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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34화 (234/316)

234화

물론 한 경기 뽕을 제대로 뽑았다고 해서, 그저 그렇게 털릴 생각은 없다.

아무리 남는 장사라고 해도, 아예 거저 줄 수는 없는 법이지. 나도 먹고살아야 하잖아?

그러기 위해선 일단 지금 현재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듯싶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체력.

예상외로 체력은 좋았다.

저번 경기에서 110구 정도를 던진 걸로 아는데. 그런데도 제법 여력이 남아 있었지.

대니얼의 말이니, 거짓은 아닐 거다. 나도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런가요?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몸이 아프기도 한데···”

여전히 삭신이 뻐근했거든.

이제 4차전, 등판일인데 말이야. 그리 이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지.

그렇기에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예, 출력을 넘어선 피칭을 하셨으니, 그야 당연합니다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피로는 쌓이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노력한 보람이 있군요.”

“포스트시즌에서 쓰려고 열심히 비축해뒀는데, 정작 봄이 지나기도 전에 쓰게 됐네요.”

“뭐, 언제든지 필요할 때 효과를 얻는 것이 중요하죠.”

겨울 동안 열심히 기른 기초 체력과 내구성이 이번에 빛을 발한 건데, 데굴데굴 구른 보람이 있구만.

겨울을 대비해 비축해둔 비상식량을 까먹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몸은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오늘은 조금 더 하드하게 워밍업을 하도록 하죠.”

“그래도 괜찮을까요? 몸 상태 안 좋을 때 괜히 무리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쩐지 저랑 Go가 서로 하는 말이 반대가 됐네요. 걱정은 이해합니다만, 이미 설명해 드렸다시피 피로가 쌓인 것은 아니기에,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대니얼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믿고 따라야죠.”

그 남은 체력을 불태워서, 최대한 폼을 달아 올린 덕분에 완전히 맛이 가버렸던 감각도 조금 올라왔고 말이야.

물론 여전히 처참한 수준이지만, 진짜 하얗게 불태웠는데, 이 정도를 건진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적당히 남아 있는 체력, 그리고 아주 살짝 올라온 감각. 일단 이 두 가지가 지금 나한테 있는 전부고, 이번 경기는 여기에 기대야 한다는 건데.

‘이것들을 잘 버무려서···’

다행히 방법은 있다.

작년에도 똑같이 폼이 나빴을 때가 있었잖아? 그때의 방법을 되풀이하는 거지.

그게 뭐냐고? 뭐긴 뭐야.

쥐뿔도 없는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하나 말고 더 있나.

‘허세를 만들어야겠구만.’

허세, 조금 더 저속하게 표현하면 가오.

원래 수컷들 간의 승부에서는 이거 하나만 잘 지켜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지.

다행히 그 허세를 만들어낸 재료는 충분하다.

별로 좋은 이유에서 비롯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한테 집중됐던 관심. 그런 관심 속에서 해낸 완벽했던 피칭과 그것이 낳은 퍼펙트게임 및 기타등등의 기록들. 그리고 적당히 껍데기 정도는 남아 있는 몸 상태.

이것을 잘 조합하면 뭔가 만들어지겠지.

“어때? 저번 경기랑 비슷해?”

“뭔가 느낌은 있는데? 좀 더 눈을 뚜렷하게 떠 봐. 얼굴은 웃으면서.”

“그거 또라이 아니냐?”

“저번에 Suck 네가 딱 그랬다니까. 입은 웃는데 눈은 싸늘한 거.”

“지금은 어때?”

“···눈동자를 또렷하게 하라고 했더니, 왜 눈알을 모아. 무슨 매직아이냐?”

물론 기깔나는 연기력도 받쳐줘야 하겠지만 말이야. 내가 또 한 연기하지.

저번 경기 내내 공을 받아줬던 만큼, 가장 익숙할 테니, 브루스에게 코칭까지 받아가며 최대한 느낌을 살렸다.

솔직히 완전히 똑같기는 힘들 거야. 단순히 내 감정이 밖으로 발산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서 피칭이 받쳐줬기에 느낌이 살았던 거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고, 앞서 말했던 것들을 잘 섞는다면, 제법 그럴듯한 무언가가 나오겠지.

또한, 단순히 나 혼자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들 역시 딱 속여먹기 좋은 상황이니까.

“토론토 타자들 어때? 맛이 갔어?”

“어, 특히 저번 경기는 막판에 역전당해서 그런지, 좀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

“걔들 5월 성적이 6승 12패던가? 정상은 아니겠네.”

지금 블루제이스는 일종의 금치산자다. 심신이 상실된 상태지. 내가 사이클이 떨어진 것처럼, 여기도 기세가 팍 내려앉았거든.

