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Go You Suck 339K, 역대 단일시즌 탈삼진 레코드 10위!]
우리 공격이 한창인데도, 전광판 한쪽에는 저런 글자가 떠 있었다.
‘계속 떠 있으니까, 무슨 전광판 에러난 것 같네.’
원래 10위였던 334K를 넘어선 시점부터 계속 저랬는데. 단순히 팬들만이 아니라. 구단 직원들도 얼마나 내 기록에 집중하는지. 집착하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하긴, 역대 기록인데, 어쩌면 저게 당연할지도.
“와···”
“아직도 신기하네. Suck이 저런 걸···”
“저런 거 볼 때마다 좀 새롭게 보인다니까? 얘가 얼만큼 미친놈인지 새삼 깨닫네.”
다른 투수들은 그것을 보며 종종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특히나 내가 엄청나게 비루했던 시절을 알고 있는, 마이너 시절 동료들, 다니엘 고셋이나 맷 채프먼, 이번에 콜업한 라울 알칸타라 같은 녀석들은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젓기도 했고.
보았느냐, 이것이 나다.
너희들이 기억하고 있는 Suck은 이미 죽은 지 오래야.
“아웃!”
4회 말은 무난하게 끝났다.
1사 1,2루까지 찬스 내놓고. 그걸 못 살리네.
“Suck! 2개만 더 잡아!”
“오늘 안에 8워까지 가야지!”
“지난번엔 짧게 끊었으니까, 오늘은 9이닝까지 던지는 거 맞지? 그럼 충분하겠네!”
우리 팬들은 참 볼 때마다 탐욕스럽다. 역대 10위쯤 되면 만족할 법도 한데.
더, 더, 더. 더 높은 순위를 찍으라며 나를 재촉하고 있으니까. 8위까지 올라가라니···
‘8위가 랜디 존슨이었던가? 347개.’
기존 10위가 랜디 존슨이고, 9위는 놀란 라이언, 다시 8위는 랜디 존슨으로 안다.
애초에 역대 단일시즌 탈삼진 기록 자체가 라이언 존슨 라어은 존슨의 반복이지. 나도 나지만, 이 양반들도 진짜 미친 사람들이야.
‘뭐, 이걸 꾸역꾸역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도 팬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사실 기록에 욕심내는 건 팬들이나 구단만 그런 건 아니니까. 솔직히 여기까지 왔는데, 나라고 욕심이 없겠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충분히 가능성이 보인다면 더욱더 그렇고.
‘매리너스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도 엄청 쉽기는 하네. 생각보다 너무 약빨이 잘 받는데?’
애스트로스의 집중력은 완전히 박살났다. 허무한 스윙만 계속 나오고 있지.
“Suck, 이번 이닝도 웃어?”
“계속 실실 쪼개서 그런가, 이제 입꼬리가 좀 아픈데···”
“쪼개지 말고, 은은하게 하라니까. 은은하게. 은근한 뉘앙스가 느껴지도록.”
“알았어, 알았어. 니가 무슨 영화감독도 아니고, 되게 구체적으로 지시하네.”
야수들에게 요구한 건 별거 아니다. 내가 썩소를 날리니까, 효과가 죽여줬잖아?
그 비슷한 미소를 지어주라고 했는데, 아주 잘 먹혔다. 죄다 엄청 당황하더라고.
‘아, 맥스 스태시인가? 포수는 생각보다 반응이 덜하던데. 당황한 걸로 봐서는, 아마 이번에 콜업했으니까, 연관이 없었던 거겠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 당황한 것 역시 도움이 되고 있으니. 상관없다.
“자자, 다들 잘 던지는 투수 귀찮게 하지 말고, 빨랑빨랑 그라운드로 나가.”
“뭘 귀찮게 했··· 아··· 그- 그래야죠.”
“아~ 음음, 일이 그렇게 되고 있었네···”
내 주변에서 알짱거리던 야수들은 싸늘한 스콧 에머슨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황급히 그라운드로 달려갔다.
