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하아···”
“씁, 올해는 좀 좋았는데···”
“돌고 돌아서 다시 꼴찌는 아니겠지?”
에인절스 시리즈가 끝난 뒤, 선수들은 부쩍 우울해졌다.
포스트시즌이 완전히 날아갔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여기서 더 내려 박았다간, 자칫 다시 지구 꼴찌가 될 수도 있고.
‘초반에 이긴 거, 이자까지 두둑히 챙겨서 고스란히 돌려줬네.’
스윕 그리고 루징 시리즈.
시즌 초반에 에인절스를 제법 잘 잡았었는데, 막판에 대주네. 등가교환이야 뭐야.
“후우··· 잘할 수 있어. 다시 제대로 해보는 거야···”
“메이저리그, 별거 아니지. 나도 Suck처럼 할 수 있어.”
기존 선수들이 침울해진 반면, 확장로스터로 올라온 녀석들은 오히려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막판에 올라왔으니, 팀 성적이야 어차피 자기들이랑 관계없으니. 어떻게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겠지.
어차피 포스트시즌 날아갔으니, 어쩌면 팀에서 본인들에게 기회를 줄지도 모르니까.
‘극과 극이구만. 한쪽은 우울증 걸린 것 같고, 다른 한쪽은 열정이 과하고.’
밖에서 보면 이게 무슨 개또라이 집단인가, 싶겠어.
“Suck, 혹시 서클 말이야···”
“Suck 너 커브 그립을 어떻게 잡아? 그, 슬러브 같은 거. 예전에 락하운즈에선 그런 거 안 던졌잖아?”
그런 뉴페이스들 중 몇몇은, 특히 나랑 같이 뛰어봤던 녀석들은 종종 나한테 뭔가를 배우려고 하기도 했다.
생각해봐? 다른 투수들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완전 보물 고블린이지, 보물 고블린. 탐스러운 변화구를 덕지덕지 가지고 있잖아.
그중 하나만 잘 배워도, 인생이 달라질 텐데. 욕심이 안 날수가 있나.
그래서 그런가, 대충 트레이닝하고 있으면 친한 척 하면서 슬그머니 다가와 그립을 묻는데.
‘세상 참 많이 달라졌어. 천하의 라울 알칸타라가 나한테 그립을 묻는다니···’
흐흐흐, 기분 좋구만. 내가 올려다봤던 녀석들이 내 앞에서 무릎 꿇고(?) 그립을 가르쳐 달라며 빈다니.
내 저열하고 많이 뒤틀린 욕망을 제대로 충족시켜주는군. 아주 좋아.
“대충 이렇게 잡아. 별거 없어, 그냥 평범해. 그리고 너클 커브는 내가 아니라, 리암이 원조니까, 그쪽에 물어. 나도 배운 처지인데, 막 가르쳐줄 수는 없지.”
사실 이건 좀 농담이고, 대부분은 그냥 좋게좋게 가르쳐줬다.
뭐, 그립 똑같이 잡는다고 나랑 똑같이 던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싸게 굴 필요는 없지.
그리고 좀 과하게 시간을 잡아먹는다 싶으면···
“쓰읍! Suck 내일 등판하는데, 괜히 귀찮게 하지마.”
“아, 미안. 내가 실수했네. 아무튼 그립 알려줘서 고마워, 잘 써먹어 볼게.”
“수고해라.”
브루스가 달려와서 적절하게 커트해주니까. 무슨 매니저도 아니고, 너도 참 징하다, 징해.
“질투하냐? 내가 막 다른 사람이랑 대화 나누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그래? 너 앞으로는 샤워할 때 내 근처에 오지 마라. 이거 위험한 새끼였네.”
“···Suck 너야말로 그딴 개소리 하지 마. 그냥 니 컨디션이 제일 중요하잖아? 안 그래도 팀 분위기 개X같은데. 너라도 X나게 잘해야지. 뭐, 닥치고 공만 받으면 알아서 잘 하겠지만.”
잘 아니 다행이군.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주 훌륭한 공받는 기계가 되겠네.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니,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브루스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웃지마, 정들어. 니가 자구 그러니까, 나도 슬슬 진짜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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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슬레틱스, 사실상 포스트시즌 실패?>
<고유석의 가을야구는 다음 기회에···>
[고유석 x같을 듯]
-ㅅㅂ 존나 잘하고 있는데 포스트시즌을 못 나가네ㅋㅋㅋ
└알서부 특징이냐? X나 잘하는 선수가 포시를 못나가네 트라웃도 X신팀 때문에 14년 한번밖에 못 나갔는데 고유석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님?
