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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42화 (242/316)

242화

“출전 명단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 진짜로 보니까 좀 신기하긴 하네.”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뒤, 리드오프로서 타석에 나갈 준비를 하던 마커스 시미언은 올라온 탬파베이 투수를 보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라인 스타넥.

일단은 오늘 선발투수이기는 한데···

‘불펜이지.’

사실은 불펜투수다.

굉장히 인지부조화가 걸리기 쉬운 말이지만, 진짜야. 1차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했던 선수거든.

근데 그 투수가 4차전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

얼핏 잘못 들으면, 마치 투수 혼자서 구원승도 하고, 선발승도 하던 라루사이즘 이전의 옛날 야구처럼 보이니까.

‘근데 이것도 평범한 편이지.’

웃긴 건 이 이상한 말도 비교적 상식적이라는 거다. 왜냐고? 두 경기 연속 선발 등판도 있었거든.

19일과 20일, 에인절스전에서 서지오 로모가 했지. 각각 1이닝과 1.1이닝을 막았고.

애초에 그렇기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주목받은 거다. 완전히 비상식적인 일을 했으니까.

그거랑 비교하면, 2차전의 불펜 등판과 4차전의 선발 등판이라, 3차전의 공백이 존재하니, 그나마 평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냥 위장선발 아닌가?”

“그래도 한 이닝은 무조건 맡기던데, 그러면 딱히 위장선발이라고 보기도 힘들지 않아?”

“평범하게 불펜데이 일수도···”

그렇다고 해서 충격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좀 덜하다는 말이다.

마운드 위에서 감각을 잡고 있는 상대 투수를 바라보며, 수많은 말들이 나왔다.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미약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 대부분은 황당해하고 있지.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라루사이즘 이후로 정착된 선발-중간계투-마무리 순서에 익숙한 사람들인데.

그게 갑자기 중간계투-선발-마무리라는 이상한 순서가 돼버렸으니, 적응할 수가 있나.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별 신경 안 썼었는데, 막상 직접 보니까 좀 어색하긴 하네. 저게 뭔···”

“그치? 저거 진짜 이상한 짓거리라니까. 저게 무슨 개짓거리야? 선발투수가 없으면 어디서 사 오던가, 콜업을 해야지. 무슨 저런 식으로···”

황당함에 고개를 절레젓자,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냐는 듯 션 마네아가 활짝 웃었다.

얘는 진짜 싫어했었지. 선발투수의 가치를 깎아먹는 일이라면서.

그땐 그냥 시큰둥하게 넘기고, 무시했는데,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느냐며, 아주 환호를 다하네.

“저게 무슨 야구야? 커미셔너가 자꾸 이상한 거 도입하려고 하더니, 이젠 아예 야구 자체가 변하고 있어.”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고.”

솔직히 난 그 정도까지 마음은 아닌데 말이야. 그냥 좀 신기하다고. 뭐, 트렌드가 변하다 보면 저런 변화도 생겨나는 법이니까.

“아웃!”

투덜거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덕아웃의 반응과 달리, 다시금 경기가 진행되고, 1회 말이 이어졌을 때.

선발투수, 아니, ‘1번투수’인 라인 스타넥은 꽤나 잘 막는 듯했다. 선두타자, 마커스 시미언을 플라이볼로 손쉽게 잡아냈으니까.

“아웃!”

“아웃!”

곧이어, 오늘은 2번타자로 나온 크리스티안 옐리치와 3번타자 맷 올슨도 순식간에 잡아내며 삼자범퇴를 만들었고.

“잘 막네. 진짜로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 봤자 1이닝이지. 듣기론 길어야 1.1이닝이라고 하고. 명색이 선발투수가, 최소한 한 타순은 막아야지···”

“그래그래, 션 네 말이 옳다. 그러니 같은 선발투수인 나를 존중해서 좀 조용히 해주지 않으련?”

