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이슈를 몰고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아마도 몇몇 이들은 애스트로스와 그들이 저지른 치팅, 그리고 그들에게 쏟아지는 빈볼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올해의 시작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며, 야구계를 휩쓴 스캔들이니까.
허나 작년부터 올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이슈는 똑같았다. 고유석, Go You-Suck, 항상 그 이름이지.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잇따른 비난에도 덤덤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Go, 그는 정말로 무고할까?>
<파인타르 때와 똑같다? 결국에는 Go가 이겨낼 것!>
<파인타르와는 다르다! 확실한 물증이 잡혀버린 Go!>
별다른 포장이나 조명이 없더라도, 성적만으로 충분히 자극적인 선수이나, 그런 선수에게 도핑이라는, 아주 매혹적이면서 눈길을 사로잡는 글자가 추가됐으니, 그 폭발력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직전까지 새로운 신기록을 수립하며, 모든 관심을 빨아들였기에, 더욱더 크게 터질 수밖에 없었고.
사실 이미 한 차례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다. 작년 파인타르 사건이 대표적이지.
당시 라이징 스타로 떠올라, 정상을 향해 쭉쭉 날아가던 고유석의 발목을 잡은 사건이니까.
고유석은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다. 그저 당당하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런 모습은 많은 말들을 낳았다. 그가 의도한 것처럼 당당함에 만족하며, 오히려 두터운 믿음을 가진 이들도 있는 반면.
도핑이라는 큰 문제에 걸린 주제에 뻔뻔하고 나선다고 욕하는 말들 역시 적지는 않았으니까.
<의혹 속에서 시즌 9번째 등판을 가지는 고유석,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점점 더 달아오를 뿐, 식을 줄 모르는 분위기 속에서 다가온 등판에 사람들은 감히 예측하고 나섰다.
[#RedSox]
[애써 Cool한 척하지만, 솔직히 속은 말이 아닐 거야. 이번에는 쉽게 잡겠네.]
└덤덤한 척해도 엄청 쫄리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도팡이 딱 잡힌 건데.
└설사 도핑이 아니라고 해도, 언론이랑 인터넷에서 이 정도로 떠들면, 멘탈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지.
[#A’s]
[등판 앞두고 마음고생 심할 텐데, 이번 경기는 좀 못해도 인정해야지.]
└잘하면 이상한 거야. 평소처럼만 해도 대단한 거고.
└뭐, 신기록은 이미 세웠으니까, 실점해도 괜찮아.
└혹시나 홈런을 맞더라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 실투가 계속 나올 텐데.
아마도 정상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당당하게 나오고는 있지만, 분명 그 속은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라고.
기존에도 그를 싫어하던 이들은 물론, 열렬히 응원했던 팬들조차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도핑이라면 두려움에 질릴 것이고, 도핑이 아니라면 억울함에 몸부림칠 테니까.
거기다 강력한 타선을 가진 레드삭스가 그 상대인 만큼, 몇몇 전문가들 역시 이번 시즌 처음으로 고유석이 된통 당할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2구째, 아웃! 1번타자 무키 베츠를 손쉽게 잡아내는 Go! 4회에도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는군요!
-오늘 무브먼트가 아주 대단하네요. 평소에도 리그 최고를 자랑하는 선수인데, 오늘은 그보다 더합니다. 패스트볼의 회전수도 2700대로 잡히고 있고요.
경기 시작 직후, 그런 예측들은 아주 보기 좋게 박살났다.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올해 그 어떤 경기를 꺼내더라도 부족할 만큼, 파괴적인 공을 던져댔으니까.
[킹유석 오늘 좀 쎈 YAK 맞은 듯?]
-구위 지리네, 20삼진 때보다 더한 느낌임
└상남자ㅇㅈ 여론 X까고 시원하게 한 대 빨고 나왔네
└이게 야구냐? 슈퍼로봇대전이지ㅋㅋ
└저거 막으려면 하는 수 없다, 레드삭스도 오티즈랑 매니 라미레즈 다시 데려와야함
└징계 전 마지막 경기라고 오늘 제대로 빨았네ㅋㅋㅋ
허나 그토록 폭압적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고유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평소처럼 환호나, 박수, 찬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아냥으로 가득했으니까.
