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아웃!
1회 초가 종료됐다.
2번 타자, 맷 조이스가 곧바로 안타 하나를 얻어내며, 제법 흥을 내기는 했지만, 기회를 이어가지는 못했네.
하지만 괜찮다.
내 차례가 된 거니까.
어떤 의미에서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불펜의 문을 열고 나가니.
이젠 완전하게 차오른 관중석과 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이 나를 맞이해줬다.
“Suuuuuck! 오늘 한번 가보자!”
“판넬도 열 개 딱 챙겨왔어! 그것만 잡으면 돼, 그것만!”
우리 팬들도 많긴 엄청 많네.
같은 서부지구라고 해도.
오클랜드와 알링턴은 거리 차가 상당한데, 관중석의 곳곳에서 애슬레틱스 유니폼이 흩날렸다.
오늘도 내 이름을 외치는 팬들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주며 마운드에 올라서자.
마찬가지로 레인저스 타자들 역시 그라운드로 나왔다. 나랑 달리, 대단히 비장한 표정을 하면서. 저쪽도 준비 단단히 했나 보네.
‘라인업도 빡빡하고.’
보통 시즌 마지막 시리즈쯤 되면, 대부분은 백업이나, 갓 콜업한 신인급이 자주 출장한다.
포스트시즌을 나가든, 나가지 않든, 주전 자원들의 체력 안배와 보호를 위해서.
그런데 오늘 레인저스는 시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직 주전급으로만, 확실하게 전력을 갖춰서 라인업을 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야 뻔하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홈에서 내가 마지막 파티를 여는 걸 막아보겠다는 거겠지.
‘폼 좋다고 마음 풀면 안 되겠네.’
그런 레인저스 타자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마지막 마운드에서의 연습피칭까지 마친 뒤.
잠시 숨을 고르며, 자세를 가다듬자, 그에 맞춰 오늘의 첫 타자가 타석에 올라왔다.
이번 시즌 내가 보는 마지막 리드오프. 엘비스 앤드루스. 요즘 자주 봐서 그런가, 괜히 좀 익숙하네.
‘생각보다 평범하네. 아주 이를 갈고 나올 줄 알았더니.’
떨리는 건지, 배터박스 앞에 잠깐 멈춰 서서 심호흡한 뒤, 타석에 올라 자세를 잡은 그는 그냥저냥 평범했다.
오직 삼진을 면하겠다는 생각에, 배트를 짧게 잡는다거나, 평소보다 가벼운 배트를 쓴다거나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괜히 기록을 망치려고 온갖 짓거리를 해서, 타자들에게 혼란을 주기보다는. 그냥 최선의 라인업을 내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뜻이겠지.
‘악에 받친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까다롭네.’
만약 그렇게 나왔다면, 그건 그거대로 낚아 먹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야.
그저 확실하게 의지를 갖춘 채 경기에 임한 레인저스는 적어도 이번 시즌 내가 본 모습 중 가장 그럴듯해 보였지만, 괜찮다.
“스트라이크 아웃!”
어차피 오늘은 상대가 뭔 짓을 하든, 다 때려눕힐 자신 있었으니까.
크게 헛스윙한 엘비스 앤드루스는 오늘 경기의 첫 타자이자, 첫 번째 삼진이 됐다.
“You Suck!”
“You Suck!”
“아홉 개 남았다!”
375번째 삼진이기도 하고.
시작부터 기대했던 것처럼 삼진이 올라가자,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관중들 중, 꽤나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간혹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흥겹게 소리치기도 했고. 혹시라도 여기 사람이면, 카메라에 안 잡히도록 조심하셔야겠네.
‘선배님 저번에 저 홈런 맞을 때 웃으시더라고요?’
그다음 타자는 2번 추민수.
우리 선배님, 제가 실망이 큽니다. 아무리 레인저스 선수라고 하지만. 그래도 후배가 홈런 맞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나 기뻐하시다니.
우리가 어? 같이 밥도 먹고! 말도 놓고! 사우나···는 안 가고! 아무튼 얼마나 좋았어?
근데 그렇게 배신하시다니.
굉장히 실망입니다.
그에 대한 죗값으로.
“스트라이크 아웃!”
제 기록이 되어주세요.
그 역시 깔끔하게 삼진아웃.
연이어 올라간 삼진에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환호성도 더 커졌고.
그와 함께 홈팬들, 레인저스 팬들의 한숨도 커지기는 했지만, 그거야 어차피 내가 알 바 아니지.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마지막 3번 타자, 아드리안 벨트레. 지난 경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는 오늘은 그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 다부진 모습으로 타석에 올랐다.