“아, 쏘리. 실수했네, 미안. 지금 등판 중인 투수 잡고 내가 뭐하는 거야. 오늘도 수고해. 폼 좋던데.”

그대로 1회 말 종료.

계속 떠들고 있는 션 마네아의 입을 봉해버린 뒤, 덕아웃으로 돌아가던 상대 투수, 라인 스타넥을 잠깐 눈에 담으며, 나도 다시금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다.

저게 정말로 획기적인 전략인지, 아니면 그저 고육지책에 불과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솔직히 효과가 대단한지도 모르겠고. 그냥 좀 신기하기는 하네. 흥미롭기도 하고.

아직 어떠한 확신도, 의견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제법 흥미로운 발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쪽이 더 좋아.’

그저 그 정도일 뿐. 나 역시도 처음 등판해서 끝까지 던지는 ‘진짜’ 선발투수가 제일 좋다.

그게 훨씬 재밌잖아? 적어도 던지는 입장에서는.

“가자, 브루스.”

그렇게 1번투수의 차례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선발투수의 턴이었다.

####

2회 초, 고유석이 다시금 삼진 두 개와 범타 하나로 이닝을 지워버린 뒤. 2회 말.

예상처럼 라인 스타넥은 원아웃을 올린 뒤 다음 투수와 교체됐다.

[저건 뭔 개짓거리임?]

-갑자기 강판하네

└ㄴㄴ 강판 아님 탬파베이 전략임

└선발투수 1.1이닝 던지고 내려가는 게 전략이면, 그게 야구임?

└ㄴㄴ선발투수도 아님 불펜투수임

└??? 선발로 나왔는데 왜 불펜투수임? 아, 위장선발임?

└ㄴㄴ 위장선발도 아님.

└그럼 뭐, 벌떼야구 그거임? 옛날에 인천 드래곤즈가 하던 거?

└ㄴㄴ 벌떼야구도 아님. 좀 많이 다름.

└X발 맞는 게 하나도 없네 그럼 저건 뭔 개짓거린데

└탬파베이 전략이라니까. 양키들 사이에선 엄청 핫함

1.1이닝.

선발투수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이닝에, 당연하게도 그런 광경을 처음 봤던 이들.

특히나 오직 고유석의 등판만 챙겨보기에, 메이저리그의 소식에 둔한 한국의 라이트 팬들은 황당함을 느끼고는 했다.

-아하, 탬파베이 레이스가 투수를 교체하는데, 굉장히 뜨거운 논쟁이 일으키고 있는 전략이죠?

-네, 19일에 처음 선보인 것인데, 일종의 벌떼야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전략입니다. 경기 초반, 1회의 실점을 방지하고자, 믿을 만한 불펜을 아예 처음으로 올리는 거죠.

-하하, 대단히 획기적이기는 한데, 조금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물론 그나마 사정을 알고 있는 해설자들 역시 시청자들에게 적절하게 설명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기존의 야구에 익숙한 그들이기에, 더욱더 어색하고, 생소하게 여겨졌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투수가 교체된 탬파베이 레이스와는 달리.

-고유석! 3회 초, 다시금 마운드에 올라섭니다.

-앞서 2회 초에서 삼진 두 개를 또 추가하면서, 4탈삼진 무출루로 탬파베이 타선을 잘 막아내고 있는데, 오늘은 아주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요.

-예, 지난 애리조나전에서 조금은 지친 듯한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역시! 다시 폼을 회복한 모습입니다.

애슬레틱스의 투수는 여전히 동일했다. 그냥 고유석이었지, 모두가 아는 대로.

[킹유석 숫자쟁이 참교육 가즈아~~~]

-세이버 놈들 또 이상한 전략 갖고 나왔던데, 태낭만 피칭으로 참교육 해주자

└선발투수가 이래야지! 어디서 찍 싸고 튀어?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환호를 받기도 했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전략에 맞서, 그저 평소처럼 선발투수의 역할을 수행 중인 고유석이 더욱더 반갑게 느껴졌으니까.

