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스트~~~라이크 아웃!”
우렁찬 삼진콜이 울렸다. 이번 이닝 동안 벌써 두 번째지.
뭐, 내가 마운드에 오르면 하루에 열 번이 기본이긴 하지만. 평소랑 다른 게 있다면···
“쟤 왜 저렇게 잘하냐?”
“올해 완전 날아다닌다니까? Suck 너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난 지금 벤치에 있다는 거지.
그토록 멋지게 삼진을 잡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상대투수였다.
게릿 콜, 원래도 준수한 선발투수로 이름을 날리긴 했는데, 이번 시즌 애스트로스에 합류한 이후로 완전히 대폭발을 일으켰다더니.
직접 만나니까, 확실히 잘하긴 하네. 빠른 강속구와 그에 담긴 구위로 우리 타자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구만.
‘쟨 구위도 좋은 놈이 구속도 100마일이 나오네. 세상 참···’
인생 개 같아서 살겠나.
물론 나도 리그 원탑급 구위를 자랑하는 패스트볼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서글프구만.
100마일도 필요 없고, 최고구속 95마일만 나와도 진짜 전 경기 완봉할 자신 있는데···
‘95마일까지도 필요 없고, 내 인생에 90마일이 있기는 할까?’
어쩌면 올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NL 서부와 인터리그 매치업인 만큼, 로키스랑도 붙거든.
후반기에 쿠어스 필드에서 3연전을 치를 예정인데, 무브먼트나 회전수가 X나게 떨어지는 대신.
높은 고도로 인해, 공기의 밀도가 낮아, 마찰이 적어서 구속도 올라가는 쿠어스의 특성상, 어쩌면 내 생애 첫 90마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만약 정말로 등판한 다면, 그날 하루만큼은 90마일의 파이어볼러가 되는 거지.’
구속이 오르는 대신, 투수의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받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90마일을 던지는 모습을 떠올리니,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네.
그렇게 쿠어스와 그것이 가져다줄 버프에 대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이.
“스트라이크 아웃!”
게릿 콜은 중간에 안타 하나를 허용했지만, 다시금 헛스윙 삼진을 끌어내며, 이닝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3이닝 5탈삼진 무실점이구만.
“Suck 네 차례야!”
“너도 삼진 잡아, 삼진!”
“저런 X신 같은 투수한테 질 수야 없지!”
비록 연속은 아니나, 어쨌든 한 이닝 동안 세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그의 역투에 자극을 받은 건지. 레이더스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황급히 나를 재촉했다. 거 다들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좀 차분하게 앉아들 있어요. 내가 갑자기 도망가지도 않을 텐데, 진득하기 기다릴 줄을 알아야지.
“Hell Yeah!”
“Suck 너만 삼진 잡냐? 우리 콜이 훨씬 더 잘해!”
“You Suck! X발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마찬가지로 조용~했던 애스트로스 홈팬들도,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고.
선수들이 그렇듯, 나한테 쫄아 있던 사람들인데, 자기네 에이스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니, 기세가 등등해졌지.
순간 울컥하기라도 한 건지, 급발진하면서 갑자기 열기를 확 달아 올리네.
‘다들 너무 흥분하셨네, 다시 찬물 좀 끼얹어야겠어.’
안 그래도 무더운 텍사스인데, 사람들까지 열정적일 필요는 없지. 그러다 더위 먹고 쓰러져.
다시 좀 머리를 식혀줘야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겠지.
“카일 터커부터 시작이지?”
“어, 저번 이닝에 대기타석에서부터 바짝 쫄았던데, 루키한테 교육 좀 해주자.”
3회 말.
타순은 7번부터 시작한다.
좌익수 카일 터커인데, 무려 이틀 전에 첫 데뷔전을 치른 따끈따끈한 루키다.
유망주 랭킹에서 전체 15위였던가? 아무튼 그 정도 순위를 기록했던 녀석인데.
이틀 전, 화이트삭스 시리즈에서 첫 데뷔를 선보였지.
아무래도 이제 갓 두 경기를 출전한 녀석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들뜬 얼굴이었다. 한편으로는 긴장감도 느껴졌고.
그래서 그런가, 브루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고 놀자는 생각이 만만한 것 같았지만.
“교육은 무슨, 나도 작년에 데뷔한 루키인데. 브루스 너도 고작 재작년에 데뷔한 애송이고.”
