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85화 (185/316)

185화

“Suck!”

사흘 뒤, 기다렸던 포수가 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브라이언은 날 속였다는 사실을.

만족할 거라며! 만족할 만한 포수를 데려왔다며!

몰리나는 어디 갔어? 버스터 포지는? 그럴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했던 기대감이 산산조각이 났다.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니까, 더 가슴이 아프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로 날 자연스럽게 Suck이라고 지칭한 포수는···

“···너 플로리다로 간다며?”

“응, 플로리다로 갔지.”

“근데 왜 여깄어? 합류일까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브루스였다.

그래, 브루스 맥스웰 말이야.

내가 널 오프시즌에서까지 봐야겠냐? 정규시즌에서도 내내 같이 지냈는데?

그보다도 플로리다로 간다던 녀석이 갑자기 피닉스에 나타나다니,

내가 알기로 플로리다와 피닉스의 거리가 약 2천 마일쯤 날 텐데? 비행기를 잘못 탔냐?

“슬슬 피닉스로 오려고 했는데, 마침 네가 공 받아줄 포수 구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고. 그래서 바로 왔지! 베스트 파트너인데, 당연히 도와야지!”

그래, 거참 고오맙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흘끔 브라이언을 보니,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지 않으냐고.

예, 참 만족스러운 포수를 구해오셨네요. 너무 만족스러워.

‘그나저나, 느낌이 좀 다르네.’

원래는 살집이 두툼한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뱃살도 좀 있고, 턱살도 있었지.

내 기억이 맞다면, 정규시즌에는 보통 240파운드, 그러니까 대충 108킬로 정도 나갔던 기억하는데, 키는 나보다 10센치 이상 작은 주제에 몸무게는 6킬로 이상 더 나가는 셈이었다.

그래서 종종 코치나 트레이너가 체중 감량을 하지 않는다면, 포수 특성상 무릎에 큰 무리가 가서, 부상을 당할 거라고 주의하기도 했고.

‘좀 홀쭉해졌는데? 아직도 살짝 통통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정규시즌 끝나고, 약 세 달여 만에 본 지금은 조금 달랐다. 수염으로 가려지기는 했지만, 분명 살집이 탱탱하게 차 있었던 턱에 ‘선’이라는 게 생겼으니까.

“살 많이 뺐네?”

“말했잖아, 이 두툼한 친구부터 없애겠다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중요한 시즌인데.”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도 그랬었지. 일단 살부터 뺄 거라고. 의지가 좀 남달라 보이기는 했었는데, 빈말은 아니었나보네.

“그래, 노력한 것 같기는 하네. 한 20파운드쯤 뺐냐?”

“정확하게 25파운드지. 크~ 이 잘생긴 얼굴을 그동안 왜 살 속에 감춰놨는지~ 진작 이랬어야 하는 건데.”

25파운드라. 11킬로라는 건데, 솔직히 좀 놀랐다. 세 달 만에 11킬로를 감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살만 뺀 건 아니지?”

“당연히 근육도 같이 늘렸지. 이젠 적당히 유지만 하려고.”

거기다 지방은 감량하면서 근육은 늘려야 한다면, 그 힘겨움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나게 빡세지.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브루스였지만, 그가 겨울 동안 했을 노력이 엿보여서 그런지, 왠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대단하네.”

그렇기에 순수한 진심을 담아 감탄하니, 브루스는 괜히 멋쩍은 듯 뒷목을 긁으며 웃었다.

‘뭐, 나쁘진 않겠어. 아니, 오히려 딱 좋아.’

그 모습을 보니, 기대감을 배신당하며 차올랐던 실망감이 조금은 가셨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딱 알맞거든.

지난 시즌, 대부분의 등판 경기에서 내 공을 받아줬던 ‘배터리’니까.

‘그러니 브루스가 가장 잘 알겠지. 기존의 릴리스 포인트와의 차이를. 그리고 어떤 느낌인지도.’

이번 시즌 또한 웬만하면 얘가 배터리로 같이 경기를 뛸 테니, 미리 호흡을 맞추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고.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브라이언으로서는 적절하게 구해왔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정체를 숨긴 건 어느 정도 놀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지만.’

