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2년차 징크스 의혹을 비웃는 완벽투! 고유석 3이닝 8탈삼진!>
<그에게 소포모어란 없다! 더욱더 강력해져서 돌아온 Go!>
경기가 끝나기도 전부터, 아니, 그가 첫 공을 던진 순간부터 작년 그의 경기 날처럼, 기사가 해일처럼 몰아쳤고.
그 덕에 원래부터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젠 모두가 알게 됐다.
고유석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다시금 메이저리그를 불태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A’s]
[뭐? 혹사의 후유증? 올해는 달라? 2년차가 뭐 어째? X까는 소리한 놈들은 그냥 접시물에 코박고 뒤져라.]
└이게 Go지! 이게 Suck이지! 괜히 걱정했네. 어차피 이렇게 잘할 텐데.
└딱 보니까, 올해도 시동 걸렸네. 못해도 작년처럼 하겠는데?
└루저 새끼들, 난 경기장에서 직접 You Suck 했다! 몇 달 만에 해서 그런가, 바지가 다 흥건했어! 슈퍼볼도 X도 재미없더니, 역시 이제 날 지리게 하는 건 Suck밖에 없네!
└나도 X나게 흥분하기는 했는데, 일단 넌 비뇨기과부터 가라, 그게 왜 질질 새...
아니,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애슬레틱스 팬이라면, 거의 다 경기를 지켜봤다.
머나먼 피닉스까지 날아가 직관했던지. 아니면 애석하지만, 중계방송으로나마 시청했던지 말이다.
그렇기에 작년내내 열광했던 것처럼, 타자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너무나도 손쉽게 삼진을 만드는 모습이 짜릿했고 말이다.
[#Rangers]
[또 시작이네. X같은 새끼. 올해도 또 X같겠어···]
└누구? Suck?
└최근 X같은 새끼가 걔 말고 더 있냐?
└하, 235이닝이나 던져놓고 팔팔하네. 오히려 더 좋아보이던데?
└X발 혹시나 해서 경기 좀 봤는데, 괜히 봤네. PTSD 올 거 같다.
[#Angels]
[Go는 올해도 잘할 것 같은데? 진짜 최악이야.]
└뭐, 대부분 마이너였으니까. 오타니가 맥없이 당한 건 나도 좀 아쉽기는 하지만,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
└올해도 개막전에서 오클랜드랑 붙지? 벌써부터 짜증난다.
└왜 하필 저런 놈이 오클랜드에서 나온 걸까?
└그래도, 이번엔 오타니가 있잖아! 100마일을 던진다던데. 타자 쪽은 몰라도, 투수로는 확실하겠지.
물론 마찬가지로 그것을 지켜보거나,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 작년 고유석에게 시달렸던 팀들은 다시금 좌절감을 느꼈지만 말이다.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투수가, 올해도 저번과 똑같이, 자신들을 털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겨우 한 경기, 그것도 시범경기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악몽을 되새김질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시범경기의 시작과 동시에 충격과 공포가 이어졌을 때.
두 번째 파도는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밀려왔다.
<이번 시즌에 대한 준비가 완벽하게 된 고유석의···>
그에게 우호적인 특집기사 혹은 칼럼을 준비했던 이들이, 이번 피칭에 안심하고서 마저 작성을 끝낸 뒤, 엔터를 눌렀으니까.
특히나 여러 전문가들의 경우,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 때부터 거론되었던 신무기의 실체가 드러났기에, 더욱더 흥분했고 말이다.
두 가지의 릴리스 포인트.
작년, 두 가지의 서클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을 쓸어버렸던 고유석이기에, 이번 경기에서 드러난 그것에 기시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수많은 구종과 파워피처, 그리고 피네스 피처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고유석에게 다시금 특이점이 생겼으니.
정말로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두 명의 투수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줬으니까.
그렇기에 고유석이 또다시 진화를 선보인 것이라며, 기대감을 품은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반대로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났기에, 기대감만큼이나 그것 역시 더 커졌다.
<고유석의 위험한 도박, 과연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까?>
<두 가지의 릴리스 포인트? 위험도 두 배!>
<리그 최고의 투수가 벌인 ‘멍청한 짓’, 젊음의 욕망이 최고의 재능을 망치나?>
불안한 요소가 없지는 않았으니까. 분명 새로운 모습이 흥미롭고, 제법 효과가 좋아 보이기는 하나.
그 위험성이 큰 방식인데다가, 상대가 대부분 마이너리거들이었니, 효과 역시 아직은 불분명했으니까.
