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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16화 (216/316)

216화

“KKK! 이게 Suck이지!”

“You Suck! You Suck!”

“Goooooooo!”

불펜의 문이 열린 순간.

엄청난 소음이 닥쳐왔다.

아니, 사실 불펜에서도 충분히 들었다.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뿐.

그의 시간이 끝나고, 자신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환호성은 야유로 뒤바뀌었다.

당연한 일이지. 어웨이니까.

다만, 조금 신기한 것이 있다면, 여기가 오클랜드라는 것.

그가 기억하는 오클랜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사람이 적고, 경기장이 큰 주제에, 관중은 바닥을 기었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과거 로마시대의 진짜 콜로세움처럼, 이 경기장 전체를 사람들이 꽉꽉 채우고 있었으니까.

‘내가 막시무스인 건가?’

옛날에 봤던 영화가 떠오른다. 꽤나 지루했던 영화인데, 묘한 매력에 끝까지 봤었지.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관중들이 자신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야유를 퍼붓고,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 정도겠지.

“신경쓰지 말고, 애슬레틱스 싹 쓸어버려.”

“Yes Sir.”

엄청난 열기에 혹시나 기가 꺾였을까, 코치는 걱정스러웠던 건지, 그렇게 다독였다.

단순히 경기장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 정도의 투수가 원정에서 등판하면, 이 정도의 야유야 흔하게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관중들의 목소리 보다는, 그 자신, 크리스 세일 마슴 속의 목소리가 훨씬 더 코치의 마음에 걸렸겠지.

자칫 감정에 휘둘려, 경기를 그르칠 수도 있었으니까. 무리하다, 부상으로 무너질 수도 있고.

‘Go···’

Go, 크리스 세일의 마음속에서 그 이름은 조금 미묘한 울림을 가졌다.

같은 투수로서 경이감이 들 정도의 성적을 올리기도 했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역대 최고의 선수이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약간의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그걸 질투심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호승심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겠지. 원래 그런 건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런 감정이 시작된 건, 어쩌면 작년, 크리스 세일 그가 300K를 달성했을 때였다.

그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지. 지구가 달라서 자주 만나지 못할뿐더러. 워낙 괴물 같은 이야기라, 솔직히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아무도 관심이 없네.”

허나 300K를 달성했을 때부터, 그 다른 세상이 자신에게도 직접적으로 연결됐다.

뭐랄까, 생각과 달랐으니까.

정말로 열심히 던졌고, 최선을 다해 성적을 올렸으며, 스스로 대견함을 느꼈던 기록이지. 커리어 동안 가장 영광스러울 순간일 테고.

내셔널리그에서야, 클레이튼 커쇼가 이미 한번 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오랜 전설과 같은 일이니까.

특히나 AL 동부, 마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한 지구라면 더욱더 그렇고.

그런데 놀랍도록 관심이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주목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두 번째’ 선수로서의 주목이었다. 그 앞에는 언제나 Go라는 이름이 붙었지.

전설 속의 300K는 이미 다른 투수가 한참 전에 해버렸으니까. 거기다 그 투수가···

<현대야구 사상, 한 시즌 최다 탈삼진까지 남은 고지는 얼마?>

단순히 300K 정도를 넘어. 놀란 라이언이나, 샌디 코팩스처럼. 크리스 세일 자신조차 태어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전설에 도전하고 있었으니. 이미 정복된 300탈삼진 정도야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겠지. 결국 신기록을 하기도 했고.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영광이 사라졌다. 차라리 밀리기만 했다면 오히려 감정이 덜했을 텐데. 더 큰 산 뒤에 가려졌다.

그것이 크리스 세일의 가슴에 남았다.

“크리스, 오늘···”

“잘 해보자. 점수 내긴 힘들 것 같던데, 그러면 우리도 잘 막아야지.”

“그래야지.”

포수, 샌디 레온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 이내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서 돌아섰다.

