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04화 (204/316)

204화

<올해도 ‘You Suck!’ Opening Day 역사상 최고의 피칭을 선보인 Go!>

<왕의 귀환! 고유석, 무사사구 완봉승 18탈삼진!>

<실패로 끝나버린 개막전 데뷔! ‘Go의 길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퍼펙트를 깨트리며, 팀을 구원한 트라웃. 허나 그 역시 중과부적이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모두가 입을 모아 왕의 귀환을 이야기했다. 콜리시엄의 왕이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왔노라고.

이미 시범경기에서도 징조를 보이기는 했지만, 개막전부터 무사사구 완봉승을 해버리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심지어는 고유석을 가장 굳게 믿고 있는 레이더스 같은 그의 팬들조차도.

<18K! Go, 58년 만의 개막전 최다 탈삼진 기록 갱신!>

<개막전에서 가장 많은 삼진을 올린 고유석! 기존 기록자인 파밀로 파스쿠알을 3개 차로 넘어섰다!>

모두의 기세를 샀던 삼진 역시 18개나 잡으며, 개막전 신기록까지 갈아 치워 버렸기에 더욱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마치 저번 시즌의 재림처럼, 타자들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모습은 묘한 기시감이 들게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MLB 홈페이지 대문에는 고유석의 얼굴이 찍혔고.

순식간에 만들어진 하이라이트 장면은 단 하룻밤 만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가 드디어 시작했음을 널리널리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경기였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전율하는 한편으로, 몇몇 이들은 단순히 성적이 아닌, 피칭 내용에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작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휩쓸며 정립되었던 고유석이라는 선수의 정석이 깨진 경기였으니까.

<5회부터 9회까지, Go가 소모한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된다?>

<경기 중반부터 엄청난 속도로 에인절스를 몰아붙인 Go! 비결은 오프시즌 체력 훈련?>

<풀려버린 괴물의 목줄! 스스로 한계를 깨어버린 Go!>

평범하게 3이닝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경기 중반부터 아예 끝까지 속도를 유지하는 모습은.

그를 직접 상대한 에인절스만이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나 관중들마저 숨이 벅차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기존의 한계를 깨어버린 듯한 모습은 그에 대한 감탄을 낳는 한편으로, 절망을 낳기도 했다.

[#Angels]

[저 새낀 왜 볼 때마다 더 잘하냐고 X같아서 못 살겠네.]

└3이닝만 유지되는 거 아니었어? X발 근데 왜 5회부터 9회까지 쭉 달려?

└릴리스 포인트인지 뭔지도 X같이 바꿨다던데. 거기에 체력까지 훈련했네. X나게 시간에 알뜰한 새끼일세.

└너무 심하게 털려서 솔직히 화도 안나. 그냥 토네이도가 덮친 기분이야.

└자연재해지. 갑자기 나타나서 타자들 죄다 죽여 버리는 자연재해.

보는 입장에서 억울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밀렸으니까.

그렇게 에인절스가 당하는 모습은 팬들에겐 좌절을, 분석을 위해 지켜본 다른 팀들에겐 공포가 되었다.

자연재해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자신들에게도 닥쳐올 테니까.

다음 차례는 작년, 고유석의 전설에 크게 일조했던 단골 중의 단골이었고 말이다.

####

“쓰읍- 하아.”

다음날, 몽롱한 정신으로 두 눈을 떴지만, 깨어났다고 해서 바로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잠시 심호흡 좀 해야지.

완봉한 다음 날은 진짜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삭신이 쑤시거든.

괜히 멍한 정신으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고 막 일어났다가는 쓴맛을 제대로 볼 정도로 말이야.

그렇기에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멍했던 정신을 일깨운 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이어났다.

“아악-”

왠지 뻐근한 왼팔에, 세뇌된 고통을 직감하며 계집아이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1초가 지나고, 2초가 지나고. 3초가 지난 뒤에도 예상했던 통증은 닥쳐오지 않았다.