<여전히 루키의 태를 벗지 못한 Go?>
<그는 메이저를 노리는 신인이 아닌, 한 팀의 에이스! 적절한 폼 관리를 해야··· 여러 전문가들 시범경기 첫날부터 강력한 피칭을 보여준 Go에게 쓴소리!>
또한 보여준 모습이 대단히 강력했기에, 오히려 폼을 너무 빨리 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고 말이다.
한 시즌을 보고, 장기적으로 시즌 운영을 계획해야 하는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가, 시범경기에서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는 건 오히려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으니까.
[#A’s]
[겨우 마이너들 좀 털은 건데, 다들 너무 과하게 흥분한 거 아니야?]
└x신이냐? 아니면 레인저스 첩자? 과하게 흥분은 지랄.
└상대 타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피칭을 봐야지.
└앞에 마이너가 아니라, 허수아비가 있어도 상관없지. 중요한 건 Go가 여전히 강력한 피칭을 보여줬다는 것. 그 자체야.
허나 그런 찬물을 붓는 듯한 우려조차도 분위기를 깨트리지는 못했다.
그저 고유석이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고, 작년처럼 아주 강력한 피칭을 보여줬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적어도 겨울 동안 기다려왔던 팬들에겐, 그것이 마치 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처럼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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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의 첫 실전의 감각은 굉장히 짜릿했다. 그다음 날까지도 여운이 남을 정도로.
그래, 이 맛이지. 타자들 삼진으로 잡는 맛이 바로 이거지.
연습게임이나 훈련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이 날카로운 감각 말이야.
“그렇게 좋냐? 시범경기에서 겨우 마이너 애새끼들 잡은 거 가지고?”
다음날, 가볍게 몸을 풀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그렉은 흥겨운 내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
“미치는 줄 알았거든요. 개쩌는 걸 발견하고, 열심히 연마했는데. 정작 앞에 타자가 없으니··· 크~ 너무 좋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관종이 맞는 것 같아. 진짜 답답했거든.
연습에서 멋들어진 공을 던졌는데, 그거에 환호해주는 사람도 없고, 뭔가 피드백도 없으니, 던지는 맛이 날 리가 있나.
거기다 새로 준비한 것도 있었기에, 그것을 실전에서 써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답답하기도 했고.
“그래, 참, 야구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보기는 좋네. 보기는 좋아. 그래도 커트 앵글, 복기는 해야지?”
“그래야죠. 타자들 잡으려고 공 던진 게 아니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경기의 감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시범경기 동안 내 피칭의 목표는 오직 경험과 그것을 통한 발전이었으니까.
삼진을 잡았고, 간만에 You Suck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게 제일 중요하지.
“일단 그보다 먼저, 아무 이상은 없었죠?”
“걱정 마요. 아주 멀쩡하니까. 긴 이닝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딱 좋아요.”
“실전에서도 안전하다는 건데, 다행이네요.”
실전과 연습은 다른 만큼.
혹시라도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가 실전에서는 신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에, 그것을 염려한 대니얼이 물었지만, 내 대답에 조금 안심한 듯 표정을 지었다.
몸 상태는 그냥 평범한 정도.
평소에 딱 3이닝쯤 던졌을 때 이런 몸상태지. 아니, 적절하 조절했기에 더 좋다.
그러니 일단 안전성 테스트는 통과했고, 또한 기대했던 효과도 보았다.
“확실히, 각 잡고 제대로 던지니까, 다시 감이 잡히는 것 같아요. 뭐랄까, 뭔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좋은 징조네.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는 거니까. 실전 한번 한 것 치곤 많이 올라왔네.”
확실히, 조금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던 것이 다시 뚫렸으니까. 속도 아주 후련해졌고.
실전을 통해, 연습으로는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정 이상의 선, 혹은 벽에 금이 간 거겠지.
이렇게 몇 번 대가리 박다 보면, 벽이 완전히 뚫리고, 그때부터는 이전처럼 또 술술 올라갈 거다. 좋은 징조지.
‘그리고, 오타니 덕분에 대충 사용 방법도 알겠어.’
그리고 지난 경기에서 얻은 건, 단순히 숙련도의 향상뿐만이 아니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큰일을 해줬거든. 걔 덕분에 내 새로운 패턴의 사용법을 깨달았으니까.
“일정 수준 이하를 상대로는 그냥 평범하게 던지는 게 낫겠어요.”
“그래, 감이 안 좋은 타자들은 별 미동도 없지?”