4월에는 그래도 16승 12패를 하며, 그럭저럭 괜찮았기에, 작년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하자며 소리를 높였지만.

5월이 시작된 이후 그래도 꼴아 박으면서 맛이 가고 있지. 투수진, 특히나 불펜 쪽 문제가 심하지만, 타자들도 정상은 아니고.

‘거기다 우리한테 3연패를 당하면서, 첫 스윕의 위기가 닥쳤으니.’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겠지.

물론 어떻게든 스윕만은 면하자며, 더욱더 열심히, 아주 비장하게 덤비겠지만.

그런 초반의 기세와 공격만 적절하게 잘 막아낸다면.

‘허세가 그저 허세로만 끝나지는 않겠지.’

####

“하필 이런 경기에서 쟤가 나오네.”

저스틴 스모크의 투덜거림에 다른 선수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내심 그의 말에 동의했다.

스윕을 당할지도 모르는 경기, 어떻게든 이겨서 자존심이라도 챙겨야 하는 경기에서, 하필이면 가장 최악의 투수를 만났으니까.

Go You-Suck.

다들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똑같은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등판 말이다.

아마도 길이 기억되겠지.

전설로 남을 피칭이었고.

전설로 남을 퍼포먼스니까.

‘완전히 미친놈이었어.’

‘작년에 만났을 때는 운이 좋았던 거야.’

‘역시, 평소에 실실거리던 놈이 한번 빡치면 난리가 난다니까.’

‘그나마 레드삭스니까 그 정도였지, 우리가 상대였다면···’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근 수십 년간 메이저리그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 투수로서 가장 압도적인 경기였을 거다. 5일 전의 그날, 5월 15일 있었던 경기는.

한 명의 투수가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그날 모두가 목도했지.

그렇기에 타자로서, 그런 투수를 상대해야 하는 타자로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고.

솔직히, 그 경기의 타석에 오른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투수가 오늘 나온다.

상대팀의 선발투수로서 로저스 센터에 등판한다.

그것이 블루제이스 타자들에게 주는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최악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으니까.

“원래 퍼펙트게임 다음에는 털리는 법이야.”

“차라리 잘됐네. 이참에 우리가 그 무실점 깨주면 되잖아?”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이겨야지. 걔 잡고 다시 분위기 올리자.”

물론 그들은 프로다.

그것도 Major지.

그렇기에 마냥 두려워하지만은 않았다. 그런 ‘Pussy’들은 감히 이곳까지 올라올 수 없으니까.

최악을 적으로 만나더라도, 굳건하게 싸우는 것이 메이저리거이고, 그렇기에 호락호락하게 스윕 당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히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있겠지.”

“아주 제대로 토해내던데, 저렇게 한번 쏟아내고 나면, 가벼워지는 게 정상이야.”

“70%가 전력투구였다고 하던데, 오히려 그 직후에 만난 건 축복이지.”

또한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번 등판에서 보여준 피칭은 분명 경이로우나, 그렇기에 도리어 블루제이스에게도 희망이 있었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며, 최고를 만들었던 투수이니, 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날 보였던 분노에서도 드러나지 않은가? 그가 정말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것이.

그러니 오늘은 공이 좀 더 가벼울 거다. 어쩌면 오히려 이번 시즌을 통틀어, 최악의 폼일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며, 팬들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말자는 목표하에 굳건하게 준비한 블루제이스였지만.

“X발, 그대로잖아.”

“아니, 레드삭스전 때 화 다 낸 거 아니었어? 여전히 빡돌았는데?”

“저 미친새낀 그렇게 던져놓고도 지치지도 않네···”

1회 초가 지나가고, 그들의 차례가 됐을 때. 마찬가지로 자신의 턴을 맞이한 Go가 마운드에 올라선 순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단하고 또렷하고, 총명하게 빛났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지난 경기, 모두가 보았던 그날의 중계 방송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투수가 올라왔으니까.

평소처럼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싸늘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를 하고서.

그 뱀 같은, 사갈 같은 얼굴에 자연스럽게 다시금 지난 경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레드삭스를, 아니, 자신을 욕하던 모든 이들을 무참히 도륙했던 그때의 모습을.

그것으로, Go, 고유석이 원했던 반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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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다들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아주 미세한 눈알 굴림조차 바로 포착되겠지.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들켜서는 안 된다. 오직 피칭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지.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눈알조차 함부러 굴려서는 안 되겠지.

‘오케이, 먹혔다.’

그렇기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저 시야의 외곽, 끄트머리로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것으로 상대팀 덕아웃을 확인했다.

잘은 안 보이지만, 약간 움찔거리는 것 같은 몸짓들이 보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허세가 어느 정도 먹혔구만.

‘이제부터 시작이야.’

