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약 이틀에 걸친 도핑 및 신체검사 이후, 약간의 일정 조정이 있었다.
“굳이 쉬어야 해요? 솔직히 별 상관없는 것 같은데···”
“신체적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 피로도 생각해야지. Go 너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검사 준비하느라, 제대로 준비가 안 됐을 거야. 거기다, 채혈도 했다며? 일단은 조심해야지, 웬만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등판 준비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틀 정도는 오직 검사에만 집중해서, 시간을 날린 것이나 다름없었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아래 까고 오줌 눈다는 게, 아무리 철면피라고 해도 덤덤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
내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 같지만, 구단으로서는 날 염려할 수밖에. 거기다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기록도 걸려 있고. 굳이 부담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관리는 하자는 게 상부의 스탠스야.”
“54이닝이니까요.”
“딱 한 경기만 잘 치르면 못해도 타이기록이야. Go, 너도 조금 욕심은 있잖아?”
“조금이 아니라 많이 있죠. 엄청나게 많이.”
“그래, 솔직해서 좋네. 그러니까, 그 욕심을 위해서, 더 완벽하게 가다듬자.”
스탯 관리도 하기는 해야지.
기록을 위한 기록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굳이 온전치 못한 준비 상태에 마운드로 올라, 괜히 아까운 기록을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은근하게 묻는 스콧 에머슨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욕심? 솔직히 X나게 있지.
내가 작년에 53.1이닝 찍고 트라웃한테 홈런 맞았을 때 욕을 얼마나 했는데.
‘다행히 따봉도 날려서, 한국 외에서는 잘 포장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억장이 무너지기는 했지.’
나 욕심 없는 사람 아니야.
내가 얼마나 탐욕스러운데.
‘브라이언이 대충 13일부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했지.’
브라이언은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시기를 5월 13일 전후로 예측했다.
지금도 약간의 찌라시 정도는 돌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언론에서 다루는 건 그즈음일 거라고 했지.
‘신기록 달성하고 딱 3일 정도 영광을 누릴 수 있겠구만. 아, 500삼진도 있기는 하네.’
삼일천하인가?
아마 한동안은 떠들썩할 거다. 역사적인 기록이고, 충분히 자랑할 만한 마일스톤이 달성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 예측대로면 딱 3일 정도만 유지되겠지. 그 뒤부터는 물어뜯기 시작할 거고.
의혹이 터진 순간부터, 기록이고 나발이고, 죄다 뒷전으로 밀려날 테니 말이야.
물론 그런 분위기 역시 오래가지는 않을 거고. 준비를 착실하게 해뒀으니. 살점 조금 내주고 바로 맞받아치겠지만.
‘이번에 못하면, 기록 달성해도 주목은커녕 욕이나 얻어먹겠네.’
그렇다고 해도, 한동안은 의혹이 가시기 전까지, 내가 순수하게 축하받을 수 있는 마지막 경기일 테니까. 착실하게 준비해야겠지.
애스트로스라, 기록 달성하기에는 딱 좋다고 할 수 있겠어. 작년에는 레인저스가 대주더니, 이번엔 애스트로스인가?
이상하게 우리 텍사스 친구들이 나한테 참 고맙게 군단 말이야. 진짜 니들밖에 없다. 니들밖에 없어. 사랑한다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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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하는 건 13일 전후로 예측됐지만, 소문은 벌써부터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다만 약간은 정보가 느렸지.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사실은 도핑 덕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 다시금 도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스타급 플레이어가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으며···
아직은 실체도 없고, 그저 뜬소문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그저 그런 타블로이드지가 아니었기에, 단순히 찌라시 수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게 날 노리는 건지, 아니면 로빈슨 카노를 노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슬슬 기자들의 입이 열리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사람들이 그것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고.
“한동안 검사니 뭐니 바빴으니까, 최대한 폼을 올려보죠.”
“예, 그래도 덕분에 푹 쉬어서 체력은 쌩쌩할 테니, 감각만 올리면 되겠어요.”
오클랜드로 돌아온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제야 진지하게 등판 준비에 나섰는데.
