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어디서 레이더스를 볼 수 있느냐고 물은 고든 자신의 말에 지미는 그렇게 말했었다.
‘콜로시엄 근처 가면 보이는 또라이들 있지? 이상한 옷 입고 돌아다니는 놈들, 걔들이 레이더스야. 너도 알 텐데?’
콜리시엄 근처의 또라이들.
그래, 고든도 아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어, 혹시 경기장 근처에서 연인과 만나는가 싶은 마음에, '취재'를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범지대의 한복판에 있는 콜리시엄으로 향했을 때, 마주했었지.
그 또라이들을. 경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을. 고든만이 아니라, 오클랜드 콜리시엄에 가본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알 수밖에 없다.
‘그게 진짜 팬이었어?’
다만 그게 설마 하니 정말로 야구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
회사의 지시로, Go의 전담 파파라치가 되기 전에는 딱히 야구나,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었기에, 이쪽 사정을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들을 딱 봤을 때, 평범한 관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사람일 거다.
구단 이벤트나 행사를 위해 초청한 헤비메탈 밴드 내지는 이벤트 전문 업체라고 생각하지.
해골 바가지, 기이한 페이스페인팅,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외형 등, 대체 누가 그딴 꼴로 스포츠 경기를 본다는 말인가?
‘진짜 이상한 동네야.’
심지어 원래 풋볼 팬에서 넘어온 이들이라, 그마저도 소수라고 했지. 비슷한 부류가 수만 명도 넘는다고 하던데, 오클랜드는 흉흉한 치안만큼이나 이상한 동네가 확실했다.
그들을 떠올리는 순간, 왠지 모를 께름칙함과 더불어, 거부감이 들었지만, 고든은 애써 이겨냈다.
‘여기 온 지가 벌써 한 달이야, 한 달. 돈은 돈대로 썼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렸는데, X발 아무것도 못 건지고 돌아갈 수야 없지.’
최고의 슈퍼스타를 캐보라는 회사의 지시로, 낭만과 행복이 넘치는 헐리웃을 떠나 이 빌어먹을 도시로 온 지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대로 돌아간다고?
아무것도, 제대로 수익이 될 만한 사진도 건지지 못하고?
이제부턴 오기나 다름없었다.
뭐라도 얻어야 속이 그나마 후련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고든은 곧바로 콜리시엄으로 향했지만, 곧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You Suck!”
“Hell Yeah!”
그들의 Amen이라도 되는 걸까? 말 끝마다 You Suck이나 Hell Yeah를 붙이는 이들.
누가 봐도 Raiders(약탈자, 습격대)라는 단어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들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다른 애슬레틱스 팬들마저 감히 다가가지 않았으니까.
“저···”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뭐라도 건지자는 생각에 억지로나마 다가갔지만···
“뭐야? 시비 거는 놈이야?”
“안 꺼져? 어디 비리비리해서 허수아비 같은 새끼가.”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셌다. 원래 스포츠든, 탤런트든, 가수든 간에, 강성한 팬덤일수록 그 배타성이 짙은 편이기는 한데···
‘X됐다, X됐다, 이건 X발 그냥 지역 갱단이잖아.’
그저 다가온 것만으로 다짜고짜 욕부터 지껄이고, 사납게 노려보며 둥글게 둘러싸는 모습은 그냥 팬덤이라는 말조차 아까웠다. 총만 안 들었을 뿐, 갱단에 훨씬 가까웠지.
“호- 혹시- 레이더스 맞으신가요?”
허나 오랜 파파라치 경력이 이야기해줬다. 이대로 물러나면 더 이상해진다.
수상한 놈으로 찍혀서, 나중에 다시 접근하려고 해도 더욱더 거세게 밀어내겠지.
그렇기에 마주한 이상, 더욱더 달라 붙어야 했다. 그렇기에 큰 건을 올리겠다는 욕망에 의지해, 다시금 용기를 내며, 고든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냐고, 안 꺼져?”
“우리가 X으로 보여? 갑자기 와서 친한척 하고 지랄이야.”
“그래, 우리가 레이더스다, 근데 뭐 어쩌라고? 시비 거냐?”
레이더스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더욱더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정말이지 더럽게 쫄렸지만, 고든은 이겨냈다.
어쩌면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오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애써 두려움을 삼켜낸 그는 황급히 안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일단 명함부터 받으시죠, 전 캘리포니아 스포츠 소속 기자인 고든 스미스라고 합니다.”
