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4: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오클랜드, 단단한 전력으로 디백스에게 승리, 허나 승리에도 아쉽다?>
<11연승에 달성한 고유석, ‘언젠가 깨졌을 기록’ ‘아쉽지만, 미련 갖진 않겠다.’ 무실점 종료에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영원한 기록은 없었다, Go, 76.2이닝으로, 무실점 마무리.>
<‘Mr.Zero’, 5월에 꺾이다! 결국 자책점을 허용한 Go!>
의외로 충격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 더욱더 세차게 불어 닥쳤다.
리그를 대표하던 기록이 오늘로써 마감되어버린 것이니까.
영원토록 무결할 것 같았던 전설이 한순간 막을 내린 것이고.
[#A’s]
[뭔가 좀 충격적이야. Go의 말처럼 언젠가 깨질 기록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어색하네.]
└나도, 실점이나 자책점, ERA 뒤에 0 말고 다른 숫자가 있다는 게 왜 이렇게 이상하냐.
└뭔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이야. 최소한 Suck의 실점은 나한테 그런 일이라고!
└난 새삼 놀랐어, Suck이 진짜 신이 아니라는 것에. 한 80%는 믿고 있었거든.
└X발 X같은 내셔널리그 X새끼들이 왜 기록을 쳐 깨고 지랄이야 개x같은 X발 Cunt 새끼들.
특히나 애슬레틱스 팬들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완전무결했던 신의 추락과도 같았으니까.
최소한 이번 시즌 동안 고유석의 실점은 애슬레틱스 팬들의 사전엔 없는 단어였다.
그런 없는 단어를,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목도했기에, 어색하고,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황당하기까지 했고.
그래서인지 디백스를 향해 강한 증오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생겨났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애슬레틱스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리그 전체가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았으니까. 그를 사랑하던지, 증오하던지와 상관없이.
[#Raingers]
[Suck 쟤도 실점을 하기는 하네··· 사실 당연한 일인데, 좀 충격 받았어.]
└우리도 작년에 쟤한테 점수 내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어색하긴 하다.
└X나 기쁘면서도 축 가라앉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해.
[#RedSox]
[우리 족치는 거 보고, 진짜 100이닝까지 가나 싶었는데, 이 정도로 끝나서 오히려 당황스럽네.]
└나도, 개소린 건 아는데, 못해도 올스타전까지 무실점일 줄 알았어.
└약빨 떨어진 거야, 확실해. 우리랑 붙을 때는 제대로 빨았던 거고.
└아직도 그 소리냐? 제대로된 증거나 가지고 떠들어라. 괜히 레드삭스 이름 더럽히지 말고.
적어도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고유석의 무실점은 일종의 상수였다. 무조건 깔고 가는 이야기지.
그것이 깨졌다는 것에, 그의 이름 뒤에 실점이나, 자책점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에 설사 팬이 아니더라도 어색함을 느끼고는 했다.
<철인의 몰락? 묘한 상실감에 빠져버린 MLB! 흥행에도 영향을?!>
리그의 흥행을 이끌어가던 고유석이기에, 어쩌면 서서히 상승하던 기세가 꺾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반응들도 있었지만.
의외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가장 강성하다고 할 수 있는 레이더스는 정작 잠잠한 반응을 보였다.
[#Raiders]
[뭐야, A’s 커뮤니티 분위기 왜 저래? 너드 새끼들, 단체로 우울증에 걸렸나?]
└실점 때문에 저러는 것 같은데. 근데 솔직히 난 만족했어,
└막판에 삼진 시원하게 잡더만. 그거면 된 거지. 쟤들은 왜 저러냐?
└너드 새끼들 욕심이 더럽게 심하네. 우리처럼 좀 넓은 마음을 가져라. 언제까지 Suck한테 자꾸 부담이나 줄래?