그가 보기에, 별다른 말이 필요 없어 보였으니까. 오늘 크리스 세일의 모습은.

그래, 방금 전, 이 곳, 이 마운드 위에서 레드삭스를 털어버렸던 투수처럼.

이런 투수에게 별다른 지시나, 조언이나, 격려 같은 건 필요 없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공을 받으면 되는 거지.

그게 포수가 할 일의 전부고.

포수가 내려간 뒤, 크리스 세일은 마지막 마운드의 감각을 올리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꽤나 짙은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라운드로 나온 순간 모든 생각은 사라졌다.

그토록 집중, 아니, 집착했던 Go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딱히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저···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를 잡는다, 그것으로만 가득했다. 1번타자, 마커스 시미언은 시원스런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리드오프인데도 컨택이 그렇게 좋은 타입은 아니지. 인내심이 뛰어난 편도 아니고.

“스트라이크 아웃!”

2번타자, 제드 라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서른넷의 베테랑 타자는 바깥쪽으로 깊이 박힌 97마일의 패스트볼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아쉬움을 씹었던 마커스 시미언과 달리, 그는 딱히 아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을 뿐.

아마도, 경험이 많은 노련한 타자인 만큼, 크리스 세일이 오늘 품은 마음가짐과 그의 컨디션을 알아차린 것이리라.

마지막 타자는 크리스티안 옐리치였다. 최고의 리드오프였지만, 애슬레틱스로의 트레이드 이후 줄곧 3번으로 나오지.

애슬레틱스의 타선이 약하다거나, 파워가 적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그의 실력이 말린스 때와 많이 달라졌을 뿐.

원래도 수준급이었던 컨택에, 강력한 파워까지 장착해버렸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까.

허나 그런 타자 역시도.

“씁-”

깊게 숨 한번 내쉬고, 힘껏 공을 던지자.

“스트라이크 아웃!”

당연하다는 듯 배트가 헛돌았다. 위닝샷은 슬라이더, 그가 가진 최고의 변화구는 이번에도 옳았다.

유려한 궤적을 선보이며, 타자의 배트를 스쳐 지나갔으니까. 다시금 헛스윙 삼진. 그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우우우우우!”

“니가 무슨 Suck인줄 알아?”

“넌 그래봤자, Suck한테 안 돼!”

이닝이 끝났을 때. 야유는 조금 더 커졌다.

마치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투수와 비슷한 결과를 낸 것이 불경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록 9구는 아니었지만, KKK인 건 똑같았으니까.

‘난 Suck이 아니지. Go도 아니고.’

그런 야유에 크리스 세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는 것처럼. 맞는 말이잖은가? 애초에 완전히 다르니까.

‘크리스 세일이지.’

그보다 잘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론에서 은근히 부추기는 것처럼, 라이벌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그리고 그에게 가려지거나, 함께 300K 듀오니 뭐니 하면서 묶이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그저 크리스 세일이니까.

오늘 보여주고 싶은 건, 단지 그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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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투수전의 기운이지.

난 시끄러운 게 좋지만.

그런 ‘열광’은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잘해야 나오는 건데.

“스트라이크 아웃!”

아쉽게도 오늘은 그렇지 못했거든.

“스트라이크 아웃!”

2회와 3회.

양 팀의 타자들은 정확하게 네 번의 삼진을 더 추가했다. 시원스럽게 대주고 있지.

거기다 레드삭스와 애슬레틱스 둘 다 안타를 치지 못했지. 출루도 못했고.

다르게 말하자면, 나를 비롯해, 양 팀의 선발투수가, 3회 만에 7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뜻이고. 퍼펙트 중이라는 뜻이지. 둘 다.

‘귀찮게 됐네.’

눈을 마주친 순간, 심상치 않겠다는 건 바로 느낄 수 있었지만, 역시나, 내 집으로 침입한 도둑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

아니지, 도둑놈은 아닌가?

