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66화 (166/316)

166화

모든 필라델피아 필리스 팬들의 염원과는 달리, 애석하게도 현재 필리스는 더럽게 약한 팀이다.

00년대 후반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몇 년 동안 내내 내리박으며 리빌딩을 거듭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애초에 필리스라는 구단 역사를 통틀어도, 그들이 강했던 시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역사상 최초의 만패팀이라는 타이틀을 거저 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무려 전 세계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최초의 만패이니. 그 위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한 팀이, 한 시즌 동안 100패를 당하면, 탱킹이나 리빌딩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아니, 설사 그게 목표라고 해도, 보통은 좀 심하게 ‘망한 시즌’이라는 평가받는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리그 꼴찌도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스윕으로 잡을 수 있는 만큼, 작정하고 지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은데.

100패나 당하는 건, 하늘마저 버릴 만큼 시원하게 내려박아야 가능한 일이지. 승률도 못해도 0.383을 찍어야 하고.

만패라는 건 그런 대차게 꼬라박은 시즌이 무려 백 개쯤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일이니, 그 난이도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지.

사실 그만큼 필라델피아 필리스라는 구단 자체가 엄청나게 오래된 명문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우우우우우!”

“X같은 Cunt 새끼들!”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쳐?”

보통 역사가 오래된 팀일수록 팬이 X같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컵스, 레드삭스, 뭐 많잖아? 필리스는 그중에서도 좀 심한 편이지만.

“X같은 밥버러지 새끼들! 니들이 그러고도 메이저리거냐!”

“우리 할머니가 프라이팬 들고 타석에 올라도, X발 한 점은 냈겠다!”

“X이나 까라! X같은 X쓰레기 MotherFucker들아!”

그런 명문팀(?)의 팬들은 오늘도 분노하고 있었다. 1차전이 대차게 망가지고 있었으니까.

“소니 잘하네.”

“올해는 후반기에 많이 내리박지는 않는 것 같은데?”

“초반에 부상당한 것만 제외하면, Suck 얘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소니도 괜찮은 시즌이긴 해.”

일단 선발투수로 나온 소니 그레이에게 타자들이 처참하게 발리고 있었다.

7이닝 동안 고작 안타 네 개에 볼넷 하나 얻은 것이 전부니. 복장이 뒤집힐 수밖에.

반대로 우리 빠따는 그럭저럭 5점이나 뽑아내며, 적절하게 득점 지원을 해줬고 말이다.

“아웃!”

경기는 결국 5대0의 영봉승으로 막을 내렸고, 이미 사나워졌던 경기장은 조금 더 활활 타올랐다.

“Suck, 너 내일 좀 조심해야겠어. 나도 이 정도인데···”

“레이저는 안 쏴요?”

“그건 그냥 제드가 농담한 거야. 아무리 필리스라도 그런 짓까진 안 해. 그냥 좀··· 거칠 뿐이지.”

경기가 끝난 뒤, 소니 그레이는 진심을 담아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먼저 겪어본 자의 심정이겠지.

“이상하게 널 굉장히 싫어하는 눈치니까, 웬만하면 조심해.”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솔직히 좀 억울하다.

아니, 뭐, 우리가 이쪽 지구 팀도 아니고, 저~ 멀리 캘리포니아에 있는 팀이고. 나는 필리스를 이번에야 처음 상대하는 건데.

필리스 사람들은 이상하게 날 싫어했다. 피켓만 봐도 알 수 있지. 경기장 앞에도 바글거리더니.

경기장 안쪽에서도 오늘 나오지도 않는 나를 저격하는 말들이 많았으니까. 왜 저러나 몰라. 내가 뭘 어쨌다고.

“질투지, 질투. 자기네들은 X박고 있는데, 똑같이 X신인 줄 알았던 우리한테 너 같은 투수가 나온 것에 대한 질투.”

“잘하면 잘할수록 점점 X같아서 못 살겠네.”

