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로저스 센터에 드리웠던 최면이 풀렸다. 시작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였지.
그가 먼저 잠에서 깨어난 뒤, 곧 블루제이스 전체로 전염되어 나갔으니까.
‘역시, 메이저리거쯤 되면 다들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어.’
솔직히 끝날 때까지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안타 하나로 유리궁전은 무너졌다.
어쩔 수 없지. 결국 흉내 내기에 불과하니까. 만약 진짜로 폼이 좋은 날이었다면, 고작 그것 하나로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을 거다.
제 아무리 대단한 연기력과 완벽한 분위기로 속였다고 한들, 그 알맹이가 가벼우면 소용이 없는 법이거든.
‘뭐, 상관없지.’
예상보다 빨리 가면이 벗겨졌지만, 큰 문제는 없다. 비록 경기 계획이 어그러지긴 했지만, 허세보다 더 큼직한 걸 얻었잖아?
“스트라이크!”
이거 말이야.
주심, 브라이언 고먼은 이제 완벽하게 굳어버렸다. 한치의 의심조차 없지.
오히려 자신을 묘하게 쳐다보는 블루제이스에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이제까지는 쭉 잘 닥치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떼를 쓰느냐는 것처럼.
맞는 말이다.
꼬우면 진작 말했어야지.
이미 오늘 경기의 스트라이크존이···
“스트라이크 아웃!”
이렇게 넓어지기 전에.
물론 나한테 홀려서 다른 생각을 못하고 있었으니, 블루제이스로선 조금 억울하겠지만 말이야.
5회 말부터 피칭은 달라졌다.
4회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처럼 공격적인 피칭을 했었지만.
상대가 환각에서 풀려났으니, 이제는 그런 피칭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파울!”
6번타자 케빈 필라는 굉장히 억울한 것처럼 표정을 지었다.
일단 스윙했고, 공을 맞히기는 했지만, 다른 경기였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코스였으니까.
바깥쪽으로 꽤나 멀었거든.
누가 봐도 볼일 정도로.
애초에 손도 안 댔겠지.
허나 내 최면에서 깨어나고, 주심이 맛이 갔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블루제이스로선 그걸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고?
“스트라이크!”
브루스가 살짝 당겨오기만 해도 바로 스트라이크가 되는데, 뭘 어떡해. 그냥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 같으면 어떻게든 커트하고 봐야지.
“볼.”
“볼.”
“파울!”
오직 바깥쪽.
집요하게 바깥쪽을 노리는 피칭에 타자의 몸이 사정없이 움찔거렸다.
오만 가지 의심이 그의 얼굴에서 보였다. ‘이게 스트라이크가 되지는 않겠지?’ ‘설마 이걸 잡아주지는 않겠지?’ ‘오늘 스트라이크존이라면 몰라, 이것도 스트라이크 일 거야’.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공 하나하나마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지.
‘그러면 쓰나, 아주 공정하게 판정하고 계신대.’
스트라이크존이 개판이니, 그러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별로 좋은 행동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 눈빛, 표정 자체가 주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니까. 최소한 브라이언 고먼은 그렇게 여기겠지.
‘브라이언에게 지금 블루 제이스는, 생떼 밖에 못 쓰는 말썽꾸러기 어린애가 돼버린 거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정말로 질 것 같으니까, 나를 뚫어내지 못하니까, 괜히 투정이나 부리면서, 자신을 흔드는 거라고 말이야.
그렇기에 타자의 의심이 피어오를수록, 주심의 판정은 더욱더 단단하고, 단호해졌다.
그런 주심과 블루제이스의 다툼에서-
“스트라이크 아웃!”
나는 그저 콩고물이나 얻어먹는 거고. 이제야 잘 알겠어. 톰 글래빈의 마음을.
내가 알기로는 톰 글래빈은 1회의 성적이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안다. 그 정도의 레전드 치고는 말이야. 볼넷도 많이 허용하고.
경기 초반에 로케이션과 커맨드를 잡는 것도 이유겠지만, 바깥쪽으로 집요하게 던지며,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과정인 셈이지.
예전엔 굳이 볼넷까지 허용해가면서 그래야만 했는지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젠 잘 알겠다.
‘너무 편하네, 넓혀놓고 던지니까.’
경기가 쉽다. 엄청나게.
어딜 밟더라도 내 땅이니까.
거기다 그런 가시밭길을 뚫어내야 하는 상대팀은···
“부우우우우우!”
“그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야!”
“너 이 새끼, 저 x같은 놈한테 돈이라도 받아먹었냐!”
모든 원망이 주심에게 쏠려서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케빈 필라 역시 루킹삼진.
이번에도 석연찮은 코스였기에, 상대팀 덕아웃에선 감독이 바깥으로 뛰쳐나와 고래고래 소리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최면에서 풀려난 관중들 또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듯 야유를 질렀고 말이다.
