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33화 (233/316)

233화

-스트라이크 아웃!

-Yeeeeeeeeeah!

경기가 끝났을 때.

어쩌면 고유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봤다.

월드시리즈조차 아닌, 그저 흘러가는 정규시즌의 경기 중 하나에 불과한 그 경기를.

그가 바라던 대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지. 마지막 삼진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미친놈···”

“정상은 아니라니까.”

“자기 스스로 쐐기를 박네, 쐐기를 박아.”

“저게 약이 아니면 뭐가 약이야?”

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선수였다. 야구팬들에게 고유석이란 파격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지.

그 성적도 대단히 파격적일뿐더러, 그 성적을 이륙한 피칭 역시 평범하게(?) 강속구를 던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또한 정점에 이른 투수답지 않게, 조금은 가벼운 듯한 모습 역시 흔치 않았고 말이다.

그 파격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것은 단연 작년 파인타르 의혹이 심하게 불거졌을 때다.

감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의심을 정면으로 돌파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도 조금 더 심했다.

파인타르를 ‘따위’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의혹, 도핑이라는 최악의 스캔들이 휩쓰는 와중에 해버렸으니까.

“진짜 하네, 미친놈이···”

“퍼펙트 맞지?”

“그냥 퍼펙트가 아니지. 퍼펙트 아래에 주렁주렁 달린 게 한가득한데···”

퍼펙트게임을.

일단 가장 덩어리가 큰 것을 꼽는다면, 커리어 세 번째 퍼펙트게임이었다.

그래, 중계 화면 아래에 떡하니 걸린 저것이지.

그것을 지켜본 이들은 굉장히 어색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라니. 퍼펙트게임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표현된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리라.

그런데 그 아래로 쭉 늘어진 것들 역시 만만찮았다.

20개의 탈삼진을 또다시 레드삭스를 상대로 단 24일 만에 다시 한번 잡아내면서.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단일경기 20K를 2회 달성한 투수의 자리에 올랐고.

<‘퍼펙트&20K’ 종전 본인이 세웠던 퍼펙트게임 최다 탈삼진 기록 경신!>

또한 그로 인해, 작년 마지막 등판에서 본인이 세웠던 퍼펙트게임 최다 탈삼진을 다시금 경신했다.

<70이닝 연속 무실점, 세기가 지나더라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 완성되다!>

그리고 이미 신기록을 수립했던 연속 이닝 무실점은 이젠 아예 70이닝까지 찍어버렸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기록이 쏟아졌다. 한 시대는 물론, 한 세기가 지나가더라도 영원토록 남아 있을 기록들이 단 한 경기만에 수립됐으니까.

“이걸 인정해야 하나?”

“대놓고 약빨고 만든 기록인데, 인정하면 좀 그렇긴 하지.”

“왜? 그렇게 따지면 로저 클레멘스나, 배리 본즈의 기록도 삭제해야지.”

“그럼 넌 저게 옳다고 생각하냐?”

“옳다는 건 아니고···”

그렇기에 확신했다.

그래, 약이다. 이건 무조건 약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저것 좀 봐라! 자기도 부끄러운 건지,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고, 동료들도 축하하기는커녕 무덤덤하잖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확신이, 경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깃들었을 때.

그가 덕아웃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투수코치 앞에서 잠시 멈춘 뒤, 다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냉소를 지으며 욕설을 퍼붓고 채널을 돌리려던 손가락이 멈췄다.

“어?”

“종이 같은 걸 들었는데?”

“뭐야,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방향을···”

“설마 또-”

혹시나 싶었다.

또다시 무언가를 준비한 건가? 작년처럼? 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기대했고, 그를 지탄했던 이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병원 검사·····

그렇게 도착한 카메라 앞에서, 그는 마치 논문을 발표하는 박사라도 되는 것처럼.

쥐고 있던 종이와 그것에 담긴 내용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보여줬다. 잘 보이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서.

분노가 가득했던 피칭과 달리, 그 얼굴에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희열이 가득했지.

그렇게 짤막한 강연회가 끝났을 때, 그는 당당히 선언했다.

-꼬우면 반박해봐, 이 개새끼들아.

자신의 승리를.

스트립쇼에 가까운 행위를 했던 작년보다는 오히려 덜한 행위일지 모르나.

최소한 그 파급력은 그것은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와 그 판도를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 잠깐의 행위, 수십 초가 되지 않을 그 행동으로. 최소 수백만 이상의 목격자가 새로이 생겨났으니까.

