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3월 2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2018년 캑터스 리그는 막을 내렸다.
정규시즌에 앞서, 주전 선수들의 경기력을 올리고, 각 팀의 준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범경기였기에.
시범경기 종료 이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자체적인 평가를 내리며, 다가올 정규시즌에 대한 준비에 막차를 가했다.
“기대이상이군.”
“네, 예상보다 훨씬 좋습니다.”
스카우트 팀과 전력분석 팀 등이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며, 빌리 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시범경기 동안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애슬레틱스의 전력은 기대를 훌쩍 넘은 수준이었으니까.
“전체적으로 타선의 파워가 강해졌어.”
일단 이번 오프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타선의 짜임새는 예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수준급 리드오프를 영입하여, 파워는 준수하지만, 기복이 심하고 공갈포적 기질이 강한 팀 타선 체질 개선을 원했지만. 오히려 반대가 되었으니까.
“네, 제드 라우리나, 크리스 데이비스 모드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작년보다 조금 더 장타력이 늘었습니다.”
“그래, 거기에 채드 핀더, 마크 칸하, 맷 올슨과 맷 채프먼 같은 젊은 선수들도 기대할만하겠지.”
노쇠한 선수들을 처리하고, 젊은 영건들을 위주로 꾸린 라인업은 꽤나 중후한 무게감을 가졌으니까.
각 스카우트와 코치들이, 어쩌면 올해 애슬레틱스 주전 타자들이 모두 다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내놓을 정도로.
다만 그 대신 작년의 문제점이었던 타선의 기복이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지만. 그 기복을 해결해주기를 바랐던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완전체가 됐군.”
“일단 현장에서는 크리스 데이비스와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수준의 홈런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괴물이 됐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기존의 출중한 컨택과 출루 능력에 거포로서의 파워까지 장착했으니까.
“타격폼이 바뀐 건 아니겠지?”
“예, 보시다시피 여전히 레벨 스윙에 가깝습니다. 최근 트렌드인 극단적인 어퍼컷과는 거리가 멀어요.”
“타구의 발사각 역시 작년과 유사한 4.7~8도 정도로 머물고 있군. 파워툴 자체가 올라간 거야.”
“비거리 역시 일정하기에, 콜리시엄에서도 비슷한 파워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과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의 상세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빌리 빈은 짧게 한숨을 뱉었다.
만약 다른 거포들처럼 극단적인 당겨치기와 어퍼스윙을 통해 홈런을 노리려고 했다면. 설사 파워툴이 높아지더라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거다.
홈런을 억제하는 콜리시엄에선, 아무리 요즘 트렌드라고 해도, 그렇게 억지로 넘기려고 해봐야 오히려 역효과만 날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의 발전은 기존에 기대했던 정석적인 레벨 스윙에 가까운 타격 내에서 이뤄졌다. 오직 파워만 좋아진 것이겠지.
물론 그렇기에 추가적인 걱정도 있었지만 말이다.
“혹시···”
“아닐 겁니다. 스승이 배리 본즈라는 거야 모두가 다 아는 만큼, 주의대상이니까요. 본인도 그걸 안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다행이군.”
애슬레틱스와 지독하게 얽혔던 약물을 의심한 빌리 빈은 데이비드 포스트의 호언장담에 걱정을 내려놓았다.
“정규시즌에서도 이렇다면, 기존에 계획했던 1번이 아니라, 2번이나 3번 타순으로 옮기는 게 낫겠군.”
“예. 리드오프가 아니라, 클린업이 됐으니까요. 컨택도 아주 준수한.”
어쨌든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대박이 터졌다. 정규시즌에서도 이 평가가 이어진다면 말린스는 제법 배가 아프리라.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는 했지만, 이 분석 대로면 MVP에 준하는 수준이라는 건데. 그 정도는 값이 싸지.’
즉전감인 선발투수와 유격수 유망주를 받기는 했지만, MVP급 타자를 내준 것이니까.
그것도 연봉이 700만 달러밖에 되지 않고, 계약기간도 제법 남은 타자를.
“브루스 맥스웰도 제법 괜찮군.”