브라이언 고먼 혼자서 수만 명과 홀로 싸워야 하는 건데, 그러면 쓰나.
‘자, 보고만 계실 겁니까? 우리의 친구가 박해받고 있는데?’
은근하게 우리 원정팬들, 레이더스를 바라보니,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이 사람들 너무좋아.
“닥치고 야구나 해라!”
“퍼펙트 안 당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괜히 깽판치지 말고 경기나 해!”
“저거 퇴장시켜, 퇴장! 그러다 시간 끌려서 우리 Suck 어깨라도 식으면 책임 질 거야!”
“X이나 까라 캐나다 놈들아! 니들이 야구 X도 못하는 걸 왜 심판한테 시비야?”
“판정 잘만 하고 있는데, 괜히 투정부리지 마!”
일당백의 레이더스가 본격적으로 소리치기 시작하자, 홈팬들의 야유와 대등한 소음이 나왔다.
그치, 블루제이스 입장에선 정말 개자식이겠지만, 우리 개자식인데, 우리가 지켜야지. 얼마나 잘하고 있어?
그런 든든한 응원에 용기가 솟은 건지, 주심은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단호하게 경기를 속행했다.
‘아, 너무 좋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날로 먹는 경기도 있어야지.’
그간 너무 빡세게 던졌잖아?
특히 올해는 더더욱 그렇고.
그런데 오래간만에 이렇게 편안한 피칭을 하게 돼서 그런지, 레드삭스전 이후로 가라앉은 몸이 쫙~ 풀리는 게 느껴졌다.
“세이프!”
그러다 한 방 맞았지만.
‘어우,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너무 기강이 해이해졌네. 집중하자, 집중.’
큼직한 장타에 주자 2루.
한순간 찾아온 위기에, 푹 늘어지던 몸에 다시 긴장이 바짝 들어왔다.
“아웃!”
곧이어, 8번타자 루크 마일을 6구째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다행히 또 한 번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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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조건 6이닝이야, 알지?”
“예, 뭐, 그래야죠. 이런 날 많이 던져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그래, 투구수도 생각보다 많이 소모했고.”
오늘은 6이닝만 던진다.
이번 시즌 첫 6이닝이지.
기본이 7이닝이었으니까.
평소보다 이르게 내려가는 셈이지만, 사실 경기 시간 자체는 엇비슷 할 거야.
5회 말부터 적극적으로 바깥쪽을 노리면서, 투구수가 늘어난 데다가, 평소처럼 인터벌도 가속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아주 영리했어.”
“예,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사실, 주심은 뽀록에 가까웠지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내가 심판이었더라도, Go 네 저번 경기를 봤으면 휘둘릴 수밖에 없었을 걸?”
스콧 에머슨은 브라이언 고먼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칭찬을 하고 그랴. 사람 부끄럽게. 혹시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제가 많이 안 던지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뭐, 그것도 있고. 그냥, 수고했다고. 오늘이 딱 10번째 등판이잖아. 10경기 내내 잘해준 투수한테, 이 정도 말은 해줘야지. 특히나 최근 들어 굉장히 다사다난 했으니까.”
“그렇기는 하죠.”
“앞으로도 쭉 이렇게만 해.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경기에서 피칭으로 토해내고, 그날 털어내버려. 그다음은 오늘처럼 편하게 던지고.”
이제 보니 코치의 표정은 조금 미묘했다. 약간 고마운 것처럼 보였거든.
하긴, 별 개 같은 말을 들었었는데, 그걸 잘 이겨내고 뒤끝도 남지 않았으니. 코치로선 고맙기는 하겠네.
“그래야죠, 오늘 경기도, 남은 정규시즌 24경기도. 쭉 그렇게 던져야죠.”
“24경기?”
“이번 정규시즌 동안 34경기 출장할 거니까, 24경기 남은 거죠.”
“···욕심도 많다, 욕심도 많아.”
그러엄, 욕심이 많고말고.
내가 욕심 빼면 시체인 사람이야. 아주 탐욕스러운 놈이지.
그러니 오늘은 적당히 참는 거다. 사실 6이닝 정도로는 이 끝없는 탐욕에 기별도 안 가지만.
더욱더 나아가서 더 큰 탐욕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하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곧이어 6회 말.
선두타자로 나온 리카르도 우레냐를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다.
“세이프!”
비록 그 직후, 1번타자 커티스 그랜더슨에게 다시금 안타를 허용했고.
“세이프!”
2번타자 조시 도널드슨의 대타로 나온 지오 어셸라에게 다시금 얻어맞으며, 위기가 닥치기는 했지만.
“아웃!”
퍼펙트를 깨트리며, 오늘 블루제이스를 잠에서 깨어나게 한 저스틴 스모크를 6구째 파울 플라이로 잡은 뒤.
