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81화 (181/316)

181화

‘엄청나게 갈아치우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리그 최악의 구단이자, 공공의 적이 되는 대형 폭탄에 가려졌지만.

우리 팀 내적으로도 수십 발의 폭탄이 빗발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트레이드에 관한 소식이 기사로든, 브라이언을 통해서든 들려왔으니까.

<크리스티안 옐리치! 애슬레틱스로 향하나? 오클랜드, 켄달 그레이브맨과 자렐 코튼를 포함한, 1대4 트레이드 대기중!>

<블레이크 트라이넨(WSH)-라이언 매드슨(OAK), 라이온 힐리(OAK) 2대1 트레이드?>

누가 보면 우리가 파이어세일을 하는 것처럼 트레이드에 사활을 걸고 있네.

실상은 윈나우도, 이런 윈나우가 없지만.

<욘더 알론소 FA>

물론 트레이드 이외의 작별도 있었다, 욘더 알론소가 FA로 나가면서, 1루수 자리가 비었으니까.

‘아마도 맷이 맡겠지.’

어떤 맷이냐고? 맷 조이스는 아니고, 채프먼은 1루로 쓰기 아까우니, 맷 올슨일 거야, 아마도. 팀에서도 걔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눈치였으니까.

파워도 준수하고, 수비력도 똑같은 맷인 채프먼 만큼이나 상당히 좋아서, 나로서는 나쁘지 않다.

‘전체적으로 내야진은 거의 완성이네.’

1루수 맷 올슨.

2루수 제드 라우리.

유격수 마커스 시미언.

3루수 맷 채프먼.

아마 이렇게 라인업이 짜일 텐데, 이 정도면 최소한 수비력은 어디서 꿀리진 않았다.

파워도 다들 적절하게 있고, 타격도 준수하니, 나쁘지는 않겠지.

‘클럽하우스가 많이 바뀌겠어.’

외야 쪽도 파란이 일어나는 것 같으니. 아마도 내년 클럽하우스는 올해에 비해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겠지.

그만큼, 우리 팀이 내년에 모든 걸 걸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의 선수단 전체를 갈아치울 정도로.

‘그러니, 나도 잘 준비해야겠지.’

결국 그 모든 것들의 중심은 나, 고유석이니까. 내가 기대 정도의 성적을 내준다는 전제하에, 모든 것들이 딱 맞춰지겠지.

“브라이언.”

“Go, 편히 쉬셨습니까?”

“네, 뭐. 워낙 충격적인 소식들이 많아서 좀 멍하긴 했는데, 그래도 푹 쉬기는 했어요.”

12월도 거의 저물어갈 때쯤.

브라이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그 혼자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나랑 같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살이 조금 빠지신 것 같은데···”

“그래요? 오히려 찐 거 같은데. 너무 쉬어서 근육이 빠졌나?”

살이 빠지기는 무슨.

집에서 먹고 싸고만 하느라, 근육 대신 지방이 팅팅 불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멀쩡한 상태에 안심한 건지, 만족스럽게 웃은 그와 함께 다시 떠날 준비를 갖췄다. 아니, 돌아갈 준비라고 하는 게 맞겠지.

“미국 가서 밥 잘··· 이젠 밥걱정 하는 것도 좀 웃기겠네. 그냥 몸 건강하게만 잘 하고 와. 알았지?”

부모님과 짧은 시간도 벌써 끝나는 거고. 그래도 저번에 오클랜드에 직접 오시면서, 나를 향한 사랑을 느끼셔서 그런가.

엄마나 아빠는 전보다는 확실히 걱정이 조금 덜해진 것 같네. 옛날에는 나만 보면 밥 타령이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겠지.

최소한 어디서든 밥은 먹고 살겠지, 라고 생각하시는 거고.

“내년에도 올해만큼만, 아니 올해 반만큼이라도 하면 되는 거야.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침착하게만 해. 무리하지 말고.”

