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89화 (189/316)

189화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그렉이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렉 매덕스인데, 뭐든지 배울 게 넘치는 사람이지. 그냥 작년처럼 큰 틀에서 확실하게 전수받을 게 없을 뿐.

“커트 앵글, 너 가끔 무의식적으로 원래 릴리스 포인트랑 가깝게 던지던데, 그러다가 둘이 혼동되는 거 아니야?”

“그래요? 쓰읍, 가끔 이러던데, 아, 헷갈리네. 좀 더 의식할게요.”

“조심해, 둘 다 이도저도 안 될라.”

이런 식으로 옆에서 정말로 말동무처럼 툭툭 던져주는 조언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개중에서 제법 큰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았고. 이것만 해도 충분하지.

그렇게 첫 날이 지나가고. 캠프 입성 이후 둘째 날의 트레이닝 역시 끝마쳐졌을 때, 슬슬 투수들은 모두 다 합류했다.

“Suck, 좀 일찍 온 거야? 올해도 성실하네. 매덕스 씨도 올해도 인스트럭터?”

“뭐, 그런 거죠. 소니는 좀 어때요? 작년처럼 아픈 곳은 없죠?”

“하하, 거뜬하지.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이번에는 에이스를 가져올 생각이거든. 월드시리즈 1차전 등판하고 싶어서.”

“어림도 없어요. 1,4,7차전에 등판해서 완봉할 생각이니까.”

“오, 그렇게까지 해준다면야, 기꺼이 넘겨드려야지. 뭐, 최선은 7차전까지 안 가는 거겠지만.”

소니 그레이나, 션 마네아, 리암 헨드릭스 등. 작년 동료로 함께 뛰었던 선수들부터.

“Hey Ace! 올해 잘 부탁하자. 뒤는 확실하게 책임져줄 테니까, 믿고 던져.”

“글쎄, 내 경기에선 나올 일이 많이 없을 텐데.”

“그럼 더 좋고. 최소한 하루는 휴식이 보장된다는 거니까.”

블레이크 트라이넨. 유스메로이 페팃 등등. 이번에 새로 영입된 뉴가이들까지. 레귤러라고 할 만한 선수들은 거의 다 캠프로 입성했으니까.

물론 마이너리거들이야 그 전날에 이미 모두 다 왔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합류일이 커트라인 같아 보여도, 주전급쯤 되면, 일정과 상관없이 자기 재량껏, 시범경기 전까지만 합류하면 되니까.

비슷한 의미로, 초청받은 몇몇 의욕이 넘치는 마이너리거 야수들도 기존 합류일보다 일찍 캠프로 합류해, 구단에 눈도장을 찍기도 하고.

‘그런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마이너리거들이니까.’

그런데, 쟤는 왜 주전, 그것도 아주 확실한 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이 일찍 온 걸까.

새로이 훈련장에 들어온 선수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신입생을 훑었다.

“응, 왜 파파라치처럼 훔쳐봐? 커트 앵글 너도 그렇고, 다른 놈들도 그렇고. 쟤가 누군데? 작년에는 못 보던 얼굴인데.”

“이번에 트레이드된 녀석이에요. 크리스티안 옐리치라고. 모르세요?”

“아~ 그, 본즈 제자? 제법 잘한다더만.”

“예, 그 친구요.”

“쟤 주전 아니야? 야수 합류일은 아직 좀 남지 않았나? 빨리 왔네?”

“아직 4일 남았는데, 뭐, 이적한 만큼 일찍 온 거겠죠. 빨리 적응하려고.”

“오~ 본즈가 예절교육까지 해줬나 보네. 꼴에 말이야.”

“약 교육만 안 하면 되죠.”

오늘 트레이닝을 마치고 마무리 스트레칭 하던 내 옆에서 대충 대화나 나눠주던 그렉도 뒤늦게나마 알아본 건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정도쯤 되는 플레이어가, 굳이 이렇게나 일찍 캠프에 합류할 이유는 많지 않으니까.

무슨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목적이 있거나, 둘 중 하나지. 뭐, 어쩌면 정말로 내가 말한 것처럼 빠른 적응을 위한 걸 수도 있고.

‘새삼, 팀이 진짜 좀 강력하네.’

