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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54화 (254/316)

254화

경기가 끝난 뒤, 잠깐 화장실을 들렸다가,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원정팀 화장실은 반대편인데요.”

바지와 벨트를 추스르면서 터벅터벅 통로로 나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저씨구만.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거기서 거기란 말이야. 사람들 모습은.

“알아, 내가 여기 온 게 몇 번인데. 근데 원정팀 화장실은 너무 그렇더라고. 다 찼기도 하고. 솔직히 내 경력이 얼만데, 이 정도는 이해해줘.”

“암요, 그래야죠. 메이저리그의 화석 같은 분이신데, 화장실 정도야 마음대로 쓰셔도 되죠.”

“화석은 좀 너무하고.”

알버트 푸홀스, 확실히 저 정도쯤 경력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구만.

하긴, 천하의 푸홀스가 화장실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

홈런의 아픔이야 털어냈다고는 하나, 그래도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기에 퉁명스럽게 말하니, 그는 그저 씨익 웃었다.

저것도 연륜이겠지.

자신에게 홈런 맞은 애송이의 투덜거림 정도는 귀여운 애교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는 거.

“오늘 경기 좋았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냥 늙은 놈이 갑자기 병상에서 일어났구나, 하필이면 내가 운 없이 걸렸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해.”

본인이 홈런 쳐놓고 덕담 던지는 것 역시 베테랑의 여유겠지.

그래도 왠지, 내가 지금까지 쭉 생각했던 알버트 푸홀스라는 레전드의 이미지와 그런 여유로운 모습이 잘 어울려서, 그리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메이저리그를 우습게 여기는 노련한 베테랑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야죠, 세금 한 번 낸 걸, 굳이 담아둘 필요는 없으니까.”

바로 그거라는 듯 피식 웃는 푸홀스의 모습에 문득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음, 그래? 동양인의 예의나 존중 같은 건가? 아,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려는 건 아니고.”

그는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어쨌든 진심이다. 많이 배우긴 했잖아, 교훈도 얻었고.

이번 홈런을 통해 나는 더욱더 단단하게 다져질 테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 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건지, 잠깐 당황하던 그는 이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언젠가 Go 너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 지금 같은 모습이 사라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놓지도 마. 네가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하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조금 더 짙게, 씨익 웃으며 걸어가는 푸홀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야, 진짜 에인절스 팬들은··· 아예 신경도 안 쓰는구나.’

멋진 말이기는 한데, 그로 인해 고통받는 에인절스와 그 팬들을 떠올리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 같은데 말이야.

한치의 부끄럼도 없이, 너무나도 당당한 그 모습에, 어쩌면 그토록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그가 꿋꿋하게 연봉을 씹어 먹는 이유를 엿본 것 같았다.

그래, 저런 정신력 덕분이겠지.

어떤 의미에선 저것도 위대한 선수다운 멘탈이야. 이것 참, 또 하나를 배웠구만.

‘은퇴는 아직 한참 남았겠네, 저렇게 말할 정도면.’

언론에선 내년에 은퇴한다, 올해 중간에 은퇴한다, 시즌 끝나자마자 은퇴를 발표할 거다 등등, 이미 그의 은퇴시기를 점치고 있던데.

저런 당당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아, 아무래도 모든 에인절스가 바랄, 그 운명의 시간은 예상보다 조금 더 미래의 일일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곧 은퇴할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지, 아직 포기하지도, 놓지도 않고, 자기가 원할 때까지 한다니, 그럴 자격이 있다니···

에인절스 팬들이 알면 아주 피눈물을 흘리겠어.

못해도 50살까지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위에 있는 게 내 목표인데, 어쩌면 그때쯤 팬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도 저럴 지도···

‘난 말년에 연봉이라도 적게 먹어야겠다. 그러면 똥 싸도 욕 덜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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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3 : 2 LA 에인절스/승리투수 – Go You-Suck(8IP 2R 2ER 15K)>

<2년 연속 전반기 200K! 트라웃을 압도하며 15K를 올렸다!>

아슬아슬한 1점차 승리를 굳히면서, 경기는 애슬레틱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개막전 이후 15연승을 이어갔고, 전반기 200K는 기대했던 대로 1회부터 KKK가 나오며 아름답게 달성됐으며.

트라웃에게 다시금 3타석 2타수 무안타 2삼진 1고의사구라는 초라한 성적을 안겨주는 동시에.