“나는 그렇다 쳐도 니가 루키? 니가? Suck 니가? 양심이 있으면 루키 딱지는 떼라.”
“왜?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됐으니까, 그 정도면 충분히 루키잖아?”
“글쎄, 이미 남들 5년치 성적을 올린 거나 다름없는데, 그걸 루키라고 봐야 하나?”
“그럼 슈퍼 우량아 정도로 하자고.”
교육은 무슨 놈의 교육.
내가 뭐 얼마나 선배라고.
나도 작년에 데뷔한 루키인데, 거기서 거기지.
물론 난 루키치곤 이미 웬만한 업적을 다 쌓아뒀기에, 조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교육은 됐고, 그냥 빡세게 잡자. 괜히 자극했다가, 갑자기 각성할지도 모르잖아?”
흔히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지. 미신처럼 보여도,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초심자일수록 더욱더 과감하고, 패기있게 나서는 경우가 많기에, 뜬금없는 뽀록이 터지기도 하거든.
그러니 아주 작정하고 쓴맛을 보여줘야지. 괜히 흐름 타고 날뛰지 못하도록.
그렇게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을 때, 타석에 입장한 타자는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상기된 표정으로 배트를 꼭 붙들었다. 그의 다른 동료들이랑은 조금 다른 눈빛이었지.
‘저렇게 구니까, 오히려 좀 껄끄럽네.’
다른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날 보는 눈빛은 셋 중 하나다. 애써 무시하거나, 원망 같은 감정을 담아 노려보거나, 두려워하거나.
그런데 카일 터커는 뭐랄까, 흥분이 감돌았다. ‘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하다니!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어!’같은 표정이었지.
미국 나이로 이제 스물한 살짜리 녀석이라서 그런가, 눈빛이 초롱초롱하네. 그러니까 오히려 부담스러워. 난 이런 쪽에 오히려 약하거든.
‘어우, 빨리 내려 보내야지, 신경 쓰여서 공 못 던지겠네.’
부담스러운 마음에, 최대한 빨리 승부를 마치기 위해서, 초구를 고르면서, 슬쩍 타자를 확인했을 때, 특이점이 눈에 들어왔다.
‘배팅 장갑을 안 쓰네.’
카일 터커의 손이 맨손이었거든, 양쪽 다. 종종 있는 케이스다.
배팅 장갑이 충격도 덜어주고, 부상도 방지해주고, 배트를 더욱더 꽉 잡게 해 줘서, 정확성도 올려준다고는 하나.
흔히 말하는 손의 감각, 그 미세한 감각을 위해 맨손으로 타격하는 선수들이 아주 가끔 있거든.
당장, 녀석이랑 같은 팀이자, 앞선 이닝에서 5번타자로 상대했던 에반 개티스도 배팅 장갑을 안 꼈지.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게레로도 맨손 타격으로 유명하고 말이야.
‘오케이, 찍어 누르자.’
어쨌든, 흔하진 않더라도, 종종 드물게나마 저런 케이스가 있지만, 그걸 확인한 순간 초구가 결정됐다. 제대로 쓴맛을 보여줘야겠어.
‘몸쪽, 좀 깊게.’
브루스도 같은 걸 포착한 건지, 포수 마스크 사이로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랑 자주 호흡을 맞춰서 그런가, 점점 나랑 성향이 비슷해진단 말이야.
그대로 팔을 쭉 휘두르며 던진 초구, 어쩌면 조금은 평범한, 몸쪽 포심에 불과했지만.
“씁-”
일단 제대로 쭉 낚아챘다.
최대한의 힘을 담아서.
만만한 타자에게 전력투구를 하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뭐, 어차피 완봉도 못하는데, 남아도는 힘, 이렇게라도 소모해야지.
그대로 일직선으로 쭉 뻗는 공. 타자는 어린 나이에 빅리그에 데뷔한 만큼, 재능이 좋은 편이기는 한 건지, 제법 정확하게 포착했다.
과감하게 초구부터 휘두르는 스윙이 포심의 궤적과 거의 일치하며, 마찬가지로 쭉 나아갔지만, 어쩌면 타자에게는 그것이 불행이었다.
차라리 헛스윙이 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니까.
“파울!”
서로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채 부딪친 공과 배트가 맞닿은 순간.
