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4회 초.
마운드에 오르는 고유석을 보며, 관중들은 물론 티비 모니터로나마 경기를 시청하던 팬들 역시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A’s]
[설마··· 개막전부터 ‘그거’하나?]
└오늘 느낌이 좋긴 한데···
└개막전에서 하는 건 최초지?
└아마도, 내가 알기론 한 사람 없어.
└그거가 문데 너드야.
└그거 있잖아, 그거. 말 못하는 그거.
경기 초반에 1루 베이스를 침범당하지 않는 것이야 고유석의 흔한 래퍼토리였지만.
푹 쉰 덕분인지, 몸이 가벼워 보였기에, 어쩌면, 혹시나, 정말로, 그런 엄청난 일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작년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을 장식했던 그것 말이다.
그렇기에 조금 이른 시기부터 팬들은 말을 아꼈고, 그런 분위기를 느낀 건지, 중계진 역시 은근하게 동조하기도 했다.
-4회 초, 한 타순이 돌았는데요. 에인절스의 공격은 다시 1번타자부터 시작이군요.
-Go, 오늘 느낌이 나쁘지 않은데···
-쳤습니다! 땅볼!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4구만에 잭 코자트를 처리하는 Go!
-아, 오늘 투심이 아주 좋네요. 예, 작년보다 더 좋아보여요. 지금 나오는 화면을 보시면 무브먼트가···
두 번째 타석을 맞이한 1번타자 잭 코자트가 범타로 물러나면서, 그 기대는 더욱더 커졌지만.
└아~ 퍼펙트?
└이런 Mother Fucking moron 새끼야! 그걸 왜 쳐 말해!
└이제 겨우 4회인데 뭘 그렇게 쫄아있어. 미신 같은 거 믿지 마라.
-트라웃! 쳤는데요, 2루수를··· 넘기는군요. 1루에서 세이프!
-아, 역시 트라웃이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퍼펙트를 저지하네요.
언제나 그렇듯 흥을 깨는 것은 트라웃이었다. 2루수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쳐내면서. 팬들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A’s]
[트라웃 저 X새끼는 인생에 도움이 안 돼, 도움이!]
└아, 저 새끼 좀 꺼졌으면 소원이 없겠어.
└작년에 무실점 할 때도 똥물을 끼얹더니, X발 FA로 아예 내셔널리그나 가버렸으면 좋겠네.
└필리스 좋아하더만, 거기로 안 가나? 좀 꺼져라 제발!
└제드 뭐해! X발 점프해서 잡았어야지!
└저걸 어떻게 잡아, 슈퍼마리오도 아니고.
콜리시엄으로 돌아온 고유석이고, 그가 몸이 가벼워 보였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팬들은 트라웃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Angels]
[오클랜드 애들은 X신이냐? 4회인데 퍼펙트 깼다고 지랄하네.]
└걔들 원래 Suck이랑 관련되면 좀··· 맛이 가잖아.
└하루이틀이냐. 작년부터 애슬레틱스 또라이 된 게.
└3.1이닝 내내 털리고 이제 겨우 안타 하나 쳤는데 무슨 욕을···
└왜? 재밌는데. 이참에 홈런도 하나 날리면 더 좋겠네.
물론 내내 털리다가 간신히 만회한 에인절스 입장에선 그런 애슬레틱스 팬들의 반응이 그저 황당했지만 말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기대가 꺾이면서, 분위기가 다소 혼란스러워졌지만, 다시 진정시키는 것 역시 고유석의 몫이었다.
팬들의 아쉬움과는 달리,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 건지, 후속타자 저스틴 업튼을 가볍게 삼진으로 잡으며, 살짝 흔들리던 기세를 다시 봉합했으니까.
-푸홀스 쳤습니다만- 높이 뜹니다. 포수가 일어서서 잡는군요.
-마이크 트라웃이 안타를 기록하며 퍼펙트를 저지했습니다만, 잔루 1루로 4회 초 역시 막을 내립니다.