펜웨이 파크의 관중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고 말이다.
저게 정상적이라고? 그럴 리가. 경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날이었다면, 그저 오늘 폼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겠지만, 이미 의혹이 나오고, 의심이 생겼으니 생각 역시 다른 방향으로 잡힐 수밖에.
물론 오히려 더욱더 강력하게 나오는 모습에, 그것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결백한 거 아님?]
-켕기는 게 없으니까 더 당당한 것 같은데
└ㅈㄹㅋㅋㅋ 애초에 성적 자첵가 말이 안 됐음
└혐유석빠들 쉴드 좀 그만쳐라 누가 봐도 약빨인게 뻔한데 이걸 부득부득 우기네
└느그유석 오늘이 마지막 경기니까, 실컷 봐두셈ㅋ
다수의 여론에 밀려 결국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걸렸으니, 그냥 대놓고 도핑하고 나온 것이라는, 조금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말이다.
[#Rangers]
[얜 진짜 좀 뻔뻔하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대놓고 맞고 나왔는데? 역시 뭔가 이상하다 했다니까, 진짜 약이었네.]
└저번에 파인타르 터졌을 때, 그건 줄 알았더니. 알고보디 더 심한 거였어.
└그때 온갖 멋진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이 새끼도 더러운 치터새끼였네.
└로이더 주제에 기록 세워놓고 꼴같잖게 굴더니, 이제야 진실이 밝혀지네.
└어차피 이 경기 끝나면 영영 거질 테니까, 최후의 만찬이라도 즐기라고 해.
사실 아직은 그저 의혹에 불과하고, 명확한 증거 역시 잡힌 것이 없다. 어디까지나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뿐.
허나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정해놓고 치러지는 마녀사냥처럼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심판대 위에 세웠다.
욕설을 뱉거나, 침을 뱉는 것 역시 주저하지 않았고 말이다.
단순히 도핑 때문만은 아니다. 제 아무리 잘나가는 슈퍼스타, 스포츠 스타라고 해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았으니까. 그간 꾹꾹 놀러왔던 악심을 터트리게 된 셈이겠지.
또한 그와 그를 중심으로 한 애슬레틱스의 광풍을 위협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깊이 바라고 있었고.
부디 이번 기회에 이런 여론에 압사당해,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를.
-스트라이크 아웃!
허나 그런 바램과 눈동자에도 고유석은 그저 더욱더 우뚝 솟아올랐다.
-You Suck!
굳건하게 버틴 팬들에게 화답하듯 그 역시 떳떳하게 오히려 더욱더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3이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신을 향한 말들 따윈 아무런 신경도 안 쓴다는 것처럼 지워버렸다.
그리고 4회에도 계속해서 그런 페이스를 유지했고, 평소처럼 타자들을 예리한 피칭으로 찔러 죽였다.
그것이 그를 지켜보고 욕하던 이들에게 묘한 불쾌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던지는 고유석, 그의 칼끝이의 방향이 레드삭스의 타선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아웃! 또다시 삼진! Go!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피칭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판별되지 않은 의혹들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죠. 정신적으로도 완성된 선수입니다.
마치 자신들인 것 같았으니까. 어디 실컷 떠들어 보라는 것처럼, 그런 말들에 자신이 눈 하나라도 깜짝할 것 같으냐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분명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도발은 없었다.
삼진 두 개와 범타 하나로서 4회 역시 셧아웃. 그 이상도 이어갈 수 있을 법한 페이스.
그것에 마치 촛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사람들이 경기에 몰려들었고.
-3구! 쳤습니다! 유격수가 잡아서 1루 송구! 아웃! 5회 말 역시, 첫 타자 J.D. 마르티네즈를 수월하게 잡아내는 Go!
