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83화 (183/316)

183화

시범경기조차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기였기에,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야구를 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 심한 경우 강한 무기력증을 느끼며,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오프시즌 동안 일찌감치 빅딜을 성사하며, 팬들의 내년을 향한 기대감을 부풀린 팀들도 있었으니까.

[#Angels]

[스터프만 따지면 오타니가 더 좋지 않나? Go보다.]

└구속이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일단 해봐야 알겠지.

└진짜 투타겸업을 할까? 솔직히 좀 걱정이야.

└투수로서 재능이 아깝기는 해.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인데, 굳이 타자로 체력을 소모한다는 게.

└그래? 나는 반대로 타자 쪽 재능이 좋아 보이던데.

└만약 정말로 양쪽 모두 다 해낸다면, 베이브 루스의 재림이겠지.

[#Yankees]

[스탠튼은 21세기의 미키 맨틀이 되어줄 거야. 그럼··· 작년처럼 X발놈의 루키한테 노히터 당하는 일은 없겠지.]

└21세기의 미키 맨틀은 저지 아니었어? 판사님도 50홈런 쳤는데.

└순혈인데, 저지쪽이 더 맞기는 하지. Suck만 아니었으면 MVP도 가능한 수준이었고.

└스탠튼은 그냥 MVP잖아. 홈런도 스탠튼이 더 쳤고.

└저지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후반기에 무너진 것 때문에, 조금 걱정이 있기는 하지.

└다들 진정해. 그냥 MVP급 두 명이 우리팀에 있다, 이거만 보면 되는 거지. 뭘 싸우고 그래? 그럼 저지는 미키 맨틀하고, 스탠튼은 베이브 루스하면 되겠네.

└진짜 Judge(판사)는 여기 있었네.

이번 겨울 국제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오타니 쇼헤이를 품은 에인절스나, ‘청정 60홈런 타자’도 가능해 보이는 스탠튼을 머금은 양키스처럼.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더 몸이 닳기도 했고. 그런 대어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으니까.

또한 JD 마르티네즈라는, 대어급 FA가 아직 시장에 남아 있었기에, 돈 좀 있는 구단들은 그를 탐내며, 프런트를 닦달하기도 했다.

[#MLB]

[일단 디펜딩 챔피언-이렇게 표현하기 진짜 싫다- 애스트로스는 사형 확정이니까, 내년에 진짜 박터질 것 같은데. 누가 우승할 것 같냐?]

몇몇 이들은 내년 시즌, 우승을 벌써부터 예상하기도 했다.

강력한 컨텐더급 팀으로서, 우승까지 차지했던 애스트로스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며. 왕좌에 공백이 생겼으니까.

그 왕좌를 추악한 치팅으로 눈앞에서 놓친 다저스를 비롯하여, 강력한 전력 강화를 선보인 팀들도 적지는 않았고.

└양키스 아닐까? 투수진은 여전히 좀 애매하긴 해도. 타선은 스탠튼까지 오면서 완전히 미쳤는데.

└저지랑 스탠튼 둘만 합쳐도 100홈런이 넘네. 중심타선 화력은 최강인데?

└다저스지. 투타가 다 좋잖아?

└솔직히 다저스야 말로 어떤 의미에선 디펜딩 챔피언이라고 봐야지. 월드시리즈까지 올라 갔으니까. 치터한테 진 거고. 그리고 그만큼 전력도 강하잖아?

어쨌든 시간이나 때우기 위한 별거 아닌 떡밥이었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흥미를 가졌다.

꽤나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내심 응원팀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으니까.

양키스나 다저스, 전통의 강호들을 시작으로, 우승급 전력이라고 할만한 팀들이 쭉 나오던 중.

└애슬레틱스, 이유는 Go. 더 필요 없지?

└진심이야? 애슬레틱스가 우승한다고? 오, 인디언스가 우승한다는 것보다 더 믿기지가 않는 말인데?

당연하게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언급되었다.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했던 시즌을 보낸 투수를 보유했으니. 그것만으로 설명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애슬레틱스라는 단어에 코웃음쳤다.

분명 그들은 작년, 제법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전적으로 ‘한 선수’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준수한 성적을 올리기는 했지.

허나 애슬레틱스와 우승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21세기에선 그리 잘 어울리는 궁합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명문 구단으로서 숱한 우승을 자랑했고, 토니 라 루사가 개혁을 주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애슬레틱스지만, 솔직히 이제와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애스트로스가 날아갔으니까,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솔직히 좀 그렇긴 하지.