팬이 늘어날수록 이유 없이 미워하는 적들도 늘어난다더니. 그게 틀린 말이 아니었구만.

“영봉패까지 당했으니까, 내일은 더 심할 것 같은데···”

“자자, 다들 빨리 환복하고, 바로 호텔로 들어가. 지금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웬만하면 바깥 외출은 자제하고.”

어쨌든 영봉패의 충격 때문인지,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말이다.

다른 팀이 오클랜드 원정 오면 이런 느낌인 건가?

조금 심각한 수석코치의 말에 우리는 군말하지 않고, 잽싸게 호텔로 튀었다.

“그래도 오늘 보니까, 레이더스는 안 보이던데··· 상황이 더 심각해지지는 않겠네.”

“솔직히 난 좀 기대했어, 흔치 않은 풍경이잖아? 막상 안 나타나니까, 아쉽다.”

“영봉패까지 당했는데, 내일 얘 경기에 레이더스가 나타나서 속 긁으면··· 진지하게 폭동 나지 않을까?”

“레이더스라고 해봐야, 원정이라 얼마 안 될 텐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 괜히 깝죽거리면 집단린치 당할걸? 차라리 안 와서 다행이야.”

그나마 다행아닌 다행인 점이 있다면, 1차전에선 레이더스가 안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험악한 분위기에, 그런 열정적인(?) 원정팬까지 끼얹는다면,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필리스가 그대로 터질지도 모르니까.

‘역시, 바로 필라델피아 원정을 따라오는 건 좀 무리였나 보네. 하긴, 갑작스럽게 일정이 바뀐 거니까.’

시즌 극초반을 제외하면, 원정 등판에서 레이더스가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왠지 조금 적적하고, 어딘가 휑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다음날, 등판을 위해 다시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찾았을 때, 공허함은 말끔하게 씻겨졌다.

“이야, 기어코 따라왔네?”

“저거··· 레이더스 맞지?”

“맞겠지. 저런 모습한 사람들이 설마 필라델피아에도 있을 리가 없잖아.”

“허, 필리스도 필리스지만. 레이더스도 진짜 좀···.”

“Suck 너 무슨 최면이라도 걸었어? 저번에 등판 걸렀을 때야 그래도 서부에서 놀았다지만, 이번엔 아예 정 반대편인데, 이걸 또 따라오네.”

“심지어 복장도 제대로 갖춰서 왔는데?”

“어제는 안 보이더니, Suck 등판에 맞춰서 왔나 보네.”

우리의 용자들이 등장했으니까.

“Suuuuuuuuck! 우리 기다렸지?”

“우리가 왔다!”

“자유의 종을 X신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오클랜드로 옮기자!”

“Hell Yeah!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원정인 만큼, 이탈자가 있긴 했던 건지, 평소 다른 원정 경기보단 그 수가 훨씬 덜하긴 했지만.

머나먼 동부원정에 나선 용사들의 독기는 여태까지 내가 봤던 레이더스 중 최강이었다.

주변에 바글바글거리며, 그 자신들을 둘러싼, 분노한 필리건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 한쪽이 뭉클해질 정도였다. 날 좋아하긴 진짜 좋아하나 봐.

“대단한 사람들이야.”

“징그러운 사람들이겠지···”

그것도 맞고.

####

“코치.”

“하지 마.”

“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마세요, Go.”

경기 전, 워밍업을 할 때, 조심스럽게 말하니, 스콧 에머슨과 대니얼이 똘똘 뭉쳐서 내 입을 막았다.

억울하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 사람들 요즘 나를 너무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여기는 것 같다니까.

나도 다 큰 성인이야, 성인. 미국이든 한국이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운전도 할 수 있는 성인이라고.

물론! 앞의 두 개는 절대로 안 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하려면 할 수 있다 이거야.

