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빠따새끼들 일 좀 해라]
-오늘도 득점지원 꼬라지가 ㅅㅂ
└이쯤되면 인종차별인 듯
└짭데 X신아! 고유석 경기에서 홈런 좀 치라고!
└고유석이 휴지통이었으면 30승 했다 ㅇㅈ?
└ㅆㅇㅈ 30연승했을 듯z
└30승 300이닝 300탈삼진도 쌉가능
4회 말, 가볍게 무산된 애슬레틱스의 공격을 보며, 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공갈포스러운 느낌이 있기는 해도, 한방의 저력은 있는 팀이지만, 이상하게 고유석의 경기를 볼 때면, 콱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에 몇몇 팬들은 아쉬움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번 시즌 화끈한 화력을 보여준 애스트로스 같은 팀이었다면.
오늘 25승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30승에 도전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고유석이 올해 올린 성적을 감안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5회초)조이 갈로 입장]
-혐유석 3호 홈런 가나?
└지난 타석 보니까 개또라이던데 자세 무너졌는데 타구가 거기까지 가?
└90마일도 안 나오는 똥 찌그레기 투수 참교육 가자!
└여기 국노 집합소임?
└닉 보셈 악질쉐끼들 다 모였네
그리고 이어진 5회 초.
타석에 올라온 조이 갈로를 보며, 몇몇 팬들은 걱정을, 안티는 기대감을 품었다.
오늘 경기에서 꽤나 큼직한 장타를 날려 보내며, 가슴을 철렁이게 만든 선수니까.
-볼.
-파울!
-스트라이크!
-볼.
타석에 올라온 뒤, 유명한 공갈포답지 않게 침착하게 공을 고르는 모습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지만.
-아웃! 조이 갈로, 지난 타석에서 보여준 파워와는 달리, 두 번째 타석에서는 아쉽게 내야팝플라이로 물러납니다.
[응~ 고까들 너네가 원하는 거 없어~]
-응~ 내야뜬공~ 응~ 고유석은 무적이야~
└공갈포 쉑 기복 ㅈㄴ심하네
└저건 뭔 개똥스윙이냐?
└메쟈도 수준 많이 떨어진 듯 저런 새끼가 5번타자 하고 있네
└저런 새끼=38홈런깠음ㅋ
└근데 타이밍은 잘 맞은 듯?
└ㅇㅇ 스윙 보고 좀 쫄기는 했음
아쉽게도 5구째, 투심에 내야뜬공으로 물러나며,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제법 타이밍을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몇몇은 다음 타석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직후 뜻하지 않은 안타가 나왔으니까.
-카를로스 고메즈! 툭 굴리는군요! 아주 절묘한 타격으로 안타!
-음, 힘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다운스윙으로 굴리기만 했네요.
[시미언 뭐하냐]
-tlqkf 저걸 못 잡고 쳐 앉았네 에휴 쯧쯧
└저게 왜 시미언 탓임
└저거 잡으면 골드글러브급이지, 못 잡는 게 당연함
└혐유석빠들 지들 주인 안타 맞았다고 동료들 욕하는 거 보소
└레인저스 첫 득점 가나?
└혐유석 솔직히 한 방 맞을 때 되긴 했음 쿨 돌았다.
아쉬운 타구였기에 팬들은 유격수 마커스 시미언에게 비난을, 안티팬들은 득점을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봤지만. 승자는 지금까지와 똑같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고유석! 오늘 경기 여덟 번째 삼진입니다!
-아웃! 브렛 니콜라스를 땅볼로 직접 처리하는 고유석! 5회 역시 무실점이군요!
언제나 고유석이지.
최소한 그를 응원했을 때의 승률은 거의 100%나 다름없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세이프!
-아웃!
-아웃!
곧이어 6회 초에도 안타가 나오긴 했지만, 역시나 그대로 무산되어 버리자.
고유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은 다시 평소처럼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무능한 레인저스를 욕하기도 했고.
[레인저스 멸망~]
-고유석한테 오늘도 x발리네.
└텍사스랑 김치맨은 역시 잘 안 맞는 듯
└유석에 살살패라. 계속 그러면 꼴 받아서 너 영입해버릴 지도 모른다
└이야, 저주네, 저주.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간다? 남은 커리어 x망이란 뜻임ㅋ
└늘푸른 소나무처럼 늘 대주는 텍사스, 너무 좋다. 삼진도 좀 더 대줘.
