구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폐가 터지도록 달렸지만, 공은 베이스를 여섯 걸음 이상 남겨뒀을 때, 1루수의 글러브로 들어갔다.

“아웃!”

“아아아···”

이번에도 아웃.

누군가 버스터 포지 그를 대신해서 아쉬운 탄식을 뱉어줬다. 아마도 자이언츠의 팬이겠지.

“수고했어, 상대 수비가 좋았네.”

숨을 고르며,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어쩌면 버스터 포지 그 자신이, 체이스 다노에게 해줬던 것과 비슷한 위로를 던지며 타격코치가 그를 맞이했다.

‘작년이랑 비슷하네.’

어쩌면 작년과 비슷했다.

그때도 자신은 몇몇 선수들을 위로했고, 한편으로 코치나 감독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지. 그 외의 상황도 비슷하고.

그러고 보면, 작년, 2017시즌, 자이언츠의 내리막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던 그날의 퍼펙트게임과 오늘은 거의 흡사했다. 그를 응원했던 팬들이 아쉬운 탄식을 뱉고 있다는 것까지도.

거기서 하나 더 씁쓸한 게 있다면···

‘여긴 콜리시엄이 아니라, AT&T 파크인데 말이야.’

수많은 관중들이 묘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까지도 작년과 똑같다는 거였다.

관중석의 거의 반절을 점령한 애슬레틱스 팬들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품고 있었지.

여긴 콜리시엄이 아니라, AT&T 파크인데, 오클랜드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인데 말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뒤이어, 5번타자 브랜든 크로포드가 다시금 삼진을 당하며, 오늘, 열 번째 삼진의 주인공이 됐지만, You Suck이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웃!”

그다음, 다시금 범타를 잡아내며, 쓰리아웃, 삼자범퇴가 만들어졌을 때도 마찬가지고.

마치 퍼펙트게임이 이어지고 있는 ‘홈구장’처럼, AT&T 파크는 침묵과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했다.

“X같네.”

그토록 기대감으로 가득찬 경기장의 모습에, 버스터 포지는 어쩐지, 오늘따라 팬들이 입은 오렌지색 유니폼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

“스트라이크 아웃!”

6회 말.

9번타자이자, 대타, 오스틴 슬래터를 삼진으로 잡고 내려갔을 때, 왠지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호성이 하나도 없네.’

분명 여기 이렇게나 우리 팬들, 내 팬들이 많은데. 내가 삼진을 잡아도 아무도 환호해주지 않잖아? 심지어 레이더스마저도.

You Suck!이라고 크게 소리쳤던 것들도 죄다 사라졌고.

자이언츠와 애슬레틱스, 베이 에어리어의 시민들이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말이야.

“할 말 없어?”

“없어.”

“타자들은 어때?”

“괜찮아.”

“그래.”

동료들도 부쩍 조용해졌고.

심지어 스콧 에머슨마저도 날 보는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지.

브루스는 아예 묵언수행 중이고. 롤렉스가 몇 갠데, 여전히 탐이 나나 보네. 이 욕심 많은 돼지 녀석 같으니라고.

조용한 덕아웃 분위기에,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퍼펙트 중인 것을.

원래 퍼펙트게임에 도전하는 투수는 이토록 고독한 법이다.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기에, 홀로 외딴섬처럼 묵묵히 버텨야 하지.

“체력은 좀 어때? 내려갈 생각 있어?”

그나마 나한테 말 걸어주는 사람은 버스터 포지밖에 없네.

7회 초, 첫 타자로 타석에 오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려갈 생각이 없느냐고.

다만 목소리에 조금 짜증이 묻어나는 게, 제발 좀 꺼져달라고 부탁하는 느낌이었지.

“퍼펙트 중인데 어딜 내려가요.”

“···그래.”

그래서 가볍게 대꾸하니, 설마 하니 내가 대놓고 퍼펙트를 언급할 줄은 몰랐는지, 입을 콱 닫아버리네.

이로서 유일한 말동무도 내 스스로 없앴군. 아주 좋아.

“스트라이크 아웃!”

세 번째 타석도 삼진아웃.

슬슬 타자들이, 내가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알아서 타격을 조절할 테니.

어쩌면 오늘 내 마지막 타석일 수도 있겠지만, 얌전히 공을 지켜만 보고 내려왔다.