“예, 올해는 주전을 맡을 텐데, 제대로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문젯거리였던 체중도 감량했고, 그 덕분인지, 타격에서도 더 날렵해져서, 컨택이 제법 괜찮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멍이라고 할 수 있는 포수 역시, 브루스 맥스웰이 기대 이상의 준비를 갖추고 등장하면서. 최소한 주전 타자진은 완성됐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최소한 B+ 이상의 점수는 줄 수 있을 정도로.
“불펜은···”
“불펜도 B+이상입니다. 리암 헨드릭스도 작년보다 더 나아졌고, 이번에 영입한 신입생들 또한 기대 이상이니까요.”
기복이 심한 타선보다 훨씬 더 심한 골칫거리였던 불펜도 마법처럼 뒤바뀌었고.
유스메이로 페팃-리암 헨드릭스-션 두리틀-블레이크 트라이넨 등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최소한 이길 경기는 확실하게 이겨줄 정도는 됐으니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선발진. 작년 4선발을 담당하며, 준수한 선발진의 일원이었던 켄달 그레이브맨이 이탈하기는 했으나.
“다니엘 멩덴이 생각보다 괜찮고, 고셋 역시 5선발 정도로는 괜찮습니다. 그 밖에도 5선발을 해줄 마이너 선수들이야 차고 넘치고요.”
일단 빈자리는 채웠다.
애초에 스몰마켓 답게 선발투수는 집요하게 모은 만큼, 하위 선발 로테이션을 맡아줄 선수는 제법 있었으니까. 큰 성적은 기대할 순 없겠지만.
그리고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1-2-3선발은···
“기대처럼 굴러가기만 하면 좋겠군.”
“일단 소니도 올해는 괜찮은 것 같고, 션 마네아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Go까지 있으니, 최소한 1~3선발까지는 리그 최고급입니다.”
더 말할 것도 없고.
작년 개막 이전부터 부상에 시달리며 시간을 날렸던 소니 그레이는 트레이드하지 않고 품어준 보람이 있는 건지, 올해는 기세가 날카로웠고. 션 마네아 역시 작년보다 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에이스는, 더 설명하는 게 우스운 선수지.
‘2년차 징크스,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그것이겠지만···’
빌리 빈은 피식 웃었다.
감히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완벽한 준비를 보였으니까. 그들의 에이스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고. 시즌에 알맞게 폼을 올렸으며, 기세는 여전히 대단하다.
듣기로,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된 건지, 마지막 등판 이후로 오직 개막전만 바라보며, 관리하고 있다고 하고.
‘올해는 편안하군. 작년과 비교하면.’
저번 시즌은 기대보단 걱정이 컸다. 그럴 수밖에 없지. 완전히 팀이 망가진 상황이었으니까.
거기에다가 에이스, 소니 그레이가 이탈하면서, 오직 인기와 팬들의 기대감 하나만 보고 루키를 개막전에서 데뷔시키게 했었고.
하지만 올해는 아니다.
단 1년의 시간 만에, 망가진 팀은 사라졌다.
작년과 같은 것이라고는 그저 개막전 선발투수 하나 뿐이지. 모든 게 달라졌으니까. 단순히 선수단을 넘어, 애슬레틱스라는 구단 자체가.
그렇기에 작년 이맘때와는 달리, 불안함은 없었다.
“시즌권이 제법 늘었다고 했지?”
“예, 아무래도 밖에서 보기에도 올해는 기대할만 하니, 상당히 늘었습니다. 거의 4~50% 정도요.”
단순히 빌리 빈 자신이나, 프런트만이 아니라, 팬들 역시 더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기대감을 품고서, 다가올 경기를 기다렸을 뿐. 시즌권이나 유니폼 등으로 그런 기대감을 표출하면서.
‘미들마켓, 최소한 올해는 미들마켓이지, 오클랜드는. 다만, 우승 하나만 보고 모든 걸 준비했으니, 실패하는 순간 무너지겠지만···.’
그렇게 완성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개막전을 기다리는 것 뿐.
‘실패할 것 같지는 않군.’
####
메사에서의 시간은 오늘로 끝이었다. 시범경기와 시즌 준비를 위해 차려졌던 캠프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됐거든.
