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39화 (239/316)

239화

“홀렸네, 홀렸어.”

화기애애했던 이전과 달리, 디백스의 덕아웃은 조금 소란스러웠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그런 디백스를 브루스가 약간은 안쓰럽게 보는데, 얘도 진짜 보면 볼수록 웃긴 놈이야. 포수라는 놈이 자기는 제삼자인 척 상대를 동정하다니. 지도 크게 일조한 주제에.

“쳐다보지 마, 쳐다보지 마, 괜히 정신 차릴라.”

“그래서 표정은 관리하고 있잖아. 아니, 근데 진짜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딱딱 맞아떨어지냐?”

“그게 실력이지.”

내 말에 브루스는 재수 없다는 듯 흘겨보면서도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게 팩트잖아? 어쨌든 내가 바라던 방향대로 일이 진행된 거니까.

“그래도, 솔직히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나도 몰랐네.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다만 나도 살짝 놀라기는 했어. 작정하고 홀리려고 하기는 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넙죽 받아먹을 줄은 몰랐거든.

혹시 내가 무슨 최면이라도 한 건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외야에서 바쁘게 공 잡느라 내내 고생했던 작은 크리스,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Suck 넌 평범한 에이스 수준이 아니잖아. 역대 최고의 투수라느니,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강력한 단기 임팩트라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투수인데. 그런 투수를 만만하게 때려잡을 기회가 언제 또 있을 줄 알고. 솔직히 나라도 혹했을 걸?”

틀린 말은 아니구만. 하긴, 날 상대로 감질나게나마 홈런을 맛볼 수 있는 찬스가 다시 오리라는 보장이 없긴 하겠지. 그러니 내가 풀풀 풍기는 고기향에 침을 질질 흐릴 수밖에.

‘계속 정타가 나오니, 그걸 놓을 수가 있나.’

난 일부러 정타를 내줬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타에 ‘가까운’ 것들을 계속 대줬지. 타구가 외야로 뻗도록.

아슬아슬하게, 조금만 더 뻗는다면 담장을 넘길 수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게끔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타자들로선 욕심을 놓을 수가 없었을 거다.

또한 지속적으로 정타에 가까운 타구를 때려내며, 타격감도 오르고, 타이밍도 잡혔기에, 더더욱 그렇겠지.

그런데도 정작 타구가 넘어가지는 않으면서, 계속해서 아깝게 잡히고 있으니, 약이 올라도 단단히 오를 수밖에 없는 거고.

‘그 덕분에 다 따로 놀고 있지. 1회처럼 팀워크에 맞춰서 타격하는 게 아니라.’

결국 그 미련을 놓지 못한 디백스는 망가졌다. 상위타선, 1번부터 5번까지의 타자들 모두 다 스윙이 커졌거든. 죄다 크고 둔중해졌지. 아쉬웠던 비거리에 더욱더 파워를 더하면서, 예리함을 잃은 거다.

그로 인해, 나를 제대로 통타했던 자신감이 듬뿍 담긴 ‘자기 스윙’은 점점 욕심에 찌든 ‘개인 스윙’이 돼버렸다.

1회 초처럼, 차근차근 타선이 협동해서 점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신이 영웅이, 오늘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다음 이닝부터는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디백스는 망가졌다.

그럼 그다음에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이것도 밑밥은 미리 깔아뒀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죄다 조져났으니, 마음 편하게 수확이나 하는 거지.”

디백스는 이미 늪 깊숙이 발을 박아 넣은 상태거든.

망가뜨리기만 하면 뭐해? 내가 받아먹는 것까지 해야지.

“속도 올리자.”

“통곡하겠네, 통곡하겠어. 기껏 잡은 것 같은 타이밍이 반쪽짜리였다는 거 쟤들이 알면, 아주 펑펑 울겠는데?”

“그러니까, 사람이 욕심이 너무 과하면 안 되는 거야. 적당히 절제하면서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 괜히 과하게 욕심 내니까 일을 그르치잖아.”

결국 욕심이 모든 걸 망친 거야. 내가 아무리 홀려도, 욕심을 품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면, 오히려 대량실점을 했겠지.

그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차자, 이번엔 브루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니가 할 소리는 아니지. Suck 너는 항상 욕심이 많잖아?”

“욕심이라니. 실력이 되는데, 그저 합당한 결과를 원하는 거지.”

어허, 그거랑 이거랑 같나 이 사람아. 난 어디까지나 내 실력에 걸맞은 결과를 추구할 뿐인데, 그게 어떻게 욕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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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어차피 그렇게 정타를 내주고 맞춰 잡을 생각이었다면. 굳이 톰 글래빈을 따라하듯 바깥쪽으로 던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

물론 필요가 있지, 이유 없는 행동은 없고, 생각 없는 피칭도 없으니까. 최소한 나는 그렇다.