└···그게 레이더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끊임없이 고유석이 잘하기를, 그것도 엄청나게 잘하기를 바라는 레이더스라기에는 다소 충격적인 반응이지만, 그들은 진심이었다.
어쨌든, 막판에나마 다시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원스럽게 삼진을 쓸어 담지 않았던가?
사실 조삼모사와 같은 행동이지만, 어쨌든 레이더스는 그 정도로 만족했다.
비록 실점하기는 했더라도, 경기 내내 큼직한 타구를 내주며 번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도.
어쨌든 그들이 사랑하는 Suck, 고유석이라는 것을 보았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최소한 자신들을 홀리고, 숭배자로 만들었던 그런 모습이 계속되는 이상, 고유석은 앞으로도 그들을 쭉 만족시켜줄 테니 말이다.
[#Raiders]
[근데 언제부터 여기가 야구 게시판이 된 거야? 여기 레이더스 게시판 아니었냐? 오래간만에 왔더니 죄다 A’s 얘기네.]
└그야 우리가 야구를 보니까...?
└뭐, 어때? 같은 오클랜드 형제잖아? 어차피 NFL 개막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너도 야구 봐.
└야구는 너드 같아서 싫어. 좀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고.
└트렌드에 느린 X신새끼군. 너도 Suck이 실점했다고 무시하는 거냐? 재미가 없어? Suck의 피칭이 지루하다는 거냐?
└너드? Suck이 너드라고? Suck이 X신 같은 너드라고? Suck이 너드처럼 X신같이 피칭해서 실점했다는 거지? 뒤지고 싶어?
└진정해, 난 그렇게까지 말 안했어.
└이게 다 X같은 애리조나 때문이야. 그 X새끼들 때문에 Suck을 X밥으로 보는 새끼들이 늘어났다고!
└피닉스 X발놈들, 여름에 죄다 태양에 구워져서 뒤졌으면 좋겠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잠잠했다는 거지, 아예 화조차 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충격이 리그 전체를, 아니, 야구판을 휩쓸었을 때, 슬그머니 기회를 엿보는 이들도 있었다.
<확연히 떨어진 폼, 리그 최고의 투수, 슬럼프에 빠지나?>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리그 최고의 악당이 빈틈을 보였으니 말이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았기에, 그간 참고 있었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매번 하는 도돌이표처럼.
[#A’s]
[또또 고작 실점 한 번 했다고, 슬럼프니 뭐니 말 나오네.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데.]
물론 이번에도 그런 바램이 이루어지는 건, 요원해 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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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3차전을 앞뒀을 때, 함께 콜리시엄으로 향했을 때, 대니얼은 뒤숭숭한 도시 분위기에 혀를 내둘렀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는 않네요. 어제, 경기장 안에서는 생각보다 괜찮더니.”
뭐랄까, 오클랜드 도시 전체가 우울했다. 장마철처럼 우중충했거든.
오늘도 콜리시엄으로 몰려든 팬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활기가 없었고 말이야. 상실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마치, 도시의 자랑거리인, 거대한 랜드마크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묘하게 공허해보였지.
‘막판 차력쇼로 어제 분위기야 잘 틀어막았지만, 완전히 잠재우기는 힘들지.’
어쩔 수 없다. 막판에 삼진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조삼모사로 그럭저럭 진정시켰더라도. 사실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으니까.
현장에선 괜찮더라도, 막상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까,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진 거겠지.
나를 믿어도 너무 많이 믿어서 문제인 사람들인데, 단단히 충격 받을 수밖에.
“작년에 트라웃 때문에 무실점이 깨졌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랑 그림이 다르니까요.”
작년, 53.2이닝으로 아쉽게 기록을 마감했을 때는 그나마 금방 회복하고 일어섰지만, 그때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
나를 향한 팬들의 사랑이 그때보다 더 지극해졌을뿐더러, 내 입지도 훨씬 더 올라갔잖아?