그래, 어쩐지 좀 편하게 군다 싶더라.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있었구만.
브루스도 뒤늦게 알아차린 건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에스코트했다.
“어, 이번 이닝도 잘··· 아니아니, 평범하게 평소처럼 해보자. 열심히 공 받을게.”
“쫄지 마,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퍼펙트 중이잖아. 4이닝 동안. 사실 4이닝 가지고 퍼펙트 이야기하면 좀 우습긴 한데.
난 이미 퍼펙트와 그 비슷한 노히터 한 번의 전력이 있기에,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지.
혹시 모르잖아? 저쪽이 계속 당황하고 있으면, 이러다가 어영부영 달성할지도.
‘뭐, 가능성이 그닥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난 아무렇지 않다.
퍼펙트 같은 건 느낌이 딱 오는데, 멘탈을 흔들어서 잘 잡고 있긴 하지만.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야.
‘퍼펙트는 욕심내지 말고, 이닝에나 집중하자. 4번부터 시작이던가?’
5회 초, 타순은 4번부터 시작한다. 말했다시피, 퍼펙트니까. 타순이 쭉 이어지니까.
‘아까 전이랑은 조금 다르네.’
타석에 올라온 조시 레딕은 앞서 2회 초와는 살짝 달랐다. 그때 대단히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도 약간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타석에 올랐고, 전처럼 자신감이나, 의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스트~라잌!”
초구는 커터.
살짝 아슬아슬하게 걸쳐봤는데, 주심이 콜을 잡아줬다. 조금 판정이 좋아진 것 같은데···
“스트~ 라잌!”
2구 역시 바깥쪽.
또한번 아슬아슬하게 보더라인에 걸친 공을 그는 두말없이 바로 콜 해줬다.
이전에는 살짝 고민했던 코스였는데, 이젠 망설임이 사라졌네. 둘 중 하나겠지.
내 제구력을 인정하고, 좋게 잡아주는 것. 아니면 내가 퍼펙트 중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우리 홈인데 퍼펙트까지 진행 중이니, 조금 더 판정이 후해지는 거지. 너무 빡빡하게 굴었다가는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 체크. 존 넓어져서 나한테 나쁜 건 없지.’
엄청나게 늘어난 건 아니고.
그냥저냥 애매한 코스 같으면 나한테 약간 치우쳐주는 정도.
그 정도야 나중에 별다른 말이 나올 것도 없으니, 그저 고맙게 받아들이자.
어쨌든 그렇게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몰렸는데도 조시 레딕은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아웃!”
3구째 날아간 너클 커브를 받아치긴 했지만, 힘없는 내야뜬공으로 그쳤고 말이다.
“삼진이나 잡혀라!”
“작년까지 우리 같은 편이었잖아! 안 도와줘? 좀 눈치껏 해!”
“이래서 니가 트레이드 된 거야! 그렇게 눈치가 더럽게 없으니까, 팀에서 쫓겨나지!”
거, 삼진 안 잡혔다고 너무하네. 그래도 작년까지는 우리 팀 프랜차이즈 스타급이었는데, 박수는 못 쳐줄망정.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조시 레딕이 트레이드로 쫓겨났다기보다는.
어차피 FA에서 못 잡으니까, 리치 힐이랑 같이 묶어서 눈물을 머금고 팔아 치운 쪽에 가깝지.
뭐, 사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화난 김에 막말하는 거겠지만.
‘율리 구리엘. 쓰읍, 은근히 숨겨둔 복병이 돼버렸네. 괜히 자극했어.’
그다음 타자는 율리 구리엘.
괜히 자극한 탓에 오히려 각성해버린 타자인데, 지금도 또렷한 눈빛으로 타석에 올랐다. 괜한 짓 했어.
뭐, 그래도 나머지는 반응이 좋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만. 뜻하지 않은 폭탄을 심었구만.
‘지금 상황에선 알투베, 코리아, 스프링어보다 얘가 제일 위험해.’
