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인디언스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를 거두면서, 7월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첫날부터 홈에서 이기고 스타트를 끊었으니, 딱 좋지. 거기다가 그다음 날이 곧바로 휴식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드론맨 또 입 털었던데, 네가 일부러 자기랑 대결 피하고 있다면서.”
“가만히 있지 말고, Suck 너도 뭐라고 하지 그러냐?”
다만 완전히 기분 좋고 깔끔한 건 아니고, 인디언스의 드론맨, 트레버 바우어가 6이닝 2실점으로 적당한 성적을 찍었고. 또한 그로 인해 내 뒤를 이어서, 6월 전체 탈삼진 2위를 차지하며, 그에 대한 뽕에 찼던 건지, 뜬금없이 날 상대로 입을 털긴 했는데.
“뭐하러 상대해줘? 클루버라면 또 모를까. 바우어 정도야 뭐··· 떠들라고 해.”
“이야~ 드론맨이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지겠네.”
딱히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뭔 상관이야. 지 혼자 떠든다는데. 걘 나한테 너무 집착해. 까놓고 말해서 난 다시 붙어줄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사실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이전에도 종종 날 저격하거나, 도발한 적이 있다.
특히 도핑 의혹이 불거지고, 온 사방을 휩쓸면서 난리가 났을 때, 아주 신나서 지가 직접 나서더니, 아예 본인 SNS를 이용해서 여기저기 루머를 퍼나르더라.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얜 내 덕분에 고소장 안 날아간 거 알고는 있을까?’
그런 트레버 바우어의 행동에 동종업계 동료에 대한 동지 의식이 없다면서, 브라이언이 빡돌아 고소장 날린다는 걸 내가 겨우겨우 막았었지.
아마도 저번에 맞붙었을 때, 먼저 입을 털어놓고도 처참하게 발렸으니.
어떻게든 내 시선을 끌어서, 다시 한번 붙고, 라이벌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은데···
‘응~ 너 개 못하잖아, 너 개 못해서 너랑 안 해~’
원래 또라이는 병먹금이 진리다. 괜히 거슬린다고 맞춰주다 보면, 결국 같은 급 되는 거야.
그냥 대꾸조차 안 해주고, 영원토록 승자로 남는 편이 훨씬 이득이지.
“그나저나, 제법 태가 난다? Suck 너 타자했어도 괜찮았겠는데?”
“진작 이렇게 하지, 왜 그딴 X같은 타격폼을 유지한 거야?”
“어허, X같다니. 그게 다 심오한 인체역학이 담긴-”
“오리 궁둥이에 무슨 인체역학?”
“셧업.”
그리고 트레버 바우어 따위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있었으니까.
휴식일 날, 텅 비어 있을 훈련장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죄다 타자 놈들이었지. 아주 좋은 구경이라면서 죄다 몰렸네.
평소라면 쉬는 김에 다들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술이나 진탕 마시기 바빴을 텐데 말이야.
“스트라이크~ 어림도 없어.”
“그래도 힘은 좋네, 전보다 훨씬 나아. 스윙 속도도 빠르고.”
“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하네. Suck 네 그 X같은 스윙 볼 때마다 내가 다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 타자 놈들이 오늘은 내 주변을 둘러싸고서 날 구경하고 있는데, 별건 아니고, 그냥 내 타격 연습을 보고 비웃는 거다.
저번에 크리스 데이비스가 그랬잖아, 엉덩이 집어넣고, 허리 펴고, 자세 똑바로 잡고 치라고.
어차피 나한테 안타나 출루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고, 헛스윙 삼진을 당하든 뭐하든 상관없으니. 그냥 마음 놓고 타격 스타일 자체를 바꾸라는 건데.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서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켜봤던 슬러거들의 폼을 참고하고, 대니얼의 도움을 받아 내 체형에 맞게 살짝 고쳐서 연습했는데.
“나이스~~”
“크흐흐, Suck 쟤도 별거 없네!”
“너는 진짜 투수한 게 다행이야. 타자였으면 루키 리그도 못 벗어났을 텐데.”