“Go, 괜찮으십니까? 그러게, 어제 너무 무리를 하셨어요. 열심히 준비한 건 저도 잘 알지만, 그래도 조심하셨어야죠!”

그에 이상하게 여기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대니얼이 달려왔고, 브라이언도 진지한 얼굴로 달려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건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 가 싶어서 황급히 달려온 것 같은데.

멀쩡한 내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이내 잔소리를 쏟아댔다.

‘뭐지, 나 이제 어른인데. 왜 고딩 때 같지?’

이 나이 먹고 일어나자마자 엄마, 아니, 트레이너한테 한 소리 듣는 게 조금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대니얼.”

“예, 많이 아프십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그게 아니라··· 안 아픈데요?”

“···? 예, 다행이군요. 부상은 아닌가 보네요. 그저 과하게 피로가···”

잘 이해하지 못한 건지, 대니얼은 딴소리를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통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과한 피로감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쓰읍, 원래는 앓아누워야 정상인데···’

아무리 완급조절을 하고, 투구수도 아끼고, 또 이전에 오랫동안 쉬었다고 해도.

보통 완투를 하고 나면 이틀 정도는 꽤나 힘들게 살아야 한다. 특히 첫날은 왼손으로 숟가락들기도 힘들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웃긴 건 그마저도 남들보다 훨씬 나은 거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사나흘 정도를 앓아눕는다고 하니까. 그에 비하면 난 훨씬 좋은 셈이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남보다 나은 힘겨움조차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등판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저냥 약간 뻐근한 정도라고 해야 하나?

“···잠시 제가 하는 대로 움직여 보십시오. 확인 좀 하겠습니다.”

멀쩡한 내 모습에 대니얼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지, 그렇게 말한 뒤, 내 왼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침대에 앉아서 이러고 있으니까 심한 병에 걸려서 오늘 내일 하는 사람 같네. 뭔가 느낌이 이상해.

“문제는 없습니까?”

진지한 그의 표정이 옆에서 지켜보던 브라이언은 덜컥 겁이 난 건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의 반응에 나도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가동 범위도 잘 나오네요. 특별히 심하게 뭉친 곳도 없고요. Go의 말처럼 다른 완투 경기랑 비교하면 훨씬 낫군요.”

대니얼은 본인이 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체력 훈련이 생각보다 더 도움이 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벌크업으로 체지방을 늘린 게 영향이 크겠죠.”

요컨대 배때지에 기름이 낀 덕분이라는 거구만. 그렇게 말한 대니얼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슬쩍 말했다.

“더 정확하게 분석해야 하겠지만, 지금 체형이 Go에게 딱 알맞나 보네요. 앞으로도 섭취량을 조절해서 지금 정도 수준을 유지해야 겠어요.”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고, 근질이 다르기에, 적합한 체형이 저마다 있는데. 난 지금이 딱 좋다는 거구만.

그렇게 말한 대니얼은 이내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좋으시겠네요, 원하던 대로 철인이 되셔서. 완투를 해도 거뜬한 몸이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철인이라.

듣기 좋은 말이긴 하네.

영어로 하면 아이언맨, 얼마나 멋있어?

물론 진짜로 놀란 라이언이나 칼 립켄 주니어처럼 규격 외의 괴물 수준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올해 몸 상태가 좋기는 한 거겠지.

“더욱더 정진하여, 앞 세대 아이언맨 투수인 놀란 라이언을 본받아, 저 역시 이번 시즌을 비롯해, 앞으로는 매 시즌 300이닝을-”

그에 대한 감상을 묻는 대니얼에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선언했지만.

“그건 안 됩니다. 몸 멀쩡하시면 씻고 식사나 하세요.”

“넵.”

역시 씨알도 안 먹혔다.

아~ 이게 안 통하네, 각인 것 같았는데.

####

“완봉이나 했는데, 오늘은 그냥 쉬지 그러냐? 굳이 나왔네.”

“나 없이면 브루스 네가 농땡이 피우니까, 너 감시하려고 온 거야. 소니, 쟤가 말 안 들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다음 경기에서 포수 마스크에 전력투구 할 테니까.”