내 목을 따려고 하는가 싶었는데, 딱히 그런 기색은 없더라고. 그냥 타자들을 잡았지.

나도 마찬가지고.

‘완전히 일대일 맞짱이구만.’

일기토라고 할 수 있지.

일기토는 일본식 한자어니까, 단기접전이라고 해야 했던가? 아무튼 양팀 선발이 일기토를 꽝 붙은 건데. 이러면 좀 귀찮아진다.

적절하게 완급조절도 하고 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지거든.

괜히 가볍게 던지다, 먼저 한방 맞으면, 순식간에 상대 페이스에 말려버릴 수가 있으니까.

서로 가드 내리고, 얼굴 맞댄 뒤, 그냥 무호흡으로 안면에 연타를 날려야 하는 셈이지. 먼저 고개 빼는 사람은 레프트 훅 맞고 그대로 그로기 상태가 되는 거고.

평소라면, 페이스가 가파른 나를 제어하거나, 자제시켰을 스콧 에머슨도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조용~하네.’

다른 동료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마도 오늘 나올 일이 없을 투수들은 그냥 빼놓는다 치고.

타자들도 뭐 어떡해? 개처럼 털리고 있는데, 죄인의 심정으로 납작 고개만 숙이는 거지.

“브루스, 상대 타자들···”

“일단 아직까지는 느낌이 괜찮아. 한 바퀴 돌 동안, 딱히 타이밍 잡은 타자는 없어 보여.”

다행인 건, 저쪽도 마찬가지라는 거겠지.

위닝 멘탈이고 나발이고. 아무리 이기는 습관이 장착되어 있더라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러니, 서로 팀, 동료, 그딴 거 다 빼놓고 실력만 놓고 한판 붙는 건데, 당연히···

“그럼 됐어. 가자, 바로.”

나야 자신 있지.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온 건데.

전력투구가 잦아서, 체력이 훅훅 달기는 하겠지만. 기본 체력 자체를 늘리기도 했고, 특히나 오늘처럼 컨디션 좋은 날은 체력 같은 건 신경쓸 필요가 없지.

그렇기에 다시 돌아온 내 차례에 브루스를 이끌고 다시 마운드로 올랐다.

그리고 1대1 맞짱이라거나, 일기토, 아니, 단기접전 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웠다. 크리스 세일이 그랬던 것처럼.

잠깐 앉아 있을 때나 서로 은근히 눈길이 가는 거지, 마운드에 오르면, 그딴 여유는 없으니까.

“언제 속도 높일 거야?”

“조금 더 보다가. 한 5~6회부터 시작해보자.”

“9회까지 가려고?”

“그럼 안 가려고 했어? 롤렉스 가지고 싶다더니?”

“그거야 그냥 빈말이지··· 그래도 오늘 공보니까, 무리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네.”

그러니 그저 지금의 페이스를 즐기며,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는 거지.

타순이 한 바퀴를 돌면서, 다1번타자부터 시작이다. 무키 베츠지.

‘브루스의 말처럼, 위협적인 타자는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쪽은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서 상대해야지.’

어쩌면, 무키 베츠 입장에선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상하게 돼버리면서, 그에게만 작정한 게 아니라, 다른 타자들도 기를 쓰고 잡고 있으니까.

최소한 혼자 나한테 찍힌 건 아니잖아? 그나마 덜 외롭겠지. 물론.

“스트라이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여전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요주의 인물이었던 J.D. 마르티네즈는 괜찮아 보이더라고.

파워툴이 강력하니 제법 위협적이기는 한데, 오늘은 그다지 타격감이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

그에 반해 무키 베츠는 지금도 약간은 뒷목이 저릿할 정도로 단단히 집중하고 있고.

진짜 트라웃 같은 느낌인데?

“스트라이크!”

너무 무서워서 일단 타이밍 노리고 스트라이크부터 잡았다. 순간적으로 릴리스 포인트를 바꾸자, 완전히 어긋난 스윙.

