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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94화 (194/316)

194화

“후우···”

3회 초를 열심히 지워버린 뒤,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길은 왠지 조금 두근거렸다.

뭔가, 숙제 검사받기 직전의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괜히 걱정되고,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하고. 그런 거 말이야.

‘다행히 시동은 빨리 걸렸는데···’

컨디션이 좋기도 했고, 불펜에서도 적정 수준까지 미리 올려둬서 그런가. 인터벌은 3회부터 빨라지기는 했다.

그래서 냅다 엑셀을 밟기는 했는데, 중요한 건 인터벌이 아니라, 문제 없이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와 잘 어우러졌느냐지.

“네가 보기에는 어때? 문제없어 보여?”

그렇기에 초조한 마음에 덕아웃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브루스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씨익 웃으면서.

“너도 아는 것 같은데, 뭘 묻고 그래? 아무 문제 없어. 그냥 전이랑 똑같아, 약간 부족한 부분도 똑같고. 아마 인터벌이 빨라지는 게, 릴리스 포인트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

“혹시나 홈 플레이트에서 보면 다를 수도 있잖아? 똑같다니 다행이네.”

그것으로 일단 걱정은 사라졌다.

아주, 아주아주 다행이지.

솔직히 말하면, 진짜 답도 없거든. 만약 정말로 문제가 있었다면 말이야.

연습도 못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 둘 중 하나를 포기하든가 해야지. 내 욕심 상 하나를 포기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겠지만.

‘다행히 크게 이상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제 사라졌다. 내가 직접 느끼기에도, 브루스가 홈 플레이트에서 봤을 때도 딱히 문제는 없어 보였으니까. 인터벌이 빨라지기 전이나, 그 이후나. 릴리스 포인트는 일정했으니까.

물론 혹시나 싶어서, 일부러 최대한 집중해서 던지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안심해도 괜찮겠지.

그러니 참으로 다행이지만.

완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그런데, 공 받아보니까, 왠지 좀 다르던데, Suck 너도 느꼈어?”

“어, 인터벌 빨라진 뒤부터는 확실하게 느낌이 달라.”

릴리스 포인트는 똑같은데, 그 외의 차이가 발견됐다고 해야 하나? 직접 공을 받으면서, 브루스도 그걸 알아챈 것 같고.

“괜찮을까?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글쎄, 그래도 릴리스 포인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니까. 큰 이상은 없겠지.”

혹시 그게 무슨 지장이라도 줄까 싶었던 건지, 브루스는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였으니까.

‘나한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되지는 않아.’

우리 말에 그렉이 씨익 웃는 걸로 보아, 그는 아마도 이미 예상했던 것 같고.

알면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은, 아마 내가 자꾸 롤렉스나 퍼펙트를 언급한 게 뒤끝이 남은 거겠지.

아니 뭔, 명색이 그렉 매덕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속이 좁아. 그 뭐야, 스승과 제자 간의 정겨운 농담 정도 가지고 말이야.

그리고 인스트럭터라는 양반이. 우리 팀한테 돈을 받으셨으면 일을 하셔야지. 진짜 내 말동무만 하시려고?

“자기가 현역 때 퍼펙트 못해놓고···”

“들린다, 꿍얼대지마라.”

“들으라고 한 거예요. 큰 문제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만약 문제가 되는 거였으면 어쩌려고 말을 안 해요?”

“네 말처럼 진짜 문제가 될 거였으면 당연히 알려줬지. 아니니까 닥치고 있었던 거고. 오히려 너한테 이득이잖아?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발견하니까 선물 같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이야~ 직무유기 해놓고 더럽게 당당한 것 좀 봐라.

클클거리는 모습이 얄미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긴, 진짜로 문제가 됐으면 당연히 알려줬겠지.

오히려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도 그냥 투덜거리기나 하는 거고.

“예예, 아주 서프라이즈 선물 같아서 좋습니다 그려. 그래도 제가 심장이 좀 약하니까, 다음에는 미리 말해주세요.”