####

<도핑 검사 결과를 직접 공개한 Go! 이제 ‘Your Turn’이다!>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에 코웃음? Go, ‘꼬우면 반박해라’, 비난자들에게 선언!>

그가 도핑 검사를 받았다는 소문이야 금방 퍼져나갔었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숨기기 힘든 문제였으니까.

허나 그것을 설마하니 곧바로 공개할 줄은, 그것도 완벽했던 경기가 종료된 직후 까버릴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게임이 바뀌었다.

고유석이 자신의 턴을 멋지게 끝마치면서, 이젠 검증의 대상이 고유석에서, 그를 음해하려 했던 이들로 바뀌었으니까.

[@Let’sGoSuck1184 - Suck 말 잘 들었지? 증거 내놔 X새끼들아. #Go You-Suck #Suck! #Athletics]

[@SucksOnTheBeach – 열심히 떠들어대던데, 증거가 있었겠지? 이제 니들도 내놓을 차례야.]

사람들은 당당히 요구했다.

고유석이 말한 것처럼, 응당한 반박을, 그리고 증거를.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팬들, 그에게 거센 비난과 의혹을 보냈던 이들 모두 다.

심지어 고유석에 한해서는 언제나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던 레인저스의 팬들조차 말이다.

어쩌면 가장 참혹한 학살을 당해버린 레드삭스마저도.

<검사 결과 ‘Clean’, 그렇다면 도핑의 증거는 어디에?>

<진실이 아닌, 오직 슈퍼스타를 끌어내리기만을 위한 ‘네거티브’, 이제는 멈춰야 할 때···>

<최고의 선수의 비애, Go를 향한 의심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된 의혹에 욕설이 섞인 울분을 토해낸 고유석! 과연 그가 요구한대로 반박이 나올까?>

그 흐름을 놓치지 않은 미디어 역시 배를 갈아타거나, 혹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고 말이다.

고유석이 바라던 것처럼, 최소한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 모두가 경기를 지켜봤으니까. 그들 모두가 목격자가 되었고.

그 앞에서 후련하게 휘두른 강력한 펀치 한 방은 지독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망가뜨릴 만큼, 아주 깔끔한 클린 히트로 들어갔다.

그 앞에서 아무런 반박 거리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았다.

<디자이너들의 흔한 수법! ‘이뇨제 등을 위시한 약물 칵테일의 사용되었을 수도···’ 전문가들, 입을 모아 의심!>

이뇨제 등을 통한 약물 성분 배출을 의심하거나.

<공식적이지 않았던 검사의 효력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져···>

검사 자체에 의구심을 표하거나.

<깨끗한 검사지? 그것이 깨끗하다는 증거는 어디에?>

혹은 그저 어린아이의 유치한 투정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거나.

물론 그토록 추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버렸지만 말이다.

고유석이 욕까지 토해내며 요구했던 반박이 없었으니까.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그 짜릿한 승리 앞에서, 당연하게도 애슬레틱스 팬들은 울분을 토해냈다.

[#A’s]

[난 Suck을 믿었어! X발 그럼 그렇지! 이 개X같은 X새끼들! 뭐? Suck이 로이더라고? 치터라고? 더러운 새끼니까 영구제명하자고? 니들 아가리나 영구제명해라.]

└증거도 제대로 못 내미는 의혹 하나가지고, 아주 신이 나셨던데. 이젠 또 뭐라고 씨부릴까 궁금하네.

└Suck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기가 깨끗하다는 걸 자기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니. 진짜 X같았을 거야.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고, 흔들림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불신도 생겨났었고.

수많은 조롱이 쏟아졌고, 두려움도 생겨났었다, 어쩌면 정말로, 이 모든 의혹이 진실이 아닐까, 싶었으니까.

그러나 꿋꿋하게 버텼다.

그토록 깊이 믿고, 깊이 사랑하며, 깊이 추종했던 선수와 그를 지켜본 자신들의 지난 추억을 믿으면서.

그리고 마침내, 언제나 그랬듯,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그것도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결국 이번에도 이겨낸 것이다. 그 앞에서 애슬레티스 팬들은 기쁨을 참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경기를 돌이켜 보며, 조금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토록 열렬하게 그를 지켜보고, 그의 모든 경기를 기억하는 애슬레틱스 팬들조차.