‘자, 조삼모사 가보자.’

1회의 실점 이후, 내가 어영부영 잘 막고 있으니, 홈팬들은 그럭저럭 진정했지만, 사실 그렇게 만족하지는 않았다.

“쩝, 오늘은 그냥 좀 아쉽네.”

“기껏 경기장까지 왔더니.”

“오늘 삼진 몇 개냐?”

“다섯 개네. 평소의 절반이구만.”

“에이, 어차피 실점한 거, 더 맞더라도 삼진 좀 팍팍 잡았으면 좋겠는데.”

“삼진도 삼진인데, 오늘따라 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시간도 계속 질질 끌리고.”

“그냥 날이 아닌 거지. 뭐, 늘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Suck이 진짜 신도 아닌데.”

말했잖아, 욕심이 심한 사람들이라고. 내가 저렇게 키워버렸지.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5이닝 1실점 5탈삼진 정도면 적절하게 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닝 당 삼진 하나씩은 잡았고, 위험한 상황이나 타구가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막아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먹인 것들이 워낙 달콤했던 터라,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된 건데.

‘원래 기억은 마지막 것만 남는 법이지.’

이제부터 나는 그런 홈팬들에게 일종의 조삼모사를 해줄 생각이다.

사실 그럭저럭 무난하거나, 지금처럼 약간은 아쉬워할 경기를, 오히려 아주 만족스럽게 여겨지도록 바꿀 생각이지. 방법은 별거 없다.

“스트라이크!”

막판에 삼진 잡아주는 거지.

말 그대로 조삼모사구만.

‘당황했네. 아주 단단히.’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한 3번타자, 제이크 램은 얼굴 표정으로 훤히 보일 만큼, 굉장히 당황했다.

고작 공 하나, 오늘 경기 내내 수없이 보았던 공, 심지어 제법 통타당했던 포심이 몸쪽으로 하나가 들어간 것일 뿐인데 말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

그가 앞선 타석들에서 적응했던 것과 전혀 다를 테니까.

‘사람이 너무 과하게 흥분하면 안 된다니까. 의심을 접어버리잖아. 생각을 깊게 하지 않게 되고.’

별거 아니다, 세 가지가 달라졌지. 일단 첫 번째는 인터벌이 빨라진 것.

이거야 원래도 타자의 타이밍을 망치는 용도고, 내 트레이드 마크니, 이 정도로 당황하진 않지.

“스트라이크!”

거기에 하나 더.

지금까지처럼 바깥쪽으로 집요하게 던지는 대신, 초구와 2구 모두 다 과감하게 그냥 냅다 몸으로 쑤셔 넣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저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몸에서 가까운 만큼, 바깥쪽 코스보단 몸쪽 코스가 더 빠르게 느껴지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릴리스 포인트가 달라졌다.

더욱더 깊숙이 뻗었지.

오늘은 평소처럼 섞어서 던지는 게 아니라, 그냥 기존의 릴리스 포인트로 던졌지.

그렇기에 타자들이 더욱더 타이밍을 쉽게 잡은 거고.

‘셋 다 신무기는 아니지.’

사실 새로울 건 없다.

인터벌 빨라지는 거야 다들 아는 사실이고, 난 원래 바깥쪽보다 몸쪽 코스가 더 많다.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 또한 올해의 신병기로서 쏠쏠하게 활약했고.

‘판을 어떻게 까느냐가 중요한 법이지.’

허나 그 별다른 것 없는 것들에 적절하게 만들어낸 상황이 겹쳐진다면, 그 효과가 놀랍도록 올라가지.

“스트라이크!”

바로 지금처럼.

디백스는 놀랍도록 기세를 잃었다. 오늘 경기 내내 넘쳤던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졌지.

그 빈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 대신하고 있고.

더럽게 빠를 테니까. 빠르게 느껴질 테니까. 공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일단 인터벌이 빨라지면서 타이밍이 한 차례 빨라졌고, 몸쪽으로 코스가 잡혔으니, 더 빠르게 느껴진다.

거기다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도 깊은 지점에서 놓기에 더욱더 빠르도록 보이게 하지.

기존의 릴리스 포인트와 타이밍, 그리고 꾸준하게 맛본 손맛에 익숙해진 디백스 타자들에게 이것은.

‘다시 몸쪽으로 하나.’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증명하듯, 4번타자, 다니엘 데스칼소는 순식간에 카운트가 몰리자,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말이야.

타이밍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들어맞지도 않으니, 사실 마땅한 방법도 없지.

그저 하나만 걸리길 기원하며, 지금까지처럼 크게 휘두르는 수밖에.