아빠는 혹시나 나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독이 되어 작용할까, 그것을 조금 걱정하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욕심이 대단하시구만.

‘올해 반만 해도 사이 영은 넉넉하게 타겠는데?’

올해 내 WAR이 19인가 그럴 텐데, 그게 아마 투타 합쳐서 역대 1위 찍은 걸로 안다, 그거 반만 해도 WAR이 9.5니, 사이 영은 우습게 타겠네. 타자들 중에서 매드시즌이 없다면, MVP도 가능하고.

“아니, 더 잘해야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욕심 많은 아빠를 닮아서, 나도 욕심이 더럽게 많거든.

언론에서는 자주 떠들었다.

내가 17년의 퍼포먼스를 2년차에 적절히 유지만 하더라도 정말 놀라운 일일 거라고.

충격적으로 무너질 거라며 악담 내지는 저주를 퍼붓는 기사나 칼럼도 엄청나게 많지.

실제로, 첫 시즌에 이만큼 잘 나가면, 그 뒤로는 내리막을 걷는 게 아주 정석적이기도 하고.

그러니 유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거겠지만, 안주하는 순간 퇴보가 시작된다. 그렇기에 마이너에서도 지금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의 실링으로도 어떻게든 기어 올라갔던 거고.

“더 잘해야지.”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에서 무언가 확신이라도 느낀 건지, 아빠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시원스럽게 등짝을 때려줬을 뿐. 기운을 불어넣어 주려는 것처럼.

음, 아빠가 아직 정정하네.

손맛이 고등학생 때랑 다를 것 없이 아주 맵구만.

하긴, 아직 쉰도 안 됐으니까, 날 좀 일찍 낳으셨거든. 아직은 대들면 안 되겠어.

조금 더 기회를 엿봐야지. 그것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내년에 귀국할 때도 이랬으면 좋겠네요. 어우, 저번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출국 일정이 새어나가지는 않았던 건지, 기자들이 바글바글 거리지는 않았거든.

알아본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요청하거나, 사인을 요청하거나 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카메라 플래시 팡팡 터지는 것보단 훨씬 낫지.

그렇기에 편안함을 가득 담아 말했지만, 브라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겁니다. 오히려 더하겠죠. 내년에는 더 잘하실 테니까요.”

“어? 들었어요? 한국말로 했는데.”

“Go의 에이전트인데, 저도 어느 정도는 배워야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언어 능력도 대단하네. 그래, 맞는 말이다.

내년에도 소란스럽겠지.

내년의 나는, 올해보다 더 잘할 테니까.

####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도, 훨씬 이전이었지만, 각 구단의 프런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빴다.

그럴 수밖에.

시즌 종류 이후, 스프링 캠프 이전이야 말로, 프런트의 시간이었으니까.

누군가는 탱킹을, 누군가는 리빌딩을, 누군가는 리툴링을, 누군가는 윈나우를 노리며.

모두가 다 저마다 자기 구단의 목표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활발한 곳을 찾는다면 단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였다.

-내가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블레이크가 작년 후반기에 얼마나 잘했는지 알지?

그런 애슬레틱스의 리더이자, 선봉장으로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빌리 빈이 바쁘다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빌어먹을 새끼, 이미 합의 마쳐놓고 또 딴소리군.”

수화기를 슬그머니 손으로 감싼 빌리 빈은 거친 욕설을 토해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신사적인 그였지만, 팀을 위해, 움직일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칠어졌기에, 다른 이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리조가 뭘 더 내놓으래요?”

“아쉬운 거겠지. 이대로 끝내기는. 하지만 어림도 없어.”

단호한 모습에 혹시나 싶어 마이너 자료를 뒤적이던 보좌관은 어깨를 으쓱였다.

“···리조.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매드슨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유능한 베테랑이고-”

-그래그래, 라이온 힐리는 파워툴이 확실한 유망주지.

