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78화 (178/316)

178화

“다들, 페넌트레이스 동안 수고 많았다. 올해는 비록 아쉽게 포스트시즌에는 도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등의 여지를 보여줬으니. 내년에는 더욱더 함께 단결해서, 월드시리즈를 노려보자!”

“당연히 그래야죠!”

“올해? 다른 녀석들한테 넘겨줘. 우린 내년에 우승할 거니까!”

“포스트시즌 나가기만 하면, 얘가 다 알아서 해줄 텐데. 무조건 우승이지!”

정규시즌이 끝나고, 선수단이 해산하기 전, 감독님은 일장 연설을 가졌다.

주된 논지는 우리가 내년에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거라는 이야기였지.

올해 포스트시즌도 못 나간 놈들이 이러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날 봐.’

나를 보면서.

쟤가 있으니, 어떻게든 포스트시즌만 나가면 된다! 쟤가 다 알아서 해줄 거다!라는 느낌이네.

동료들에게 신뢰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구만. 좀 부답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끝으로 2017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완전히 끝났다.

“넌 유럽 간다고 했지? 어디야? 파리?”

“거기밖에 더 있겠어? 와이프는 벌써부터 루브른지 뭔지 노래를 부르더라.”

“저번에 피닉스에서 지내보니까···”

“아무래도 난 마이애미가 잘 맞는 것···”

정말로 시즌이 끝나버린 거지. 이미 전부터 오프시즌을 준비했던 선수들이지만, 이젠 대놓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다만 손목은 확실하게 놀리면서.

“Suck, 혹시 유니폼에-”

“네, 사인해드릴 게요.”

“고마워, 너도 필요하면 해줄 게. 뭐, 필요하겠느냐 싶지만.”

대충 서로 유니폼에 사인해주는 거지. 가족에게 주려는 사람도 있고, 올해를 추억하려는 것도 있고.

대충 말을 들어보니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시즌 끝났다고 쌩 헤어지는 건 조금 그렇잖아? 그래도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한 해를 같이 보냈는데. 뭐라도 하나 남기는 거지.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편이기는 했지만.

“혹시 세 벌도···”

“해줄 테니까 줘요.”

워낙 엄청난 시즌을 보냈잖아.

같은 동료끼리라도, 내 사인의 가치가 더 높을 수밖에.

주변 지인에게 주거나, 아니면 보관하거나 하기 딱 좋지.

물론 내가 여기저기 죄다 사인을 해주고 다닌 터라, 희소성이 좀 많이 낮기는 하지만.

그렇게 한 장, 한 장 사인을 휘갈겼을 때, 브루스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너도 해줘?”

“어, 혹시 나도 세 장 해줄 수 있어?”

“너는··· 당연히 해줘야지. 그래도 배터리였는데. 올해 고생 많았다. 부모님 드리려고?

아니면 여자친구?”

“어, 부모님. 사실 엄마랑 아빠가 엄청 얘기했어. 어떻게든 너한테 사인받아오라고. 집에 걸어둘 거라고 하더라. 우리 아들이 이런 선수랑 퍼펙트 게임 두 번을 함께 했다면서. 아, 노히터 한 번도.”

“롤렉스도 제대로 자랑해. 퍼펙트 하고 받은 거라고.”

“당연히 그래야지. 양 손목에 하나씩 차고 갈 거야. 내가 어떻게 받은 건데. 무조건 자랑해야지.”

슬그머니 유니폼을 건네며 옆자리에 앉은 브루스는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년은 윈나우겠지? 감독님 말처럼, 우승을 노릴 테니까.”

“그렇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아깝잖아? 내가 애슬레틱스에 있는 시간을 허비하는 게.”

“하긴, 솔직히 빅마켓도 아니고, FA 되면 고이 보내줘야 하는데. 그 전에 본전을 뽑기는 해야지.”

대충 예상이 됐다.

무엇이 브루스를 걱정스럽게 만드는 건지. 아마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알고 있을 거다.