허나, 앞서 말했듯, 허세는 딱 반이다. 반을 먹을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반만 먹을 수 있는 거지.

그 허세를 받쳐 줄 토대가 없다면, 결국은 무너질 테니까.

그러니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일단 포석만 깔아둔 거고, 차근차근 기둥을 세워야지.

지금 내가 구축하고, 상대를 홀린 이 거대한 유리 궁전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이 양반부터 시작해야지.’

커티스 그랜더슨.

멋진 커리어를 보내고, 이젠 현역 마지막을 향해가는 선수다. 81년생이니, 올해로 서른일곱이네.

통산 300개가 넘는 홈런에서 알 수 있듯, 준수한 파워를 갖췄고, 발도 제법 빠른 선수인데.

다만 그 대신인지 선구안이 떨어지지. 컨택도 그렇게 준수한 타입은 아니고. 여러모로 리드오프를 맡기에 적합한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한 방이 있는 타자인데다, 콜리시엄이 아니라, 타자에게 제법 유리한 로저스 센터이니.

까딱해서 스윗스팟에 맞은 정타 하나 나오는 순간 홈런을 각오해야 할 테니까.

“스트라이크!”

그럼에도 초구는 위험하게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 몸쪽으로 깊이, 제대로 찔러 넣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저번 등판을 따라 하기로 했으니, 피칭도 엇비슷해야 할 테니까.

‘살짝 나간 것 같은데···’

다만 감각이 떨어진 만큼, 제구에서 미스가 나, 예상보다 더 타자에게 가깝게 들어갔다.

그런데도 스트라이크.

타자 역시 가만히 지켜봤지.

조금 침을 꿀꺽 삼키면서.

‘뜻밖의 이득이구만.’

10년이 훌쩍 넘는 기나긴 경력을 가진 타자가 긴장하는 모습은 흔치 않다.

그만큼 저번 경기의 여운이 짙게 깔려 있다는 뜻이겠지. 저런 베테랑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리고 내 생각과 달리 조금 더 깊이 들어간 초구가 그걸 더욱더 심화시켰고. 마치 위협구처럼 보였을 테니까.

비록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나, 뜻밖의 이득을 본 것이지.

‘좋아, 이대로 분위기를 유지하자고.’

시작부터 판이 잘 깔려줬으니. 나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파울!”

2구는 바깥으로 나가는 슬라이더였는데, 확실히 선구안이 좋지는 않은 듯, 커티스 그랜더슨은 그걸 그대로 후려쳤다.

당연히 빗나가면서 파울.

그렇게 잡은 투 스트라이크.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덤덤한 척, 하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던진 3구. 쭉 뻗어온 공에 타자의 눈동자가 번뜩였지만. 배트는 닿지 않았다.

하이 패스트볼.

무리해서 출력을 높여서 그런가, 어깨가 조금 시큰해졌다.

저번 경기에서는 대충 던져도 최고구속이 막 찍히더니. 완전히 천지 차이네.

‘89마일, 됐어.’

허나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1회 말, 첫 타석 만에 다시금 찍힌 최고구속. 그것으로 두 번째 포석이 깔렸다.

멋지게 헛돈 타자.

전광판에 찍힌 89마일.

그리고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투수.

삼박자가 잘 이루어졌지.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허나 완성은 아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

당장 그다음 2번타자, 조시 도널드슨만 봐도 집중이 빡 들어간 얼굴로 올라왔으니까.

물론 조금 긴장한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완전히 넘어오지는 않았다.

‘위험한 타자이지만, 다행히 부상 이후로 폼이 나가리야.’

파워는 확실한 타자다.

언제나 위험한 타입이지.

그러나 최근 기세는 별로 좋지 않았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2주 정도를 날린 뒤, 이번 달 초에 다시 복귀했었는데.

그 이후로도 타격감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듯했으니까.

이번 시리즈 역시, 앞선 세 경기에서 14번의 타석 동안 안타를 하나도 못 쳤지. 볼넷만 세 개를 얻어냈고.

물론 파워를 지닌 타자들은 언제나 위험하기에 호락호락하게 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편한 건 사실이다.

“스트라이크!”

딱 알맞기도 하고.

다시 포심. 바깥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박히는 코스에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이번에도 조금 나간 것 같은데, 일단 지켜봐야겠어.

어쨌든 타자는 스윙을 참았다. 본인도 스스로 타격감이 저조한 걸 알기에, 확실한 공이 아니면 배팅을 망설이는 거겠지.

‘이쪽은 쉽게 가자.’

여기서 KK를 올린다면 더 확실해질 거다. 아주 제대로 속기 시작하겠지. 허나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었다.

삼진을 위해서, 승부를 길게 끌다가, 떨어진 타격감을 올려줄 수도 있으니, 그냥···

“아웃!”