이번 경기만큼 그가 단단히 분노한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까. 티비 화면 너머로도 그것이 느껴질 정도였지.

[#A’s]

[난 Go가 항상 덤덤하다고 생각했어, 이번에도 그렇다고 생각했고. 별다른 반응도 없이 그냥 무시하는 것 같았으니까. 근데,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었던 모양이네.]

└어쩌면 저게 Go의 본모습일지도 모르지. 평소의 가벼운 모습은 스스로 제어하는 모습인 거고.

└폼이 좋을 때, Go가 진짜 작정하고 던지면, 이런 모습이구나···

└이미 최고를 넘어선 최고를 수없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또 한 단계를 넘어섰네.

아니, 단순히 애슬레틱스 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상에 우뚝 선 선수치곤, 생각보다 가벼운 듯한 느낌을 줬던 고유석이기에.

어쩌면 진정한 본모습,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 이번 경기는, 그를 고깝게 보던 이들에게도 충격이었으니까.

그것이 색다른 매력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하기도 했다.

[#Dodgers]

[생각해봐, 정규시즌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단기 토너먼트에서 Go가 저러는 모습을. 상상만으로 소름 돋는데?]

[#Redsox]

[평소라면 타자들한테 욕이라도 진탕 했을 것 같은데, 오늘은 못 하겠네···]

[#Braves]

[만약 월드시리즈에서 저런 피칭을 보이면, 저걸 뚫을 수가 있기는 한가?]

고유석이라는 투수가, 단일경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 그 최대치가 드러났으니까.

혼자만의 힘으로 한 경기를 능히 지워버릴 수 있는, 아니, 아예 삭제시켜 버릴 수 있는 투수.

그런 투수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난 경기였으니까.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만약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다시금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했을 때. 그걸 뚫어낼 자신이 없다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지금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던 그 공포감이 왕좌를 노리던 구단들에게 엄습했다.

이렇듯 한순간 분위기를 뒤바꾼 한방과 더불어. 고유석이라는 투수가 한 경기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레드삭스전은 막을 내렸다.

또한 끝내 참지 못했던 흥분에 대한 징벌과 함께.

####

내 나름대로 나쁜 짓 안하고 잘 살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학창 시절에도 수업시간에 푹 잤던 걸 제외하면 나름 모범생이었는데.

이것 참, 오래 살다 보니, 벌금 딱지를 다 끊어보네.

“심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기는 하지.”

“X이나 까라 X새끼들아 라고 했던가? 그 정도에 천이백 달러면 오히려 싼 편이야.”

“어? 그랬던가? X이나 까라 개 같은 Mother Fucker들아 이지 않았어?”

“왜 자꾸 단어가 추가돼. 그냥 심플하고 깔끔하게 ‘해변의 자식’ 그거 하나만 했구만.”

마지막에 참지 못하고 질렀던 욕설에 대한 징계로 1,200달러의 벌금이 떨어졌다.

그래, 저~기서 낄낄거리는 동료들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흥분에 못 이겨 중계 카메라에다 대고 대놓고 욕했으니 말이야.

“이거 무조건 내야겠지?”

“안내면 괜히 징계 더 커져. 어차피 겨우 천이백 달러인데, 그냥 시원하게 내. 쩨쩨하게 굴지 말고.”

“그래, 그렇겠지. 하긴, 브루스 네 롤렉스 값이랑 비교하면 쥐꼬리만 하네.”

다른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들의 영웅이 되어야 할 메이저리거가 그런 욕설을 해버렸으니. 달게 벌을 받아야겠지.

나도 사람이라서 고작 욕 한번 한 거로 벌금을 낸다는 게 쪼오끔 아깝기는 한데, 그래도 큰 금액은 아니니까.

사실 대놓고 욕했는데, 고작 1,200달러면 사무국에서 많이 선처해준 거야.

솔직히 1,200달러 내고 카메라에 욕할 수 있다고 하면, 지갑 벌릴 메이저리거가 한둘이 아닐 걸?

브라이언의 말에 의하면, 원칙적으로는 이보다 벌금이 더 나와야 정상이나. 워낙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어느 정도 감안해서 디스카운트 해준 거라고 하던데. 거참 고맙기도 하구만.

‘시원하게 욕한 덕분에 속은 후련하니까, 벌금은 달게 내야지. 또 욕 덕분에 더 진실성 있게 여겨졌다고도 하고.’