그렇게 크리스티안 옐리치까지 마주하니, 왠지 좀 실감이 됐다. 지난 겨울, 우리 팀이 제대로 보강 했다는 것이. 빌리 빈이 그토록 이야기했던 올해의 목표도 말이야.

조금 더 뒤에 올 야수들까지 포함하면, 전력 자체는 확실히 막강하겠지.

최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컨탠더급 팀으로 인정받기에는 충분하겠네.

‘이렇게 보니까, 적기는 적기네. 이 정도 전력이면.’

우승 적기.

종종 팬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최근 몇 년간을 통틀어서, 이번만큼이나 우승에 도전해볼 만한 시즌이 없다고 말이야.

그중에서 핵심 카드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티안 옐리치를 보니,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올해는 정말 작년과 다른 성적을 낼지도 모르겠어. 하긴, 가능성이 보였으니까, 나도 똥 빠지게 구르는 거지.

마찬가지로 뉴페이스 역시 그것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건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마주친 선수들과 인사하더니, 이내 나한테 걸어왔다.

“Hi, 어, 애슬레틱스에 온 걸 환영한다?”

“환영 고마워. 앞으로 잘 해보자. 웬만한 타구는 다 잡아볼게. 타구가 외야로 오지도 않겠지만. 아, 만나서 영광입니다, 매덕스 씨. 제 어린 시절의 영웅이셨어요.”

“다 그렇지 뭐. 본즈는 잘 지내냐? 제자 비스무리 하다고 들었는데.”

“예, 타격코치로 오셨을 때 많이 배웠죠. 뭐···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다른 건 좀 그래도, 타격기술은 대단한 녀석한테 배웠으니까, 너도 열심히 해라. 그래야 얘가 우승하지.”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난 뒤, 고개를 갸웃거리자, 멋쩍게 웃은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다시금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저, 다른 게 아니, 혹시, 내일이나 나중에 시간 되면, 한번 연습 게임이라도 할래? 저번에 우리, 아니, 말린스랑 붙을 때, 결장해서 나만 못 봤거든.”

이게 원래 목적이었구만.

어쩐지 묘하게 결의에 차 있더라니.

“오, 옐리치가 Suck한테 도전장을 던졌는데?”

“Suck이 누구야?”

“You-Suck. 우리 팀 에이스. 너도 그냥 그렇게 불러.”

“솔직히 타자들 입장에서도 궁금하기는 하겠지. 진짜 그렇게 잘하나, 싶기도 할 거고.”

그의 도전장에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그렉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신입생이 에이스한테 한판 붙자(?)고 말한 것이니. 그럴 만도 하지.

음, 이러니까 뭔가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 같네. 니가 여기 짱이냐? 옥상으로 따라와, 같은 거 말이야.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도전자가 심하게 쑥쓰러워한다는 것 정도.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민 것 치고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구만.

“나쁘지 않겠네. 제법 재밌겠어. 어차피 릴리스 포인트 같은 건, 실전을 많이 겪어야 잘 고쳐져. 연습피칭 삼아서 몇 구 던지는 것도 좋을 거야.”

“예, 그렇겠죠. 옐리치, 너 눈 좋지? 컨택도 좋고. 혹시 투수 릴리스 포인트도 잘 봐?”

“뭐, 못 보지는 않지.”

“오케이, 그럼 됐네. 오늘은 이미 트레이닝 마쳐서 좀 그렇고. 내일 연습 삼아서 하자. 코치들한테 허락 받은 다음에.”

당연하게도 도전장을 받아들였다. 신입에게 텃세를 부려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지. 그래야지 나중에 시즌 들어가서도 안 개길 거야.

이건 좀 농담이고, 슬슬 실전에서도 검토해야 하기는 했다. 시범경기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일찍일찍 준비해야지.

지금까지는 브루스가 제한적으로나마 도와주기는 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브루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비교가 안 되지. 타자로서 능력으로로는. 옐리치 정도면 탑급 리드오프니까.’

선구안도 좋고 컨택도 훌륭하면서, 파워도 준수한. 딱 5툴 플레이어지.

그에 반해, 브루스는 포수 평균보다도 살짝 모자란 정도. 올해는 제대로 노력한 것 같으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한 건 그렇다.

그러니 좋은 경험이 되겠지.