곧이어 푸홀스 역시 내야뜬공으로 물러나며, 4회 초 역시 막을 내렸다.
4이닝 8탈삼진 1피안타.
비록 퍼펙트는 깨졌지만. 겨울 동안 품고, 시범경기로 더욱더 짙어졌던 기대감을 120% 충족시켜주는 피칭에 콜리시엄을 가득 채웠던 관중들은 만족스럽게 웃는 한편.
조금 더 욕심을 품었다.
[#A’s]
[Go 오늘 몇 이닝 던질까?]
└개막전인데, 완봉 가나?
└아마 7이닝 정도겠지. 보통 그 정도 던지니까. 퍼펙트도 깨졌고.
└첫 경기부터 과하게 무리하지는 않을 거야.
└난 좀 길게 던졌으면 좋겠는데···
└Suck 본인이야 늘 허슬이 넘치지! 코치가 문제지만.
7이닝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닌, 조금 더 길게, 오랫동안 마운드에 있어 주기를 말이다.
시범경기부터 모든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지만, 그래도 정규시즌의 첫 경기, 개막전이고, 콜리시엄에서의 올해 첫 등판인 만큼.
그의 피칭을 기왕이면 꽤나 오랫동안 눈에 담고 싶었으니까.
└이닝이 뭔 상관이야? 삼진이 중요하지! 한 20개쯤 잡자!
└그럼그럼, 야구는 이닝이 아니야! 삼진이 최고라고! 그렇기에 Suck이 최고지!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레이더스 너네 세이버메트리션 다됐네. 이닝은 X신이고 삼진이 중요하다니.
└세이버 머시기? 그게 문데 너드야.
물론 이닝이고 나발이고, 그냥 삼진을 잡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도 최대한 많은 삼진을 잡길 바라는 만큼, 그를 길게 보고 싶어한다는 건 동일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퍼펙트도 깨졌지만, 여전히 기대감을 품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곧 5회 초, 다시 고유석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엄청난 속도로 콜 칼훈은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흔히 두 번째 패턴이라고 하죠? 중간부터 인터벌을 가속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제 시작이네요.
2페이즈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닝 시작 직후, 거의 1분이 채 되지 않아, 타자를 돌려세우는 고유석의 모습에 조금은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다시 바짝 군기가 잡혔다.
저마다 품은 기대와 상관없이, 일단 지금 당장의 피칭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
“You Suck!”
“Hell Yeah!”
“이제 시작이지!”
“이대로 쭉쭉 달려보자!”
고막 터지겠네.
만원 관중이라서 그런가.
다 함께 소리를 질러대니, 웅~하고 경기장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파동이 일었다.
안 그래도 낡아빠진 콜리시엄, 이러다가 진짜 무너지는 거 아닌가 몰라.
그렇게 콜리시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몸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이젠 자동이지, 자동.
“스트라이크!”
마치 엑셀을 밟고 가속을 하듯, 서서히 빨라지는 인터벌에 경기 시작부터 서서히 차올랐던 열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쉬지 않고 퍼붓는 난사에 총열이 빨갛게 익는 것처럼, 왼팔 전체가 뜨겁다는 느낌도 들었고.
어쩐지 평소보다 더 달아오른 것 같아서 위험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대신 효과는 끝내주니까.
4구째 바깥쪽으로 던진 너클 커브가 가파르게 꺾이자, 안드렐톤 시몬스는 크게 헛치며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것에는 너클 커브의 위력도 있겠지만, 소나기처럼 때리는 파상공세에 균형을 잃은 게 더 컸겠지.
이제 투아웃.
마운드에 올라온지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끝낼 때가 됐네.
‘어디, 뿌린 씨앗을 좀 볼까?’
마지막 타자는 오타니 쇼헤이. 첫 타석에선 적어도 나한테는 제법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씨앗을 심어 뒀었다. 얼마나 잘 영글었는가 한번 봐야겠네.