└가능성이 없진 않지.
└솔직히 애슬레틱스 포시 가기만 하면 다 씹어먹을 텐데
└그치, 고유석이 와일드카드 나오고, 디비전 3차전 나오고, 챔피언십 1,5차전 나오고, 월드시리즈 1,4,7차전 나올 테니까, 간혹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구원등판도 해줄 거고 풀로 채우면 50이닝 80K쯤 할 듯
└└그러다 과로로 뒤져;;;
└└ㅈㄴ알차게 굴려먹네ㅋㅋㅋ
└└??? : 유석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애슬레틱스와는 별개로, 고유석을 응원하는 팬들 중에서도 포스트시즌이 사실상 좌절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을 써 내려가는 투수이고, 지금까지는 철인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인 만큼.
그런 투수가 과연 포스트시즌, 가을야구에서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적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3년 전 범가너의 전설을 다시 만들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있었고.
허나 사실상 날아가버린 가능성에 사람들은 아쉬움만 곱씹으며, 그저 남은 정규시즌 동안에라도 쭉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다음 상대 휴지통임?]
-휴지통 상대로 고유석 퐁당퐁인데 이번엔 당인가?
└퐁당퐁은 뭔 개잡소리임? 술 먹고 글씀?
└첫 경기는 8이닝 무실점 두 번째 경기는 6이닝 2실점 1홈런 세 번째는 8이닝 1실점임 그래서 퐁당퐁이라고
└당 차례이긴 하네ㅋㅋ
└휴지통이 어디임? 그런 팀도 있음?
└휴스턴 ㅂㅅ아
다음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번 시즌 알서부의 대마왕처럼 군림하는 고유석이지만.
개중에서 그나마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제법 상대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고유석에게서 첫 피홈런을 빼앗아낸 데다가, 지난 경기에서도 초반에는 기세가 좋았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 좋다는 거지, 처참하게 털린 건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그런 사이클(?)이 이어질지.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고유석이 쓸어버릴 지에 대해 예측하며, 사람들은 경기를 기다렸고.
하루의 이동일이 지나간 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오클랜드를 밟았다.
####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저번보다 살짝 더 좋은 것 같기도?”
“음, 루틴이 제대로 자리잡혔나 보네요. 다행입니다.”
오후 늦게 일어나니, 몸에 개운함이 감돌았다.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좋은 정도?
물론 그렇다고 해도, 더 쉰 만큼 힘이 펄펄 끓었지만 말이다.
대니얼과 같이 5일 휴식에 알맞은 루틴을 찾으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네. 딱 좋아.
“Suck, 배알이 꼴려서 못 살겠어. 휴스턴 죽여버려. 감히 포스트시즌을 나가? 만년 탱킹만 하던 새끼들이?”
“우린 포스트시즌 못 나가는데, 걔들은 지구우승?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난 이거 못 참는다.”
“아주 신났을 텐데, 찬물, 아니, 얼음물을 끼얹어버려! 삼진 X발 한 20개 잡아!”
우리 팬들은 참 바람직한 사람들인 것 같다. 평소처럼 선수 전용 주차장에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저렇게 말하며 나한테 애스트로스를 조지길 요구했으니까.
포스트시즌 실패에 아쉬워하면서 팀 불만을 품는 대신, 잘나가는 놈에게 괜히 고춧가루 뿌리는 것으로 표출하다니.
팀이 미워지는 것보다는 굉장히 건전한 팬심이군. 다르게 말하면 꼬장이기도 하고.
“설마 저번처럼 또 안 나오는 건 아니지? 나 그러면 진짜 울어?”
“갑자기 6일 휴식 같은 지랄은 안 하는 거 맞지? 윗대가리 X새끼들이 별소리 안 했어?”
다만 오늘도 풀세팅을 하고 나타난 레이더스 중 몇몇은 약간의 PTSD를 겪는 것 같았다. 얼굴이 익숙한 걸 보아, 저번에 에인절스 원정 때 본 사람들이군.
다 큰 성인남성들이 내 눈앞에서 오열을 해서 그런가, 똑똑히 기억이 나네.
저번의 노쇼(?)가 아직까지 마음에 남았나봐. 지난 경기 잘 봐놓고서 그러시네.
그리고 어떤 팔자 좋은 팀이 선발투수를 6일이나 쉬게 하겠어. 아무리 날 아껴준다고 해도 말이야.