[고유석 368K 단독 4위]
-이제 15개 남았다
└진짜 이게 되기는 되네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는 개X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내가 X신이었음
└└그걸 믿었으면 더 x신이지zzz 솔직히 시즌 초반으로 돌아가서, 고유석 300삼진 한다고만 해도 개소리 말라고 할 듯ㅋ
└텍사스 새끼들 삼진 좀 더 대줘라 왤케 찔끔찔끔 당하냐 시원하게 팍팍 당하지
그렇게 단일시즌 탈삼진 단독 4위까지 올라선 고유석을 보며, 팬들은 행복한 상상을 펼치며, 홈에서의 마지막 등판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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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초.
마운드에 올랐을 때, 팬들은 조금 투덜거렸다.
“Suck 아직 많이 부족한 거 알지?”
“아직 열 개도 못 채우고, 뭐 하는 거야!”
“홈에서 마지막 경기인데,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나 정말 화난다?”
삼진이 아홉 개밖에(?) 안 되잖아. 두 자릿수조차 안 되니, 불만스러운 거겠지.
특히 삼진을 숭배하는 레이더스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기왕이면 오늘 팍팍 잡아놓고 텍사스로 떠나길 바랄 테니, 약간 초조하기도 하겠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이닝의 첫 타자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한 분이었다.
‘벨트레, 좀 속이 상한 것 같은데.’
아드리안 벨트레.
오늘 내가 잡은 삼진의 지분이 지대한 분이었으니까.
그는 아까 전, 우리 팬들에게 당했던 조롱이 아직 속에 남아 있던 건지, 조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타석에 올라왔다. 약간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드리안! Suck 삼진 좀 채워주라! 너밖에 없어!”
“아까 전처럼만 하면 돼! 그래, x신같이, 아주 머저리처럼. 니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그걸 또 기어코 긁고들 계시고.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방향은 아닌 것 같았다.
각성이라기보다는, 약간은 흥분한 모습으로 그는 배터박스에 들어왔으니까.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온 사방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있으니,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거겠지.
‘그래도 힘이 빡 들어갔을 테니까, 넣으면 안 되고, 살살 돌려깎으면서 꼬셔야 겠네.’
저런 타자를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주 악에 받쳐 있으니, 자칫 삐끗하면 한방이 제대로 나올 테니.
최대한 제구에 집중하면서, 꼬셔잡아먹어야 하지.
“스트라이크!”
그 예상처럼, 몸쪽으로 낮게 던진 코스에, 그는 초장부터 큼직한 스윙을 선보였다.
제대로 때려 맞추려고 한 건지, 아주 힘이 빡 들어갔는데, 살짝 떨어지는 투심의 무브먼트가 아슬아슬하게 스윙을 스쳐 지나갔다.
‘약이 바짝 올랐네. 어우, 좀 무섭다야.’
나까지 자길 놀린다고 생각하는 건지, 쏘아보는 눈동자가 이글이글거렸는데, 가슴이 다 떨리네.
“볼”
“파울”
“볼”
삐끗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차곡차곡 공을 던지니, 그래도 마지막 이성을 놓지는 않은 건지, 그는 차분하게 공을 지켜봤다.
‘오케이, 됐다. 잡자.’
그리고 5구째.
갑작스럽게 높은 코스로 공을 던지니, 앞선 경험을 통해, 내가 또 뺏을 거라고 예상한 듯, 이번에도 가만히 지켜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너클 커브는 절묘하게 꺾이며,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갔다. 그것으로 루킹삼진.
해트트릭.
오늘 경기에서만 세 번째로 당하는 삼진 앞에서,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열 번째 삼진의 주인공이 된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오늘 호구 제대로 잡았네.
‘벌 만큼 벌고, 성적도 쌓을 만큼 쌓은 분이라서 그런가, 통이 크단 말이야. 후배를 위해서 제대로 대줬네.’
정말 좋은 사람이야.
베테랑쯤 되면 저런 아량이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You Suck!”
“10삼진이다! 10삼진!”
“아드리안! 네 지분이 큰 거 알지? 진짜 고맙다!”
세 번째 삼진과 또다시 들려오는 조롱에 결국 멘탈이 완전히 터진 건지, 아드리안 벨트레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비틀비틀 내려갔다. 아까 전처럼 욕조차 중얼거리지 못하면서. 좀 미안하구만.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다른 이를 동정할 여유는 없었다. 그다음 타자가 올라왔으니까.
