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67화 (167/316)

167화

아까도 말했다시피 필리스는 약하다. 지금 NL에서 뒤에서 2등인가 그럴걸?

작년보다는 성적이 좋다고는 하는데, 리빌딩 시즌인 만큼, 처참한 건 변함없지.

“스트라이크!”

다만 타선은 성적에 비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평가받는 것 같기는 한데. 그리 인상적인 정도는 아니다.

“스트라이크!”

그에 반해 나는 X나게 잘하지.

그렇잖아? 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이번 시즌의 나만큼 잘한 선수가 없으니까.

그런 내가 진짜 X나게 쉬었다. 엄청나게 먼 원정길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거의 바캉스를 보냈지.

그렇기에 지금 나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풀충전이 되어 있다. 오히려 힘이 너무 세서 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가 괜히 슈퍼소닉 하겠다고 한 줄 알아? 그게 다~ 컨디션이 좋아서, 몸이 멀쩡할 줄 알고 한 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진지하게, 대가리에 패스트볼 맞아도 멀쩡할 걸? 생채기도 안 날 거야.

아무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스트라이크 아웃!”

저기 저 관중석에 쫙 걸린 피켓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Suck 뒈지는 날이라, 아주 인상적이군. 주어를 틀린 게 좀 아쉽지만. 나쁘지 않아.

주어를 Suck에서 필리스로 바꾼다면, 더욱더 완벽해지겠지.

1번타자, 세자르 에르난데스에 이어, 2번 프레디 갈비스 역시 시원스런 헛스윙을 보여주며, 삼진으로 물러났다.

“우우우우우우!”

“뭐하냐고! 제대로 보고 쳐!”

“공을 맞히라고! 막 휘두르지 말고!”

“붕붕 돌리는 건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도 해!”

역시 듣던 대로구만.

마음에 안 들면 자기 선수들한테도 일단 욕부터 박고 본다더니. 멘탈 제대로 긁어주네.

이러니까 선수들이 필리스를 싫어하지. 너무 다혈질적이란 말이야.

“You Suck!”

“잘하고 있어!”

성난 필리스의 목소리 사이로, 익숙한 외침도 들려왔다.

평소보다 덜 응집돼서 그런지, 조금 작기는 하지만, 도렷하게 들렸다. 더욱더 악에 받쳐서 소리쳤으니까.

어우 듣기 좋아.

방금까지 필리스 사람들 욕하지 않았냐고? 필리스는 적이잖아. 저 사람들은 내 팬들이고. 당연히 다르지.

“저 X같이 느린 공이 뭐가 대단하다고 자꾸 헛스윙이야! 한 방 날려!”

다음, 3번타자 닉 윌리엄스.

배터박스로 들어선 그를 보며, 한 관중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다.

X같이 느리다니, 말이 심하네. 평균보다 살짝 속도가 덜 나오는 거지, X같이 느린 건 아니라고.

이 정도 구속인 투수가 얼마나 많은데, 뭘 모르네.

“스트라이크!”

그걸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서, 초구는 패스트볼로 던졌다. 89마일. 오늘 몸이 좀 좋은 것 같은데, 90마일은 기어코 안 나오는구만.

바깥쪽에 걸친 포심 패스트볼을 닉 윌리엄스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속도가 좀 덜 나오더라도···’

“스트라이크!”

‘타자만 잘 잡으면 되는 거지.’

2구는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시원스럽게 꺾여나가는 공에 타자는 큼직한 헛스윙으로 화답했다.

화끈하네, 필리스다워.

“뭐하냐고 Asshole 새끼야!”

그걸 본 홈팬들 복장도 화끈하게 터지고 있고.

“볼!”

3구는 낮거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V1. 참은 건지, 아니면 타이밍을 놓친 건지, 타자는 지켜봤다.

“그래! 좀 침착하게 해!”

공 하나마다 뭔 말을 그냥···

그래도 볼이라도 얻어낸 것이 좋았던 건지, 비교적 우호적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Fuuuuuuuuuuuuuck!”

“이 X같은 쓰레기야!”

4구째에는 여지없이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좀 꼴사납잖아.

4구는 몸쪽, 아주 깊게 넣은 너클 커브로, 거의 맞출 듯 날아갔는데. 닉 윌리엄스는 잔뜩 몸을 움츠러뜨리며, 공을 피하려고 했지만.

보란 듯이 꺾인 너클 커브는 슬러브의 궤적을 선보이며 유유히 존안으로 들어갔다. 루킹 삼진. 이 정도면 욕할 만하긴 하지.

“Youuuuuuu Suck!”