거의 유일하게 제정신인 타자니까. 지금의 분위기를 깨트릴 한방이 나온다면. 이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지.
“파울!”
아니나 다를까.
초구부터 묵직하게 휘둘렀다.
아슬아슬하게 파울.
또렷한 정신만큼이나 타격감도 올라 온 것 같네.
그나마 5일이나 쉬어서, 몸에 힘이 남아돌고, 공이 조금 더 묵직한 덕분에 정타는 안 됐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제대로 맞았을지도 모르겠네.
“볼!”
“볼!”
“파울!”
그는 꿋꿋하게 공을 지켜보고, 적절하게 배트를 내면서 시간을 끌었다.
“볼.”
회심의 쓰리핑거 체인지업도 가만히 지켜보면서 풀카운트. 쓸데없이 빡세게 됐네.
당당한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봐서는, 어쩌면 낵가 퍼펙트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좀 꼬였네. 어차피 퍼펙트는 생각도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가자.’
이런 상황에서 괜히 거창하게 마음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더 말려들거든. 편하게, 여유롭게 던져야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던진 6구.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으로 나가는 서클 체인지업에 그는 크게 헛스윙했다.
설마하니, 이렇게 멀찍하게 뺄 줄은 몰랐다는 듯. 당당했던 표정이 세차게 흔들렸고 말이다.
퍼펙트 중인데, 볼넷이 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넣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욕심은 있으셨구만.’
정말로 퍼펙트만 깨트리려고, 안전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볼넷으로 걸어 나갔겠지만.
통쾌한 안타 하나를 날려서 분위기도 쇄신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You Suck!”
“한 개 더 잡고 9위 가자!”
그 약간의 욕심이 그를 340번째 삼진으로 만들었다. 그러게 욕심을 부리면 쓰나. 딱 하나를 정해놓고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야지.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음, 좀 우습긴 하네.
투수가 할 수 있는 기록은 거의 다 찍고 있는 주제에, 탐욕스럽게 탈삼진까지 노리는 내가, 다른 사람의 욕심을 욕하는 것도 그림이 좀 이상하긴 하네.
어쨌든 삼진으로 잡았고. 빡센 승부를 지났으니,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졌다.
‘이쪽은 그냥 교체되는 게 저쪽에는 더 이득이겠네.’
후속타자, 벨트란은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올라왔다. 이러면 굳이 웃을 필요도 없지.
이미 멘탈이 터진 것 같은데, 괜히 더 자극시켜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 더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슬쩍 브루스에게 사인을 보내니, 제법 눈치 좋게 알아먹은 건지, 다른 선수들도 평범한 표정으로 수비를 준비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것이 더 마음에 걸렸던 건지, 벨트란은 완전히 망가진 자세로 간신히 땅볼을 만들었다.
그마저도 그가 공을 때렸다기보다는, 그냥 운 좋게 배트에 얻어걸린 것에 가깝지만.
이건 내 잘못이네. 너무 마음 놓고 던졌어. 삼진으로 잡을 걸, 땅볼로 잡았네.
그것으로 5회 초 종료. 퍼펙트 역시 5이닝으로 이어졌다.
“···”
이제야 알아차린 건지.
콜리시엄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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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퍼펙트 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여전히 우울함이 감도는 덕아웃에서, 문득 누군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숨처럼 내뱉은 허탈한 헛웃음과 함께.
그 말에, 다른 선수들도 그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조금은 멍했던 눈동자가 맑아졌다.
“···그렇네. 볼넷도, 안타도, 실책 같은 것도 아예 없으니까.”
“X발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우리.”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상대의 표정에 지레 겁먹고 움츠러든 사이, 정신 놓고 털리고 있었던 셈이니까.
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오늘 경기를 봤을까? 그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후··· 그 얘기는 다음에 하고,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이래선 답도 없어. 다들 알지?”
“지금··· 그냥 놀아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집중하자!”
그제야 다시 찾은 활기.