‘조이 갈로, 감을 잡은 것 같기는 한데···’
첫 타석은 홈런 같았던 펜스를 맞추는 2루타를 날렸고, 두 번째 타석에선 아쉬운 내야뜬공을 기록했던 선수.
허나 분명 그의 배트는 날카로웠다. 제대로 감이 올라온 것처럼.
두 번째 타석에서는 내야뜬공이긴 했지만, 타이밍 자체는 거의 맞았지.
왠지 좀 찝찝한 기분에, 그를 보며 혀를 내둘렀을 때, 마찬가지로 그를 흘끔흘끔 쳐다본 브루스는 이내 격렬하게 사인을 보냈다.
‘거르자고? 바로?’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했는데, 뭔가 있어도 확실하게 있나봐.
‘일단 쭉 빼보자.’
그렇기에 아주 노골적으로 공을 빼봤다. 조금만 삐끗하면 바닥을 긁을 정도로 한참 낮은 포심 패스트볼.
비록 포수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사실상 고의4구나 다름없지. 대놓고 뺐으니까.
배드볼 히터로 유명한 타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당연하게 거를 정도로.
‘최대한 조심하면서···’
그만큼 터무니없는 코스인데도,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서 던졌다.
녀석의 힘이 강하다는 거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넘어가겠지.
그렇기에 최대한의 힘을 담아 낮게 던졌는데. 그 공을 조이 갈로는 따라왔다.
운이 좋으면 헛스윙. 나쁘면 초구만에 땅볼이 나올 법한 코스인데도, 아주 자신감이 넘치게.
보통이라면 멍청한 스윙이라고 해야겠지만···
‘X발.’
기역자로 온몸을 비틀며, 힘껏 끌어당기는 스윙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거르는 게 다름없는 공이 아니라, 진짜 고의4구를 했어야 됐다는 것을.
아직 공이 배트에 맞지도 않았는데도, 느껴졌거든.
‘갔네.’
저거 넘어간다는 것이.
느려진 세상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아득하게 멀어졌던 소음이 다시 귀로 들어왔을 때.
빠악-하는 박력 있는 타격음도 함께 귓구멍에 때려 박혔다. 그거면 충분하지. 더 볼 필요도 없고.
“아···”
“Fuuuuuuuuuuck!”
“저 개색-”
조이 갈로는 배트를 던졌고, 팬들도 욕설을 던졌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올해 나를 상대로 첫 득점을 올리는 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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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갈로, 쳤습니다아아아!
-타구가~ 날아갑니다! 미사일 같군요! 그 종착역은~~ 좌측 담장 너머! 텍사스 레인저스가, Go You-Suuuuck에게! 시즌 세 번째 홈런을 안겨줍니다!
티비 스피커로도 들릴 만큼, 우렁찬 타격음. 그리고 환호하는 건지, 절규하는 건지 헷갈리는 캐스터와 해설자.
그 소리에 댈러스-포트워스 광역권의 곳곳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토록 기다렸던,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꾹 참고 버틴 끝에,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왔으니까.
“그렇지! 이거지!”
“갔다아아아아아악!”
“조이! 조이 갈로, 이 예쁜 새끼! 그래! 이게 텍사스 남자지! 이렇게 뜨거워야 텍사스지!”
공이 담장을 넘어간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격렬한 환호성을 토해냈다. 마치 그들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어떤 의미에선 포스트시즌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이번 한방으로, 시즌 내내 속에 묵혀뒀던 체증이 싹 씻겨졌으니까.
“X발 이거 하나 보려고 몇 경기를···”
X나게 오래 걸렸다.
저 망할 놈에게 한 점, 고작 한 점을 내는 것은, 진짜 더럽게 힘든 일이었지.
저 빌어먹을 놈에게 이번 시즌, 얼마나 많은 굴욕을 당했던가? 완봉만 두 번을 당했다, 완봉만!
하루에도 10점, 20점씩 나오는 야구에서, 3경기, 24이닝 동안 한 점도 못 냈건만.
이제 네 번째 경기, 그마저도 7회에 드디어 쾌거를 이뤄냈으니, 레인저스 팬들이 느끼는 시원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아··· 그래, 이게 맞는 거지. X발 레인저스가, 텍사스 레인저스가 투수 새끼 하나한테 X같이 털리면 안 되는 거지!”
“무실점? 탈삼진 기록? 까고 있네!”