역시 눈이 좋은 타자라서 그런지,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네. 나쁘지 않군.

잘 통하는 것 같기는 하나, 삐끗하면 한방 얻어맞을 테니,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볼!”

“파울!”

역시나 꽤나 격렬하게 항전하는 무키 베츠. 그의 스윙에는 약간의 감정도 담겨 있었다.

현재까지 성적만 봐도, 충분히 이번 시즌의 주인공 중 하나인데, 나랑 크리스 세일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났잖아?

약간 무시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기도 한 것 같은데, 나는 그에게 알려줬다.

“스트라이크 아웃!”

적어도 나는 오늘 그 누구보다도 그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금니를 박살낼 기세로 꽈악 깨물면서 던진 하이 패스트볼. 공은 배트 윗둥을 살짝 스치며 튕겼지만, 브루스가 재빠른 몸놀림으로 잡았다.

파울팁 삼진이지.

“어··· You Suck? 맞나?”

“저것도 삼진 맞지?”

“나야 모르지, 너드 하나 잡고 물어보던가.”

아직 야구의 룰에 충분히 익숙하지 못한 레이더스는 약간 긴가민가한 것 같았지만. 일단은 삼진이다.

시원스러운 삼진은 아니긴 한데, 아무튼 삼진이니까 됐어.

그것으로 여덟 번째 삼진이 올라갔다. 미친 페이스지.

“KKK!”

“가랑이 찢어지게 따라오는데, 한 수 가르쳐 줘!”

“두 자릿수 삼진 가자!”

물론 아귀처럼 탐욕스러운 우리 팬들은 그리 만족한 것 같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야, 지난 경기에선 7이닝에 걸쳐서 잡은 걸, 오늘은 4이닝 만에 하라고 하시네.

부담스러워 죽겠어 그냥.

“스트라이크 아웃!”

물론 못한다는 건 아니다.

2번타자, 앤드류 베닌텐디는 바깥쪽으로 낮게, 마치 크리스 파이어처럼 쭉 날아간 패스트볼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혹시라도 휘둘러서 맞추면 땅볼로 만들려고 투심으로 던졌는데, 가만히 지켜만 보네.

‘투심은 확실히 좋아졌단 말이야. 커터도 저만큼만 되면 소원이 없겠네.’

투심이야, 원래도 제법 완숙해지긴 했지만, 오늘은 그보다도 확실히 더 위력이 강했다.

오늘 느낌이 좋긴해. 단순히 컨디션이 아니라. 좋은 기운이 있다고 해야 하나?

기록 달성하는 날은 늘 이랬지. 퍼펙트나, 노히터 말이야.

어쩌면 오늘이 그 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트라이크 아웃!”

다른 종류의 기록일지도 모르고. 일단 까봐야 아는 거지. 경기 끝나기 전까지는 닥치고 타자만 잡는 거고.

3번타자, 헨리 라미레즈까지 삼진아웃. 한 타순이 돌았는데도, 결과는 처음과 같았다. KKK지. 9구3삼진은 아니라서, 완전히 똑같지는 않네.

10K. 진짜로 해버렸구만. 4이닝만에 두 자릿수 탈삼진이라. 오늘 좀 미치긴 했어.

냉철한 투수전에 한겨울 한파에 얼어붙은 샘물처럼, 적막했던 콜리시엄이 잠깐 해동됐다.

레드삭스 타자들은 질린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말이다. 다만···

‘생각보다 더 길어지겠네.’

크리스 세일은 여전히 마운드만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쉽게 끝나지는 않겠어.

####

[#Dodgers]

[애슬레틱스랑 레드삭스 미쳤네. Go랑 크리스 세일, 둘다 X나게 잘하고 있는데?]

[#Rangers]

[Suck새끼 또 지랄하는 중, 저 새낀 어깨 안 망가지나? 저러고도 멀쩡한 게 신기하네. 저거 도핑 아니야?]