3류 타블로이드, 그것도 스타들의 연애사나 캐고 다니는 정크라고는 하나, 일단은 언론사고.
자신은 그런 스타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이나 찍어서, 건당으로 수익을 올리는 프리랜서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다.
이런 때를 대비해, 회사에서 발급해준 명함 몇 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캘리포니아 스포츠는 지금처럼 스포츠 선수를 캐낼 때 사용하기에 딱 알 맞지.
기자(파파라치)라는 직함은 생각보다 그림을 예쁘게 만들어주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걸리면 X되겠지만···’
물론 기자가 아닌, 사생활이나 캐는 파파라치라는 것이 걸리는 순간, 그땐 정말로 목숨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이미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선량한 표정으로, 호기심이 가득한 가면을 쓰고서,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명함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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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켈빈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시끄럽게 군다면서, 괜히 시비 거는 놈일 줄 알았더니, 대뜸 명함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빼빼 마른 안경잡이에 딱 어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슬쩍 명함을 확인한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자 양반이셨구만, 거 무례했던 건 이해하쇼, 우리가 워낙 열정이 넘치다 보니까, 괜히 시비 거는 놈들이 많아서.”
“하하, 그만큼 여러분께서 상징적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원래 도시에서 가장 우뚝 선 랜드마크일수록 그곳에 침을 뱉는 사람이 많잖습니까?”
“어흠흠,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런데, 베이브릿지나, 실리콘 밸리가 아니라, 캘리포니아라고 적힌 걸로 봐선, 아무래도 이쪽 지역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긴 뭣하러?”
은근히 띄워주는 말에 헛기침한 켈빈은 잠시 야만적인 레이더에서 문명인으로 돌아갔다.
저렇게 웃는 얼굴에다 대고 계속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기도 조금은 뭐하니까.
솔직히 안 그래도 레이더스는 여기저기서 욕을 먹고 있다. 기존의 메이저리그 팬덤과 조금 성향이 다르잖은가?
종종 작년에 한판 붙었던 필라델피아 놈들과 비교하면서 싸잡아서 욕하기도 하지.
그렇기에 기자라고 자칭한 사람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 괜히 으르렁 거렸다가, 언론에서도 욕먹으면 이미지가 더 떨어질 수도 있으니, 애써 자제하고 물었는데.
“네, 말씀처럼 이쪽 지역 언론은 아닙니다. 회사는 LA에 있는데, 오클랜드로 파견됐습니다. 최근 워낙 잘 나가는 팀이기도 하고, 또한 레이더스 여러분들의 기존에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팬 문화를 취재하라는 뜻에서요.”
기지라는 작자가 꺼낸 말은 조금은 뜻밖이었다.
취재? 독특한 팬 문화? 꽤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
“독특한··· 팬문화?”
“지금 우리가 그, 뭐야, 그래 훌리건! 훌리건이라고 욕하는 거야?”
“다들 진정해, 그렇게 말 안 했어.”
“딱 보면 몰라? 너드 새끼들이 우리더러 시끄럽다느니, 과격하다느니 지랄하는 것처럼 우릴 비꼬는 거잖아.”
“아뇨아뇨, 여러분은 훌리건과는 조금 다르죠. 진정한 열성 팬이시니까요. 그저 싸움만을 원하고, 소란만 일으키는 훌리건과는 많이 다른 케이스죠.”
사납게 구는 게 무서울 법한데도, 기자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열성 팬이라고 지칭해줬고. 그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 열정적이고, 굉장히 폭발적인 모습과 여러분들의 독특한 외형이 신선한 반응을 얻고 있지 않습니까? 때때로 몇몇 미디어에서는 유럽 축구의 ‘울트라스’ 문화에 빗대기도 하고요.”
자기를 띄워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독특한 팬 문화, 신선한 팬덤,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드디어 우리의 노력이, Suck을 향한 사랑, 그 굳건한 신앙심이 인정받는 것 같아, 켈빈은 물론 주변의 레이더스는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실 아무렇게나 가져다 댄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레이더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흠흠, 우리가 좀 열정적이긴 해.”
“샌님들이랑은 본질부터 다르지.”
“하긴, 너드들이 얼마나 놀랐겠어? 도서관 같은 야구장에 우리 같은 락스타들이 나타났으니, 아주 기절초풍을 했을 거야.”