“스트라이크!”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친 슬라이더. 스트라이크가 선언됐지만, 오타니는 그리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음, 아직까지는 스트라이크존을 잘 설정 못한 것 같네. 어쩔 수 없지,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까.
“볼!”
2구는 낮게 깔아봤는데, 몸을 세차게 움찔거리면서도 꾹 참았다. 인내심도 나쁘지 않구만.
“파울!”
3구는 투심 패스트볼.
한번 쉽게 잡아보자는 생각에 바짝 붙여서 던졌지만, 아슬아슬하게 커트했다.
‘슬슬 타격감이 올라오는 건가?’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제법 타이밍이 가까웠다. 인터벌이 빨라졌는데도 얼추 쫓아왔네.
아마 서서히 이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타격감이 올라오는 거겠지.
‘이대로 타이밍을 점점 더 잡으면, 세 번째 타석부턴 좀 까다롭겠네. 바로 가자.’
그러니 망쳐야 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남의 데뷔전의 제물이 되기 싫거든.
흘끔 얼굴을 보니, 아주 결연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마치 ‘와라!’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난 후배를 위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라, 녀석이 바랄 코스를 던져줬다.
‘저런 천재들은 뻔하지.’
천재란 족속들은 프라이드가 높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성공한 케이스는 더욱더 그렇지.
그런 놈들이 가진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자신의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다시 기회만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들 각오가 되어 있지.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오타니가 가장 바라는 것은···
‘높은 코스.’
길게 왼팔을 뿌리치며, 공을 쑤셔 박자, 오타니 쇼헤이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도 높은 코스. 하이 패스트볼에 가까웠으니까.
눈동자 가득, 타격동작이 박혔다. 온몸의 힘을 끌어당겨, 박력 넘치게 비틀고 있는데. 뒷목이 서늘할 정도네.
제대로 된 파워는 보지 못했지만, 딱 봐도 좋아 보이는데, 타이밍이 좀 틀리더라도 일단 제대로 맞기만 하면 넘어가겠어.
“스트라이크 아웃!”
맞기만 하면 말이야.
결과는 첫 타석과 똑같았다.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위닝샷 역시···
‘쓰리핑거 체인지업. 이것도 제법 숙련도가 좋아졌단 말이야. 슬로 커브랑 같이 제일 구리던 공이었는데.’
첫 타석과 똑같은 체인지업이었다. 생각해보면 얘도 제법 오랫동안 갈고 닦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위력이 꽤 좋아졌단 말이야.
사실 쓰리핑거 체인지업, 아주 평범한 체인지업이다 보니, 무브먼트나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오프스피드의 역할밖에 못하지만.
‘거기에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를 끼얹으면, 그 효과가 극대화 된단 말이지.’
나도 타자 시점에서 촬영한 장면을 봤는데, 거의 3분의 2지점 까지는 내가 봐도 패스트볼 같더라.
어쨌든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구종을 던졌는데도 똑같이 헛스윙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인지, 볼 때마다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오타니의 눈동자가 조금은 몽롱해보였다.
‘제대로 조졌네. 다음 타석은 그냥 편하게 잡아도 되겠어.’
타이밍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으니, 더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이제부턴 포심 타이밍 자체를 아예 못 잡을 테니까. 최소한 이번 경기 동안에는.
일단 가장 찝찝한 폭탄은 제거했구만. 어디서 날 상대로 데뷔전을 치르려고. 어림도 없지! 동정은 다른 투수한테 떼라.
그렇기에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흥겹게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오타니는 이제 신경쓰지 마.”
“어, 안 그래도 애가 맛이 갔더라. Suck 너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이제 갓 데뷔한 어린애한테. 너무 모질잖아.”
“난 데뷔전 때 7이닝 무실점했어.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그리고 원래 새싹은 좀 밟아줘야 무럭무럭 자라.”
숨 가쁘게 인터벌을 가속하며, 1이닝을 쓸어 담았지만,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이제 시작이지.
####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아웃!”
5회 초가 삭제된 뒤. 곧이어 6회 초 역시 빠르게 지워졌다.
