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BauerOutage]
[난 3차전 등판을 원했고, 이번에야 말로 Go를 발라주려고 했지만, 걔가 승부를 피했어. 하나만 묻자, 이런 겁쟁이가 진짜 당신들의 GOAT야?]
시리즈 내내 이어졌던 트레버 바우어의 배웅을 뒤로한 채, 인디언스 시리즈를 마치고, 우린 다시 휴스턴으로 날아갔다.
앙칼진 고양이처럼 사납게 울어대는 트레버 바우어와 달리, 다시금 나를 맞이해야 하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대단히 예민했다.
내가 1차전에 등판할 예정이거든. 그래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지. 왠지 모를 원망도 쏟아지고 있고.
가만 보면 애스트로스 팬들도 이젠 날 조금은 미워하는 것 같아. 마치 같은 텍사스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처럼.
“이젠 정말로 텍사스 전체가 날 미워하는구만.”
“정확하게 말하면 공포지. 미움이 아니라.”
뭐, 브루스의 말처럼 공포일 수도 있고. 사실 그 두 가지는 엇비슷한 감정이지.
“원래 미움과 공포는 엇비슷해. 정확하게 말하면 공포에 미움도 같이 포함되어 있는 거지.”
“그런가? 뭔가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그렇잖아? 미워하는 한편으로 두려운 거니까. 예를 들어 슈퍼맨은 성인 남자 머리통도 새끼손가락으로 터트릴 수 있지만, 밉지 않으니, 아무도 안 무서워하는 것처럼.”
“호오, 계속 들으니까,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네, 아주 철학적이야.”
그에 대한 내 세부적인 설명에 브루스는 제법 그럴듯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이게 뭐가 일리가 있어, 그냥 개똥소리지.”
웃기고 자빠졌네.
그냥 여행길 지루함에 개소리 지껄인 건데, 뭔 철학은 얼어 죽을 철학이야? 입으로 뀐 방귀나 다름없는데. 그냥 되는대로 씨부렸더니, 혼자 고개 끄덕이고 있네.
“아부해줘도 지랄이야.”
“너무 노골적이잖아. 영혼과 진심을 담아서 하라고. 쏘울 인마, 쏘울.”
평소처럼 브루스를 갈구긴 했지만, 사실 완전히 개소리는 아니긴 하다.
어쨌든 애스트로스가 날 미워하는 한편으로, 두려워하는 건 사실이니까.
‘정작 난 빈볼 하나 안 던졌는데 말이야.’
이번 시즌 내내 꽤나 노골적으로 빈볼의 위협을 당했던 애스트로스인데.
그렇게 위험한 데드볼을 던진 투수들보다 오히려 나를 더 미워하고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애스트로스의 기세가 살아 날만 하다 싶으면. 매 번 만나서 내가 때려잡고, 다시 자신감을 꾹꾹 눌러버리니.
애스트로스와 그 팬들이 느끼기에는, 빈볼 던지는 투수들보다 왠지 내가 더 밉살맞기는 할 거야.
‘올해만 놓고 보면, 레인저스 못지않게 대주기는 했지.’
당장 이번 시즌 상대전적만 보더라도, 아주 처참하니까.
이번이 네 번째 맞대결인데, 이전 세 경기에서 21이닝 40탈삼진 무득점으로 막히며, 진짜 영혼까지 털렸다.
올해 내 탈삼진의 지분은 애스트로스가 아주 톡톡하게 챙겨줬다고 봐도 무방하지.
나한테 있어서 전통의 호구인 레인저스는, 올해는 아직까진 두 번 밖에 안 만났으니, 이번 시즌만 놓고 보면, 레인저스보다 애스트로스가 더 호되게 당하긴 했어.
‘물론 레인저스는 그 두 경기 중 한 번이 완봉이긴 하지만.’
어쨌든, 텍사스를 연고지로 한 두 형제가 나란히 한 투수한테 열심히 대준 셈이군.
텍사스, 참 좋은 동네라니까. 특별히 나한테만. 항상 들릴 때마다 행복했던 추억을 남겨준 곳이지.
‘이번에도 좋은 추억이나 쌓아보자고.’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일 거고.
####
“오늘은 길어야 7이닝이야, 알지?”
휴스턴에 도착했을 때, 짐을 내리기도 전부터 스콧 에머슨은 아주 단호하게 선언했다.