15K를 올려내며, 경기를 압도할 ‘뻔’했던 고유석이지만, 막바지에 나왔던 홈런 하나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애슬레틱스가 승리하고, 고유석 본인도 승수를 올린 경기였지만,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으니까.

<고유석의 2018년 첫 피홈런, 그 주인공은 알버트 푸홀스>

<알버트 푸홀스, 자신을 무시한 고의사구를 통쾌하게 되갚아주다!>

<푸홀스, Go에게 홈런을 친 네 번째 남자로 등극?!>

<노장의 울분이 담긴 통한의 한 방이 Go를 꿰뚫었다! 알버트 푸홀스, 7회 초 투런(동영상)>

어쩌면 시즌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진귀하고, 희귀하며, 드문 일 중 하나인, 고유석의 피홈런이 나온 경기였으니까.

심지어 그 주인공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알버트 푸홀스, 작년 리그 최악의 성적을 찍고, 올해도 그 기세를 이어가는, 최악의 먹튀 타자라는 것이 모두를 놀라게 했고 말이다.

[#A’s]

[하필 이런 퇴물한테 올 시즌 첫 피홈런을 맞네. 기분이 좀 더러워. 하필?]

└트라웃이면 이해라도 하지, 푸홀스가 뭐야···

└그래도 삼진 팍팍 잘 잡고, 트라웃도 잘 조져서 만족스러운 경기이기는 한데, 좀 어안이 벙벙해.

└난 순간 내가 뭐 잘못 본 줄 알았어. 맥주를 너무 마셨나? 하고 생각했다니까?

└이게 현실이라는 게 아직도 조금은 안 믿겨. Suck이 홈런 맞은 것도 신기하고, 그게 하필이면 콜리시엄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또 하필이면 그 홈런 친 타자가 푸홀스라는 것도 신기하고···

당연하게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예상하고 싶지도 않았던 장면이기에, 팬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너무나도 뜬금없이 나온 한 방이었기에, 애슬레틱스 팬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LAA]

[아니, 푸홀스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야. 푸홀스가 홈런을 쳤다고? Go한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라, 기쁘기보단 당황스럽네.

아이러니하게도, 당혹스러운 건 그런 통타를 날리며,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챙긴 에인절스 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애슬레틱스보다도 더욱더 당혹스러웠다.

└트라웃 거를 때만 하더라도, Pussy라며 욕이나 엄청 퍼붓고 있었는데, 푸홀스가 홈런 치는 거 보고 정신이 멍해졌어.

└솔직히 난 끝났다고 생각했어. 직전 타석에서도 더블 플레이 쳤으니, 이번엔 그냥 삼진만 당하라고 기도했거든. 근데 홈런을 쳐버리네···

└차라리 마이크가 한방 쳤으면 속이 후련했을 텐데, 이건 좀 뭔가···

손쉽게 타자들을 처리하고, 특히나 트라웃에겐 더욱더 얄밉게 구는 고유석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야 했지만.

지금까지 쭉 봐오면서, 알버트 푸홀스라는 타자를 향한 기대감이 전무했기에, 타구가 담장을 넘기던 모습이, 더욱더 황당하게만 느껴졌으니까.

[앨버트 푸졸스 사망]

-알버트 ‘The Baseball’ 푸홀스 부활!

└푸홀스 개같이 부활.

└여윽시, 원조 태낭만 푸홀스 답다. 이게 푸홀스지!

└이게 바로 트라웃 같은 스찌랑은 근본부터 다른 진짜 ‘슈퍼스타’다.

└└아ㅋㅋㅋ 트라웃 그래서 홈런 쳤냐고~~

└└트라웃처럼 짜잘하게 삼진 두 개랑 고의사구 얻어내는 게 아니라, 병살 아니면 홈런인 진정한 상남자다

물론 그 충격과 당혹감의 뒤에는 환희와 찬사, 약간의 조롱이 이어졌지만 말이다.

실점 하나를 안겨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겨졌던 괴물이 드디어 처음으로 무너진 거니까.

그것도 이제는 은퇴만을 남겨뒀다고 할 만한, 늙은 용사(?)의 장렬한 통타 앞에서.

[#Rangers]

[이제부터 푸홀스와 레인저스는 한 몸이다. 푸홀스를 욕하면 곧 나를 욕하는 거다. 알버트 푸홀스, The Living Legend!]

