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12화 (212/316)

212화

<올해 Go의 목표는 400K? 꿈의 기록을 향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다!>

<시범경기부터 계속 이어지는 Mr.Zero! 정규시즌에서도 24이닝 연속 무실점!>

경기가 끝나고, 고유석과 류영진의 만남 역시 끝난 뒤에도 반응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별한 기록이나, 이벤트가 있었던 경기는 아니지만, 이야깃거리가 많은 경기인 건 확실했으니까.

<3타석 3타수 1안타 1득점. 다시금 엄청난 질주를 선보인 고유석, 허나 전문가들은 그저 ‘걱정’>

<순도 높은 득점력! Go, 통산 8타석 8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 리키 헨더슨의 후계자는 멀리 있지 않았다!>

일단 모두가 기대했던(?) 엄청난 타격(?)과 압도적인 주력이 여실히 드러난 경기였다.

득점까지 올려내며, 류영진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거구의 스프린트는 언제나 보는 이에게 아슬아슬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흥겹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A’s]

[투수로 20년 뛰고, 관절이나 연골이 닳으면, 그 뒤엔 타자로 20년 뛰면 되겠네.]

└그렇지. 그러면 리키 헨더슨과 다른 의미로, ‘둘로 나눠도 명예의 전당’인 선수가 되겠어.

└에인절스 보고 있냐? 우리도 투타겸업있다. 너네팀 잽스보다 더 잘 던지고, 더 잘 달리지.

└파워는?

└그건 말하기 싫어.

└덩치가 저렇게 큰데, 왜 스윙에는 힘이 안 실리는 걸까?

└(JPG)Go의 타격폼이야, 이 정도면 답이 됐을까?

└어, X나게 됐어. 저런 폼으로 스윙하니까, 타구에 힘이 없지.

└어? 그러면 타격코치가 각 잡고 잘 가르치면··· 5툴 플레이어의 탄생인 건가?

└일리가··· 있어!

또한 일단 결과 자체가 지금까지는 쭉 좋았기에, 우스갯소리로 오타니 쇼헤이에 못지않은 투타겸업이라는 농담도 이어졌고 말이다.

<한국인으로 뜨거웠던 밤! 고유석 8이닝 16탈삼진 무실점&류영진 6이닝 8탈삼진 1실점!>

<류영진, 후배에게 허락한 쓰라린 한방! 허나, 실보다 득이 더 많았던 경기였다!>

그 밖에도, 이전부터 주목을 끌었던 고유석과 류영진의 맞대결 역시 양쪽 다 훌륭하고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적지 않았다.

다만 류영진의 경우 조금은 뜻밖의 인물에게, 뜻밖의 한방을 맞기는 했지만.

최소한 지난 경기의 참사로 흔들렸던 입지를 다시 다지기에, 충분한 경기였으니까.

<다시 시작되는 Go의 Pitcher of the Month 강점기? Go, 4월 이달의 투수 이미 ‘유력’>

<시즌 시작을 화끈하게 달아올린 Go, 작년의 임팩트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아직 4월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이달의 투수를 논하는 기사들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는 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대로 기세를 이어간다면, 어쩌면 작년 스스로 선보였던, 역대 최고의 임팩트를 단 1년 만에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만큼 시즌 초반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으니까. 감히, 다른 투수들은 범접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전날 투수전을 가뿐하게 지우는 난타전! 애슬레틱스, 다저스를 몰아치며, 2차전 승리!>

<다저스와 애슬레틱스, 두 우승 후보 간의 첫 맞대결의 승자는 애슬레틱스!>

이후 전날의 투수전이 무색한 노가드 난타전 끝에, 애슬레틱스가 넉넉한 점수 차로 다저스를 압도하며 다시금 승리를 따냈고.

그것으로 각각 우승을 천명하고, 여러 언론과 전문가,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도 우승 후보급으로 꼽혔던 인터리그 매치업은 애슬레틱스의 시원스런 스윕으로 종료됐다.

####

2차전이 끝난 뒤, 류영진 선배와 한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한 채, 바로 다시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다.