한번 시동이 걸린 인터벌은 더욱더 빨라지기만 할 뿐, 멈추는 법이 없었으니까.
“Suck 오늘 진짜 날인데?”
“삼진도 팍팍 잘 잡고, 아주 좋아!”
그렇게 차례차례 이닝을 지워버린 뒤, 올라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운드에서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고유석을 보며 그에게 열광하면서도, 몇몇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 이닝이 끝이겠지?”
“5회부터 스타트 끊었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보통 3이닝 정도 유지되니까. 그래도 뭐, 7이닝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 삼진도 제법 잡았고.”
“다음 이닝도 삼진 세 개 잡으면 15삼진이니까. 그 정도면 그럭저럭 만족해야지.”
고유석이 스퍼트를 내기 시작하면, 3이닝 정도가 유지되고 내려간다는 건,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순간적으로 투구 동작을 빠르게 이행하는 만큼,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그들이 알기에 리미트는 3이닝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5회부터 스타트를 끊었으니,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7회 초가 마지막이리라.
“저번에는 인터벌 다시 느려진 뒤에도 더 던져서 완봉하던데.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다만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아주 가끔 인터벌이 다시 느려진 뒤에도 마운드에 남아, 이닝을 더 소화하기도 했으니까.
아니면 중간에 끊고, 적절하게 체력을 관리하며, 완봉을 노리기도 했고.
그렇기에 혹시 이번에도 그러지는 않을지, 몇몇 이들은 기대하기도 했지만.
7회 초, 다시 마운드로 올라온 고유석을 보며, 그런 희망을 접었다. 기세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적당히 중간에 끊고 완급조절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 퍼붓고 내려가겠다는 것처럼.
“Suck! KKK가자!”
“마지막인데, 시원하게 잡아야지!”
“12개로는 부족한 거 알지? 딱 세 개만 더 잡아! 15개쯤은 잡아야 딱 알맞지!”
“여섯타자 연속 삼진 가자!”
그렇기에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점수는 이미 6대0까지 벌어졌기에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
피칭 역시 이제 끝이 다가온 것 같으니, 기왕이면 그가 이번 경기의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원하며, 관중들은 언제나처럼 삼진을 소리쳤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걸 이뤄주려는 건지, 하필이면 퍼펙트를 깨트려서 그의 완봉을 막은(?) 증오스러운(?) 트라웃에게 다시금 삼진을 빼앗아내며, 7회 초 역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세이프!”
“야이 X새끼야!”
“삼진이나 처먹어!”
“X같은 놈이 더럽게 발목 잡네!”
다만 눈치가 없는 건지, 곧바로 저스틴 업튼이 안타를 하나 더 날려 보내며 흥을 깨트리기는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노련한 선수답게(?) 알버트 푸홀스가 적절하게 눈치껏 삼진을 헌납하며 마지막 분위기를 다시금 띄워줬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타자가 될 콜 칼훈이 올라왔을 때, 여전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있었지만.
“Go! 오늘도 죽여줬다!”
“이번 시즌도 X나게 잘하겠어!”
“올해는 한 400탈삼진까지 가야지!”
대부분은 만족스러운 경기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아웃!”
그리고 4구째.
높이 뜬 타구가 외야까지 날아갔지만, 중견수 채드 핀더의 글러브에 안착하며 이닝은 종료됐다.
7이닝 14탈삼진 2피안타.
기대했던 만큼 화려했던 경기였기에, 관중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돌아가는 고유석을 배웅했다.
기대처럼 개막전부터 그들을 만족시켜준 에이스에게 경의를 표하듯이.
“다음에는 퍼펙트 하자!”
“열네 개면 좀 아쉽긴 한데, 이 정도면 됐어! 애피타이저부터 배부를 순 없는 거지!”
“You Suck! You Suck!”
그런 환호성에 손을 흔들면서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 고유석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점퍼를 입었다.
“?”
“뭐야, 끝 아닌데?”
“어? 아이싱 안 받나?”