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소음을 내며, 공이 배트를 밀어내고, 홈 플레이트 뒤로 날아갔다.
완벽하게 힘에서 밀린 파울.
그것만으로 타자의 기세를 꺾기 충분하겠지만, 이번 경우는 플러스알파지.
‘오, 진짜 아프겠네.’
제법 잘 따라오긴 했지만, 수직 무브먼트로 인한, 라이징 패스트볼의 착시효과로 완벽하게 컨택하진 못하면서, 살짝 빗맞았거든.
배트가 심하게 요동친 것을 보아, 아마도 충격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네.
카일 터커는 누가 봐도 고통이 가득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게 누가 기술의 시대에서 장갑을 안 끼고 타격하래. 그것도 내 앞에서.
내가 구속이 아주 심하게 떨어져서 그렇지, 구위만 놓고 보면, 방금 전에 우리 타자들 때려잡은 게릿 콜보다도 더 묵직한 사람이야.
그래서 다른 타자들은 두둑하게 끼고도 손맛이 짜릿짜릿해서 다들 죽상을 하는데, 얜 맨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기가 완전히 죽었네.’
고통에 찬 루키가 안쓰러웠던 건지, 주심도 재촉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줬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듯.
간신히 다시금 배터박스로 들어온 카일 터커는 누가 봐도 기가 잔뜩 죽은 듯한 얼굴을 했다.
루키의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인, 패기로움이 완전히 사라졌지. 그나마 위협적인 요소 하나를 거세시켰으니.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그다음은 그냥 내 손 가는 대로 요리하면 끝이지. 순식간에 삼구삼진.
카일 터커는 타석에 올라올 때와 다르게, 잔뜩 풀이 죽어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신인한테 기강 제대로 잡았네. 그래도 컨택이 제법 괜찮아 보이던데, 기회가 있을 때 미리미리 조져둬야겠어.
혹시라도 나중에 갑자기 포텐이 확 터져서, 엄청나게 잘할 수도 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그다음, 8번타자 타일러 화이트는 우렁찬 헛스윙을 선보이며, 4구째 쓰리핑거 체인지업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One More! One More!”
“이게 Suck이지!”
“You Suck!”
“삼진 하나만 더 잡아! 아주 코를 눌러버리라고!
그대로 KK가 올라가자, 레이더스는 그제야 기분 좋게 웃으며, ‘하나 더!’를 외쳤다.
앞서 게릿 콜이 삼진 세 개로 애스트로스의 기세를 살렸으니,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KKK를 달성해버리라는 거지.
“아웃!”
다만 애석하게도 그토록 바라던 것처럼 KKK는 올라가지 않았다.
9번타자, 팀 페데로비치가 3구째, 바깥쪽 패스트볼을 살짝 빗맞히며 내야플라이로 잡혔거든.
나도 삼진 잡으려고, 한 구 살짝 유인구로 빼본 건데, 저걸 건드리네.
“어흠흠,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삼자범퇴잖아, 이게 더 쩌는 거야 원래.”
“그깟 삼진 세 개가 뭔 소용이야? Suck이 더 위대하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데.”
KKK라며 소리쳤던 레이더스는 조금 머쓱한 건지, 괜히 헛기침만 하네.
애써 만족한다고 소리치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렇게 외치는 얼굴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진짜 욕심이 심하다니까.’
나도 만만찮게 탐욕스럽지만, 팬들도 진짜 만족을 모른다니까.
아무래도 레이더스, 우리 팬들은 내가 게릿 콜을 가뿐하게 눌러버리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브루스, 다음 이닝부터 속도 좀 올리자.”
“그렇게 빨리?”
“어차피 7회까지잖아. 체력도 남아도니까, 한번 빡세게 가보자고.”
그들의 슈퍼스타로서, 기꺼이 들어줘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도 3이닝 5탈삼진을 기록하며, 경기 초반이 지나갔고, 서로 0대0의 균형을 맞추면서, 조금은 빠르게 경기가 이어졌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게릿 콜의 호투에 달아오른 애스트로스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으려고 했더니, 이젠 정작 내가 불을 지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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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아웃!”
“휘이이이이이이이익!”
시원스런 주심의 목소리에, 길고 긴 휘파람 소리도 함께 울렸다.
4회 초, 첫 타자를 플라이볼로 잡은 직후, 볼넷을 내주면서 조금 흔들리는가 싶던 게릿 콜이 다시금 삼진을 올렸으니까.