“네, 여러분들이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문화, 신세대 응원을 선도하고 계시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취재하고 싶고요.”
우리가 새로운 문화를 선도한다니, 입에 꿀이라도 바른 건지, 쉬지 않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기자 양반이 켈빈은 어쩐지 조금은 예쁘게 보였다.
약간 어깨가 넓어 보이기도 하고, 너드의 상징인 동글동글한 안경도 조금 지적이게 느껴지기도 하고?
음, 빼빼 마른 게 아니라, 저건 그냥 날씬한 거지. 운동만 조금 하고, 근육이 좀 붙으면 볼 만할 거야.
“좋습니다, 그렇게 멋진 일을 하시는데, 우리가 도와줘야지. 취재라고 했수?”
“예, 혹시 한동안 따라다닐 수 있을까요? 팬 문화를 보고, 익숙해지고 싶은데··· 사진도 조금 찍고요. 질문도 몇 가지 정도.”
기자의 열정이 돋보이는 젊은 친구에 흡족하게 웃은 켈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결심이 생겼으니까.
‘그래, 레이더스 중에서도 이제 기자 같은 인텔리도 한 명 있어야지. 취재 온 거라고 했으니, 금방 돌아가겠지만, 돌아가기 전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잘 가르쳐야겠어. 그럼 돌아가서도 LA에 레이더스의 정신을 널리 알려주겠지. Suck의 위대함도.’
비록 그 결심이 기자 양반, 고든 본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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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으로 돌아온 뒤, 4연전을 치렀던 캔자스 시티 로열스전은 3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막을 내렸고.
이후 주어진 하루의 휴식일 동안, 나는 착실하게 준비를 갖췄다. 곧바로 다음 시리즈 첫 경기부터 등판이었으니까.
‘결국 못 버텼나 보네.’
그렇게 클럽하우스와 집을 왕복하며, 다시금 폼을 가다듬었는데, 그러는 동안 쫓아오는 눈길은 전보다 더 적어졌다.
최근 들어서 새롭게 보이던 파파라치 하나가 결국에는 떨어져 나간 것 같더라고.
일부러 엿 먹으라고, 여자라도 만나는 척 쫙 빼입고, 식사자리 간 게, 아주 제대로 먹혔네.
아마 현타감을 참지 못하고, 씁쓸하게 돌아간 거겠지.
대부분 저렇더라고.
거창한 한방을 노리던 놈들은, 여자는커녕, 외부인 자체와 만나지 않는 내 생활에 질려서 저절로 떨어져 나갔지.
그나마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그 양반은 사실상 내 개인 팬이 돼버린 것 같고.
그러니 그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파파라치보다는 스토커에 가깝겠네.
‘아니, X발 그쪽이 더 위험하잖아··· 브라이언이 경호업체를 구해둬서 다행이네.’
벨 누르면 풀무장한 경호원들이 몇 분 안에 집으로 온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야.
마찬가지로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대니얼이라도 같이 있어서 다행이고.
“폼이 계속 좋네요.”
“그야, 다시 흐름을 찾았으니까요. 대니얼도 알겠지만, 제가 기분파잖아요?”
“기분파라는 말이 알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세를 잘 이어가기는 하시죠.”
아무튼 떨어져 나간 파파라치나, 왠지 더 위험하게 변한 파파라치는 그렇다 치고.
그렇게 착실히 준비하는 동안, 폼은 저번 경기와 마찬가지로 꾸준하게 좋은 수준을 유지했다.
분명 직전 등판에서 완봉을 했는데도, 몸이 금방 개운해졌지. 목표를 이룬 거다.
‘다시 사이클이 만들어졌구만.’
바닥을 쳤던 폼을 다시 살살 굴려서, 시즌 초반처럼 좋은 사이클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레인저스를 완봉으로 때려잡으면서, 눈덩이가 제대로 굴러간 것 같다.
‘한동안은 계속 이어지겠네.’
아마도 한동안은 지금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겠지. 못해도 다다음 경기까지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음 경기도 만만한 상대거든.
‘애스트로스니까.’
휴스턴 애스트로스.
전통의 호구인 레인저스 다음으로, 올해 신흥 호구가 된 팀을 딱 만났으니, 좋은 흐름을 이어가기 알맞지.
“그래도 최근 애스트로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 많던데.”