“거봐, X나게 어렵다니까? 이것도 피칭 머신이라서 그나마 쉬운 거지, 진짜 투수 공 보면 말도 못해~ 우리도 힘들다고.”
그게 참 재밌는 구경이라는 이유로 빌어먹을 타자 새끼들이 죄다 몰렸다.
내가 점수 내라고 닦달했던 것에 대한 앙금이 남은 거겠지. 내가 특유의 타격폼을 갖다 버린 것에 대한 후련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전문 타자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이상했나?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참 좋았는데.
‘X같구만.’
스윙 한 번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추임새 수십 개가 날아드는 통에 영 집중이 안 됐다.
뭐랄까, 동물원 우리 안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야.
아니지, 원숭이는 초큼 인종차별 같으니까, 우리 안의 호랑이라고 하자. 우리나라는 호랑이의 나라니까.
“다들 꺼져.”
“미안하지만, 마운드라면 모를까, 배터박스에 있는 Suck 네 명령은 듣지 않아.”
“그렇다면, 내일 마운드에 오르는 선발투수의 이름으로 미리 명한다, 이제 꺼져.”
“거절한다. 마운드에 오른 뒤에 명령해라.”
시끄럽게 구는 타자들 때문에 왠지 더 집중이 안 되고, 잡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라, 꺼지라고 소리쳐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아서, 결국 나도 포기하고 타격에만 집중했다.
사실 타격 훈련이라고 해봤자, 내일 등판이라, 그냥저냥 연습 삼아 가볍게 프리배팅 서른 개 정도만 하는 건데,
현재까지 28개가 날아왔는데도, 내가 맞힌 공은 단 한 개였다. 그마저도 엉겁결에 얻어걸린 거지.
오늘만 유독 안 맞는 건 아니고, 새로운 타격폼으로 바뀐 이후로 늘 이런 식이지.
‘역시 원래 타격폼이 최고야. 공 맞히는 건 그거만 한 게 없는데.’
옛날 타격폼이 보기에는 그래도, 컨택은 진짜 최고였는데, 프리배팅 수준에선 거의 웬만한 건 다 칠 수 있었고.
물론 그래 봤자 죄다 내야도 못 넘겼지만.
이젠 아예 맞히지도 못하고 있으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집어치우고, 원래 하던 대로 할까 싶었지만···
“Go, 아주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만 해! 딱 너한테 어울리는 타격이야!”
“하하, 폼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Go, 그대로만 하세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습니다.”
‘코치랑 대니얼이 아주 똘똘 뭉쳤어.’
스콧 에머슨과 대니얼이 아주 똘똘 뭉쳐서, 지금의 타격 방식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었다.
내가 똑딱이질 하면서 뛰어다니는 걸 바라보며 계속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그냥 막 휘두르게 하겠다는 거지. 어쩐지, 대니얼이 너무 쉽게 협조한다 했어.
어쩌면 둘이서 나 몰래 속닥속닥 했을지도 모르겠구만.
그리고 사실 그 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점점 이상하게 이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고.
“스트~~~라이크!”
비록 지금처럼 거의 다 헛스윙이기는 한데, 간간히 하나 후려치면 ···
“자~ Go, 이제 마지막이야. 이 정도만 하고 좀 쉬자?”
“옙.”
거의 스탠튼 급이거든.
내가 확실히 힘이 장사이긴 한가 봐. 30구, 짧은 프리배팅의 마지막을 장식할 공이 날아왔고, 다시 오래간만에 손맛이 느껴졌다.
‘왔다.’
손맛이라고 해봤자, 너무 짧아서 딱히 느낄 새도 없었지만.
“전 타석 삼진이네. 방출감 아니냐?”
“무조건이지. 아마 세 경기쯤 하고 바로 방출- 어?”
“미친···”
“무슨 고릴라도 아니고···”
“공이 저렇게 날아가? 투수인데?”
내내 구경하면서 낄낄거리던 타자 놈들도 이제 볼 것도 없겠다, 다시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려는 건지, 주섬주섬 떠날 채비를 하다, 화약이 터지는 듯한 굉음에 우뚝 멈췄다.