“오냐.”

그래도 그의 확인까지 받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의 반응을 보아 정말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한 이닝 더 남았으니, 성능을 확인하면 되겠네.’

모든 걱정이 사라진 만큼,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이닝을 기다리고 있으니.

“Go, 원하는 건 이미 얻은 것 같은데, 내려가는 건 어때? 뒤에 사람들한테도 기회를 줘야지? 다들 손가락만 빨고 있잖아.”

슬그머니 다가온 스콧 에머슨은 그렇게 회유했다. 어허, 어딜 은근슬쩍 약속을 어기려고.

다른 투수들을 언급한 걸로 보아, 아마 내 양심을 건드리려고 한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약속대로 할 게요, 약속대로. 설마, 벌써 50구 넘은 건 아니죠?”

“그건 아닌데··· 에휴, 됐다. 알아서 해라. 어차피 들어먹지도 않을 텐데, 내 입만 아프지.”

“다음 이닝만 딱 더 던지고 바로 내려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뜻밖의 효과를 낸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원래 목표를 120% 충족한 셈이지만.

그래도 난 4이닝 꽉꽉 채울 생각이다. 리미트로 걸었던 투구수 제한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잖아?

또, 겸사겸사 폼 좋을 때 미리 감을 잡아둬야, 도움이 될 테고.

“그래도 괜찮아 보이던데, 큰 문제는 없는 거 맞지?”

“예, 살짝 뭔가 찝찝하긴 한데, 그렉도 괜찮다고 했고, 브루스도 그랬으니까, 아마 문제는 없겠죠.”

“그렇다니 다행이네.”

설득을 포기한 건지, 고개를 절레저은 그렇게 물은 뒤 다시 물러났다.

더 던지는 걸 말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우려했던 일이 없었다는 것에 그 역시 만족하는 것 같았고.

“아웃!”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기다린 뒤, 3회 말 우리 공격이 끝났을 때, 다시 글러브를 집었다. 마지막 이닝을 위해서.

####

“교체 안 하네,”

“저 새낀 진짜 우리한테 원한이라도 있나? 시범경기에서도 지랄이네.”

다시 마운드로 올라온 투수를 보며 짜증 섞인 한탄이 쏟아졌다.

아이싱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교체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이미 예상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다시금 꾸역꾸역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니, 울컥 화가 솟구쳤으니까.

작년에 자신들을 조롱거리로 만든 걸로도 모자란 건가? 시범경기에서도 이렇게 잡아 족칠 정도로? 레인저스에 대한 원한이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조이 갈로는 조금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자, 다들 대충 확인은 했지? 릴리스 포인트가 중간중간 미묘하게 다른 거.”

그렇게 타자들이 투덜거렸을 때, 코치가 주의를 끌었다.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래, 릴리스 포인트.

그것도 제대로 봤지. 그 신무기라는 놈 말이다.

올해도 타자를 갈아 마시고 싶은 건지, 그런 것까지 준비했다.

대다수는 어차피 상대가 안 되니 상관없지만, 이미 그에게 제법 익숙했던 조이 갈로 그는 그것으로 인해 순간 타이밍을 놓쳤었고 말이다.

‘작년 내내 릴리스 포인트 본 노력이 다 쓰레기통에 박혔네.’

기이하게 중간중간 바꿔대는 릴리스 포인트는 타이밍을 흔들기 충분했다.

괜히 현혹되기만 하니, 차라리 그냥 안 보고 스윙이나 힘차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정규시즌에도 지독하게 만날 놈인데, 미리 봐두자. 다들 타격보다는 관찰에 집중해. 제대로 지켜보라고.”

조이 갈로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타격코치는 본론을 말했다.

오늘의 경기를 제물로 바치고, 최대한 정보라도 모으자는 건데.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애초에 시범경기의 취지가 그것이기도 하고.