나한테는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코치, 진정하고 저~기 관중석을 보십시오. 우뚝 선 잡초처럼, 관중석 중간중간에 있는 우리 팬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잘 보이지. 대단하네. 팬이 아니라 광신도 같긴 하지만. 난 아직도 좀 적응이 안 돼. 저 사람들 야구팬은 맞는 거지?”

“저도 좀 의심스럽기는 한데··· 아무튼 그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그렇지요. 저, 이 고유석이를 보려고 이 먼 길을 나선 것이지요.”

“계속해봐, 막상 들으니까 재밌네.”

“그러니 저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메이저리거로서, 그들이 바램, 꿈, 희망을 이뤄줘야 합니다. 제가 입은 옷, 신발, 글러브, 어느 것 하나 팬들의 피와 땀이 아닌 게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장황한 자기변명을 하는 이유가 뭐냐면···

“그거 참, 좋은 마인드네. 네가 직접 생각한 거야? 팬들이 알면 아주 감동하겠어. 그래서 본론은 뭔데?”

“이 사랑에 보답하려면 삼진으로는 너무 적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저의 이 튼튼한 두 다리를!”

“안 돼.”

“아 왜요.”

슈퍼소닉 고유석이 출동하고 싶다는 뜻이다. 생각해봐, 얼마나 감동하겠어?

자기들을 위해서 왼팔은 공을 던지고, 두 다리는 직접 점수를 만들다니. 캬~ 레이더스 눈물 흘리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멋진 장면인데, 정말이지 이 양반들은 낭만을 몰라.

그 뭐야, 누구더라? 일본에서 뛰는 애, 그래 쇼타니 오헤이! 아니, 오타니 쇼헤이였나?

아무튼 걔 봐봐, 얼마나 멋있어? 투타겸업이라니. 아주 그냥 야구의 낭만의 결정체지.

나는 그렇게 본격적인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저냥 이 먼 동부까지 날아와준 우리 팬들, 사랑스러운 레이더스에게 낭만을 보여주자, 이거지, 내 말은.

“저 틈틈이 타격연습 한 거 아시잖아요? 러닝에도 멀쩡한 것도 아시고.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래, 대신 오늘은 그런 짓거리 하면 진짜로 죽어. 알잖아? 제발 부탁이야. 제발! 내가 무릎 꿇고 빌게! 대니얼 씨도 뭐라고 좀 해보세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Go 정도의 체격에 스프린트는, 몸에 과도한 충격을 줍니다. 그러면 부상을-”

“아, 예, 알았어요. 어휴, 야구의 낭만을 몰라, 낭만을.”

흥, 유석이 삐졌어.

아, 내가 했지만 이건 좀 역하네.

아무튼 좀 화났다.

내가 뭐 나 혼자 재밌자고 그래? 레이더스를 위해서다 이 말이야 내 말은.

“얌전히 공이나 잘 던지자. 그것만 해도 레이더스는 좋아서 죽을 거야. 오히려 저번처럼 헤드샷 당할까봐, 5이닝만 던지고 내려가는 게 더 못 할 짓이지. 그러니까, 엄한 핑계 대지 마.”

“···예.”

1차 설득은 아쉽게 실패로 끝났다. 어쩔 수 없지. 코치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저번에 위험을 감지한 감독님이 대타를 냈던 것처럼, 또 내가 금방 내려가면. 그거야 말로 레이더스한테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겠지.

내 경기 보려고, 보스턴까지 따라왔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거니까.

공이나 잘 던져야겠지.

물론···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경기 준비를 마쳤다.

####

“저 새끼들은 뭐야?”

“우리 쪽인가?”

“아까 보니까 Suck Suck 거리던데?”

“그니까 그게 욕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 투수 새끼 이름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날 영봉패로 가슴이 쓰렸던 필리건들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이들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우리 중에 첩자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것도···

“대체 왜 저런 꼬라지로 야구를···”

“저거 겉에 입은 건 오클랜드 유니폼 아니야?”