다시 덕아웃에는 평소와 같은 활력이 돌아왔지만, 너무 많이 늦기는 했다. 이미 5이닝이나 지났으니까. 제대로 성과조차 내지 못했고.
“그래, 어쩐지 실실 웃더라. 우릴 호구잡고 또 기록을 써 보시겠다?”
“일단 하나 날리고 시작하자. 퍼펙트 깨지면, 저쪽도 좀 흔들릴 거야. 그때 한 점이라도 내 보자고.”
“일단 실점하면, 아마 완투까진 안 할 거야. 오클랜드에서 쟬 아끼는 눈치니까. 그러면 막판에 역전도 가능해.”
하지만 늦은 만큼 더욱더 세차게 불타올랐다. 지금까지 보인 추태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는 게 옳았으니까.
그런 분위기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 맥스 스태시 역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집중을 올렸다.
“마이! 마이!”
“아웃!”
“나이스 플레이! 수비 좋았어!”
그런 분위기는 그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직전 이닝만 하더라도, 수비에서도 조금 삐걱이고, 집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적극적으로 콜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으니까.
5회 말, 오늘 처음으로 깔끔하게 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사기는 더욱더 올라갔고.
“알렉스! 혹시 모르니 ,준비하고 있어. 대타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약간은 한 발 떨어져서 선수들을 지켜봤던 코치들 역시 적절하게 서포트하며, 다시금 준비를 갖췄다.
“하나 날리고 와. 맥스 너도 한 방이 있잖아? 선발인데, 하나 보여줘.”
“그래야죠.”
타석에 나가기 전, 맥스 스태시는 타격코치의 말에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팀이 열기를 되찾았으니, 자신 역시 그에 보탬이 되고 싶었으니까. 물론 그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도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한 건 해낸다면, 더욱더 좋겠지. 물론 여전히 저 투수는 굉장히 두렵지만···
‘끈질기게 버틴다. 최소한 투구수라도 늘리는 거야.’
“배트 짧게 잡지 마, 오히려 역효과야. 쭉 밀리거든. 그냥 편하게 스윙하고, 제대로 임팩트를 실어”
“아, 조언 고마워. 잘 새겨들을 게.”
“아니, 오히려 미안하지. 진작 얘기해줬어야 하는 건데. 정신이 너무 없었네. 큰 거 하나 날려버려. 세 번째 피홈런 치면, 그날로 바로 슈퍼스타야. 홈페이지 대문에 니 사진도 콱 박힐걸? 지금까진 쭉 그랬거든. 나랑, 트라웃 둘 다. 이번엔 맥스 네 차례일지도 모르지.”
“하,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
마찬가지로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조지 스프링어의 응원을 짊어진 채, 올라선 타석.
오클랜드는 이전처럼 불쾌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 휴스턴의 변화를 깨달은 건지,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을 뿐.
‘이렇게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
처음 봤을 때는 과하게 여유로웠고, 그 뒤부터는 기분이 더러운 미소를 품고 있었던 투수도 지금은 조금은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동양인의 표정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괴물 같은 성적과는 달리, 사람 좋은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무표정한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규칙적으로 씹으면서 부풀리는 풍선껌 때문에 그나마 좀 가볍기는 했지만.
“이젠 안 물어봐? 아까는 왜 웃는지 제발 좀 알려달라며 징징거리더니.”
“꺼져.”
상대 포수 또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정작 물어볼 때는 X같이 능청거리더니, 이젠 본인이 트래시 토크를 걸어왔지만. 그딴 건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그런 여유가 없을 만큼 집중하고 있었기에, 맥스 스태시는 그저 날카롭게 받아치며 타격폼을 잡았다.
“스트라이크!”
이제 경기 후반에 접어드는데도 공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긴, 그러니, 최고의 투수겠지.
“스트라이크!”
듣던 대로, 이제부터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건지, 상당히 빠르게 2구가 날아왔지만, 맥스 스태시는 그저 자기자신에게 집중했다.
