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고유석,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슬럼프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반박!>
경기가 끝난 뒤, 아니, 사실은 끝나기도 전부터, 당연하게도 부진이나 슬럼프 같은 단어들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늘,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승자는 고유석이었으니까.
<그의 사전에 부진이란 없다! Go 8이닝 18K 완벽투!>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
└Suck 얘가 부진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실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
└그럼 그렇지, 슬럼프는 개뿔. 저럴 것 같더라.
└드디어 좀 흔들린다 싶더니, 믿은 내가 X신이지.
혹시나 하면서 지켜봤던 이들은 '역시나'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괴물은 쓰러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정말로, 드디어 저 꼴도 보기 싫은 놈이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설렘가득 기대했던 이들은 다시금 씁쓸한 아쉬움을 씹어 삼켜야 했고 말이다.
다시 이전처럼 돌아온 듯, 가뿐하게 탬파베이 레이스를 때려잡는 모습에서, 그들이 바라던 면모를 볼 수 없었으니까.
저런 투수가 부진이라니, 슬럼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론 어쩌면 이전 경기들에선 정말로 폼이 떨어지고, 기세가 안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간 것 같았다.
그렇게 수많은 안티 고유석들이 실망감을 표출했다면, 어쩌면 그의 부활을 널리 알리는 제물로 간택됐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팬들은 씁쓸함을 곱씹었다.
<탬파베이 레이스, 다시금 오프너를 선보였지만, 결국 최고의 선발투수에게 패배! 허나 3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좋은 기세를 이어가···>
<애슬레틱스의 좋은 기세를 저지한 레이스, 5할 승률을 넘었다!>
시리즈 자체는 좋았다.
토네이도처럼 휩쓸던 팀을 저지하며, 반대로 자신들의 기세를 이어갔고, 5할 승률을 넘기며, 와일드카드도 노려볼 만하게 됐으니까.
<캐빈 캐시 감독, ‘저런 투수를 상대로는 어쩔 방법이 없어···’ 오프너에 대한 회의감을 밝히나?>
허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왠지 모를 박탈감과 현타감이 닥쳐왔다.
[#TBRays]
[뭔가 좀 억울하더라. 누구는 저런 선발투수 내서 8이닝 꽁으로 먹는데. 우린 불펜으로 선발 땜빵이나 하고 있네.]
└색다른 방식이라서 좋아했지만, 뭔가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지.
└그래도 작년에 만났을 때는 8이닝 14탈삼진 2피안타였는데, 이번엔 8이닝 13탈삼진 2피안타네. 더 발전했어.
└그걸 좋아해야 하냐?
└X같아 해야 하지.
└똑같은 거지인데도, 누군 운 좋게 저런 놈을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쓰고 있고, 누군 선발이 부족해서 불펜으로 막고 있네.
└그래도 지금 기세는 좋으니까, 일단은 두고 봐야지··· 어쨌든 위닝 시리즈도 했고.
감독이 꺼내든 색다른 전략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마치 과거의 라루사이즘처럼, 새로운 진화일지도 모른다며 흥분했었던 ‘오프너’가 초라하게 보였으니까.
어쨌든 명목상 선발투수가 1.1이닝 만에 내려간 자신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8회까지, 아주 수월하게 쭉 달리는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씁쓸함을 선사했다.
그렇기에 왠지 모를 억울함과 씁쓸함에 탬파베이 레이스 팬들은 한탄했찌만, 놀랍게도 가장 억울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Rangers]
[아니 X발 저 X새끼는 왜 항상 우리 만날 때마다 폼이 좋냐고! 원래는 X박았다면서! 근데 왜 갑자기 회복해!]
└저 새끼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야?
└8이닝 13K··· 에휴, 글로브 라이프에서 또 개지랄 떨겠네.
└폼 안 좋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안 좋기는 X발 X까고 있네. 믿은 내가 X신이지.
└쟤 다음 등판 우리 확실하지? 로테이션 대로면.
└중간에 다른 일 없는 이상 무조건이지.
└아, 진짜 X같다. 우리도 그냥 NL로 가면 안 되나? 이제 슬슬 Suck 저 새끼 얼굴만 봐도 토 나오는데···
└제발 알링턴 오기 전에 팔다리 부러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장했으면 좋겠고.
탬파베이 레이스가 자신들의 처지에 씁쓸했다면, 하필이면 자신들을 만나기 직전에 딱 폼을 회복한 고유석을 보며, 레인저스는 그저 피눈물을 흘렸다.
내심, 최근 기세가 안 좋으니, 다음 맞대결에선 좋은 결과를 얻어갈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었건만.
그런 그들을 비웃듯 때마침 딱 만나기 직전 경기에서 다시 말끔하게 회복했으니까.