그건 곧 정규시즌이 시작된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별을 뜻하기도 하지.
“대충 릴리스 포인트는 다 잡았지?”
“예, 느린 커브가 혼자 좀 튀기는 하는데, 그거야 어차피 자주 안 던지니까 상관없고, 나머지는 딱 좋아요.”
“폼은?”
“올라왔죠. 89마일도 찍었고.”
“체력을 너무 쓰진 않았고?”
“대니얼을 뭘로 보시고. 다 관리했어요.”
헤어지기 전, 그렉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뭐, 대충 정규시즌 시작할 준비 잘 됐냐는 거지.
내 당당한 답변에 그렉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쉽네, 올해는 사실 별로 배운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었는데 말이야.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 코치 제안을 거절했다. 이번엔 좀 진심이었는데 깔끔하게 차였지.
“저 이제 돈 좀 많은데, 진짜 코치 안 하실 거예요?”
“구경하는 게 더 나아. 괜히 코치니 뭐니 맡아서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그 짓거릴 현역 때 하면 됐지, 뭘 은퇴하고 나서까지 해?”
“뭐, 본인이 그러시다면야.”
그는 늘 나에게 딱히 가르쳐줄 게 없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렉 매덕스인데, 개인 코치로 있으면 얼마나 많은 걸 배우겠어?
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하니, 어쩔 수가 있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악수나 한 번 하면서 이별을 맡이하는 거지.
“올해도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Mr.Maddux.”
“트레이너 양반도 수고많았수. 정규시즌 동안에도 수고하시고. 이 망아지 때문에 고생 꽤나 할 텐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이 뒹굴어서 그런지, 그렉을 향한 공포에 가까운 동경심을 가졌던 대니얼도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그렉은 다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게 오른손을 내밀려다, 이내 왼손을 내밀었다.
“올해는 인정 안 하는 거예요? 작년에는 특별히 오른손으로 악수해 주셨잖아요? 영광으로 알라면서.”
“작년에는 그랬으니까, 올해는 내가 그 귀한 왼손 좁 잡아보자고. 왜, 꼬와?”
“그럴리가요.”
나도 공을 던지는 만큼, 왼손은 물론 왼팔 자체를 그리 사용하지 않지만, 악수 상대가 그렉 매덕스이니, 흔쾌히 그의 손을 잡았다.
제법 묵직하게 느껴지는 손맛,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건지, 그렉은 씨익 웃었다.
“하여튼 투수 놈들 손은 더럽게 거칠단 말이야.”
“보드라우면 그게 이상하죠.”
“그래, 이게 투수의 손이지. 준비가 아주 잘 됐어. 올해는 월드시리즈 간다고?”
“예, 무조건요.”
“그럼 특별히 발전하거나, 좋아지지 않는 이상, 커터는 던지지 마. 포스트시즌부터는.”
트레이닝 기간 동안에는 말동무만 열심히 해주시더니, 마지막에 조언을 하시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이랬지, 헤어지기 전에 조언을 남겨주는 것 말이야.
어떤 마음에서 나온 조언인지 잘 알기에,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경청했다.
“넌 의외성을 잘 노려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지만, 포스트시즌부터는 달라. 타자놈들이 죄다 예민해지거든. 우리들처럼. 뭔가 별로다 싶으면 바로 알아차리지. 오히려 그 느릿한 커브는 타이밍이 많이 이상해서 통하겠지만, 커터는 바로 넘어간다.”
“역시 아직 좀 별로죠?”
“아직은 약간 별로야, 그래도 정규시즌 동안에는 쓸만하겠지. 투심은 제법 괜찮으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쓰고.”
커터는 여전히 낙제점이지만, 그래도 투심은 인정 받았구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그것이 기쁘게 느껴졌지만, 곧 조금 더 엄중해진 그렉의 표정에 입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포스트시즌에서 지랄할 생각이면, 그러지 마라. 그게 다 미래를 갈아 넣는 거니까.”
그는 마치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내 눈동자를 쏘아봤다. 사실 모르는 게 이상하지.
