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20화 (220/316)

220화

분명히 애스트로스 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어떻게든 나를 상대로 증명하자고. 증명해서, 조금이나마 오명을 씻어내자고. 아마도 팬들도 바라고 있겠지.

한창 기세를 이어가, 전성기를 달려야 할 때, 뜬금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으니, 구단 내부에서도 날 제물로 삼아 다시 일어서길 바랄 거고.

그것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타석에 오르는 애스트로스 타자마다, 그런 생각이 표정에서 훤히 드러났으니까.

‘의지가 투철하지만, 하나를 잘못 생각한 거지.’

허나 그 바램은 잘못됐다.

자기들은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이야기 속에선 두 가지가 빠져 있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첫 번째는 그들 자신의 현재 상태로. 일단 그걸 감안하지 않았지.

야구는 멘탈의 스포츠다.

스포츠에서 멘탈이 중요하지 않은 종목이 뭐가 있겠느냐 싶긴 한데. 아무튼 정신적인 영향이 굉장히 심하거든.

잘나가고, 각광받던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된다거나.

한창 MVP급 성적을 올렸던 타자가, 한 달 내내 타율이 1할대에 머무르며 고꾸라진다거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 야구고, 메이저리그잖아?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그런 의미에서, 지금 애스트로스는 그런 멘탈적인 부문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미친 듯이 흔들고 있으니, 쓰러지지 않고 가까스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 당장 지금 삼진을 당한 에반 개티스만 봐도 알 수 있지.

배터박스에 올라, 타격에 임하는데도, 자세가 정돈되지 않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애스트로스 전체가.

“스트라이크!”

두 번째로 간과한 건, 그들이 제물로 선택한 나의 현 상황이다.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작년보다 더 잘한다는 걸.

릴리스 포인트처럼 새롭게 추가된 무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있기는 한데···

“스트라이크!”

그냥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구종의 숙련도 자체가 좋아졌지.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다양한 구종 중에서, 오랫동안 갈고닦은 것들은 몇 개뿐이잖아?

기껏해야 기존에 던졌던 포심, 슬라이더, 서클 체인지업 V1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짧은 기간 내에 장착한 것들이지. 슬로 커브도 있긴 한데, 그건 그냥 좀 제외하자. 뭔가 숙련도를 따지기가 애매하니까.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인 그렉에게 배운 커터와 투심. 리암 헨드릭스에게 배운 너클 커브. 그리고··· 누구더라?

그래, 존 와스딘. 락하운즈 투수코치에게 배웠던 쓰리핑거 체인지업과 제대로 공을 던지는 방법을 터득하고, 새로 생겨난 역회전이 강한 서클 체인지업 V2까지 말이야.

죄다 커맨드가 잘 잡히고, 위력도 편차가 있긴 하나 대부분 괜찮으며, 어느 정도는 숙달된 구종들이라 티가 안 났지만, 완벽하게 통달했던 건 아니지. 그렇기에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고.

“스트라이크 아웃!”

올해는 그런 새로운 구질의 완성도가 더 올라왔다. 기존의 것들도 더 좋아졌고.

당장 지금 8번타자로 나온 조시 레딕에게 헛스윙을 뽑아낸 슬라이더만 봐도 그렇지.

마이너 때는 주력구 중 하나였지만, 사실 메이저에선 어느 정도 보조적인 역할을 했었는데.

올해는 그런 작년보다 더 날카로워진 것이 제법 준수해졌거든. 웬만한 다른 투수의 결정구 수준으로.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개막 이후로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잘나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깨달았지.

‘그러니, 첫 전제부터 틀려먹은 거지.’

나를 잡고 자신들을 증명한다. 애스트로스의 꿈은 애초부터 잘못됐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이긴다. 한자로 지피기지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애스트로스는 자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서 계획을 세웠으니···

“아웃!”

그게 들어맞을 리가 있나.

쓰리아웃. 3회 말도 끝났다.

1회에 삼진 둘. 2회에도 삼진 둘. 3회에도 삼진 둘이네. 콩콩콩이군.