‘그렇게 쭉 뻗어도-’
“아웃!”
‘어림도 없어, 이 친구야.’
가장 처음 모든 걸 알아차린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에게 5구째, 바깥쪽 서클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하여 잡아내면서, 6회 말도 막을 내렸다.
“You Suck!”
“저번 경기에서 그만큼 했으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할게!”
“오늘도 무실점 챙겼으니까, 됐어! 100이닝까지 쭉쭉 가보자!”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내 모습에 레이더스도 마지막을 예감한 듯 그렇게 인사를 해줬고.
저번 경기에서도,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도 열심히 응원해준 그들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주면서, 오늘, 시즌 10번째 등판을 마무리 지었다.
6이닝 9탈삼진 무실점.
오버페이스로 인해, 축 가라앉은 컨디션을 감안하면, 굉장히 훌륭한 성적을 남긴 채로.
‘다음 경기도 이랬으면 좋겠네.’
제대로 날로 먹었던 오늘처럼, 마찬가지로 폼이 저조할 다음 등판 역시 이렇게 넘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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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슬레틱스, 철벽같은 불펜과 폭발적인 타격으로, 4차전 6대1 승리! 승리투수 – Go You-Suck>
<애슬레틱스,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4연전 스윕! 36승 11패로, MLB 전체 1위를 달리다! 목표는 월드시리즈?>
애슬레틱스는 고유석이 내려간 뒤에도 불펜이 잘 가동되며, 고유석의 승리를 지킴과 동시에, 깔끔하게 스윕을 완성시켰다.
36승 11패, 무려 .765에 달하는 압도적인 승률을 달리는 모습은, 분명 돌풍이라고 지칭되었던 작년보다도 더욱더 거셌고.
그에 사람들은 더는 오클랜드의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을 비웃을 수가 없었다.
레드삭스전에서 보여줬던, 한 명의 투수의 영향력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에, 그런 투수가 있는 한, 어떻게든 토너먼트 단계에만 진출한다면, 충분히 다크호스가 될만 했으니까.
<13.2이닝 간 퍼펙트를 유지한 고유석, 그의 영광 앞에 오욕은 없었다.>
그토록 중요한 고유석 역시, 지난 등판보다는 덜하나, 역시나 충분히 준수한 피칭을 이어갔고 말이다.
종종 퍼펙트 게임 이후, 그다음 등판에서 무너지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오늘의 고유석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10경기 10승, 무패 전승! 고유석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애슬레틱스의 막강한 기세, 그리고 언제나 완벽한 고유석! 어쩌면 30승의 고지에?>
10경기를 치렀음에도 여전히 전승을 유지하는 고유석을 보며, 몇몇은 과감히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야구에서 자취를 감춘, 라이브볼 시대에선 단 두 명밖에 도달하지 못한 30승의 고지에, 이번 시즌 고유석이 다시금 올라설 지도 모른다고.
<고유석, 76이닝까지 늘어난 기록, 정말로 100이닝까지?!>
└진지하게 가능하겠는데?
└이제 24이닝 남았으니까, 어, 세 경기만 잘해도 되네?
└다른 사람이면 미쳤나고 했겠지만, 고유석이라면 정말로 달성할지도···
└작년에도 미친놈이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한 듯.
└로빈슨 카노 82경기 나가리 됐던데, 고유석은 언제됨? 약쟁이 빨리 아웃됐으면.
└소문 못 들었네. 곧 소송장 도착할 거니까, 집 잘 지켜라.
당장 76이닝째 무실점을 이어가는 투수, 100이닝도 넘볼 수 있을 만한 투수이니 말이다.
비록 선발투수의 승리는 투수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팀의 영향도 많이 받기에. 과거보다 가치가 낮아졌을뿐더러, 대단히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이번 시즌 애슬레틱스는 그런 고유석의 기세를 받쳐주기에 충분해 보였으니까.
<석연치 않았던 판정, 오늘 Go는 명백히 ‘슈퍼스타콜’의 이득을 봤다!>
<브라이언 고먼 주심, 비난에도 그저 ‘나는 정확하게 판정했을뿐’이라며 단호함을 밝혀···>
<‘우리가 그에게 속았다’ ‘그는 타고난 사기꾼!’ ‘경기 중반은 그가 지배했지만, 후반은 주심이 망쳤다!’ ‘오늘 같은 경기를 방지하기 위해, 기계식 판정이 도입되어야···’, 분노한 존 기븐스 감독, 수위 높은 과격 발언에 징계가 떨어질 수도···>
그토록 고유석과 애슬레틱스가 환호에 잠겼다면, 블루제이스, 그리고 애슬레틱스를 싫어하는 이들은 주심을 향해 비난을 터트리기도 했다.