그것은 애스트로스 팬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한껏 짓밟혔던 자존심일 채워줬으니까.
한편으로는 희망을 품게 해주기도 했고.
“67승 23패··· 진짜 엄청나기는 하네.”
“지구우승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오클랜드가 후반기에 진짜 대차게 추락하지 않는 이상은.”
화려하게 추락한 애스트로스와 달리, 애슬레틱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67승 23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비록 내내 약팀이었던 건 아니고, 비교적 최근에도 은근히 포스트시즌을 노린 적이 많은 팀이긴 하나.
올해는 그 정도를 넘어, 마치 작년의 애스트로스 자신들처럼, 압도적인 컨탠더급 팀이 되어버렸지.
그토록 잘 나가는 애슬레틱스를 보며, 휴스턴 팬들은 혀를 내두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묘한 박탈감이 들기도 했다.
“망할 놈의 사인 스틸 때문에···”
“저게 원래 우리 자리였는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잘하면 쓰리핏도 가능했어! 연달아 우승도 가능했다고!”
어쩌면 저 영광이 애스트로스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단순히 질투심에서 나온 망상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스캔들이 터지기 전.
여전히 막강한, 아니, 더욱더 보강된 전력을 갖춘 애스트로스는 분명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제패도 가능하리라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흔히 왕조라고 표현하는 업적을 남길 수도 있다는 뜻이지.
허나 사인 훔치기 스캔들이 터지고, 안팎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작년, 월드시리즈의 왕좌에 올랐을 때만 하더라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조차 않았던 화려한 추락이 이어졌지.
그렇게 무너져 내린 애스트로스의 자리를 대신 꿰어 찬 것이 애슬레틱스이고.
절묘하게 뒤바뀐 위치와 상황은 애스트로스팬들에게 설탕 한 스푼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더 쓰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다시금 기세를 회복하고,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왔을 땐, 응당 자신들의 자리를 다시 되찾고 싶었고 말이다.
“아직 모르는 거야, 후반기에 갑자기 상황이 바뀔 수도 있어.”
“그치, 애슬레틱스가 갑자기 넘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부상자 몇 명 나오고, 기세 좀 떨어지면, 한순간 훅 가는 거야.”
아직 희망은 있었으니까.
비록 따라잡기엔 너무 버거운 격차라고 하나, 이제 겨우 전반기의 막바지에 불과하고.
시즌은 여전히 한참이나 남았다.
그러니 만약, 후반기에 들어서,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하고, 애슬레틱스의 전체적인 기세가 추락하다 보면.
그때 애스트로스가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오르기만 한다면, 어쩌면 막판 대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이잖은가?
“스트라이크 아웃!”
게릿 콜의 역투는 어쩌면 그런 애스트로스 팬들의 희망에 기름을 부어줬다.
원래도 기대감을 품었던 선수이기는 하나, 올해, 정말이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한순간 에이스가 된 투수는 충분히 믿음직했으니까.
특히나 오늘 그 맞상대가, 작년부터 지겹도록 애스트로스를 괴롭혀왔던, 어쩌면 가장 큰 악몽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Go였기에 더더욱 와닿았고.
그것을 증명하듯, 다시금 연속 삼진을 올리며, 4회 초 역시 틀어막았다. 점수는 여전히 0대0.
“너만 믿는다!”
“X발 이대로 완봉까지 해버려!”
“한 경기 따라잡자고! 세상 일 모르는 거야!”
당연하게도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투수를 향해 홈팬들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가 뒤따랐다.
그것은 멋진 호투를 보여준 투수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단 퍼펙트부터 깨면 좋을 텐데···”
“금방 깨지겠지, 다시 1번부터 시작이니까. 조지야 말할 것도 없이 Go한테 강한 편이고. 알렉스랑 호세도 최근 기세가 좋으니까.”
그 직후 다시금 마운드로 올라올 투수를 향한 견제이기도 했다.
매 번, 애스트로스의 기세가 살아나려고 할 때마다 등장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투수.
오늘도 자신들의 입을 가볍게 닥치게 만들고 있는 투수,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우리한테도 충분히 너 만큼 잘하는 에이스가 있다는 걸, 그러니, 아직까진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그렇기에 지금까지와 달리, 녀석이 그라운드에 다시 등장했는데도, 환호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눈치 없이 소리치던 원정팬들, 그 악명 높은 레이더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정도로.