저번 경기에서 완봉을 쿨하게 허락해주셔서, 오늘도 기대했더니, 역시나 이렇게 나오는군.
이미 예상했다. 완봉한 직후의 등판이니, 당연히 7이닝이 마지노선이겠지.
“알죠, 저번 경기에 완봉했으니까. 다만 하루의 휴식일이 끼어 있었던 만큼, 그것까지 감안하여 조금 더 긴 피칭을 보장해주시면 더욱더 좋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뿐이고요.”
“안 돼.”
“이렇게 길게 말했는데, 너무 짧게 대답하는 거 아니에요? 최소한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하시라고요.”
“흐음··· 잠깐 고민해봤는데, 안 돼. 이제 됐지?”
“옙.”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득의 여지를 던져봤지만, 역시나 아주 단호하게 거부됐다.
음, 단호한 모습을 보아, 뭘 해도 안 통할 것 같으니, 오늘은 얌전히 수긍하자고.
안 그래도 요즘 들어, 혹사라는 말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어서,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괜히 나까지 자극했다간, 본전도 못 찾겠지.
다행히 저번 경기에서 무사히 완봉한 덕분에, 한동안 더럽게 완봉이 마려웠던 것도 좀 진정됐으니까. 아직은 괜찮아.
‘애스트로스는 7이닝씩만 터네.’
이번 시즌, 지난 경기들도 딱딱 7이닝씩 끊었었는데, 뭔가 항상 애매하게 만나는구만.
레인저스처럼 완봉 한 번씩 해줘야, 기강이 제대로 잡힐 텐데, 어째 화룡점정을 못 찍네.
그래도 이미 호구는 잡아둔 상태니, 다행이지만 말이야.
그렇게 일찌감치 오늘 소화할 이닝이 결정된 상태로 미신 메이드 파크로 도착했을 때. 제법 많은 숫자의 인파가 우릴 반겨줬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진짜로 반겨준 건 아니고, 그냥 고깝게 쳐다봤지. 거의 다 애스트로스 팬이니까.
‘저번보다는 확실히 더 많네.’
마지막으로 미닛 메이드 파크에 왔을 때가 아마도 4월 말일 텐데, 그때보단 사람이 더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말만 하더라도, 애스트로스가 화려하게 추락하던 시기였으니까.
전자기기 사인 스틸 스캔들로 떠들썩하면서, 떠나간 팬들이 많았었지. 끝까지 버티던 사람들도 있긴 했고.
그에 반해 지금은 조금 분위기가 시들해졌을뿐더러, 애스트로스도 어느 정도 다시금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으니,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기는 하지.
‘여전히 3위이고, 와일드카드 경쟁도 아슬아슬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예 쭉 내려 박던 것과 비교하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관중들도 더 몰릴 수밖에.
“Suck, 오늘 나오는 거 맞지?”
“옙, 나옵니다. 7이닝만 던지고요.”
“뭐, 원정이니까 괜찮아. 그리도 다음 경기가 더 중요하니까.”
“난 삼진 10개 이상 잡으면, 몇 이닝 던지든 상관없어.”
“열 개는 너무 당연하고, 못해도 열다섯 개는 잡아야지.”
물론 개중엔 레이더스도 있고. 역시나 오늘도 바글거리는구만. 아무리 애스트로스가 같은 지구라고 해도, 휴스턴이 그렇게 가깝지는 않은 곳인데 말이야.
‘하긴, 보스턴까지 따라오는 사람들한테 휴스턴은 옆집이나 다름없긴 하지.’
그런 인파를 뚫고서, 입장한 미닛 메이드 파크는 이전과 똑같았다.
“여긴 올 때마다 부럽네.”
“콜리시엄도 이랬으면, 진짜 야구 즐겁게 했을 텐데.”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지.”
“원래 즐거우면 잘하잖아?”
시설이 좋긴 좋아.
콜리시엄이랑 비교하면 진짜 천지차이 수준이기는 하지.
‘이렇게 좋은 곳이니, 여기도 글로브 라이프 파크처럼 만들어야지.’
이토록 외관도 좋고, 내부 시설도 좋은 경기장이니, 여기에도 단단히 깃발을 꽂아둬야겠어.
마찬가지로 텍사스에 있는 글로브 라이프 파크가 사실상 내 두 번째 홈인 것처럼 말이야.