물론 여론 자체가 좋기도 했고. 도핑 의혹을 완벽하게 반박한 이후,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더욱더 공고해졌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부디 고유석이 저 기이한 전략을 펼치는 팀을 상대로, 호투를 펼치길 바랐고.

-스트라이크 아웃! 트레이드 마크인 서클 체인지업으로, 시원스럽게 타자를 돌려세웁니다!

언제나 그렇듯 고유석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이닝 선두타자부터 다시금 삼진을 뽑아낸 뒤.

-4구, 바깥쪽- 쳤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 크리스티안 아로요, 오늘 탬파베이의 첫 안타를 적립하는군요.

비록 그 직후 8번타자, 크리스티안 아로요에게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곧이어 9번 조니 필드와 1번타자 말렉스 스미스를 공 여덟 개로 순식간에 처리하더니.

-스트라이크 아웃! 고유석! 4번타자 윌슨 라모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4회 초 역시 삼자범퇴로 막아냅니다!

-이게 고유석이죠, 제대로 폼이 돌아왔어요, 너무나도 강력한 모습입니다.

-예,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죠!

기세를 이어가며, 4회 초까지 완벽하게 지워버렸으니까.

####

“스트라이크!”

5회 초.

5번타자 다니엘 로버트슨이 몸 쪽 코스에 헛스윙했다. 너클 커브였는데 시원하게 헛치네.

‘점점 더 올라오고 있네.’

이닝이 이어질수록 당연히 체력은 떨어진다. 내가 에너자이저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긴 하니까.

맞나? 사실 나도 요즘은 좀 헷갈려. 자다가 로봇으로 교체된 건 아닐까, 싶거든.

잘해도 너무 잘하잖아.

알아, 자뻑인 거. 그래도 솔직히···

“아웃!”

이 정도로 잘하면 자뻑 좀 해도 되잖아? 안 그래?

아무튼 오늘도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체력은 떨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감각은 올라왔다.

그럴 수밖에. 집중력이 딱 잡혀 있으니, 던지면 던질수록 피칭 감각이 올라오는 게 정상이지.

‘엄밀히 말하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제야 컨디션이 적당히 평범해진 건데, 사실 이것도 시즌 초반부터 레드삭스전까지 이어갔던 사이클과 비교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그땐 진짜 좋긴 했잖아? 내 스스로도 너무 잘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사이클이 떨어지면 진짜 화려하게 추락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서히 올라가는 거지. 다시 그때의 좋은 흐름을 향해서.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이걸 최대한···

“스트라이크 아웃!”

굴리는 거고. 타자가 정타를 때릴수록 타격감이 올라가듯, 투수도 마찬가지다.

삼진을 잡을 때마다 점점 더 감각이 바짝 날이 서지. 손맛이 짜릿한 것도 마찬가지고.

“You Suck!”

뭐, 팬들도 좋아하고 말이야.

아주 시원하게 지르네.

쓰읍, 저번 경기에서 좀 털리면서 뽕 맛이 좀 빠지는가 싶더니, 다시 올라오는구만.

다시 또 20삼진이니, 15삼진이니, 매 경기 퍼펙트니 떠들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보기는 좋았다.

‘분위기는 완전히 회복했네.’

이번 경기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우울함은 확실하게 가시겠지. 상실감도 사라질 거고.

“스트라이크 아웃!”

“You Suck!”

곧이어 6번타자, 브래드 밀러까지 삼진으로 잡아내자, 목소리는 더욱더 올라갔다.

“You the Fucking Suuuuuuuuuck!”

아니, 미쳐간다는 게 더 맞으려나? 뭐라고 할 순 없지. 나도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그래, 이래야지.’

솔직하게 말해서, 나라고 좋을 리가 있나. 꼼수를 쓰고, 허세를 부리고, 일부러 얻어맞으면서 함정을 파는 게.