‘거기다 원정이었던 그때랑 다르게 이번엔 아예 콜리시엄에서 깨졌고, 그때처럼 멋진 홈런이나, 뭐, 최고의 선수들 간의 맞대결 같은 그림도 없으니··· 금방 가라앉지는 않겠지.’
그때처럼 포장할 요소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
그땐 기록이 트라웃에게 투런 맞고 깨졌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잘 포장할 수 있었지.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타자 간의 멋진 승부. 서로에게 상호 따봉 날리는 아름다운 스포츠맨쉽 같은 걸로 말이야.
사실 난 대놓고 쌍욕했었는데, 그거야 미국놈들이라 한국말 몰라서 그냥 넘어갔고.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멋진 그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어영부영 얻어맞다가 뜬금없이 깨졌으니, 더욱더 충격이 크고, 잠재우기도 힘들 수밖에.
‘분위기가 살아날 방법은 두 개뿐이지.’
이런 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둘이다.
하나는 시간이지. 결국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서서히 진정될 테니까.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나고.
결국 이번에도 해답은 똑같다.
“제가 잘하면, 또다시 분위기나 기세가 살아나겠죠.”
그냥 내가 잘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우울함이든, 상실감이든 그냥 죄다 날아갈 테니까.
언제나 정답은 이거뿐이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야.
‘다행히 폼은 올라왔어.’
그래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다. 전날의 경기 덕분에 비록 몸은 좀 피로할지라도, 폼은 다시 올라왔으니까.
어제, 등판 전에만 하더라도, 멋지게 펄럭였던 [76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천막이 사라져, 빈 공간이 가득해진 경기장 외벽을 지켜보며,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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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에서 승리하면서, 디백스와의 인터리그 매치업은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끝났다. 5월도 거의 끝나가고 있고 말이야.
“이번 달도 Suck이겠지?”
“1실점 했는데, 솔직히 다른 사람 타야지~”
“그럼그럼, 무려 실점씩이나 하셨는데, 설마 넙죽 받겠어?”
“다른 투수들 죄다 대가리 박을 얘기하고 자빠졌네.”
일단 5월 이달의 투수도 이미 확정이다. 내가 다음경기에서 한 10실점쯤 하지 않는 이상은 무조건이지, 아니다, 10실점해도 잘하면 받겠네.
몇몇 동료들은 이번 달은 반납하라며 농담하긴 했지만,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지.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솔직히 좀 질리네.’
데뷔 이후로 이달의 투수야 꾸준하게 받았으니, 솔직히 이제 수상의 가치는 사라졌다.
물론 다른 투수들 앞에서 이런 얘기하면 울컥해서 후려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그래.
그렇기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폼을 올리는 건데, 앞서 말했다시피 폼 자체는 꽤나 많이 올라왔다.
‘실점하면서 불이 붙었던 게 도움이 됐어. 다시 감각이 올라온다.’
비록 아직 정식적으로 피칭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몸이 점점 올라오는 게 느껴졌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감각이.
실점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게, 가라앉았던 감각을 다시 깨워준 거겠지.
‘최소한 바닥은 벗어났고, 잘하면 중간까지도 올라오겠어.’
어찌 보면 굉장히 싸게 막은 셈이지. 실점을 했고, 무실점이 깨지기는 했지만 말이야.
솔직히 레드삭스전 이후, 두 경기 정도 제대로 망칠 줄 알았는데.
한 경기는 꽁으로 먹었고, 다른 한 경기는 딱 한 점 제외하면 내 마음대로 판을 만들었잖아?
그러다가 다시 폼이 올라왔으니,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무난하게 넘겼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좋은 사이클을 만들 차례야.’
떨어진 폼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그걸 다시 차근차근 굴려서, 흐름을 만드는 건데.
‘상대는 좀 미묘하네. 요새 말이 많던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맞이한 상대는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4연전을 치르게 되는데. 그들은 이번 시즌, 그럭저럭 무난하게 성적을 찍고 있지만, 그런 성적과 별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꺼낸 독특한 전략 때문에.