[#Yankees]

[Go가 레드삭스 퍼펙트로 잡았으면 좋겠다. 보스턴 X신들이 고작 시즌 초반 성적 좀 좋다고 잘난척하는 거 꼴보기 싫은데, 그럼 기가 좀 죽겠지.]

콜리시엄에서 미친 투수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은 금방 퍼져나갔다.

레드삭스야 더 말할 것도 없는 인기팀이고, 애슬레틱스 역시 최근 주가를 올리는 팀이기에, 지켜보는 눈동자가 많았으니까.

거기다 그 투수가 고유석과 크리스 세일이라는, 최근 가장 뜨거운 투수들이니,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양 팀의 팬 커뮤니티는 물론, 아예 다른 팀의 커뮤니티에서도 언급되며, 심지어 자팀의 경기가 밀려나기도 했다.

[고유석 미쳤네ㄷㄷㄷ]

-페이스 무엇? 진짜 미친놈처럼 삼진 잡네.

└그러니까 393삼진이나 잡은 거지.

└고유석도 고유석인데, 오늘 세일도 미친 듯

└삼진 ㅈㄴ 살벌하게 잡네ㅋㅋ 진지하게 기록 나올지도?

└둘 다 퍼펙트 하면 어케됨?

└└어케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함, 경기 안 끝나니까.

└더블 노히터는 가능하지 않음?

└└ㅇㅇ 누구 하나가 볼넷 존나해서 밀어내기로 실점하면 가능하기는 함

└메쟈 투수전은 ㅈㄴ 수준 높네 레쟈 투수전은 투수전이 아니라, 타자들 X신쇼인데.

└└저쪽도 마찬가지 아님? 타자들이 삼진 바겐세일 중인데

└└혹시 크리스 세일 이름 가지고 드립친 거면,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라.

고유석에게 진심일 수밖에 없는 한국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또한 한국에도 흔히 말하는 ‘보빠’, 레드삭스 팬들이 제법 있었기에, 더욱더 달아올랐다.

[알동부 검증 완료 아님?]

-고유석이 알동부 일짱 개터는데?

└아직 이닝 한참 남았는데 개털긴 뭘 개털어

└솔직히 고유석 성적 보고 알동부 소리 하면 그게 ㅂㅅ임

└설레발ㄴ 저러다 막판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을 수도 있음

└혐유석빠들 ㅈㄴ 웃기네, 아직 경기 끝나지도 않았는데 즈그 주인 올려치는 거 실화?

└└난 고까들이 더 웃기던데? 저런 성적 찍는 투수 억지로 까는 게 재밌음?

주목이 이어졌기에, 당연하게도 갈등이나 분탕 역시 일었고 말이다.

허나 그마저도 몰려든 사람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크리스 세일! 오늘 경기 여덟 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고유석 선수도 오늘 참 대단합니다만, 크리스 세일 선수 역시 대단하네요. 굉장히 타이트한 투수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 작년 300탈삼진을 올린 투수들 간의 맞대결다운 경기죠.

워낙 경기의 속도가 빨랐기에, 그런 걸 올릴 여유도,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으니까.

-아웃! 아하~ 제드 라우리! 노련하게 스윙했습니다만··· 예, 유격수에게 걸렸습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크리스티안 옐리치! 다시금 삼진을 당하는군요!

-이번 시즌, 가장 놀라운 발전을 보여준 선수인데, 오늘은 험난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닝이 종료되면서, 4회 말 역시 삼자범퇴! 고유석과 크리스 세일, 두 투수가 4이닝만에 각각 10탈삼진, 9탈삼진을 잡으며, 장군멍군의 투수전의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마치 그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치킨 게임처럼, 두 투수는 그저 액셀만 밟았다.

점점 속도를 높이면서. 그대로 4회 역시 나란히 종료.

그리고 다시 5회 초, 고유석의 시간이 됐을 때. 경기의 분위기는 다시금 바뀌었다.