바뀐 투수가 기를 쓰고 던지는 데다가, 아무리 그래도 퍼펙트 중인데, 타격에 집착할 수야 없지.

‘다음으로 미뤄두자고.’

그렇기에 타격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다시 얌전히 덕아웃으로 돌아오니, 역시나 말 걸어주는 사람은 없네.

그래도 괜찮아, 나한테는 야구공과 글러브가 있으니까.

“···”

예상대로 타자들이 적당히 호흡을 조절하며, 삼자범퇴가 올라간 뒤 7회 말.

적막함이 흐르는 그라운드가 내 일곱 번째 이닝을 반겨줬다.

분명 수만 명이 함께하는데도 숨소리조차 울리지 않는 경기장의 분위기가 조금은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더욱더 잘 들렸다, 그 수만 명의 왼쪽 가슴 안쪽에서, 세차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어쩌면 내 안쪽에서 난 소리일 수도 있고.

‘후우···’

짧게 호흡을 뱉으니, 열심히 가동된 엔진이 내뿜는 열기처럼, 뜨거운 숨이 훅 밀려나왔다.

밤공기에 식지 않도록, 그대로 다시금 공기를 빨아들여, 산소를 공급하면서.

“스트라이크!”

다시금 피칭을 시작했다.

날카롭게 찔러 들어간 공.

잘 채였는지, 내가 보기에도 느낌이 좋았다.

아슬아슬하게 박힌 코스였지만,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지.

퍼펙트가 이어지고 있는 터라, 그렇기에 아주 칼 같이 판정하고 있지. 타자 입장에선 빡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지.’

타자, 체이스 다노는 그런 불만을 표출할 여유조차 없었다.

욕심 가득하게 달려들었던 첫 타석과 달리, 지금은 많이 움츠러들었으니까.

“스트라이크!”

2구째, 대놓고 들어온 백도어성 슬라이더에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정도로.

“볼.”

3구, 낮은 너클 커브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고, 딱히 선구안으로 골라낸 것 같지는 않았지.

그러다가 결국 용기를 내본 건지, 4구째, 낮게 날아든 코스에 과감하게 휘두르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서클 체인지업이 바닥을 긁듯 떨어지며, 배트를 지나쳤으니까.

다시금 삼진아웃, 한 경기에서만 삼진을 세 개를 당하는 굴욕을 당했지만, 멘탈이야 이미 아까 전부터 터진 것 같으니, 큰 영향은 없겠네.

그다음 타자는 브랜든 벨트 대신, 파블로 산도발이 대타로 나왔다.

08년에 자이언츠에서 데뷔해,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드는 타자인데, 한때는 배리 본즈의 후계자로 각광받기도 했지만.

그 이후, 레드삭스에서 폭망한 뒤, 작년 다시 자이언츠로 돌아온 뒤에는 백업 수준이지.

그래도 번뜩이는 재능이 있는 타자고, 파워도 준수한 편이니, 자이언츠로선 럭키 펀치를 기대한 것 같았다.

스위치히터인데, 좌타석에 들어온 것도, 마찬가지로 잘 당겨친 타구 하나가 우측 필드를 꿰뚫어주길 바라는 거고.

“아웃!”

그는 자이언츠가 기대했던 것처럼, 쭉 빨아 당긴 스윙으로 자연스럽게 파워를 실어, 타구를 외야로 날려 보냈지만.

애석하게도 깨끗하게 그라운드를 꿰뚫는 라인드라이브가 아닌, 그저 높이 떠오른 플라이볼이 된 타구가 우익수의 글러브로 가볍게 안착했다.

그렇게 투아웃.

더는 숨길 수조차 없는 건지, 관중석에서부터, 어쩌면 이닝이 시작할 때쯤 내가 뱉었던 더운 공기보다도 더욱더 뜨거운 열기가 풍겨졌다.

‘저렇게들 기대하는데···’

열망과 기대감이 뒤섞인 시선은 뾰족하게 벼려낸 바늘처럼 따갑게 피부를 찔렀지.

‘멈출 수야 있나.’

그 시선이 마치 채찍칠처럼 느껴져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고작 그런 부담감에 무너져버릴 정도였다면.

“스트라이크 아웃!”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다시금 삼진아웃. 이번에도 경기장은 조용했다.

어쩌면 아까 전보다 조금 더.