빠르게 잡아서, 계속 둔한 상태로 남겨두는 게 더 낫겠지.

몸쪽으로 낮게 깔린 공.

기다렸던 코스인 건지, 조시 도널드슨의 배트가 나왔지만, 투심의 무브먼트에 퉁-하고 공허한 소리만 나왔다.

마운드 앞으로 굴러온 타구를 잡아서 가볍게 1루로 송구하는 것으로 아웃.

‘살짝 뻐근하긴 하네.’

몸이 찌뿌둥해서 그런가, 수비동작이 바짝바짝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제 마침표를 찍자.’

그렇게 투아웃이 올라가자 분위기는 더욱더 그럴듯해졌다. 아마 타자들이 보는 내 모습에도 더욱 설득력이 생겼을 테고. 그러니 이제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어야겠지.

3번타자 저스틴 스모크.

작년 38홈런을 날리며, 커리어 하이를 찍은 타자인데, 올해는 그럭저럭 무난하다.

OPS도 간신히 8할을 넘기는 정도고, 타율도 그냥저냥 2할 5푼이지. 다만 선구안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괜찮아.

“파울!”

무조건 잡을 생각이니까.

과감하게 집어넣은 서클 체인지업, 궤적을 따라가지 못한 채 살짝 빗맞은 스윙에 타구는 파울라인을 넘어갔다.

폼이 좋은 날이었다면, 파울이 아니라 헛스윙이 됐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지.

‘투 스트라이크까지만 잡자.’

그렇게 생각하며 차분하게 깔아던진 공 세 개.

“볼.”

“볼.”

“스트라이크!”

둘은 아쉽게도 살짝 나갔지만, 일단 하나는 걸렸다. 투 앤 투. 바라던 대로 투 스트라이크는 잡았지.

그러니 이젠 마침표를 찍을 차례다. 이번 타석과 이번 이닝, 그리고 서서히 홀리기 시작한 로저스 센터에 말이야.

“후우-”

길게 뱉은 숨.

브루스를 쳐다보자 사인을 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척하면 척이군. 얘도 제법 믿음직해졌어.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지한테 사다준 롤렉스가 몇 갠데.’

아무튼 서로 이심전심이니, 더 볼 것도 없겠지.

왼팔을 세차게 휘두르며, 스트라이크존에 정조준했다. 대충 너무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 이상 제구를 가다듬는 것보단, 그럴 여유까지 보태서 더욱더 확실하게 터트려야 했으니까. 축 가라앉은 몸 안의 힘을.

그대로 뿌리친 마지막 공.

공은 잘 긁히는 날의 그것처럼 묵직하게 일직선으로 뻗었고. 저스틴 스모커의 몸이 얼어붙었다. 내가 바라던 것처럼.

“스트라이크! 아웃!”

몸쪽으로 쏠린 포심 패스트볼. 타자가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면서 삼진이 선언됐다.

‘89마일.’

이번에도 최고구속이었지.

삼진아웃. 그리고 쓰리아웃.

이닝이 끝났고, 이것으로 내 허세가 완성됐다.

“You Suck!”

이거 봐, 지난 경기에서 죄다 성불한 건지,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캐나다까지 나타난 레이더스도 신나게 유썩 거리잖아?

“우우우우!”

“이 더러운 로이더새끼!”

“도핑 검사 조작이네! 조작이라고!”

“니가 사람이냐!”

“꺼져라 치터 새끼야!”

안 그래도 팍 내려 박은 팀 성적에, 우리한테 스윕의 위기까지 몰리면서 신경이 예민해진 홈팬들은 나를 욕하고.

그래, 마치 레드삭스전의 초반처럼 말이야. 그때처럼 치터라고 소리치는군.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이런 개 같은-”

“설마 우리도···”

더 좋은 건 그다음이다. 그렇게 나를 로이더라고 욕하다가, 불쑥 입을 꾹 닫았거든.

마치 자기들은 공연히 나를 자극해서, 레드삭스 같은 꼴이 되기 싫다는 것처럼.

‘됐어, 낚였다.’

덕아웃에 있는 상대 타자들 역시 꽤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했고 말이다.

그래, 블루제이스가 낚였다.

그것도 아주 대차게.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도 같이 낚였네.’

그렇게 완성된 내 허세에 낚인 건 블루제이스만은 아니었다. 뜻밖의 대어가 낚였거든.

‘처음부터 느낌이 좀 이상하다 싶더라니, 입질이 제대로 왔어.’

브라이언 고먼.

아마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거야. 블루제이스의 선수도 아니고, 감독이나 코치도 아니니까. 별건 아니고.

‘그냥저냥 상대 타자들이나 속이려고 했더니··· 월척이 낚였구만.’

그냥 오늘 경기 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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