정규시즌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정보를 얻어두는 것이 나을 테니까.

“조이, 너도 제대로 지켜보고. 솔직하게 말해서··· 너밖에 없거든. 쟤 상대로 큰 거 날릴 사람이. 이번 기회에 최대한 적응해, 최대한.”

다른 타자들의 자존심을 위해서인지,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조이 갈로는 마찬가지로 준비를 마친 투수를 바라봤다.

한숨만 나오는 그들과 달리, 아주 여유로운 모습을 풍기는 투수, Suck의 모습은 묘한 박탈감마저 선사했다.

‘넌 뭐가 그렇게 편하냐?’

그렇게 물어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똑같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유썩, 뭐 항상 이렇지.

“어때?”

“그냥··· X같아. 인터벌이 빨라졌는데, 릴리스 포인트까지 바꿔대니까, 애초에 타이밍을 못 잡겠어. 다 제각각이야.”

“그래, 수고했다.”

그렇게 처리된 4회 초의 선두타자이자 1번, 드류 로빈슨은 욕설과 함께 돌아왔다. 코치의 지시대로 얌전히 지켜봤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거겠지.

아니, 그보다는 훗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보이기도 했다. 나중에 정규시즌에서 만날 때는, 지금처럼 시범경기라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을 테니까.

“느낌이 너무 다르단 말이야.”

그런 드류 로빈슨을 뒤로한 채, 덕아웃을 나가 연습스윙을 했을 때, 오늘 나오지 않았던 아드리안 벨트레가 슬그머니 난간에 기대서 그렇게 속삭였다.

“당연히 다르죠. 아예 릴리스 포인트가 다른데.”

그의 말에 조이 갈로는 그저 코웃음만 쳤다. 이 리빙 레전드 타자는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지만, 이렇게 종종 뻔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자신이 너무 대단한 타자라서 그런자, 다른 녀석들은 본인이 아는 걸 모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처럼.

당연히 다르지, 릴리스 포인트가 다른데, 그런 반문에 아드리안 벨트레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조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봤고.

“말을 못 알아들어. 그거야 당연히 그렇고. 인터벌 빨라진 뒤에는 차이가 더 크다고.”

“···그래요?”

“잘 봐, 아주 집중해서. 투수가 놓는 순간부터 글러브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를 정확하게. 마음속으로 시간까지 세어 보고.”

그 말에 조이 갈로는 한번 속아본다는 생각으로 지켜봤지만, 주릭슨 프로파가 박살날 뿐, 딱히 별다른 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에 다시금 코웃음을 치려던 찰나, 문득 느껴졌다. 벨트레가 말했던 미묘한 차이가.

“이거···”

“어때? 또 다르지?”

“네, 달라요, 아주 조금.”

“릴리스 포인트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인터벌이 빨라지면서, 그 차이가 더 커진 거고.”

그 순간 왠지 조금 흥분감이 찾아왔다.

무적의 투수가 또다른 무적의 방패를 장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빈틈을 찾아낸 것 같았으니까.

그로 인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아드리안 벨트레가 헛소리하는 노인에서, 현묘한 지혜를 가진 현자로 둔갑되었다. 최소한 조이 갈로의 눈으로는.

“그럼 잘 이용해서 두들기면-”

“글쎄, 직접 봐라. 저게 이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더 X같은 건지.”

그는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에 벨트레는 훨씬 시큰둥해졌다. ‘뭘 모르는구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에휴, X같은 Suck, X같은 코리안. 더 X같아져서 왔네. 아, Choo 너한테 한 말은 아니야.”

“알아. 그래도 코리안은 빼라.”

대단한 발견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벨트레가 의아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곧 타석이 돌아왔기에 더 물어보지 못하고서 홈 플레이트로 향했다.

‘그래, 일단은 한번 지켜보자. 제대로 눈에 담는 거야.’