지금 내 변화가 저런 수준급 선수들에게도 통할지, 아닐지를 이번 기회에 한번 알 수 있을 테니까.

“커트 앵글, 나랑 본즈랑 상대 전적이 얼마인지 아냐?”

“그렉이 더 좋지 않아요?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157타석에 홈런 아홉 개야. 타율이 0.265이지. OPS는 8할 8푼이고.”

“그걸 다 기억해요? 기억력도 좋으셔. 그래도 그 정도면 싸게 맞으셨네, 괴물이 약까지 빨았는데.”

“그래, 다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아니야. 다른 놈들이랑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한 거지만, 난 인정 못해. OPS가 거의 9할인데. 이게 어떻게 내가 이긴 거야?”

“그래서 결론은요?”

“제자 싸움이라도 이기자. 제대로 발라버려. 그래야 쟤도 무럭무럭 크겠지.”

물론 텃세도 부릴 거다.

애슬레틱스에 온 걸 환영한다. 날 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도록.

그래야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수비도 하고 점수도 내고 할 테니까. 우리 팀 타자들은 그걸 모른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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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는 그렇게 말했었다. Go가 범가너가 되어줄 거라고.

02년의 자신과 달리. 그 혼자만으로도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만들 수 있는 최강의 투수로서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면, 저절로 수긍했다. 오히려 범가너를 꺼내는 것이 조금 민망할 정도지.

단기적인 임팩트에서, 토너먼트가 아니라, 정규시즌 내내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그러니 직접 봐야지. 정말로··· 그런 정도인지.’

조금은 충동적이었다.

약간은 호승심도 있었고.

다른 동료들, 아니, 이전 동료들과 달리, 자신은 유일하게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잘할까?

정말로, 우승을 만들 정도로?

배리 본즈가, 크리스티안 옐리치 자신을 운 좋은 놈이라고 부를 정도로?

‘나도 준비는 됐어.’

어쩌면, 오프시즌 훈련의 성과가 매우 좋았기에,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 걸지도 모른다.

배리 본즈의 지도 하에, 컨택은 물론 파워를 점점 더 점진적으로 향상시키던 것이. 이젠 제대로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에이전트가 그가 앞으로 뛸 홈구장이 악명 높은 오클랜드 콜리시엄이라는 것을 다시금 안타까워할 정도로.

그러니 정말로 Go가 그런 투수라면, 자신 역시 잘할 자신이 있으니, 애슬레틱스야 말로 우승에 가장 가깝다던 배리 본즈의 말이 틀리지 않겠지.

“Suck이랑 한판 붙는다며?”

자신들의 절대적인 에이스에게 도전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던 건지. 합류일부터 그다음 날까지, 마주치는 선수마다 저런 반응이었다.

재밌게 여긴다거나, 흥미로워한다거나, 아니면 안타깝게 보거나. 마치 지금처럼.

“응? 아, 그래. 브루스 맥스웰, 맞지?”

“브루스라고 불러. 아무튼 진짜야?”

브루스 맥스웰.

전날 밤, 에이전트에게 듣기로는, 기존에도 입지가 괜찮았지만, 올해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습을 구단에게 보여줬기에. 사실상 이번 시즌 오클랜드의 주전 포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확실히 작년, 얼핏얼핏 봤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홀쭉해지고 단단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라커룸에서 슬쩍 다가온 그는 몇몇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짐짓 조금 동정적인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대단한 공에 놀라 자빠져서, 그대로 자신감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런 시선이 어이가 없고,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이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Go라는 선수가 팬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어떤 존재인지를. 그래, 이 정도라는 거겠지.

이기는 건 당연하고, 상대한 이가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의 압도적인 에이스.

그렇기에 감정은 더욱더 차올랐고, 때는 다가왔다.

“딱 세 타석만 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심판은 내가 보기로 했어.”

“네, 딱 좋겠네요.”

“저도 좋습니다.”

“어차피 연습 삼아 하는 거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적당히 힘 조절하면서 해라.”

700만 달러.

오클랜드 기준으로 상당한 연봉을 받는 중심 타자와 에이스가 맞붙는 것은 구단에게도 꽤나 큰 이슈인 건지. 예상보다 일이 커졌다.