주심의 재량권이라는 단어로도 감싸줄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의아스러운 판정이 이어졌던 경기였으니까.
특히나 격노를 토해낸 존 기븐스 감독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심판의 판정에 대한 불신과 기계식 스트라이크 존 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말이다.
<82경기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로빈슨 카노, 그다음은 Go?>
<평균 회전수 2500, 지난 경기보다 힘이 많이 빠졌던 경기! 도핑의 리바운드일수도 있어···>
여러모로 불타오른 경기 속에서, 여전히 집착을 놓지 못한 이들이 떠돌기도 했지만.
이미 처참하게 패배하여 시궁창에 던져진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빌리 빈과 스캇 보라스의 동맹?!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보라스 코퍼레이션과 합작하여, 의혹에 대한 징벌을 내릴 것!>
그저 마지막까지 확실한 확인사살만이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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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말이 많았던 원정 일정을 마친 뒤 다시 홈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분위기가 참···’
당연하게도 분위기가 어두웠지. 선수들이든, 코치든 간에 말이야.
로빈슨 카노라는 거액 연봉자이자, 팀의 핵심적인 선수가 도핑으로 날아갔으니까.
“82경기면 시즌아웃 아니야?”
“정지 풀리고 다시 경기력 올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그 정도지.”
“솔직히 그것도 약해. A-Rod때처럼 화끈하게 때렸어야지.”
“뭐, 본인은 모르고 먹었다잖아. 그리고 이뇨제였으니까, 봐준 거겠지.”
82경기 출장 정지.
솔직하게 말해서, 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약하다고 느꼈다.
‘그놈의 로빈슨 카노 때문에 나까지 피해를 봤는데,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한 200경기쯤 정지를 때려버려야지.’
생각해보면 모든 의혹의 시작이 그 양반이었잖아?
로빈슨 카노, 그런 슈퍼스타급이 도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그걸 나한테까지 엮은 거니까.
내가 입은 피해, 그리고 앞으로 회복하지 못할 피해까지 감안하면, 솔직히 연봉으로 받아 처먹는 2천만 달러 중에서 반은 나한테 때줘도 모자라.
“Suck, 넌 고소 들어갔다며?”
“내가 직접한 건 아니고, 에이전시랑 구단에서 알아서 해주는 거지.”
“그런 놈들은 죄다 폐업시켜야 돼. 아직까지도 질질 물고 늘어지는 거 보고, 내가 다 소름끼치더라.”
“에휴, 하여튼 언론이 문제라니까. 그래도 작정하고 나섰으면 배상금 좀 짭짤하게 나올 텐데, 그거라도 받아서 그나마 Suc 네 속이 편하겠네.”
“그치, 듣기로 한두 푼은 아니라던데, 차 한대 바꾸겠어?”
뭐, 그 대신 손가락 함부로 놀리고, 엄한 사람 잡은 놈들 주머니를 털게 됐으니, 상관없지만.
꽤나 규모가 크다고 들었다.
직접적으로 이 모든 일을 설계한 곳부터, 받아쓰기한 곳들까지, 죄다 털 거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뽑아내는 피해 보상금들을 다 합치면, 제법 짭짤하기는 하겠지.
출장 정지 기간 동안 허공으로 날아갈 로빈슨 카노의 연봉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나저나, 우리 식사 언제해? 이제 일이 다 끝난 것 같은데, 한끼 먹어야지?”
브라이언에게 들었던 예상 금액을 떠올리며 멍하니 그라운드를 보고 있었을 때, 마찬가지로 오늘 휴식을 받은 브루스가 슬그머니 물었다.
“식사? 왜, 배 고프냐? 해바라기씨 좀 줄까?”
“아니, 그거 말고, 일 다 끝나고 나면, 같이 저녁 한끼 하자며.”
“저녁? 그래, 그랬었지. 까먹고 있었네.”
비행기에서 얘가 같이 밥 먹자는 거 검사 받는다고 거절했다가 개판이 됐었잖아?
그다음에 사정 밝혀지고 나선, 나중에 일 끝나면 내가 한끼 사겠다고 했었고.
그래도 배터리인데 저녁 정도 한끼 하기는 해야지. 같이 기록한 기록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 다 안 끝났잖아? 개소리하는 놈들이 여전히 천지에 깔렸는데, 끝은 무슨. 다음 도핑 검사까지 나오면 그때 하자, 그때. 그리고 지금 폼이 떨어져서, 최대한 루틴 지키면서, 식단에 따라 먹어야 돼. 그래야 빨리 올라오지.”
“···그러다 영영 못할 거 같은데?”
물론 다음에 말이야.
원래 나중에 같이 밥이나 먹자는 말 만큼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없는 법이다.
앞으로 영원히 만나지 말자는 말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지.
이상한 곳에서 눈치가 좋은 녀석이라서 그런가,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