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쟤들 양심은 있나 본데?”
1회 초가 끝난 뒤, 브루스는 조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흘끔 상대팀 덕아웃을 봤다.
“표정들이 무슨 죄수 같던데? 지난번에 사인 훔친 게 좀 쪽팔리기는 하나 보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타석에 나온 세 명을 포함, 오늘 애스트로스 타자들의 표정은 뭔가 좀 미묘했으니까.
약간 겁먹은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뭔가 찝찝해 보이기도 하고. 큰 거 싸고 뒤 안 닦은 사람처럼.
그러니 브루스는 자연스럽게, 지난번의 사인 훔치기 때문에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지만.
“글쎄, 단순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저건 양심이 아니라,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말 했잖아, 똥 싸고 뒤를 안 닦은 표정이라고. 나중에 있을 뒤처리를 크게 걱정하고 있는 거지.
‘어쨌든 나쁘진 않아. 굳이 사인을 훔치지 않더라도, 휴스턴 타선은 좀 까다로운데. 좀 소극적으로 나와주니, 오히려 고맙네.’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휴스턴 애스트로스 타자들은 굉장히 강력하다. 그러니까 우승 전력으로 평가 받는 거고.
그런 타자들이 알아서 겁 먹고, 알아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내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지.
‘만약 뭔가 켕기는 게 있고, 그걸 내가 알아차린 걸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거라면··· 이용할 수도 있겠네.’
잠깐 상대팀 덕아웃을 쭉 훑은 뒤, 이내 브루스를 봤다. 살짝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서.
“어때?”
“···뭐가? 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어? 왜 기분 나쁘게 웃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닥치고 공이나 잘 받을게.”
“그거 말고 새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막 괜히 찝찝하고 그래?”
“어, 엄청. 너 그렇게 웃지 마. 진짜 좀 그렇네. 생긴 건 멀끔한 녀석이 왜 얼굴을 그렇게···”
“그렇다면 됐어. 잘 먹히겠네. 중간중간 지금처럼 웃을 테니까, 타자들 반응 잘 살펴봐.”
“왜? 도발하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냥 지금 상태대로 놔두지, 그러냐?”
브루스는 잡아먹기 딱 좋은 상태인 상대타자들을 왜 굳이 건드리냐는 눈치였지만.
난 욕심이 많아서 말이야.
상황이 나한테 유리하다면, 그걸 더욱더 극대화 시켜야지.
“혹시 모르지, 도발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더 움츠러들고 겁먹을 지도.”
“? 뭔 소리야 그건. 하여튼 뭔 생각을 하는 건지··· 너 알아서 해. 어차피 할 거면서. 난 그냥 니가 시키는 대로만 할 게.”
굿보이. 점점 예뻐지는군.
그래, 그렇게 뇌를 비우란 말이야. 복잡한 생각 같은 건 그냥 나한테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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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초.
첫 타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팀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였던 조시 레딕이었다.
올해 FA로 애스트로스와 계약한 뒤로도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데.
주변 다른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약간 똘끼가 있다고 했었다. 상대 타자로 마주했을 때도 대부분 약간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고.
‘오늘도 마찬가지네.’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사내대장부처럼 아주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 딱 피고 배터박스에 입장한 그는 먼저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상대전적 처참할 텐데, 눈빛은 살아 있네.’
보통 저런 타입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경우가 많다.
남이 뭐라고 하든 씨알도 안 먹히지. 그런 의미에서 이쪽은 패스해야 겠구만.
“파울!”
초구 서클 체인지업.
바깥쪽으로 낮게 들어온 공을 조시 레딕은 툭 건드렸다.
살짝 짧았던 탓에 힘없는 스윙이 나오며 파울.
“볼!”
2구로 던진 포심 패스트볼은 적당히 골라냈다. 겨우 네 명밖에 안 되긴 하지만.
최소한 오늘 내가 본 애스트로스 타자들 중 가장 자기 타격이 확실하네. 과하게 조급하지도, 겁먹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나오는구만.
“스트라이크!”
물론 그런다고 해서 까다롭다거나,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이번 시즌에 나한테 어려운 타자가 누가 있어?