뭐, 사실 굳이 그런 이유를 세세하게 꼽지 않더라도···

“타자들 좀 어때?”

“딱히 느낌은 없었어. 한 바퀴 돌 동안, 위협적인 ᅟᅡᆺ람은 없더라. 그나마 카를로스 코레아 정도인데··· 그건 Suck 너도 알 테니까. 오늘 공 좋은데?”

그냥 오늘 컨디션 자체가 준수하기도 하고. 그러니 애초부터 애스트로스의 계획은 틀렸다. 내 계획은 옳고.

그게 전부지.

내 계획이 뭐냐고?

뭐겠어? 그냥 하나뿐이지.

“내 공이야 늘 좋지. 기복이 있는 브루스 네 타격이랑은 다르게 말이야.”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작년보단 낫잖아?”

“그렇기는 하지. 오늘 홈런이나 하나 쳐라.”

“그럼 왼손 좀 줘봐. 악수 좀 하자. 혹시 좋은 기운 받으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난 사내새끼 손 안 잡아. 징그럽게스리.”

“에이~ 팬들이랑은 자주 하면서?”

“네가 레이더스 앞에 직접 서 봐라. 거기서 거절할 수가 있나. 난 타자들이나 잘 잡으려니까, 홈런은 너 알아서 해.”

타자들 조지는 것.

내 계획은 언제나 이거다.

항상 잘 먹히는 작전이지.

이거만한 전술이 없더라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한 바퀴 돌면서 두루두루 처맞아서 그런가, 슬슬 꺾이는 것 같던데··· 이참에 뿌리를 뽑자.’

애스트로스의 멸망 정도인가?

혹시 모르잖아. 나중에 귀찮게 발목을 잡을지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그러지 못하도록 만났을 때 미리미리 뿌리를 뽑아야 안심하고 쭉 달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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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진짜 치지도 못하겠네···”

“이렇게 털리면, 밖에서 또 뭐라고 하겠어? 차라리 그때 안 했어야···”

“저 새끼는 왜 볼 때마다 더 X같아지는 거야?”

“오늘 폼도 좋아 보이던데, 텄네, 텄어.”

“어차피 안 됐던 거야, 이게 당연한 거지.”

다시 그라운드로 나가기 전. 거슬리는 말들이 알투베의 귓가에 살랑거렸다.

마찬가지로 수비를 준비하던 다른 야수들, 아니, 다른 타자들이 내뱉은 말이었지.

처음의 기세는 사라졌다.

어떻게든 해내자던 그 의지는, 폭풍의 앞의 잔가지처럼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차라리 바람 앞의 갈대라면 나았겠지. 한 번 꺾여서 나부끼더라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일어날 테니까.

허나 지금 애스트로스는 그렇지 않았다.

‘위험하지, 굉장히.’

선수단의 끈끈한 조지력과 유대감. 작년 애스트로스를 이끌었던 원동력은 거센 비바람에도 살아남아, 위기 속에서도 그들을 묶여줬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저마다 입장이 달랐으니까.

누군가는 자신은 무관한데, 함께 묶여서 비난받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은 한 팀이면서 그렇게 빠져나가려는 반응을 고깝게 보기도 했다.

투수들의 경우 그냥 대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허다하고.

그나마 어떻게든 함께 뭉쳐서 시련을 버텨내자는 의지 하에 서로를 묶은 줄이 풀리지 않았을 뿐, 만약 계기만 있다면···

‘모래알처럼 흩어질 거야.’

그때부턴 저마다의 각자도생이 시작되리라. 애스트로스라는 팀이 무너지는 거겠지.

그렇기에 순간접착제로서 Go, 그를 노렸던 것이지만, 이젠 오히려 역풍이 불고 있었다.

디펜딩 챔피언답게 적을 압도하거나, 최소한 대등하게 사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자신들 역시 쓸려나가는 타자1에 불과하다는 참담한 진실을 마주해야 했으니까.