그냥 흥분감에 되는대로 뱉은 거기는 한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내가 뱉은 선 오브 비치. 해변의 자식에서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진다면서 아주 좋아하던데?

그 덕에 날 욕하거나, 은근히 의혹을 부추겼던 언론과 안티 팬에게 개자식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고 말이야.

개자식이 아니라, 해변의 자식 아니었냐고? 아냐, 사실 개자식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정확했던 영어 발음일걸?

얼마나 제대로 단어를 씹어서 뱉었는지, 아주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

“반박은 없지? 지금까지도.”

“없지, 있을 리가 있나.”

그토록 후련했던 레드삭스전 이후로 3일이 지났다. 3차전을 패배하면서, 시리즈는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로 끝났고.

지금 나는 보스턴이 아니라 캐나다, 토론토에 있지. 4연전 중 두 경기가 끝났고 말이야.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요구했던 반박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증거가 없고, 반박거리가 없는데, 뭘 어쩌겠어?

그냥 공개된 검사 결과를 물고 늘어지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하는 거지.

‘그걸로 끝난 거지, 이번 게임은.’

브라이언은 단언했다.

상대는 최악의 대처를 했다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걸 회피한 거니까.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지. 의혹을 제기했던 이들이, 정작 내 도발에 어버버 해버리면서, 대중들에게 신뢰성을 잃어버렸으니까.

“하긴 Kill Shot이 제대로 들어갔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하겠어. 아무튼 속이 후련하겠네.”

“후련하지, 후련하고 말고.”

쉽게 말해서 디스전이라고 보면 된다. 난 내 랩을 말끔하게 마친 뒤, 상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런데 상대는 나를 향해 디스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말만 도돌이표처럼 중얼거리며 트집이나 잡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리스너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어떤 판정을 내릴까?

거기다가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대놓고 내가 도발했는데, 거기에 반박을 못한다? 그걸로 끝이다.

MC Suck이 멋들어진 마이크스웩으로 상대를 다 발라버린 거지.

‘물론 저쪽은 끝났다고 생각 안 하겠지만.’

추잡하게 바짓가랑이 잡는 것만 봐도 그렇지. 어떻게든 계속 이슈를 이어가려는 것 같은데. 난 이제 거기에 놀아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럴듯한 반박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그저 공허한 개소리에 불과할 테니까.

뭔 상관이겠어. 내가 KO로 이겼는데. 패배자들의 발악따위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지.

‘물론 혹시 모르니, 철저하게 확인 사살은 해야겠지만.’

경기 직후 다시 도핑 검사를 받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병 안에 오줌을 갈겼지.

그 검사는 적에게 보내는 마지막 확인사살이 되어줄 거다.

도핑 검사 이후에 다시 약 빨고 퍼펙트 한 거라는 반박 역시 틀어막아버릴 테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네. 진짜 쌓인 게 많기는 많았단 말이야.’

두고두고 쌓아뒀던 화를 이번 기회에 다 토해내서 그런가,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잔잔하고, 훈풍이 불었다.

“Suck, 근데 너 괜찮은 거 맞아?”

“안 괜찮지 당연히. 뒤질 거 같다니까?”

“등판 걸러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폼이 떨어진 거야. 사이클도 내려갔고. 살살 맞으면서 올려야지.”

물론 요동쳤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이젠 반대로 육신에 혹한이 불어 닥쳤지만 말이야.

리바운드를 예상하기는 했는데, 진짜 장난이 아니네.

등판 다음 날부터 몸에 오한이 들더니, 이젠 누가 꼬집어도 몇 초 뒤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몸 전체가 둔해졌다.

단순히 삭신이 쑤시는 정도를 넘어, 감각 자체가 죄다 맛이 간 거지. 마치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이럴 땐 그냥 닥치고 푹 쉬면서 감각을 올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다행히 대처 방법은 잘 안다.

밥 잘 먹고, 물 많이 마시고, 푹 쉬고, 서서히 폼을 올리는 것이지. 의사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말이야.

그것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죄다 끌어서 쏟아 부었는데. 몸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

‘앞으로 한 두 경기 정도 두들겨 맞다보면, 다시 서서히 올라오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보다 더 최악도 예상했는데, 이만하면 나쁘지는 않지.

솔직히 한 경기 동안 이만큼 뽑아먹었으면, 두 경기 정도는 기꺼이 바쳐야지. 그래도 남는 장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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