아마도 자기 빼놓고 나랑 대니얼 둘이서 위험한 짓을 한 것에 대한 일종의 징벌이겠지.

“오케이, 나쁘지 않네. 체중도 체중인데, 감각은 살아 있어?”

“당연하지~ 플로리다에서도 꾸준하게 공 받았어. 네가 던진 것처럼 묵직한 건 없었지만. 그러니까, 포구는 걱정하지 마. 실전처럼 맛을 살려줄 테니까.”

내 물음에 브루스는 큰 소리를 떵떵치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조금 허세가 섞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빈말을 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그리고 얘도 열심히 시즌 준비를 했을 테니, 폼도 어느 정도 올리기는 했겠지.

“그럼 바로 가자.”

“시원시원해서 좋네.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아서, 포수 장비 다 챙겨왔어.”

“아니아니, 그전에 일단··· 배트도 챙겨왔지?”

“응? 배트? 공 받아줄 포수 필요하다며? 근데 갑자기 배트는 왜?”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배트 들고 타석에 서서, 실전처럼 한번 해봐. 단 당연히 진짜로 타격하지는 말고, 그냥 공이랑 내 폼을 잘 보고, 느낌 좀 말해줘.”

내 말에 브루스는 눈썹을 씰룩거리면서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보자고. 정말로 실용성이 있는지, 아닌지.’

####

브루스 맥스웰은 확신했다. 자신은 인생을 통틀어, 최근 3년간이 가장 최선을 다하는 시기일 거라고.

마이너리거에서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메이저리거로 살아남기 위해 정말이지 갖은 노력을 다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작년, 90경기를 소화하며, 사실상 거의 주전급으로 도약했으니까.

‘아마 원래의 나였다면··· 이 정도에 만족하고 늘어졌겠지.’

타고난 성격 자체가 여유로운 스타일이었으니까. 물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고.

허나 그러지 않았다.

노력의 정도를 따진다면, 이번 겨울이 그중에서도 최고였으니까.

거의 평생을 함께했던 두툼한 살집을 지웠고, 더욱더 철저하게 연습했으며, 최선을 다해 폼을 키웠다. 마음가짐 역시 달라졌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뒤따라갈 수는 있어야지. 진짜 파트너라면.’

거대한 이정표.

너무나도 크기에, 도저히 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커다란 이정표가 있었으니까.

브루스 맥스웰은 자기 스스로를 잘 알았다. 버스터 포지나 야디어 몰리나, 조 마우어, 그런 대단한 포수는 되지 못하겠지.

눈앞의 남자처럼, 엄청난 위업을 세워, 역사에 남을 수도 없을 테고.

그러니 절대로 나란히 설 수는 없겠지만, 뒤쫓아 가기라도 하려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맞으리라.

최소한 계속 뒤처져서, 아예 따돌려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더 빡세진 거 같은데?’

그런 목표가 되어버린 파트너의 모습은 브루스 맥스웰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체중 감량한 자신과는 달리, 저쪽은 반대로 벌크업을 한 건지, 조금 더 덩치가 커졌다. 그리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위압감이 더해진 정도.

그것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약간 걱정했으니까. 솔직히 번아웃이 와도 충분한 성적이지 않은가?

투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단 한 시즌만에 이뤘으니, 그대로 의욕을 잃는 건 아닐까, 조금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작년보다도 더욱더 의지에 불타는 것 같았다. 브루스 맥스웰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확고한 목표가 생긴 것처럼.

‘월드시리즈.’

그래 분명히 이것이겠지. 속으로 그 단어를 중얼거린 브루스 맥스웰은 씨익 웃었다.

자신이 그곳에서 저 녀석의 공을 받고 싶은 것처럼, 그 또한 그 무대 위에 우뚝 서기를 간절히 바란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갑자기 타석에 서라니. 새로운 구종이라도 장착한 건가?’

그 노력의 결실을 이제 볼 수 있을 테고. 간이로 만든 투수판 멀리, 홈 플레이트 엇비슷한 곳에서 배트를 들고 선 브루스 맥스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소중한 파트너가 공 받아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에이전트를 통해서 들려왔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이전트가 어떻게든 물어다 준 거지. 저 녀석과 딱 붙어 있으라고.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와 친분을 쌓아서, 그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길 바랐겠지.