‘묵직하게, 최대한 힘을 실어서.’
동료들의 조언과 오늘 직접 상대하며 경험한 것을 합친 결과, 저 투수의 흐름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그렇기에 기도문을 외우듯 차분하게 중얼거리며,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3구.
‘조금 느려. 코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휘두른다.’
빠른 타이밍. 하지만 조금 느린 구속. 체인지업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른 투수가 상대였다면, 이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좁혀든 것이겠지만, 지금 눈앞의 상대는 아니다.
체인지업만 세 가지니까.
꺾이는 서클 체인지업.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그리고 밋밋하지만 타이밍을 찌르는 쓰리핑거 체인지업.
더럽게 많지.
허나 그는 확신을 가지고 배트를 휘둘렀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답도 없는 문제고, 코스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으니.
그냥 내 스윙을 가져가며,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게 최고니까. 사실 대부분의 타격이 이런 방식이긴 하지만.
다행이게도···
“씁-”
지금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웃어줬다. 배트의 윗부분에 걸친 공을 그는 최대한 힘을 담아 밀었다.
정확하게 스윗스팟에 맞지는 않았기에, 큼직한 장타는 힘들다. 조지 스프링어의 농담처럼 MLB 홈페이지 대문에 걸리지는 못하겠지.
“저- 저런 개같은 색-”
“야이 쓰레기 같은-”
물론 상관없다.
이런 손맛조차 보지 못한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널렸을 테니까.
황급히 배트를 놓은 뒤, 맥스 스태시는 어쩌면 그 본인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가장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됐다!’
땅볼로 쭉 굴러가며, 아슬아슬하게 유격수의 수비범위를 뚫은 타구.
그것을 본 순간 그는 입술을 꽉 씹었다. 정말로, 정말로 자신이 해냈으니까.
저 괴물을, 그의 배트가 뚫었다.
“세이프!”
송구는 훨씬 늦었고, 1루 베이스를 밟은 그는 저도 모르게 덕아웃을 향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
괴성에 가까운 함성.
허나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덕아웃의 동료들은 그보다도 더욱더 큰 목소리로 함께 소리쳐줬다.
퍼펙트는 깨졌다.
그것도 맥스 스태스 그의 손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역시 다시 바닥에서 일어섰고.
‘그래, 앞은 버린 셈 치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너무 많이 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망가진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금 흥분된 심정으로 마운드를 봤다. 퍼펙트가 깨졌으니, 조금 흔들렸을 투수의 모습을 기대하며.
그러나···
“뭐 저런 새끼가···”
기대와는 달리, 투수는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퍼펙트가 깨진 것을 아쉬워하지도, 그처럼 백업조차 못 되는 AAAA리거에게 안타를 맞은 것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옆의 야수들이 더 아쉬워하면 아쉬워했지. Go는 그저 피식 웃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그렇기에 불쾌했다. 마치 맥스 스태시 그의 노력과 그것이 낳은 결과물이 폄하된 것만 같았으니까.
‘덤덤한 척 하는 거겠지. 그리고, 이젠 우리도 반격하기 시작할 거니까···’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고, 그 사이 벤치에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나왔다.
“대타 알렉스 브레그먼!”
8번타자, 마윈 곤잘레스를 대신해, 알렉스 브레그먼이 대타로 나왔다.
이번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믿음직한 자원으로, 충만한 재능을 선보였던 선수이기에, 충분히 기대할만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어쩌면 오늘 경기 첫 위기의 앞에서 투수는 한층 더 달라졌다. 마치 맥스 스태시 그의 타석에서 보여줬던 속도감은 그저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대타로 나온 것이 무색하게도, 알렉스 브레그먼은 삼구삼진으로 물러났다.
그가 얼마나 재능이 대단한 선수인지 잘 아는 맥스 스태시가,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스트라이크 아웃!”
9번타자 카메론 메이빈 역시 연이어서 삼진. 4구째 하이 패스트볼에 헛스윙하며 꼴사납게 타석이 끝났다.