드디어 배트에 직격한 공이, 곧 하늘 높이 날아갔으니까.
낄낄거리던 타자 놈들은 눈을 부릅떴고. 타구는 마치 지상에서부터 쏘아 올린 미사일처럼 일직선으로 쭉 상승하더니, 결국 담장을 넘었다.
“Suck 너 잘하면 나중에 자이언츠 때 스플래시 히트라도 하겠는데?”
“진짜 힘은 최고네.”
“덩치 봐, 힘이 넘치고도 남지.”
“X나게 안 맞는데, 맞는 족족 스탠튼 급이네.”
“아니, 이렇게 힘이 좋으면서 왜 이제까지는 그딴 식으로···”
그걸 지켜보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웃던 타자놈들이 입을 쩍 벌렸고, 몇 명은 대체 왜 이런 파워를 가졌는데도 지금까지처럼 타격했느냐며 화를 내기까지 했지만.
“이거 잘하면 진짜로 실전에서도 홈런 치겠는데?”
“충분히 가능하지, 파워는 진짜야. 이야, Suck 쟨 어떻게 타자에도 재능이···”
“배팅머신 구속 얼마야?”
“80마일. 아니지, 75마일이던가?”
“아, 그럼 어림도 없겠네. 그냥 힘만 좋구만.”
“어쩐지, 공이 X나게 느린 것 같더라.”
다 이유가 있다 이거야.
구속 75마일짜리 고물 배팅머신을 상대로 한 프리배팅에서도 서른 개 중에 고작 두 개 맞히는데, 실전에선 오죽하겠어.
내가 괜히 이 덩치에 똑딱이가 된 게 아니라고. 진짜 더럽게 안 맞는다니까?
‘기존 타격폼이나, 지금이나, 극단적인 건 똑같구만.’
내야를 넘는 타구가 없는 대신 두 발로 모든 결 해결하는 똑딱이거나, 더럽게 안 맞는 대신 하나 맞으면 냅다 솟아오르는 공갈포거나. 어째 중간이 없네.
조이 갈로랑 지안카를로 스탠튼 보고 힘센 고릴라라고 불렀었는데, 이젠 내가 딱 그 꼴이구만.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품는다면, 오프스피드까지는 어찌어찌 잘하면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투수 타석인데 오프스피드를 왜 던져, X신도 아니고.’
아메리칸 리그 투수를 상대로, 체인지업 같은 오프스피드를 던지는 메이저리거는 아무래도 없을 것 같았다. 똥망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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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타격에 대해 서서히 회의감이 생겨났을 때, 반대로 피칭은 확신에 확신이 더해졌다.
“작년 이맘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점점 더 폼이 올라가고 있거든. 올해 가장 좋았던 시절이랑 비슷할 만큼.
작년, 전반기 막바지에는 피로가 쌓여서, 폼이 훅 간 탓에 온갖 똥꼬쇼를 다 했었는데, 올해는 정반대네.
그만큼 내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는 뜻이지. 결과적으로 자화자찬이지만, 이게 팩트다. 그렇고 말고.
“생각보다 무리한 경기는 많지 않으니까요. 이닝은 많은 편이지만.”
“그렇긴 하죠. 투구수가 가장 많았던 게 레드삭스전이죠?”
“예, 두 경기에서 각각 107구와 112구를 던졌었죠.”
“뭐, 삼진 20개씩 잡았던 경기니까.”
물론 시즌 운영 자체가 좋았던 것도 크고. 의외로 투구수가 별로 안 많거든.
110구를 넘긴 것도, 도핑 의혹에 야마가 돌아서, 퍼펙트와 20탈삼진을 했던 레드삭스전 뿐이고.
100구를 넘긴 경기들도 완봉이 대부분이다. 나머진 의외로 100구 전후지.
올해는 투구수 리미트가 사라졌는데도, 오히려 더욱더 철저하게 지킨 셈이지.
“사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말이죠. Go는 체력을 아낀다거나, 투구수를 아끼겠다는 생각 따윈 하나도 안 하셨으니까요.”