└오프시즌 동안 제법 불펜 전력 보강을 하기는 했는데, 우승급이라고 보기에는...

└Go라는 에이스가 있어서 토너먼트에서 강력하긴 하겠지만, 그것도 까봐야 아는 거지. 정규시즌이랑 포스트시즌은 다르니까.

└커쇼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역대급 투수라도, 포스트시즌에서는 망가지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특히 Go는 이제 갓 2년차가 될 선수이니, 부담감이 더 심할 거고.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릴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몇몇은 조금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당당하게 말을 꺼냈던 애슬레틱스 팬은 오히려 그런 이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 개소리 잘 들었다. 다들 일리는 있는데,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보자, 니들이 응원하는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우리랑 만났다고 쳤을 때, Go를 공략할 자신있냐? 그리고, 정말로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진심으로 Go에게 소포모어 징크스가 닥칠 것 같냐? 2년차가 됐다고, 갑자기 그런 투수가 두들겨 맞는다고? X같이 발랐던 타자들한테?

꽤나 오만한 한 마디였지만, 그날 해당 커뮤니티를 통틀어, 그 질문에 대답하거나, 반박한 사람은 없었다.

<크리스티안 옐리치 1대3 트레이드로 애슬레틱스행!>

<말린스의 파이어세일! 옐리치마저 이탈! 남은 건 오즈나 한명?>

<유스메이로 페팃, 2+1년 14.5M 계약으로 애슬레틱스에 합류!>

그런 분위기에 한층 더 불씨를 키워줄 소식 역시 터져나왔고 말이다.

처음의 비웃음이 무색하게도, 계속해서 완성되어가는 오클랜드를 보며, 코웃음 쳤던 이들조차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A’s]

[올해는 말만 윈나우가 아니라, 진짜로 윈나우네··· 이거, 이러면 정말로 내년에 우승하는 거 아니야?]

└가능하지, 일단 구멍은 다 채웠으니까.

└항상 발목 잡던 불펜도 튼튼해졌고, 테이블세터 역할 해줄 옐리치도 영입했고. 선발진이야 켄달이 나가긴 했지만, Go랑 소니의 더블 에이스는 여전하니, 여전히 강력하고. 컨텐더급이긴 해. 지금 우리가.

└Go만 기대처럼 해준다면··· 토너먼트도 거뜬하지.

└잘해주겠지, Suck인데, 설마 못할까.

└피닉스에서 자주 목격됐다던데, Go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나 봐.

애슬레틱스 팬들 역시 들뜬 감정을 감추지 못했고 말이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유석이 자주 출몰(?)하는 애리조나, 피닉스로 향했다.

결국 내년 오클랜드의 키포인트는 그곳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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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거에는 하이 쓰리쿼터였나요?”

다음날, 계속해서 훈련을 거듭했을 때, 대니얼은 궁금하다는 듯 슬쩍 물었다.

이번 트레이닝의 경우 그냥 단순 반복이다 보니, 아마도 좀 심심했던 거겠지. 지루하잖아? 나는 죽을 노릇이지만.

또 내가 지금과 다른 투구폼이었다는 것도 제법 흥미가 당겼을 테고. 그런 그의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보단 팔이 높았죠.”

그래, 굳이 나눠서 분류한다면, 옛날 폼은 하이 쓰리쿼터라고 할 수 있겠네. 지금은 좀 낮은, 로우 쓰리쿼터고.

“잘 선택하셨네요, 각도가 낮을수록 부상이 덜하니까요. 어쩌면 Go가 긴 이닝을 던지고도 멀쩡한 이유가, 지금의 투구폼일 수도 있고요.”

내 말에 대니얼은 투구폼을 바꾼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팔의 각도가 높고, 더 역동적일수록, 부상 위험이 큰 건 사실이니까.

지금보다는 더 위험하기는 했겠지. 옛날 폼으로 작년처럼 235이닝이나 던졌다면, 지금처럼 멀쩡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내 부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관리하는 게 직업인 그로선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그때도 엄청나게 위험하다거나, 과하게 비튼다거나 하지 않고, 안정적인 축에 속했기에, 사실 그렇게 위험이 크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군요. 키가 크신 만큼, 높이 내리찍으면서 던지면 꽤나 위협적일 것 같은데.”

하지만 안정성에 대한 칭찬과는 별개로, 계속 예전 투구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그는 더욱더 궁금증이 심해진 건지, 슬쩍 나를 곁눈질하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다만 내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는 걸 느낀 건지, 깊숙하게 묻지는 않았지만.