“크헤헤헤! 이래야 Suck이지!”

“필라델피아 X나 못하네! 이러니까 만패나 하지!”

우리 팬들도 좋아할 만하고.

삼진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KKK. 이제 349탈삼진으로 루브 워델과 함께 공동 6위에 올라섰다.

위로는 오직 랜디 존슨과 놀란 라이언, 그리고 샌디 코팩스 밖에 없지.

아까 x같이 느린 공이 뭐가 대단하냐고 소리쳤었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히 대단하지 않나?

안 그래요?

“X발 놈이 어디서 처 웃어!”

“이제 겨우 1회야 X같은 새끼야! 이 오만하고 X신 같은-”

“우리가 개X으로 보여!”

조금, 어느 정도는?

아니 그냥 의견이나 좀 물어보려고 쓱 관중석을 훑었더니, 발작 버튼 제대로 눌렸네.

반대로 찔끔찔끔 보이는 레이더스들은 그 기괴한 페이스페인팅마저 뚫고 나올 만큼 활짝 웃고 있었고. 아이 좋아.

“안 그래도 열 받은 거 같은데, 왜 도발까지 해··· Suck 너 때문에 나까지 싸잡혀서 얻어맞을 것 같잖아.”

“배터리라며? 운명의 파트너. 그러면 맞아도 같이 맞아야지. 어딜 단물만 빨려고.”

브루스는 괜히 내가 도발하는 것 같았던 건지, 조금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는데.

괜찮아, 인마. 원래 짖는 개는 안 물어. 그리고 뭐, 화나도 자기들이 어쩔 거야? 그라운드에 침입할 거야 어쩔 거야?

내가 자기네 타자들 조지는 걸 직관하면서. 저기 관중석에서 그냥 욕이나 옴팡지게 하는 거지.

####

“스트라이크 아웃!”

“Fuuuuuu-”

고유석은 이어진 2회 말 역시 깔끔하게 막았다. 스트라이크도 하나 더 추가하면서, 단독 6위로 올라섰고.

그나마 이쪽도 아직까진 잘 막고 있었기에, 동점 상황이 이어지곤 있었지만.

당연히 필리스 팬들에게 지금의 모습은 대단히, 정말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멍청한 타자 새끼들···”

“이러니까 우리가 X발 꼴찌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리빌딩 시즌이야. 저 X같이 못하는 놈들, 다 갈아치울 거라고!”

우리가 저놈의 목을 딸 거라며, 열심히 소리쳤는데, 정작 2회 만에 삼진만 네 개를 잡히고, 스무스하게 털렸으니까.

리빌딩 시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살생부를 작성하듯 멍청한 모습을 보였던 타자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런 무능한 놈들은 앞으로 영광으로 나아갈 필리스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들이었으니까. 죄다 갈아치워야 할 쓰레기들이지.

필리스 팬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크헤헤헤헤!”

“필리스 새끼들 X같이 못한다더니, 진짜였네!”

“이러니까 만패나 하지!”

안 그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건만, 저 빌어먹을 새끼들은 정말 한시도 입을 닥치지 않았다.

저쪽 타자들이 똑같이 똥을 쌀 때면, 그래도 좀 닥치는 것 같은데, 그 X같은 투수만 올라오면 전부 미친 개떼처럼 변했다.

“X발 그놈의 만패, 만패.”

“우리가 그만큼 역사적인-”

계속해서 만패를 운운하는 것에 순간 울컥하기도 했지만,

역사를 논해봤자, 월등한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와 마찬가지로 과거 필라델피아 시절부터 쭉 이어진 애슬레틱스 역시 명문이었기에,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렇게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자꾸 긁어대는 X같은 놈들에 필리스 팬들의 혈압이 서서히 차올랐을 때.

미친놈들은 더 미치기라도 한 건지, 자기네 팀 공격을 맞이하며,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슈퍼소닉이 간다!”

“It’s Go Time!”

“그라운드 홈런 가자!”

Go? 슈퍼소닉?

그건 대체 무슨 소릴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필리스 팬들은 이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에이··· 에이, 설마···”

“진짜 또라이가 아닌 이상, 설마 여기서···”

“우리가 무슨 메츠 같은 X신도 아니고, 그럴 리가···”

약 두 달전, X같은 이웃이자, X신들인 메츠를, 그들이 신명나게 놀린 적이 있었다.

[#AmazingMets]

[야, X신들아! 너네 X발 투수한테 개짓거리 당했다며?]

└이야~ 진짜 어메이징하네. 이름값 제대론데?