-본격적으로 시작이네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예, 투구동작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전매특허죠. 오늘 예사롭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부족하다는 듯, 이어진 5회에서도 고유석은 그저 계속해서 불을 질렀다. 주변의 모든 나방이 모이길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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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확실했다.
절대로 정상적인 페이스는 아니야. 애초에 정상일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사이클의 마지막이군.’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개막 이후, 지금까지 꿋꿋하게 이어왔던 사이클의 마지막이 오늘이라는 걸.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제 드디어 그 끝이 보이는 거겠지.
물론 스스로 적절하게 제어해서, 다시금 여력을 남긴다면, 가늘게나마 더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오늘 다 써버리는 게 더 낫지.’
오늘 내 목표는 7이닝 10탈삼진 같은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다. 남들은 그게 왜 그저그런 것이냐고 뭐라고 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래.
그 이상, 그보다 훨씬 더 이상을 찍어야 했으니까. 그러니 괜히 제어하고, 아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트라이크!”
아예 밑바닥을 찍는 게 낫지.
그렇기에 아낌없이 힘을 퍼부었다. 그렉이 가르쳐줬던 경기 운영법의 정반대인 셈이지.
적당히 약한 타자들을 적절하게 완급조절해서 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1번부터 9번까지 죄다 풀파워로 때려잡는 거니까.
허나 그런 과도한 힘을 퍼붓는 만큼···
“스트라이크!”
그 효과는 확실하다.
다시 89마일. 높게 찍힌 하이 패스트볼에 또 한번 최고구속이 찍혔다.
오늘은 큰 의미가 없지.
애초에 최고구속이 아닌 걸 꼽는 게 더 빠르니까 말이야.
5번타자 잰더 보가츠.
이쪽도 사실 만만찮은 놈이다. 유격수면서 아주 멋들어진 타격을 자랑하는 놈이니까.
5번이라는 타순이 아까운 수준이지. 클린업 트리오의 말석이기는 하나, 3번이나 2번처럼 타자진의 중심에 서더라도 어울리는 수준이니까.
그렇기에 레드삭스의 타선이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것이고.
“스트라이크 아웃!”
물론 오늘은 그딴 거 없다.
4구째 슬라이더가 날아들자, 그는 가만히 지켜봤다. 아니, 질려 버렸다고 하는 쪽이 더 맞겠지.
무언가에 크게 질린 사람처럼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잰더 보가츠만이 아니라, 레드삭스 타자들 전부 다.
‘6번 미치 모어랜드. 이번 시즌 타격감이 좋다, 오늘도 괜찮은 것 같고.’
미치 모어랜드.
오늘 제법 폼이 좋아 보이더라.
아까 전에 첫 타석에서 스윙이 제법 매섭더라고,
물론 초구 아웃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 경기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상위권이지.
다만 지금의 위협감은 오히려 다른 타자들보다 훨씬 덜했다. 다른 놈들이 삼진이라도 당하면서 공을 좀 지켜봤다면. 그는 아니니까.
그것을 증명하듯.
“스트라이크 아웃!”
그는 한참이나 멀어져버린 타이밍을 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다. 헛스윙 삼진.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볼이지. 오늘 좀 잘 받는단 말이야.
그것으로 5회 말 종료.
이제 경기의 반환점을 지났다. 그런 상황에서 펜웨이 파크의 풍경은 어떨까?
‘입술을 잘근잘끈 씹고 있네.’
정답은 ‘X같다’이다.
내가 X같다는 건 아니고.
이 경기장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지.
나를 포함해서 우리 선수단이랑 스태프들, 그리고 충성스러운 레이더스까지 포함하면.
“You Suck!”
“Hell Yeah!”
흥분하고 행복한 사람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절대다수는 레드삭스잖아?
그런 절대다수가 X같으니, 펜웨이 파크도 X같다고 해야 맞겠지.
그런 펜웨이 파크를 쭉 훑은 뒤, 조금은 미소를 머금은 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런 내가 밉게 느껴지는 건지, 홈팬들은 더욱더 눈을 부라렸고 말이다.
‘눈빛 한번 살벌하네. 이야, 조금만 더 가면 총으로 쏘겠는데?’