매번 나한테 짧게 던져라, 스프린트 하자 마라, 등등. 항상 제동을 걸며 눈치주는 사람이 이번엔 반대로 내 눈치를 보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하네.

“궁금하시면, 한번 보실래요?”

솔직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니, 왠지 기분이 좀 더럽긴 하지만, 나도 그때처럼 한번쯤 던져보고 싶기는 했다.

궁금하긴 하잖아?

지금 내 스터프에서 그때 폼으로 공을 던지면 어떤 느낌일지가.

약간 비교해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과 비교하며, 확신을 얻고 싶었으니까. 결국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그러면,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때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털어낼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에 제안하니, 내심 궁금하기는 진짜 궁금했던 건지, 대니얼은 어깨를 으쓱였다.

“Go가 괜찮으시다면, 딱 한 구 정도는 괜찮겠죠.”

한 구라, 너무 빡빡하시네.

그래, 이게 대니얼이지.

뭐, 나도 어차피 옛날에 박살났던 폼을 여러 번 볼 생각은 없어.

그냥 한 구쯤, 과거 추억 삼아서 한 번 던지면 딱이겠지.

‘과거에 너무 깊이 빠지는 건 안 좋으니까.’

그냥 딱, 한 순간의 유흥, 추억을 돌이켜보는 정도로, 맛만 살짝 보는 거지.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제대로’ 던지는 방법을 알아서, 구위가 엄청나게 좋아졌는데, 이런 구위로 그때처럼 던지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뭐, 그래봤자 많이 부족하겠지. 너무 오래전에 버린 폼이니까.’

아마 기대처럼 엄청나다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이제는 많이 퇴색되었을 테니까.

그래도 뜨문뜨문 그때의 감각을 살려서, 엉성하게나마 투구폼을 취하니, 의외로 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몇 차례 연습삼아 섀도 피칭처럼 동작을 취해봤는데, 크게 신체에 무리가 가지는 않네. 하긴, 그때나 지금이나, 동작이 부드러운 것 자체는 똑같으니까.

“오랫동안 안 던지신 것 치고는, 제법 그럴듯한데요? 다칠 일은 없겠어요.”

대니얼도 신기한 듯 눈썹을 씰룩였고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는 해, 오래간만에 꺼내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게, 까놓고 말해서, 얘가 본처거든.

지금 투구폼보다, 이런 투구폼으로 던진 시간이 훨씬 더 길지.

리틀야구 때부터 비슷한 폼으로 쭉 던지다가, 미국 건너오고, 마이너에서 갑자기 지금 폼이 된 건데.

오래전에 바꾸기는 했어도, 훨씬 더 오랫동안 던진 건 이 녀석이지.

그러니, 내가 갑자기 키가 더 크거나, 리치가 길어지지도 않았으니, 크게 어색할 것도 없겠네.

‘기분이 좀 이상하네.’

최고의 투수가 돼서, 가장 망가졌던 때의 폼을 취하니, 그냥 좀···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 했다.

그때와 비교해서, 훨씬,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해버린 내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하고.

왠지 더 성공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버린 애인을 다시 만난 것 같아, 조금 머리가 멍하기도 하고.

괜히 감정이 복잡하네.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센치해진 기분에 그렇게 인사해봤지만, 당연히 오래간만에 전여자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때와 같은 풀 스윙으로 대신했을 뿐.

“흡-”

와인드업부터 마지막 팔로우 스로우까지. 모든 동작이 쭉 이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투구폼 자체가 부드러운 건 똑같고, 각도가 더 높기는 해도 큰 무리를 주지 않았기에, 어깨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

그대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팔을 뻗으며, 평소보다 조금 더 높고, 멀찍한 지점에서 놓자.

“어?”

공은 쭉 뻗었다. 분명 힘도 제대로 싣지 않았고, 장난삼아 조금은 엉성하게 던졌는데도, 아주 묵직하게.

“어··· 와우? 이것 참··· 설마 전력투구하신 건 아니죠?”

“절대로 아니죠. 어색한 투구폼으로 풀파워 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렇다면··· 엄청나네요.”

대니얼은 헛웃음을 흘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런 폼을 왜 버렸냐고 묻는 듯이, 살짝 나를 곁눈질하기도 했고.

사람 눈은 똑같으니, 그가 보기에도 이 한 구가, 그만큼 인상적이라는 뜻이겠지.

물론 그가 충격을 받은 만큼, 나도 대단히 놀랐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아.

그래, 이건 뭐랄까···

‘헤어진 전 여자친구, 아니, 첫사랑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결혼식장에 나타나더니, 잘 지냈어? 라고 인사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방금의 한 구는 화려하고, 강렬했다.