그렇게 평소처럼 도착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전까지는 베테랑이나, 구단에서 미리 언질 받은 코치진 정도만이 알고 있었다면, 이젠 그 외의 다른 선수들도 은근히 나를 봤으니까.
내가 받은 검사가 어떤 것인지, 이제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Suck 너도 참 고생이다.”
“내가 Suck처럼 고생하기 싫어서 일부러 지금 성적 유지하는 거야. 사실 더 잘할 수 있거든.”
“그건 좀 개소리고.”
“이번엔 뭐, 퍼포먼스 없어? 작년에 그 멋들어진 스트립쇼 같은 거.”
“뭐, 직접 배 째고 장기 보여주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런 게 있을리가요.”
“···왜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하긴, 말이 곱게 나오면 이상하기는 하겠네.”
그래도 다들 나를 의심하거나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안쓰럽다는 반응이었지.
내가 이런 의혹에 시달린 게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진짜 더럽게 귀찮다는 걸 다들 알아주는 거지.
이런 반응을 보면 확실히 내가 이 팀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기는 한가봐.
“미안해 Suck,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했을 텐데, 괜히 귀찮게 했네.”
“넌 다 필요 없고, 목소리만 좀 줄여라.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내가 원래 성량이 좀 커. 그래서 엄마가 테너 시키려고 했었다니까?”
특히나 과한 호들갑을 떨며, 모두에게 내 검사 사실을 알리고, 팀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브루스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모습이었고 말이다.
다만 개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아예 기가 꺾인 건 아닌 것 같네. 다행이구만. 내 포수가 축 늘어져서 대가리 박고 다니는 건 보기 싫으니까.
“그리고 다음에는 진짜 한번 식사 한번 하자. 일 다 끝난 다음에, 원래 음식은 편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거든.”
“내가 살게. 롤렉스도 몇 개나 받아먹었는데, 그거까지 Suck 너한테 얻어먹는 건 좀 그렇지.”
“하긴, 내가 준 롤렉스 값만 다 합쳐도, 니가 나한테 평생 식사 대접해도 모자라기는 하겠네.”
진짜야.
올해도 롤렉스 하나 타갔거든. 20삼진 하면서 말이야.
사실 원래는 퍼펙트게임 달성했을 때만 포수에게 롤렉스를 주는 게 전통인데. 내가 워낙 아량이 넓어서 어쩔 수가 없어.
그 덕분에 졸지에 브루스 얘는 연봉은 팀내 꼴찌 수준이지만, 롤렉스는 양손 팔목에 둘둘 걸칠 수 있게 됐고.
“그러니까, 식사는 됐고, 공이나 잘 받아. 다음 등판 중요한 거 알지?”
“알지, 저번처럼 포구 미스하거나 하지는 않을 게.”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말고. 일부러 넘어가 줬더니, 니가 먼저 얘기하냐.”
브루스는 꽤나 결연한 표정을 했다. 녀석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겠지.
저번에 선수들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얘를 멍청이로 매도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띨띨한 녀석은 아니니까.
다음 등판에서 챙길 것들을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는 것 정도는 얘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거다.
“딱 7이닝만 하자.”
“7이닝? 그 이상 안 하고?”
“더 멋진 건 그다음에 하려고. 내가 그림을 좀 그리고 있거든.”
“···대충 뭔지 알 것 같기는 하네. 오케이, 7이닝 열심히 잘 받을게.”
다만 나는 푹 쉰 것 치고는 적당히 짧게 끊을 생각이다. 7이닝이 짧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약간의 여력을 비축해둬서, 확실하게 터트릴 타이밍이 따로 있거든.
‘뭐, 7이닝 무실점만 해도 터지긴 확실하게 터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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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릿지 타임즈에서도 협력 의사를 보였습니다. 예, 어느 정도는 자제하겠다고 하더군요.”
-다행이군요, 연고지역에서도 논란이 일어난다면, Go에게도 정신적인 피로감을 줬을 텐데, 애슬레틱스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먼저 나서야죠. Go는 저희 선수니까요.”
빌리 빈은 익숙한 목소리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협조적인 말을 이어나갔다.