“흠흠, 저도 어느 정도는 적절하게 완급조절을 했습니다.”
“그것 참 놀라운 말이네요.”
물론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의도해서 만든 결과는 아니고, 그냥 올해 공이 더 좋아진 덕분에, 타자들이 쉽게 잡힌 영향이 크다.
공이 좋으니, 결과적으로 피안타가 더욱더 줄어들고, 그 덕에 상대하는 타자들과 한 타석의 길이가 더 줄어들면서, 투구수가 줄어든 거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올해 내가 생각보다 폭주해서 날뛴 경기는 별로 없다는 거지.
스콧 에머슨, 코치도 그걸 알아야 돼. 내가 맨날 많이 던지겠다고 징징거리는 게 아니라고.
그저 선택적 기억이지, 선택적 기억. 내가 떼를 썼던 모습이 기억에 더욱더 깊이 박혔기에, 마치 자주 그랬던 것처럼 기억이 왜곡이 된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완봉이나 하죠.”
“예,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언제쯤 이야기를 꺼내시려나,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딱 말하시네요.”
아무튼 그렇게 올해 전반기를 착하게 잘 마무리했으니까, 어느 정도 보상도 따라야, 나도 계속 말 잘 듣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자꾸 목줄을 쥐려 들면 그땐 나도 참지 않는다 이거야, 뻥하고 터져서 내 마음대로 해버릴 거라고.
완봉을 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완봉이 심하게 마렵다. 너무 하고 싶어.
저번 경기는 심지어 고작(?) 7이닝으로 끊었잖아. 거기다 이번엔 휴식일도 겹쳤고, 홈이기도 하니, 딱 적기지.
그런 의미에서 대뜸 이야기를 꺼내니, 대니얼은 참 오래도 참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폼이 좋으니, 나쁘지는 않겠습니다만, 저야 Go의 피지컬만 도와주는 입장이고, 나머진 코치에게 직접 부탁하시죠.”
“대니얼이랑 코치가 한편인 거 뻔히 아는데, 아닌 척 발 빼지 맙시다.”
“이런, 이미 들켰었나요?”
“뻔하죠, 둘이 속닥거리는 거야. 일부러 손 잡고 날 이상한 타격으로 몰아넣은 것도 뻔하고. 주루 플레이 못하도록.”
“역시 리그 최고의 투수답게 눈치가 빠르시군요.”
은근슬쩍 발을 빼려고 했지만,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뭐, 대니얼 의견이 그렇다면, 괜찮겠지. 알아서 해. 단, 너무 많이 던지지는 말고.”
코치도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했고. 뭐야, 단순히 같은 편 정도인 줄 알았더니, 내가 모르는 동안 무슨 절친이라도 된 건가?
내가 무리하는 걸 방지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둘이 아주 일심동체네.
코치와 내 개인 피지컬 트레이너가, 정작 나는 제쳐놓고 서로 짝짜꿍 하는 모습이 왠지 좀 꼴 보기 싫었지만, 그래도 원하는 것은 받아냈으니, 그거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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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기는 인터리그 매치업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홈이라, 아메리칸 리그의 룰을 따라 투수 타석이 없기에 때문에, 그간 갈고닦은 New빠따질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상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저번에 만났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등판하지 못했던 친구들인데.
‘얘들도 약팀이지.’
이쪽도 약팀이다.
어째, 요즘 따라 쉬운 상대만 계속 만나네.
화이트삭스-타이거즈-파드리스, 셋 다 타선이 좀 맛이 갔으니까. 특히 화이트삭스는 그 전날 더블헤더 덕분에 더욱더 쉬웠었고.
그래도 파드리스의 경우, 연고지역의 마켓 규모 자체는 손에 꼽히는 대도시인 샌디에이고와 그 광역권을 끼고 있는 터라.
구단의 재정이나 수입 자체는 괜찮은 편이기에, 최근 들어 계속해서 반등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걸로 알고 있지만···
“스트라이크!”
아직까지는 시원찮지.
대형 영입들이 죄다 망하면서, 다시 유망주 키우기 모드에 들어갔거든.