‘그래도 조지라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친숙한 선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 희망을 품었다.
조지 스프링어, 저 투수에게 첫 피홈런을 안겨준 장본인이자, 리그 전체를 통틀어, 꽤나 상대 전적이 좋은 선수 중 하나로 꼽히니.
무언가 해주리라고 믿으면서.
아까 전 조언을 해준 것을 보아, 이젠 다시 집중도 찾고, 정신도 차린 것 같으니···
‘분명 하나 해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장타를 대비해서, 살짝 리드폭을 넓혔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콜은 더럽게 빨랐다.
5이닝에 걸쳐,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는데도, 결과는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악화가 됐지.
“와아아아아아!”
“이게 Suck이지!”
“그래, 퍼펙트는 이미 봐서 좀 질려! 삼진이 최고라고!”
“9위다, 9위!”
“343K!
전광판에는 글자가 떠올랐다.
343탈삼진. 9위 기록이었던 놀란 라이언의 341K를 2개 차로 넘어, Go You-Suck이 역대 9위로 올라섰다는 글자가.
그것을 본 순간 깨달았다.
“X발 그냥 안 되는 거였잖아···”
선수단 사기가 흔들리고 나발이고. 그냥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상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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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력이 있단 말이야.”
새삼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감탄했다. 역시 잘 나가는 팀은 뭐가 달라도 달라.
설마하니, 이렇게 갑자기 정신을 차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거기다 퍼펙트까지 겹쳤으니,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릴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의욕을 불태우며 달려들었다. 이런 게 위닝 멘털리티라는 거겠지.
“뭐, 뽕을 더 못 뽑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잘 조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 완봉 좀···”
예, 역시 안 되겠죠.
투수코치는 왜 이렇게 나한테 못살게 구는 걸까. 정말 너무하다 진짜.
“완투는 좀 그렇고, 그래도 저번엔 말 잘 들었고, 투구수도 좀 남았으니까, 8이닝 정도는 가능하겠네.”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개소리는 하지 말고.”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너무 사랑한다. 그런 뜻이다. 진짜예요. 사람을 못 믿으시네.
“브루스, 속도 빡세게 올리자. 쟤들 어차피 정신 차린 것 같은데, 그냥 난도질 하자고.”
“하긴, 좀 기합이 바짝 들어간 것 같긴 하더라. 근데 안 힘들어? 이제 경기 후반인데. 니가 사람이냐?”
“뭐 이거 가지고. 괜히 자극할 까봐 참은 거지, 4회부터 달렸어도 충분했어.”
체력은 어차피 남아돈다.
저번 경기에서 보니까, 스퍼트를 내도, 다른 때와는 다르게, 크게 힘들지는 않았지. 쉰 만큼 확실하게 충전이 됐으니까.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이니, 중간에 갑자기 체력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러니 잡수는 이제 때려치우고. 정정당당하게 조지자.
“세이프!”
이어서 7회 초.
아쉽게도 첫 타자에겐 다시 안타를 내줬다. 호세 알투베, 역시 실력이 좋긴 해. 감 잡은 것 같네. 뭐, 퍼펙트야 이미 깨졌으니, 안타 정도는 아무래도 좋지만.
“그래! 이렇게 된 거 괜히 아웃당하지 말고, 차라리 안타 쳐라!”
“범타보다는 뒷사람한테 삼진 기회 넘기는 게 더 낫지.”
우리 팬들은 좀 뒤틀렸다.
퍼펙트는 이미 깨졌으니, 괜히 아깝게(?) 아웃카운트만 차지하는 범타보다는. 출루를 하더라도, 차라리 아웃카운트는 안 올라가는 안타를 더 반기고 있으니 말이야.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야.
내가 저렇게 만든 건가?
좀 무서울 지경이네.
역시 내가 아니라, 내 삼진을 더 좋아하는 게 분명해.
“스트라이크 아웃!”
“You Suck!”
그들이 원하는 삼진은 곧이어 다음타자인 카를로스 코레아에게서 뽑아냈다.