트라웃도 홈런 하나 맞은 거 제외하면 그럭저럭 잘 때려잡았는데, 조시 레딕 정도야···
아, 무시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음, 눈치가 빠르네.’
내가 본인을 낮게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지, 도발적인 표정이 조금 불쾌하게 비틀렸다.
분노에서 비롯된 의욕이 제대로 충전된 건지, 배트를 쥔 팔도 약간 진동했고. 한 방 제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서 그냥 다시 바깥쪽으로 낮게 아래로, 너클 커브나 하나 던져줬다.
삼진 아웃.
크게 헛스윙한 그는 약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콧김을 뿜으며, 타석에서 내려갔다.
‘일단 레딕은 됐고.’
그다음 올라온 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
사실 볼 때마다 은근히 반가운 선수 중 하나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 말에 병살타 쳐준 타자거든.
나도 그때 땀에 손을 쥐고, 아니, 손에 땀을 쥐고 봤었는데, 정말 고마웠지.
여기선 이름을 짧게 줄여서, 애칭으로 율리 구리엘이라고 등록된 걸로 아는데.
‘이쪽은 좀 더 확실하네.’
그는 앞서 조시 레딕보다는 훨씬 직관적이었다. 대놓고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거든.
‘테스트나 해보자.’
간이나 좀 볼까, 싶어, 슬며시 웃어주니, 순간 배터박스로 들어오다, 멈칫 멈춘 채,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금방 풀려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타석에 오르긴 했지만, 심란해 보이는 눈빛이야.
뭔가 있기는 정말로 있는 것 같은데? 이 새끼들 설마 다 같이 약이라도 빨았나?
“스트라이크!”
초구는 쉽게 잡았다.
대놓고 그냥 한복판에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는데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으니까.
효과가 나쁘지는 않구만.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건지, 오히려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자세를 취했다.
‘역효과 났네.’
얜 브루스 말처럼 그냥 안 건드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뭔진 몰라도 마음을 잡은 것 같구만.
“파울!”
곧바로 2구.
망설임 없이 휘두른 타구가 살짝 뻗다가, 관중석으로 사라졌다. 꽤나 큼직한 파울.
라인드라이브처럼 쭉 날아가, 한 관중의 맥주잔 안에 홀인원 했다.
“야이 X새끼야! 이딴 건 줘도 안 가져! 내 맥주 물어내!”
“우우우우우우우!”
“X신같은 새끼, 얼마나 알콜중독이면, 그라운드에서도 맥주에 환장을 하네!”
온 몸에 맥주가 튄 관중은 욕설을 토해냈다. 음, 원정팬이었다면 맥주를 바치고 파울볼을 얻은 것에 유쾌해 하며 웃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소수에 속하지는 않았구만.
아니지, 애초에 여기 애스트로스 팬이 있기는 할까?
아무리 팬심이 대단하더라도, 원정을 따라가는 게 꺼려지는 주변 입지와 시설을 갖춘 콜리시엄인 만큼. 아마 이곳에 애스트로스 팬은 없을 거다.
맥주잔에 들어간 순간부터 욕먹는 건 무조건 확정이었네.
‘끄떡도 없네.’
그런 욕설에도 율리 구리엘은 완전히 마음을 다잡은 건지, 미동도 없이 정면을 봤다. 안 던지냐고 재촉하는 것처럼.
“아웃!”
그래서 던져줬다.
바깥쪽으로 높게 걸치는 커터. 배트에 맞은 타구는 둥실둥실 날아갔지만, 뒤로 물러나 있던 유격수, 마커스 시미언의 글러브에 아슬아슬하게 잡혔다.
조금만 더 뻗었으면 안타였겠네. 타격감이 나쁘지 않나봐. 진짜 괜히 건드렸네.
‘음··· 그냥 집어치울까?’
효과가 이러니, 그냥 때려치울까, 싶었지만, 진짜는 그다음으로 올라온 타자였다.
카를로스 벨트란.
쿠퍼스타운 입성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한 선수 중 하나다.
첫 턴은 힘들겠지만. 몇 수를 거듭하면, 언젠가는 들어갈 것이라는 게 거의 확정적이지.
그런 만큼 리빙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타자인데, 그런 거물이자, 베테랑께서 심하게 쫄리는 표정으로 입장했다.