‘윈나우라는 건··· 기본적으로 기존 선수단에서 몇 명은 나가야 한다는 뜻이니까.’

지금 이 클럽하우스 안의 사람들 중 몇 명은 내년에는 함께하지 못하리라는 걸.

가난한 애슬레틱스의 윈나우가 뭐 있겠어? FA로 선수 데려올 것도 아니고, 그냥 기존에 있는 선수를 트레이드로 팔아서, 현재를 만드는 거지.

아마도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혹시나 나도 그 대상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을 거고.

트레이드 매물로 포수만큼 좋은 포지션이 없잖아?

“다 됐네. 가져가.”

“나도 해줄까?”

“됐어, 우리 아빠는 트라웃 정도만 취급해. 엄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한테는 그리 관심 없고. 넌 기준 미달이야. 다음에 더 잘하도록.”

“너무하네··· 트라웃보다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도 제법 잘했는데.”

농담에 괜히 입술을 씰룩거리는 브루스에게 사인을 마친 유니폼을 건네준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잘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착실하게 준비해서 오고. 월드시리즈에서도 같이 퍼펙트 하고 싶으면.”

내 말에 잠깐 멈춰 선 브루스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두툼한 뱃살을 두들겼다.

“그래야지, 솔직히··· 올해는 Suck 너한테 묻어갔잖아? 내년까지 그럴 수는 없지. 일단 오프시즌 동안 이 녀석부터 떨쳐내고 올게. 오랜 친구이긴 한데, 너무 오랫동안 같이 지내서 그런가, 이젠 꼴보기가 싫네.”

별건 아니고. 그냥 귀찮잖아? 새로운 포수가 오거나, 또 다른 파트너를 찾거나 하면, 다시 또 기싸움하고, 길들이고, 말 잘 듣게 타이르고 해야 할 텐데.

그보다는 이미 익숙하고, 말 잘 듣는 녀석이 더 낫겠지. 내년에도 잘하려면 말이야.

‘진짜 끝이네.’

볼 일을 마친 선수들이 떠나며, 조금 한적해진 클럽하우스를 눈에 담았다. 정말로 시즌이 끝났네.

‘뭐, 얼마 있다가 다시 시작이지만.’

####

시즌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웬만하면, 모든 수상이 확정될 때까지는, 미국에서 머물고 계시는 걸 추천합니다.”

정규시즌 끝나자마자, 브라이언이 집으로 왔는데, 그가 그러더라고. 웬만하면 미국에 있으라고.

“왜요? 뭐, 더 할 일이 있던가?”

나는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의 설득에 생각을 바꿨다.

“최근에는 많이 물갈이되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기자단에는 조금 보수적인 이들이 있습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표를 안 주다거나 하는 사람들이요.”

쉽게 말해서 꼰대들이 있다는 건데. 솔직히 나는 이미 기자들에게 잘 보일 시기를 지났다. 이런 성적인데, 무슨 이유에서든지 무조건 표를 줄 수밖에 없지.

“저 이미 삼관왕 확정 아니에요? 저한테 안 주면 스캔들 일어날 것 같은데.”

“만장일치도 하셔야죠.”

“아, 그쵸, 셋 다 만장일치. 그것도 해야죠.”

근데 이건 좀 탐이 나더라고.

신인왕-사이 영-MVP 삼관왕이야, 사실 8월부터 이미 기정사실이긴 했지만. 기왕이면 이런 성적 찍었는데, 셋 다 만장일치 받아야지.

그리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고. 시간이 아직 한참 남기는 했지만, 미리미리 다 준비해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나도 마음 편하고, 브라이언도 편할 테니까.

“오프시즌 트레이닝은 저번처럼 피닉스가 낫겠습니까?”

“아무래도 그쪽이 더 편하기는 하겠죠. 어차피 내년 스프링 캠프도 피닉스니까.”