“뭐, 살아나기야 하겠죠. 애초에 체급 자체가 강팀이긴 하니까요. 기세가 떨어져서 그런 거지.”
다만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과 달리, 애스트로스는 최근 들어 기세를 제법 회복하기는 했다.
외부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기에, 결국 분열했던 내부적으로 단결이 된 거겠지.
원래 바깥에서 욕먹다 보면, 옆에 있는 놈이랑 사이가 끈끈해지는 법이거든. 관계가 아주 돈독해지지.
“그런데 너무 여유로우신 거 아닙니까?”
그렇기에 되살아난 애스트로스를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대니얼이 걱정하기도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쪽 기세가 좋든 나쁘든, 저랑은 상관없으니까.”
애스트로스의 최근 기세가 어떻든지 간에, 그쪽은 이미 나한테 호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본인들 스스로 그걸 선택했지.
날 제물로 삼아 날아오르려다, 진탕 발린 이후로 나를 그냥 예외로 쳤잖아.
치팅과 상관없이, 쟨 원래 잘하고, 원래 우린 털렸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기자고, 우린 치팅과 상관없이 잘하지만, 쟤는 더 잘하는 놈이니 어쩔 수 없다고.
사실상 날 포기해버렸지.
그다음 경기에서도 털리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더 짙어진 것 같고.
이제 다시 수렁에서 기어 올라와, 기세는 어찌어찌 회복하여 다시 일어섰다고 해도, 그것마저 완전히 떨쳐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가능성이 별로 높지는 않지.
그렇게 한 번 포기를 배우고 나면, 다시 먹는다는 것이 꽤나 힘든 일이거든. 그러니 내 입장에선 여전히 편한 상대일 수밖에.
‘그래도 일단은 직접 만나서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물론 설사 정말로 정신을 차려서, 나한테까지 당당하게 달려든다고 해도 괜찮다.
‘한번 더 쥐어박으면 얌전해지겠지.’
그쪽 마음가짐이 어떻든지 간에,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항상 그래 왔었고.
조지 스프링어에게 얻어 맞았던 홈런 하나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사실 호구잡기 전에도, 이미 호구나 다름없는 상대전적을 찍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있나. 그냥 하던 대로 ‘잘하면’ 되는 것을.
‘기세가 살아났으니, 이번 기회에 다시 눌러둬야겠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가볍게 마음먹고 편하게 피칭할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더 빡세게 잡아야지. 원래 잡을 놈은 더욱더 확실하고 철저하게 잡아야 하는 법이야.
그리고,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기세가 살아나다니, 역시 저력이 있는 팀이긴 해.
그러니 이렇게 만날 때마다 싹을 밟아 놓지 않으면, 괜히 나중에 추격해와서, 막판에 순위싸움이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빡세게 던져서 가지를 꺾어야지.
‘그나저나, 요새 레이더스가 호리호리한 사람 끼고 다닌다던데,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마음먹으며, 마지막 준비를 갖췄을 때, 문득 레이더스가 떠올랐다.
최근 다른 선수들 말에 의하면, 한 레이더스 무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안경잡이 양반을 끼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아마도 그냥 신입 회원이겠지.
‘새로 온 사람을 위해서라도, 아주 멋지게 던져줘야겠어.’
기왕 새롭게 내 팬이 되었는데, 서비스를 확실하게 해 줘야지. 경기 전에 경기장 앞에서 만났으면 좋겠네, 간만에 손목 좀 놀릴 수 있을 텐데.
물론 가장 큰 팬 서비스이자, 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건, 언제나 그렇듯 멋진 피칭이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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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의 시간이 지났을 때, 고든은 확신했다. 자신은 바보 X신이었다고.
그래, 생긴 것부터 이상한데, 이런 미치광이 새끼들을 진짜로 야구팬이라고 생각했다니, 너무 순진했지.
‘X발 야구팬이나 갱단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어.’
그는 레이더스 내에서 돌아다니는 팜플렛을 내려봤다. 가히 모세가 하느님에게 받은 십계명과 비슷한 팜플렛을 말이다.
[1장 1절 : Suck은 신이고, 우리는 그의 사도다]
첫 구절부터 감이 딱 오지 않는가? X발 여기가 사이비 종교라는 감이.