└옳은 말이다. 역시 아직은 푸홀스지!

└트라웃이고 나발이고, 푸홀스만이 진정한 Hero다!

└에인절스 X신들은 쩨쩨하게 굴지 말고, 그저 고개 처박고서 푸홀스께 연봉이나 바쳐라.

└마음 같아선 우리가 연봉의 반 정도는 대신 내주고 싶네.

└└그건 아니야. 그러다가 진짜로 팀 망해.

그간 악독한 독재자에게 시달렸던 타팀 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상쾌하고, 시원함을 느끼며 푸홀스를 찬양했다.

특히나 레인저스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비록 자신들이 첫 피홈런을 안겨주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대리만족을 느끼기는 충분했기에, 기꺼이 환희에 찬 환호성을 터트렸고.

그간 무시와 조롱을 일삼았던 것을 반성하며, 푸홀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날리기도 했다.

<‘떨어지는 페이스’ 고유석, 슬럼프가 닥쳐오나?>

<전반기 200탈삼진! 허나, 서서히 Go에게 다가오는 먹구름!>

또한 다른 것도 아니고, 알버트 푸홀스에게 얻어맞은 통타였기에, 언론에서는 언제나처럼 드디어, 이젠 정말로, 기나길었던 기람 끝에 이제야, 그 몰락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다시금 소리를 높였고.

그를 뒷받침할 만한 꽤나 타당한(?) 주장도 있었다.

트라웃을 거른 것만 보더라도, 푸홀스를 무시했던 것이 명확한 고유석이니.

리그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선수에게 얻어맞은 것이 정신적인 타격을 유발하여, 밸런스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주장 말이다.

그간 쭉 이어졌던 인디언식 기우제가 부디 이번에는 꼭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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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배움도 얻고, 레전드의 멘탈과 욕심도 보게 된 에인절스전을 뒤로하고. 약간의 찝찝함을 콜리시엄에 남긴 채, 원정을 떠났다.

그렇게 비행기에 오르며, 홈런의 여운은 빠르게 털어냈고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계속 쥐고 있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언론이 부추기는 것처럼 그 충격에 넋이 나가, 휘청거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제법 쓰리긴 하네.’

다만 아릿한 감각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말이다. 막상 경기 끝나고 나니까, 다시금 살살 아파오더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쓰리다고 해야겠지.

아무래도 전혀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맞았으니, 그만큼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물론 모든 홈런은 예상하지 못하게 맞는 것이라고는 하나, 솔직히 푸홀스한테 맞을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거든.

‘그거 자체가 잘못된 거지.’

엄밀히 말하면 이것 자체가 잘못된 거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경계조차 안 했기에 홈런을 처맞은 거니까.

직접 마주한 푸홀스는 그 누구보다도 욕심이 아직도 짙게 남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얕잡아봤으니, 반성해야지.

그렇기에 잊지 말자는 생각에, 마음속 깊이 아픔을 새겨두면서도, 미련은 빠르게 털어냈다.

“나이스~~~”

“쉽게쉽게 가자!”

그렇게 에인절스전이 끝난 뒤, 우리는 곧바로 남쪽, 샌디에이고로 날아갔다. 마찬가지로 서부지구 팀이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말이야.

“타석에 서는 것도 일이네, NL 투수들은 어떻게 매 경기 하나 몰라. 귀찮아 죽겠는데.”

인터리그 매치업 2연전이고, 원정이라서 당연히 투수 타석이 있었는데, 2차전 선발투수로 출전한 다니엘 멩덴은 귀찮다는 눈치가 역력했다.

다니엘 멩덴만 그런 건 아니고, 사실 다른 투수들 중에서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긴 해.

괜히 피칭 리듬을 망친다고, 달갑지 않게 여기지. 중간중간 타석에 오르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도 은근히 체력을 잡아먹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죄다 지명타자로 돌리자는 말이 나오고 있잖아. 투수들 힘들다고.”

“오, 그럼 난 무조건 찬성.”

그렇기에 요즘 들어, 아예 NL도 지명타자로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제법 나오는 걸로 안다.

투수들에게도 그게 더 편할뿐더러, 팀 적인 측면에서도, 없는만 못한 투수보단, 그래도 전문 타자를 9번타자로 타선에 끼우는 게 더 나으니까.

물론 전통을 중요시하는 쪽에선 극구 반대하고 있고 말이야. 잭 그레인키처럼 타격을 좋아하는 투수들도 마찬가지고.