“예, 그럼 대니얼과 미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인스트럭터를 따로 생각해두셨습니까? 만약 있으시다면, 구단과 논의를 가져보죠.”

저번 시즌, 그렉의 효과(?)가 좋았기 때문인지, 브라이언은 은근한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렉한테 커터랑 투심 배워서 시즌 내내 쏠쏠하게 써먹었잖아? 두 가지 서클을 완벽하게 커맨드 잡는 것에도 도움이 됐고. 어? 생각해보니 도움이 엄청 컸네?

나중에 선물이라도 보내야겠어.

‘2년차 징크스를 대비하려면, 그 정도의 진화가 필요하겠지.’

징크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렇게 미신적인 일은 아니다. 흔히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표현하는 것들은.

한 시즌 내내 분석이 되면서 찾은 약점들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때가 2년차니까. 단순히 징크스가 아니지.

물론 지금 상황에서 내 약점을 찾아봤자, 그게 얼마나 큰 효과를 보일까, 싶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미리 대비하고 있는 게 좋겠지.

하지만 딱히 생각해둔 사람은 없었다. 발전의 방향이야 생각해두기는 했지만.

‘그나마 한 명이 있다면··· 그 사람이겠지.’

그래도 막상 물어보니, 누군가가 떠오르긴 하네.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때요? 가능할까요?”

“으음··· 은퇴 이후로, 영구결번 정도를 제외하면 노출이 없는 터라,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군요. 일단 구단에 이야기는 해두겠습니다. 확실히 초청할 수만 있다면, 도움은 되겠네요.”

“그쵸?”

비슷한 생각인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은 브라이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밖에도 할 일은 무수하게 많았다. 오프시즌으로 다 미뤄뒀던 광고 촬영이나, 인터뷰 같은 것들도 해야 하고. 내년에 살 집도 미리 알아봐야 하고.

시즌 끝났는데, 바쁜 건 지금이 훨씬 더 바쁘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일단 밀린 일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병원부터 가시죠. 괜찮은 곳으로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병원 가야지.

한 시즌 열심히 굴렀는데.

####

“뭔가··· 이러고 있으니까, SF 영화에서 신체개조 받는 것 같네요.”

“네, 캡틴 아메리카 같군요.”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것을 덜렁이며 이야기하자, 브라이언은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통 까고, 인체실험 당하고 있는 게 그리 흥겹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아주 철저한 검사를 받아야 했으니까.

‘솔직히··· 빼도 박도 못하는 혹사지. 나야 많이 던져서 좋았지만.’

올해 235이닝을 던졌다.

내가 작년에 140이닝쯤 던진 걸로 아는데, 대충 100이닝 가까이 더 던진 셈이지.

사실 굳이 작년이랑 비교할 필요도 없이, 한 투수가 235이닝쯤 던지면 그건 그냥 혹사다.

그나마 내가, 엄청나게 어린 나이는 아니라서, 신체의 성장이 다 마쳤기에 그나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내구성이 약한 선수라면, 그대로 어깨 박살나기 딱 좋지.

언론에서 괜히 마크 프라이어랑 비교한 게 아니야.

내가 잘나가니 괜히 나중에 부상으로 망할 거라고 태클 거는 것도 있지만, 진짜 혹사라서 걱정하는 반응도 적지는 않았거든.

‘칼 같이 투구수 제한받아서, 100구를 넘긴 경기는 생각보다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브라이언이 알아봐준, 스포츠 선수를 전문으로 한다는 LA의 병원에서 몸을 쭉 훑었는데.

“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풀타임 시즌을 보낸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낫군요.”

예상처럼 큰 문제는 없었다.

그치,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면 나나 대니얼이 바로 캐치 했겠지.

“아무래도 Mr.Go는 어깨에 과부하를 주지 않다 보니, 생각보다 큰 피로가 쌓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부하요?”

“그러니까··· 강속구요.”

“아, 그런 과부하. 제가 좀 느리긴 하죠.”