“3이닝 됐는데, 왜?”
“설마··· 더 나오는 건가?”
마치 그들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것처럼. 드디어 그가 내려간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에인절스 역시 바보가 된 건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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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날 보내려고 해요. 더 던지려고 했는데, 괜히 사람 민망하게.
다시 가뿐하게 이닝을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니, 아주 기립박수도 치고 올해도 잘해보자며 환호성도 지르고 난리가 났는데.
난 아직 내려갈 생각 없는데?
왜들 저러시나 몰라.
“관중들이 Go 너보다 낫네. 그래 이제 내려갈 타이밍이야. 착하지? 굿보이, 굿보이.”
“제가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그렇게 달래지 마슈.”
“강아지가 아니라 개새-”
“닥쳐라, 브루스.”
스콧 에머슨은 기세에 힘입어 나를 저지하려 들었지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투구수 한 80구 중반 정도 아니에요? 엄청 적을 텐데.”
“···85구야.”
“그럼 2이닝도 더 거뜬하죠. 리미트도 없다면서요?”
“무리하지 마, 5회부터 쭉 달렸잖아.”
“무리 아니에요. 거의 열흘 가까이 쉬어서 그런가, 아직도 몸이 쌩쌩하거든요.”
“전력투구도 많이-”
“안 했습니다. 최고구속도 많이 안 찍었을 텐데?”
“한 마디를 안 져, 한 마디를.”
명분도 나한테 있지.
투구수 꼼꼼하게 아껴 썼거든. 전력투구도 많이 안 했고.
그렇기에 더는 설득하는 것이 무색하다고 여긴 건지, 스콧 에머슨은 고개를 절레 저었고, 씨익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준 나는 흘끔 관중석을 훑은 뒤 보란 듯이 점퍼의 지퍼를 목끝까지 올렸다.
몸이 잔뜩 달아올랐는데 점퍼까지 껴입으니까, 진짜 사우나에서 땀 빼는 느낌이네.
그러자 날 배웅하려던 관중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듯 하나 둘씩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도 앉으라는 의미로 대충 손을 휘저었고. 다들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는데, 단순히 맥주 때문은 아니겠지.
민망한 듯 멋쩍게 웃으며 헛기침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 관중들이 민망해 했다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는 상대팀, 에인절스 선수들은···
“눈빛 봐라. 누가 보면 내가 사기라도 친 줄 알겠네.”
“사기 맞지,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네가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거, 지쳐서 내려갈 때까지 버티기만 하자는 생각에 가드 올린 건데. 안 내려갔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억울할 게 뭐 있어? 꼬우면 안타나 홈런 치면 되는 거지.”
굉장히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너 내려가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묻는 것 같네.
날 마운드에서 내리고 싶으면 점수를 내라 이거야. 어디 완봉이나 당하는 놈들이 투수교체를 바라고 있어.
‘오랫동안 준비한 덕분에 체력이 남아도는 것도 있지만, 기초체력 자체가 좀 늘긴 했네.’
예전처럼 3이닝 스퍼트 내고 내려가기엔, 내 체력이 너무 남아도는데 말이야.
철인 3종 경기(?)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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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갈 생각인가?”
“아니, 중간부터 달렸으니까, 이제 체력 떨어질 때가 됐는데···”
“딱 보니까, 흥에 취해서 무리하는 거야.”
“Suck이 그렇게 무모한 놈이라고?”
“왜? 무모하니까, 데뷔시즌에만 235이닝을 던진 거지.”
“우릴 X으로 보는 건가?”
고유석의 예상처럼 에인절스 덕아웃에는 당혹감이 흘렀다.
슬슬 내려갈 테니, 투수교체 타이밍을 노려서 반격을 시작해보자는 식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작 내려갈 것 같았던 투수는 여전히 쌩쌩해 보였고, 의지도 충만했으니까.
그것을 두렵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마치 에인절스 정도는 아무리 체력이 빠지더라도 거뜬하게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저번에 마이크한테 그렇게 처 맞아 놓고도 정신을 못 차렸네.”