완봉까지 한다면 제대로 침을 바를 수 있겠지만, 그건 이미 거부됐으니, 어쩔 수 없지. 정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씁-”
물론 그 한도가 좀 크긴 해.
폼도 절정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중간에 휴식일까지 끼여서 그런지, 힘이 남아도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불펜피칭에선,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펜포수의 애환이 담긴 서글픈 신음소리만이 나직하게 흘렀다.
“너무 힘 빼지 마. 시위하는 거냐? 완봉하게 해 달라고?”
“적당히 살살 던지는 거예요. 물론 허락해주신다면야, 제 한 몸 바쳐서 경기를-”
“피칭에나 집중해라,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집중력이 덜 올라왔네.”
물론 그 신음소리는 곧 애스트로스의 곡소리로 바뀔 예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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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애스트로스 타선은 최근 만난 상대팀 중에선 가장 강력한 편이다.
화이트삭스, 타이거즈, 파드리스, 셋 다 타선이 약한 편이었던 것과 달리.
애스트로스는 누차 말했듯, 팀 자체는 강하거든. 내우외환으로 삐꺽거려서 그렇지, 디펜딩 챔피언답게 강하지.
‘다만 오늘은 풀전력은 아니구만.’
그렇듯 강력한 팀이지만, 이번 경기에선 조금의 이탈자가 있기는 했다.
일단 코어선수 중 하나인 카를로스 코레아가 6월 말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주전 1루수이자, 타선의 핵심인 율리 구리엘도 이번 경기는 결장했다.
포수도 서드 포수인 팀 페데로비치가 나왔고. 전체적으로 레귤러까진 아니구만.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주전급들도 많이 나왔기에, 앞서 만났던 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강력한 편이지만···
‘그 주전급들은 PTSD가 단단히 박혀 있지.’
마운드에 오르며, 흘끔 상대팀 덕아웃을 훑으니, 훤히 보였다. 날 굉장히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상대타자들의 표정이.
이번 시즌, 애스트로스의 마음속 깊이 제대로 각인시켜 둔 공포가, 내 얼굴을 마주하면서 다시 살아난 거겠지.
오히려 이번에 새로 만난 선수들이 더욱더 도발적인, 혹은 도전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
마찬가지로 홈팬들 역시 그런 주전 타자들과 비슷한 반응을 내보였지.
1회 초, 올해 새로 합류하여,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게릿 콜이, 1회 초를 손쉽게 지워버리며, 화끈하게 달라 올랐던 경기장 역시 한순간 적막해졌으니까.
‘글로브 라이프랑 비슷하네.’
이 정도면 알링턴에 있는, 내 두 번째 홈구장과 비슷했다. 거기도 내가 마운드에만 오르만 이러잖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더니, 욕조차 퍼붓지 않고, 왠지 모르게 초조한 눈빛으로 내 눈치를 보지.
올라온 첫 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번타자 조지 스프링어, 나한테 무려 첫 피홈런을 안겨줬던 타자인데도.
그는 조금은 신경질적인,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욱더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타석에 올라왔다.
‘여전히 성적이 별로 좋지는 않던데.’
작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애스트로스의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올해는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거나, 아니면 애스트로스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사인 스틸이 없으니, 성적이 떨어졌다면서 조롱하기도 했지.
뭐, 그거야 알 수 없고. 어쨌든 최근 경기들에서도 성적이 좋지는 않다.
최근 20경기 동안 86타석을 나와서 고작 7안타를 쳐냈으니까, 타수로 따져도 72타수 5안타니, 타율이 1할이 채 안 되는 셈이지.
‘그냥 폼 자체도 많이 떨어졌어.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가?’
지금의 슬럼프가 계속 이어진다면, 별로 좋지는 않겠지. 그대로 훅 가버릴 테니까.
사인 훔치기의 수혜자라는 불미스러운 꼬리표도 계속 따라붙을 거고.
당장 알투베만 보더라도, 올해도 꽤나 잘하고 있기에, 사인 스틸과 별개로 그냥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잖아?
그러니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겠지만, 사실 그딴 건 나랑 별 상관없고.
“스트라이크!”
내 입장에선 그냥 땡큐다.
까다로운 타자 중 한 명이 저렇게 내려 박았으니, 그저 감사히 여기면서 맛있게 잡아먹어야지.
초구는 슬라이더.