“내가 진짜··· 이 장면 하나 보려고 꾹 참고 진짜···”
몇몇 이들은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쩌면, 이제 레인저스에게 남은 건 이거밖에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호기롭게 윈나우를 선언했던 팀은 한순간 망했고,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포스트시즌은 일찌감치 좌절됐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 Go, 그 녀석의 영광에 흙을 뿌리고, 자존심을 챙기는 것뿐이었는데. 일단 자존심은 챙겼다.
-조지 스프링어! 마이크 트라웃에 이어! 조이 갈로가 ‘Go를 박살낸’ 세 번째 남자에 등극합니다!
-하하, 한 투수가 홈런을 맞는 장면이, 이렇게나 보기 힘들 줄은 몰랐네요.
녀석에게 시즌 세 번째 홈런을 선사했고, 무실점도 망쳐버렸으며, ERA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올려줬다.
물론 이미 0점대 ERA를 확정하면서 불멸의 기록이 됐지만, 어쨌든 약간은 망쳤지.
결정적으로 레인저스가, 그들의 레인저스가, 한 투수에게 단 한 점도 못 내면서 개같이 털리는 굴욕을 오늘 종결지었다는 것이 가장 좋고.
“내가 한 잔 산다!”
“꺼져! 내가 산다!”
“조이 갈로를 위하여!”
그 행복한 감정에 도시 곳곳의 술집에선, 때아닌 골든벨이 이어졌고, 사장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을 때.
-아··· 카를로스 고메즈, 아쉬운 헛스윙을 선보이며··· 삼진을 당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던 TV 화면 속에서는 아까 전의 홈런은 벌써 잊혀진 건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타자들이 삼진을 당했다.
“괜찮아, 괜찮아. 홈런 하나 쳤는데, 삼진 하나 쯤이야 훨씬 남는 장사지~”
“너네도 조이처럼 좀 해봐라! X같이 못하네!”
“쯧, 조이 갈로랑 벨트레 빼면 마음에 드는 자식이 없어.”
허나 그들의 행복함은 여전했기에, 그저 혀를 한번 차고 넘겼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루그네드 오도어, 낮은 체인지업을 가만히 지켜보는군요. 루킹 삼진입니다.
-음··· 조금 벗어난 것 같았는데, 이걸 잡아주네요. Go가 삼진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이번 경기 12번째 삼진이자, 시즌 371K를 올렸습니다.
연달아서 다시 삼진이 나왔을 댄 다시금 불쾌감이 차올랐다. 행복하게 쑤셔 넣던 맥주의 술기운도 가셨고.
-보통 Go가 등판한 경기에서, 실점했을 떄는 7이닝으로 끊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마찬가지겠죠?
-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홈런까지 맞은 만큼, 타격이 적지 않을 테니···
“그래, 홈런 쳐맞았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야지.”
“끝까지 폼 잡네, X같은 놈.”
홈런의 기쁨이 이어지지 못하면서, 마지막을 조금 망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걸로 끝이기에, 괜히 투수를 욕하며 애써 웃었으나.
-아··· 아이싱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점퍼를 입었습니다.
왠지 마지막이 아닌 것 같았다.
덕아웃으로 돌아가, 점퍼를 목 끝까지 올린 채, 벤치에 걸터앉은 투수, Go는 여전히 그라운드를 보고 있었다.
굉장히 뜨거운 눈으로, 마치 올해 마지막 홈경기를 너희가 망쳤으니, 나도 레인저스를 갈아 마시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기록까지 몇 개 남았어?”
“타이기록은 12개. 신기록은 13개.”
흡족하게 웃던 레인저스 팬들에게 불쑥 현실감이 닥쳐온 것도 그때부터였다.
미운 놈에게 큼직한 홈런을 먹여준 것과는 별개로, 기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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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냥, 올해 오클랜드에서 선보이는 내 마지막 경기인데.
홈런 맞고 내려가는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진 않더라고.
최소한 기분 좋은 모습 장면 정도는 만들어 놓고 내려가야 맞는 거잖아? 이렇게 많이들 찾아와줬는데.
“혹시라도 말릴 까봐 걱정했는데...”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아. 이번 시즌 마지막 홈 등판인데, 멋지게 끝내기는 해야지.”
다행히 우리 스콧 에머슨께서는 융통성을 보여주셨다.
솔직히 무조건 교체될 줄 알았는데, 내 의사를 물어보더라고. 내가 그 정도의 존중은 받을 만한 선수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체력은 멀쩡한 거 맞지?”
“멀쩡하다니까요. 그냥 조이 갈로가 잘 친 거예요. 힘이 무식하게 좋네.”