“볼.”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살짝 보더라인에 걸치려고 했는데, 주심이 볼로 선언했다.
‘존을 조금 짜게 잡은 건가? 아슬아슬하게 선에 걸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바깥쪽 기준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나쁘진 않지. 벨트레도 제대로 골라서 본 것 같지는 않고.
“스트라이크!”
2구는 다시 포심 패스트볼.
이번엔 정 반대로 몸쪽으로 깊숙하게 넣자, 진득하게 보라는 지시라도 받은 건지, 아드리안 벨트레는 다시금 스윙을 참았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바깥쪽과는 반대로, 몸쪽은 후하더라고.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같아도, 이러면 나한테 쪼끔 불리하다.
몸쪽 코스보다는 바깥쪽 코스가 더 안전한 게 사실이니까. 뭐, 그런 게 딱히 상관없는 컨디션이라서 다행이지만.
“스트라이크!”
3구만에 첫 스윙이 나왔다.
다시 몸쪽으로 날아든 공에 아드리안 벨트레는 한 차례 타격을 했지만. 시원스럽게 헛 돌은 배트.
오프스피드를 예상한 건지, 배팅 타이밍이 살짝 늦었는데, 이번에도 포심이었다.
‘흔들리네.’
세 번 연속 포심 패스트볼.
거기다가 셋 다 들어오는 코스였다.
그에 타자는 자신이 이 정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지난 경기랑 반대니까.’
지난번은 첫 타석에 체인지업만 세 개를 던졌었지. 경기 내내 웬만하면 브레이킹볼 위주로 상대했고.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 포심만 줄줄이 던지고 있으니, 그로서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애초에 체인지업은 몰라도, 내가 포심을 연달아 세 번 던지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기록에 눈이 멀기 시작하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수싸움인가? 다음 공은 뭐가 날아오지?
그런 생각들이 아드리안 벨트레의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저 정도의 베테랑인데도 표정 관리를 못 한다는 건, 그만큼 그가 당황했다는 뜻이겠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그러시나.’
그런 아드리안 벨트레에게 나는 명쾌한 해답을 내려줬다.
“스트라이크 아웃!”
복잡하게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저번처럼 편하게 삼진 당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좋아? 가만~히, 아주 얌전~하게 타석에 있다가 내려가면 되는 건데.
4구째, 다시금 바깥쪽에 걸친 코스에, 혹시나 하면서도 유인구라 판단한 듯, 스윙을 꾹 참은 엘비스 앤드루스였지만. 이번에도 포심이었다.
네 번 연속 같은 구종, 같은 구질의 공이 날아왔는데도 그걸 넋 놓고 보고 있기만 한 자신이 원망스러운 건지.
아니면 자신을 농락한 나한테 화가 난 건지는. 그도 아니면, 결의를 다지고 나왔는데도 첫 시작부터 세 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못 마땅한 건지는 몰라도.
아드리안 벨트레는 다소 거친 발걸음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You Suck!”
“유우우우우우우! 써억!”
“염소! 이게 염소지!”
“고맙다 아드리안! 다 네 덕분이야! 저번 경기처럼 세 개까지만 좀 부탁하자!”
“레인저스야 고마워! 너희들이 기록을 만들어주는 거야!”
그가 무슨 생각을 하건, 어떤 감정을 품었건 상관없이, 언제나 그렇듯, 삼진당한 놈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함께.
레이더스도 다른 원정 경기보다 조금 더 많이 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소리가 더 크네.
우리 팬, 정확하게는 내 팬이라서 다행이지, 만약에 내가 저 입장이었으면···
‘어우, 진작 뒷목 잡고 쓰러졌지. 울화가 터져서, 속이 꼬이던가.’
정말 다행이야, 저 사람들이 내 팬이라는 게. 그리고···
“You Suck!”
그들에게 시즌 마지막까지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
“스트라이크 아웃!”
애슬레틱스의 공격을 수월하게, 삼진으로 저지하는 투수를 보며, 레인저스 선수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회 말이 끝난 직후.
타자들에겐 야수로서 수비에 집중할 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평소에는 간단하게 잡을, 쉬운 타구가 나오더라도, 오늘은 자칫 실책을 범해버릴지도 모르지.
“미겔, 잘하네. 오늘 네가 이기는 거 아니야?”
“완봉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네가 확 잡아버려.”
2회 초의 공격이 끝나고,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미구엘 곤잘레스에게 가볍게 농담을 던진 선수들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눈동자 하나는 항상 상대팀 덕아웃, 점퍼를 벗고 있는 선수에게 향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 마운드에 오른 그 녀석, ‘괴물’의 모습은 그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박혔다.