“하하, 내 말도 잘 들어. 브루스야 늘 잘하지. Suck 너처럼.”

든든하게 식사까지 마친 뒤, 클럽하우스로 향하여 어슬렁거리니,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 혼자만 아주 느긋한데.

이러니까, 집안의 혼자뿐인 백수 아들이 된 기분이구만.

그래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 어제 완봉한 투수인데, 뭐라고 해. 그냥 라커룸이나 덕아웃 바닥에 자리 깔고 누워도 알아서 얌전히 옆으로 지나가야 하는 수준인데.

어쩌면 이게 완봉의 참맛이라고 할 수 있지. 다음 등판 때까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언터처블의 존재가 되는 것 말이야.

물론 나는 에이스라서, 어차피 아무도 못 건드리긴 하지만.

‘어제보다 사람이 좀 적긴 하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저녁경기인데, 금요일 저녁인데도 확실히 어제보단 관중석에 사람이 적었다.

사실 어제는 만원관중이었으니, 당연히 그보다 더 적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팀 원정 경기 때 보는 관중수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는 더 많은 수준이었다.

이제 막 개막했다는 특수성도 있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체급이 커진 거겠지.

‘확실히 우리 팀이 좀 달라지긴 했어. 관중 동원력이 껑충 뛰었네.’

리그 최하위를 맴돌던 처참한 관중 동원력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연고지의 잠재력은 미들마켓 수준이라던 소수 전문가들의 개소리가 이젠 개소리가 아니게 된 거지.

이런 변화의 중심에 내가 있는 셈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미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표정이 왜 그래? 어제 완봉한 놈이. 누가 보면 내일 은퇴하는 줄 알겠네.”

“아니, 그냥.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어서.”

“···여기서 더? 뭐, 매 경기 퍼펙트라도 하게?”

“그러면 최고겠지.”

“Suck 니가 그러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서우니까, 그런 말하지 마라.”

내일 등판 예정이라, 마찬가지로 오늘은 잉여인간은 션 마네아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냥 좀 그렇잖아.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처음에는 애슬레틱스라는 팀에는 그리 큰 애착은 없었다.

그냥 미국 건너오면서 어영부영 계약을 한 거고, 그 뒤에는 마이너에서 뛴 거고, 그러다가 언젠가 데뷔하거나, 트레이드되거나 할 거라고 여겼지, 그런 팀이니까, 애슬레틱스는.

예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애슬레틱스에서 영원히 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든. 잘하면 비싼 값을 받고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아니면 좀 더 버티다가 FA로 시장에 나가니까 말이야.

그런데 1년 정도 몸 바쳐서 뛰고, 팬들도 생기고, 정도 들고 해서 그런가, 이젠 확실하게 애정이라는 게 좀 생겼다. 팀 자체는 물론, 이 팬들과 오클랜드라는 도시에.

‘체급이 확 커져서 내 몸값을 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그건.’

하지만 내 애정과는 별개로 여전히 오클랜드는 오래 뛸 수가 없는 팀이다. 내가 너무 잘하잖아? 잘해서 문제가 된 거지. 내 몸값이 너무 비싸졌거든.

브라이언은 그렇게 말했었다.

남은 시즌을 작년처럼 역대급 임팩트가 아니라, 그냥저냥 평범하게(?) 리그 정상급 정도만 찍더라도. FA 때 내 연봉은 최소한 5천만 달러부터 시작할 거라고.

그렇기에 장기계약은 힘들 거라고 했었지. 10년 단위 규모로 끊는다 치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으니까. 양키스나 다저스처럼 슈퍼빅마켓 정도?

당연히 애슬레틱스는 애초에 후보 명단에도 못 들어가지. 설사 이번 기회에 미들마켓 수준까지 체급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그러니 변하는 팀을 보면서 괜히 씁쓸할 수밖에.

‘있는 동안 잘해야지. 그저 최선을 다해서.’