허나 걱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건지, 조심스럽게 나를 훑었지만, 진짜로 괜찮다.
홈런에 열을 받아서,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투구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지금 89구죠?”
“88구.”
이거 봐? 적절하잖아.
이 정도면 완봉, 아, 실점했지, 완투도 너끈하지. 아마도.
홈런은··· 그냥 때가 된 거다.
저 마이너카피 고릴라 같은 녀석이 힘이 너무 좋았어.
포심 위력이 별로 안 떨어졌는데도 그걸 냅다 넘겨버리네. 어쩐지 예감이 안 좋더라니··· 한 방 제대로 맞았네. 턱이 얼얼할 정도로.
‘받은 만큼 돌려줘야, 우습게 보지 않겠지.’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로 돌려줘야 속이 후련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브루스.”
“미안해,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인을 냈어야 하는 건데.”
“무시한 내 잘못이지. 앞으로는 조심할 게. 포수 말을 안 듣다가 한 대 맞았네.”
내 멘탈을 관리해주려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건지는 몰라도.
자신의 실책이라며 제 가슴을 통통 때린 브루스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사람 하나 제대로 망치긴 했어. 애가 자존감이 너무 없네. 음, 앞으로는 잘 대해줘야겠다.
“쩝··· 완투까지 갈 거야?”
“글쎄, 일단 8회만 생각하자. 공 잘 받아. 힘 다 털어넣을 거니까.”
기왕이면 완투를 해보고 싶은데. 이미 한번 낭패를 봤으니, 그냥 눈앞에 집중하는 게 옳겠지.
아마 코치도, 자존심을 위해 한 이닝 정도야 흔쾌히 허락해줬지만, 그다음은 조금 껄끄러워 할 테고.
확정적으로 100구를 넘을 테니까. 완봉이나 퍼펙트 같은 게 걸려 있다면 모를까.
내가 리미트를 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아마 철젛겠지. 그러니 이번 이닝에 다 때려 박아야겠지.
“Suck! 삼진으로 조져버려!”
“괜찮아! 뭐 그렇게 풀이 죽었어! X나게 조졌으니까, 홈런 하나 정도는 팁으로 줘야지!”
“마지막 홈경기라고 귀한 꼴 구경시켜 준 거냐? 다음에는 이딴 건 안 보여줘도 돼!”
마운드에 오르니 팬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도.
왜 하필이면 홈에서 마지막 등판인데, 그딴 개같은 꼴을 당하냐며 불평하기도 하고.
괜찮다며 위로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만큼, 그들이 보이는 반응 역시 제각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아까 전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것이었다.
락스타의 콘서트장처럼, 광기에 가까운 열기가 콜리시엄에 흐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
‘폐막식 같네.’
조이 갈로의 홈런이 찬물처럼 팬들의 머리를 식혀버린 거겠지.
나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을 져야겠지. 물론 그 책임은···
“스트라이크 아웃!”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밖에 없고.
삼구삼진.
8번타자, 브렛 니콜라스는 허탈한 한숨을 토해내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있던데 말이야. 홈런도 맞았겠다, 내가 조금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홈런 뒤에 다른 친구들이 줄줄이 삼진당한 건 까맣게 잊었나보네.
‘남의 잔치 망쳐놓고 쳐 웃고 있어, 기분 X같게.’
조이 갈로가 홈런을 쳤을 때, 레인저스의 덕아웃은 축제 분위기였다.
심지어 추민수 선배님마저도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열심히 하이파이브를 하셨지. 섭섭하게 말이야.
그걸 보니 배알이 좀 꼴리더라고. 어디 남의 집 안방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굴어.
“스트라이크 아웃!”
엉엉 울어도 모자랄 판에.
혼신의 힘을 담아 공을 던졌다. 서서히 떨어지는 체력에 직감적으로 느껴졌으니까.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르는 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 지금 마운드 위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겠지.
전력으로 던진 서클 체인지업은 경기 초반과 다를 바가 없이 꺾이며, 삼진을 끌어냈다.
‘열심히 삼진 잡아줬는데, 반응들이 왜 이러실까?’
지난 이닝까지 합치면, 네 타자 연속 삼진인데도, 별다른 환호성은 없었다.
평소처럼 You Suck거리지도 않았고, 레이더스도 좀 얌전하네. 안 어울리게.
허나 아까 전처럼, 착 가라앉은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엄숙하다고 해야 하나?