당연한 일이겠지, 자신의 선수가,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에이스가 걸린 일이니까.
애슬레틱스의 현재는 물론, 미래도 모두 다 그에게 걸린 것이나 다름없기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이 ‘악마’, 스캇 보라스와의 동맹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FA나 연봉조정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선수이기에, 애초에 지금 당장은 부닥칠 거리가 없기도 하고.
-하하, 그렇겠죠. 그래도, 구단 측에서 어떤 걱정을 품고 계신지는 잘 압니다.
다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스캇 보라스의 말처럼, 약간의 걱정은 모두 다 공유하고 있었다. 앞선 사례들이 있었으니까.
오클랜드와 약물은 떼어놓을 수가 없는 사이다. 수많은 스타들이 연루되었으니까.
약소한 팀의 자금 사정 덕분에, 대부분은 다른 팀으로 날아간 선수들이긴 하나.
어쨌든 오클랜드 역시 꽤나 몸살을 앓아야 했지. 그런데 또다시 그런 문제가 터진다면. 그래서 어쩌면 팀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슈퍼스타가 날아간다면.
애슬레틱스라는 팀의 이미지는 오직 약물, 그것으로만 머무르겠지. 점점 꽤나 급진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인기도 바닥을 내리찍을 거고.
‘그런 선수는 아니지만··· 마크 맥과이어, 지암비 형제, 칸세코, 테하다. 다들 그런 선수가 아니었지.’
그렇기에 만약의 걱정을 접을 수가 없었지만, 스캇 보라스는 꽤나 당당한 목소리로 떵떵거렸다.
절대로 애슬레틱스와 빌리 빈, 그가 걱정하는 종류의 일은 없을 거라고.
그가 저토록 소리칠 정도면, 최소한 에이전시가 보기에도 거리낄 게 없다는 뜻이겠지.
“도핑 검사는 언제쯤 나온다고 합니까?”
-일단은 시일이 걸립 겁니다. 혹시나 모를 반론 제기도 모두 막기 위해, 가장 철저하게 검토해야 하니 말입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구단 측에도 언질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스캇 보라스와 그의 회사가 구단과 아주 완벽하게 협력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 그렇겠지. 혹시라도 의료기록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가, 향후 계약에서 걸림돌이 되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명색이 메이저리그 구단이, 에이전스가 주는 대로 ‘언질’이나 받는다는 것이 말이다.
허나 선수에게 강압적으로 의료기록이나, 검사를 요청할 수는 없기에,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구단 역시 대대적인 법적 조치에 나설 계획입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물론입니다. 선량한 선수를 음해하는 행동을 좌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것이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법무팀을 비롯, 그들과 관련된 여러 로펌에서 대대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이전부터 들려왔다. 다만 그 칼끝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몰랐을 뿐, 이젠 아주 확실해졌지.
단순히 선수를 위한다는 선량한 마음만 있는 건 아니리라.
아무리 구단에겐 악마, 선수들에겐 천사로 통하는 스캇 보라스라고는 하나, 그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맨, 사업가니까.
물론 빌리 빈 자신과 애슬레틱스 역시 비즈니스맨이고.
둘 다 목적은 같은 셈이지.
“최대한 준비해.”
“언론과 대립하는 것이 옳을까요?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어차피 Go의 의혹이 터지는 순간, 언론과는 무조건 적이 돼야 해. 그런 상황에서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보다는, 보다 더 확실한 입장을 고수해서, 서수를 잡아야지.”
보라스가 선수는 확실하게 지킨다는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더욱더 굳건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애슬레틱스 역시, 최소한 우리가 품은 선수는 꼭 지킨다는 듯한 이미지를 얻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빌리 빈 그도 잘 알았다. 선수들 사이에서 애슬레틱스, 오클랜드라는 팀이 어떤 이미지인지.
돈도 없고, 가난하고, 절대로 오기 싫은 곳이지. 커리어에서 거쳤다 가는 곳 중 하나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으려면, 돈은 없지만, 최소한 구단의 선수는 확실하게 지킨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향후의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Go를 지켜서, 그의 마음을 사는 것도 중요하나, 그 이상의 것들도 봐야 한다는 뜻이지.