그것을 보며, 앞서 율리 구리엘에게 했던 것처럼 상큼하게 미소를 날려주니.
‘빙고.’
그는 고양의 앞의 쥐처럼 완전히 얼어붙었다. 역시 여기가 진짜구만.
배터박스 앞에서 시동이 꺼진 기계처럼 덜커덕 멈춘 그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저 새끼 뭐야? 왜 저래?”
“늙어서 치매라도 왔나?”
“Suck한테 쫄은 거지. 잘 봐봐, Suck이랑 눈 마주치고 얼었잖아?”
주변 관중들은 약간 웅성거리기도 했다. 심지어 주심마저 뭐 하는 거냐며 살짝 흘겨서 봤고.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건지, 황급히 타석에 오른 벨트란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뭐랄까, ‘들켰다!’하는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저번에 대타로 나왔을 때도 좀 과하게 쫄아 있더니···’
진짜 뭔가 있긴 있나 봐.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저 정도의 거물이 저런 표정이 될 정도면, 그저 그런 일은 아니겠지.
뭐, 내가 탐정도 아니니, 그게 뭔지는 알 수 없고, 어쨌든 이걸로 한 가지는 확실했다.
“스트라이크!”
일단 오늘 애스트로스 타선에서 카를로스 벹트란은 없는 사람이다.
앞서 율리 구리엘과는 달리, 스트라이크를 잡혔는데도, 그는 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집중력도 흐트러진 것 같고.
원래도 먹튀에 가까운 성적을 찍을 만큼 타격감이 좋지는 않은데, 거기다 멘탈까지 흔들렸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스트라이크 아웃!”
계속해서 내 눈치만 살피다가 삼진을 당한 그는 내려가면서까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듯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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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알아차린 것···”
“···오클랜드에서 조사라도···”
“어쩌면 저쪽 선수단에서는 이미···”
덕아웃의 분위기는 한층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카를로스 벨트란, 동경심마저 드는 대타자는 대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삼진을 당하고 돌아온 뒤, 은밀하게 다른 선수들에게 속삭였고.
조용한 그의 속삭임을 들은 동료들 또한 그와 비슷한 표정이 됐다. 흔히 사색이라고도 하지.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맥스 스태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도 충분히 긴장하고 있었다. 두려움도 품었고.
소문만 무성했던 괴물의 실체를, 오늘에서야 드디어 직접 마주하게 됐으니까.
그 실력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굉장히 긴장한 상태이지.
그런데 이미 그와 몇 차례나 상대했을 동료들은 그런 맥스 스태스 자신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고 있었다.
“후···”
슬그머니 감독을 보니, 그는 말없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런 상황 자체가 못 마땅하다는 것처럼.
“그러게 그런 짓은 그냥 하지 말자고 했잖···”
“너도 잘 써놓고 이제와서 무슨···”
“이미 돌이키기에는···”
“이제라도 그냥 없던 일로···”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진득하게 머문 적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매 시즌마다 오르내리며, 적응하고, 익숙해졌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그 선수들이.
오늘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지난 시리즈만 하더라도 서로 즐겁게 떠들거나, 장난을 치며, 깊은 유대감을 가졌던 동료들인데.
지금은 마치 서로 분열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분노했으며, 누군가는 다른 이들을 불편한 눈으로 지켜봤다.
좋은 리더이자,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메이커였던 호세 알투베나는 그런 분위기에도 한발자국 물러서 있었고 말이다.
조지 스프링어 역시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이제는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모르는 일로 동료들이 난감해하는 상황에, 맥스 스태시는 마치 선수단 내에서 따돌려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마찬가지로 확장 로스터로 콜업됐던 다른 선수들 또한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들 닥치고 경기에 집중이나 해! 수비하러 안 나가! 공수교대 안 할 거야? 기권이라도 할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자자, 다들 나가자. 글러브 챙겨.”
기이한 분위기는 결국 참지 못한 감독의 호통에 잠시나마 걷혔다.
불안하게 주변을 둘려보던 맥스 스태시 역시 황급히 포수 장비를 마저 챙겨 입으며 그라운드로 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
허나 심란했던 선수들의 정신상태 때문인지, 2회 말, 선취점을 내줘야만 했다.