죄다 월드시리즈 3승이니, 범가너의 재림이니, 나한테 기대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걸 바라고 있고.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올해 나한테 남길 가장 중요한 조언이라는 것처럼.
“난 13번 포스트시즌을 나가서, 35경기를 등판했어. 198이닝을 던졌지. 내 롱런의 비결? 간단해. 정규시즌에서 이미 피로가 쌓인 몸을 더 혹사시키지 않은 덕분이지.”
198이닝이라. 롱런한 선수답게 웬만한 선발투수 정규시즌 수준이네.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이 13번이라는 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적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시즌 당 15이닝, 그리고 경기당 5이닝 정도를 소화한 셈이니까.
말 그대로 포스트시즌에서 자기 몸을 불태웠던 투수들을 생각하면, 그렉 매덕스라는 전설에 비하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지.
“난 널 잘 알아. 넌 분명히 X나게 던질 거야. 작년에는 235이닝이었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 시대에나 해댔던 250이닝을 찍을지도 모르고. 욕심이 강한 놈이니까.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도 어깨를 갈아버리면···”
“망가질지도 모르겠죠. 제가 아무리 어깨가 좋다고 하더라도.”
“커트 앵글, 아니, Go. 넌 젊어. 2004년의 커트 실링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황혼을 불태우는 늙은이가 아니지, 앞으로 최소한 10년, 아니, 15년은 더 뛸 수 있어. 난 그런 네 경기를 시청하는 게 취미가 됐고, 그 시간이 길기를 바란다. 한순간의 욕심 때문에 그런 미래를 박살 내는 게 아니라.”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우승을 노리고 도전을 천명한 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내가 혹시나 미래를 버리고 어깨를 갈아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거겠지.
약간 감동스럽기도 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그만큼 나를 제법 애정 깊게 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조언이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주워섬기는 것이 맞겠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일단··· 포스트시즌 간 다음에 생각해볼게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상황이 눈앞으로 닥쳐오면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최대한 옳은 판단을 내려. 네가 놀란 라이언처럼 300이닝씩 던져도 멀쩡한 괴물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니까.”
그런 조언, 아니, 걱정을 끝으로,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렉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튼 내 경기 보는 게 취미라니, 거참 기쁩니다, 그려. 올해도 열심히 노력해서, 그렉이 좋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오냐, 작년처럼 퍼펙트도 팍팍해라. 현역 때 못 해본 거, 대리만족이라도 하게.”
“혹시라도 작년처럼 두 번 하면, 포수 말고 그렉한테도 롤렉스 하나 보낼 게요.”
“그런 개짓거리는 하지 말고, 보내는 즉시 바로 망치로 박살 낼 거니까.”
그것을 끝으로, 메사와의 안녕을 고했다.
“매덕스 씨의 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케어해드릴 테니까요.”
“저야 뭐, 언제나 대니얼만 믿는 거죠. 올해도 잘 부탁드릴 게요.”
준비도 마쳤고, 눈물의 이별식도 가졌으니, 이제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갈 시간이구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다시 에인절스를 때려잡기 위해서.
####
“안 오셔도 된다니까, 괜히 귀찮게.”
“개막전을 앞뒀는데,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그리고 길이 익숙하지 않으실 테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가 모시는 게 맞고요.”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도 브라이언이 픽업을 나왔다.
내 어여쁜 쉐보레 코르벳과 함께. 오프시즌 동안에는 이동하는 비용이 더 커서 그냥 오클랜드에 뒀었는데. 다시 보니까 여전히 예쁘네.
‘미국놈들이 미국차를 탈 것이지, 자꾸 귀를 팔랑거린단 말이야.’
내가 제법 돈을 벌었다는 게 알려진 건지, 주변 동료들은 계속 페라리니 포르쉐니, 아주 독일차 사라고 난리였는데.
공짜로 얻은 차라서 그런가, 난 얘가 제일 좋단 말이지. 물론 스포츠카라서 조금 비좁기에, 정작 제일 많이 타고 다니는 건,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렌트해준 SUV이지만.
생각해보니 얘도 공짜네.
“에이, 아무리 이사라고 해도, 작년에 살던 곳 근처인데, 그 정도는 알아서 찾아가죠.”