“편안해 보이더라.”
“어, 오히려 저번 경기보다 여유롭던데.”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준비했다. 어떻게든, 마지막 굴욕만큼은 면하기 위해서.
이번 시즌 네 번이나 상대해본, 네 번이나 ‘박살’나본 투수이기에, 녀석의 실력이야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우리가 가장 잘 아니까.
삼진 열 개.
생각보다 힘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우습게 해버리는 녀석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런데, 정작 그 본인은 너무나도 평온해 보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까지 몇 발자국만이 남았는데도.
마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주 여유롭게 삼진을 잡았지.
그걸 보니, 왠지 질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저런 녀석을 저지해야 한다고? 우리가?
“언론에서는 아주 기정사실처럼 떠들더만. 진짜 그렇게 되게 생겼네.”
“언론이 아니라, 여기서도 그러잖아. 둘러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그건··· 그렇네. 무슨 콜리시엄도 아니고...”
바깥에서는 이미 축제가 일어나고 있다. 미디어와 팬들, 인터넷, 모두 빠짐없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이미 이뤄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장면을 직접 눈에 담겠다는 의지로,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 찾아온 사람들도 보다시피 엄청나게 많고.
그 오만함과 축제를 망가뜨려주고 싶었는데···
“아직 기회 많이 남았어.”
“일곱 개? 쟤 완봉해도 삼진 일곱 개 못 잡는 놈이야.”
“조이, 쟤 좀 짜증나는데, 오늘도 한 대 때려줘라.”
신기록까지 남은 열 개의 계단 중 벌써 세 개나 허비했다. 너무나도 이르게.
그것이 주는 상실감이 레인저스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은 애써 떨쳐냈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루저’가 되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맞서 싸워야겠지.
그런 마음으로 무너지려는 정신을 지탱하며, 애써 소리친 레인저스는 다시금 무대의 앞에 섰다.
“조이, 포심이··· 저번보다 더 좋더라. 매덕스 했을 때보다 더해. 작정한 것 같던데, 크게 신경쓰지는 말고, 그냥 코스랑 구종 정해놓고, 죽어라 그것만 노려봐. 뚝심 있게. 단, 절대로 내색하지는 말고.”
어금니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간신히 내뱉은 아드리안 벨트레의 조언에 조이 갈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이자, 리빙 레전드이건만. 한 투수에게, 두 경기를 연이어 농락당한 그의 들끓는 심정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 역시 그와 비슷한 꼴이 되지는 않을지, 조금 두려웠으니까.
‘한 방, 딱 한 방만 노리자.’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신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그저 녀석에게 삼진을 하나 더 선물해줄 뿐일 테니까.
그렇기에 지난 경기의 느낌, 그 짜릿했던 손맛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때의 감각을 되새김질했다.
“조이! 오늘도 하나 날려!”
“Home Run! Home Run!”
팬들이 그를 부른다.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그가 이번 시즌, 레인저스에서 유일하게 타점과 득점을 올린 타자니까.
그 모습은 어쩌면 그들이 응원하는 레인저스와 비슷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는데도. 애써 소리치는 거니까.
하지만, 억지로 소리치더라도, 억지로 기대하더라도, 팬들이 그것을 바란다면. 어떻게든 이뤄야 하는 것이 메이저리거이기에.
“조이이이이이!”
그 목소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조이 갈로는 타석에 올랐다. 저번 경기의 영광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스트라이크!”
허나.
현실은 냉혹했다.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걸친 초구. 공의 위력도, 무게감도, 코스도, 모두 완벽했다.
그만큼 오늘 저 녀석 또한 심상치 않다는 뜻이리라.
가만히 초구를 지켜본 조이 갈로는 문득 눈앞의 마운드가 조금 더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기에 배트를 더 강하게 쥐었다. 혹시라도 놓치지 않도록.
“스트라이크!”
2구 역시 스트라이크.
이번엔 제대로 서클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크게 헛스윙할 수밖에 없지, 이런 공은.
앞서, 1회 말, 마지막 타자였던 아드리안 벨트레에겐 집요하게 포심을 던지더니···
‘침착하게,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치는 거야.’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드리안 벨트레가 어째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건지.
단순히 농락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억지로나마 버텨내기 위해 그랬던 거겠지.
그를 따라 마찬가지로 입을 앙 다문 조이 갈로는 마지막 3구를 기다렸다.
‘너클 커브.’