물론 그 역시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일찌감치 공을 받아주면서, 함께 감각을 올리고 싶었을 뿐.

그래서 예정보다 조금 더 이르게 피닉스로 왔건만, 정작 포수 장비나 글러브가 아니라, 배트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의아함이 피어오르는 동시에 기대감도 들었다.

분명 타자로서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건데, 어쩌면 작년 올스타전 이후, 모두를 놀라게 했던 너클 커브처럼.

새로운 구종이라도 장착한 건 아닌지, 기대감이 들었으니까.

“브루스! 딱 열 개만 던질 거야. 보면서 느낌만 말해줘. 참고로 평소보다 컨트롤이 좀 안 되니까, 조심해라! 깊이 온다 싶으면 바로 빠져.”

“그런 건 진작 말해야지! 일단 알았어!”

자리에 서자마자 멀찍이서 던진 컨트롤이 안 된다는 말이 그 기대감을 더욱더 올렸고 말이다.

‘아직 커맨드가 잡히지 않은 건가? 어쩐지, 그래서 포수가 필요했던 거네. 실전처럼 던져야, 훨씬 커맨드 잡기가 쉬울 테니까.’

대충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게 공을 기다렸고, 그리고 초구가 날아왔을 때, 은은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음···!’

놀라웠으니까,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파트너의 공은. 상대하던 놈들은 이런 느낌이었던 건가?

오프시즌이라, 원래도 대단치 못한 구속이 시즌 때보다 당연히 더 느릴 텐데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포수로서 거의 수천 번은 더 받아봤건만, 글러브로 잡을 때보다도 오히려 10마일 이상 빠르게 느껴졌다.

‘타석에서 보면, 100마일의 강속구 같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닌데?’

불쑥 긴장감도 차올랐다.

커맨드가 안 잡혔다고 했지.

단순히 새로운 구종을 던질 줄 알았건만, 패스트볼을 던진 것을 보면 그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인데.

저게 몸으로 날아와 어디 한 군데를 맞춘다면···

‘최소 골절이야.’

저도 모르게 멀찍이 뒤로 빠지려다, 실전처럼 해달라고 부탁했던 말이 떠올라 억지로 참아냈다.

그리고 뒤이어 던진 4구는 기존과 똑같았다. 그래도 함께 경기를 뛰면서 잡은 경험이 있기에, 금방 익숙해졌지.

‘시즌 때랑 비슷하네. 뭐야, 그냥 폼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확인해달라는 뜻이었나?’

작년에 수없이 받았던 것과 별다르지 않은 느낌. 괜히 김이 샜다. 새로운 것을 기대했으니까.

하긴, 아무리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해도, 매번 혁신을 해낼 수는 없는 거겠지.

오히려 지금의 기량을 지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피크를 찍었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도 저 정도면, 내년도 걱정없겠지. 정말로··· 자신만 잘한다면 월드시리즈의 배터리가 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브루스 맥스웰이 기분 좋게 웃었을 때, 여섯 번째 공이 날아왔고-

‘어?’

조금 느슨해진 마음으로 그걸 보았던 브루스 맥스웰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뭐- 뭐야?”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토해낸 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서 본 5구와는 전혀 느낌이 다른 공이 날아왔으니까.

기대했던 대로 새로운 구종이었을까?

‘포심··· 맞을 텐데···’

아니, 그렇지 않았기에 더 문제였다.

뒤이어 던진 7구 역시 그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파고들었고, 생소한 느낌인데도 위력은 다르지 않았다.

뒤의 천막을 때리는 팡-하는 소리, 위력적인 공이 날아왔지만, 브루스 맥스웰은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앞서 던진 것과 똑같은 패스트볼, 아마도 포심 패스트볼일 텐데. 분명 같은 구종인데도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치···

‘다른 투수 같잖아.’

Suck과 Suck과 똑같은 실력을 갖춘 다른 투수 한 명. 그래, 그 두 명이 번갈아서 던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소리지.