“구속은 81마일이군요. 81마일? 정말 이거밖에 안 되나? 오류일 리는 없을 텐데···”

“뭐, 구속은 지금이 제 최대치인가 보죠.”

아, 그래도 구속은 여전하네. 81마일? 팔의 각도랑 상관없이 아주 한결 같구만. 너무 한결같아서 X같을 지경이야.

역시 사람의 취향은 일관적이라니까. 전여친이든 현여친이든, 둘 다 느려 터진 건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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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되새기는 건 당연히 딱 한 구로 끝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잖아, 한 번 가지고는 못 참지.

그리고 생각보다 투구폼이 아직 살아 있고, 위험도 크지 않아 보여서, 혹시나 모를 부상에 대한 부담도 적고 말이야.

“다른 구종들은 포심처럼 엄청난 변화가 있지는 않네요.”

“사실 그렇게 엄청난 차이까진 없으니까요. 꽤나 다르기는 하더라도. 종 무브먼트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남달랐던 포심과 달리, 너클 커브나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처럼 내 주축 라인업이라고 할만한 다른 구종들은 어메이징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횡 무브먼트가 덜하면서, 약간 더 떨어지는 정도? 그 정도의 차이야 팔 휘두르는 각도가 다르니, 당연한 거겠지.

“그래도··· 포심은 진짜 쓸만하겠는데요? 가볍게 던졌는데도, 회전수도 이천삼백 정도는 손쉽게 찍히는군요. 수직 무브먼트도 더 좋고요. 폼을 더 끌어 올린 뒤에는 더 묵직해질 테니···”

다만 포심은 제대로긴 하네.

솔직히 좀 아까울 정도로.

엄청난 효과에 대니얼은 꽤나 흥분한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구질과 관련된 수치가 정확하게 딱딱 나오니, 더욱더 크게 와닿는 것 같기도 하고.

‘구속은 비슷하지만, 구위는 전체적으로 더 높다고 봐야하나?’

거기다 릴리스 포인트의 높이도 조금 더 높으니, 아마 라이징 패스트볼 같은 느낌이 더욱더 강해질 수도 있겠지.

“신기하긴 신기하네요. 투구폼이나 릴리스 포인트에 따라, 구질이 다르다는 거야 잘 알지만, 그 차이가 생각보다 더 극심하네요. 역시 이론과 현실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대니얼은 새삼 배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많이 다르지.

그립이 같더라도 팔의 각도, 놓는 지점, 높이 등으로 구질이 달라진다는 거야,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실제로 보면 그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더 극심하다.

설사 던지는 사람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같은 그립에 약간의 차이를 주는것만으로 그 차이가 엄청나게 크지.

‘당장 나만 봐도 그렇지.’

단순히 힘을 더 주고, 덜 주는 것만으로 나는 서클 체인지업을 둘로 나눠서 던질 수 있다.

종 무브먼트가 강하면서 가파르게 떨어지는 V1이랑, 종 무브먼트가 조금 덜한 대신, 역회전이 훨씬 날카롭고, 아주 급격한 V2로.

왼팔도 아니고, 그저 왼손, 그것도 손가락으로 이뤄지는 힘의 분배만으로 다른 구종처럼 되어버릴 정도인데, 거기에 팔 전체의 움직임까지 더해진다면, 그 변화야 더 말할 것도 없지.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원래 애슬레틱스에서 뛰다가, 트레이드 된 이후로 다저스에서 잘 나가고 있는 리치 힐이 있다.

종종 오버핸드와 사이드암으로 나눠서, 두 가지 커브를 던지는데, 사이드암은 당연히 횡이 강해, 마치 슬라이더 같고, 오버핸드는 그보다는 훨씬 낮고 빠르게 떨어진다.

그런 엄청나게 큰 동작이 아니더라도, 릴리스 포인트가 약간 다른 것만으로도 구질은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는 뜻이지.

‘구질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좀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뭔가,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주력으로 쓰기는 힘들겠죠?”

“네? 아아, 네. 그렇겠죠.”

내가 골똘히 고민할 때, 대니얼은 아쉽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분명 위력적이긴 한데, 이 강력한 포심을 주력으로 쓰기는 어렵거든.

일종의 계륵이지, 계륵.

왜냐고? 간단하다.

내가 구종이 다양하고, 다 잘 써먹고 있기는 해도, 결국 가장 많이 던지는 건 포심 패스트볼이다. 구종 비율만 봐도 이게 제일 많지.