바깥쪽에서부터 들어오는 코스에 그는 살짝 몸을 움찔거렸지만, 결국 스윙을 내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구만. 한번 과감하게 휘둘러도 괜찮은 코스였는데 말이야.
‘갑자기 살아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늘은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되겠어.’
비록 초구 하나 던진 것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그에 대한 대처만으로 이미, 타자의 상태가 훤히 보였다.
“볼.”
마찬가지로 2구 역시 아슬아슬하게 몸쪽으로 박힌 포심에 잠깐 달싹거리기만 할 뿐 스윙하진 못했고.
스스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건데, 그러면 더 볼 것도 없이.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편하게 때려잡아야지.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 이후, 바깥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친 서클 체인지업.
마지막까지도 스윙을 내지 못한 조지 스프링어는 짧은 한숨을 남긴 채 타석에서 물러났다.
마찬가지로 관중석에서도 약간의 한숨소리가 흘렀고 말이다.
“You Suck!”
뭐, 그마저도 소수가 내지른 환호성에 가려졌지만 말이다.
나를 보는 홈팬들의 미움 가득한 시선이 더욱더 짙어졌을 대, 2번타자가 올라왔다.
알렉스 브레그먼.
인연이 오래된 녀석이지.
나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슬럼프에까지 시달리며, 눈빛도 조금은 흐릿했던 조지 스프링어와 다르게.
그는 제법 부릅뜬 눈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뽐내여 배터박스로 입장했다.
그와 비슷한 주전급 타자들이 나한테 공포를 느끼는데 반해, 알렉스 브레그먼은 그나마 레귤러 선수들 중에선 유일하게 도전적인 모습이었다.
아직 젊은 녀석이다 보니, 최근 다시 되살아나는 애스트로스의 기세에 본인의 사기도 올라갔겠지.
앞선 타자와 다르게, 얜 최근 성적이 좋기도 하고. 현재 애스트로스에서 가장 강력한 타자 중 한 명이니까.
‘완전히 물이 올랐던데.
선두타자인 조지 스프링어와 마찬가지로, 최근 20경기를 통틀었을 때.
알렉스 브레그먼은 93타석 81타수 27안타로, 2루타 9개와 홈런 7개를 날리며, 그야말로 물오른 기량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 경기에서 가장 주의 깊게 상대하고, 대처해야 할 타자라고 해야겠지.
‘살짝 간만 보자.’
그렇기에 조금 더 주의하는 마음으로, 바깥쪽으로 살짝 먼 초구를 던져 보냈다.
“파울!”
그러자 곧바로 나온 스윙.
역시나 거침없구만. 이래서 자신감이 중요하다니까. 자기 스윙에 망설임이 없으니, 반응속도도 재깍재깍 나오잖아.
“파울!”
곧이어서 던진 2구째, 낮게 깔린 서클 체인지업도 아주 즉각적으로 쳐냈다.
무슨 미사일 방어 체계 같네. 뭔가 날아오는 족족 요격하는구만.
제대로 집중력이 올라왔고, 경계 역시 아주 단단히 하고 있다는 건데, 경기 내내 제법 까다로운 타자로 남을 것 같았다.
“볼.”
다시금 낮게 던진 4구, 타자는 칼 같이 골라내는 걸 보면, 선구안도 올라온 것 같고.
엄청 껄끄럽기는 한데···
‘못 잡을 정도는 아니지.’
5구째, 과감하게 몸쪽으로 날아든 공에는 이번에도 스윙이 나왔다. 패스트볼을 예감한 듯, 재빠른 타이밍으로 배트가 휘둘러졌지만.
“아웃!”
투심까진 예기치 못했던 건지, 마지막 순간 정확도를 잃으며, 살짝 빗맞은 타구가 가볍게 마운드 앞으로 굴러왔다.
손쉽게 잡아, 처리하는 것으로 투아웃. 가뿐하게 처리했다. 조금 더 타이밍이 쌓인다면 모를까, 아직은 괜찮네.
‘폼이 좋아서 그런가, 공 줍는 것도 쉽네. 동작이 부드럽구만.’
가뿐했던 몸놀림에 내 스스로를 칭찬하며, 맞아들인 세 번째 타자. 모두가 알다시피 호세 알투베다.
“우우우! 땅딸보 Out!”
“또 삼진 처먹을 시간이다, 이 난쟁이 새꺄!”
“제드가 최고고, 넌 X발 2인자도 아니야! 한 132인자라면 모를까!”