‘작년이랑 다를 건 없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작년에도 이랬었다. 네 경기를 만나, 30이닝을 다투며, 단 3점만을 올렸으니까. 46개의 삼진을 잡히는 동안.

그러니 지금처럼 허무하게 박살나는 것이야,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더욱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호세, 다음 이닝은 일단 출루라도 해보자. 서서히 기세를 올리면 괜찮을 거야.”

“그래야겠지. 일단 수비부터 집중하고. 실점부터 막아야 하잖아?”

“그래, 잘 해보자. 이번 이닝도.”

그의 걱정을 느낀 건지, 키스톤 콤비네이션인, 카를로스 코레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상 클럽하우스의 리더나 다름없는 그마저 흔들릴까, 조금은 염려스러웠던 거겠지.

그에게 애써 웃어 보인 알투베는 최선을 다해 수비에 임했고, 그럼에도 4회 초의 수비는 생각보다 힘겨웠다.

“세이프!”

알투베 그를 위로한 주제에, 본인의 멘탈을 챙기지는 못했던 건지.

카를로스 코레아가 실책을 범하며, 첫 출루를 내주고는.

이후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며, 만루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으니까.

그나마 라인드라이브와 플라이볼을 외야에서 잘 잡아내고.

“스트라이크 아웃!”

“Yeeeeeeeah!”

“그렇지! 어디서 점수를 내려고!”

마지막 댈러스 카이클이 삼진을 만들어내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

“위기 뒤의 기회야! 우리가 선취점 내버려!”

“Go한테 시즌 첫 실점을 안겨줘!”

“조지! 쟤 첫 피홈런이 너야! 올해 첫 홈런도 너고!”

위기 뒤의 기회.

이젠 상식처럼 돼버린 말이지.

팬들은 그것을 기원하며 선수들을 응원했고, 선수단 역시 가까스로 넘겨낸 위기에서 다시금 자신감을 얻은 건지.

서서히 부러지기 시작했던 기세가 어느 정도는 회복됐다.

‘출루부터 하자, 출루부터.’

호세 알투베 역시 이전 이닝, 수비 전에 카를로스 코레아와 나눴던 대화처럼, 출루 정도를 노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을 때.

“우우우우우!”

“치터새끼들! 이번엔 수비에서도 치팅했냐?”

“그래봤자 너넨 미리 사인 못 훔치면 X도아닌 X신이야!”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어차피 Suck한테 X같이 털릴 텐데!”

올라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래, 그들이지. 레이더스.

그들은 사실 경기 시작 이후 내내 저런 발언을 해댔다.

작년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리그 최고의 강성 팬덤으로 떠오른 이들다운 모습이지.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호세 알투베의 귓속에 꽂혔다. 그대로 얼어붙어버릴 정도로.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솔직히 억울하잖아? 너무 후회하지 마.”

“···그래.”

그걸 깨달은 건지, 선두타자로 나가려던 조지 스프링어가 조심스럽게 말했고.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준비를 갖췄지만, 속은 여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억울이라···’

억울하다,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코웃음을 치겠지. 특히 다저스라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럴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억울하다고.

그를 향한 조롱도 많았다.

애초에 논란이 터지기 전에도, 작년 센세이셔널한 시즌을 보냈던 애런 저지를 밀어내고, 그가 MVP 2위를 거머쥔 것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저 양키스 팬들의 투덜거림에 불과했지만. 이젠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다루기 어려운 문제지.’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은 언제나 공존했다. 지금은 그저 싫어하는 비율이 더 높아졌을 뿐.

스타급 선수라면 누구에게나 따라붙는 이야기이기에, 굳이 신경쓰려 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본인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이나 의혹들은 말이다.

‘터무니없는 말들도 많고.’

그가 전자기기를 이용해 신호를 전해 받았다거나, 휴지통 대신, 전기 신호로 구종을 알아챘다거나 그런 것들.

그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정말 심각한 개소리들이었으니까.

그러니 가장 마음이 쓰린 건, 이전의 성적이나, 기록들까지 모두 부정당하고 있다는 거겠지.

마치 너는 당연히 그 정도 실력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굴었으니까.