“맞는 것 같긴 한데··· 오클랜드를 조롱하는 건지, 아니면 응원하는 건지가 좀···”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좀 심하게 튀는 첩자가 말이다.

대놓고 이상한 기색을 풍기니, 오히려 당황스러웠고.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진짜 광기의 앞에 압도되어버린 가짜 광기처럼.

필리스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제일가는 유별난 팬덤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저런 또라이들은 흔치 않았다.

그 이색적인 느낌이 주는 두려움이 적지 않았다. 언제나 꺼지지 않았던 필라델피아의 분노를 잠재울 정도로.

“켈빈, 우리 위험한 거 아니야? 사방이 다 적인데, 그냥 근처에 술집 들어가서 응원 했어야 했나···”

그러나 두려운 건 그 이상한 놈들, 레이더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지의 한복판, 온 사방에 홈팬이 깔려 있는 경험은 그들 역시 이번이 처음이니까.

원정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단체로 행동하기에, 소수일지라도 똘똘 뭉쳐 옆이 든든한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스케줄인 만큼, 닥치는대로 있는 티켓을 구한 탓에, 저마다 좌석이 중구난방이었으니까. 켈빈 그의 근처에 있는 레이더스도 고작 대여섯 명이 전부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압사당할 지도 모른다는 뜻이지.

그렇기에 형제들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그에게 속삭였지만, 켈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안전해. 경기장 안이니까, 아무리 심해도, 유혈사태까진 안 가. 밖이 더 위험해.”

어떻게든 관중석에 들어오는 것, 그게 베스트였으니까.

그리고 X발 기껏 필라델피아 와놓고 밖에서 티비나 보면서 응원하면 그게 무슨 꼴불견이겠는가? 맞아 뒤지더라도 일단 경기장에 들어와야지.

“지금 쟤들도 좀 쫄은 것 같으니까, 절대로 얕잡아 보이면 안 돼. 위험해 보여야 안 건드려. 다른 녀석들한테도 그렇게 메시지 보내.”

“오케이, 최대한 또라이처럼 보여라? 그거야 쉽지.”

지금 레이더스에게 필요한 건 허세였다. 마치 동물들이 서로 다투기 전, 최대한 숨을 들이쉬어, 몸집을 부풀리는 것처럼. 스스로 위험하게 보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기에 평소에는 원정 경기라면 조금 간략하게 세팅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특별히 제대로 작정하고 풀세팅한 것이고.

다행히 효과는 좋았다.

겉모습에 압도된 건지, 흘끔흘끔 곁눈질할 뿐, 대놓고 시비를 걸거나, 욕하는 놈들은 없었으니까.

이 경기장의 주인들이 레이더스 그들과 ‘동류’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평화적인 셈이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관중석에서는 냉전이 이어진 가운데, 경기는 시작됐다.

“우우우우우!”

“Kill'em All!”

“너 이 x새끼들 어제 좀 신났더라? 오늘은 뒤질 준비나 해라!”

싸늘했던 분위기는 한순간 타올랐다. 잘 만들어진 레이싱카의 제로백처럼.

그런 풍경에 이제부터 진짜 시작임을 깨달은 켈빈은 동료들에게 다시금 단단히 주의하며 그라운드를 내려봤다.

다행히 운 좋게 좋은 좌석을 얻은 탓에,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그라운드는 한눈에 들어왔다.

“아웃!”

그 덕에 1회 초, 타자들이 쓸려나가는 것도 참 잘 보였고.

이 무능한 놈들. 저 타자라는 놈들은 Suck에게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대부분은 득점 지원을 잘 해주는 편이지만.

원래 못한 것만 기억에 남는 법이지.

“Hell Yeah!”

“이래야지! 이거지!”

“오늘은 X발 무조건 이겨라! 어제처럼 등신같이 게임하면 뒈질 줄 알아!”