저런 투수가 두 명이라고?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낸 투수가 두 명?

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브루스 맥스웰은 뒷목에서부터 서늘함이 올라왔다.

대단히 징그럽거나 공포스러운 것을 봤을 때처럼, 닭살이 오돌토돌하게 돋기도 했고.

“대체 뭘 준비한 거야?”

마침내 모든 피칭이 끝났을 땐, 헛웃음이 섞인 한탄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분명 자신도 열심히 노력했고,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것 같은데···

파트너와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 그가 뒤처진 건 아니다. 그저 그가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녀석이 세 걸음 더 앞서갔을 뿐.

“느낌이 좀 어때? 이거 먹히겠냐?”

“니가 사람이냐?”

“진심이 담긴 답변 고맙다.”

미친 짓거리를 해놓고 태연하게 자신의 감상을 묻는 말에 브루스 맥스웰은 조금 울컥한 심정으로 진심을 담아 토해냈다.

‘2년차 징크스가 아니라··· 성적이 더 좋아질 수도 있겠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작년을 생각하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미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시즌, 그것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시즌을 보냈다.

그 정도쯤 찍었으면, 서서히 내려가는 게 정상이다. 그 하강이 완만한 곡선을 그릴 수 있다면 최고일 테고.

그런데 거기서 더 올라간다고? 더 잘해진다고? 최소한 브루스 맥스웰이 보았던 그 어떤 기사도, 그 어떤 칼럼에서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절대로 불가능한, 개소리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개소리가 말이 되게 생겼다.

그렇기에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이미, 충분히 전 세계를 정복하고 파괴했던 괴물이, 껍질을 벗고 탈피하는 장면을 본, 첫 번째 목격자가 됐으니까.

‘월드시리즈는 확실하겠네.’

일단 하나는 확정됐다.

공 받아줄 포수는 몰라도, 저 녀석이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른다는 건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저런 투수가 있는 팀이, 월드시리즈에 못 올라가는 것도 조금 이상할 테니까.

다만 그 공을 받아줄 포수가 브루스 맥스웰 자신이 되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쫒아가야 되리라.

“그럼 이제 직접 받으면서 차이점 좀 얘기해줘.”

어쩌면 저런 압도적인 괴물 앞에서 자신감이 꺾여, 주저앉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열심히 받을 게, 진짜로, 열심히.”

그 역시 불이 붙은지 오래였다.

####

“스프링 트레이닝이나 시즌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구장 보수는 얼마나 됐죠?”

“예? 아, 예. 훈련장도 잘 준비됐고, 최근 수입이 넉넉해서, 캠프 시설도 잘 정비됐습니다. 콜리시엄도 정규시즌까지 모든 준비를 갖출 거고요.”

“다행이군요.”

빌리 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한 운영팀장이었지만, 이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3년, 아니 5년. 어쩌면 10년을 통틀어서, 가장 최고의 시기였으니까. 구단 내 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최소한 그가 운영팀장을 맡은 이후로, 지금처럼 분위기가 활발하고, 구단에 예산이 풍족하던 시기는 없었다.

최근 몇 가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며, 한순간 자금이 유통됐으니까.

‘황금의 시대지.’

우스갯소리로 몇몇 직원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애슬레틱스에도 황금빛 영광이 도래했다며 말할 정도로.

물론 여전히 여타 빅마켓들과 비교하면 그저 우스운 수준이고, 중간 규모에도 살짝 못 미치겠지만.

금전적으로는 항상 밑바닥을 감돌던 21세기의 애슬레틱스에게 있어선, 충분히 차고 넘치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준비도 더욱더 철저할 수밖에.

‘선순환이 시작되고 있어.’

애슬레틱스의 악순환은 간단하다. 낡아빠진 콜리시엄은 관중을 부르지 않고, 관중이 없으니 수익이 생기지 않으니. 수익이 없으니 낡은 콜리시엄을 보수하지 못한 채, 시설은 더더욱 낡아만 갔지.

그렇기에 연고지 이전을 통해, 아예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견이 대두됐던 것이고.

허나 이제는 아니다.