그런 고유석을 보며, 레인저스 팬들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망할 놈의 세상은, 야구는 참 얄궂다고, 아니, 참 X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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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길을 떠날 때는 별 생각이 다 든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광대함을 느끼게 되지.
“대체 어떤 X새끼가 이딴 식으로 일정 짠 거야?”
그래, 가끔 저런 생각도 들고.
“AL, NL로 나누지 말고, 위치에 따라서 서부리그, 중부리그, 동부리그로 나누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은 원정 때마다 매번 떠오르는 수준이지. 왜냐고? 아니 좀 그렇잖아.
이번 원정 일정은 간단하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3연전을 치르고, 다시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알링턴에서 2연전을 벌인 뒤 홈으로 돌아오지.
놀라운 것은 고작 그 다섯 경기를 치르기 위해, 캔자스시티까지 1500마일을 날아가고. 다시 댈러스-포트워스, 알링턴까지 460마일을 날아간다.
대충 합쳐서 2000마일쯤인데, 킬로로 따지면 3200km쯤 되지. 다시 홈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합치면, 3300마일, 약 5000킬로미터쯤 되고.
“인간적으로 지구 분배부터 다시 해야 돼. X발 텍사스가 왜 서부지구냐고. 오히려 가깝기는 동부랑 더 가깝구만.”
아무리 비행기 타고 다닌다고 해도 몸이 남아날 리가 있나. 그러니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원망감이 솟을 수밖에.
웃긴 건, 사실 이마저도 감지덕지라는 거다. 동부지구 팀들이랑 원정 경기 한판 치르면, 기본이 4천 킬로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거리차로 인해, 간혹 무시무시한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낫지. 보스턴 찍고 서부로 돌아왔다가 다시 뉴욕으로 간다거나 그런 거.
그런 일이 없도록 일정을 조정하기에, 아마도 그냥 야샤나 괴담에 가깝겠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중부지구는 가운데라서 원정 다니기 좋겠네. 언젠가 트레이드되면, 중부지구로 보내달라고 할까?’
아무래도 가운데에 있는 만큼, 그래도 좀 원정 일정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온 허무한 개소리를 중얼거리며, 오늘은 비교적 얌전하게 원정을 떠났다.
거리가 멀기에, 시간 때우려고 포커라도 한판 치려고 했더니, 이제 더는 나랑 놀아주는 사람이 없더라고.
“제드, 우리 포커 한판-”
“저- 저리가, 이 밀머니 약탈자야! 다신 너한테 내 점심을 뺏기지 않을 거야!”
“마커스, 너 심심하지 않-”
“가까이 오지 마, 점심식사 도륙자놈. 난 이번 원정에서 두둑하게 먹고 싶어.”
이제야 주제를 파악한 거지.
생각보다 오래갔군. 마이너 때는 아무래도 돈이 너무너무 귀하다 보니, 몇 판 털리면 딱 눈치채고 나한테 덤비는 녀석이 없었는데.
메이저리거쯤 되니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서 그런가, 꽤나 끈질기게 버텼어.
‘그게 메이저와 마이너의 차이일수도.’
아니, 어쩌면 그토록 강렬한 승부욕을 가졌기에 메이저리거가 된 걸 수도 있고.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론이군.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할 일 없으면, 이걸 토대로 해서 논문이라도 하나 써야겠어. 닥터 고, 어감도 괜찮네.
그렇게 대단히 흥미롭지만, 굉장히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지루함을 못 이겨서 노트북을 열었다.
대충 커뮤니티나 보는 거지.
이게 또 은근히 시간이 잘 가거든. 특히나···
‘레인저스. 이쪽이 재밌지.’
나를 만날 예정이거나, 만났거나, 만난 다음일 때 레인저스 팬 커뮤니티는 아주 재밌다.
분명 나는 오클랜드 선수인데도, 웬만한 레인저스 선수들보다 더욱더 많이 언급되지.
물론 애슬레틱스 커뮤니티에서야 내 지분율이 90% 정도지만···
‘거긴 좀 그래.’
내가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기는 하나, 날 향한 아주 노골적인 용비어천가에 멀쩡할 만큼 철면피는 아니다.
현장에서도 사랑이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인터넷에선 익명성 때문인지, 종종 도를 넘은 광기가 보이더라고.
‘Suck의 똥은 황금이고, 오줌은 신들이 마셨다는 음료수인 넥타르이며, Suck이 손짓하면 산천초목이 뒤흔들리고, 그 벼락처럼 빠른 발로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구름 위를 걸어다닌다.’ 뭐 그런 거.
광신에 가까운 애정은 때때로 당사자에게도 공포를 안겨주는 법이지.
‘반응이 엄청나네. 역시, 이래야지.’