“그랬다가 길을 잘못 들어가서 우범지역에라도 들어가시면, 제가 감당 못합니다. 적응하실 때까지는, 올해도 제가 모셔야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즌 초반에는 브라이언이 픽업해주기로 했다. 단순히 오늘 만이 아니라.
아무래도 집을 옮겼다 보니, 지리에 적응할 때까지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본인이 태워주겠다고 하더라고.
걱정이 많아졌다니까.
어쩌면 내 몸값이 너무 비싸졌기에, 더욱더 예민해진 걸 수도 있고.
“보안 업체는 구했어요?”
“예, 적절한 곳으로 구해뒀습니다. 출동시간도 3분 내외라고 하더군요. 다만, 오클랜드 내라서 그런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비싼데, 괜찮으십니까?”
“어쩔 수 있어요? 사막 한가운데에다 수도관을 연결한 거나 다름없는데, 어느 정도 폭리는 감안해야죠.”
그 밖에도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브라이언은 새로운 집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국제공항을 떠나, 오클랜드 시내로 입성하는 찻길은 여전히 조금은 음산한 기운이 넘쳤지만. 적응해서 그런지, 이런 것들도 반갑게 느껴지네.
-오늘 새벽 2시경 총격 사건이···
“여전하네요, 오클랜드는.”
“여전합니다, 오클랜드는.”
그래, 이것도 참 오랜만이네.
티비만 틀면, 라디오만 켜면 나오는 것들 말이야. 이제 좀 오클랜드 온 것 같네.
내가 왔다고 반겨주는 건지, 여지없이 흘러나오는 뉴스에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디오를 껐다.
“폼은 어떻습니까?”
“좋아요, 대니얼 덕분에 적절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개막전만 노리면서.”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새집이라 혹시 조금 컨디션에 지장이 갈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작년에도 멀쩡했는데요, 뭐. 알다시피 제가 잠자리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서.”
“메이저리거로서는 아주 좋은 체질이죠.”
대니얼의 말에 정답이라는 듯 브라이언은 피식 웃었다. 이러니까 진짜 작년으로 돌아간 것 같네.
브라이언이 픽업해주고, 우린 뒷좌석에 앉아서 떠들고. 딱 작년 5월까지의 풍경이지.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내 입지겠지. 시내로 완전히 진입한 차창 너머로 내 얼굴이 자주 보였다.
[Go You-Suck, March 29, vs LA Angels!]
[Baseball Is Back! Suck Is Back!]
벌써부터 오클랜드 시내에선 대대적으로 내가 등판할 개막전을 홍보하고 있었다.
Suck is Back이라니. 뭔가 좀 부끄럽네. King is Back도 아니고 말이야.
그게 끝은 아니다. 내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언뜻언뜻 보였으니까. 심지어 어떤 차는 차 전체에 내 모습을 래핑하기도 했고.
아마도 레이더스겠지.
저런 짓을 할 사람은 그 양반들 밖에 없어. 어우, 보는 내가 다 부끄럽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오클랜드이기도 했다.
‘그래, 이런 곳이지. 오클랜드는.’
미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위험하고, 총격사건이나 강도사건, 살인사건 등, 중범죄가 밥 먹듯이 일어나며.
디트로이트와 더불어 망한 도시의 표본과도 같은 도시이지만,
언제나 나한테는 친절한 곳. 오직 나한테만 열광하는 곳, 항상 내 피칭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내 도시’.
도시 가득 채운 내 얼굴과 열광적인 분위기에, 그제야 정규시즌이 시작되었음이, 오클랜드로 내가 돌아왔음이 느껴졌다.
‘그렉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분위기를 공기처럼 빨아들이니, 가슴도 다시 두근거렸다.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래, 이게 마지막 준비물이었겠지. 정규시즌, 개막전을 위한 마지막 준비물 말이야.
‘이러니 열심히 안 하고 배겨?’
몸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도 잘 장착됐고. 정신적으로도 이미 준비가 됐지.
그리고 마침내 오클랜드에 도달했을 때, 마음 역시 준비를 마치고, 시즌이 끝난 뒤 겨울 동안 잠시 꺼졌던 불길이 다시금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