조언처럼, 많은 생각은 필요 없다. 저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딱 하나, 하나만 지켜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너클 커브를 간절히 바라고서 타격에 임했고, 마침내 투수는 공을 던졌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도 배트는 닿지 않았다.
크게 헛스윙한 뒤, 잠깐 그 자세 그대로 멈춘 조이 갈로는 여전히 여유로운 투수를 보며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진짜, 작정했네, 쟤도.’
저렇게 여유롭게 굴면서도, 공에는 힘을 한가득 담은 것이 느껴졌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2회가 끝났을 때.
투수는 두 걸음을 더 내디뎠고. 레인저스에게 주어진 기회는 벌써 반으로 줄어들었다.
####
“넌 포수 아니었으면 진작 방출됐겠다.”
시원스럽게 아웃을 당하고 돌아왔을 때, 파트너는 평소처럼 타자들을 쏘아보는 대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날까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불쾌하지는 않다. 뭐, 우리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내가 포수를 하는 거지. 네 덕분에 묻어갈 수 있으니까.”
“어련할까. 그래, 넌 공이나 잘 받아라. 내가 알아서 먹여 살려 줄 테니까.”
“Yes Suck.”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
저 녀석이 글러브를 끼고 있는 것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무조건 이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주섬주섬 포수장비를 차다가, 문득 다시금 녀석을 봤다. 오늘 같은 날에도 별로 긴장이 없어 보이는 녀석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부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했었지.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으로 등극한 녀석이니까.
‘엄청났었지. 시작부터. 신성의 등장이었으니까.’
코치, 감독, 기자, 프런트나 팬들까지. 그야말로 모두가 주목했다.
그렉 매덕스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선생을 직접 붙여줄 정도로.
시범경기가 채 시작하기도 전부터, 단순히 연습에서 던진 공만으로 모두를 사로잡았지.
먼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건 자신이지만, 저 정도의 관심을 받아본 적은 없기에, 그저 부럽기만 했고.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련 녀석이 포수였으면··· 지금도 마이너에 처박혀 있었겠지.’
타자나 포수가 아니니까.
저런 괴물이 경쟁자였다면, 정말 힘들었을 테니까.
실제로 작년에 괜찮은 성적을 찍었던 켄달과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투수 유망주로 각광받은 션 마네아가 완전히 지워졌잖아?
심지어 에이스인 소니 그레이마저도, 그 자리를 내줘야만 했고. 물론 그는 중간에 부상으로 이탈해서 그런 거지만.
그러다가 시범경기에서 처음 공을 받았을 땐, 단순히 부럽기만 했던 재능이 확실하게 실감됐다.
‘그때도 엄청났지. 엄청나게 무거웠고, 엄청나게 무서웠어.’
포수가 된 이후로, 공을 받는 게 아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마이너 생활을 거치면서,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도 받아보고, 난다 긴다 하던 녀석들의 공을 많이 받아봤는데 말이야.
그리고 변화구들은 더럽게 까다로우면서, 더럽게 다양했지. 사인을 외우는 게 힘들 정도로.
그 뒤로 자신은 마이너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그 대단한 투수가 전설을 만들어 갈 때.
그 아픈 공을 받고, 함께 기록도 만들면서 느낀 건. 단순히 부럽기만 한 녀석은 아니라는 거였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진짜 힘들게 살던데.’
직접적으로 사생활을 본 적은 없지만, Suck이 철저한 거야 모두가 다 안다.
개인 트레이너의 역할이 크긴 하겠지만, 잠자는 시간까지 조절해가며 완벽하게 컨디션과 몸을 관리하지.
당장 오늘 아침, 원정을 떠날 때 보았던 단단한 몸이 그걸 증명하고.
그런 집요한 자기관리와 컨디션 조절이, 결국 오늘을 만든 것이다.
‘더 노력해야겠지. 저런 녀석이랑 어울리는 배터리가 되려면.’
잘 안다. 내가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이 무대 위에 함께 오를 수 있는 건지.
스티븐 보그트나 조시 페글리마저 몰아내고, 주전급 포수로 도약할 수 있었는지.
모두가 저 녀석과 함께, 아니, 저 녀석이 이뤄낸 결과물 덕분이지. 그런 투수의 전담 포수나 다름없기에, 이렇게 있을 수 있었고.
그러니 내년에도, 지금처럼 묻어가서라도 같은 무대에 서려면, 앞으로도 저 신화에 함께 하려면. 지금보다는 더 노력해야하리라.
물론···
“가자, 공 열심히 받을 게.”
“그래, 가보자.”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그 자체겠지만.