무더운 날, 한없이 올라가기 시작한 열기에, 그 역시 화답하듯, 초구가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가볍게 스트라이크.
선두타자, 조지 스프링어가 맥없이 헛스윙하며, 이닝 첫 카운트를 내줬다.
“조지! 한방 날려!”
“올해도 홈런 하나 먹여주자!”
“너밖에 없어!”
왠지 투수의 기세에 눌린 것처럼 느껴지는 타자의 모습에, 그를 향한 응원이 쏟아졌지만.
“스트라이크!”
“파울!”
“스트라이크 아웃!”
기대와 달리, 그는 그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던 조지 스프링어기에, 홈팬들은 조금 실망하면서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다음이 해주겠지. 그렇겠지,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면서.
“세이프!”
그 염원이 이뤄진 건지, 후속타자, 알렉스 브레그먼이 초구부터 공략해내며, 퍼펙트를 깨트렸다.
유격수를 넘기는 깔끔한 안타. 비록 속이 다 후련한 장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Yeeeeeeah!”
“Alex! X발 사랑한다!”
“이대로 득점까지 가자!” 선 취점 내버리자고!”
“저 X새끼한테, 우리가 첫패를 안겨주는 거야!”
퍼펙트가 깨졌으니까. 거기다 뒤의 타자도 믿을 만하고.
어쩌면 이번 시즌 전승을 자랑하는, 저 난공불락의 거벽에게 첫 패배를 자신들이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조금은 야심찬 기대감도 들었다.
게릿 콜이 멋진 호투를 보여줬기 때문이겠지. 누가 선취점을 올리느냐에 따라, 어쩌면 그 한 점으로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는 경기였으니까.
“호세! 네 차례야!”
“큰 거 하나 날려!”
그렇게 생각하며, 후속타자를 호세 알투베를 맞이해, 더욱더 열기를 끌어올리던 홈팬들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적막은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 찾아왔다. 두 번째 삼진이 올라가기까지,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관중들이 체감하기엔, 거의 눈 깜짝하는 시간만에 호세 알투베가 삼진으로 물러났지.
그것을 목도했을 때, 홈팬들은 깨달았다. 그래, 자신들의 외침에, 저 녀석 역시 화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한 번···
“또 시작이네.”
“빌어먹을 새끼···”
“쟨 대체··· 아니, 지치지도 않나?”
“우리가 무슨 레인저스도 아니고, 틈 날 때마다 저 지랄이라니.”
애스트로스를 찍어 누를 작정이라는 것을. 또다시 속도가 빨라졌으니까.
저 녀석의 아이덴티티지. 경기 중반 혹은 후반부터 빨라지는 인터벌은.
갑작스럽게 빨라진 인터벌에 타자는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고, 그때부터 경기의 흐름은 저 녀석이 집도한다.
“이러면···”
“게리한테 싸움 건 거야.”
“진짜 X같이 야구하네.”
단순히 본인의 이닝을 넘어, 어쩌면 상대의 이닝, 상대 투수의 피칭마저도.
“아웃!”
4번타자, 조시 레딕이 역시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빠르게 아웃 처리됐다.
주자 1루의 기회를 제대로 살려 볼 여유조차 없이, 순식간에 이닝이 끝나버렸지.
멍하니 그라운드를 내려 보는 사이, 다시금 공수교대가 이어져, 게릿 콜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비록 그에게 열광하고, 그의 피칭에 기뻐했던 애스트로스의 팬들이지만, 지금의 만남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일렀다.
####
“세이프!”
게릿 콜은 거칠게 입술을 씹었다. 이닝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니까.
마크 칸하, 그리 대단치는 못한 성적을 기록 중인 타자이네, 기술적으로 잘 때려냈다.
‘호흡이 흔들렸어.’
비록 타자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순수하게 그의 역량으로 만든 안타는 아니다.
1루에 안착한 주자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운 게릿 콜이었지만, 애써 집중하려고 해도, 흘끔흘끔 상대팀 덕아웃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벤치에 앉아, 같은 팀 동료와 노닥거리고 있는 녀석으로 인해, 안타를 맞은 거니까.
‘상대하다보면 호흡이 벅차다더니··· 이런 느낌이었던 건가?’
순식간에 끝나버린 4회 말.