우리가 다저스를 너무 패버렸거든. 아니, 내 경기에선 찔끔찔끔 어린애 오줌처럼 점수를 내더니···

‘미친놈들이 18점을 내버리네.’

눈치가 보여서라도 빨리 LA를 떠야지, 더 머뭇거렸다간 다 같이 린치당하겠더라.

이런 거 보면 우리 타선의 기복은 여전한데, 대신 터졌을 때의 폭발력은 더 강해졌단 말이야.

불발 확률이 있는 대신, 화약이 X나게 들어가서 일단 터지면 핵폭발급이 되버린 거지.

‘아니지, 차라리 2차전에서 몰아친 게 다행이지, 1차전에서 그랬으면 아예 만나지도 못했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선 차라리 2차전에서 터져서, 그나마 밥이라도 한 끼 먹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류영진 선배한테 2차전 때처럼 그런 참담한 짓거리를 해버렸다면, 어우, 내가 미안해서라도 얼굴 못 보지.

그렇게 LA에서 황급히 도망쳐나오 우리의 목적지는 머나먼 북쪽, 시애틀이었다.

“시애틀도 요새 난리라며?”

“어, 자기네들도 간만에 포스트시즌 가보자면서 그러던데.”

“애스트로스가 망하면서, 동네가 개판이 됐단 말이야.”

“뭐, 대신 덕분에 우리도 약진하는 거잖아?”

시애틀 매리너스.

마찬가지로 NL서부지구 팀이다. 솔직히 시애틀 정도면 거의 캐나다 수준이라서, 북부지구를 따로 만들어, 거기다가 쳐 넣어야하는 수준이기는 한데. 아무튼 그렇지.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애스트로스가 스캔들로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시애틀 역시 외부적으로는 포스트시즌 도전을 선언했다.

누구 말마따나, 강자가 사라지고 나니까, 동네가 개판이 되버린 셈이지.

원래대로면 애스트로스라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확실한 1강이 굳건히 버텨야 했는데. 그 공백이 생겨버린 거지.

전체적으로 선수단의 짜임새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애스트로스 대신 우리가 1강이 되었다고는 하나, 와일드카드라는 좋은 제도가 있으니까.

“편하게 지구우승하려면, 같은지구 경쟁팀들은 일단 눌러놓고 봐야지.”

“그럼그럼, 막판에 경우의 수 같은 거 계산하기 시작하면 골치아프니까. 일찌감치 차이를 벌려 놔야지.”

어쨌든 같은지구 팀이니, 일단 지구우승을 바란다면, 우리로선 무조건 잡아야 하는 경기인데. 솔직히 나랑은 관계없다.

이미 등판한 선발투수한테, 다음 시리즈 상대 팀이 뭔 상관이야.

시즌 막판이고, 순위싸움에 박차를 가할 때라면, 벤치에서 열심히 응원이라도 하겠지만, 아직 4월 밖에 안 됐고, 시즌은 한참 남았으니, 뭐. 그냥 구경이나 하는 거지.

“2,4투페어.”

“난 K,J. 내가 먹었네.”

“좀 사람처럼 굴어라. 아니, 마운드에서도 괴물이면서, 왜 포커판에서도 안 지냐고.”

“매번 다 털리면서 덤비는 사람이 잘못된 거란 생각은 안 들어요?”

“대단히 들지. 아주 들지.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게 도박이잖아?”

“단단히 중독되셨구만. 오프시즌 동안 상담이라도 받아보슈. 그거 병이에요, 병.”

그렇기에 이렇게 마음 편하게 다른 동료들 지갑이나 털고 있는 거고.

매번 털리면서 덤비는 제드 라우리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지. 다른 선수들은 이번엔 끼지도 않았거든. 어차피 결과가 뻔하니까.

저 정도면 도박 중독이야. 언젠가 날 잡고 확실하게 털어줘야, 제정신을 차리겠어.

그것으로 포커도 종료.

때마침 목적지에도 딱 도착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비행기가 시애틀에 착륙했으니까.

####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 대한 생각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한 선수겠지.

-No.51 Ichiro Suzuki!

“휘이이이이이익!”

지금 나오는 타자 말이야.