그렇기에 소프트한 맛(?)이 일품인 레인저스 웹으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죄다 내 얘기다.
역시 이 집이 잘해. 맛이 좋아.
벌써부터 절망에 휩싸여 있는데, 우리 팬들이 희망찬 세상에 찬가를 불렀다면.
레인저스는 그저 온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왜 자기들 만날 때마다 폼이 좋으냐고 하늘에다 물으면서.
물론 날 향해 아주 직접적인 저주를 퍼붓기도 했지. 팔 부러져라, 다리 부러져라, 교통사고 나서 죽어라, 비행기 추락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도핑에 걸리도록 알링턴에 오면 음료수에 약을 타버릴 거다, 등등.
FBI에 신고하면, 커뮤니티 문 닫는 건 순식간이겠어. 아주 대놓고 살인예고도 있구만.
‘내가 좀 심하기는 했지.’
이해한다. 난 도량이 넓은 사람이니까. 쪼오끔 레인저스한테 모질게 굴기도 했고.
“뭐 봐?”
“그냥, 심심해서. 레인저스 쪽 구경이나 하고 있지.”
“···심심한데 왜 레인저스를 구경해, 우리 걸 보면 또 모를까.”
“여기가 재밌거든.”
내가 흥미롭게 보고 있으니, 궁금했던 건지, 슬쩍 다가온 브루스가 이내 미친놈을 보듯이 봤지만, 진짜로 재밌다니까?“
그래도 마냥 보기만 하는 것도 조금은 지루하기에, 슬쩍 로그인도 했다.
난 언제나 행동파지,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야.
“···심지어 아이디까지 있어? 너 대체 언제부터 염탐한 거냐? 아니, 그럼 그렇게 쥐어 패 놓고 반응을 구경했다는 건데, Suck 너 무슨 정신 검사라도 받아야-”
자연스럽게 로그인하니, 브루스는 이젠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서리를 쳤지만, 가뿐하게 무시하고 글 하나를 작성했다.
[#Rangers]
[난 진짜 Suck이다. 이번에도 레인저스를 박살 낼 거다. 타자들을 학살할 거다. 알링턴에 불지를 거다. Good Luck]
음, 아주 명문이야.
귀가 열리고, 말문이 트여서, 영어는 곧잘 하나, 영문을 잘 치는 건 아니니, 아마도 조금은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군.
별건 아니고, 어차피 잊혀질 거다. 그냥 흔한 저급 어그로 정도로 생각하겠지. 실제로 아마도 우리 팬들로 추정되는 비슷한 트롤링이 제법 많았고.
그냥저냥 내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거지. 내 손가락으로 직접 이렇게 선언했으니, 그 말을 지킬 거다, 정도.
그런 모습까지 쭉 지켜본 브루스는 더욱더 미친놈 보듯 지켜봤지만, 이내 슬쩍 화면을 훑고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딴 식으로 꼴아봐? 기분 나쁘게.”
“아니, 그냥. Suck 너도 이젠 스스로 Suck이라고 지칭하는구나, 싶어서. 너도 슬슬 이쪽이 더 익숙하지? 은근히 착착 감기잖아? 마음에 들지 않아?”
“···Fuckoff.”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Suck에 익숙해진 거지. 분명 더블A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싫어했었는데. 아니, 메이저 데뷔한 뒤에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사람들이 죄다 삼진 잡을 때마다 You Suck이라고 소리치는데도. 내 이름을 대놓고 욕처럼 쓰는데도, 요새는 오히려 안 들으면 서운할 정도지.
아마 수백, 수천만 명이 죄다 Suck으로 지칭해서 그런 걸 텐데, 나도 모르게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내 스스로 자칭할 때도 Suck으로 하고 있네.
빌어먹을.
그것을 깨달은 순간,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면서도 기분이 확 더러워졌다.
기분 나쁜데, 레인저스나 제대로 두들겨 패야겠어. 왜 상황이 그렇게 튀는 거냐고?
원래 샌드백 하나 때리다 보면 화가 풀리는 법이잖아. 그런 거지. 꼬우면 호구 잡히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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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스와의 3연전은 3전 전승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1차전에선 무려 19점을 몰아치기까지 했지.
‘연패 끊은 보람은 있네.’
만약 아예 스윕을 당하고 원정을 떠났다면, 멘탈적으로 문제가 생겼겠지만, 적절하게 끊은 덕분에 별 문제가 없었군.
“즉, 내 덕분이라는 뜻이지.”
“시리즈 동안 나오지도 않은 놈이 무슨···”
“꼬우면 나 한달 정도 드러누울까? 어디 한번 보자고. 나 없어도 잘 나가나.”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
아무튼 내 덕분이지. 내가 연패 끊어서 기세가 이어진 거니까.