“그나저나, 션 너 서클은 좀 어떠냐? 내 딴에는 진짜 열심히 알려준 건데. 좀 쓸만해?”

“아니, 전혀. 넌 대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던져? 난 그냥 X나게 밋밋하던데. 말 나온 김에 묻자, 혹시 가르쳐 주면서 뭐 빼먹은 건 없지? 경쟁자를 견제하는 의미로. 어차피 이제는 내가 경쟁자도 못 되는데. 그냥 솔직하게 비법 전수해주라. 뭐 더 없냐?”

“없어. 그냥 네가 재능이 없나보네.”

“이야, 진짜 개X같은데 Suck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괜히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감상에 접어들지는 않았다.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니까.

이제 갓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FA를 논하면 그건 또라이지.

“아웃!”

“Hell Yeah!”

“올해는 우승까지 가자!”

“소니 오늘 잘했다! 이래야 더블 에이스지!”

“우린 에이스가 두 명인데, 우승 정도는 껌이지!”

그렇게 2차전도 이겼다.

4대2의 아슬아슬한 승부로.

소니는 7이닝 2실점으로 하이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승수를 올렸고, 불펜도 잘 가동됐지.

“옐리치! 너 좀 마음에 든다? 한 30홈런까지 까버려!”

“에이스도 두 명이고 크리스도 두 명이네! 크하하핳.”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솔로포를 기록하며 올해 콜리시엄의 첫 홈런을 챙겼다.

브루스도 내 협박(?)이 잘 통한 건지, 프레이밍도 제법 능숙하게 하고, 멀티히트까지 하면서 활약을 펼쳤고 말이야.

그렇게 새로운 시즌의 시작은, 순항을 이어갔다.

####

“씁, 또 스윕을 못 하네.”

“작년 데자뷰 같다니까. 마침 작년 개막전 상대도 에인절스였잖아?”

“뭐, 어쩔 수가 있나. 에인절스도 칼을 갈았는데 한 경기쯤은 줘야지.”

개막전 시리즈는 3승1패로 막을 내리며 위닝 시리즈를 기록했다. 작년처럼 또 스윕을 못 했네.

션 마네아도 6이닝 3실점의 퀄스를 기록하며 적절하게 잘해서 내리 3연승을 찍었지만.

고셋이이 4이닝만에 4실점으로 무너지면서 시리즈 마지막을 내줬다.

“오타니 걔는 그냥 투수하는 게 낫겠던데.”

“데뷔전에서 퀄스면 나쁘지는 않긴 하지. 확실히 투수 쪽 재능이 더 커보여.”

“글쎄, 난 타자 쪽도 괜찮아 보이던데?”

“네가 그 타자 데뷔전 망쳐놓고 그러면, 시체에 총질하는 거야.”

4차전에서 오타니 쇼헤이가 선발로 등판하며 진짜로 투타겸업을 보여줬는데. 투수 데뷔전은 그럭저럭 무난했다.

딱 퀄스를 기록했지.

삼진도 6개나 잡았고. 늙은 크리스에게 홈런 맞긴 했지만.

그렇기에 다들 그냥 투수나 하라는 반응이었는데, 나는 생각이 달랐다. 데뷔전 상대가 나여서 문제지. 타자로서 재능도 있긴 했거든.

‘아니, 오히려 타자 쪽 재능이 더 큰 것 같은데 말이야.’

100마일을 던지는 부러운 놈이라서 괜히 타자로 미는 게 아니라, 순수한 진심이다. 개털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게, 마커스의 말처럼 다른 이들에겐 좀 우습게 들리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개막전 시리즈를 마친 뒤, 우린 텍사스로 날아갔다. 작년의 호구를 다시 때려주기 위해서.

텍사스 레인저스 말이야.

우리가 작년처럼 개막전 시리즈를 위닝으로 마쳤다면, 레인저스는 루징 시리즈로 그나마 한 걸음 발전했다. 작년은 스윕이었거든.

다만 작년은 세 경기 3패를 기록하며 스윕패였고, 올해는 1승 3패로 루징이니. 3패인 건 똑같네.