다시 그라운드로 나가자, 상대 타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경기장을 찾은 다른 사람들의 눈빛도.
두렵거나, 떨리거나, 분노하거나, 환희하거나. 그 모든 시선이 어우러진 무대 위에 오르는 Suck과 글러브를 부딪치며. 홈 플레이트에 앉았다.
다시금 그토록 아팠던, 점점 더 아파졌던, 그만큼 영광도 따라왔던 공을 받기 위해서.
“···징글징글하네.”
7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는 한숨처럼 한탄을 내뱉으며 타석에 올라왔다. 나와는 달리, 이 무대가 싫은 거겠지.
‘느낌이 나쁘지는 않네. 성적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자신감을 많이 잃었어.’
다른 타자들은 꽤나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줬는데, 녀석은 그저 이 순간이 너무나도 싫기만 한 것 같다.
‘포심, 좋긴 하겠네. 넋 놓고 있다가 푹 찔리겠어.’
좋은 일이지.
타자가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물론 단단히 집중하고 준비를 갖추더라도.
“스트라이크!”
딱히 결과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씁- 더 무거워졌네.’
강렬한 무게감이 손목을 찔렀다.
공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1회 말이나, 2회 말보다도. 더 무거웠으니까.
이런 공을 던지면서도, 종종 90마일이 나오지 않는 걸 아쉬워하고는 했는데. 정말로 다행이지.
여기에 보다 더 빠른 속도까지 곁들여졌다면, 그땐 정말 못 버티고 손목이 박살 날 테니까.
‘낮게, 하나 더.’
“볼.”
‘바깥쪽으로 다시 슬라이더라. 잘 잡아야겠어. 전체적으로 좀 무거운데, 잘못하면 놓치겠네.’
“스트라이크!”
종종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상대팀 타자들, 인터넷의 헤이터, 심지어 우리 팬들까지.
넌 대체 하는 게 뭐냐고. 그저 공 받는 기계가 아니냐고.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사실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거든. 거의 모든 승부를 Suck이 주도하고 있으니 말이야.
근데, 그래서 뭐? 공 받는 기계라고 해도···
“스트라이크 아웃!”
이런 걸 직접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잖아?
오늘의 여섯 번째 삼진이자, 이번 시즌 380번째 삼진.
재빨리 낚아챈 하이 패스트볼은 마지막까지도 위력을 잃지 않으며, 글러브 안에서도 몇 차례 더 헛돌았다.
“You Suck!”
곧이어 사람들의 외침이 천둥처럼 웅장하게 흘렀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공처럼 저 소리 또한 점점 더 커졌다. 옆으로, 옆으로, 계속 번지는 것처럼.
“아웃!”
곧이어 8번 타자 드류 로빈슨은 조급하게 스윙을 낭비했다. 그래, 낭비지. 오늘 같은 경기에선, 삼진과 함께 최고로 치는 내야뜬공마저도 낭비나 다름없지.
직접 캐치한, 글러브 속의 공이 조금 야속하게 느껴졌다.
삼진 하나가 이렇게나 아쉬운 적은 오늘이 처음이네.
“로빈슨이라도 삼진 좀 당해줘요. 같은 로빈슨인 친구처럼 야반도주하지 말고.”
“Fuck off.”
그 아쉬움에 괜히 올라오는 타자, 9번 로빈슨 치리노스에게 투덜거렸다.
같은 포수이기에, 트래쉬 토크가 잘 통하지 않겠지만, 그런 거야, 어차피 상관없으니까.
지금까지처럼 Suck에게 기대어, 호랑이에게 기댄 여우처럼 괜히 위세를 떨어보는 거지.
타자를 긁더라도, 저 녀석이 알아서 처리하잖아?
‘그래도 살짝 위험해 보이는데. 단단히 준비한 것 같아. 집중도 제대로 하는 것 같고.’
주의하라는 의미로 살짝 사인을 보낸 뒤, 다시 제자리에 앉아, 공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다음날 아침 일찍 열어볼 상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스트라이크 아웃!”
선물은 항상 그렇듯 아주 완벽했다.
더욱더 과감하게, 몸쪽으로 욱여넣은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곧바로 다시 몸쪽으로 바짝 붙여서 던진, 그러다가 절묘하게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으로 항상 타자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역회전이 강한 서클 체인지업까지.
짜릿한 손맛을 즐기며, 여유롭게 웃는 Suck과 마찬가지로 피식 웃었다.
381번째 삼진.
Suck이 샌디 코팩스의 턱밑까지 추격하는데 필요했던 건, 딱 한 타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