“오늘 무조건 나오고, 애스트로스 열심히 조질 거니까, 편하게 구경이나 하세요. 아, 사인 해드려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사인은 필요 없어. 우리 집에 남아돌아. 사인 받은 유니폼만 다섯 벌이야.”
“사진도?”
“휴대폰에 우리 딸보다 Suck 너랑 찍은 사진이 더 많은데, 사진은 무슨 사진?”
“···그럼 대체 여기 왜 있어요? 사인받는 것도 아니고, 사진 찍으려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경기 전에 얼굴이나 보는 거지. 잘해!”
정말 기이한 팬심이라니까.
내 등판마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사인이나 사진이 필요한 사람이 하나도 없네.
그런 팬들을 뒤로한 채, 클럽하우스로 향하니, 아예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스콧 에머슨이 맞이해줬는데.
“Go, 오늘은 좀 어때?”
“저번보다 좋아요, 완봉도 가능하겠는데요?”
내 조크에 이번에도 싸늘한 눈빛을 했다. 같이 클럽하우스로 들어온 대니얼도 비슷한 표정이었고.
아, 저번 경기에 딱 7이닝에 끊었는데. 오늘은 완투 좀 하면 안 됩니까? 둘 다 진짜 너무하네.
“농담입니다. 농담이에요, 대니얼. 표정 풀어요. 바로 몸부터 풀죠.”
예, 안 되겠죠. 절대로 허락할 눈빛이 아니구만. 맨입으론 안 되고, 적당히 상황을 만든 다음에 살살 꼬셔야지, 지금은 씨알도 안 먹히겠어.
“오늘은 일찍 나왔네? 원래 저녁 경기면 한 30분 늦지 않나?”
곧바로 워밍업을 시작하니, 슬그머니 다가온 브루스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보다 좀 이르긴 하지.
하지만 최적의 시간을 찾은 결과, 5일 휴식에는 이게 딱 좋다.
예전처럼 자니까, 오히려 몸이 좀 늘어지더라고. 너무 쉬는 것도 안 좋기는 해.
“오늘도 너냐?”
“우린 영혼의 배터리야. 당연히 나지. 걱정 마, 닥치고 잘 잡을 게.”
확장 로스터로 포수도 하나 올라온 걸로 아는데, 맨날 얘네. 어우 지겨워. 애슬레틱스에 그렇게 인물이 없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충 같이 몸을 풀었을 때, 브루스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휴스턴 새끼들 설마 또 사인 훔치지는 않겠지? 저번에는 그거 때문에 처음에 좀 난감했잖아.”
나도 그게 좀 걱정이기는 하다. 한번 하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턴 쉽거든.
또 어떤 신묘한 방법으로 사인을 훔칠지는 아무도 모르지.
“설마, 우리 홈인데. 뒤지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그래도 저번에 나한테 옴팡지게 털렸고, 또 여긴 우리 홈이니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럴 용기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우리 연고지가 좀··· 거친 곳이잖아? 원정에서는 많아야 백 명 정도에 불과한 레이더스가 홈에선 거의 천명은 된다. 더 많을 때도 있고. 그런 곳이지, 오클랜드는.
만약 여기서 개짓거리 하다가 걸리면, 진지하게 2,3,4차전은 그냥 기권하고 도망치는 게 나을 걸?
“하긴··· 아무리 배포가 좋아도, 오클랜드에서 그런 개짓거린 못하긴 하겠네.”
서서히 차오르는 관중석을 흘끔 둘러본 브루스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일반적인 사인 훔치기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위축됐을지도 모르지. 훔친게 들켰으니··· 엄청 쫄릴 테니까.’
우리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전자기기까지는 아닌 것 같긴 한데. 만약 그런 거라면 개짓거리는커녕, 오히려 엄청 겁먹고 있을 거다.
진지하게 월드시리즈 우승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주류인데, 거기에 똥칠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보면 알겠지. 뭐, 그냥 사인 훔치기 자체야, 경기의 일부분이니까. 그냥 멀쩡하게 나올 수도 있고.’
그것을 끝으로, 잡념을 지운 뒤, 오로지 루틴에 맞춰 워밍업에 집중했다.
서서히 올라오는 폼.
딱 좋은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을 때 대니얼을 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15분 됐습니다. 이젠 시계가 필요 없겠네요. 바로 불펜으로 가시죠.”
자, 그럼 팬들이 바라는 것처럼, 우리 포스트시즌 나가는 사인 도둑놈의 쉐끼들을 잡아 족칠 준비를 해볼까?