다음 등판부터는 방탄복이라도 입고 올라야겠어. 물론 다음 등판 때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겠지만.
그들만이 아니라, 저 카메라, 저 중계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미친놈이 실실 쪼갠다고 욕 한번 옴팡지게 하고 있을 거야.
내가 X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정작 반대되는 경기를 보고 있으니, 속이 말이 아니겠지.
‘얼마나 몰렸으려나.’
잘은 모르겠다. 아마 엄청나게 몰렸겠지. 방송사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거고.
이쯤되면 중계권료 좀 나한테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시청률 다 모아줬잖아? 그럼 나한테도 콩고물 좀 떨어져야지.
뭐, 내가 그런 콩고물이나 주워먹자고 지금처럼 지랄하는 건 아니지만.
“타자들 눈치는 어때?”
“별달리 주의할 타자는 없어. 솔직히 있어도 오늘 너한테 통하겠느냐 싶긴 하지만.”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꼼꼼하게 파악해. 막판에 뜬금포 나오면 X같잖아?”
“그래야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공 받을게.”
같이 덕아웃으로 돌아온 브루스는 내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이 빡 들어갔군. 아주 보기 좋아. 응당 포수라면 이래야지. 마음에 들어.
사실 얘만 그런 건 아니다.
선수들 죄다 그래. 코치는 물론 심지어 밥 멜빈, 우리 감독님까지 말이야.
눈치를 밥이랑 같이 말아서 김치에 싸먹은 게 아닌 이상에야, 오늘 내가 심상치 않다는 걸 모를 수가 없긴 하지.
“퍼펙트 말이야, 만약 오늘 해버리면, 진짜 장난 아니겠지?”
그런 모습들이 왠지 좀 재밌어서, 장난스럽게 대놓고 언급하니, 다들 몸을 움찔움찔했다.
아니, 다들 왜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있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이미 두 번이나 해본 건데.
내 말에 살짝 얼어붙었던 브루스는 지그시 쳐다보는 내 눈빛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겠지, 오늘 같은 날 정말로 해버리면, 아마 반응이 대단할 거야.”
그치, 엄청나긴 할 거야.
약빤 놈이 퍼펙트를?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놓고?
어우, 욕 엄청할 걸?
야구를 모욕한다느니, 메이저리그를 웃음거리고 만들었다느니, 당장이라도 영구제명하고 바로 퇴출시키자고 난동을 부리기도 할 거다.
물론 그런 여유 따윈 주지 않을 생각이다. 저~기 벤치 한쪽에 고이 모셔놓은 종이쪼가리가 있잖아? 손에 들어왔으니, 바로 써먹어야지.
“오케이, 그럼 퍼펙트나 해보자.”
그렇게 말하자, 브루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동네 마실이라도 나가자고 말하는 것처럼 쉽게 언급했으니, 어이가 없기는 하겠지.
아니지, 우리 동네가 오클랜드라는 걸 감안하면, 동네 마실보다도 훨씬 더 쉬운 뉘앙스이기는 하네.
오클랜드에서 산책하려면 정말 큰마음 먹어야 하니까.
최소한 오늘은, 퍼펙트를 거론하는 것에 그 정도의 각오도 필요 없었다.
“아웃!”
초반에 3점 낸 뒤로 우리 공격은 시원찮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평소라면 타자 놈들이 자기 일도 못한다면서 타박 좀 했겠지만, 오늘은 뭐, 1점만 내도 충분하니까.
말했잖아, 퍼펙트 할 거라고.
그럼 1점이면 충분하지.
“스트라이크 아웃!”
이거 봐, 얼마나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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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금의 이 상황을, 이 분위기를, 그리고 이 두려움을.
몇 가지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내 레드삭스 팬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도 부족했으니까.
“스트라이크!”
처음에는 조롱했다.
아주 시원하게 욕했었지.
그래도 되는 선수고, 그래도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도핑에 한해서는 레드삭스가 할 말이 없다고는 하나, 원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에는 관대한 법이니까.