요컨대, 내 공이 느린 덕분에, 생각보다 어깨에 큰 피로를 주지 않았다는 거구만.

파이어볼러가 똥볼러보다 부상 위험이 더 크다는 거야, 유명한 사실이지.

그만큼 몸을 비틀고, 어깨에 무리를 줘야지만, 그런 강속구를 던질 수 있으니까.

“쉽게 말해서, 투수를 자동차로, 어깨를 엔진으로, 피칭을 주행으로 비유했을 때. 95마일 이상의 속구는 급가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표지점까지 보다 더 빠르게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는 엔진에 무리를 주죠.”

“그러다 보면 차가 퍼지는 거고요?”

“정확합니다. 물론 저마다 엔진과 그 내구성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수십 년을 넘도록 가속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반대로 나는 그런 급가속 없이, 오랫동안 진득하게 서행하면서 달린 덕분에 생각보다 엔진에 무리가 안 갔다는 거구만.

구속이 느린 덕분에 오히려 몸이 괜찮다는 건데. 이걸 좋아 해야 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네.

“Mr.Go 본인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수준이 딱 적절합니다. 이 이상 출력을 높여서, 올해처럼 시즌을 소화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겠죠.”

“그럼 지금 정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한 10년은 멀쩡할까요?”

“저는 그런 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비슷한 조건의 파이어볼러들 보다 훨씬 안전한 건 사실이겠죠.”

어쨌든 지금처럼만 하면, 올해 같은 페이스를 쭉 유지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건데. 나쁘진 않네.

걱정스럽게 보던 브라이언은 한시름 덜은 건지, 조금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내심 걱정했었나 봐.

그것으로 검사는 끝났다.

시즌 직후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내년에도 열심히 잘 달리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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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린다고 말한 건, 내년 시즌이었지, 이런 뜻이 아니었는데.

“예, 좋습니다. 그대로, 네. 포즈 유지하면서- 네! 아주 좋습니다.”

대체 뭐가 좋다는 걸까?

만나는 감독마다 죄다 저 소리다. 그냥 좋대, 막 좋대.

내가 좋다는 뜻인가?

마지막 검사까지 마친 뒤, 아무런 문제 없이, 몸이 깨끗하다는 걸 인증받은 이후.

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올해, 날 부자로 만들어준 대가 말이야.

브라이언, 어쩐지 한국으로 못 돌아가도록 막더니. 그래, 이게 남아 있었어.

“좋다고 막 받아먹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예정된 일이죠. 그러게 제가 적당히 가려서 선택하라고 조언을 드렸잖습니까?”

“그땐··· 그냥 돈에 눈이 돌아갔어요.”

이래서 할 일은 그때그때 바짝 해버려야 돼.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시즌 동안, 각종 제안으로 벌어들였던 1000만 달러의 대가는 오프시즌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광고 CF부터, 게임이나 잡지 표지모델까지. 통장에 잔고 쌓일 때는 기분 좋았는데. 막상 다 처리할 때 되니까, 힘드네.

“저··· 혹시-”

그래, 이것도 좀 귀찮고.

종종 CF를 찍을 때, 상대 모델이 있기도 했는데, 받은 전화번호만 대충 한 수첩 정도는 됐다.

과감하게 본인이 직접 건네주거나, 아니면 그쪽도 에이전트를 통해서 전하거나 했지.

스포스 스타잖아? 그것도 현시점에서 가장 잘나가는 슈퍼스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사실 시즌 중에도 종종 있기는 했고. 인터뷰 리포터나 팬 말이야.

“저는 어디까지나 에이전트이니, 선수 개인의 사생활에는 아무런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데릭 지터 같은 종류의 슈퍼스타도 나쁘지는 않겠죠.”

브라이언은 그저 이런 상황이 재밌는 건지, 나에게 데릭 지터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 됐어요, 이 사람아.