애슬레틱스는 2득점을 올리며, 선취점을 가져갔고, 홈 관중들은 겨우 2점인데도 이미 승리가 확정되었다는 것처럼 환호했다.
아니, 거의 확정적이기는 하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의 성적만 보더라도. 2점 정도면 낙승이나 다름없겠지.
“후우···”
“너무 긴장하지 말고, 적당히 풀어. 저 녀석, 덩치는 곰 같은데 눈치는 빨라서, 긴장한 거 알면 바로 잡아먹혀. 하이 패스트볼 조심하고. 구속도 느리면서 그거 자주 던지니까.”
“아, 조언 고마워, 조지.”
그런 투수를 상대로,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한숨을 내쉬던 맥스 스태시는 조금이나마 진정된 건지, 다시 살갑게 웃는 조지 스프링어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경기에 집중하자.”
“오늘은 뭐, 거리낄 것도 없잖아?”
“우리 실력이면, 충분히 두들길 수 있어. 쟤 첫 홈런도 우리 작품인데.”
실점이 오히려 각성제가 된 건지, 우울했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에 맥스 스태시 역시 다시금 용기를 내며 그라운드로 나아갔지만.
이내 수비를 위해 나온 애슬레틱스 야수들과 그 녀석, Go의 표정에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더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허, 누가 보면 저쪽이 1등인줄 알겠네, 고작 2점 내놓고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그 표정이 맥스 스태시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누굴 비웃는단 말인가?
올해도 지구 꼴찌나 하지 않으면 다행힌 오클랜드 주제에, 지구우승이 확정된 우리를 비웃는다고?
참을 수 없는 황당함에 헛웃음마저 나왔지만, 이내 맥스 스태시는 입을 닫았다.
다시 살아나려는가 싶던 동료들의 분위기가, 이젠 죽은 지 한참 된 시체처럼 차갑게 식어버렸으니까.
“X발, 역시···”
“아니, 아니야. 일부러 도발하는 거야. 저 새끼 술수 뻔하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공포, 그 공포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에워쌌다.
마치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었고, 이를 바득바득 갈기도 했다.
단 몇 초 만에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맥스 스태시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디뎠다.
“우우우우우!”
“넌 뭐하는 찌끄레기냐?”
“Suck한테 마이너 애새끼를 가져다 대? 뒤질 준비나 해라!”
관중들의 조롱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을 뿐.
타석에 오른 뒤, 마찬가지로 엿 같은 미소를 품고 있는 포수를 보며, 맥스 스태시는 진심을 담아 물었다.
“대체 왜 쳐 웃는 거야? 이유는 뭐고? 겨우 2점 가지고 그래?”
딱히 트래시 토크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도대체 오클랜드가 무엇을 쥐고 있기에, 이렇게 웃는 것만으로 동료들을 사색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같은 포수인 만큼, 그는 애슬레틱스의 포수가 부디 진실된 답변을 해주길 바랐지만.
“글쎄··· 우리가 왜 웃을까? 그냥 타석에나 집중해.”
돌아온 대답은 이번에도 아리송했다. 오늘 내내, 오늘 경기를 맞이하는 내내 그랬던 것처럼.
머리가 복잡했다. 감정도 요동쳤고.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기다렸던, 동앗줄과 같은 기회인데도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스트라이크!”
허나 초구가 날아와, 몸쪽에 박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딱히 원하지 않았는데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제대로 보지조차 못했지만, 알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 타석 위에서는 어떠한 잡념도 품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렇지 않는다면···
“스트라이크!”
조지가 말했던 것처럼, 60피트 60인치(18.44m) 앞, 10인치 높이의 언덕에 오른 괴물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사실···
“스트라이크 아웃!”
이미 삼켜진 지 오래였지만.
3구, 황급히 스윙했지만, 배트는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 삼진.
최소한 땅볼, 외야 플라이 정도는 날리고 싶었지만, 미친 듯이 꺾여나가는 서클 체인지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You Suck!”
승부가 끝난 순간, 숨통을 조여들던 압박감은 한순간 사라졌다.
관중들은 그 이름도 유명한 ‘You Suck!’챈트로서 그의 삼진을 조롱 혹은 축하했고.