너무하네. 373K니까, 랜디 존슨을 완전히 제끼고 역대 3위로 올라선 건데. 이걸 환호를 안 해줘?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1번타자.
추민수 선배를 삼진으로 잡으며, 다섯 타자 연속 삼진이 됐을 때도, 분위기는 여전했다. 4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몰렸는데도, 아주 조용~했지.
‘거 홈런 하나 가지고, 다들 되게 다운됐네. 백번 잘해봤자 소용이 없다니까. 한번 못한 거 가지고 이러니···’
그것으로 이닝 종료.
왠지 좀 섭섭해서. 잠깐 마운드 위에 뭉기적거리다, 투덜거리며 덕아웃으로 내려갔을 때.
“You Suck!”
“오늘도 X나게 잘했다!”
“그래, X발 삼진이 15갠데, 홈런 하나는 애교지, 애교!”
“고작 15개가 뭐야! 홈에서 기록을 올렸어야지! 특별히 Suck 너라서 봐주는 줄 알아!”
“올해 Go 네 덕분에! 진짜, 진짜 즐거웠다! 진짜 x나게 좋았어!”
“내년에도 잘해보자! 다음 시즌은 확 그냥 아예 0점을 찍어버려!”
“다음은 400삼진 가는 거지? 그건 홈에서 달성해! 두 번이나 텍사스까지 가기는 싫으니까!”
“홈에서 못한 게 좀 아쉽지만··· 레인저스 새끼들 안방에서, 깃발 꽂아버려! 직접 보러 갈 게!”
뒤늦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건 곧 주변으로 전파되어나갔고.
마침내 4만 명, 콜리시엄을 가득 채운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을 치는 모습은, 멋진 자연경관처럼, 그것만으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거참, 누가 보면 내가 오늘 은퇴하는 줄 알겠어? 사람 민망하게스리. 난 또 오해했잖아.
“대단하네.”
같이 덕아웃으로 돌아가던 브루스는 그것에 압도된 건지 입을 벌리며 고개를 절레 저었고.
함께 돌아가던 다른 야수들 역시 헛웃음을 흘리거나, 입꼬리를 씰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걸 보니 괜히 긴장감이 탁 풀려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뿌듯하기도 했고.
내가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든 거니까.
“뭐라도 해야지? 주인공께서.”
잠깐동안 그것을 눈에 담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다가온 제드 라우리는 옆구리를 찌르며 부추겼다.
다른 선수들도 피식피식 웃으며, 마치 무대를 만드는 것처럼, 둥글게 둘러쌌고. 뭐라도 해라니, 뭘 하라는 거야.
그 가운데에 서서, 잠깐 관중석을 훑다가, 그냥 경건하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런 쪽으로는 센스가 없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이거 말고 떠오르는 게 없네.
“우우우! 다시해라!”
“에이, 괜히 기대했네. 성적만큼 쇼맨십도 보여야지!”
“뭐야 그게, 더 멋진 거 없어? 훌쩍 뛰어 올라서, 공중에서 세 바퀴쯤 회전한다던가, 하는 거.”
“무슨 골 세리머니도 아니고 뭐 그런 것까지··· 오늘 은퇴하는 것도 아닌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은 은근히 야유를 보냈지만.
뭐, 그래도 팬들이야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러면 된 거지.
기립박수는 우리가 완전히 덕아웃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꽤나 오랫동안, 올해의 여운을 보내는 것처럼.
“후련하지?”
“아뇨, 더 던지려고 했는데, 강제로 끊겼네요.”
“···누구 마음대로 한 이닝을 더 던져? 눈 딱 감고 한번 더 올려준 건데.”
“내 마음대로?”
생각보다 체력이 괜찮아서, 투수코치 바짓가랑이 붙들고, 빌고 빌어서 9회 초에도 오르려고 했더니. 이것 참, 강제로 끝나는 분위기가 돼버렸네.
아무리 생각해도 홈에서 마지막 경기인 만큼, 완투 정도는 하려고 했더니.
어쩔 수 없지.
이래놓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면, 나도 그렇고 관중들도 그렇고, 서로 좀 민망할 테니까.
오늘 못한 완투는···
“저쪽 홈에서 해야겠네.”
오늘 맞은 홈런의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말이야. 완봉에 삼진 열 개, 그리고 신기록 정도면, 충분한 대가가 되겠지.
8이닝 1실점 1피홈런 4피안타 무볼넷 15K.
그 성적을 끝으로, 2017년 콜리시엄의 마지막 경기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