“작년에 트라이넨은 불안해서 클로저를 못 맡기겠다고 징징거렸던 건 자네야. 그 불안한 마무리를 우리가 치워주지. 더 안정적인 베테랑과 가망 있는 거포 유망주로.”

-···오케이, 오케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더 쑤셔봤자 나올 것도 없겠네. 내가 특별히 양보하는 줄 알아, 잘 기억하라고.

“그래, 고맙다, 리조. 다음에 내가 술 한턱 사지.”

질질 끌던 블레이크 트라이넨 트레이드 건은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고, 통화가 끝났을 대, 빌리 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얼마 남지도 않은 내년.

애슬레틱스가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크게 보강해야 하는 불펜이 거의 완성됐다.

블레이크 트라이넨.

2017시즌 75.2이닝 ERA 3.93, 피홈런 6개 탈삼진 74개로. 다소 부족한 성적인 것 같지만, 후반기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ERA가 2점대인 투수지.

“확실하겠지?”

“네, 감을 잡은 거예요. 거기다 콜리시엄의 특성상, 성적이 더 올라갈 수도 있겠죠.”

다소 불안함이 있기는 하나, 이 정도면 불펜진의 한축으로 삼기 충분했다.

분석팀에서는 잘하면 애슬레틱스의 불안한 마무리 문제를 처리해줄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렸었고.

“페팃과는 계약 확정됐지?”

“네, 사인했습니다.”

거기에 유스메이로 페팃까지 FA로 추가될 예정이니, 이 정도면 불펜은 제대로 보강했다고 할 수 있었다.

‘리암 헨드릭스도 싱커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성적이 꽤나 괜찮아졌어. 션 두리틀도 안정감을 찾았고. 여기에 트라이넨과 페팃을 추가한다면··· 필승조는 완성이다.“

그러니 최소한 이제까지처럼, 다 이긴 경기를 불펜의 방화로 망칠 일은 없으리라.

가장 중요한 뒷문을 틀어막았으니, 언론과 팬들에게 천명했던 목표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기도 하고.

물론 올해, 애슬레틱스 최고의 딜이 아직 남아 있기는 했지만.

“데릭한테 연결해. 오늘 끝을 보자고.”

“결정은 내리셨어요?”

“그래.”

마이애미 말린스.

그리고 크리스티안 옐리치.

그가 어쩌면 이번 오프시즌의 핵심이었다.

오클랜드를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이었으니까.

‘파이어 세일이기는 한데··· 생각보다 빡빡하게 요구하고 있어.’

말린스의 전권을 틀어쥔 데릭 지터는 탱킹을 위한 파이어 세일 주도하고 있었고.

시즌 종료 이전부터 긴밀한 논의를 가지기는 했지만, 던딜까지 도달하기는 힘들었다.

‘일하는 척을 하고 싶은 거겠지.’

데릭 지터, 타고난 슈퍼스타라서 그런지,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원하는 것 같았다.

구단의 이득을 챙기고, 영리하게 진두지휘하는 듯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그렇기에 과장되게 보일 수 있는 ‘많은 숫자’를 그는 요구했다.

질보다는 양으로, 최대한 숫자를 맞춰달라는 거지. 그렇기에 1대4 트레이드가 된 거고.

‘켄달은 무조건 넘겨야겠지. 가장 괜찮게 팔 수 있으니까.’

일단 주축은 켄달 그레이브맨. 지난 시즌 4선발로서 던져주기는 했지만.

재작년, 2016시즌에서는 커리아 하이를 보내며, 중간에 트레이드됐던 리치 힐과 함께, 부상으로 무너진 소니를 대신해 실질적인 에이스 노릇을 해줬었다.

그러니 가장 팔기 적합하지. 몸값이 높은 시기니까.

그렇기에 말린스도 덥석 물은 것이고.

그와 더불어 유망주 하나 정도를 더 이용해 옐리치를 데려올 생각이었건만, 데릭 지터는 다수의 매물을 원했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많기보다는, 당장의 즉전감인 켄달 그레이브맨과 더불어, 중요한 유망주도 내놓으라는 입장이지.