투수는 마치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조금 전처럼 뒤틀린 비웃음이 아닌, 진심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첫 타석은 그렇게 끝났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3회 초도 그렇게 끝났고.
세 이닝 동안 맥스 스태시가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하나, 타석에 오를 때는 오직 타격과 투수, 승부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만 얻었을 뿐.
어쩌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팀 전체가 그럴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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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휴지통 상태 왜 이럼?]
-죄다 선풍기네 원래 휴지통 이런 느낌 아니지 않음?
└투수가 고유석이잖아.
└우문현답이네
└투수가 고유석인데 원래 느낌이 뭐가 중요해 다 뒤지는 거지.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하긴 이상함 묘하게 경기에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음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것은, 단순히 현장뿐만이 아니라, 중계방송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이들에게도 느껴졌다.
이번 시즌 시원시원하고 한방이 넘치는 타격을 선보이며, 신규 유입팬들을 꽤나 생성시킨 것과 많이 달랐으니까.
공격이야, 상대 투수가 고유석이니, 당연하다 하더라도, 이어진 3회 말의 수비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기에 더욱더 의아했고 말이다.
“아, 이걸 놓치나요? 율리 구리엘이 송구를 놓쳤습니다!”
“음, 율리에스키 구리엘 선수 뿐만이 아니라, 휴스턴 전체가 오늘은 묘하게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네요.”
“네, 아무래도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휴스턴 답지 않네요.”
중계진마저 직접적으로 꼬집을 정도로 무언가 삐걱거리는 듯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A’s]
[휴스턴 왜 저래? 원래 Suck한테는 개발리긴 하는데. 오늘은 좀 심하다?]
└애들 맛탱이가 갔는데?
└억울하네. 저런 새끼들도 지구우승으로 디비전 직행하는데, 우린 와일드카드도 못 간다는 게···
└저따구로 할 거면 포스트시즌 티켓 반납하고 우리한테 넘기면 안 되나?
└솔직히 전력 자체는 휴스턴이 더 좋긴 한데. 오늘처럼 하면 우리가 올라가는 게 서부지구 이미지에 더 이득이지.
특히나 애슬레틱스 팬들은 그런 식으로 경기할 거면, 그냥 우리한테 포스트시즌을 넘기라는 반응이었고 말이다.
“2루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조지 스프링어, 두 번째 타석은 내야땅볼로 물러납니다.”
“높이 떴는데요? 포수가 쉽게 잡습니다. 포수 팝플라이, 호세 알투베 역시 아웃!”
“4구, 바깥쪽, 스트라이크 아웃! 카를로스 코레아! 백도어 슬라이더를 멍하니 지켜만 봅니다! 4회 역시 삼자범퇴!”
고유석은 그런 애스트로스를 차곡차곡 쓸어 담았다. 종종 썩은 듯한 미소를 선보이기도 하면서.
[오늘 고유석 왜 저러냐?]
-중간중간에 자꾸 기분 나쁘게 쳐 웃네, 멀끔하게 생겨놓고 왜 저러냐 저럴 거면 얼굴 나주지
└신한테 쳐 웃는다가 뭐냐, 쳐 웃는다가. 말씀 똑바로 안 하냐?
└쳐 웃으시네.
└그렇지, 그래야지. 앞으로 높임말 써라. 반말하지 말고. 신이시다.
└평소에도 감정표현이 솔직하긴 한데, 오늘은 뭐 약 잘못 먹은 거 같긴 함
└잘못 먹은 게 아니라 ㄴㄴ 먹어야 될 약을 안 먹은 거임.
└휴지통 개털고 있는데 좀 쪼갤 수도 있지ㅋㅋㅋ 멀쩡한 사람 정신병자로 만드네ㅋㅋㅋ
└솔직히 멀쩡한 사람은 아님 멀쩡한 사람이 왜 성적이 저래 어디 하나가 미친 거지
└고유석 말고 다른 선수들도 저러던데 이거 단체로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크데 잘생겼는데 저렇게 웃으니까 좀 빙구같음
평소에도 감정표현이 적극적인 선수였고, 그것을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심하게 뒤틀린 미소였기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조금 우습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 불쾌하고 조금은 우스운 미소가 애스트로스를 옭아매고 있음을 모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