‘벌떼야구 같은 느낌인가? 아니, 그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던데.’
별건 아니고, 그냥 불펜 투수를 앞에 세웠다. 불펜 투수를 선발로 등판시켰지. 위장선발 같은 느낌으로.
다만 정말로 위장선발인 건 아니고, 그냥 잘 던지는 불펜이 경기 초반 실점을 억제하고, 단단하게 막는 방식이지.
대충 설명만 놓고 보면 ‘그게 뭐?’ 싶겠지만, 이건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인 전략이다.
“그냥 선발 없어서 불펜으로 때우는 거에 가깝지 않아?”
“그거랑은 조금 다르다고 하던데? 잘하는 투수 앞에 세워서 초반 잘 막겠다는 거잖아?”
“난 솔직히 딱히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이던데, 언론에선 엄청 난리더라.”
“에이, 몇 번 하다가 말겠지.”
선발투수의 역할을 제한하는 거니까.
선발이 왜 선발이야? 맨 처음 마운드에 올라서 공 던지니까 선발이잖아? 그렇기에 선발투수, 스타터라고 부르는 거고.
그런데 정작 불펜이 앞에 나온다면, 그런 기본 전제 자체가 흔들린다.
‘선발투수가 아니라, 그냥 가장 많이 던지는 투수가 되는 거니까.’
그러니 선수들은 물론,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저런 전략은 무조건 망해야 돼, 안 그래도 요즘 선발투수 가치가 떨어졌다, 뭐다 말이 많은데···”
“탬파베이도 거지구단이잖아? 선발투수 구하기 힘드니까, 그냥 임시방편으로 한 거지.”
“몇몇 전문가라는 작자들은, 무슨 시대를 바꿀 획기적인 전략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던데, 하여간 너드들은 괜히 쓸데없이 오버한다니까. 땜빵 좀 한 거 가지고, 더럽게 호들갑이야.”
특히나 선발투수들은 역린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아주 불같은 반응을 내놓고 있고.
우리 팀 선발들도 별로 곱지 않은 시선이지. 심지어 사람 좋은 소니 그레이도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탬파베이의 그 임시방편이 정식 전략이 되고, 투수 분업화를 만들어낸 라루사이즘처럼 정석으로 자리 잡는 순간, 당연하게도 그와 함께 선발투수의 가치나, 입지도 깎여나간다.
어쩌면 심한 경우 선발투수라는 역할 자체가 사장될 수도 있고.
물론 저러다 말 거라는 반응이 태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니, 기존의 선발투수들 입장에선 조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지.
대놓고 자기 밥그릇 건드리는 건데, 좋은 반응이 나올 수가 있나.
“Suck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너도 기분 나쁘지? 대놓고 선발투수들 X신 만들려고 하는 건데.”
아무튼 그런 여러 가지 논란과 주목으로 한창 불타오르는 팀인데, 내 입장을 묻는다면 솔직하게 말해서···
“뭔 상관이야? 난 그냥 탬파베이 타자들이나 잘 막으면 되는 거지.”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상대가 불펜을 선발로 내든, 갑자기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든지 간에.
내가 할 일은 오직 타자들이나 잘 막는 것. 그것뿐이니까. 그 외의 나머지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 정도로 잘하면 그런 전략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무조건 선발이야.”
요새 아무리 플라이볼 혁명으로 뜬공이 대세고, 타자들 죄다 어퍼스윙 한다고 해도, 똑딱이 타자가 4할쯤 치면, 그냥 그대로 하라고 할걸? 그거랑 마찬가지인 셈이지.
당장 나만 봐도, 요새 선발투수들 이닝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난 정반대로 X나게 던지잖아.
내 실점이 깨지면서 부쩍 우울해진 오클랜드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는 결국 잘하면 해결된다.
그렇기에 다음 경기에서도 잘할 생각이고.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결국 이게 직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