아무튼 그렇게 뒤로 미뤄뒀던 일을 차곡차곡 해치웠을 때, 우리는 초대 받지 못했던 포스트시즌 역시 끝을 향해 달려갔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우승 도전!>

‘애스트로스, 결국 월드시리즈까지 갔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파죽지세로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갔다. 우승을 노린다더니, 그 말을 지키는 거겠지.

반대편 NL에선 누구나 예상했던 우승후보,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의 문턱을 넘었고. 그쪽 역시 당연하게도 우승을 이야기하지.

‘둘 중에서 응원한다면, 아마도 다저스겠지.’

뭐, 다저스야 어릴 때부터 자주 봤던 팀이잖아? 오죽하면 국저스라는 말이 있을까.

그리고··· 애스트로스는 한 짓이 있어서 그런가, 묘하게 정이 안 가기도 하고.

사실 그보다는 그냥 아무나 이겨라에 가깝기는 하지만. 내가 월드시리즈 간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누구든 우승하겠지.

“한국 쪽에서도 제안이 상당히 많습니다, TV 프로그램부터, 광고까지.”

“됐어요, 그건. 광고라면 이제 징글징글해서···.”

일단 여전히 한참 밀려 있는 내 일부터 처리하자고.

X발 과거의 고유석 X새끼야, 왜 그걸 다 넙죽 받아 처먹어서, 지금의 나를 괴롭히는 거야.

돈 그거 어차피 몇 년 더 뻐기면, 수천억도 더 벌 텐데. 고작 그게 뭐라고···

몇 달 전의 내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수상 다 끝날 때까지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일이라도 있어야 시간이 금방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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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다르빗슈 유, 월드시리즈의 문턱에서··· 무너지는군요.

2017 월드시리즈.

그 장엄한 무대에서 애스트로스와 다저스는 1차전과 2차전을 나란히 1승씩 가져갔다.

그리고 어쩌면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3차전, 어쩌면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투수가 호기롭게 올랐고.

포스트시즌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다저스 팬들은 기대했지만, 그는 무너졌다.

“다르빗슈가 1.2이닝 4실점이라. 놀랍군.”

“예, 조금··· 충격적이네요.”

그 장면을 빌리 빈 역시 지켜봤다. 내년, 애슬레틱스의 시즌이 걸린 경기였으니까.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충격을 받았다.

다르빗슈 유.

올해 중순까지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투수였기에, AL 서부지구 팀들은 그의 위력을 아주 잘 알았다. 그가 얼마나 좋은 투수인지 말이다.

그런 투수가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아주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은, 그 강력함을 아는 이들에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줬다.

물론 이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맥없이 쓰러졌지.

“혹시···”

고작 1.2이닝.

2이닝도 채 채우지 못한 채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들이 조사하고, 증거까지 잡은 일이, 지금 이 상황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포스트시즌에서까지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닛메이드 파크이니, 의심스럽기는 하지.”

빌리 빈 역시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의심을 품었고 말이다.

“저런- 저게 지금 제정신인-”

그때, 중계 카메라에는 한 장면이 잡혔고, 그것을 본 데이비드 포스트는 분노했지만, 빌리 빈은 그저 피식 웃었다.

“만약 휴스턴이 우승한다면··· 후폭풍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겠어.”

월드시리즈에서 무너진 에이스급 투수. 그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마지막 조롱까지 가했다.

화면에 잡힌, 양 검지로 눈을 쭉 늘리는 모습을 보며, 빌리 빈은 고개를 저었다.

“제 무덤을 파는군.”

이미 장전된 총알이 무색하게도, 애스트로스는 직접 그 무덤까지 파고 있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선수 개인의 일탈이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영광과 저열한 자신감의 원천이, 추악하게 더럽혀져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과연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분노를 토해낼까? 어떤 징벌을 원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것들이 애슬레틱스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거다. 경쟁자가 망가질수록. 다른 팀이 잘 나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니까.

“준비는 마쳤나?”