내 성미도 이쪽에 훨씬 더 잘 맞는다 이거야.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더 감각이 차오르는 걸 수도 있고. 원래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능률이 오르는 법이니까.

‘그래도 마냥 흥분하면 안 돼. 마지막까지 철저해야지.’

이러다가 한방 맞으면 그때부턴 진짜 기운이 싸해진다. 흔히들 갑분싸라고 하지.

서서히 올라가던 피칭 감각이나 폼 역시 갑자기 훅 제동이 걸릴 수도 있고.

그렇기에 만족스럽게 웃으면서도, 최대한 집중력과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올라온 7번타자, 롭 레프스나이더. 음, 조금은 미묘한 타자지.

‘입양됐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선수거든. 듣기로 아기일 때 입양됐다고 하는데.

당연히 한국계, 한국인, 한인에 집착하는 한국에서도 제법 이야기가 나온 걸로 안다.

이번 시리즈를 앞뒀을 때, 지금 마이너에 있을 최정만과 엮어서, 잘하면 세 명의 한국‘계’ 메이저리거가 한 경기에서 공존하는 장면을 볼지도 모른다며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지.

‘뭐, 결국 말아먹었지만.’

결국 최정만이 콜업되지 못하면서 그 장면은 망가졌지만, 어쩌면 그 대신해서 이번 타석에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송국에서 그런 거 좋아하잖아? 한국인 투타 간의 맞대결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아주 흥분하지, 홍보하기도 하고.

“스트라이크!”

물론 그딴 건 내 알바 아니지만. 까놓고 말해서 뭔 한국 출신이고 한국계야. 아기일 때 입양돼서 지금까지 미국에서 자랐는데.

그냥 서로 메이저리거로서 상대하고 있는 거지.

‘그리 위험한 타자는 아니지. 컨택 자체가 좋은 편이 아니야. 파워도 강하지 않고.’

그렇게 위험한 타입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쉬운 스타일이지. 컨택과 파워가 부족한데, 그러면 말 다한 거지.

“볼.”

그래도 선구안이 제법 좋아서, 아슬아슬한 코스는 잘 골라내지만.

“파울!”

기술과 힘이 부족한 스윙은 지금 내 공을 충분하게 이겨내지 못했다.

제대로 맞은 것 같았는데도, 뒤로 밀리며 파울이 된 공에 타자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작정하고 쳤고, 타이밍이 맞았는데도 배트가 밀려서 파울이면, 솔직히 타자 입장에선 답도 없지.’

그럼에도 의지를 놓은 건 아닌 건지, 곧이어 4구, 높게 투심을 박아 넣자, 다시금 크게 스윙한 타자였지만, 타구는 그저 유격수 앞으로 손쉽게 굴러갔다.

마커스 시미언 그런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는 녀석이 아니고 말이다.

“아웃!”

그대로 1루에 송구하면서 아웃. 다시금 삼자범퇴에 관중들은 환호···를 하진 않았다.

“삼진 당했어야지! 그걸 왜 쳐!”

“아, KKK였는데···”

“Suck! 아직도 10개를 못 잡았잖아! 더 팍팍 잡아! 아직 한참 부족해!”

“속도 높여, 속도! 더 빨리, 더 많이 삼진 잡으라고!”

“퍼펙트는 아깝지만, 이대로 9회까지 가자! 완봉해!”

진짜 더럽게 삼진 좋아하네.

경기장 올 때만 하더라도 축 가라앉아 있더니, 완전히 회복했구만.

갑자기 확 변한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다음 이닝부터 시동 걸자.”

기왕 달아오르기 시작한 거, 나도, 그리고 팬들도 만족할 때까지 던져야지.

####

“You Suck!”

콜리시엄에는 수많은 관중들이 함께했고, 불안함이 흘렀던 지난 경기와 달리, 이번엔 그저 열광적인 You Suck이 우렁차게 울렸지만.