감독 코치가 죄다 관심을 보였으니까. 어쩌면 프런트마저도. 에이스 투수와 핵심 타자의 폼을 알 수 있는 좋은 찬스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렇기 코칭 스태프의 철저한 주관 아래, 겨울 내내 기대하고, 또 생각했던 순간이 시작됐다.

“Suck이 이기겠지?”

“무조건이지. 솔직히, 옐리치 보다 잘하던 놈들도 죄다 털렸는데···”

“안타 비슷한 거 하나만 쳐도 옐리치가 이기는 셈인데, 혹시 모르지. 옐리치 컨택이야 알아주잖아?”

“오~ 그래서 Suck이 진다고? 그럼 내기할래? 난 Suck에 100달러. 어때?”

“돈까지 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거지.”

다른 선수들도 흥미가 돋은 건지, 서커스장의 관객처럼, 황량한 그라운드 위에 선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와 마운드 앞의 부상 방지용 펜스가 집중을 망쳤지만.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자, 시작!”

심판을 자처한 불펜코치가 그렇게 외친 순간, 마운드의 기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제만 해도,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강력한 시즌을 보낸 선수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직접 타자로서 마주하니, 목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게··· 진짜 본모습이야.’

마치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처럼, Go에게도 두 가지의 얼굴이 공존하는 것이리라.

투수 Go You-Suck의 본질은 지금 마운드 위에 있는 저 괴물인 거고.

“스트라이크. 인정하지?”

“네, 인정합니다.”

“그래, 어차피 연습게임인데, 괜히 얼굴 붉히지 말자. 공정하게 판정할 테니까.”

정신이 멍한 사이 순식간에 날아온 초구. 불현듯 제정신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공이었으니까.

‘구속이 짐작이 안 돼.’

90마일조차 나오지 않는 80마일대의 저속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아직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이니, 평소보다도 더 느리겠지.

그런데도 날카롭고, 과격하게 몸쪽으로 파고 들어온 공은 구속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지칭될 만큼, 압도적인 무브먼트가 그것을 가려버렸으니까.

‘그냥, 파이어볼러야.’

그러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를 수밖에.

강속구 그 자체였으니까.

어쩌면 그렇기에 더 까다롭다. 분명 눈으로 보이는 공은 웬만한 100마일급 공처럼 굉장히 빠른 것만 같은데.

정작 타격 타이밍은 실제 구속에 맞춰서 잡아야 하는 거니까. 그 괴리감이 엄청나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을 때, 2구가 날아왔다.

“음, 조심해.”

이번엔 콜을 하지 않았다.

헛스윙이었으니, 굳이 스트라이크라고 외치면서, 팀 내 주전급 타자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서클 체인지업.

그가 저번 시즌 절대자로 군림했던 것에 큰 공헌을 했던 리그 최강의 마구가 들어왔다. 오프시즌인데도 대단히 화려하게.

‘이건 못 쳐.’

공을 본 순간 깔끔하게 인정했다. 이건 못 친다. 최소한 지금 상태로는 칠 수가 없겠지. 그 역시 아직 폼이 다 올라오려면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설사, 경기력이 최고조에 달하더라도, 굉장히 힘들 테고.

“스윙을 안 했어도 들어왔을까요?”

“어, 아마도. 더 높게 뜬 것처럼 보이지?”

“예, 듣던 대로.”

마지막도 헛스윙.

하이 패스트볼에 손이 나갔다. 그의 필승 패턴 중 하나지. 낮은 서클 이후 높은 포심 패스트볼로 찍어 누르는 것은.

다만 완전히 나간 것 같았는데, 들어왔다고 하니, 확실히 조금 놀랍고.

“천천히 해, 차분하게 지켜보면서 타이밍 잡아. 안 그러면 절대로 못 쳐. 최소한 다른 타자들은 그렇더라고.”

“그래, 조언 고맙다. 근데 너는 저쪽 편 아니야?”

“너보다는 당연히 Suck이랑 훨씬 친하기는 한데. 그래도 너도 우리 팀이니까, 어느 정도는 도와줘야지. 그래서 트래쉬토크도 참고 있잖아?”

“그것참 고맙네. 그랬다면 머리가 더 복잡했을 테니까.”

포수, 브루스 맥스웰의 너스레에 피식 웃었다.