“마이크, 어떻게든 출루할 테니까, 이번에도 투런, 아니, X발 그랜드슬램 날려버려.”
“오타니 너도 차라리 잘됐네. 이참에 한방 날려.”
그렇기에 꺾였던 기세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제아무리 리그 최고의 투수이고, 단기 임팩트에 한해서는 역사상 최고인 투수라고 할지라도.
그 자신감이 과해져서, 자만심으로 변했다면, 응당 그에 걸맞은 징벌이 떨어져야 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인터벌도 느려질 거야.”
“릴리스 포인트를 갈아 끼우는 게 좀 껄끄럽긴 하지만, 세 타석이나 봤는데···”
그리고 약속된 3이닝이 끝났으니, 경기 중반부터 에인절스를 타이트하게 몰아치던 파상공세는 이제 없을 가능성이 높기에, 그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아웃!”
그래서인지, 수비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타격코치 역시 여유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이제부터는 다시 호흡이 길어질 거니까, 저 새끼가 아무리 지랄해도 무시하고, 여유롭게 타격해, 여유롭게. 그리고 패스트볼 위력도 슬슬 떨어질 테니, 브레이킹볼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테니까, 그것도 생각하고.”
“한방 날리고 오겠습니다.”
“우릴 너무 얕잡아 보는데, 최소한 자존심은 챙겨야죠.”
그런 조언을 머릿속에 담으며 자신감을 끌어올리며 타석으로 입장한 에인절스 타자들이었지만.
안드렐톤 시몬스가 홈 플레이트로 향한 뒤, 대기타석에서 준비하고 있던 오타니는 표정이 달랐다.
‘정말로··· 떨어졌을까?’
다시 마운드로 올라오는 선수. 고유석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의 눈으로는 절대 지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욕심에 잡아먹혀, 과욕을 보리고, 무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경기가 막 시작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저것도 연기인가?’
연기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로까지 연기를 잘한다고?
솔직히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자신이 너무 과하게 겁을 먹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애써 고개를 털어낸 오타니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잠시 생각에 빠져든 사이, 삼진이 올라갔다. 떨어질 것이라는 속도는 오히려 지난 이닝보다 더 빨라졌고.
“시몬스.”
“음··· 수고해라. 그거밖엔 말 못하겠네. 그냥··· 똑같아.”
그런 말을 남기고서 안드렐톤 시몬스는 허탈함이 가득한 표정만 지으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마치 에인절스가 기대했던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이야. 이번이 마지막 타석이야. 최소한 안타라도 하나 친다.’
그런 안드렐톤 시몬스의 모습에도, 그는 애써 집중을 끌어올렸다.
아마도 오늘 경기 마지막 타석일 가능성이 높은데, 첫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번엔 어떤 식으로 나올까? 브레이킹볼을 자주 사용할 거라고 했는데, 그렇진 않아 보여.’
머리는 복잡했다.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 모두 철저하게 농락만 당하면서 끝나버렸으니까. 같은 수에 속은 제 자신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번에도 똑같이 나올까?
사실 타이밍은 이미 잃었다.
두 번째 삼진을 당한 순간, 완전히 균형을 잃었지.
데뷔전을 그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고유석과 눈을 맞추며, 그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지만.
“스트라이크!”
초구가 날아든 순간 깨달았다. 저번 타석에서 맛보았던 독의 효과를.
포심 패스트볼. 대놓고 안쪽으로 들어왔고, 아주 과감한 코스였는데도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
세 번째 타석인데도, 마치 모든 것이 리셋이라도 된 것처럼.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가 올라가고.
다시 공을 건네받은 뒤, 즉각적으로 투구동작을 이행하는 고유석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깨달았다.
‘생각 같은 건··· 없어.’
대기타석에서부터 그토록 내내 고민했던 수싸움, 복잡한 심리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아웃!”
밸런스는 이미 무너졌고, 타이밍은 완전히 놓쳤으니까.