어쩌면 프로 스포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관중들이 몰리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연고지 내에서는 자이언츠의 턱밑까지 쫓아갔어.’

오클랜드뿐만이 아니라, 베이 브릿지 일대의 야구인들이 현재의 애슬레틱스에 주목하고 있었다.

영광의 10년대를 보내며, 확실한 북부 캘리포니아의 대장으로 떠오른 자이언츠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이유는 뭐··· 이제는 너무 많이 언급해서 지겨울 지경이지. 관중을 몰고 다녔다는 베이브 루스의 전설적인 신화가 한 선수로 인해 다시 부활했으니까.

전국적인 인기 역시 뒤따라오며, 최소한 저번 시즌에 한해서, 대단한 인기와 시청자를 자랑했고 말이다.

물론 그 인기가 Go의 경기에 꽤나 극단적으로 편향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중계권 계약 역시 제법 만족스럽겠지.

‘그러면··· 마켓 규모가 커진다.’

운영팀장이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기분 좋게 웃었을 때, 다른 이들 역시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구단 운영 외에도 말 그대로 팀 내부, 선수단과 그 전력에도 빛이 내리쬐었으니까.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야수조 합류일보다 조금 더 이르게 합류한다고 합니다.”

“막 트레이드 됐으니, 조금 당혹스러울 텐데.”

“에이전트가 말하기를, 올해 우리 팀의 야망에 만족했다고 하더군요. 일찌감치 합류하여, 선수단에 녹아들고 싶나봅니다.”

“블라이넨과 페팃 역시 일정에 맞춰서 캠프에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소니는 괜찮다고 하던가요? 저번처럼 부상의 징후가 있다거나?”

“오프시즌 동안 철저하게 검사를 받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시즌 준비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고요.”

“다행이군요.”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잘 설계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확하게 굴러갔으니까.

사실상 모든 게 완성됐다. 이번 겨울의 승자가 있다면, 그건 애슬레틱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수준급 컨택을 갖춘 타자를 데려오며, 더 막강한 타선을 구축했고.

선발진은 약간의 이탈이 있었지만. 원투 펀치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유지되는 한, 자잘한 규모의 전력 저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불펜은 페팃과 블라이넨의 합류로서 오히려 철벽에 가까워졌고 말이다.

‘여전히 페이롤은 최하위권이지만··· 가성비는 최강이다.’

놀랍게도 그런 대대적인 보강이 있었는데도 페이롤 등의 지출이 크게 없었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것 역시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아웃라이어가 선수단에 있으니.

당연히 비슷한 페이롤의 팀들과 전력을 비교했을 때, 훨씬 강력할 수밖에 없겠지.

최저 연봉으로 단일시즌 역대 최고의 WAR을 찍은 선수가 있는데, 가성비가 나쁠 리가.

‘모든 게 완벽하다. 그렇기에 안심할 수는 없는 거고.’

분명 완벽에 가까운 오프시즌을 보내기는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실전이었다.

겉으로는 제 아무리 번듯하게 톱니바퀴가 굴러간다고 해도, 정작 실전에서 삐걱거린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까.

또한 목표를 이루려면, 결국 팀 전력도 전력이지만, 이번 도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올해도 잘해줘야만 했고 말이다.

“듣기로, 브루스 맥스웰 선수가 Go와 합류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예, 마지막 준비 차원에서, Go의 공을 받으며 폼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으음··· Go에 대한 소식은 없습니까?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거나, 폼은 어떻다거나.”

“일단은··· 에이전트를 통해 차질 없이 정규시즌을 대비 중이라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다행이군요.”

Go. 결국 모든 건 그가 기대만큼 해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만약 그가.

<특히나 가혹한 루키의 2년차! Go는 이겨낼 수 있을까?>

지금 언론에서 열심히 떠드는 것처럼, 그가 정말로 2년차 징크스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이 모든 준비도 결국 한낱 꿈으로 전락하겠지.

“올해는 특히나 스프링 트레이닝이 중요하겠어.”

곧 다가올 스프링 트레이닝과 시범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애슬레틱스의 미래를. 올 겨울, 과감했던 도박의 결과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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