다만 그것을 위해선, 언론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하고, 비록 승리하더라도, 그것을 빌미로 앙심을 품어, 계속해서 외부 여론을 흔들어, 애슬레틱스를 공격하려 들 거라는 것이 문제지만.
‘어차피 팀이 잘나가기 시작하면, 언제나 안팎에서 흔들어. 이미 각오해야 하는 일이지.’
애슬레틱스가 윈나우, 그것도 우승에 도전한 순간부터, 그런 종류의 공격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이브릿지는 우리 편에 가담했다는 건가?’
한 가지 밝은 소식은, 베이브릿지, 그러니까, 오클랜드 및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같은, 주변 연고지역 내의 언론은 함께 하기를 선언했다는 것.
그들 역시 지역 내의 최고의 스트라고 할 수 있는 Go가 무너지길 원치 않았다.
당장은 그의 의혹이 꽤나 달콤하게 여겨질지라도, 최소한 그가 오클랜드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그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은 두고두고 손해가 될 테니까.
굳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행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거겠지.
그것으로 오클랜드 역시 착실하게 전투준비를 마쳤고, 그보다도 앞서, 축제의 준비 역시 한창이었다.
“마케팅 쪽은 어떤가?”
“최대한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한 일이니, 차라리 이참에 다 뽑아먹겠다는 뜻이죠.”
이번 사태에 애슬레틱스 내에서 가장 큰 혼란을 겪은 부서가 있다면, 단연 마케팅이다.
Go의 신기록 달성과 500삼진을 맞이해, 각종 행사 및 이벤트를 착실하게 준비했었는데.
그게 고작 며칠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받았으니까, 팀장은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었지.
그래서인지, 그나마 파도가 잔잔할 때, 최대한 모든 행사와 이벤트를 마치겠다는 듯 굴었고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Go가 예정대로, 홈에서 기록을 달성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지만···
“그래, 그렇겠지. 최대한 지원토록 해.”
최소한 애슬레틱스 내에서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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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이 네가 고생이 많네. 한국에서도 별 같잖은 놈들이 너 가지고 난리인데. 어휴··· 미국은 한술 더 뜨네.
“워낙 잘나가니까, 배알 꼴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제 걱정은 마세요.”
-마음고생 심할 텐데,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대니얼 솜씨가 너무 좋아서, 매번 두둑하게 챙겨 먹고 있으니까, 그거 걱정은 마세요. 하물며 메이저리거인데 밥을 굶을까.”
부모님께도 미리 연락을 드렸다. 잠깐 까먹고 있었는데, 사실 이쪽이 제일 중요하지.
얼마나 놀라시겠어?
미국에서 잘나가던 아들이, 갑자기 약물이다 뭐다 온갖 소리가 나오면 말이야.
아마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시겠지. 항상 내 생각, 걱정뿐인 분들인데, 그런 소중한 아들이 사람들에게 욕먹는다면 말이야.
미리 전해드리는 게 맞는데, 내가 워낙 불효자식이라, 내 걱정이랑 내 준비만 하느라 조금 늦게 연락을 드렸네.
“괜히 이상한 놈들 올지도 모르니까, 한동안은 가게 문 닫는 건···”
-그건 안 돼.
“예, 그렇겠죠.”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이슈가 될 거다. 내 인기가 워낙 대단하니까.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고유석 부모님이 하는 가게라는 걸 알면, 기자나, 안티팬, 뭐 인터넷 방송인 등등.
죄다 몰려올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역시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하기는, 자식 뿌듯한 것도 뿌듯한 거지만, 본인들 일에도 진심이신 분들이니까.
평생을 함께한 가게를 잠깐 닫는 것조차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겠지.
“그러면 제 사진이라도 내리세요. 괜히 거기다가 침 뱉을라.”
-그런 후레자식 있으면 네 아빠가 가만히 있겠어?
“그러니까, 아빠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그냥 미리 내려둬요. 혹시 엄한 사고 날라.”