그것도 꽤나 딥하다. 산제물을 바치지 않는 것이 용할 정도로. 괴상한 컬트 종교 수준이지. 어떤 의미에선 갱단보다도 더 위험한 족속들이었다, 이 또라이들은.
‘어쩐지 쉽게 받아준다 했어! 날 제물로 선택한 거야!’
아니, 어쩌면 고든 자신이 산제물로 간택된 걸지도 모르지.
기껏해야, 최근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스포츠 스타의 여자친구나 좀 찍으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자신이 이단 컬트 종교를 취재하는, 사회고발 기자가 된 걸까?
고든은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마음 같아선 FBI에 위험한 집단이 있다며 신고하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감히 발을 빼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가 속한 무리 중 몇몇 놈들이, 고든 그가 오클랜드에 마련한 숙소 근처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결국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자! 다들 주목! 오늘 전투는 기자 양반도 같이 간다! 다들 알지? 우리가 얼마나 Cool한지 기자 양반에게 똑똑히 보여줘야 돼! 허슬을 보이라고!”
레이더스에 끼여서 직관까지 하게 됐지. 정말로 전투에라도 나가는 것처럼 평소보다 더 험악하게 세팅을 마친 사이비 광신도들은 아예 눈까지 뒤집어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대체 그놈의 Suck이 뭐라고!’
Suck, 아니, Go는 대체 무슨 짓거릴 벌인 걸까. 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린 걸까.
그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그저 자신또한 저렇게 되어버릴까, 두려웠을 뿐.
허나 그런 고든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신입’이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기쁜 건지, 이 빌어먹을 야만인들은 그저 껄껄 웃기 바빴다.
“그럼! 당연하지! 초상권 같은 건 없으니까, 얼굴 잘 나오게 사진 한방 쾅, 잘 찍어줘!”
“크하하, 우리 기자 친구가 드디어 진짜 팬 문화를 맛보겠구만!”
“구호는 잘 외웠수? 삼진 잡으면?”
“You Suck···?”
“그렇지! 역시 똑똑한 분이라 금방 외우네. 그럼 그 삼진이 쓰리아웃이면?”
“뒤에 Hell Yeah까지. 그리고 상대팀이 X신 같으면 It's Suck Time. 맞죠?”
“키야~ 딩동댕! 정답이야! 우리 기자 양반, 이제 진짜 레이더스 다 됐네! 다 됐어!”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단 말이야, 여윽시 인텔리야, 인텔리. 아주 똑똑해.”
요 며칠간, 그들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세뇌당하다시피하며 외웠던 것들을 내뱉자,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에 고든은 어색하게 웃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자(파파라치)라고 야구 경기는 공짜로 관람시켜 주는구나 싶었지만···
“저 그런데 티켓은···”
“그야 본인 부담이죠. 하하, 저흰 Suck의 팬이지, 자선 사업체가 아닙니다. 다만 원활한 취재를 위해 3루 방향 관중석 티켓을 미리 하나 구해두긴 했지만, 금액은 별도 계산입니다.”
“···여기요.”
“음, 암표를 구한 거라서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우리 기자 양반인데, 그 정도야 감안해야지. 크하하, 아주 제대로 즐기겠구만!”
딱히 그런 것도 없었고.
그러고 보면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이런 곳에서는 또 묘하게 철저하지. 금전적인 것 말이야.
‘그 이상한 거적때기 산다고 내가 쓴 돈이 얼만데, 티켓까지 내 돈으로 사야 한다니···’
그 이상한 코스튬, 그냥 자체적으로 나눠주는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직접 주문제작을 해야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레이더스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출이 왕창 늘었다. 최근 몇 년간 성실하게(?) 일하면서 모았던 돈을 탈탈 털어 넣고 있지.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사이비의 수법이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장비다 뭐다 하면서, 은근하게 지갑을 털어가는 것 말이다.
마음 같아선, Suck이고 레이더스고 죄다 망하라고 소리친 뒤 도망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본전 회수, 어떻게든 본전을 회수해야 돼. X발 여자친구건 섹스파트너건, 아니면 게이든 간에, 무조건 하나는 건진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정신력도 정신력대로 소모했는데, 제대로 수익도 내지 못하고 다시 LA로 돌아간다니, 어림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면서도 주변과 마찬가지로 풀세팅을 마친 고든이었지만.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고든 그 역시도 완벽한 레이더스라는 것을. 이미 그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레이더스의 '교화'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