그 인파 중에서 단순히 즐기기 위해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업적으로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는 않았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폼 떨어졌다더니···”

“그냥 괴물이라니까, Suck 쟤는.”

콜리시엄에는 기자들도 많았다. 현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이곳에 있으니, 별수 있겠는가?

사진이라도 한 장, 운 좋게 인터뷰라도 한 줄 따내려면, 아무리 위험한 곳이고, 위험한 도시라고 해도, 꾸역꾸역 찾아올 수밖에.

특히나 이번엔 더했고.

꽤나 희귀하기 그지없는 장면을 찍을 수도 있었으니까.

“무브먼트 여전하네, 내가 Go 쟤 경기 본 게 몇 번인데, 딱 보면 알지.”

“공도 잘 뻗어, 궤적도 좋고. 그냥 평범한데? 엄청 좋아 보이진 않아도.”

“쯧, 혹시나 해서 왔더니, 홈런은 어림도 없겠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다.

두 경기 연속적으로 조금 저조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디백스전에선 첫 실점을 허용하더니, 이후 꾸준하게 장타를 허용했고.

그 이전의 블루제이스 때는, 올해 처음으로 단 6이닝 만을 던졌지.

또한 경기 내용 자체도, 이후 분석해본 결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주심의 기가 막힌 트롤링이 아니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만큼, 폼이 떨어졌고.

그렇기에 어쩌면 이번에는 그가 홈런을 맞거나 대량실점을 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있었다.

서서히 폼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 어쩌면 탬파베이 때 가장 절정, 아니, 최악을 찍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최고였겠지.’

거기에 오프너, 기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표현된 것도 있지. 좋은 장면이지 않은가?

리그 최고의 투수를,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 탬파베이 레이스가 그들의 전략으로 꺾는다면 말이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것 두 가지를 섞을 절호의 찬스나 다름없지.

실제로 오프너는 나왔다. 적절하게 던지고 내려갔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그다음은 Suck, 혹은 Go가 무너지는 것이었지만···.

“아웃!”

역시나 그딴 건 없었다.

그들이 콜리시엄을 찾아와서 건진 사진이라곤 그저 평소처럼 삼진 잡고 웃거나, 멋지게 타자를 돌려세우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뿐이었으니까.

홈런에 고개를 떨구거나, 계속되는 위기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아웃!”

그렇게 돌아온 것 같았던 폼은 경기의 후반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짙고, 강해졌고 말이다.

“날이 제대로 섰는데?”

“잠깐 흔들리는가 싶더니, 금방 폼을 회복하네.”

“원래 저런 놈이잖아? 몰랐어?”

6회와 7회가 깔끔하게 지워졌다. 그나마 안타 하나 나온 것이 전부였지.

다시금 가파르게 인터벌을 당기면서, 평소처럼 타자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물론 디백스전에서도 막바지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오늘은 그 경기처럼 어떠한 함정을 파놓거나, 아니면 타자들을 홀리거나 하지도 않았지.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이어진 8회 초에도 기세가 끝나지 않았고 말이다.

“그나마 오프너 하나 건졌네.”

“진짜로 정식 전략으로 하려나 본데?”

“효과가 나쁘지는 않아 보이니, 잘하면 가능하겠지.”

그나마 오늘 건진 특별한 이슈라고는 시끄럽게 떠들었던 오프너를 다시 확인한 것이 유일한 수확이지만.

“아웃!”

“그거 건져서 뭐해, 어차피 묻힐 텐데.”

그마저도 가려지겠지.

리그 최고의 투수가 다시 부활, 아니, 그냥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삼진이 올라가면서, 8회 초 또한 막을 내렸다. 8이닝 13탈삼진. 그리고 피안타 둘로서.

리그를 떠들썩하게 만든 전략이 다시금 나타난 경기였지만. 마지막 순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경기 역시 오직 한 명의 선발투수만이 우뚝 솟아오르며, 그라운드를 지배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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