“네, 욕심 때문에 눈이 가려졌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렉도 딱 알아차렸네.
대단한 양반이야, 벤치에서 지켜본 것만으로 정확하게 맥을 짚는 걸 보면.
사실, 지난 경기의 성적은 새로운 패턴 덕분이라기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내 역량이었다.
애초에 마이너잖아?
새로운 방법을 통해 농락했다기보다는. 그냥 실력으로 찍어 누른 거에 가깝지.
‘영~ 감을 못 잡아. 특히 컨택이나 눈이 별로 안 좋은 타자일수록 더더욱. 출루율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던데. 그렉이 말한 것처럼 감각의 영역이겠지.’
왜냐면, 다른 타자들은 딱히 감을 못 잡더라고. 중간중간 바꾸더라도,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별다른 리액션도 없고, 열심히 관찰해준 브루스 역시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고 했다.
그저 긴장하거나, 여전히 나를 사다리나 티켓으로 여기면서, 탐욕스럽게 바라볼 뿐.
‘그에 반해, 오타니는 미세하게나마 느꼈지. 마지막에는 확실하게 알아차렸고.’
하지만 딱 한 명, 오타니 쇼헤이는 달랐다. 얜 제대로 반응이 나왔지.
걔 타석에서는 두 번을 섞었는데, 첫 번째는 긴가민가였고, 두 번째에선 삼진당하면서 알아채더라고.
‘타자로서 재능도 대단하다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네. 그 재능 덕분에 나도 이득을 봤어.’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그 차이점은 결국 실력 혹은 재능이다.
릴리스 포인트를 포착하고 느낄 정도의 재능이나 실력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지.
비슷한 경우로, 가볍게 연습게임했던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있다.
‘옐리치한테도 잘 통했어. 얘도 바로 알아차렸고.’
정상급 리드오프인데, 그 실력이야 뭐, 더 말할 것도 없지. 코치들 말을 들어보아, 어쩌면 더 잘해진 것 같다고도 하고.
그러니 실력이 좋고, 투수의 타이밍에 금방 익숙해지는 타자일수록 더욱더 효과가 좋지만.
그렇지 못한 타자들을 상대로는 그냥 다를 바가 없을 거다.
“작년에 그렉이 말해줬던 것과 비슷하네요.”
“그래, 일정 이하는 그냥 찍어 누르는 게 나아. 별다른 방법을 섞기보다는.”
그것으로 얻어낸 방법은, 작년에 그렉이 나한테 가르쳐줬던 경기 운영과 비슷했다.
그랬었잖아? 일정 수준 이하의 타자들을 상대로는 굳이 머리 써서 정신력 허비하지 말고 그냥 속편하게 때려잡으라고. 실제로 작년에 그렇게 피칭했었고.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 혼자 쌩쇼를 해도 상대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괜히 헛지랄이나 하는 거지.
“다만 타석이 계속될수록 좀 다르긴 하겠죠. 그리고 시즌이 좀 진행돼서, 같은 팀을 몇 번 만나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를 거고요.”
아무리 감이 없어도, 내 피칭에 익숙해지고 조금 적응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래도 좀 이상함을 느끼기는 할 거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딱 알맞은 사용법이 있지.
“그러면 딱 좋네. 처음에는 잘하는 놈들한테만 쓰다가, 커트 앵글 너 인터벌 빨라질 때 본격적으로 섞으면 딱이겠어.”
“오, 좀 소름 돋았어요. 역시 매덕스. 그걸 바로 아시네.”
“겨우 이런 걸로 칭찬하면 오히려 쪽팔리니까, 하지 마.”
여윽시, 우리 그렉 매덕스.
바로 추론하시네.
그래, 이게 딱이지.
아마 타자들 머리 터질 걸?
“인터벌도 타이밍을 망치는데, 거기다가 릴리스 포인트까지 끼얹으면··· 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브루스는 닭살이 돋는 건지, 제 팔을 쓸어내렸다.
그래, 진짜 끔찍하지.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열심히 얻어터지다가, 이제 좀 타이밍 잡았다 싶었는데, 갑자기 인터벌이 빨라지고, 거기에 릴리스 포인트까지 달라져? 그것도 시시각각?
솔직히 내가 타자라면, 그냥 야구방망이 땅바닥에 던지고 마운드로 달려가서 투수 아구창 날릴 거야.
그것을 상상하며 씨익 웃으니, 그렉도 기대가 된다는 듯 마찬가지로 사악한 미소를 보여줬다.