억지로 몸을 비틀며 날아온 포심을 맞추기는 했지만, 중심을 잃은 스윙에 힘을 잃은 타구는 마운드 위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대로 잡아서 아웃.
몇 걸음도 채 내딛지 못한 채, 오타니 쇼헤이의 데뷔전은 막을 내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나마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그런 재앙을 마주한 것이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 정도이리라.
8회 초 역시 끝났다.
너무나도 손쉽게.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투수의 모습은 1회 초, 불펜에서 걸어 나왔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
에인절스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과욕을 부려서 무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퍼펙트게임 페이스였네. 이제 보니까.”
“그래, 그랬던 것 같네.”
그런 고유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몇 에인절스 타자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굴욕으로 생각했던 안타 두 개가, 어쩌면 최고의 행운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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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좀 아쉽네. 트라웃이랑 업튼만 아니었으면 퍼펙트도 가능했을 거 같은데.”
“왜? 롤렉스가 부족해? 하나 더 받고 싶냐?”
“흐흐, 그래주면 나야 감사하지.”
스콧 에머슨은 별말 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까지 갈 거라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되기도 했고.
브루스는 이제 와서 아까 전에 맞은 안타들이 아쉬운 건지 혀를 내두르는데. 이 탐욕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솔~찍하게 말하면 나도 쪼오끔은 아쉽긴 하다. 이제와서 보니까, 내가 상태가 너무 좋잖아?
‘안 맞았으면, 진지하게 가능성은 있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가능성 다 따지면 죄다 퍼펙트 하겠지.’
결국 안타를 맞았기에 오늘은 퍼펙트를 할 날이 아니라는 거지. 탈삼진도 똑같다고 할 수 있고.
한 이닝 남았는데 16개니, 하나만 더 잡았어도 타이는 가능했을 텐데 말이야.
“Suck, 내가 살짝 흘릴까?”
“오호, 포수 새끼가 포일을 예고하다니, 배짱이 두둑하네. 포스 마스크에 포심 박아버린다?”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낫아웃도 삼진 취급은 받잖아. 슬쩍 흘리고, 다음타자 삼진 잡으면, 스무 개 가능하지 않나?”
“지랄하지 말고 공이나 잘 잡아라. 마지막까지 왔는데 딴생각하지 말고.”
혹하기는 했는데, 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런 짓거리를 해.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행위도 아니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멋지게 끝내야지.’
8회 말 공격은 금방 끝났다. 타자들이 눈치 좋게 행동해줬네. 어깨가 식지 않도록.
“Suck! 완봉 가자!”
“오늘 X나게 Cool 하네! 앞으로 매번 이렇게만 해라!”
다시 내 차례가 됐을 때, 아까 전의 해프닝으로 서로 조금 민망했던 관중들은 다시금 열띤 목소리를 토해냈고.
언제 준비를 마친 건지, 포수장비를 죄다 착용한 브루스와 글러브를 낀 타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도 준비는 된 것 같꼬.’
에인절스 역시, 마지막을 받아들일 각오가 됐네. 나? 나야 뭐, 이미 한참 전에 준비 끝났지.
‘9회에 오르는 마운드의 맛이 또 남다르단 말이야.’
내 발자국이 덕지덕지 있는 마운드를 보는 게 제법 흥겨운 일이거든. 물론 다른 투수의 발자국도 남아 있지만.
‘내 건 하나지.’
중구난방한 발자국 속 내 것을 찾아 다시 그대로 자세를 잡고서 살며시 왼팔을 돌렸다.
앞서 8이닝이나 던졌는데도, 어깨에는 여전히 활력이 감돌았다.
‘내일 좀 고생하겠네.’
체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솔직히 이 정도로 던지면 좀 앓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괜찮다.
X되는 건 어차피 내일의 나니까. 오늘의 나는 그저···
“스트라이크 아웃!”
영광만 챙기면 된다.
9번타자, 마틴 말도나도는 여전히 느려지지 않은 속도에 멍하니 공을 지켜보기만 했다.