“볼!”
그다음에 찾아온 건 분노였다. 그런 추악한 쓰레기에게, 욕이나 실컷 퍼붓고 조롱이나 듬뿍 토해내야 마땅한 놈에게 타자들은 또다시 쓰러졌다.
티비 화면으로나마 보았던 지난 경기처럼, 너무나도 손쉽게,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가볍게.
그 분노에 욕설이 더욱더 터져 나왔고, 그 감정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스트라이크!”
“우우우우우우우!”
“마운드에서 꺼져!”
“X이나 까라 쓰레기 같은 새끼야!”
“You Mother Fuc-”
“약쟁이 새끼, 약 맞고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너 같은 새끼는 영구제명이나 쳐 당해버려!”
지금도 유지되고 있었고.
6회 말도 사라졌었다.
또다시 KKK였지.
하위타선이니 어차피 별다른 기대는 없었는데.
“스트라이크 아웃!”
그나마 기대해봄 직했던 7회 말도 별로 다르지는 않았다.
“무키···”
“저번 경기도 저러더니, 그냥 안 되는 건가···”
“상성이 안 맞는 거야.”
“아니, 애초에 저렇게 던지는데··· 뭐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자신 있게 올해 MVP를 수상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무키 베츠는 이상하게 저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는 했다.
그래서 9이닝 20K를 막지 못했었지, 근데 아무래도 오늘 역시 그는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저 괴물의 폭주를.
“스트라이크!”
그때부터였다. 레드삭스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던 그들의 불은 하나 둘씩 꺼진 것은.
“···X발···”
“지칠 때가 됐을 텐데···”
“약을 뭐, 얼마나 쎈 걸 처맞은 거야?”
“저러다 심장이라도 터졌으면 좋겠네.”
저 추잡한 놈을 펜웨이 파크, 저 마운드라는 이름의 사형대 위에 세워서, 집행인처럼 멋들어지게 목을 치겠다던 원대한 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그들과 달리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투수에, 그 압도적인 피칭에, 이제야 깨달았으니까.
마운드 위의 저 맹수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분노하고 있었다는 것을.
“X새끼, 제대로 작정했네.”
“막판에 한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레이더스인지 뭔지, 저 X같은 놈들 우르르 올 때부터 이상하다 싶더라니.”
“욕 좀 덜 할 걸 그랬나··· 단단히 빡친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처럼 조금은 가벼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표정에는 언제나처럼 웃음기가 감돌았고 말이다.
흘끔 경기장을 훑으며 걷는 걸음걸이나, 자신들을 조롱하듯 싱긋거리던 미소 역시 그냥 평범했지.
“스트라이크!”
허나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그렇게 조금은 가벼운 가면으로 자신의 울분을, 들끓는 진노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
“스트라이크 아웃!”
스스로의 감정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의 피칭에는 그런 분노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는 것이.
이제는 똑똑히 보였다.
앤드류 베넨틴드 역시 세 번째 타석마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는 귀신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누구도 타박할 수 없었다.
그를 질책하거나 응원해줘야 했을 팬들, 관중들 역시 이미 피가 차갑게 식어버린지 오래였으니까.
경기장을 에워쌌던 열기가 지나간 뒤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오직 저 멀리, 그라운드의 한 가운데, 마운드 위에서만 온기를 찾을 수가 있었지.
따스한 온기보다는, 뜨거운 열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스트라이크!”
이름처럼 빨갛게 타올랐던 레드삭스는 이미 꺼트려졌는데도, 그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거대한 산불처럼, 주변의 꺼트려진 불씨를 먹이삼아 하나하나 씹어 삼키며, 더욱더 거세게 타올랐을 뿐.
“아웃!”
3번타자 헨리 라미레즈가 아웃으로 물러났다. 가벼운 내야뜬공. 투수 본인이 직접 잡았지.
그렇게 7회 말이 끝났지만, 전광판에는 여전히 0이 가득했다. 안타에도, 점수에도, 사사구에도, 실책에도.
차갑게 얼어붙은 펜웨이 파크에서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