알투베와는 달리, 그는 급격하게 빨라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며, 하이 패스트볼이 헛스윙했다.
“아웃!”
“아웃!”
“야이 쓰레기야! 삼진 당하라고 X발! 귓구멍 막혔어!”
“뒤질 거면 너만 뒤지지! 왜 더블플레이 당하고 지랄이야!”
곧이어 다시 자신감을 찾은 조시 레딕은 또다시 범타를, 심지어 아웃카운트를 하나 더 올리는 병살타를 치며, 팬들의 원성을 샀다.
누가 보면 여기가 애스트로스 홈인 줄 알겠네. 병살타에 저렇게 화내는 사람들도 흔치는 않을 거야.
곧이어 8회 초.
애스트로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도, 이미 홀로 당당했던 율리 구리엘은 한층 더 의욕적인 표정으로 이닝 선두타자로서 타석에 올랐다.
‘삼진 잡기는 어렵겠네.’
아까 전은, 저쪽이 욕심을 내고 있었기에, 막판에 꺾어서 풀카운트 삼진으로 잡았지만. 지금은 힘들겠어.
‘그렇다면 굳이 힘들일 필요는 없지.’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한다. 안 되는 거에 억지로 들이박다가는, 이마가 먼저 깨질 테니까.
“스트라이크!”
“볼!”
“아웃!”
그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바깥쪽 위주로만 공을 던졌다. 마지막 3구, 투심을 던지니, 살짝 빗맞은 타구가 1루수에게 잡히면서 아웃.
‘벨트란도 좀 정신을 차리긴 했네.’
뒤이어 올라온 카를로스 벨트란 역시 어느 정도는 정신줄을 잡은 건지, 오늘 경기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타석에 올랐는데.
‘그래도 좀 표정이 묘한 걸 보면, 저 양반은 진짜 뭐가 있는 건 확실하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그렇게 떳떳하지는 못한 걸로 봐서는, 아마 진짜 뭔가 잘못을 저지르긴 한 것 같다.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단단한 모습으로 배터박스에 올랐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사실 멀쩡하다고 해도, 이미 먹튀급 성적을 내는, 은퇴를 앞둔 선수이기에,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
애초에 타격감이 좋은 타자는 아니니까. 오늘 내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니고.
지난 이닝의 아쉬운 범타를 교훈으로 삼아, 확실하게 힘을 담아 공을 던지며, 삼진아웃.
‘맥스 스태시, 오늘의 히어로께서 다시 올라오셨구만. 근데 표정이 왜 저래?’
아마도 오늘 내가 상대할 마지막 타자가 될 선수. 맥스 스태시. 타석에 올라온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랄까, 이미 모든 걸 놓아버린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해야 하나? 짧게 줄여서 흔히 현타감이라고도 하지.
남의 퍼펙트 망쳐놓고 자기가 저러니까, 좀 어이가 없네.
“스트라이크!”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공을 던지니, 간신히 집중은 하는 것 같았지만, 힘이 없어 보이는 건 여전했다.
‘아예 포기한 것 같은데, 계속 들 쑤시는 것도 좀 그렇지. 편하게 보내주자.’
이런 사람일수록 빠르게 후딱후딱 잡아야 한다. 중간에 갑자기 정신차리기 전에 말이야.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의미에서 최대한 빨리, 브루스가 공을 던져주는 즉시 즉각적으로 쏘아 보냈고.
마지막 3구에 그는 뒤늦게나마 정신이 든 건지, 팔을 휘적거렸지만, 높은 하이 패스트볼에 배트는 한참 아래를 헛돌았다.
“Hell Yeah!”
“You Suck!”
그렇게 관중들의 환호와 애스트로스의 허망한 눈빛 속에서, 이닝은 종료됐다.
8이닝 무실점 2피안타 14K.
346탈삼진으로, 8위와 한 개 차의 단일시즌 역대 9위로 올라선 탈삼진 기록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