벨트레의 반응과 상관없이, 기대감을 품고 타석에 오른 조이 갈로는 살갑게 환대하는 투수를 보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래, 자신을 마치 실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았으니까. 녀석에겐 그조차도 딱 그런 수준이라는 거겠지.

자신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가지고 놀면서 테스트하는 장난감.

‘한 방 날린다.’

그렇기에 더욱더 집중을 올렸다. 시범경기인 건 중요하지 않았다, 타자로서의 프라이드가 걸려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조이 갈로는 작년 녀석에게 선사했던 세 번째 피홈런의 손맛을 다시금 끌어 올렸다. 저 오만한 얼굴에 큰 거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해서.

“파울!”

초구부터 나간 스윙.

나름대로 빠른 인터벌에 타이밍을 맞췄다고 생각했건만, 조금은 늦었다.

시범경기인지라, 아직 폼이 올라오지 않은 만큼, 파워에서도 밀리기는 했고.

‘그래도 나쁘지 않아. 집중하자, 집중해. 약간 다르다. 그 차이점을 보고, 하나만 날리는 거야.’

두 눈을 부릅뜨고 투수를 지켜봤다. 그의 동작보다는 피칭 타이밍에 집중해서.

아까 전, 대기타석에서 보았던 그 차이점을 다시금 눈동자에 담기 위해.

“볼!”

“스트라이크!”

허나 그런 집착이 상대 투수의 눈에 훤히 보였던 건지, Suck은 기존의 릴리스 포인트대로만 공을 던졌다.

그것도 둘 다 포심으로.

3구 연속 포심.

이미 바닥으로 내려갔던 감정이 한결 더 불쾌해졌다.

자신을 뭘로 보는 걸까?

날 우습게 생각하는 건가?

진짜 가지고 놀려고?

그런 생각이 조이 갈로의 머릿속에 차올랐지만, 그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다.

제아무리 농락당하고,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다뤄진다고 해도, 꾹 참고 하나 날리기만 한다면, 결국 승자는 타자이니까.

‘와라.’

입술을 꽉 깨문 채 기다린 4구. 요동치는 감정 덕분인지, 집중력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왠지 시간이 조금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또 패스트볼!’

그 순간 날아온 4구는 타이밍이 빨랐다, 최소한 앞서 본 세 개의 포심과 비슷하게 말이다. 또다시 패스트볼.

정말로 자신을 가지고 놀려고 한 건지는 몰라도, 네 번째 패스트볼을 놓칠 만큼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조금 감정을 실어 스윙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공이 중간지점을 지나쳤을 때였다.

“어?”

패스트볼이 아니었으니까.

순식간에 날아온 공은 유유히 포수 글러브로 들어갔다.

배트가 이미 지나간 뒤에.

“스트라이크 아웃!”

당연히 스트라이크 아웃.

들어온 공인 서클 체인지업. 찍힌 구속도 딱 체인지업이었다. 포심보다 훨씬 느리지.

‘근데 왜 타이밍이-’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앞서 세 번이나 본 포심 패스트볼과 비슷하다고 착각을 한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의문이 차올랐을 때, 문득 양팔의 털이 바짝 섰다.

“아.”

그제야 깨달았으니까. 아드리안 벨트레가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

“어때, 말 안 해도 상관없지? 문제가 될 건 없다니까? 오히려 이득이지.”

덕아웃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렉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이 괜히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 말처럼 이득이었으니까.

무조건 이득이지, 이 차이점은. 특히 타석에서 봤을 때는 더욱더 극대화가 될 거고.

“커트 앵글 니가 얼마나 미친 짓을 해버린 건지, 이제 좀 알겠냐? 이건, 진짜 또라이 같은 일이야.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예, 최소한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에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익스텐션이 낳은 효과였다. 놓는 지점 말이야.

내가 만든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는 기존의 것보다 높으면서, 조금 더 깊숙하다. 좀 더 팔을 앞으로 뻗어서 던지지.