그로 인해 한순간 호흡이 망가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빠르게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서, 계획만큼 휴식을 취하지 못했으니까.
빠른 인터벌이야 직접 보기도 했고, 듣기도 많이 들었지만, 직접 그 맞상대로서 느껴본 그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템포가 빨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3분이 채 안 걸렸으니까. 심지어 중간에 안타 하나가 끼여 있는데도.
비록 초구 안타이기는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타자 네 타자를 상대하는데 걸린 시간은 굉장히 짧았지.
‘말리면 안 돼, 말려드는 순간 끝이야.’
애써 마음을 갈무리했다.
이미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거기에 더욱더 말려든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별로 관계가 좋지는 않은 동창이자 동료, 트레버 바우어가 작년, 저 흐름에 압살 당했다는 건 이미 익히 들었다.
솔직히 고소하게 생각했지.
먼저 도발을 하더니, 루키와의 맞승부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하다니.
거진 일주일 가량을 기분 좋게 보냈었는데, 이번엔 자신이 그 제물이 되게 생겼다.
‘난 바우어처럼 입만 산 또라이가 아니야.’
그렇기에 더욱더 힘을 끌어올렸다. 최근, 자신이 잘 나가니, 이번엔 또 자신에게 파인타르를 운운하던 그 녀석처럼 추하게 패배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게릿 콜은 그런 다짐 하에, 이를 앙다물고 공을 던지며, 후속타자, 맷 채프먼을 삼진으로 처리했다.
조금은 과하게 힘을 소모하기도 했지만, 다시 기세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덕분에 또 한 번 삼진을 올리면서, 타자를 넘어, 같은 투수의 타이밍조차 망가뜨리는 상대로 인해 흔들렸던 흐름을 다시 되찾았으니까.
‘주도권을 주면 안 돼. 어떻게든 내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그토록 당당하게 맞서는 자신에게 만족했던 건지, 팬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그렇기에 더욱더 입술을 꽉 씹었다. 비록 트레이드 직후 스캔들이 터지고, 팀이 몰락하면서.
나도 우승 반지를 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품었던 희망찬 미래는 모두 망가졌고.
같은 투수이기에, 사인 훔치기에 대한 본질적인 혐오감 역시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은 이곳의 에이스나 다름없다. 이번 시즌, 팬들이 가장 신뢰하는 투수이지.
“아웃!”
그러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다시금 회복한 호흡 그대로, 차근차근 타자를 잡아냈다.
“베이스 온 볼!”
살짝 컨트롤에서 미스가 난 탓에, 볼넷을 하나 더 허용하기는 했지만, 꿋꿋하게 기세를 유지했다.
“아웃!”
그렇게 다시금 막아낸 5회 초.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간 뒤, 게릿 콜은 가쁘게 내쉬었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수고했어, 어떻게든 한 점 내볼게.”
동료들도 그의 노고를 이해해준 건지, 재빠르게 길을 비켜서며 자리로 인도했고. 타자들은 어떻게든 점수를 내보겠다며 선언했다.
에이스가 멋지게 던지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 보상이라도 안겨주고 싶었으니까.
그 역시 내심 바라고 있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휴식을 가지려던 게릿 콜이었지만.
“아···”
이번에도 그의 시간은 당겨졌다. 어쩌면 이전 이닝보다 한 박자는 더 빠르게.
“스트라이크 아웃!”
다시금 마운드에 오르며, 묘한 눈빛으로 휴스턴의 덕아웃을, 게릿 콜 그를 쳐다보던 상대투수, Go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금 애스트로스를 도륙했으니까.
어떻게든 한 점이라도 내보겠다던, 타자들의 비장했던 발언이 무색하게도.
“스트라이크 아웃!”
시간은 너무나도 바쁘게 흘러갔다. 순식간에 투 아웃. 삼진 두 개가 올라갔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느라, 이마에 흐른 땀조차 닦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아웃!”
그리고 기어코 마지막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을 때, 게릿 콜은 입술을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Fuck.’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욕설이 떠올랐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으니까.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 숙인 타자들이 조금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들도 어쩔 수는 없겠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테니까.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게.”
“그래, 집중하고, 이번 이닝도 잘 마쳐보자.”
포수의 격려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금 올라 선 마운드는, 방금 전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몇 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다시 재회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하겠지.