“내가 가르칠 게 없다니까. 나랑 똑같은 생각하는 것 좀 봐, 이 사악한 놈.”
“You Too.”
그렇게 나와 그렉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을 때, 옆에서 지독하다는 듯 지켜보던 브루스는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말이야, Suck 너, 그 새로운 릴리스 포인트, 인터벌 빠르게 하면서 쓴 적이 있던가?”
“어? 그야··· 없지?”
당연히 없다.
왜냐고? 내 인터벌은 충분한 집중력과 경기 감각이 올라왔을 때 가속을 시작하는데. 연습에서 그런 게 어딨어?
그걸 내 마음대로 껏다 켰다 못하니까, 인스트럭터로 마크 벌리롤 모셔오려고 했던 거고.
애석하게도 그가 거절해서 지금 눈앞에 있는 그렉이 대신 왔지만. 그러니 그런 연습 경험은 없다.
그렇기에···
“그치? 나도 열심히 도와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더라고. 그러면 괜찮은 거 맞아? 릴리스 포인트도 다른데, 갑자기 속도도 빨라지면. 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아니면, 그렇게 던지면 인터벌이 안 빨라진다거나.”
“아···”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고. 이것 참, 뭔가 해결되려고 하니까, 새로운 문제가 생기네.
####
브루스가 안겨준 고민은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마땅한 방도가 없었으니까.
“실전에서 시험하는 건 위험할 텐데, 여전히 연습에서는 가속이 힘들어요?”
고민하는 내 모습에 대니얼은 그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내 트레이닝을 주관하는 게 그니까.
“네, 뭐, 알다시피 준비가 필요해서. 연습으로는 어려워요. 어지간히 컨디션이 좋지 않고서야.”
보통 시동이 걸릴 때까지 필요한 이닝은 3이닝 정도다. 한 4회쯤 되면, 집중력이나 감각이 적절하게 올라오지.
물론 컨디션이 좋거나, 감이 좋은 날은 3회부터 가능하기도 하고.
적절하게 올라온 뒤에는 내가 원할 때 스퍼트를 올릴 수 있지만, 제로백 테스트처럼 급발진이나, 급가속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기에 연습피칭으로도 힘들고. 아무리 연습을 실전처럼 하라고 하지만, 결국 진짜 실전이랑은 느낌 자체가 다르니까.
“그러니, 연습으로 확인하려야 할 수가 있나.”
그러니 결국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빠르게 인터벌을 가속하는 것과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실전에서 확인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건데···
실전에서도 최소한 발동까지 3이닝이 필요하니, 4이닝을 던져야 했다.
웬만하면 빨리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걸 구단에서 허락해 줄까?
“무슨 연습? 또 혹시 뭐, 나 몰래 준비한 거라도 있어?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또 놀래키지 말고. 대니얼 씨도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미리 준비하죠.”
짧게 입맛을 다셨을 때, 스콧 에머슨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주 뜨겁게 노려보면서 추궁하기도 했고. 너무하네, 내가 무슨 사고치는 개구쟁이 어린애도 아니고.
아니지, 코치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지도···
“없어요, 없어.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보여드렸죠.”
“하하, 앞으로는 최대한 구단과 협조하겠습니다.”
“그래, 부탁 좀 하자.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번처럼 놀라기는 싫으니까.”
내가 갑자기 위험한 무기를 들고온 것 때문에 마음고생하셔서 그런가, 조금 핼쑥한 얼굴로 그는 간곡히 부탁했다. 그걸 보니 괜히 미안하네.
그래도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해서 그런지, 지금은 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구만. 여전히 불안함을 안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다시 총질하는 것 같아서 좀 가슴이 쓰리지만, 그래도 마침 잘 오셨네.’
마침 코치도 왔겠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실전이 간절한 만큼, 일단 다음 등판부터 물었다.
“저 다음 등판은 언제에요?”
“안 그래도 그거 말해주려고 왔어. 3월 1일에, 레인저스전이야.”
“5일 휴식이네요? 레인저스, 좋은 친구들이죠.”
“그쪽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너한테는 편하기는 하겠지.”
다음 경기 상대는 텍사스 레인저스.
나한테 애증을 품고 있는 팀이지. 아닌가? 그냥 증오이려나? 그것도 아주 강력한 증오. 뭐, 하여튼 나는 고마운 팀이지.
나한테 홈런 한방 먹이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저번 시즌 내내 한없이 착했잖아? 당장 탈삼진 신기록을 도와준 것도 그쪽이니까.