어쩌면 신체적 콤플렉스와 어우러져,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고.

“세이프!”

생각에 잠긴 사이, 조지 스프링어가 출루했다. 그것으로 퍼펙트 종료.

“야이 X새끼야! 얌전히 삼진이나 쳐 당하라고!”

“우우우우우우! 또 치팅했냐!”

당연하게도 레이더스의 욕설이 1루로 출루한 조지에게 향했지만.

“치터! 치터!”

“땅딸보 새끼, 넌 애초에 Suck한테 상대도 안 돼!”

“대가리 맞추기는 너무 작으니까, 대신 이번에도 삼진이나 처먹고 가라!”

그냥 그다음 타자인 그를 욕하기도 했다. 엄청난 조롱이지.

‘막았어야 했어.’

하지만 그런 것들은 괜찮다.

더러운 일에 연루됐으니, 꿋꿋하게 버티면서,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지.

스스로 억울하다고 해도.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후회였다. 클럽하우스의 리더로서, 선수단의 대장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젠 확신했다.

올바른 타이밍 같은 건 없다.

그것이 시작됐던 때던, 정점에 이르렀을 때던, 아니면 그, Go에게 걸렸을 때든. 그 시기가 언제였던지 간에, 무조건 막았어야 했다.

최소한 애스트로스, 선수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제아무리 주동자가 대단한 리빙 레전드라고 할지라도.

철저하게 막고, 방지하고, 선수들을 설득해서라도 그것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그것이 후회스러웠다.

이 모든 일의 여파가,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영광마저 퇴색시킬 줄 알았더라면.

분명히 그랬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은 이야기겠지. 버스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그러니 그저, 무너지고 남은 폐허에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최대한 재건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겠지.

이번 경기가 그 첫 발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

####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도 그렉을 따라가나봐.

이제 사람들 속이 훤히 보여.

타석에 올라온 알투베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회한에 잠겨 있는지가 뻔히 보였거든.

대충 후회도 하고 억울도 하고 그런 것 같은데, 그런 알투베의 모습에 대한 내 생각은 간단하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디, 더러운 치터 새끼가 은근슬쩍 참리더인척을 하고 있어.

‘지는 깨끗한 척 안 했다고 해도, 명색이 클럽하우스 대빵이라는 놈이, 동료들이 그런 짓 하는 걸 구경한 것 자체가 나쁜 거지.’

어디서 감성적인 척이야? 지도 공범 중 하나면서, 자기는 깨끗한 척, 제3자인 척. 억울한 척. 웃기지도 않는다.

‘물론 억울할 수는 있지.’

여러 증언이나 조사, 그리고 네티즌들의 사적인 조사에서도 호세 알투베는 의외로 깨끗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 휴지통 소리가 잘 안 들렸거든. 그의 타석에서는. 처음 몇 번 정도를 제외하면.

작년 워낙 훌륭한 성적을 올렸던 타자이기에, 가장 크게 의심받았던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지.

그러니 본인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것도 없다. 알면서 방치했다는 것 자체가 틀려먹은 거니까.

그저그런 선수도 아니고, 휴스턴 선수단 내에서 제법 입지를 가진 선수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우습고.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스트라이크!”

‘너 혼자 집에 있을 때 해라. 니들한테 사인 훔치기 당한 사람 앞에서 그런 표정 지으면 X같이 느껴지니까.’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난 안 했으니까, 억울하다! 후회스럽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걸 왜 내 앞에서 해.

막말로 내가 니들 X나게 때려잡았다고 해도, 엄연히 피해자인데.

물론 내 스스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기는 했지만, 난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난 원래 이래. 내 유리한 대로 입장을 바꾸지.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가 된 도리로, 빈볼은 아니더라도···

“스트라이크!”

X나 쎈 공으로 징벌을 내려줬다.

최선을 다해서 던진 2구째 포심 패스트볼. 맛이 간 줄 알고 적당히 던졌다가 앞에 조지 스프링어한테 안타 맞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

이 새끼들은 잠시 이갈이하고 있다 뿐이지, 명백히 맹수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러니 방심하면 쓰나. 아예 발톱까지 다 뽑아버려야지.