이미 보는 이의 숨이 벅찰 정도로 빨랐던 속도를, 한층 더 올려버렸으니까.

-자, 4구, 몸쪽-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고유석! 전매특허인 서클 체인지업으로 J.D. 마르티네즈에게서 헛스윙을 끌어냅니다!

-이제 시작이죠? 인터벌의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타자가 타석에 1분은 있었나 싶네요.

-예! 고유석 선수의 특기죠! 경기 중후반부터 투구 동작을 더욱더 빠르게 당기는데, 오늘은 5회부터 시작됐습니다!

경기 시작부터 쉼 없이 달렸는데도, 여전히 남은 출력이 있었던 건지, 더욱더 빨라진 인터벌 속도.

폭주 기관차 같은 모습은 날카롭던 투수전의 분위기마저 덮어씌웠고.

-2구, 쳤습니다! 땅볼! 3루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 이닝도 KK! 이번 경기 12번째 삼진이자, 4월 50번째 삼진입니다!

그 속도감은 이미 숨이 턱턱 막혀왔던 레드삭스 타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

-이닝이 너무 빠르네요. 이러면 상대투수에게도 부담이죠.

-예, 지금 같은 템포에, 투수 입장에선 벤치에 앉아 있는 잠깐의 시간조차 굉장히 달콤하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상대 투수가 빠르게 이닝을 끝내버리면, 힘이 쭉 빠지죠!

어쩌면 자신의 맞상대까지도.

서로 과열된 상황에서, 약간의 휴식시간 조차 삭제된 셈이니까.

그 모습에 몇몇은 작년, 트레버 바우어와의 일전을 떠올리기도 했다. 먼저 도발하고, 먼저 승부를 벌린 그였지만. 결국 속도감에 짓눌려 무너져 버렸었지.

그때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나. 어쩌면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더욱더 당겨진 템포에도, 크리스 세일은 페이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피칭을 이어가며, 꿋꿋하게 타자를 잡았을 뿐.

타순이 돌고, 이닝이 이어졌는데도, 오히려 점점 더 짧아지기만 하는 이닝 시간에 몇몇은 황당함을 느끼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체력 안배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저러다 7회까지만 찍 싸고 내려가는 거 아님?]

-ㅈㄴ빡세게 던져서 체력 훅훅 떨어질 거 같은데. 보는 내가 다 벅차네.

└둘 다 눈 돌아갔음

└고유석도 고유석인데, 크리스 세일도 진짜 꿋꿋하다.

└이러다 진짜 9회까지 가겠는데?

└둘 다 10회까지 오르면 존멋일 듯ㅋㅋㅋ

└그러면 존멋이기 이전에, 일단 양팀 타자들이랑 타격코치, 감독 빠따부터 맞아야지.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투수들이 미쳐버리니까, 타자는 아무것도 못 하네

└단일경기 영향력만 놓고 보면 투수놀음이긴 하지ㅋㅋ

└레드삭스랑 애슬레틱스, 둘 다 타선 좀 쎈 편인데. ㅈㄴ 쉽게 발린다.

└어뷰징 아니냐? 서로서로 에이스 스탯 올려주려고 하는 수준인데?

└투수 성적 올리자고 타자 아홉 명 스탯을 갈아버리네ㅋㅋ

그렇게 경악에 가까운 감탄 속에서, 5회 말 역시 삼자범퇴로 막을 내렸다.

-아웃!

-아웃! 크리스 세일! 뒤지지 않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막아냅니다! 그 역시 10탈삼진! 오늘 두 투수를 합쳐, 무려 22개의 삼진이 나오고 있습니다!

-타자들의 수난이네요. 타자 입장에서 우리 투수가 이렇게 잘해주고 있는데, 이런 경기를 해버리면,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죠.

비록 추가적인 삼진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삼진의 개수가 더 벌어지긴 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여전히 균형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을 뿐.

그렇게 경기가 6회에 접어들었을 때, 미묘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던 얼음판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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