└X신 메츠는 얼마나 X신이면, X발 투수한테 내야안타에, 득점에, 번트, 타점까지. X발 대단한데?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마라. 너네 같은 X신들이랑 라이벌이라고 엮이기도 싫으니까.

└X까 X발놈들아. 안 그래도 X같은데 남의 집 와서 행패야.

└그 새끼 x발 x나게 빠르다고! 우리가 아니라, 니네였으면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었어 X신들아!

└미안하지만 우리 필리스는 메츠 같은 X신이 아니라서, 애초에 투수 타석에서 안 맞아:)

메츠가 투수한테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는 건, 그 당시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커다란 곰처럼 질주하는 모습이, 각종 사이트에 오르기도 했었고.

그걸 보며혀를 찼지. 메츠, 저런 X신들이랑 같은 지구 경쟁팀이라는 게 우습다고.

저런 놈들이 우리보다 성적이 더 낫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고.

그저 Amazing 메츠가 X신인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주는 정도의 일로 생각했었는데.

“X발··· 아닐 거야! 아니라고!”

막상 우리 차례가 다가오니 X나게 쫄렸다. 한껏 비웃어준 만큼, 다시 돌아올 테니까.

왠지, 더럽게 큰 덩치로 x나게 빨리 달리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기도 했고.

그 덩치가, 지금 대기타석에 있었다. 이전처럼 글러브가 아니라, 배트를 들고서.

지난 2회 초 애슬레틱스가 안타 하나를 쳐냈기에, 이번 이닝 두 번째 타자로 나오겠지.

섬세하게 배팅장갑을 고쳐끼는 모습이 마치 노련한 슬러거를 보는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이프!”

그리고 이어진 3회 초.

8번타자, 맷 채프먼이 안타를 기록하며, 출루했다. 무사 주자 1루.

터벅터벅 타석에 올라온 선수를 보며 필리스 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과감하게 패스트볼.

사실 과감할 것도 없다.

투수타석인데, 그냥 삼진은 깔고 가는 것이 당연하니까.

하지만 편하게 지켜보는 모습에, 조금 긴장감이 올라왔다. 공을 고른 것 같았으니까.

머릿속에선 메츠가 x되던 장면이 계속해서 재생됐고. 몇몇은 이를 꽉 깨물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걱정과 달리, 타석은 아주 상식적으로 끝났다. 그래, 투수 타석인데, 이게 당연한 거겠지.

마치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서, 얌전히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홈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X발 괜히 폼 잡고 지랄이야···”

“그래, 그럼 그렇지! 아무리 또라이라도, 설마 우리 홈에서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박력에 쫄은 거야. 메츠 같은 X신들이랑은 눈빛부터 다르니까.”

역시 우리는 메츠와 다르다며, 자축한 그들이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했다.

“표정이 X발···”

“하여튼 마음에 안들어.”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투수의 표정이 마치, ‘한번 봐준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

“제가 진짜, 코치 얼굴 보고 꾹 참은 거예요, 알죠? 마음 같아선 이 불방망이를 그냥!”

“그래그래, 정말 고맙다. 아주 잘 참았어. 계속 이렇게만 가자.”

마음 같아서는 후려쳤다.

상대 투수, 이번에 콜업한 신인으로 아는데, 그래서 그런가 너무 과감하게 던지더라고.

치려면 칠 수 있었는데, 스콧 에머슨이 간곡하게 부탁했던 게 떠올라서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내려가면 안 되니까.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있겠지.

“브루스, 오늘은 좀 빨리 시동 걸자.”

이 아쉬움은 마운드에서 풀도록 하자고.

“어? 벌써? 체력 괜찮겠어? 오늘은 한 5이닝 정도만 던지려고? 너무 짧지 않나?”

내 말에 브루스는 그 시꺼먼 눈썹을 세차게 씰룩였다. 예상보다 빨랐으니까.

보통 투구 간격을 빠르게 좁히기 시작하면, 3이닝이 최대다. 체력이 훅훅 떨어지거든.

그러니 이제 3회이니, 벌써 시동을 걸면, 보통은 5회 딱 끝났을 때 방전이 되겠지만. 쉰만큼 체력이 제대로 충전됐다.

“당연히 그보다는 더 길게 가야지. 체력은 충분해. 휴식을 확실하게 해서 그런가, 저번에 보니까 8이닝 던져도 거뜬하더라. 거기다 이번에는 그보다도 더 쉬어서, 힘이 남아돌고.”

저번에 보니까, 빡세게 던져도 몸이 멀쩡하더라고. 물론 대니얼은 체력이 멀쩡해 보여도 그게 다 어깨 갈아 먹는 거라고 눈을 치켜뜨긴 했지만. 아무튼 난 괜찮다.