즉 놓는 지점, 익스텐션이 마운드에서부터는 더 멀고, 타석에는 기존보다 더 가깝다는 건데.

익스텐션이 길수록 타자가 느끼는 체감구속이 더 빨라진다는 거야 아주 정석 중의 정석이다.

그렉의 말처럼 모르면 바보야, 이건 세이버메트릭스도 아니거든. 그냥 상식이지.

그렇기에 타이밍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고. 이거야 애초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거다,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를 만들면서 노린 것이지만···

“인터벌이 빨라지니까, 그 차이가 더 커지네요. 엄청나게.”

인터벌의 가속이 그것에 더욱더 극명한 차이를 만들었다.

기존의 인터벌을 유지했을 때, 섞어서 피칭하는 것이 타자의 타이밍을 흔드는 정도라면.

이건 단순히 과장을 넘어서, 진짜 아예 타이밍 자체를 박살내는 것이니까. 완전히 다르거든.

‘분명 똑같은 차이가 존재하고, 똑같은데도, 전체적인 동작의 속도가 빨라졌으니,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기존의 것은 왠지 좀 느리게, 반대로 새로운 것은 왠지 좀 더 빠르게.’

전체적인 동작의 속도.

그것이 가속되었으니, 당연히 차이가 극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분명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그걸 패스트볼로 완전히 타이밍을 착각할 정도로 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조이 갈로가 마지막에 보여준 헛스윙이 그걸 증명했다.

‘분명 패스트볼을 노린 스윙이었어.’

그는 마지막 순간 패스트볼을 노렸다. 그것도 제법 확신에 차서.

아마도 본인은 굳게 믿은 거겠지. 앞서 패스트볼을 세 개나 봤으니, 그것들과 타이밍과 속도가 비슷하다고 말이야.

허나 놓는 지점이 타석과 가까웠기에, 괜히 더 빨리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 정작 구속은 훨씬 느리니, 그냥 헛스윙이 된 거고.

사실 체인지업 자체가 원래도 그런 용도의 구종이지만, 그 효과가 더 극대화가 된 거지, 이걸 다르게 말하면-

“선택지가 늘어난 수준이 아니라는 거야.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겠죠. 같은 구종, 같은 구질인데도 서로 던지는 타이밍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니까.”

다른 구종들도 마찬가지라는 거고. 단순히 서로 다른 구종의 차이 수준이 아니다.

최소한 인터벌이 빨라진 동안에는, 내가 가진 모든 구종과 구질들이 완벽하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릴리스 포인트로 인해 타이밍이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다른 공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순히 비유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다른 투수 두 명이 된다는 뜻이지.

“더군다나, 인터벌은 중간부터 빨라지니까, 이미 앞의 타석에서 어느 정도 적응한 타자들한테는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죠.”

포수장비를 벗고 있던 브루스는 우리 얘기를 듣고는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포수가 아닌, 타자 브루스 맥스웰의 마음이겠지.

“내가 뭘 도운 거야··· 맨해튼 프로젝트에 가담했던 과학자들이 이런 기분이었겠네.”

“오, 제법 유식한데? 그런 것도 알아?”

“···Suck 네가 날 너무 바보로 아는 거겠지. 아무튼, 좀 소름돋네.”

“뭘 소름까지 돋아. 어차피 우린 조지는 입장인데.”

“그래, 그게 진짜로 다행이지. 너랑 같은 편이라는 게.”

그것으로 모든 확인은 끝났다. 테스트도 끝났고.

확인 결과,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더욱더 감을 잡았으며, 인터벌과도 잘 조화가 됐지. 거기서 비롯된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효과도 발견했고.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정규시즌이 기대되네.”

“곡소리 날 거야. 타자들 입에서. 혹시 모르니까, 시간 날 때 호신술이라도 배워라. 타자들한테 얻어맞을라.”

예정된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더욱더 철저하게 몸을 가다듬으며, 정규시즌을 향해 달리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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