그런 파드리스를 상대로, 오래 간만에 1회 초. 그 누구의 발자국 묻지 않은 깨끗한 마운드 위에 올라 첫 타자를 상대했다.
1번타자, 트래비스 잔코우스키(Travis Jankowski), 얀코우스키? 잔코스키? 아무튼 트래비스 무슨스키.
이번 시즌 전반기 들어서, 3할에 조금 못 미치는 타율을 자랑하며, 그래도 괜찮은 타격감을 자랑하는 타자다.
수비력도 아주 준수한 편이고, 주력도 좋아서, 올해 12개의 도루를 올리며, 파드리스의 발 빠른 야구의 주축이 된 선수 중 하나인데.
“파울!”
완벽한 똑딱이지.
사실 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파드리스 선수들이 그렇고.
보통 타/출/장의 비율을 따질 때, 각각 1할가량씩, 예를 들어 3/4/5 정도의 차이가 나면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라고 보고.
적어도 5할 정도는 차이가 나야, 나쁘지는 않다고 평가하는데, 이 친구는 오히려 출루율보다 장타율이 더 낮다.
이번 시즌, 직전 경기까지 총 54경기를 뛰고, 41경기를 선발출장해서, 194타석을 섰는데, 홈런은 고작 두 개지. 그거면 말 다했네.
‘그래도 타격감은 좋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오늘 타격감은 좋아서 공을 제법 따라가기는 했지만, 아무런 위협감도 없다.
절대로 내 공을 외야로 날릴 수 없는 타자니까. 마음 놓고 잡을 수 있지. 특히나 오늘은 폼도 좋으니, 더욱더 걱정 없고.
“파울!”
3구째, 연달아 날아든 포심 패스트볼에 타자의 배트가 심하게 밀려났다.
분명 타이밍이 얼추 맞았는데도 배트가 밀린 것이 황당한 건지, 현타감마저 느껴지네.
‘길게 끌어서 괜히 보여주지 말고, 빨리 잡자.’
같은 야구선수로서, 한 선수가 크게 좌절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고통을 빨리 끝내줬다.
4구째, 높은 코스의 공에, 하이 패스트볼이라고 판단한 건지, 그는 배트를 참았다.
어쩌면 망설인 걸 수도 있고.
앞선 투구에서 스스로 포심은 이겨내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으니, 저도 모르게 망설인 걸지도 모르지.
“스트라이크 아웃!”
허나 몸쪽으로 날아든 공은 유유히 떨어지며, 존 안으로 들어갔다. 너클 커브였거든.
그대로 루킹 삼진아웃.
“You Suck!”
평소처럼 가득 찬 콜리시엄에는 늘 그렇듯 유썩이 울렸다. 첫 타자부터 기분 좋게 잡은 게 기쁜가 보구만.
“전반기 300K 가자!”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고.
300K는 무슨 300K야.
슬슬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애슬레틱스에선 아주 흔하구만.
지금 잡은 거 포함해도, 64개나 남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오늘 포함해서 올스타전 브레이크까지 세 경기쯤 등판한다 쳐도.
경기 당 22개씩은 잡아야 가능하다는 건데, 그전에 내 어깨가 먼저 박살 나겠지.
“스트라이크!”
개드립은 가뿐하게 무시한 뒤, 다시 승부에 집중했다.
2번타자, 마누엘 마르고트.
이쪽은 파워도 약하고, 컨택도 나쁜 타입인데, 그래도 파워는 트래비스보단 조금 더 낫다.
홈런이 세 개거든. 한 개가 많으니, 무려 33%나 더 홈런을 많이 친 셈이지.
“아웃!”
확실히 파워가 남다르긴 한 건지, 몸쪽 패스트볼에 앞서 트래비스처럼 뒤로 밀린 파울이 나오는 게 아니라, 내야 높이 떠오르는 플라이볼로 물러났다.
“나이스~”
“쉽다, 쉬워.”
“삼진을 당했어야지! 이 머저리 새끼! 어차피 안타도 못 치면서 그걸 왜 휘둘러!”
순식간에 투아웃.