듣기로, 퍼펙트 두 번과 노히터 한 번,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기록을 함께 한 만큼, Go와 파트너나 다름없는 관계라고 하던데,

아까 전에는 왠지 동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건만, 그래도 동료로 인정하는 것 같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첫 타석은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어쨌든 첫 타석은 삼구삼진. 아쉽고, 조금 자존심도 상하는 결과지만, 사실 첫 번째 타석은 그도 딱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익히 들었으니까. 한 타순이 돌기 전까지, Go를 깨트리는 건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라는 말을.

‘천천히 지켜보자.’

동료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두 번째 타석에 임했고, 그 덕에 삼구삼진은 면했지만.

“스트라이크.”

“대단하네.”

몸쪽으로 깊이 들어오다가, 스트라이크존으로 쑥 가버리는 너클 커브에 6구째 루킹 삼진을 당했다. 이것으로 삼진 두 개.

이제 의심은 사라졌다.

그래, 저 정도라면 가능하겠지. 배리 본즈가 확언했던 것처럼.

처참한 패배였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반지로 돌아올 테니까.

‘그래도 하나 정도는 날려야지.’

허나 호승심은 오히려 더 커졌다. 변변찮은 타구조차 만들지 못했으니까. 집중력과 감각도 더 올라왔고.

최소한 외야 플라이, 그 비슷한 타구라도 하나 날려 보내야, 그나마 속이 후련하겠지.

그렇기에 배트를 다시금 꽉 틀어쥐었을 때. 포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잘 보고 감상 좀 얘기해주라. 난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점점 벅차더라고. 긴장 제대로 하고.”

“무슨 뜻이야?”

“보면 알아.”

숨겨둔 무기라도 있었던 걸까? 뜻모를 포수의 말에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을 무렵.

잠시 숨을 고른 투수는 이내 씨익 웃는 미소와 함께 세 번째 타석의 초구를 던졌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아웃. 더 할 생각은 아니지? 약속대로 여기서 끝내자.”

“···네, 그래야죠. 이 이상하면, Go에게도 민폐니까.”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삼구삼진.

두 번의 타석으로 잡았던 타이밍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하··· 이런 미친···”

욕이 저절로 차올랐다.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괴물이라고?

“죽이지?”

“이런 걸 숨기고 있었어?”

“그래도 좀 평범하네. 난 처음 봤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어때? 정상급 타자의 눈으로 봐도 괜찮아 보이나?”

“미쳤네, 그냥.”

브루스 맥스웰은 그런 반응에 마치 자신이 뿌듯하다는 것처럼 클클 웃었다.

오프시즌 동안 같이 훈련했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도 어느 정도는 공헌한 것이겠지.

이 미친 짓거리에.

‘어떻게든 포스트시즌에 올라 가기만 하면··· 그 뒤는 걱정 없겠네.’

최소한 저 녀석이 나오는 경기는 무조건적으로 승리가 보장될 테니까.

그렇게 승부가 끝난 뒤에도 조금 정신이 멍했을 무렵, 마운드에서 Go가 다가왔다.

“화난 건 아니지? 괜히 타격감 망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 괜찮아. 오히려 큰 도움이 됐어. 그런데··· 방금 건 뭐야?”

“세 번째 타석? 뭐, 2년차 징크스가 올 거다 뭐다 다들 떠들기 바쁘던데. 나도 단단히 준비했지. 어때?”

꽤나 공을 들인 건지, 자신이 처참하게 털어버린 타자에게 감상을 묻는 잔인한 녀석에게 그는 그저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다.

“Fucking Good.”

그 답변이 만족스러웠던 건지, 씩 웃는 Go를 보며,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확신했다.

겨울 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고. 비약적인 발전 역시 헛되지 않았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을 때, 자신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으리라. 무조건.

####

이후 시간이 지나, 하나 둘씩 야수들도 합류하며, 완전히 캠프가 채워졌을 때.

기사들 역시 줄지어서 쏟아졌다. 드디어 야구의 시즌이 다가왔으니까.

당연하게도 그 포문을 연 것은 고유석이었고 말이다.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마담이나 다름없는 선수이기에. 당연히 보는 눈이 많은데다가, 첫날부터 거나한 이슈를 낳았으니까.