-빌리~ 생각은 마치셨어요? 바레토, 퍽, 핀더? 누가 말린스의 유니폼을 입죠?

전화가 연결된 순간, 리조와 달리, 꽤나 여유롭고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깔끔하게 바레토를 넘기세요. 애슬레틱스에게 중요한 시즌일 텐데, 다른 늑대가 달려들기 전에,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잖습니까?

그가 노리는 유망주 후보는 셋으로. 첫 번째는 프랭클린 바레토다.

‘좋은 자원이야. 유격수와 2루수, 내야 센터라인 포지션이 가능한 유망주니까.’

Go와 맷 채프먼이 날아오르며, 순위가 밀리긴 했지만. 애슬레틱스 팜의 넘버원 유망주였던 선수다.

유격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당연히 쥐고 가던지, 아니면 아예 메인 매물로서 큰 걸 받아오던지 해야 하는 선수고.

-아니면 AJ 퍽도 나쁘지는 않겠죠.

데릭 지터의 말에 빌리 빈은 코웃음 쳤다. 개소리였으니까.

‘AJ퍽은 논의할 가치도 없지.’

AJ 퍽. 작년 오클랜드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다. 그걸로 설명은 끝나지.

갓 뽑아서, 아직 따끈따끈한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은 무조건 비매품이니까. 어떻게 터질 줄 알고 넘긴단 말인가?

최소한 선발투수, 그것도 1라운드급 되는 선수는 못해도 3~4년은 쥐고 있어야 했다.

-채드도 괜찮기는 하겠죠.

‘채드 핀더, 외야 유틸 자원이기는 한데···’

채드 핀더.

외야 유틸리티 자원이다.

아직 젊고 유망한 선수지.

작년, 사실상 전천후 백업으로서 짧은 경기를 소화했는데도 15개의 홈런을 날리며.

준수한 파워를 보여줬었고.

외야수인 옐리치를 데려가는 대신, 그 자리를 채워줄 선수를 내놓으라는 뜻이겠지.

개중에서 말린스가 가장 원하는 건 당연히 프랭클린 바레토다. AJ 퍽은 그냥 질러본 거지. 유격수 자원이라는 건, 언제든지 그럴 듯하니까.

팬들에게 보이기도 좋지.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발표에서 고랭킹을 자주 기록한 선수니, 최소한 호구딜이라는 평가는 없을 거다.

‘허나 실질적으로 노리는 건 채드 핀더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라는 것일 뿐, 둘 모두 알고 있었다. 진짜는 채드 핀더라는 걸.

거기에 마이너에서 두 명 더.

간단했다, 그나마 그가 개중에선 가장 현실성이 높지.

조금 더 까놓고 말한다면, 제일 값이 싸다.

어차피 옐리치를 데려올 테니, 그를 넘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빌리 빈은 고개를 저었다.

‘넷은 안 돼. 옐리치를 얻자고, 유망주를 싹 털 수는 없어.’

그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넘기면서, 거기에 둘을 더 추가 시켜야 하는 것이 문제지.

내년은 물론 가장 중요한 시즌이고, 도전을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팜의 미래를 다 팔아치울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줄여야지.

“바레토, 그레이브먼, 코튼. 이 셋으로 가지.”

-셋이요? 어···

차라리 바레토를 넘기고, 숫자를 줄인다. 그는 물론 아까운 자원이다. 더없이 아깝지.

허나 내부 평가는 조금 애매했다. 분명 쥐고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정말로 터질지가 미묘했으니까.

전체적으로 유망주치고는 완성도가 높다. 타격도, 수비도. 그러니 마이너에서도 잘 날린 것이고.

허나 그에게는 무언가 확실하게 폭발적인 툴은 없었다.

파워도 무난하고. 컨택은 조금은 부족하며. 수비도 평범하다.