환호성이 흘렀지만, 아쉽게도 유썩은 안 나왔다.
2구만에 내야 플라이볼이니, 투수로선 최선의 결과이지만, 우리 팬들은 아주 철저하거든.
No 삼진 No 유썩이지.
사실 4구째 삼진을 당한 타자보다, 2구만에 내야플라이로 물러난 타자가 훨씬 Suck인데 말이야.
‘여기까진 쉽고. 이 양반이 그나마 요주의 인물인데···’
그다음 후속타자 3번 에릭 호스머. 참담한 파드리스 타선에서 그나마 가장 요주의 인물이다.
OPS가 7할 7푼이나 되지.
놀랍게도 이게 최고다.
저기도 진짜 심각하다니까.
어쨌든 팀 내에서 가장 믿을 맨이고, 그러니 3번 타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데···
‘먹튀지, 지금 당장만 놓고 보면.’
문제는 그가 무려 21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선수라는 거다. 말했잖아, 샌디에이고 돈은 은근히 많다고.
그 쟁여둔 돈을 간만에 확 풀어서, 올해 이 양반한테 투자했는데, 아주 대차게 먹튀가 됐다.
‘나한테 2천만 달러 주면 진짜 매 경기 완봉할 자신 있는데.’
그래도 짝수해에 못한다는 거야, 애초에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고.
또한 연봉값은 못하지만, 어쨌든 구단이 바라던 것처럼(?) 팀 내 최고의 타자의 역할은 해주고 있으니 괜찮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빠따질이 더럽게 안 맞거나, 더럽게 똑딱이거나 하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저 양반의 타격에도 크나큰 문제가 있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좌상바거든.
좌투수 상대로 바보지.
아무래도 좌타자다 보니, 원래도 좀 그런 기질이 있긴 했지만.
올해는 특히 짝수해라 안식년이고, 연봉도 두둑하게 받아먹는 덕분에 노후대비도 잘 돼서 그런가, 그런 성향이 더욱더 심해졌지. 타율이 거의 1할쯤 차이 날 걸?
아니나 다를까, 몸쪽으로 낮게 포심과 쓰리핑거를 꽂아주니, 시원스럽게 헛스윙했다.
‘한 구 빼고.’
“볼.”
‘바로 잡자.’
“스트~~~라잌 아웃!”
3구 역시 몸쪽. 하지만 조금 더 가까웠기에 그는 살짝 물러나며 피했고. 마지막 4구째, 갑작스럽게 바깥쪽으로 날아오자, 멀다고 판단한 건지, 스윙을 참았지만.
서클 체인지업은 그런 에릭 호스머를 놀리듯 유유히 꺾이며 존 안으로 들어왔다.
가뿐하게 루킹 삼진아웃.
“You Suck!”
Yes 탈삼진이기에, 당연히 Yes 유썩이었다.
그래, 저 양반은 좀 들어야 돼. 2천만 달러가 넘게 먹으면서 OPS가 8할도 안 된다니. 파드리스 팬들이 얼마나 화딱지가 나겠어.
물론 상대하는 나는 대유쾌하지만.
“타자들···”
“일단은 좀 별로야, 나머지 타자들도 더 관찰해 봐야 알겠지만, 오늘 공이 완전 미쳤으니까, 그냥 9회까지 편하게 쭉쭉 가자.”
“오케이, 합격. 요즘 눈치가 좋네? 아주 마음에 들어.”
그렇게 1회 초가 종료되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오늘도 호흡을 맞추게 된 브루스에게 묻자, 녀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조시 페글리랑 자주 호흡을 맞추면서 살갑게 지내니까, 위협감을 느꼈던 건지, 요즘 따라 아주 빠릿빠릿하구만.
오늘은 마침 내 폼도 좋고, 상대 타자들도 편하겠다, 포심 빡세게 던져서, 다시 한번 기를 눌러 놓으려고 했는데, 눈치가 빨라.
“잘 대답했으니, 오늘은 한번 봐주마.”
“눈치껏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그 망할 놈의 협박 좀 그만해. 진짜 살 떨려서 못 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