오프시즌에 매리너스로 합류했는데, 그가 콜 되자마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경기는 8번타자로 나왔네.

“이치로, 인기는 여전하네.”

“이 정도면 거의 Suck 수준 아니야?”

“그 정도겠지, 매리너스 팬들에겐.”

“솔직히 이게 당연한 거지. 은퇴하고 명예의 전당 들어가면 무조건 영구결번될 선수니까.”

덕아웃의 다른 잉여선수들 역시 홈관중들의 환호성에 혀를 내둘렀다. 익숙한 느낌이잖아?

마치 콜리시엄에서 내가 마운드에 오를 때와 비슷하니까. 팬들이 내뿜는 왠지 모르게 애틋한 감정도 그렇고.

그럴 수밖에 없겠지.

‘좋았던 시절이겠지. 매리너스 팬들에게 이치로는.’

21세기, 매리너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니까.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다승인 01년 116승의 주역이기도 하고.

‘매리너스에서 은퇴하려고 온 거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니까.

화려했던 커리어의 마지막 종착지가, 메이저리그의 첫 시작지인 셈이지.

어쩌면 매리너스 팬들 역시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더욱더 열렬하게 환대하는 걸 수도 있고.

영광스러운 시절을 보냈던 타자의 황혼기를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 거니까.

“스트라이크!”

비록 지금은 많이 내려왔지만.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다른 셈이지.

‘왠지 조금 기분이 이상하네.’

어쩌면 애슬레틱스 팬들이, 수십 년 뒤, 지금 매리너스 팬들과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볼!”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서, 지금을 추억하며 생각하는 거지. 그때 참 좋았던 시절이라고 말이야.

“볼.”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류영진 선배와의 만남으로, 내 또 다른 위치를 제대로 실감하게 돼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단순히 내가 가지는 상징성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한때 동경했던 사람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또 다른 거니까.

응원 속에서 승부를 끌어나가는 이치로를 보니, 확 와닿기도 했다.

“아웃!”

저런 선수가 돼야 한다는 뜻이겠지. 애슬레틱스에게도, 한국에게도. 그런 걸 나한테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제대로 잡혔다.

‘영광스러운 시절인데, 단순히 잘나가는 정도가 돼서는 안 되겠지.’

역대 최고의 임팩트는 이미 하나 세워두긴 했지만, 1년 바짝해서 쓰나.

이치로는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2루수 앞 땅볼이었지. 안타를 쳤다면 정말로 멋있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마흔을 넘어, 이젠 거의 쉰을 바라보는 선수니까. 애초에 지금 메이저리그 타석에 오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

그러고 보면, 타자에서 투수로 바꾸기만 한다면, 딱 내가 바라는 모습이긴 하네.

나도 오래오래 뛰면서, 한 50살까지 메이저리그 마운드 위에 서는 게 목표니까.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도 비슷하기는 할 거고.’

이치로의 데뷔시즌 역시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말이야. 당장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고.

이런 걸 보면 비슷하긴 하네.

타자와 투수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웃!”

1차전은 우리 패배로 끝났다.

아쉽게도 저버렸지.

하지만 2,3차전을 쓸어 담으며, 위닝 시리즈로 3연전은 막을 내렸고, 이제 다시 내 차례가 왔다. 다시 콜리시엄의 시간이 왔으니까.

####

기나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클랜드는 평소와 똑같았다. 뭐, 있잖아? 강도, 총격, 그런 것들.

도착해서 라디오를 틀자마자 반겨주는 소식들을 보니, 고향에 온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치안 좋은 노잼 도시에선 전혀 느낄 수가 없는 매운맛이야.

암, 응당 라디오 같은 걸 틀었을 때 저런 뉴스 정도는 나와야 듣는 맛이 있지.

‘아니야, X발.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

익숙한 정취에 흐뭇하게 웃다가, 불현 듯 제정신이 들었다. 어우, 오클랜드에 너무 많이 적응했어.

범죄도시에 익숙해진 내 스스로를 일깨우며,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이 편한 건 사실이었다.

뭐가 어쨌든 홈이 최고지.

느낌이 다르니까.

“오늘도 바글바글하네.”