“난 무조건 반대.”

물론 나도 반대고.

1년에 몇 없는 재미인데, 이걸 왜 없애? 이만큼 책임 없는 쾌락이 또 어디 있다고.

툴툴 거리는 투수들 사이에서 나 홀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다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Suck 넌 당연히 반대겠지.”

“니가 무슨 그레인키도 아니고, 투수라는 녀석이 왜 그렇게 타격을 좋아해? 하여튼 별종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얜 타격이 좋은 게 아니라, 주루가 좋은 거지. 행복한 얼굴로 뛰잖아.”

“나중에 FA되면 NL로 가면 되겠네. 좋아하는 타격이랑 주루, 실컷 할 수 있잖아.”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NL을 추천하는 말에 나 역시도 혹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공수교대에 할 일이 사라진 건지, 슬그머니 다가온 스콧 에머슨이 코웃음쳤다.

“웃기는 소리, 어느 팀인지 몰라도, NL쪽 코치들도 나랑 똑같아. 어떤 또라이가 널 가만히 내버려 둬? 엄한 소리 하지 마. 침 흘리지도 말고.”

“제가 언제 침을 흘렸다고···”

거, 오늘은 출전하지도 않았는데 꾸역꾸역 단도리를 치시네. 진짜 집요하게 막는단 말이야.

그거 뭐, 빠따질 좀 하고, 좀 열심히 뛰는 게 어떻다고. 틈만 나면 날 못 막아서 안달이야.

물론 이 덩치에 뛰댕기다간 부상당하기 십상이니, 그의 말처럼 투수타석이 있는 내셔널리그라고 해도, 투수코치가 막을 것 같지만 말이야.

어디서든 내 행복은 없다는 뜻이군. 뭐,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마음이 크게 동하면 내 멋대로 하는 편이긴 하지만.

“하여튼 집착이 심하시다니까.”

그래도 괜히 뿌루퉁한 마음에 툴툴거리자, 마찬가지로 오늘 백수 신세라서, 내 옆에 앉아 있던 소니 그레이는 도리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Suck 너도 만만치는 않지. 코치가 그렇게나 부탁하는데, 왜 그렇게 미련을 못 버려?”

아무래도 같은 투수인 그가 보기에는 코치에게 그렇게나 타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타격, 정확하게는 슈퍼 소닉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이나 보네.

“그야, 재밌으니까요. 책임 없는 쾌락-”

“그래그래, 그 말은 많이 들었어. 그렇게 타격이 하고 싶으면, 차라리 멀쩡하게 해, 멀쩡하게. 평범하게 하라고. 뛰어다니는 거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그럼 코치도 별말 안 할 테니까.”

“그게 제 타격의 본질인데, 그거 하지 말라는 거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데요.”

물론 말이야 바른말이긴 해.

나도 그냥 다른 투수들처럼 냅다 풀스윙이나 휘두르고, 평범하게 타격하면 코치도 지금처럼 타박하지는 않겠지.

대부분 내야 안타 수준에, 번트를 대거나 하면서, 주루 플레이에 더욱더 중점을 두니, 그 위험성 때문에 만류하는 거니까.

근데 내가 그 평범한 타격이 되면 진즉에 했지. 대충 치는 건 가능한데, 평범하게는 못 하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그 이상한 타격폼 집어치우고, 그냥 눈 딱 감고 풀스윙이나 해봐. 넌 체격도 좋으니까, 한 번 잘 맞으면 홈런도 날리겠구만.”

“흐음···”

확실히 예전부터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 이상한 타격폼 버리고, 그냥 정상적으로 타격하라고. 체격에서 나오는 힘도 좋은데, 왜 그렇게 타격하냐고 말이야.

당장 타격코치도, 인터리그를 대비해, 타격 연습을 할 때마다, 차라리 그쪽이 훨씬 안전하다면서 권유하기도 했었고. 물론 100% 스콧 에머슨의 눈치를 보고 제안한 거겠지만.

‘홈런이라···’

내가 주루 플레이를 좋아하기는 하나, 그래도 홈런이라는 단언은 조금 구미가 당기기는 했기에 입맛을 다셨다.

다음에 인터리그 때는, 한번 진지하게 각 잡고 해 봐?

물론 지금까지 타격에 임할 때는 진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난 항상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어. 그냥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타격폼이 이상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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