“쓰읍, 뭐, 네가 괜찮다면야, 더 할 말 없지··· 하아··· 3이닝만 받아도 빡센데···”

브루스는 한순간 힘없이 축 늘어졌지만, 그런다고 안 봐준다.

니가 선택한 포수! 니가 선택한 배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한숨만 푹푹 내쉬는 브루스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다시 그라운드로 나가니, 여전히 사납게 치켜뜬 눈초리가 오직 나한테만 쏟아졌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그렇게 날 자극할수록 더 X되는 건 당신네들 타자라는 걸 왜 모르는 거야.

“스트라이크!”

이거 봐, 힘이 불끈불끈 솟아서 나도 모르게 공을 쑤셔박게 되잖아.

3회 말.

첫 타자인, 7번 J.P. 크로포드는 초구 서클 체인지업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나한테 말리지 않으려는 건지, 차분하게 숨을 고르는 것 같은데.

“스트라이크!”

자, 애석하지만, 이제부터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그런 여유는 없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순식간에 날아온 2구에 그는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처럼.

“아웃!”

곧이어 3구째에 허둥지둥 휘두른 스윙이 투심을 빗맞히면서 내야플라이로 아웃.

새로 올라오는 타자와 그 뒤의 홈팀 덕아웃을 보니, 다른 타자들이나, 코치들도 J.P. 크로포드와 마찬가지로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하긴, 정보랑 다를 테니까.

4~5회부터 투구간격을 빠르게 하여, 인터벌 시간을 줄이고, 투구 타이밍을 당긴다.

그렇게 분석됐을 텐데.

오늘은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시작됐으니, 당혹스러울 만하지.

한번 시험해보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임기응변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8번타자, 호르헤 알파로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며, 신명난 헛스윙 세 번으로 무너졌다.

음,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니군. 지난 8월에 콜업된 이후로, 지금까지 성적이 제법 괜찮은 것으로 아는데.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대타!”

마지막 9번타자.

원래대로면 투수타석이지만, 잘 막고 있는데도 상대 벤치에선 대타가 나왔다.

신인이니, 애초에 길게 맡길 생각이 아니었던 거겠지. 타이 켈러. AAAA급 선수로.

올해 토론토-메츠-필리스를 거치는 험난한 이적사를 자랑하는데, 성적은 솔직히 좀 많이 나쁘다. 타율이 2할도 안 되니까.

“아웃!”

그걸 증명하듯, 초구를 과감하게 노려 쳤는데도, 컨택에 실패하며, 파울 플라이로 아웃.

“뭐- 뭐야···”

“니들 뭐하냐고!”

눈 깜짝할 사이 끝나버린 3회에 필리스 팬들은 욕조차 뱉지 못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껌뻑거렸을 뿐.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될 텐데.

나 엄청 쌩쌩하다고?

앞으로 6이닝은 더 던질 수 있다, 이 말이야. 물론 투수코치가 허락을 해줘야 하겠지만.

솔직히 빠따질도 얌전히 잘 참았는데, 완봉 정도는 허락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코치, 코치의 말처럼 팬들을 위해서 저 오늘은 좀 길게-”

“아직 경기 초반이니까, 벌써부터 엄한 생각 하지 말고, 피칭에만 집중하자. 네 이닝은 나랑 감독님이 적절하게 판단할 테니까.”

아닌가봐.

####

[오늘 개노잼]

-고대영 언제 나오냐~ 삼단분리타법 보고 싶다고!

└솔직히 애슬레틱스 타자들보다 고유석이 안타 치고 득점할 확률이 더 높다 ㅇㅈ?

└ㅇㅈ 일단 출루하고 외야뜬공만 하나 조져주면, 1루에서 스타트 끊어도 넉넉하게 들어올 듯

└왜 고대영임?

└고유석+이대영, 타격폼이 판박이임 공장에서 찍어낸 수준

첫 타석이 무난하게 흘러갔을 때, 분명 필리스를 압도하고 잇는데도, 사람들은 묘한 아쉬움을 느꼈다.

지난 번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며, 답내뛴-답답해서 내가 뛴다=를 시전했던 고유석이기에.

이번 인터리그에서도 혹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굉장히 기대했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타석에서 얌전한 모습의 고유석에 흥은 금방 식어버렸다.