“Suck 나오잖아. 이게 평균이지.”

“내가 듣던 오클랜드는 이런 느낌이 이니었던 걸로 아는데···”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 예전의 오클랜드랑은 많이 달라졌어.”

조금 더 부담스럽기도 하고.

오늘도 여지없이 관중들이 빽빽하게 몰려 들었으니까.

내 경기잖아. 3만 명이 디폴트지.

“이 정도면 인간적으로 구단에서 나한테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보너스 같은 거. 관중수익을 내가 담당하고 있는데.”

“A’s에서 보너스를 찾다니. 아직 물이 덜 들었군.”

좀 억울하기도 하네.

내가 이 정도로 사람 끌어오면, 어? 서로 간에 ‘정’ 같은 걸 주고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예를 들어, 미국 연방 준비 제도에서 갓 뽑아내서 빳빳하고 따끈따끈한 달러가 가득 담긴 봉투나 상자 같은 거 말이야.

물론 농담이다. 나도 내 인기 덕분에 짭짤하게 벌고 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지.

어쨌든 바글거리는 관중들을 보니, 왠지 조금 압박감도 느껴졌지만, 이 정도야 이미 지금까지 가뿐하게 이겨 온 것들이니 상관없다.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적당히 좋아요. 적당히.”

기나긴 원정길 끝에 다시 찾아온 등판이라, 비행의 피로가 좀 쌓이긴 했지만. 컨디션은 적당히 무난했다.

서부 내에서 놀았던 터라, 엄청나게 이동하거나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조심하세요. 이런 피로가 계속 쌓이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오늘은 웬만해선 긴 이닝은 자제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예예, 저도 막 마구잡이로 던지고 그러는 무식한 놈은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긴 이닝을 소화하는 건 힘들겠지. 자칫 피로가 쌓인 상황에서 무리했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원래 부상이라는 건 이렇게 약간 피곤한 정도일 때 트리거를 건드리면, 불쑥불쑥 찾아오는 법이거든.

그렇기에 흔쾌히 대니얼의 조언을 받들었다.

“오늘은 6~7이닝 정도만 던지자. 상태 보고 6이닝이나 7이닝 중에서 결정하고. 반론은 거절한다. 네 말은 앞으로 듣지도 않을 거야.”

애초에 스콧 에머슨이 단단히 단도리를 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았나봐.

내 딴에는 열심히 풀어준 것 같은데, 눈동자에는 아직도 불신이 가득하군.

‘한 번의 쾌락이 생각보다 길게 가네. 이래서 사람은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야 돼.’

지금까지 착하게(?) 살았는데, 약속 한번 깨트린 것 때문에 못 믿을 놈이 된 것 같아 씁쓸했지만, 어쩔 수는 없지. 달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바짝 엎드리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화가 풀리겠지.

그렇게 대니얼과 스콧 에머슨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조심스럽게 준비를 갖췄고.

“나이스볼~”

마지막 불펜에서의 점검까지 마친 뒤, 드디어 내 시간이 다가왔다. 어디, 오늘도 잘해보자고. 앞으로도 계속 잘하고.

####

우리 홈이라서, 수비가 먼저였기에, 불펜을 빠져나가자, 누구의 발자국도 묻지 않은 깨끗한 그라운드가 수많은 관중들과 함께 나를 반겨줬다.

“Suck! 오늘도 잘해라!”

“딱 다저스전처럼만 해! 삼진 팍팍 잡으라고!”

그래, 이게 홈의 느낌이지.

지난 다저스전도, 분위기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기에, 어웨이라는 느낌은 덜했지만.

역시 홈이 좋긴 좋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운드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큰 이득이니까.

“조시, 오늘 포구 감각은 좀 어때요?”

“딱 좋아, 나쁘지 않아. 최소한 Suck 너한테 걸림돌은 안 될 게.”

“에이, 걸림돌은 무슨. 잘 잡아주기만 해요. 타자들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사인 보내라고? 관찰도 열심히 하고? 브루스한테 이미 들었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마운드에 오르니, 미리 나와 있던 포수가 반겨줬는데, 평소처럼 브루스는 아니었다. 걔도 좀 쉬긴 해야지. 포수니까.