‘특히 분위기를 보아, 호세 알투베, 쟤가 대장 노릇하면서 선수들을 다독이는 것 같은데.’

자기합리화 같은 걸로 애스트로스의 분위기를 살리게 둘 수야 없지.

물론 쟤들이 설사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나는 언제든지 쥐어박을 자신 있지만, 앞서 말했듯 뿌리를 뽑아야지. 제대로 확실하게. 팀을 위해서라도.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기에, 어금니 꽉 깨물고, 팔이 빠지도록 왼팔을 휘두르며 그를 잡아냈다.

바깥쪽 너클 커브.

기가 막히게 들어갔네.

확실히 이것도 좋아졌단 말이야. 궤적은 이전이랑 똑같지만, 뭔가 더 날카로워졌어. 더 빠르게 꺾이지.

“아웃!”

그대로 기세를 이어가, 카를로스 코레아를 범타로 잡아냈고, 제법 외야 깊은 타구였기에 1루에 있던 조지 스프링어가 2루로 진루하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알투베도 알투베지만, 너도 확실하게 잡아야지.’

마지막은 율리 구리엘.

얜 알투베와 다른 의미로 조져야지. 알투베는 애스트로스의 중심이니,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꾸라뜨려야 한다면.

“스트라이크!”

얜 그냥 순수하게 사심이다.

나도 솔직히 좀 빡이 돌더라.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인종차별하는 걸 보니 배알이 꼴리더라고.

특히나 사인이나 훔치는 새끼들이 투구습관이니 뭐니 하면서 다르빗슈 털어놓고 그런 짓거리를 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

“스트라이크!”

다르빗슈 본인은 눈을 찢는 인종차별 자체는 쿨하게 용서했지만, 난 아니다.

같은 아시안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마.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하게 삼구삼진.

율리 구리엘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허탈한 한숨을 뱉은 뒤,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것으로 4회 말도 종료.

‘또 2삼진이네, 콩콩콩콩이라. 어감이 별로 좋지는 않군.’

뭐, 그래도 경기는 계획대로 타자들이 잘 조져지고 있으니까, 그러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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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개박살ㅅㅅㅅㅅㅅ]

-여윽시 갓유석, 휴지통 시원하게 두들기네요^^

└이대로 9회까지 가자잇!

└└저번경기 완봉이라 짧게 끊을 듯

└휴지통 새끼들 노잼 탱킹 할 때부터 꼴보기 싫었는데, 개박살 나니까 보기 좋다.

└원래 킹유석이 알서부 맛깔나게 잘패지~

└뱉은 말은 지키는 남자, 고유석!

└ㄹㅇㅋㅋ빈볼을 왜던짐ㅋㅋ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데.

시원스럽게 털리는 휴스턴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다.

리그 최악의 팀으로 꼽히며, 공공의 적이 되었음에도, 뭔가, 기대했던 것처럼 영혼까지 털렸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으니까.

오히려 언제든지 일어서서 다시 작년처럼 달릴 것 같은 묘한 찝찝함이 감돌았을뿐.

그렇기에 조금 거슬렸던 야구팬들이었지만, 호언장담을 뱉었던 고유석이 스스로의 말을 지키는 모습에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Dodgers]

[Go가 휴스턴 박살내는 거 보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솔직히 저번 경기 이후로 Go도 좀 짜증나지만, 그래도 휴스턴이 털리는 거 보니까 미소가 절로 지어져.

└우린 대체 언제 만나냐? 우리도 저렇게 털어야 하는데.

└다음이 애스트로스 만날 때만 잠시 Suck 트레이드 안 되나? 다저스 투수가 저렇게 터는 거 보고 싶은데.

└그래, 그렇게 휴스턴 개털은 다음에, Go까지 꿀꺽하면 최고겠네.

└└쉿, 비밀이니까 닥쳐.