우린 포스트시즌도 못 나가는데. 니들은 지구우승이 확정이라고? 나도 이건 못 참지.
코리안식 청양고추 간다! 포스트시즌이야 어차피 나가겠지만. 기분이라도 더럽게 만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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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갑자기 왜 이래?’
오클랜드에 도착하기 전부터, 선수들은 조금 이상했다.
당장 원정길만 보더라도. 평소 흥이 넘치는 선수들로 인해 시끌시끌하던 것과는 다르게, 오클랜드로 향하던 기내는 한없이 조용했고, 공포 같은 감정이 비행기 전체에 감돌았으니까.
사실상 지구 우승을 확정 짓다시피 하며, 포스트시즌에 들떠 있던 동료들이 한순간 축 가라앉은 것을 맥스 스태시는 조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후우···”
종종 들리는 한숨 소리는 그런 선수단 분위기를 한층 더 저하시켰다.
누가 본다면, 지금 애슬레틱스와 애스트로스의 상황이 정반대로 보이지 않을까?
지옥으로 끌려가는 패잔병 같은 모습은 확장 로스터로 콜업된 뒤, 절박하게 의욕을 불태웠던 맥스 스태시에겐 대단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들 왜 이래?”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콜리시엄, 원정지에 입성한 뒤에도 여전히 조용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던 맥스 스태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주 어울리며 제법 친분을 쌓은 조지 스프링어에게 물었다.
“어? 뭐, 그냥 그런 게 있어.”
허나 그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마치 무언가 말하기를 꺼리는 것처럼.
그래도 계속 바라보니, 그는 다른 선수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맥스 스태시에게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오늘 선발투수 때문이야.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오늘 선발투수라면- 아.”
“쉬. 다들 신경이 좀 예민하니까, 괜히 긁지 마. 특히 벨트란 조심하고.”
그건 눈으로 봐도 잘 알 수 있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온 맥스 스태시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1차전 선발이라면··· Go지?’
Go You-Suck.
이 선수를 모르는 야구선수가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약 모른다면 야구를 때려치워야 할 거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뜻인데, 일에 애정이 없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지.
그 이름은 우울한 선수들의 모습을 이해 시켜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아함을 낳았다.
‘진짜 그렇게 잘하나? 얘들이 전부 다 이렇게 죽상이 될 정도로?’
이번 시즌 최고의 라이징 스타. 라이브볼을 넘어, 데드볼 시대의 괴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인 스탯.
감히 메이저리그 역사상 No.1이라고 해도 무방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
허나 기존의 선수들과는 달리, 새로이 콜업하거나, 선수단에 합류한 이들에겐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 잘해? 정말? 페드로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심지어 월터 존슨까지 꺼낼 정도로?
지구우승이 확정된 팀이자, 월드시리즈 컨텐더급 팀으로 평가받는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이렇게 기가 죽어버릴 정도로?
야구와 가까웠기에, 오히려 실감이 안났다. 역대 기록이나, 통계에서나 보던 선수들과 비슷한 투수가 자신들과 동시대에 있다는 것이.
‘워낙 대단한 투수니까, 겁 먹는 거야 어찌어찌 이해해도, 뭔가 좀 껄끄럽다는 느낌도 있는 것 같은데.’
또한 단순히 그런 투수에 대한 공포 정도가 아니라는 것 역시 마음에 걸렸고. 마치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지금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들 그 잘못을 처벌 받기 위한 재판장에 끌려가는 범죄자 같은 느낌도 들었다.
‘뭐가 됐든 한 방 날리자.’
그것을 보아, 아마도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그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맥스 스태스에겐, 그와 비슷한 이들에게 Go는 일종의 복권이었다.
‘제대로 날려서 눈도장 찍기만 하면··· 그러기만 하면 돼.’
확장 로스터로 콜업된 선수들이 전부 다 유망주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많지.
AAAA급 리거.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서히 늙다가 잊혀지는 선수들. 그들이 대다수니까.
맥스 스태시 역시 AAAA리거에 가까웠다. 주전 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경기를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브라이언 맥캔이 영입되면서, 백업조차 못하고, 한순간 쭉 밀려났지. 13년부터 메이저 경기에 나왔는데도, 지금까지 레귤러 선수단에는 자리도 못 잡았고.