나 없었어봐, 연패 쭉 박았을지 누가 알아?
그러니, 항상 이 에이스님에게 감사하십시오. 알겠습니까?
폼이 다시 살아나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하이한데. 어느 정도는 조절을 해야겠어.
갑자기 너무 신나도 별로 좋지는 않으니까. 언제나 중도가 중요하지. 사실 다음 상대가 만만한 것도 있고.
“레인저스, 어떻게 휴스턴이 저렇게 망했는데도 쟤들이 꼴찌냐.”
“레인저스도 만만찮게 망했으니까.”
“저쪽 단장은 경질 안 되나?”
“팬들이야 계속 떠들고 있겠지.”
레인저스는 단순히 나한테만 호구인 건 아니다. 올해 성적이 별로 좋지는 않거든.
45승 15패로, 엄청난 페이스를 올리고 있는 우리랑은 다르게, 서부지구 꼴찌지.
내우외환을 겪으며 망가진 애스트로스보다도 밑바닥인 거고.
“레인저스, 페이롤도 높지 않나?”
“높지, 아마도 우리보다야 훨씬 높을 걸? 적은 팀은 아니지.”
“그런데 왜 저래?”
“그니까, 그래서 팬들이 단장 갈아치우라고 난리 치는 거지.”
놀랍게도, 그런 주제에 페이롤은 꽤나 높은 편이다. 리그 전체로 따지면 중간권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보단 훨씬 많이 지출하지.
그런데도 꼴찌이니,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을 달리는 셈이지. 사실 작년에도 딱 그랬고. 그러니 조금 심각할 만큼 잘 나가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좀 만만하게 보일 수밖에.
“이제 겨우 6월이야. 그러다가 따라 잡히는 거 한 순간인 거 알지? 정신 꽉 붙들어.”
물론 지금 당장 잘 나간다고 해서 죄다 아래로 보고, 마냥 하하호호 거리다간, 한순간 무너질 수도 있기에, 밥 멜빈 감독님은 선수들 멘탈 관리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말이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올라간 자신감이 꺾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에이스로서 나라도 감독의 명을 받아야지.
“Suck 쟨 레인저스를 그렇게 조져놓고, 아직도 만족을 못하네.”
“같은 팀인데도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 내가 레인저스라도 쟤 싫을 거야.”
“텍사스 사람들이 코리안이라면 이를 가는 이유가 있어. Suck, 살살 좀 해라. Suck 너 때문에 너희 나라 사람들이 텍사스에 못 간다잖아.”
험난한 일정 덕분인지, 하루의 휴식일이 끼어 있었는데, 그걸 감사히 여기며, 더욱더 폼을 올렸다.
이미 탬파베이 때 평균 정도로 올라온 폼이지만, 말했다시피 최대한 굴려야 하니까.
그래야 다시 시즌 초반처럼 좋은 흐름이 만들어지잖아? 그러니 아주 철저하게 가다듬어야지.
‘단순히 레인저스가 미워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빡세게 잡아야지.’
괜히 만만한 호구라고 얕잡아보고 만만하게 봤다가 한방 얻어맞기라도 하면, 기껏 올라가던 기세가 확 꺾일 수도 있거든.
그러니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리기 전까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지.
그리고 내가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더럽게 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타자구장이고 홈런 나오기도 쉬우니, 방심은 금물이고. 특히 조이 갈로 같은 고릴라놈이 작정하고 하나 후려갈기면 아무리 폼이 좋아도 위험하잖아?
그렇기에 대니얼과 함께 원정인데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며 폼을 착실하게 올렸고.
“완전히 올라왔네요.”
“예, 이 정도면 시즌 개막 때랑 비슷하겠어요.”
“정말이지, 대단한 몸입니다. 제가 트레이너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요?”
“뭐, 신의 축복이려니 해야죠.”
그토록 열띤 준비는 확실한 결과물로 돌아왔다. 레인저스를 확실하게 다시 한번 사살할 수 있는 수준의 폼으로 말이다.
그래, 레인저스를 상대할 때는 폼이 정도는 돼야지. 호구 잡은 만큼 제대로 털어 먹어야 하는데, 그냥저냥 적당하게 넘길 수는 없잖아?
“Suck 쟤 상태 보니까, 이번에도 호텔 밖으로 나가긴 글렀네.”
“그나마 2차전에 등판해서 다행이지. 1차전에 나왔다고 생각해봐. 분위기 살벌했을 걸?”
“하긴, 2차전이라 바로 도망가면 되니까, 좀 낫긴 하네.”
그렇게 모든 준비는 착실하게 갖춰졌다.
그러니 이젠, 다시 알링턴을 불태울 차례지. 아무도 모르게, 레인저스의 한가운데에서 선언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