히스패닉답게 운동능력이 제법 좋기는 한데, 그것도 대단치는 않지.

유망주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인 것 만으로, 충분히 잠재성이 높아 보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무언가 확실하게 대표할 만한 툴이 없다는 뜻이었다.

수비쪽으로든, 타격에서든. 어느 정도는 잠재력이 있는 것 같지만. 전부 미묘하다는 뜻이지.

‘잘하면 준수한 센터라인 야수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이 그의 몸값이 가장 비쌀 때일 수도 있지. 조시 도널드슨의 유산을 이번에 다 털어버리는군.’

그러니 넘긴다. 차라리 다른 유망주라도 하나 더 남겨두는 쪽으로 선택하고.

결과적으로 조시 도널드슨을 토론토에 내주면서, 받아왔던 매물을 다 처리하게 됐다.

빌리 빈 그의 최대의 실패로 악명이 높았건만. 결국은 쏠쏠하게 사용하게 됐다.

다행히 그런 제안에 데릭 지터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에 차 있었다. 아직은 초짜다 보니, 감정을 감추는 것이 능숙하지는 못한 거지.

설마하니 정말로 바레토를 넘겨줄 줄은 몰랐을 테니까.

-뭐···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겠네요. 검토를 거치고, 다시 연락 드리죠. 금방, 금방 연락을 드리죠.

“다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지.”

애써 덤덤하게 통화를 끝냈지만, 조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빌리 빈은 피식 웃었다.

검토? 데릭 지터 본인이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야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검토고 나발이고, 그의 선택으로 모든 게 결정되지.

그런 그가 이번 제안에 대단히 흥분한 반응을 보였으니. 거래는 이미 끝났다.

조금 있으면 들뜬 목소리로, 약간 거들먹거리면서 제안을 수락하겠지.

“됐어!”

“수락했어요?”

“절반 이상은. 곧 연락이 올 거야.”

그러면 빌리 빈 그의 일도 80%는 끝나는 것이고.

오랫동안 끌고 왔던 일을 끝마친 빌리 빈은 긴 한숨을 뱉으며 그대로 의자에 몸을 뉘였다. 입술을 꽉 깨물면서.

모든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으니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내부 분열? 선수단 사이에서도 갈등이···>

<마이크 파이어스, ‘비열한 행동!’ ‘투수들은 모두 고깝게 봤다!’ ‘주동자는 벨트란!’ 내부고발 파문!>

<사무국의 우승 박탈 논의?>

<리치 힐, ‘다르빗슈를 위해, 시범경기에서 만나는 즉시, 머리를 맞출 것이다!’ 휴스턴 타자들에게 빈볼 위협!>

애스트로스는 불타올랐다.

공공의 적이 되었지.

사실 사람들, 특히 다저스의 기대처럼, 사무국 차원에서는 우승 박탈과 같은 큰 징계를 내리지는 않을 거다. 원래 그래왔으니까.

허나 그건 어차피 애슬레틱스에겐 아무런 상관없다.

이미 애스트로스는 안쪽에서도 무너지고 있고. 밖에서는 공공의 적으로서 지탄 받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인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답은 ‘절대로 아니다’였다.

야구는 심리적 요인이 굉장히 극심한 스포츠인데, 선수들이 멀쩡할 수가 없지.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단이라도,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 기량을 뽐내지 못하는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애슬레틱스의 로스터는 완성이 되었으니···

“올해는 해피 크리스마스겠군.”

“네, 해피 뉴이어겠어요.”

빌리 빈은 그저 기쁘게 웃었다.

####

“Go, 다시 피닉스에서 보네요.”

“저 없는 동안 잘 지냈어요?”

“조금 적적하기는 하더군요. 옆자리에 누군가가 없으니, 쓸쓸하더라고요.”