다만 그렇기에 더욱더 지독했다. 발자국, 이 마운드 위에서, 게릿 콜 자신의 것이 아닌 흔적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 모든 공을 일정하게 던졌다는 뜻이지. 단 하나 외에는 일체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깨끗한 마운드가 짧았던 휴식시간과 어우러져, 마치 게릿 콜 그 혼자만 공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든 버틴다.’
그에 이를 꽉 깨물면서도,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마운드 위에서라도 조금이나마 준비를 갖추고 싶었지만, 타자는 그런 여유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배터박스로 입장했지, 준비동작조차 없이 곧바로 타격자세를 잡았고.
애슬레틱스의 전략일 거다.
저 녀석, Go가 등판할 때마다 시행하는 전략. 빨라진 인터벌에 지치기 시작한 투수를 더욱더 압박하려는 거지.
‘빌어먹을 새끼들···’
지독스럽게 구는 상대팀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웃!”
“세이프!”
“세이프!”
이닝이 시작된 이후, 휴식이 더욱더 사라져서 그럴까, 아웃 하나를 간신히 잡은 뒤, 연이어 안타를 헌납하기도 했다.
둘 다 단타였기에, 다행히 주자 1,2루로 그쳤지만, 명백히 흔들리고 있다는 징표였지.
Go라는 이름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릿 콜 그처럼, 그의 역투에 살아났던 분위기도 다시금 내리막을 걸었다.
흥분이나 환호성 대신, 불안불안한 걱정만이 느껴졌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그럼에도 끝까지 딛고 일어섰다. 이젠 오기에 가깝겠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아주 만족스럽고,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있기에, 고작 상대 선발투수에게 휘둘리면서, 패배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더욱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스트라이크 아웃!”
억지로 공을 뿌리쳤다.
다시금 KK.
“이예에에에에에에에에!”
“Cole! Cole!”
“Fuck Yeah!”
“KK! 네가 최고다! X발 Suck이고 나발이고 니가 최고야!”
의지와 집념으로 다시금 틀어막은 이닝. 서서히 잦아들던 목소리에 다시금 힘이 실렸다. 어쩌면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그런 환호성 속에서 마운드에서 내려가며, 게릿 콜은 꿋꿋하게 버텨냈다.
‘아직, 아직 더 할 수 있어. 후우, X발 충분해! 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팬들과 마찬가지로, 그 스스로도 해냈다는 충만감이 차올랐으니까.
비록 힘겹게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끝끝내 이겨낸 자신을 향한 예찬이자, 마인드 컨트롤이기도 했고.
‘할 수 있어, 이대로 끝까지 가는 거야. 한 이닝 더-’
그렇게 다시금 당당하게 입성한 덕아웃에서, 그는 자신감에 차, 그라운드를 지켜봤지만.
“스트라이크~~~”
그토록 힘겹게 이겨내고, 억지로 버텨낸 것이 무색하게도. 상황은 더욱더 최악으로 치달을 뿐, 딱히 밝아지지 않았다.
힘겹게나마 오른 산봉우리 위에는, 더욱더 드높아, 구름에 가려졌던 새로운 봉우리가 있었을 뿐.
“아웃!”
끝이나, 마지막 같은 건 없었다.
‘한 이닝 더···가, 의미가 있을까?’
그 잔인한 현실 앞에서, 상대 투수만큼이나 지독한 탈력감이 그에게 닥쳐왔다.
####
체크메이트.
상대 대장이 쓰러졌다.
7회 초, 게릿 콜은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투수교체였지.
“세이프!”
“Yeeeeeeeah!”
“꼴랑 1점이 뭐야! 팍팍 내, 팍팍!”
“Suck 고생한 거 안 보여! 상대 투수 치워줬는데, 니들도 X발 성의를 보여야지!”
그리고 점수가 올라갔다.
바뀐 투수는 잘 치네.
열심히 애스트로스 타자들 때려잡아서, 게릿 콜을 압박한 보람이 있어.
‘7회에도 버티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네.’
너무 잘하길래, 저대로 끝까지 가는 거 아닌가, 괜히 초조했는데, 결국에는 못 버텼구만.
솔직히 나도 게릿 콜을 끌어내리느라, 조금 무리하기는 했어. 평소보다 더 빨랐거든. 급발진도 이런 급발진이 없지.