[고퍼소닉은 앞으로 못 봄]

-고유석 몸값이 너무 올라감 저 덩치로 뛰다가 잘못 삐끗하면 발모가지 날아가는데, 구단이 허락할 리가···

└솔직히 ㅈㄴ 위험한 건 사실이긴 함 저 덩치에 스프린트 한다는 것 자체가

└트라웃도 요새는 몸 좀 사리잖아? 어쩔 수 없음

└엄청 빠르던데, 그러면 더 부상 위험이 큼, 무릎이랑 발목에 과부하 주는 거라서

물론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일시적은 즐거움을 위해, 역대급 투수를 망칠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얼마나 우습겠는가?

모든 기록을 다 깨트릴 기세의 투수가, 투수타석에서 넋놓고 뛰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해, 커리어를 망친다면 말이다.

앞으로 100년은 회자되겠지.

야구팬들은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이고.

그것 보다는, 차라리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투수로서 임무에 집중하는 것이 옳긴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고유석! 4회 역시 삼자범퇴! 삼진 두 개를 추가하며, 탈삼진이 353까지 올라갑니다!

-오늘 조금 이른 시기부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는데. 거뜬해 보이네요. 정말 대단한 괴력입니다.

이렇게나 잘한다면 말이다.

4회 역시 깔끔하게 삼자범퇴.

수월하게 삼진을 추가하는 고유석을 보며, 아쉬워했던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ㅈㄴ 잘한다]

-저만큼 하면 빠따질 같은 저급한 일은 타자들 시켜야지

└그치 원래 황족 투수는 배트 같은 거 안 들어~

└타격은 타자들이나 시키고, 고유석은 삼진만 잡으면 됨

타격으로 굳이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까울 만큼 잘하고 있으니, 더 아쉬워하기도 뭐했으니까.

-5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원 볼. 5구를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 너클 커브에 크게 헛치는 토미 조셉!

-제대로 떨어졌죠? 거의 어깨 높이로 날아온 것 같았는데, 타자 입장에서 이런 공을 던지면 헛칠 수밖에 없습니다.

-네! 그러지 않는다면, 오히려 너무 일이죠! 이렇게나 좋은 공인데요! 삼진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354K! 고유석, 오늘 5이닝 동안 여덟 개의 탈삼진을 올렸습니다.

-여전히 지치지 않았어요. 땀조차 흘리지 않고 있는데. 휴식이 길었던 만큼, 제대로 재충전이 된 모습이네요.

곧이어 5회 말 역시 순식간에 삭제된 모습에 이젠 그저 감탄만이 흘렀다.

3회부터 쭉 엄청난 속도를 유지하며, 필리스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한 셈이니까.

[필리스는 오늘 무슨 벌떼야구임?]

-투수 계속 바뀌네

└셋 다 신인인데, 이번 경기는 걍 신인으로 돌려막으려는 듯

└고유석 1대3중이네ㅋㅋ 끝날 대 되면 1대7쯤 될 듯

└투수 자주 갈아서 그런가, 타자 새끼들이 점수를 못 내네.

그에 반해 필리스는 계속해서 투수가 교체되며, 새로운 뉴페이스가 올랐고. 그에 사람들은 고유석이 홀로 1대3의 싸움을 한다며 농담하기도 했지만.

[오늘 삼진 좀 적지 않음?]

-여덟 갠데 적어보이네. 목표가 높아서 그런가.

└필리스가 너무 막 휘둘러서 범타가 좀 잘 나왔음

└고유석 기준으로 5이닝에 여덟 개면, 적은 거 맞긴 하지ㅋㅋㅋ

└이대로 9회까지 던지면, 또 넉넉하게 삼진 조질듯

└근데 고유석 지금···

└└닥쳐라 다들 알고 있는데, 일부러 말 안하는 거니까.

└└쏘리. 내가 멍청했다.

확실한 건, 팽팽한 0대0의 동점 상황인데도, 1쪽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You Suck!

-Hell Yeah! Fuck the Phillies!

-리버티벨은 우리가 가져간다!

-지금 어, 예, 죄송합니다. 열띤 응원 소리가 잡혔는데, 예, 올해 애슬레틱스 경기의 명물이죠? 레이더스라고 불리는 팬들인데. 오늘도 그- 특유의 독특한 복장으로 원정 경기를 따라왔네요.

-고유석 선수 경기를 볼 때면 항상 볼 수 있는 분들이죠. 정말 대단한 열정입니다. 목소리가 아주 우렁찬데요?

-예, 필리스의 팬들 역시 리그에서 제일가는 강성 팬덤인데, 적은 숫자인데도 기세가 대단하네요.

마찬가지로 관중석 역시 소수의 레이더스가 고유석의 호투에 화답하듯, 여전히 일당백의 패기를 뽐내며,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고 말이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주도권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틀어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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