“밖에선 그런 말 하지 마요. 진짜로 오해받고 있으니까.”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병원은 이미 시즌이 끝나자마자 들렸기에, 올해는 바로 피닉스로 향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던 대니얼도 다행히 휴식을 잘 즐긴 건지, 살이 좀 붙었네.

“올해는 작년보다 내용이 더 심심하겠군요.”

“뭐, 작년에는 커다란 목표가 있었는데, 올해는 아니니까요.”

작년 오프시즌에는 커다란 목표가 있었다. 나한테 숨어 있는 구위를 찾는 것이었지.

다행스럽게도 눈앞의 대니얼이 문제점을 찾아낸 덕분에 지금은 리그에서 제일가는 구위를 가지게 됐고.

그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비교적 심심했다. 딱히, 뭔가 없잖아? 목표는 오직 체력, 시즌 끝까지, 안 쉬고 달리더라도, 작년처럼 중간에 퍼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체력을 갖추는 게 오직 목표였으니까.

“내용 자체는 간결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더 노력해야 할 겁니다. 체력은 그렇게 늘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 빡셀 테고. 까놓고 말해서 나는 이미 강철체력이다 .철인이나 다름없지.

235이닝 던졌는데, 뭘 더 말하겠어? 물론 막판에는 5일 이상씩 쉬어준 덕분에, 멀쩡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체력을 더 늘려야 하니···’

진짜 토 나오겠지.

이미 다 쥐어짠 마른 수건을 한번 더 비틀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방을 더 늘리죠.”

“지방이요? 벌크업 하라고요?”

“많이는 아니고, 5파운드 정도요. 생각해보면, Go가 워낙 좋은 몸을 타고나서 그런지. 지금은 지방이 너무 적어요. 체력에는 지방이 필수적인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지방이라고 하면 뒤룩뒤룩 살찐 것만 생각하잖아?

하지만 나 정도쯤 되면 지방은 그저 윤활유에 불과하다. 몸을 잘 굴러가게 만들어주지.

“무게가 더 늘어난 만큼 조금 힘겹기는 하겠지만, 무릎에 크게 과부하만 주지 않는다면, 괜찮을 겁니다.”

즉 달리지 말란 소리군.

은근히 집착한단 말이야.

왜 코치고, 트레이너고, 내가 슈퍼소닉이 되는 걸 못 마땅하게 보는 걸까?

물론 부상 때문이지.

이 덩치에 뛰다가 잘못 뒤틀리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일어나긴 하겠네.

일단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상황 보고 뛰고 싶으면 뛸 텐데.’

굳이 거짓 약속할 필요는 없으니, 그냥 약속 자체를 안 하는 게 낫겠지. 이게 개소리 같지만, 맞아, 사실 개소리야.

“그런데··· 굳이 여기서 더 체력을 늘릴 필요가 있는지가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 시즌 막바지야, 5일 휴식 덕분이라고 쳐도.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200이닝 이상을 소화할 수 있을 텐데.”

대니얼의 말에 브라이언도 비슷한 의문이 생긴 건지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맞는 말이지.

이미 이닝이터가 되고도 남을 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서 더 체력을 늘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는 않기는 하겠지만, 이유는 있다.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완봉이라도 하시려고요?”

대니얼은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는데···

“어떤 의미에서는요. 마지막까지 생생하게 살아 넘치도록 만들어주세요.”

반절의 정답이다.

정규시즌에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다른 시즌 하나 더 있잖아?

아마도 올해는 충분히 맛볼 수 있을, 페넌트레이스 이후의 시즌이 말이야.

‘내가 변화의 중심이라면, 주인공으로서 걸맞은 퍼포먼스를 준비해야지.’

이미 충분히 에너자이저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포스트시즌에 갑자기 훅 떨어질지도.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체력을 보강해야지.

올해 우리 팀의 대격변은 순수하게 나 하나로 인해서, 나만 믿고, 내가 포스트시즌을 불태워줄 것이라는 생각하에 올인한 건데.

나도 기꺼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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