특히 다저스 팬들의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다른 리그라서, 인터리그 매치업 전까지는 그저 바라본 보고, 욕이나 퍼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가장 큰 피해자로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그들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고유석을 응원했다.

지난 경기에서 다저스를 망가뜨리며, 대단한 피칭을 선보여, 조금 감정이 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저스 외에도 애스트로스에게 유감을 표했던 수많은 이들이 같은 감정을 공유했고.

그래서인지, 어쩌면 바로 직전 경기인 20삼진 때와 비슷할 만큼 다양한 시청자들이 중계를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아웃! Go! 엄청난 속도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죠? 애스트로스로선 정말이지, 난관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겠습니다.

-예, 경기 전, 조금은 과감한 인터뷰를 했던 Go인데, 그럴만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유석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줬다.

5회 부터는 속도를 높여가며, 대단히 만족스럽게 애스트로스의 공격을 지워버렸으니까.

5번타자.

이닝 선두타자로 나온 알렉스 브레그먼마저 다시금 삼진을 당했고, 6번 브라이언 맥캔 또한 연속적으로 삼진으로 물러나며, 두 자릿수 삼진까지 올렸다.

[또 콩콩가나?]

-유썩이 오늘 묘하게 삼진 두 개씩만 잡던데.

└아, 삼진이네.

└KKK도 나쁘지 않지.

└콩콩콩콩콩은 실패했네.

-스트라이크 아웃! KKK! 에반 개티스를 다시금 삼진으로 쓸어 담으며!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5회가 종료됩니다!

마지막, 7번타자까지 삼진을 잡으며, KKK를 올리기도 했고 말이다.

그 압도적인 피칭 앞에 애스트로스 선수단은 중계 카메라로도 훤히 보일 만큼, 처음과 비교해, 굉장히 의욕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쳤습니다! 쭈욱~쭈욱 뻗어가는 공~~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 브루스 맥스웰으 투런 홈런!

-아~ 최근 타격감이 저조했던 타자인데, 오늘 한방을 쳐주네요. 앞서 5회 초의 득점과 더불어, 이제 3점인데··· 애스트로스가 힘들겠네요.

-현재 마운드에 있는 Go도 대단하지만, 불펜을 착실하게 보강했던 애슬레틱스니까요.

거기다 그나마 댈러스 카이클의 호투로 이어졌던 0대0의 점수도 확 꺾였기에. 더욱더 눈빛이 꺼져가는 것도 있었고.

-스트라이크 아웃!

억지로 기세를 이어가려고 해도, 고유석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중심을 잃은 애스트로스는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6회 말, 유일한 안타의 주인공이었던 조지 스프링어 역시 이닝 마지막 타자로 나와 삼진으로 잡히면서. 팬들의 기대 또한 꺾였고 말이다.

-지금 불펜에 리암 헨드릭스 선수가 들어가 있는데. 아무래도 이번 이닝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처럼 다가온 7회 말.

그나마 최후의 최후까지 눈빛을 유지하며, 마지막 항전에 나선 호세 알투베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호세 알투베, 6구까지 승부를 길게 끌어가며,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6구째, 89마일의 k이 패스트볼을 헛치며, 결국 이번에도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최악이네요, 오늘은. 개막 이후 적절한 타격감을 유지하며, 애스트로스를 유지했던 타자인데. 오늘은 해트트릭이었습니다.

현실은 가혹했다.

오늘 경기 세 번째 삼진.

간혹 축구의 골과 더불어 해트트릭이라고도 표현되는 성적표를 받아든 호세 알투베 역시 결국 고개를 떨궜고.

-아웃!

-아웃! 율리 구리엘을 내야 뜬공으로 잡아내면서, 다시 쓰리아웃 체인지! Go가 아마도 오늘 마지막이 될 이닝을 마무리 짓습니다.

-네, 교체될 것 같네요. 7이닝 14탈삼진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냈던 지난 등판에 이어, 오늘 애스트로스를 상대로도 대단한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애스트로스의 야심찼던 꿈은 그들에게 날아왔던 빈볼보다 더 쓰라린 공 앞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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