삼진을 잡았는데도, 여전히 You Suck이 울리지 않는 그라운드는 조금 쓸쓸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2이닝 남았네.’

이 모든 것이 완수된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웅장하게 터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8회는 빠르게 사라졌다.

애슬레틱스는 공격을 길게 할 생각이 없었고, 자이언츠는 공격을 길게 할 수가 없었으니까.

서로 다른 이유에서지만, 금방 끝이 났다는 건, 서로가 똑같았다.

양팀이 모두 다 그랬기에, 오후 7시쯤, 해가 간신히 저물었을 초저녁에 시작했던 경기는 밤으로 이어졌지만, 그다지 긴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물론 그걸 지켜본 관중들, 그리고 시청자들에겐 수십 시간은 더 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말이다.

“아웃!”

9회 초, 마지막 공격마저 허무하게 삼자범퇴로서 마친 애슬레틱스였지만, 별다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평소, 고유석의 경기에서 타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열정을 보이라며 아낌없이 채찍질을 했겠으나. 언제나 그렇듯 상황이 중요한 법이니까.

저 열정이 없는 타격이, 지금 상황에선 가장 베스트지.

“후우우···”

“X발, X발, 쫄려서 못 보겠네.”

“닥쳐, 소리 내지 마. 못 보겠으면 꺼지던가. 이 X같은 샌프란시스코 새끼야. 자이언츠 유니폼 입고 어디서 지랄이야?”

“X발 너나 꺼져. 그리고 난 산호세 사람이야.”

“그렇다면 미안. 그래도 좀 닥쳐.”

“알았어, 나도 소리 내서 미안.”

그리고 찾아온 9회 말.

그가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을 때, 수많은 이들이, 어쩌면 거의 대다수의 관중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긴장감에 몸부림치는 것일 수도 있고.

물론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이들 역시, 이 마지막 기회를 부디 자이언츠가 거머쥐길 바라며 몸을 들썩거렸고 말이다.

-7번타자, 스티븐 더거.

마찬가지로 떨리기 시작한 구장 캐스터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직하게 울렸고.

따시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는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어깨를 휘휘 돌렸다.

그 아무것도 아닌 행위 하나에, 8만 개가 훌쩍 넘는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고, 그 종착역은 이번에도 왼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그곳이었다.

“스트라이크!”

서로 모든 준비를 마쳤을 대, 하얀색 공이 다시금 순식간에 날아갔다.

메이저리그에선 가장 느린 수준의 80마일 대에 불과하기는 하나.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절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인데도. 관중들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릿하게 보였지.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고. 우리도 이렇게 똑똑히 보이 건만.

“스트라이크 아웃!”

어째서 저 타자들은, 이렇듯 손쉽게 쓰러지는 걸까? 그것이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자신들은 새끼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며, 딱딱하게 몸이 굳어 있다는 걸 망각해버리면서.

“아웃!”

이번 이닝의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을 때, 몇몇은 참을 수 없었던 건지, 옷자락을 꽉 깨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써억-”

끝내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내뱉었던 이들은 주변의 수천 명의 날이 선 눈초리에 제 잘못을 인정하듯 고개 숙이기도 했고.

마지막 한 타자.

대타로서, 어쩌면 이번 경기의 마지막 희생양으로서 타석에 오른 헌터 펜스는, 배터박스로 들어가기 전, 깊은 한숨을 먼저 뱉어냈다.

아니, 한숨이라기 보단, 탄식에 더 가깝겠지. 어쩌면 오늘, 자이언츠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걸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거세게 항쟁했다.

“파울!”

오직 그것만이 자이언츠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처럼.

“파울!”

무너진 자세로 간신히 공을 때려내며, 억지로 승부를 끌었지만, 그것이 영원토록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4구. 몸쪽으로 높게 날아든 하이 패스트볼에 그가 스윙하고, 공이 글러브로 들어간 순간.

“스트라이크 아웃!”

27번째 아웃이 올라갔고.

게임이 끝났다.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Youuuuu Suuuuuuuck!”

“써어어어어어어억!”

경기가 종료됨과 동시에, 무거웠던 침묵도 끝났고. AT&T 파크가 애슬레틱스로 물들었다.

이제는 이 공간에서 반대로 소수가 되어버린 자이언츠의 팬들만이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탄식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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