‘거기다 애스트로스한테 털렸고 말이야.’

사인 훔치기가 스캔들이 되면서 외부의 공격을 받으며, 내부분열까지 일어나서, 외우내환을 겪고 있는 애스트로스에게 털렸으니. 레인저스 사정이야 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내 입장에선 알링턴 방향으로 매일 절 세 번을 해도 모자란 은인이지만. 아주 착한 친구들이야. 날 좀 많이 싫어하는 게 문제긴 한데···

“레인저스 애들, 벌써부터 심술이 잔뜩 났더라. Suck 너 때문에.”

“내가 뭘 어쨌다고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정말 네가 한 짓이 없어?”

“···쪼오끔 많기는 하죠.”

이유 없는 미움은 없기에, 나도 그런 증오를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지, 생각해보니 어? 화나네?

‘아니, 내가 잘못했어?’

난 그냥 내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거 가지고 원망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지.

“자기네 타자들이 못한 걸 왜 나한테 화내는 거야? 꼬우면 잘하던가.”

“그래, 레인저스 팬들 앞에서도 꼭 그렇게 말해라. 전기톱 들고 달려들 테니까. 난 다이.”

“마커스 너는 죽기만 할 거면 그냥 끼지 마라. 난 올인. 남자는 이래야지.”

“제드야 말로 어차피 Suck한테 다 털릴 텐데 왜 꾸역꾸역 껴요? 나 같으면 그냥 안 하겠다.”

“···딴 적도 몇 번 있어.”

“그래서 승률이?”

“10%도 안 될걸.”

아무래도 나는 아직 완성된 인간은 아닌 것 같아.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걸 보면. 철인이지만 아직 마음만은 여리다는 거겠지.

텍사스로 날아가는 동안 날 향한 이 주(State), 그 도시의 증오가 벌써부터 느껴지는 것 같아서, 괜히 짜증스러운 마음에 제드 라우리나 털었다.

조금 방향이 이상하게 꺾인 것 같지만, 부수입이라도 짭짤하게 올려야지. 멘탈 관리하려면.

“보고 놀라지나 마라. 플러시. 어때? 오늘은 내가 이겼지?”

“풀하우스요. 아, 호텔 음식은 질리는데, 텍사스라 밖에 나가서 쓸 수가 없네.”

“이 x새끼야! 너 솔직하게 말해! 손기술 쓰지?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잖아! Suck 너 요즘 따라 점점 더 대담해져?”

“자자, 화 그만 내고, 이걸로 계란후라이나 사드슈. 특별히 센터라인이라서 수비 잘하라고 주는 거니까, 감사히 여기십쇼.”

“내가 이딴 걸 받을 것 같아? 물론 감사히 받지! 고맙다! 수비 잘할 게!”

“옳지, 그래야지.”

역시나 오늘도 왕창 따기는 했지만, 밀머니의 역할은 못 하겠지.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난 숙소 밖으로 못 나가거든.

공항에 내리는 즉시, 경기장 가는 걸 제외하면 내내 호텔에 감금당하는 신세지. 바깥은 날 증오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위험하니까.

하지만 레인저스 팬들은 하나를 알아야 했다. 자기들이 그럴수록, 내가 본인들 팀과 본인들 타자들을 더 폭력적으로 괴롭힐 것이라는 걸. 감금 당한 분노가 쌓이고 쌓여서 마운드 위에서 터질 테니까.

그게 다~ 본인들한테 돌아간다 이 말이야. 어찌보면 악순환의 반복이지.

레인저스는 날 미워하고, 그거에 꼴 받은 난 레인저스를 개털고, 그거 때문에 더 미워하고, 난 다시 꼴 받고.

이런 비련의 굴레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일단 레인저스는 찢어야지.’

어쨌든 그 사이에 낀 타자들은 끝없이 고통 받는다는 거겠지.

나한테 털리고, 팬들한테 욕도 먹어야 하잖아? 가만 보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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