“스트라이크 아웃!”

물론 지금까지 감질나게 맛보았던 장타들로 인해, 점점 더 한 방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크고 묵직해진, 아니, 둔탁해진 스윙에는 찔러 넣을 곳이 수두룩했지만 말이다.

3구째,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V1을 타자가 헛치면서, 다시금 삼구삼진이 올라갔다.

“어? 어어-”

“뭐야 갑자기-”

“You! Suck...?”

뭐, 당황한 건 팬들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내가 갑자기 급발진하고 있으니, 인지부조화가 걸리는 것도 당연하기는 해.

‘그렇게들 바라는 삼진 잡아주고 있는데, 반응들이 왜 그러실까?’

이거 원하던 거 아니었수?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다 지르더니. 정작 바다라던 대로 화끈하게 잡아주니까 별 반응을 못 하네.

‘보아하니, 저쪽 타격코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구만.’

올라오는 후속타자의 뒤로 보이는 디백스 덕아웃을 흘끔 살펴보자, 마치 탄식하는 듯한 그쪽 타격코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는 어느 정도는 이러한 참사를 예상했을 거다. 제3자의 눈으로는 보이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신만 더럽게 내놓고 정작 결과는 못 내고 있으니, 한순간 흐름이 바뀌리라는 거야 자명한 사실이지.

‘하지만 막지 못했겠지.’

허나 그도, 그리고 감독도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거의 없다. 뭘 어떻게 해? 타자들이 지들 마음대로 흥분하더니 훅 달아올라 버렸는데.

거기다가 찬물을 끼얹을 줄 알아야 정말로 좋은 감독이고, 코치겠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또한 솔직히 그들로서도 솔깃하기는 했을 거고.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정말로 운 좋게 하나 넘어가면, 그대로 날 고꾸라뜨릴 수 있을 테니까.

결국 타자들도, 코치들도, 디백스 전체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의 결과물이다.

“스트라이크!”

지금 이 상황은.

5번타자 케텔 마르테.

그는 무언가 단단이 잘못된 것을 느낀 건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배터박스로 들어왔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다시금 몸쪽, 유유히 날아든 체인지업에 헛스윙했으니까. 패스트볼처럼 느껴졌을 거야.

앞서 언급한 요소들이 죄다 중첩되면서, 정말로 빠르게 보였을 테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느려지는 거고.

앞선 이닝에서 골드슈미트도 저거에 당했지. 빠른데 느린 쓰리핑거 체인지업에.

‘이거 한번 맛보는 순간, 다른 의미로 못 빠져나가지.’

포심 같은데 포심이 아닌 오프스피드 체인지업. 타자들을 망가뜨리기에 이거보다 더 확실한 게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 이거보다 확실한 건 없지.

“볼.”

“스트라이크!”

“파울!”

케텔 마르테는 그래도 제법 거세게 저항하며 마지막 발악을 펼치긴 했지만, 그 이상을 해낼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몸쪽, 그것도 제법 높게 날아든 코스에 그는 갈등했다.

하이 패스트볼 같은데, 이미 오프스피드를 맛보았으니, 의심을 접을 수가 없었겠지.

끝내 그는 하이 패스트볼이라고 믿으며 결단을 내렸고, 그에 맞춰 배트를 내밀었으나.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공은 우타석에 들어온 그의 머리를 거의 맞출 듯이 꺾이며, 유유히 낙하했다. 너클 커브였거든.

KKK지.

이번 경기 내내 나왔던 잘 맞은 장타는 이번 이닝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판이 완전히 바뀐 거지.

“You Suck!”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 디백스와 달리, 팬들은 이제야 확신을 가진 채 평소처럼 소리쳤다.

언제 실망하고, 아쉬워했느냐고 말하듯 아주 행복에 찌들어,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로.

조삼모사 성능 확실하구만. 평소에 이 정도쯤 했으면 그럭저럭 무난하게 여기거나, 약간은 아쉽다면서 했을 텐데, 앞에 쓴맛을 봐서 그런지, 지금은 오지게들 좋아하는구만.

이번 경기 들어서 처음으로 열광적으로 불타오르며,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가 된 관중석을 흐뭇하게 훑어보며,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끝난 거 아니다.

‘열심히 떡밥 던진 게 얼만데, 6이닝만 달랑 먹고 가면 좀 아쉽지.’

나도 디백스처럼 괜히 과한 욕심부리는 거 아니냐고? 지난 경기처럼 6이닝 정도로 만족하고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앞서 브루스에게 말했듯. 나만큼 좋은 실력이 뒷받침해준다면, 제 아무리 많은 걸 바라고, 더한 걸 원하더라도, 그건 욕심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것도 욕심이 아니고.

아무튼 그렇다.