-그건··· 맞는 말이네. 너희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해. 괜히 신경쓰지 말고.
가장 걱정이 큰 건 아빠다.
엄마한테 잡혀 사시지만, 은근히 성격이 불같으시거든.
혹시라도 이상한 놈들이 와서 내 욕이라도 하거나, 가게에 쫙 걸린 내 사진에 몹쓸 짓이라도 하면 가만히 안 계실 걸?
괜히 그런 이상한 일에 연루되는 건 나로서 절대로 사절이었기에 제의하니, 다행이게도 이건 받아들이셨다.
웬만하면 풍랑은 피해야지.
괜히 태풍에 휘말렸다가,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그거야 당연하죠. 그리고 다음 경기는 꼭 보세요. 저 기록 달성할 거니까.”
물론 나는 태풍의 한 가운데로 들어갈 생각이지만. 폭풍우고 나발이고, 그냥 당당하게 뚫고 가야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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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시리즈는 3전 전승, 스윕으로 끝났다.
그것으로 27승 7패를 달성하며, 승률 0.794로 제대로 순항 중이지.
그런 우리와 달리, 나한테 한번 대차게 꺾인 이후, 애스트로스는 다시 회복하지 못하면서, 계속 하강 상태를 유지 중이었고.
‘휘유~ 그래도 한방은 제대로네.’
다만 1차전, 무려 12점을 몰아치며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한 차례 밟아놓길 잘했어.
기세가 회복이 안 돼서 그렇지, 파괴력 자체는 진짜 엄청나단 말이야.
“쟤들 실력도 진짜 좋긴 해. 타선이 무슨-”
“그래봤자 치터 새끼들이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애매하지.”
“Suck, 쟤들 저러다 또 살아날 거 같은데, 네가 좀 밟아주기는 해야겠어.”
우리 팀 투수들이 줄줄이 털려나가며, 엄청난 대패를 맞이했고, 스윕으로 한창 좋았던 기세가 조금 꺾이기도 했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고? 알잖아, 애스트로스가 섭취한 마약을.
‘날 이미 제외했지, 애스트로스는.’
어차피 안 되는 투수.
저번에 날 먹잇감으로 노렸다가 대차게 털린 이후로, 그들이 생각하는 고유석은 그런 존재였다.
치팅이든 뭐든, 어차피 안 되는 놈이니, 얘는 무시하고, 달관하자고.
마약이라니까, 그게.
그렇게 한번 마인드가 잡히면, 다시 회복하는 게 엄청나게 힘들거든.
“Suck 너 무슨 Bully 같다. 다들 네 눈을 안 마주치는데? 옆에 있는 나도 덩달아서 어깨가 으쓱하네.”
“그치, 내가 퉁퉁이면 넌 비실이 같은 포지션이지.”
“?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런 게 있어.”
그리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1차전이 끝나고, 2차전, 전날의 대승에 제법 사기를 회복했는데도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했지.
2차전에 안 나가서, 같이 노닥거리던 브루스도 덩달아서 그런 논외의 기분을 느낄 정도로.
내가 괜히 엄마한테 호언장담한 게 아니야. 저런 상태가 계속되는 한, 애스트로스는 절대로 내 공을 못 친다.
‘레인저스 수준까지 떨어진 거지, 내 입장에서는.’
그러니 아무리 폭발력을 보여줬다고 해도, 걱정이 될 리가 있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레인저스마냥 때려잡는 거지.
물론 이렇게 말하면 레인저스가 억울하고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그 정도의 호구가 된 셈이지.
“호오오오오오오오옴~ 러어어어어어언!”
이후 2차전은 우리가 승리했다.
5대4의 아슬아슬한 신승이었지.
그나마 애스트로스가 대승의 기세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연승을 이어왔다면,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사라졌네.
이미 나한테 숙이고 시작하는 애스트로스, 일정 조정으로 푹 쉬어서 쌩쌩해진 몸, 그리고 도핑 검사 이후 철저하게 진행된 준비로 올라온 감각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갖춰졌으니, 남은 건, 험난한 폭풍 속으로 들어가기 전, 배가 두둑하도록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