“예, 증언도 확보했고, 증거도 확실하니, 타이밍 잘 맞춰서, 터트리기만 하면 됩니다.”

“시범경기 전에, 일을 마치자고. 사무국엔 내가 미리 통보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빌리 빈은 티비 화면을 껐다.

그 역시 한 사람의 야구팬이기에, 지울 수 없는 의심에 괜히 불쾌감만 올라오는 월드시리즈를, 그리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월드시리즈가 끝나는 즉시, 본격적으로 말린스와 대화를 트자고.”

“누굴 노립니까? 디 고든? 오즈나?”

그보다는 내년의 애슬레틱스를 위해,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겠지.

말린스와는 이미, 서로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 혹은 포기한 직후부터 꾸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한 눈치였지.’

그들은 애슬레틱스가 이토록 즉각적인 윈나우를 노린다는 것에 신기해하지 않았다.

Go. 그런 투수를 가졌는데, 그가 FA로 나가기 전, 그를 이용한 한탕을 노리는 거야, 스몰마켓 팀으로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윈나우에 대한 반응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로 다른 리그인데다가, 파이어 세일을 각오한 말린스로서 꽤나 탐스러울 젊은 자원이 애슬레틱스에 제법 있었으니까.

“전력상으로는 디 고든도 괜찮긴 하겠지만, 이미지가 더 떨어지겠지.”

일단 디 고든은 사절이다.

마크 맥과이어. 미겔 테하다. 제이슨 지암비 등등.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들의 약물 복용 적발로 이미 약물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씌인 애슬레틱스인데, 만약 디 고든까지 품는다면, 그 이미지가 완전히 박혀버리겠지.

그건 현재 Go로 인해 쏟아지는 관심을 통해, 구단의 체급을 키워야하는 애슬레틱스로선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오즈나는 값이 너무 비싸, 그를 사려다간 팜 전체를 털어도 모자랄 거야.”

그다음 후보인 마르셀 오즈나는 몸값이 너무 비싸다.

올해 최종적으로 37홈런을 날리며, 플루크인 듯싶기는 해도,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으니까. 그렇기에 노리는 팀들도 무수하게 많지.

올해는 플루크라고 해도, 최소한 20홈런 이상 때려줄 수 있는 타자니까.

“그럼···”

“크리스티안 옐리치. 그가 내년을 위한 가장 중요한 퍼즐이야. 스카우트팀, 분석팀 모두 동원해서 분석하고. 말린스의 구미가 당길만한 매물도 준비해.”

애초에 애슬레틱스가 품을 만한 규모가 아닌 스탠튼까지 제외한다면. 말린스가 품은 보물 중 남는 건 결국 크리스티안 옐리치였다.

준수한 컨택 능력을 갖추어, 애슬레틱스에는 없는 테이블 세터로서 딱 알맞고.

잘만 한다면 20홈런도 때릴 수 있을 만한 준수한 파워를 갖췄으니, 현재 무언가 조금은 부족하고 애매한 오클랜드 타선을 보강하기에 제격이었다.

현재 주류 트렌드가 된 플라이볼 위주의 어퍼스윙 대신, 레벨 스윙을 하는 타자인 만큼, 넓고 홈런을 억제하는 콜리시엄과도 잘 어울릴 테고.

‘툴이 많은 선수이니, 어떤 방식으로든지 팀에 도움이 되겠지.’

또한 말린스는 윈나우 실패로, 기존의 재정지출을 줄이려, 파격 세일을 하는 만큼,

기존에 7년 4957만 달러로 연장 계약하면서, 그가 받아가는 708만 달러의 연봉을 페이롤에서 추가로 절약할 수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는 구미가 당길 테고 말이다.

최근 재정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한 만큼,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퍼즐을 맞추고, 지금 행복한 월드시리즈를 보내고 있는 기존의 서부지구 강자까지 확실하게 고꾸라뜨린다면.

‘월드시리즈···’

그 모든 것이 단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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