그러니, 이미 지금 폼과, 지금 투구폼으로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이, 많이 던진 만큼, 나한테 가장 익숙한 공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가장 익숙한 공을 갑자기 갈아치우려고 하면, 진짜 난장판이 되겠지.’

그 익숙함을 떨쳐내고 적응하기까진 아마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어쩌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설사 잘 적응한다고 해도, 당연히 밸런스와 커맨드도 다시 잡아야 할 텐데, 어쩌면 지금처럼 핀포인트 제구가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그럼 결국 돌고돌아 제자리야. 위력이 좋아진 대신, 제구의 날카로움이 떨어진다는 뜻이니까.’

그러다가 밸런스가 망가지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처럼 모든 것들이 붕괴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대니얼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기는 해도, 포기하는 게 맞다는 거겠지. 그래 그게 맞는데, 맞는데 말이야···.

‘쓰읍, 왠지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단 말이지.’

릴리스 포인트. 그리고 익스펜션. 왠지 이게 키 카드가 될 것 같거든.

‘쯧,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어.’

막상 보고 나니까, 괜히 아쉽기도 하고, 또 혹하기도 한단 말이지.

“대니얼, 혹시, 다른 방식으로 던지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유혹하듯, 대니얼을 살살 꼬셨다. 그에 그는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단히 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단순히 투구폼이 살짝 달라진 것만으로, 지금보다도 더 탁월한 위력의 포심이 나오는 걸 직접 봤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도··· 지금은 안 됩니다. 오늘은 이미 너무 많이 던졌어요, 정말 정말 보고 싶기는 하지만··· 아닌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의 절제력을 발휘하며,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프로구만. 진정한 프로야. 이러니까 내가 믿고 의지하는 거지.

그 단호한 반대가 아쉽기는 해도, 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우리 둘 다 흥분해서, 뜻하지 않게, 과거 폼으로 공을 너무 많이 던졌으니까.

앞서 연습피칭 했던 것까지 합치면, 오늘의 할당량은 거의 두 배는 넘었지.

옛날 추억 삼아서, 딱 한 구만 보자고 하던 게, 일이 너무 커졌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가 뻔하니, 저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죠. 브라이언도 알아야 할 테니까요.”

“아, 그건 그렇죠.”

우리끼리의 즐거움에 빠져서 브라이언을 까먹고 있었네.

그는 조금 바빴다.

한가하게 내 피칭을 봐줄 여유가 없지.

부동산과 노후 대비를 비롯하여, 다른 일도 많기는 하지만, 일단 날 위해 포수를 알아봐주고 있거든, 겨울 동안 잠들었던 피칭 감각을 수월하게 깨우기 위해서 말이야.

지금처럼 펜스 세워놓고 거기다가 던지는 것보다는, 불펜 포수 비슷하게 받아주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 실전 감각을 올리는 데에는 훨씬 더 좋을 테니까.

‘눈썰미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네.’

원래는 단순히 피칭 감각을 올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또다른 목적이 생겼다.

새로운 길을 찾았으니, 그것에 대한 도움도 필요할 것 같거든.

오프시즌인 만큼, 포수를 봐줄, 한가한 야구선수야 많으니, 알아서 괜찮은 사람을 구해오겠지.

“결국 작년이랑 비슷하군요.”

그렇게 아쉬움을 꾹 참고서, 연습피칭을 멈추고, 목에 건 수건으로 땀을 닦았을 때, 대니얼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비슷한가?”

“뭐, 엇비슷하잖습니까? 결국 단순히 피지컬 트레이닝으로 끝나지는 않고, 올해도 더 발전하기 위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고민하는 것은 말입니다.”

그렇게 들으니, 비슷하긴 하네.

올해는 체력을 목적으로 삼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작년처럼, 더욱더 강력한 공, 강력한 피칭을 갈구하게 됐으니까.

어쩔 수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든.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아주 조금의 가망이라도 보인다면, 한번 매달려 보는 거지.

“그럼 결과도 작년이랑 비슷하겠네요. 그때보다 더 좋은 장비, 환경, 그리고 그때처럼 유능한 트레이너까지 있으니까.”

만약 올해의 오프시즌도 작년과 동일하다면, 그 결과도 동일하겠지.

더블A에서 플루크에 가까운 시즌을 보내며, 팬들과 언론, 다른 구단의 시선을 조금 끌었던 마이너리거가, 곧바로 데뷔하더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것처럼 말이야.

‘뭐, 그냥 망해버리거나,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긴 하겠지만.’

또 모르는 일이잖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까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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