<고유석,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과 대립?>

<코치의 권위를 우습고 보는 오만한 루키! Go는 잘못되어가고 있다!>

<고유석의 스타병? 그 자체가 넌센스!>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팀의 코치와 크게 다투는 듯한 모습은 기삿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여러 말을 낳기도 적합했고.

자세한 내막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상상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했으니까.

리그 최고의 선수가 오만한 모습을 선보이는 것 같았기에, 그것을 저격하기에도 딱 좋았고.

<고유석, 코치가 분노할 만큼, 오프시즌을 망쳤나?!>

<혹사의 후유증? Go에게 닥친 부상의 마수!>

사실 그보다는 대체로 분명 오프시즌 트레이닝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원하는 만큼 폼이 올라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며 이야기를 꺼냈지만 말이다.

작년, 엄청난 이닝을 소화한 만큼, 어쩌면 부상의 징조가 발견될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A’s]

[Suck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니야?]

└개같은 소리를 한 거겠지. 잘라버려.

└에이, 스콧이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Suck이랑 친한 거야 다들 알잖아? 다른 문제가 있겠지.

└구단과의 문제가 아니겠지?

└그냥 민감한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걱정이네.

└Go가 무리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오래 던지는 걸 좋아하는 선수니까, 이번에도 그러겠다고 해서 스콧이 말린 거지.

└그나마 그게 제일 긍정적인 시나리오네. 그랬으면 좋겠어.

그에 당연하게도 팬들은 자신들의 에이스가 어떠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에 떨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불펜피칭을 봤던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폼이 올라오지 않았다니, 부상이라니, 직접 본 입장에서 그것보다도 더 우스운 말이 없었으니까.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바뀐 것은 본격적인 불펜피칭에 대한 분석 이후, 추가적인 기사들이 나왔을 때였다.

<고유석, 오프시즌 동안 또다시 진화!>

<릴리스 포인트의 변화,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중간부터 달라진 릴리스 포인트.

미처 현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이들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돌려봤을 때, 그것을 알아챘다.

그렇기에 고유석이 또 다시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라며 추측하는 기사들이 이어졌고.

그에 분위기는 그나마 조금 더 안정됐다. 최소한 걱정했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아니, 어쩌면 훨씬 더 큰 문제일 수도 있고.

[#A’s]

[이번엔 Go가 위험한 짓을 한 거야. 릴리스 포인트 같은 걸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Go는 Big Ball이야, 그런 걸 다 알고도 감수한 거겠지.

└무언가 가능성이 보이니까 도전한 게 아닐까?

└그 가능성 때문에 역대 최고의 투수가 망가질 수도 있다면, 솔직히 안 하는 게 맞지.

└이미 최고인데, 뭘 더 발전하려고···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으니까.

대부분의 이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고유석을 기대하며 흥분했지만. 릴리스 포인트,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저마다의 추측과 예상이 이어졌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유석과 크리스티안 옐리치의 승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새어 나왔다.

<신입생, 옐리치에게 에이스의 위엄을 보여준 고유석!>

선수나 코치, 스카우트만이 아니라, 기자들 역시 어렴풋이 승부를 지켜봤으니까.

비록 스프링 트레이닝인 만큼, 연습 혹은 유흥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봄을 맞이해 쏟아져 나온 새로운 소식들로 불안함에 떨었던 팬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Go 혹은 Suck이 여전히 상대 타자들에게 You Suck을 먹여주기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불안함이 가신 팬들은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닳았다.

[#A’s]

[시범경기 좀 빨리해라! 비밀병기인지 뭔지, 말만 많지. 직접 좀 보자!]

└하,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열흘이야. Suck이 무조건 1경기에 나오겠지? 그래야 해. 난 더 이상 못 기다릴 것 같거든.

└에이스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1년 내내 야구할 수는 없는 건가? 슬슬 You Suck 금단증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도. 금단증상인지,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는 해.

└그건 정신병이고.

앞서 확인했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젠 그냥 궁금했으니까. 그 비밀병기라는 게 뭔지, 얼마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고유석이 올해도 타자들을 잡아 족칠지가 말이다.

그렇기에 갈증만 커졌을 때, 그 모든 의문이 드러날 시간이 다가왔다.

<2월 23일, 오후 1시 05분. OAK vs LAA in Hohokam>

그토록 기다렸던 시범경기, 선인장 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경기가 코앞으로 찾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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