####

디백스 타자들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왜 그렇게 순진하게 믿었던 거지?’

현실을 깨달은 뒤에 돌이켜보면, 그저 황당한 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명색이 메이저리거, 지옥과도 같은 마이너를 기어 올라왔다는 놈이, 순수한 아마추어 선수처럼 껌뻑 넘어갔으니까.

허나 한편으로는 당연했다.

비록 가짜로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오늘 내내 맛보았던 감각은 ‘진짜’였으니까.

“스트라이크!”

그 진짜 감각에 미련을 놓지 못하면서, 결국 이런 상황을 초래한 거지만.

“일부러 대준 거라고? 일부러? 그러다, 그러다가 넘어가면 어쩌려고?”

“독한 새끼.”

“아메리칸 쪽 애들이 미친놈이라고 했었는데, 괜히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니었어.”

“하아, 좀만 침착했으면, 더 두들길 수도 있었을 텐데···”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정을 알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정말이지 보통 또라이 짓이 아니었으니까.

투수, Go는 오늘 자신들을 홀리기 위해 정타를 내줬다. 일부러 잘 맞도록 은근하게 던져준 거지. 분명 과감한 결단이기는 한데···

그걸 다르게 말하면 ‘실전 경기’에서 적당히 잘 맞고, 손맛이 좋을 만한 ‘배팅볼’을 던졌다는 말이잖은가? 그것도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쉽게 느껴지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아주 살짝이라도 공에 힘이 빠지는 순간.

‘진짜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거잖아. 단순히 허상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홈런이 될 테니까.

조금이라도 힘의 분배에 실수를 범하는 순간 다 끝난다는 뜻이지.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거고.

오직 디백스, 자신들을 잡아내고, 이 경기를 따내기 위해서.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그들, 디백스가 상대 투수, Go에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짜 징그러운 놈이야.”

징그러움이었지.

폴 골드슈미트는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가볍게 툭 내뱉었다.

징그러움.

어쩌면 공포 따위보다도 조금 더 깊은 감정이다.

사람에게 징그럽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무실점을 깨기는 깼으니까,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그래, 그래야 하는데···”

물론 무실점은 깨트렸다.

76.2이닝을 끝으로 연속 이닝 무실점은 막을 내렸고, 저 녀석의 그 위대한 기록이 자신들, 디백스로 인해서 끝났다.

이건 변하지 않지.

사실 경기 전에 잡았던 원래 목표는 딱 그 정도였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그 이상을 엿보았었기에, 디백스 타자들의 마음속에 만족감이나 충만함 같은 건 전혀 차오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저 며칠을 굶었을 때의 공복과 비슷한, 지독한 탈력감과 허무함이 닥쳐왔을 뿐.

좋은 기회를 망쳐버렸다는 자책감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경기 초반, 중반만 하더라도 기세가 등등하고, 열기가 넘쳤던 원정팀 덕아웃은, 지금에 이르러선 축 늘어진 타자들이 곳곳에 널브러졌다.

모든 게 끝나버린 듯한 분위기처럼 Go의 피칭도 서서히 끝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7회 초, 원래도 그리 강력하지 못한 하위타선을 더욱더 몰아붙이더니. 삼진 두 개를 더 추가하며, 오늘도 기어코 10개의 삼진을 잡아냈지.

자신들이 휩쓰는 듯했던 콜리시엄은 올해, 아니, 작년부터 내내 그랬던 것처럼 활력이 넘쳤고.

불과 수십 분 전과 비교해도, 달라도 너무 달라진 상황과 풍경에 디백스 타자들은 Go의 달라진 타이밍처럼, 그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열심히 흥을 올리며, 투수를 난타하는 것 같았던 자신들은 어느덧 여섯 타자째 연속으로 삼진을 당하고 있고, 그대로 무너지는 것 같았던 투수는 이제 가식을 집어치운 채, 반대로 신이 나서 타자들을 쓸어 담았으니까.

“아웃!”

그렇게 마지막, 8번타자 닉 아메드가 유격수 앞 땅볼로 물러나며, 쓰리아웃으로 7회 초, 아마도 그의 이번 경기 마지막 이닝이 마무리 지어졌을 때. 디백스의 패배도 완성됐다.

이번 경기 내내 그토록 수없이 품었던 욕심 중, 결국 그 무엇도 손에 쥐지 못한 채로.

“세이프!”

“와아아아아아아아!”

투수가 내려간 뒤, 7회 말.

애슬레틱스가 다시금 한 점을 추가하며, 3대1로 앞서나갔고, 고작 2점차에 불과한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갔지만.

아까 전과 달리, 디백스는 더 이상 여유롭게 웃지 않았다, 역전을 꿈꾸지도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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