그를 대신해 오늘 내 파트너가 된 건 조시 페글리로, 간만에 호흡을 맞추게 됐네.

작년에도 백업이었다가, 스티븐 보그트가 나갔는데도 브루스에게 밀려, 여전히 백업 포수에 머물렀는데도, 그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크게 욕심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나쁘지 않지, 괜히 포수가 의욕이 넘치거나, 야망을 품고 있으면, 내 입장에서도 좀 귀찮으니까.’

튀려고 하는 포수는 투수 입장에서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포수가 급발진했을 때 가장 피해 보는 게 투수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시 페글리는 딱 적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포구나, 프레이밍도 적절한 편이고.

“잘 아시니, 그냥 믿고 던질 게요. 오늘 잘 해봅시다.”

“그래, 기왕이면 퍼펙트 해버리자. 나도 롤렉스가 갖고 싶더라고.”

“예, 저도 마음 같아선 하나 선물해주고 싶네요.”

욕심이 없지는 않네.

종종 브루스가 클럽하우스에서 롤렉스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그게 탐스러웠구만.

은근히 욕심내는 조시 페글리에게 맞장구쳐주긴 했지만, 오늘은 확실하게 날이 아니었다.

‘9회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컨디션이 덜 올라온 게 느껴졌으니까.

‘오늘 같은 날 긁혀야 하는 건데, 아쉽게 됐네.’

다만 상대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이기에, 만약 좀 긁히는 날이었다면, 또 몰랐겠지.

오늘 상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리빌딩이 한창인 팀인데, 당연하게도 그리 강력하지는 못하다.

당장 작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아쉽게 밀려서(?) 지구 4위를 기록했으니까. 67승 95패로. 100패도 가능했겠네.

‘올해도 마찬가지지.’

올해 역시 별다른 외부영입이 없었기에, 전체적인 전력이야 작년이랑 동일하다.

성적도 현재까지 12전 4승 8패로 시작부터 열심히 내리박고 있지.

타선도 그리 강력하진 못한 터라, 만약 오늘 컨디션이 개막전과 같았다면, 조시 페글리의 소원을 들어줬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컨디션이 평범하더라도···

“스트라이크 아웃!”

각 잡고 조지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말이야.

주심의 우렁찬 플레이볼 선언 이후, 1번타자 요안 몬카다는 3구만에,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V1을 헛치며 오늘의 첫 삼진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 등판 때 관중 3만명이 디폴트라면, 첫 타자 삼진도 웬만하면 기본이기는 하지. 저번 경기에선 그러지 못했지만.

“Youuuuuuu Suuuuuuck!”

역시 본고장의 유썩은 다르군. 이게 참된 유썩이지.

처음 외칠 때만 하더라도, 레이더스만 단합해서 소리쳤었는데, 이젠 콜리시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네.

‘쓰읍, 좀 약한데, 확실히 원정이 중첩되면 폼이 좀 덜 올라온단 말이지. 오늘은 딱 기본만 하자, 기본만.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래도 확실히 컨디션이 대단히 좋은 편은 아닌 건지, 저번 경기보다 공에 실리는 힘이 적었다.

음, 대니얼의 조언처럼, 오늘은 무리하면 안 되겠어. 그냥 딱 하던 대로, 평균 정도만 하자고 다짐했다.

의욕이야 어느 때보다도 넘치고, 마음도 잘 잡혀 있는데, 오랫동안 롱런해서 아이콘이 되는 것도 몸이 멀쩡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물론 내 평균은 7이닝 10탈삼진에 무실점이다.

원래 사람마다 기준치가 다른 법이야. 그 정도면 내 입장에선 딱 기본만 하는 거라고.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그런 의미에서 곧이어, 아비세일 가르시아 역시 4구만에 삼진으로 잡아내며, 다시금 유썩을 만들었고.

그나마 호세 아브레유가 5구째 외야플라이로 물러나며,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저지했다.

그것으로 1회 초 삼자범퇴로 이닝 종료. KKK에 실패했으니, 이것도 딱 기본인 거지.

아무튼 그렇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