애초에 타격이 그리 좋지 않은 타자니까. 어쩔 수가 없지. 타이밍 잡을 여유도 주지 않았으니 말이야.
‘17번째 삼진이라, 그러고 보니, 이 정도면 개막전 신기록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경기 끝나고 기사 보면 알 수 있겠지. 별걸 다 담으니까.
잡생각이 드는 걸 보면, 체력이 떨어지기는 했나봐.
그 사이 1번타자 잭 코자트가 네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오늘 보니까, 다음에 만날 때도 크게 걱정 안해도 되겠더라. 작년은 예상처럼 플루크였던 거겠지.
“아웃!”
그래도 그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삼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격렬하게 스윙하며, 범타로나마 물러났다.
어차피 안 되는 거였네, 공을 흘려서 낫아웃을 만들든 말든 20삼진은.
‘언젠가 날이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 타자.
마이크 트라웃.
진짜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오늘만 네 번째를 보네.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
같은지구니까.
‘저쪽도 같은 생각인 것 같고.’
트라웃 역시 지겹다는 듯 눈살을 흐렸는데, 왠지 동질감으 드는구만. 그치, 저쪽도 내가 진짜 X나게 싫겠지. 자기 성적 깎아 먹으니까.
“파울!”
“볼!”
“볼!”
하지만 그런 짜증스런 감정과는 별개로 그는 꽤나 집요하게 나왔다.
‘타이밍을 버렸네.’
척하면 척이지.
게스 히팅이구만.
딱 하나만 노리고, 딱 한 코스만 노리고, 나머진 죄다 버리면서.
어쩌면 저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타이밍을 잡으려고 해봤자, 어차피 내가 망칠 테니, 그냥 하나만 보고 타이밍이고 지랄이고, 어떻게든 후린다! 이 마음가짐이 제일 낫긴 하지.
“파울!”
“파울!”
애매한 것들은 죄다 쳐내면서, 아주 격하게 항전하는데. 질질 끌면 나한테도 좋을 건 없었다.
지금은 쌩쌩하다고 해도, 언제 갑자기 훅 떨어질지 모르니까.
‘원하는 쪽으로 던질 테니까, 그냥 깔끔하게 이번 한 구로 끝냅시다.’
그렇게 부탁하며, 길게 와인드업. 선택은 옳았던 것 같다. 저쪽도 제대로 나왔으니까.
마이크 트라웃 역시 처음보다는 조금 지친 듯한 얼굴로 눈동자를 번뜩이며 배트를 냈다.
지금까지처럼 커트하는 스윙이 아니라, 아주 제대로 당긴 어퍼컷으로.
낮은 코스. 그가 사랑하는 곳인데, 그 사지 속으로 공은 유유히 날아갔다. 사형인의 도끼처럼 목을 쪼갤 듯 내리찍은 배트를 향해서.
포심 패스트볼.
그것을 예상한 듯 굉장히 빠른 배트 스피드. 허나-
“스트~~~라잌 아웃!”
배트는 닿지 않았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
그 뒤에 울려퍼진 주심의 우렁찬 삼진콜. 무너진 자세를 복구하며, 다시 우뚝 선 마이크 트라웃은 이내 무언가를 본 건지 조금은 허탈하게 웃었다.
‘89마일. 죽어도 90마일은 안 찍힌단 말이야.’
9회 초에 최고구속이 찍혔으니, 좀 징그럽기는 하겠네. 말했잖아, 체력이 남아돈다고.
‘끝이네.’
그것으로 경기 종료.
9이닝 18K 2피안타 무실점 무볼넷. 무사사구 완봉.
그렇게 개막전이 막을 내렸다.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펑펑 터지는 플래시, 일어나는 관중과 달려드는 동료들.
그런 풍경에서 알 수 있듯.
올해 역시 개막전의 주인공은 나였다.
‘아니, 이제 시작인가?’
올해의 주인공도 나일 거고.
이제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