상대가 워낙 잘하고 있고, 흐름을 잘 타고 있는 터라, 그 흐름을 억지로 망치기 위해서 온힘을 다했는데, 다행히 성과는 봤구만.
“이제 됐지?”
“한 점 가지고?”
“에이,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나 오늘 7이닝이 끝이다. 혹시 모르니까, 점수 더 내라.”
“그 말은 불펜을 못 믿는다는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
선취점이 올라갔고, 난 드디어 승리투수 조건을 갖췄다. 거 조건 하나 갖추는 게 오지게 힘드네.
비록 1대0이라서, 불펜이 불 지르는 것도 아니고, 삐끗 실수라도 한다면, 그대로 날아가는 거지만, 그래도 아예 못 갖추는 것보단 낫지.
‘어디, 끝내러 가볼까?’
그렇기에 기분 좋게 웃으며 7회 말, 일곱 번째 이닝을 맞이해 그라운드에 입장했지만. 딱히 날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Hell Yeah!”
“You Suck!”
“마지막은 KKK, 알지? 이게 기본이야.”
레이더스야 반겨주는 정도가 아니라, 집착하는 수준이니 그렇다 치고.
이젠 확실하게 야유도, 노려보는 눈초리도 사라졌지. 그냥 멍하네. 수만 명 전부 다.
게릿 콜이 잘 던지면서, 나랑 대등하게 투수전을 이어가는 모습에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정작 그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으니, 상실감이 장난이 아니긴 하겠지.
만약 이번 이닝에서, 내가 박살 나거나, 실점하거나, 홈런이라도 하나 맞는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되살아나 흥분으로 가득 차겠지만.
“스트라이크!”
말했잖아, 체크메이트라고.
난 그래 줄 생각 없다.
애스트로스가 뭐 이쁘다고, 괜히 기를 살려줘?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못질해야지.
물론 타자들이 갑자기 힘을 내서, 내 자비를 구하는 대신, 스스로 쟁취할 수도 있지만.
“아웃!”
딱히 그럴 가능성도 없어 보이네.
7회 말, 선두타자 알렉스 브레그먼은 손쉽게 아웃 처리됐다.
지난 타석에선 안타 하나를 날리며, 팬들을 기쁘게 했지만, 이번 타석은 그저 중견수 플라이로 그쳤지.
빡세게 던지면서, 힘을 쫌 빠지기는 했나 보네, 공이 제법 외야 멀리 날아가는 구만.
그것이 살짝 걱정스럽긴 했지만, 사실 큰 문제는 없다.
‘그거야 브레그먼이나 그런 거고, 나머진 어림도 없지.’
그나마 최근 타격감이 절정에 달한 알렉스 브레그먼이니까, 좋은 타구라도 날리는 거지.
“스트라이크 아웃!”
나머진 얄짤 없어.
3번타자 호세 알투베, 속도를 더욱더 끌어올리는 동시에, 릴리스 포인트를 바꾸면서 던진 쓰리핑거 체인지업에, 그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해트트릭이지.
오늘 경기에서 삼진만 세 개를 당했으니까. 에이스야, 에이스.
‘이제 끝을 보자고, 오래 버티긴 했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잖아?’
마지막 4번타자 조시 레딕.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는 성격을 가져, 클럽하우스의 재담꾼으로 유명한 선수이지만.
지금은 그 잘생긴 얼굴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짙은 눈썹도 일그러졌고.
그런 조시 레딕에게 몸쪽으로 바짝 붙은, 프론트도어성 너클 커브를 던져,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것으로.
“스트~~~~라잌 아웃!”
오늘 경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어쩌면 더 나아가, 애스트로스와 내 관계의 마침표일 수도 있고.
7이닝 11탈삼진 무실점.
내 평균적인 성적을 감안하면, 조금은 부족한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화룡점정을 찍었네.’
그럼에도 체크메이트가 되기는 충분했다.
이닝이 끝난 뒤에도, 잠시 마운드 위 우뚝 서서, 경기장을 쭉 훑어보자, 그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애스트로스의 팬들도, 선수들도, 그저 내 시선을 피했을 뿐. 감히 쳐다보지 않았지.
‘여긴 이제부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서드 홈구장이다. 다들 그렇게 알도록.’
그것으로 텍사스 정복이 완수됐다.
미닛 메이드 파크도 이제 내 거구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레인저스도 나한테 홈구장 뺏긴 지 오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