포수인 만큼, 다른 포지션보다는 훨씬 사정이 낫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백업이라도 돼야 그나마 안정적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Go는 딱 알맞았다. 가장 주목받는 선수이고, 구단에서도 두렵게 여기는 선수인 만큼. 얻어걸려서라도 한방을 날린다면,
구단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 테니까.
‘마침 오늘은 선발출장이니까. 큰 거 안 바라고, 딱 하나만 치자, 하나만. 그것만 해도 충분히 좋게 평가받을 거야.’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선발출장을 하게 됐고.
7번타자로 나갈 수 있으니까.
아마 구단에서도 기회를 준 것이겠지.
브라이언 맥캔을 뒤이어 팀의 커맨더가 될 선수를 가려내야 할 테니까.
‘하나만, 치자 하나만. 큰 거 아니라도 좋으니까, 딱 하나만.’
욕심을 버리는 듯하면서도, 최소한의 욕심은 품는, 조금은 모순적인 감정으로 경기를 기다리니. 어느 순간부터는 관중석 전체가 거의 다 찼고. 그것 역시 조금은 의아했다.
‘오클랜드가··· 이 정도였던가?’
오랫동안 메이저의 맛을 봤던 만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도 제법 익숙하긴 했다.
같은 서부지구 팀인데다, 제법 상대해봤으니까, 원정에서든, 홈에서든.
그런데 지금의 애슬레틱스는 맥스 스태시가 기억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원정을 올 때면, 언제나 경기장이 텅~빈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관중을 자랑했으니까. 그에 신기한 듯 관중석을 훑을 때쯤.
“나오네.”
“하··· 오늘도 멀쩡하구만.”
“쯧.”
동료들의 탄식과 같은 말소리와 함께, 불펜의 문이 열리고, 그 모든 관중들이 기다렸던 주인공이 등장했다.
Go You-Suck.
저 멀리서 다가오는 그를 보자마자, 왠지 모를 답답함이 아래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무슨 느낌이···’
딱히 폼을 잡지도 않았다.
멋진 척 표정을 짓지도 않았고, 무표정하게 싸늘한 눈빛을 하거나, 사납게 노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맹하게 느껴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품고서 껌을 짝짝 씹고, 심지어 풍선까지 불면서 올라왔는데. 그렇기에 느낌이 달랐다.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네.’
저 녀석에겐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메이저리그가, 빅리그의 타자들이 겨우 그 정도인 건가?
저토록 여유를 가질 정도로.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 말이다.
그런 여유에 약간 발반심도 들었다.
한 경기, 한 타석, 한 이닝에 필사의 각오를 다하여,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도 여유로운 투수를 보니, 왠지 감정이 울컥했다.
‘얼마나 잘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한방만 먹여주면 되는 거야.’
그렇기에 의지를 불태웠지만.
맥스 스태시와는 달리, 다른 선수들은 그런 자신만만한 투수의 모습에도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이 저렇게 구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자자, 다들 파이팅!”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는 건지, 타격코치가 소리쳤지만, 그리 텐션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경기. 1회 초.
첫 타자로 나갔던 조지 스프링어는, 아까 전의 어색한 미소가 아닌, 대단히 긴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올라섰다.
그 본인이 저 괴물에게 첫 홈런을 먹여준 장본인인데도 말이다.
‘왜 저렇게 겁먹었-’
그것이 왠지 불만스럽게 느껴진 순간. 초구가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대놓고 던진 몸쪽 패스트볼.
오클랜드에 오기 전부터 타격코치가 강조했었지. 저 녀석은 몸쪽 패스트볼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느릿한 구속과는 다르게, 강심장을 가져 대단히 극단적인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투수이니까.
그토록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몸쪽 패스트볼인데도, 조지 스프링어는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삼진을 당했다.
아쉬운 듯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것을 억울하게 여기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어쩌면 그때부터였다.
맥스 스태시의 시선에, 그저 복권이라고만 생각했던 잘 나가는 투수가.
“스트라이크!”
리그의 역사를 논하는 정점의 투수,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를 점령한 마왕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스트라이크!”
원래도 대단히 듬직한 체구였지만, 마운드 위의 그 몸은 점점 더 커졌다. 거대한 벽처럼, 커다란 성처럼.
“스트라이크 아웃!”
친밀했던 선수.
동경심마저 드는 동료까지.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고.
“아웃!”
마지막 3번타자, 카를로스 코레아만이 간신히 내야뜬공으로 잡히며 1회 초가 끝났을 때.
맥스 스태시의 머릿속에 더는 한방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뭐야 저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본 것처럼, 새하얗게 물들었을 뿐.