유독 그를 싫어하는 레이더스가 아주 야유를 퍼부었는데, 정작 홈팬들은 조용하니.
여기가 우리 홈인지, 아니면 애스트로스 홈인지, 헷갈릴 지경이네. 아주 좋아.
“우우우우!”
다만 결국 참지 못했던 건지, 조금 뒤늦게나마 나와 원정팬들을 향한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그렇듯 조금은 소란스러워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배터박스로 올라온 타자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타격자세를 잡았다. 승부에만 집중하시겠다? 나쁘지 않지.
‘아닌 척해도 눈동자가 좀 흔들리네.’
의지가 투철해 보이나, 알렉스 브레그먼처럼 도전심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도 나한테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여전히 좋은 성적을 이어가며, 역시나 애스트로스에서 위험한 타자 중 한 명이긴 하다.
올스타 투표에서도 2루수 포지션에서 2위인가 3위인가 그렇고.
참고로 놀랍게도 현재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투표 2루수 1위는 지금 내 뒤에 있는 제드 라우리다.
아주 놀라운 일이지. 저 SNS 중독 양반이 이번 시즌 은근히 잘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튼 제드에게 밀렸다곤 하나, 사인 훔치기라는 대형 스캔들이 있는데도, 순위권을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호세 알투베가 충분히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성적을 기록 중이라는 뜻이다.
“볼.”
그걸 증명하듯, 차분하게 공을 골라보며, 초구를 스쳐 보냈다.
‘2,3번은 까다롭다고 봐야겠네.’
1번타자인 조지 스프링어가 만만하길래 좋아했더니, 뒤가 나란히 까다롭게 구는구만.
“스트라이크!”
물론 그에게는 내 존재감이 여전히 거대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말이야.
몸쪽으로 콱 박힌 포심 패스트볼, 그렇게까지 깊지 않았는데도 호세 알투베는 몸을 움찔거렸다.
‘이쪽은 오히려 여지를 주면 안 되겠어.’
지그시 깔린 감정을 더욱더 증폭시켜야 했다. 더욱더 강하게 찍어 누르는 거지.
“스트라이크!”
그런 마음에 다시금 몸쪽, 이번엔 타자의 배트가 나왔지만.
너클 커브는 떨어지는 동시에, 오히려 타자의 몸쪽으로 더욱더 파고들며 스윙을 피해, 포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우우우!”
“빈볼이잖아! 힛 바이 피치라고! 이게 왜 스트라이크야!”
“X발 너도 똑같은 새끼야!”
거의 빈볼이나 다름없는 코스, 불만이 더욱더 차오르면서, 이제야 말문이 트인 건지, 관중석에선 야유가 흘렀다.
시즌 내내 당하면서 쌓였던, 애스트로스의 빈볼 트라우마를 자극해서 그런 거겠지.
힛 바이 피치인데, 어째서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했느냐고 악다구니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는데.
‘헛스윙인데, 힛 바이 피치가 어딨어? 무조건 스트라이크지.’
애초에 유니폼도 안 스쳤어. 내 눈이 백만 불짜리라서, 정확하게 봤거든.
괜히 말 나오게 하기 싫어서, 딱 안 맞을 정도로만 각도를 잡기도 했고.
그렇게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투 스트라이크, 말문이 트인 팬들에, 오히려 힘이 난 건지, 호세 알투베는 조금 볼만 해진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어딜 야려.’
다들 뭔가 착각하신 거 같은데, 니들 원래 호구에요. 자신감을 되찾고 나발이고, 애초에 나한테 털리던 입장이라고.
하이 패스트볼.
다시금 우렁찬 헛스윙이 나오면서, 깔끔하게 삼진이 올라갔고, 시끌시끌해지는가 싶었던 미닛 메이드 파크에는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슬슬 글로브 라이프 파크랑 비슷해지고 있구만, 계획대로 되고 있어.’
레인저스도 딱 이랬지.
막 흥분했다가, 갑자기 다시 쭉 닥치고, 또 흥분하다가 또 닥치고. 원래 그렇게 서서히 조련이 되는 거지.
딱 보니, 글로브 라이프 파크처럼, 미닛 메이드 파크에도 내 깃발을 꽂을 날이 머지않았구만.
언젠가 알링턴에 이어서, 내 세 번째 홈이 될 휴스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마운드에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