깔끔한 삼자범퇴에 홈팬들은 한층 더 흥분한 듯 소리쳤고, 불펜의 문이 열렸을 때, 데시벨은 더욱더 올라갔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

“꺼져라! 꺼져라!”

“잘 봐! 이거 보이지! 그래! 오늘은 니가 X되는 날이야!”

“X신 같은 아시안한테 X같이 처 발린 아메리칸 리그나 등신 메츠랑 우리는 달라! 잘 기억하라고!”

“피홈런이 두 개라고? 오늘 10개까지 늘어날 거니까, 똥오줌 안 지리게 기저귀나 차라!”

이유 없는 적의가 그에게 쏟아졌다. 레이더스의 새로운 빛이요, 구세주요, 믿음인 선수에게.

이유야 뻔하지. NFL이든 MLB든, 잘나가는 놈 미워하는 것에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싫은 거지.

레이더스 역시 그렇게 그냥 미운 놈들이 종종 있었고.

특히 자기네들 성적이 개X같이 못하고 있다면, 그냥 온 세상에 저주를 퍼붓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더러운 만패 새끼들이··· 감히!”

그렇기에 화가 났다.

지들이 X같이 못하는 걸, 어디다가 화를 돌린단 말인가?

우리 사랑스러운(?) Suck이 대체 뭘 어쨌다고?

평소와 달리, 최대한 안전을 중요시한 켈빈이었지만, 역사상 최초의 만패라는 X신 같은 위업을 달성한 놈들이, 감히 그에게 야유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X발 Suuuuuck! 이 X같은 X신 필라델피아를 불태워버려!”

“만패나 당하는 X신들한테 1패를 더 적립시켜 주자고!”

“이런 X같은 새끼들은 그냥 싹 죽여버려! 꼴찌 새끼들한테 최고가 뭔지 가르쳐 줘!”

무리의 대장으로서, 그가 먼저 선창하자, 마찬가지로 용기를 되찾은 레이더스가 외쳤다.

그들 이외에도, 여기저기에 떨어져 앉은 이들 역시, 벌떡 일어서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이 들리고, 보였다.

“뭐- 뭐야, 쟤들.”

“진짜 미친놈들인데? 겁도 없나?”

“저 새끼들이 지금 어디서 감히 저딴 돼지 멱다는 소리를-”

“야야, 하지마. 저 새끼들 눈 돌아갔어.”

그 패기로운 모습에 주변을 에워쌌던 필리스가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다.

고작 한줌 밖에 안 되는 주제에,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그들로서 굉장히 낯선 일이었으니까.

마치 광기에 휩싸인 버서커처럼 눈알을 희번덕 거리는 모습이 그 기괴한 코스튬과 어우러져, 조금 무섭기도 했고.

그렇게 일당백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그들을 느낀 건지, 마운드에 오른 Suck은 흘끔 관중석을 훑으며 살짝 미소를 지어줬다. 레이더스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처럼.

사실 그런 미소 백 번 보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거 하나가 더 좋았지만.

이번 원정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험난했던 원정, 머나먼 필라델피아와 열정적인 홈팬까지, 정말 빡센 곳이지.

허나 그런 것과 아무런 관계없이, 경기의 시작은 결국 다른 때와 똑같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거였다. 그것을 보며 그들이 하는 짓 역시.

“You Suuuuuck!”

“Your Fucking Suck!”

“Hell Yeah! Killl!!!!”

결국은 똑같았고.

이러니 그를 따라다닐 수밖에. 저 녀석은 항상 그들이 즐겁게 해주니까.

평소와 같은 즐거움에 켈빈과 레이더스는 크게 소리치며, 오늘도 환하게 웃었다.

“이젠 쳐 웃기까지 하는데?”

“미친놈들··· 입가에 거품 낀 거 봐. 저거 광견병 아니야?”

“오클랜드 새끼들 올해 좀 머리가 이상해졌다더니···”

정말 놀랍게도,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먼저 기선을 제압한 건 레이더스 원정군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