그리고 작년에만 다섯 경기나 한 만큼, 연습 상대로도 딱이다.
‘이번에는 주전급들 좀 나오면 좋겠네. 이미 익숙한 만큼, 바로 반응이 오겠지.’
다섯 번을 털리면서 나한테 적응했을 테니, 시험 삼아 상대하기 좋지. 그러니 연습 상대는 최고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에 중요한 건 이닝이었다.
“저 몇 이닝 던져요? 다음 경기는.”
“무조건 3이닝이야. 그 이상은 Go 네가 아무리 떼를 써봤자 어림도 없어.”
당연히 구단의 생각은 3이닝. 어쩔 수 없지. 시범경기 초반에는 보통 아무리 선발투수라도 2~3이닝쯤 던지게 하거든.
겨울 동안 몸이 굳었는데, 더 던지게 했다가 부상 당할 수도 있잖아?
그러다가 차차 체력 확인을 위해 막판에 5이닝 이상 던지게 하지. 이게 당연한 건데···
‘애매하네, 한번 제대로 확인해야 하는데. 3이닝으로는 힘들어.’
나는 조금 아쉬웠다.
컨디션 좋으면 3회에도 시동이 걸리기도 하지만, 그거야 진짜로 몸 좋을 때의 이야기고. 그런 날은 별로 없지. 대부분은 3이닝 정도는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테스트 하려면, 못해도 4이닝은 던져야 하는데···
“왜? 아니, 아니지. 더 말하지 마. 난 분명히 말했어. 안 들을 거야. 그럼, 몸 조심해서 훈련 잘해.”
미적지근한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건지, 스콧 에머슨은 내 입이 열리기 전,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서 아주 간곡하게, 비장하게,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우리, 인간적으로 딱 5이닝만 합시다.”
물론 나중에는 시범경기라도 6이닝쯤 던지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 웬만하면 최대한 빨리 확인해야지.
그래야 대책도 세우고, 방법도 찾고 할 테니까. 물론 아무 문제가 없으면 땡큐고.
그렇기에 간절히 부탁했지만, 스콧 에머슨은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절대로 안 돼.”
“그런 걸로 치고, 미친놈 소원 삼아 5이닝으로 해요.”
“아직 몸도 제대로 안 풀렸을 뿐더러, 괜히 벌써부터 길게 던지다가, 폼이 이르게 올라오면 어쩌려고? 정규시즌은 생각 안해?”
“적절하게 조절할 게요. 저번 경기도 전력투구는 안 했잖아요? 딱 5이닝만 합시다.”
설득을 위해,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설명하자, 단호하게 잘라내던 스콧 에머슨도 결국 이해를 해준 건지, 합의점에 도달했다.
“그럼 4이닝으로 해요. 딱 한 이닝만 볼 게요. 최소한 확인은 해야죠.”
“···하아, 그래, Go 네 말처럼 확인은 해야 할 테니까. 그래, 4이닝으로 하자. 단, 투구수는 50구 아래로. 저번 경기랑 마찬가지로, 웬만하면 전력투구하지 말고.”
“오케이, 땡큐! 4이닝!”
“내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제가 잘하면 코치도 잘하는 거죠. 이번 시즌도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말이나 못하면... 아무튼 딱 4이닝이야. 나중에 더 늘려달라거나 하지마. 그건 정말로 안 돼.”
“예, 저도 그 정도로 만족할 게요.”
그렇게 얻어낸 4이닝.
주장했던, 5이닝보다는 1이닝 줄기는 했지만, 괜찮아. 4회부터는 어떻게든 시동이 걸리니, 한 이닝 정도는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목표는 4이닝이기도 했고, 5이닝은 그냥 블러핑이지. 원래 원하는 것보다 더 높게 요구하는 게 정석이거든.
물론 진짜로 5이닝을 던질 수 있으면 참 좋긴 하겠지만, 어차피 확인만 하려는 건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게 협상의 참맛이지.’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에 흡족하게 웃었을 때, 말씨름을 관전하던 대니얼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누구 마음대로 4이닝입니까? 전 허락 안 했는데 말이죠. 물론 문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것도 몸이 멀쩡할 때의 이야기죠. 코치의 말처럼 괜히 욕심을 내다가···”
음, 난관이 하나 더 있었네.
이걸 간과했구만.
어쩐지 코치 만큼 빡빡한 사람이, 얌전히 지켜보고 있더라. 각 잡고 있던 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